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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법인 교체가 신뢰 열쇠라고?

최종학 | 23호 (2008년 12월 Issue 2)
지난 9월 금융위원회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의 개정안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이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2003년에 도입한 회계법인의 6년 단위 강제 교체 제도를 폐지하며, 의무 감사 대상을 ‘자산규모 70억 원 이상의 주식회사’에서 ‘100억 원 이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개정안에 대한 각계 반응은 모두 달랐다. 공인회계사 업계는 첫 번째 안건에는 찬성하지만 두 번째 안건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상장사 협의회 역시 첫 번째 안건만을 찬성했다. 반면에 시민단체인 경실련,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는 이 개정안 자체를 모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논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절대 다수의 기업들은 이에 대한 관심을 전혀 표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외부감사 규정 완화로 의무감사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자산 규모 70억 원 이상의 중소기업과 중소기업중앙회 및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두 번째 안건에 대해 적극 환영의 뜻을 표시했을 뿐이다.
 
한국의 정책 변화 과정을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미국은 정책 변화 때 대부분 실익과 비용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먼저 수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한 뒤 의사결정을 내린다. 반면에 한국은 신중한 분석보다 즉흥적 분위기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에 따라 정책이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 찬성과 반대 측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모두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감법의 개정안 시행령과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올바른 것인지, 이 정책을 실제 시행할 경우 어떤 현상이 나타날 것인지를 살펴보자.
 
회계법인 강제 교체에 대한 찬반 논란
우선 회계감사 담당 회계법인의 6년 단위 교체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국이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2003년이다. 미국 엔론이 엄청난 규모의 회계 부정으로 파산하고, 엔론의 회계법인인 아서앤더슨 역시 이 여파로 해체된 직후다.

아서앤더슨이 엔론 감사에 실패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엔론에 감사 및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 아서앤더슨은 수행 업무에 비해 지나친 보수를 받았다. 아서앤더슨이 무려 16년 동안 엔론을 감사해 왔기 때문에 엔론과 긴밀한 유착관계를 형성할 가능성도 높았다.
 
회계법인이 회계감사뿐 아니라 컨설팅 서비스까지 동시에 제공하는 것은 과연 어떤 효과를 야기할까. 미국에서는 이미 2001년부터 이 문제에 관한 연구가 이뤄졌다. 그 결과 일부 연구에서 컨설팅 업무 제공은 회계법인의 독립성을 약화시킬 수 있음이 드러났다.
 
미국에서는 이 연구 결과에 따라 회계법인이 감사 관련 컨설팅 업무를 동시에 제공하는 것을 제한했다. 그러나 감사 기간이 늘어나는 것과 회계법인의 독립성 약화가 어떤 관계인지는 아무런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때문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이 주제에 대한 연구를 회계학계에 요청했다. 즉 회계법인 강제 교체 제도의 도입을 유보한 채, 먼저 그 효과가 어떠한지부터 연구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두 제도를 모두 곧바로 도입했다.
 
무엇이든 빠른 한국에서는 정책 도입 속도 또한 무척 빠르다. 그 과감한 속도가 한국 경제의 성공 원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계획 없이 덤볐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본 것도 사실이다.
 
감사인의 계속감사 기간이 감사 품질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회계법인이 한 기업을 오랫동안 감사하면 감사인과 감사 대상 기업이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바람에 엄격한 감사를 실시하지 않거나, 감사 대상 기업의 회계 부정을 눈감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논리도 이와 동일하다. 참여연대는 현대건설과 대우가 17년 동안이나 특정 회계법인과 장기간 외부감사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이에 따라 외부감사가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은 형식적 절차로 전락했으며, 이 오랜 유착관계가 결국 각종 분식회계 사태를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감사인이 감사를 시작하면 처음 몇 해 동안은 감사 기업의 특성, 사업의 성격, 회계 시스템 등에 대한 이해 등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 품질이 나빠질 소지가 많다.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야만 감사 대상 기업에 대한 이해가 늘고, 감사 품질 또한 우수해진다는 의견이다.
 
쉽게 설명하면 요즘 젊은이들이 그냥 데이트만 하는 것으로는 상대방에 대해 잘 알 수 없으니 같이 살면서 데이트 당시 몰랐던 습성까지 다 알아본 뒤에 결혼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과 비슷하다.
 
사실 두 주장이 모두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주장이 옳다고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논리보다 과학적 연구 결과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계속감사 기간 증가의 효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학계에 연구를 요청함에 따라 미국 회계학계에서는 감사 기간과 감사 품질의 연관성에 관한 다수의 연구가 이뤄졌다. 놀랍게도 연구 결과들은 대부분 계속감사 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감사 품질 또한 높아진다고 보고했다.
 
특히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 C), 언스트 앤드 영, KPMG, 딜로이트 등 소위 ‘빅4’라 불리는 4대 회계법인의 감사 품질은 회계 감사 기간이 10년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증가하다가, 그 이후에는 거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4대 회계법인이 아닌 기타 소형 회계법인의 경우는 계속감사 기간이 증가한다 해도 감사 품질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회계 부정이나 오류처럼 부실 회계와 관련한 사건들이 회계법인이 바뀐 초기 3년 안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회계법인을 자주 교체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결론이다. 참고로 미국 회계법인의 평균 교체 주기는 대형 회계법인인 경우 8.5년, 소형 회계법인인 경우 6년이다.
 
한국의 연구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물론 시민단체의 주장대로 몇몇 유명한 분식회계 사례의 경우 회계법인의 계속감사 기간이 매우 길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 곽수근 및 박종일 교수1의 연구 결과를 보면 회계법인의 계속감사 기간 초기에 회계 부정이나 이익조정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빈번한 것으로 드러났다. 필자의 연구2에서도 회계법인을 자주 바꾼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더욱 회계 처리와 관련한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계법인 교체와 감사보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부산대 박재환 교수 등 의 연구 결과도 역시 회계법인의 강제 교체를 단행한 직후 부실 감사 문제가 더욱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한·미 양국의 연구 결과는 모두 6년 단위 회계법인 강제 교체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이번 외감법 개정안의 첫 번째 부분인 회계법인 강제 교체제도 폐지는 당연하다. 다만 일부의 우려처럼 계속감사 기간이 너무 길면 회계법인과 감사 대상 기업 사이의 유착관계도 실제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감사 담당 공인회계사를 주기적으로 확실히 교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사 대상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감사인이 바뀌면 기존 감사인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업무에 관한 개선 제안을 내놓을 수도 있으므로 너무 오랫동안 동일한 감사인을 계속 임명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회계법인의 계속감사 기간이 너무 길면(예를 들어 10년 이상) 감사위원회 등에서 기존 회계법인의 재임명에 대해 매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감사 기업의 최소규모 기준은 적절한가
외감법의 두 번째 개정 내용인 감사 대상 기업의 최소 자산 규모를 7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바꾸는 문제를 살펴보자.
 
감사 대상 기업의 규모가 70억 원으로 결정된 것은 1998년이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기업 규모를 100억 원으로 상향 조정한 것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일각에서는 외부 감사 규정이 중소기업 경영에 불필요한 족쇄이며,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현 정부의 시책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이를 완화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기업 규모에 따라 감사 대상 기업을 규정하는 이러한 접근 방법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 감사를 실시하는 목적은 이해 관계자들에게 신뢰성 있는 회계 정보를 제공하고, 이해 관계자들이 이를 대출, 거래, 투자 등의 의사결정에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자산 규모가 크다 해도 소수 주주들이 거의 대부분 자기자금을 가지고 사업하는 기업이라면 자산 규모가 100억 원이 아니라 300억 원이라 해도 외부 이해 관계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감사 제도를 강제할 필요성이 적다. 탈세를 염려한다면 회계 감사가 아니라 세무 조사를 시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자산 규모가 50억 원에 불과하더라도 외부 소액주주나 차입자금이 많은 기업이라면 이런 외부 이해 관계자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 감사를 받지 않은 그 기업의 재무제표가 엉터리로 작성됐다면 이 회사가 파산할 경우 이 재무제표를 믿고 투자한 소액주주나 금융기관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기업의 자산 규모가 아니라 외부 이해 관계자의 수나 이들이 회사에 투자한 지분이나 대출금 규모와 같은 투자 비중에 따라 감사 제도를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산 규모만을 감안해도 70억 원이라는 기준은 영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보다 높다.

회계감사가 사라진다면?
그렇다면 회계감사는 기업에 불필요한 족쇄일까.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펼치기 위해 사라져야 하는 존재인가. 회계감사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자.
 
중소기업 재무제표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감사가 없다면 금융기관은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을 것이며, 개인 투자자 역시 돈을 빌려주거나 그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은 좋은 사업 기회가 있다 해도 자금줄이 막혀 성장할 기회를 잃을 것이다. 이때 그 기업은 회계감사를 통해 자신들이 신뢰할 만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100년 전 감사 제도가 최초로 생겨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외부 독립 기관에 감사를 의뢰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이 재무제표를 공정하게 작성했다는 사실을 인증 받고 투자자들에게 공표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현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는 비상장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회계감사를 받으면 자금 조달 비용이 상당한 수준으로 감소한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회계법인의 계속감사 기간이 증가할 경우에도 감사 품질이 높아지고, 그 결과 기업의 투명성이 증가해 자금 조달 비용이 감소한다. 이런 사실만 봐도 회계감사를 받는 것은 기업에 확실한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회계감사의 이 같은 효과를 감안할 때 소량의 비용을 부담하면서 감사를 받는 것은 기업 신뢰도를 향상시키는 최소한의 시도다. 일각에서는 월 평균 100만 원 정도에 불과한 소규모 기업의 감사 수임료가 기업 경영에 심각한 장애를 미친다며 이것이 불필요한 규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감사 수임료는 외국과 비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상장 기업에 비해 회계 투명성이 크게 낮은 중소기업이 이런 최소한의 안전 장치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기업뿐 아니라 자본시장 전체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흔히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정보 불균형에 의한 시장 실패’가 일어나서 자본시장 전체가 몰락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기아자동차와 한보철강의 회계 부정과 이에 따른 파산이 1997년 IMF 금융위기를 촉발한 계기였음을 떠올려 보자. 분식회계가 한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엔론 사건이 미국 경제에 미친 악영향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결국 신뢰 상실 때문에 발생한 사태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기업이 회계 투명성을 갖추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구축하는 첫 번째 수단일 뿐 아니라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월 100만 원을 아끼려고 투자자들에게 수십 억 원, 수백 억 원의 천문학적 손해를 끼칠 가능성을 방관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회계정보의 소비자인 이해 관계자들도 기업에 당당히 회계감사를 요구해야 한다. 소액주주들이 직접 감사인을 선임, 엄격한 감사를 실시하도록 감사인에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 경영진이 이를 거부하면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을 교체하겠다고 압박하거나 투자를 철회해야 한다. 은행은 감사 받지 않은 재무제표를 가져오는 기업에는 담보 없이 대출해 주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할 것이다.
 
회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이해 관계자들부터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찾아야 한다. 바야흐로 ‘소비자가 왕’인 소비자 주권시대 아닌가.
 
1. 민정, 김명인, 최종학. 2008. 감사인 유지제도 하에서의 감사인 교체와 기업의 이익조정. Working Paper.
2. 박재환, 박희우, 정태범. 2008. 감사인 강제 교체제도가 감사보수에 미치는 영향. 회계저널 17 (1).
 
편집자주 서울대 최종학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동시에 받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 최종학 최종학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ac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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