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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제 LG화학 CFO 인터뷰

“회계이익만 고려하다 흑자도산 할수도”

DBR | 25호 (2009년 1월 Issue 2)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
 
아무리 건장한 체구를 가진 사람이라 도 혈액 순환이 멈추면 치명적 위기에 빠집니다. 기업의 혈액순환에 해당하는 게 바로 현금흐름입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한 정책과 프로세스,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최고재무책임자(CFO)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한국CFO협회로부터 ‘2008년 CFO 대상’을 받은 조석제 LG화학 부사장은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조 부사장은 자회사 합병과 분사 등 재무적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또 유가와 환율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LG화학의 재무적 안정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 부사장으로부터 현금흐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현장 노하우를 들어봤다.
 
현금흐름 중시 경영이 왜 중요합니까
경상이익이나 순이익 같은 회계 이익만 고려해 의사 결정을 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익을 늘리기 위해 재고 관리를 전혀 하지 않거나, 오히려 재고를 늘리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회계적으로 이익을 내더라도 실제 현금흐름은 마이너스가 됩니다. 이런 기업은 외부 여건이 악화되면 큰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에서 현금은 사람 몸의 피와 같습니다. 아무리 건장한 체구를 가졌다해도 피가 흐르지 않으면 우리 몸은 심각한 위험에 빠집니다. 성장성이 높은 회사도 현금 흐름을 소홀히 할 경우 유동성 위기에 빠져 흑자 도산할 수 있습니다.”
 
현금 중심 경영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현금흐름 중심의 경영을 위해서는 다음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회사의 ‘정책(policy)’을 적합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회계처리와 관련해 회사별 고유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저희는 감가상각 기간을 최소화하고 연구개발(R&D) 예산도 최대한 빨리 비용으로 처리한다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회계 처리를 하면 해당 연도의 수익은 악화됩니다. 그러나 세금을 적게 낼 수 있고 회사의 장기적 성장에 매우 도움을 줍니다.
 
그 해 창출할 수 있는 현금흐름 범위 안에서 신규 투자를 한다는 원칙도 지켜가고 있습니다. 물론 곧바로 성과를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실무 부서에서는 이런 정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CFO는 각 사업부와 최고경영자(CEO)를 설득해 이 정책을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로 의사결정 프로세스 확립이 필요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자원을 투입하는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야 합니다. 초기 단계에서 재무 위험 등을 체계적으로 점검하면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별로 내부 투자위원회, 경영위원회, 이사회 가운데 어떤 단계에서 의사결정을 할지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들의 객관적 시각을 들어보는 기회도 갖는 게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저희 회사는 매달 운전자금 점검 회의를 합니다. 해외 근무자들까지 화상회의로 연결해서 매출채권이나 재고자산 현황을 아주 자세하게 점검합니다. 일선 사업부 직원들에게 현금흐름이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이란 점을 반복적으로 인식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현금흐름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습니까
저희는 내부적으로 창출한 현금흐름 범위에서 투자를 집행한다는 원칙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투자액이 현금흐름을 넘어설 경우 기업의 위험이 매우 높아집니다. 현금흐름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운전자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야 합니다. 매출채권과 매입채무 재고자산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의 자금 조달원도 다양화해야 합니다. 회사채 등 국내 자금조달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제 자본시장을 통한 해외채권 발행, 통화 스와프(swap)를 활용한 자금조달 등 다양한 경로를 찾아봐야 합니다. 실제 저희는 2008년 달러 및 엔화의 통화 스와프를 통해 2500억 원의 자금을 약 6%대 금리로 조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3년 만기 회사채 평균수익률보다 1%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자금을 조달해 이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환율 때문에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저희는 자체 환리스크 관리 규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핵심 내용은 환율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영업이익의 5% 수준에서 막아낸다는 것입니다. 환율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환율이 절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것으로 예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초만 해도 대부분 경제연구소나 전문가들은 원화가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믿고 한 방향으로만 환 헤지를 한 기업들은 큰 손해를 봤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통상 이런 저런 조건 아래에서 환율이 움직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만들어 놓고 예측하는 것이죠. 무턱대고 기업인들이 이 말을 믿고 행동에 옮기면 큰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기본 가정은 현실에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위험을 관리해야 합니다. 전문가 의견은 그냥 참고만 하는 게 좋습니다.
 
환율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빨리 버려야 합니다. 제조업에서 환율을 관리하는 목적은 ‘영업이익의 관리’지 ‘투자’가 아니란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 수출기업의 경우 수출과 수입을 할 때 외화 유출입 시점을 일치시켜 자연스럽게 헤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현금흐름만 강조할 경우 신규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경영자를 평가할 때 순현금흐름 지표의 반영 비율을 너무 높일 경우 신 성장 동력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금흐름을 강조하더라도 신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만큼은 예외를 인정하는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올해 경제 여건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저희는 미래 성장 동력과 관련한 투자를 예정대로 집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CFO는 무조건 돈을 움켜쥐고 안 쓰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스타일의 CFO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CFO는 회사의 경영 상황, 전반적인 외부 환경, 회사 차원에서의 전략 등을 면밀히 검토해 통제의 고삐를 쥘 때와 느슨하게 풀어야 할 때를 적절히 판단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회사의 재무적 안정성 유지가 CFO의 근본적 사명이지만 회사 성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두 가지 목표를 조화롭게 달성해야 합니다.”
 
금융위기 이전에 잘못된 투자 결정을 내려 고통을 겪고 있는 기업이 많습니다.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요
포기할 부분은 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다 거느리고 가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시장이 허술하지 않습니다. 모든 정보는 결국 투명하게 외부에 드러난다고 가정하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과거처럼 적당히 숨기고 넘어가겠다는 발상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대규모 투자로 회사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면 과감하게 손실을 현실화하고 추가 부실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은행이나 투자자를 설득하고 다시 일어서는 게 좋습니다.
 
구조조정을 할 때는 리더십이 매우 중요합니다. 몇 사람 자른다고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이유를 제대로 설득하면서 리더가 솔선수범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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