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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논란 뒤에 숨은 진실

최종학 | 28호 (2009년 3월 Issue 1)
2008년 9월 19일 영국 HSBC는 외환은행의 최대주주인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지분 51% 인수 협상이 무산됐다며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그 배경을 둘러싸고 많은 추측이 쏟아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세계 각국 은행들의 가치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HSBC가 외환은행보다 해외 다른 은행을 매입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거나, 세계적 유동성 위기로 외환은행 인수에 필요한 현금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라는 게 대표적이다.
 
배경이 어찌됐든 2007년 여름부터 이뤄진 HSBC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협상은 무려 1년여의 시간을 끌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이후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라는 두 국내 금융기관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사실 두 은행은 이미 2006년 초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대결한 바 있다. 당시 국민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어 인수 협상을 벌였으나 2006년 말 론스타가 인수 협상을 파기했다. 그 뒤 론스타는 HSBC와 인수 협상을 시작했지만 협상이 결렬됐다. 결국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새해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진 두 국내 은행이 과연 외환은행을 인수할 여력이 있는지 확실치 않다. 론스타 역시 금융위기 이전에 외환은행을 매각했다면 훨씬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었을 것이다. 양측 모두 상당한 기회 비용을 날린 셈이다. 어떤 식으로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최소한 금융위기가 끝나야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론스타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은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전 정권에서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과 헐값 매각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외환은행 매각을 허용하지 않았다. 법적 금융기관이 아닌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불법 로비를 벌이면서 뇌물을 제공했으며, 외환은행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조작했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BIS 비율은 국제결제은행이 정한 은행의 부실채권 대비 자기자본의 비율을 의미한다. 이 기준에 따라 은행은 위험자산에 대해 최소 8% 이상의 자기자본을 유지해야 건전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금융기관이 아닌 주체가 금융기관을 인수하려면 BIS 비율이 8% 이하인 부실 금융기관만 인수할 수 있다.
 
때문에 헐값 매각과 론스타의 인수 자격을 문제 삼는 쪽에서는 외환은행이 회계 조작으로 일부러 BIS 비율을 낮춰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외환은행의 부실 정도를 실제보다 더 심하게 부풀려 실제 가치보다 훨씬 싼 값에 매각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론스타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해왔고 이 문제는 곧 소송으로 번졌다.
 
1심 판결은 2008년 11월 25 내려졌다. 법원은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며 모든 기소 사항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이에 즉각 상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지루한 법정 공방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다.
 
이 사건 관련자들은 이미 감사원의 조사를 받았고, 2006년 말 그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감사원은 유희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가 외환은행을 매입하기 위해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 국장의 친구인 하종선 변호사에게 100만 달러 이상의 로비 자금을 지급했고, 하종선 변호사의 로비를 받은 변양호 국장이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 행장과 공모해 외환은행이 실제보다 더 부실한 것처럼 회계자료를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그 대가로 이강원 행장은 고문료라는 명목 하에 17억 원을 받고, 인수 후 행장 자리도 약속 받았다. 변양호 전 국장은 자신이 운영하던 보고펀드에 외환은행이 400억 원을 투자할 것을 약속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외환은행이 2003년 8월 불법적으로 론스타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 감사원 발표의 핵심 내용이다. 실제 발표 내용 중 현금이 오간 부분은 모두 계좌추적 등을 통해 확인된 사항이다. 감사원과 검찰은 현금이 오간 것이 외환은행을 불법으로 론스타에게 넘기기 위해 벌어진 행동의 결정적 증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주장은 전혀 달랐다. 이들은 로비 자금이 아니라 정당한 자문료로 돈을 받았으며, 보고펀드에 대한 투자금은 순수한 투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법원 역시 피고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즉 이들이 회계자료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영자나 정책 당국자가 판단을 잘못했을 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피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외환은행의 BIS 비율 논란
필자는 한 쪽에서는 뇌물, 다른 쪽에서는 고문료 및 투자금이라고 불리는 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을 회계 문제인 BIS 비율 조작 여부에만 맞춰보자.

사실 BIS 비율 조작 여부는 회계 전문가들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회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이나 재판부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정말 힘들 것이다. 회계장부 상의 숫자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이 숫자들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를 5년 이상이 흐른 현재 상황에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숫자를 조작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정황 증거가 존재한다. 2003년 5월 17부터 7월 16일까지 만들어진 3가지 보고서에서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8.249.14% 였다. 즉 부실 은행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인 BIS 비율 8% 미만보다 상당히 높다. 그런데 이 비율이 불과 1주일 후인 7월 25일 보고서에서 갑자기 6.16%로 대폭 하락했다.
 
이 보고서는 변양호 국장이 이강원 행장으로부터 팩스로 받아 관계기관 회의 때 제시한 것이다. 이 6.16%라는 비율 때문에 외환은행은 부실 금융기관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다. 만약 이 때 BIS 비율이 8% 이상이었다면, 법률에 따라 사모펀드가 아닌 법적 금융기관만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다. BIS 비율 때문에 론스타의 제약 조건이 풀린 것이다.
 
이 정황 증거는 상당히 구체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담당자들이 회계자료를 조작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될 수 없다. 불과 1주일 사이에 그 전에 몰랐던 엄청난 부실을 갑자기 발견해 BIS 비율이 2%p 떨어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수치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누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또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부실 위험이 있는 자산을 보수적으로 상각했기 때문에 BIS 비율이 하락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이 설명 또한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불확실하면 보수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회계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결국 입증이 불가능한 이런 설명들은 과학적 분석을 통해 접근해 보는 방법밖에 없다. 고려대 권수영·마희영·정경철 교수는 2008년 회계저널 17권 1호에 발표한 ‘외환은행 매각 시 BIS 비율 추정치의 적정성 평가와 재무비율분석 및 가치평가’ 논문을 통해 당시 외환은행 재무제표에 나타난 수치들이 과연 합당한지를 검증했다. 분석의 주 내용은 대손충당금과 유가증권 감액손실에 관한 것이다.
 
당시 외환은행은 하이닉스·두산중공업·현대상선·SK글로벌 등의 주 채권은행으로서 이들 여신에 대한 상당한 규모의 충당금을 쌓아야 했다. 권수영 교수 등은 외환은행이 외환위기 직후의 대손률을 그대로 이용하여 대손충당금을 지나치게 보수적인 기준으로 설정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외환은행은 하이닉스 주가를 1000 원으로 평가해 대손충당금을 과도하게 산정했다. 하이닉스의 2003년 12월 31 주가가 5600원이고, 문제의 팩스가 작성된 시점의 주가가 8000원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1000원은 상당히 무리한 추정이다.
 
이 무리한 추정들을 정상적 추정치로 환원해 재계산한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8.33%였다. 이는 2003년 6월 17감원 은행검사1국이 외환은행 경영의 최악 시나리오를 가정해 계산한 8.24%라는 비율과 매우 근사한 수치다. 8.24%라는 금감원의 수치 또한 하이닉스·현대종합상사·SK글로벌 등이 모두 청산되어 외환은행이 이에 관한 대출금을 모두 손실 처리하고, 두산중공업과 현대상선에 대한 채권도 대부분 상각한다는 매우 극단적인 추정 하에 나온 수치였다.
 
이 분석 결과를 보면, 외환은행이 제시한 6.16% BIS 비율이 상당한 논란의 여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이 수치가 의도적으로 조작된 수치였는지, 아니면 잘못된 경영 판단에 의해 나타난 수치였는지를 증명할 방도는 사실 없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논란
헐값 매각 논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론스타는 1조 3834억 원에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이 매각가격은 외환은행이 삼일회계법인에 가치평가 용역을 준 후, 그 보고서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외환은행은 삼일회계법인에 용역을 줄 때 용역의 목적이 매각가격 산정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공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잠재적 부실을 고려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평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요청에 따라, 삼일회계법인은 현금할인모형을 이용하여 3가지 안을 제시했다. 외환은행은 이 중 제일 가격이 높은 수치를 지워버리고, 나머지 2가지 안만 가지고 협상을 진행해 매각가격을 결정했다.

일단 매수자도 아닌 매도자가 나서 최대한 판매 가격을 낮추려 했다는 행위부터 매우 비정상적이다. 매수자는 최대한 싼 가격에 사려고 하고, 매도자는 최대한 비싸게 가격을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의문을 제외한다 해도, 권수영 교수 등이 초과이익 모형(residual income model)을 사용해 계산한 외환은행의 매각 가치는 1조7000억
2조2000억 원 정도였다. 실제 매각가격보다 최소 4000억 원 이상, 최대 8000억 원 많은 수치다.
 
물론 1조3834억 원이라는 매각가격은 당시 외환은행 주가에 13% 정도의 웃돈을 얹은 수치이긴 하다. 그러나 애초에 매각가격이 실제 가치보다 4000억8000억 원이 낮았다면 13%의 웃돈은 무의미하다. 게다가 13%라는 프리미엄 수치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인수합병(M&A)에서 많은 기업들은 피인수 기업에게 몇 배 높은 수준의 프리미엄을 제시한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도 피고들은 매각 가격이 너무 높을 경우 매각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판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으며, 법원도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외환은행 사태가 남긴 4가지 숙제
외환은행 사태에 대해 생각해 볼 문제는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사안의 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생각으로도 4가지 중요한 추가 문제가 있다.
 
첫째, 세제 문제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수조 원의 차익을 얻었지만 국내 법 체계의 허점을 이용해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외환은행의 최대 주주는 LSF-KEB 홀딩스다. 본사를 미국에 둔 론스타가 출자하긴 했지만 LSF-KEB 홀딩스는 벨기에에 있는 명목 회사(페이퍼 컴퍼니)다. 한국 정부가 벨기에와 체결한 조세 조약에 따르면 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은 법인이 있는 거주지 벨기에에서 내게 돼 있다. 그러나 국내에 고정 사업장이 있다면 우리 정부가 과세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벨기에가 조세 회피지역이라는 점이다. 론스타는 조세 회피지역인 벨기에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외환은행 지분 매각 작업을 주도했기 때문에 조세조약 상 세금을 낼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론스타는 2001년 강남 스타타워 빌딩을 인수할 때도 휴면 법인을 이용하는 수법으로 ‘취득세 300% 중과’ 규정을 회피한 바 있다.
 
정부 당국은 외양간 고치는 타령은 그만두고 이런 허술한 조세 체계부터 개편해야 한다. ‘악법도 법’인 만큼 론스타를 탓할 필요가 없다. 어떤 기업이건 개인이건 세금을 덜 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비난에 앞서 시대에 뒤쳐진 법 체계를 제때 개정하지 못한 우리 자신부터 탓해야 한다.
 
국세청은 500만 원, 1000만 원을 체불한 개인 체불자 수만 명을 추적하는 것보다 이런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국가 세수를 늘리는 데 훨씬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론스타 사건이 일어난 지 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에 관한 법률이 개선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둘째, 불필요한 국부 유출을 조장하는 금산분리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금산분리는 대기업 등 산업자본이 은행에 대해 4%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한 은행법 조항이다. 산업자본이 자기자본이 아닌 고객 예금으로 은행 등 금융산업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82년 만들어졌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대다수 국내 은행 소유권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서부터 이 법이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만약 2003년 당시 금산분리 제도가 없었다면 금융기관이 아닌 사모펀드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일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초래할 이유가 없었다는 의미다. 국내 대기업이 금융업에 진출할 길을 막아놓고, 당시 인수 의사를 보인 기업이 론스타나 뉴브리지캐피탈 정도에 불과했다는 정부의 설명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현 정부는 금산분리 규정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산분리 제도 자체의 필요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27년 전 만들어진 법을 아무런 보완 없이 유지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만약 금융기관만이 은행을 경영할 수 있고, 그 안에서만 M&A가 벌어진다면 국내 은행업종은 독과점 시장에 진입할 것이다. 이미 이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제조업과 금융업을 양 축으로 삼아 발전을 거듭해왔다.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항상 비판하는 시민단체들도 이제는 문제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셋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 논란을 접어야 할 때가 왔다.
론스타가 과연 외환은행을 인수할 만한 자격이 있으며, 매각 과정에서 적법한 가격이 매겨졌느냐는 논란은 재판이 벌어지는 향후 수 년 내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의사를 밝힌 지도 몇 년이 지난 이제 와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있느냐를 따지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한 번 맺은 계약을 5년이나 지난 후에 무효로 한다면 이는 국제 사회의 웃음 거리가 될 뿐이다. 세계는 한국을 믿지 못할 국가로 여길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외국에서 한국 기업이 동일한 대우를 당했다면 어떻겠는가. 재판이 3차까지 가서, 대법원에서 어떤 결론이 나건 간에 외환은행의 매각은 론스타의 의지에 따라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외환은행이 과거의 위기를 극복하고 현재처럼 성장한 배경에는 론스타의 역할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와서 매각을 무효화하고, 이전 주인에게 외환은행을 돌려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 정부에서는 이미 매각을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하기 위해서도 이 문제는 확실히 매듭지어져야 한다.
 
넷째, 공무원에 대한 마녀사냥을 그만둬야 한다.
2008년 11월 법원이 변양호 전 국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자 소위 ‘변양호 신드롬’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변양호 신드롬’이란 공무원이 소신있게 일을 하다가 일이 잘못됐다고 책임 추궁을 당하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고 복지부동할 것이라는 점을 가리킨다.
 
잘 알려진대로 행정고시 19회 출신인 변 전 국장은 재무부 시절 잘 나가는 엘리트 관료였다. IMF 당시 국제금융과장으로 재직하며 외채 만기연장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 2001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선정한 ‘세계 경제를 이끌 차세대 리더 15명’에 뽑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그의 이름은 관가뿐 아니라 재계,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다. 2005년 1월 그는 외국계 펀드에 대항해 보겠다며 국내 1호 사모펀드인 ‘보고펀드’를 설립,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하지만 외환은행 재판에 연루되는 바람에 운신의 폭이 크게 줄었다.
 
필자는 외환은행 매각 사건에서 부정이 존재했다면 이 사건의 많은 등장인물 중 변양호 전 국장이 부정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가장 적다고 생각한다. 변 국장은 뇌물 또는 자문료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6.16%라는 BIS 비율도 외환은행이 작성한 자료이지 변 국장이 만든 것이 아니다.
 
만약 그가 뇌물을 받은 후 이 자료를 바탕으로 외환은행 매각이라는 정책 판단을 내렸다면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가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 접시를 열심히 닦다가 깨뜨린 사람을 벌한다면 아무도 접시를 닦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에 대한 이런 마녀사냥 식의 비난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에서 이 글을 썼다. 만일 부실이 발생하지 않아서 외환은행을 매각할 필요가 없었다면 회계 조작이나 헐값매각 시비가 일어날 여지조차 없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들의 상황이 IMF 때 못지않게 어렵다. 많은 금융기관 및 기업이 또다시 부실에 빠진다면 외환은행과 유사한 사건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 경우 한국 경제는 또다시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한다. 이번 금융위기를 정부와 기업 모두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바란다.
  • 최종학 최종학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ac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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