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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새로운 우주’ 각인을 위한 문화심리학적 전략

진정성 있는 세계관으로 ‘메타버스 세대’ 공략
기술 뛰어넘는 ‘가치 있는 활동’ 찾아라

이장주 | 317호 (2021년 0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메타버스 산업에선 기술과 관련된 문화적 기호 체계, 즉 세계관을 어떻게 구축하고 강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메타버스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1. 환경 파괴와 같은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상반되는 인정, 존중, 공존의 세계관을 고안해야 한다. 참여자들은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주인공이나 에피소드가 포함된 진정성 있는 스토리에만 반응할 것이며, 이는 세계관의 지속성과 파급력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2. 기존 세대보다는 메타버스 시대를 주도하게 될 ‘메타버스 세대’를 공략해 메타버스와 메타버스 속 자사 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각인 효과를 노려야 한다.

3. 이러한 메타버스 서비스가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가치 있는 활동’을 제공해줄 수 있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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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가 핫이슈가 되고 있다. Metaverse란 용어 자체가 ‘초월한(meta)’이란 의미와 ‘우주(universe)’를 합성한 말인 데서 알 수 있듯 새로운 현상의 파급력을 ‘우주’의 수준으로 바라보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낯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과거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알 수 있다면 메타버스가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얼추 가늠해보는 그림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와 기술: 문화심리학의 배경

전통적으로 몸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돼 왔다. 몸이 하나이니 당연히 그 몸에 담긴 정신도 하나이며, 몸이 자라는 것처럼 정신도 그 몸 안에서 점점 온전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비슷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마다 성격과 능력이 천차만별인 이유가 이러한 정신의 차이이기에 정신은 육체 이상의 고귀한 존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이런 정신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해는 지동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근대 심리학자들의 견해다. ‘하늘의 태양과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보이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크문트 프로이트(Freud)는 정신이 무의식과 의식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하다가 후기에 들어 이드, 에고, 슈퍼에고 등 3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고 바꾸기도 했다.1 이런 요소들이 잘 통합돼 있다면 별문제가 없지만 통합되지 못하면 정신병이 발발하게 된다고 정신분석학은 설명한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기능주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James)는 자아가 단수(self)가 아니라 복수(selves)라는 주장을 했다.2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자아가 있을까? 여기에 대해 제임스는 놀라운 답을 한다. “그 사람이 만나는 사람의 수만큼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아내 앞에 있으면 남편 자아, 직장 상사 앞에 있으면 부하 자아, 자녀들과 함께 있을 때는 부모 자아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아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메뉴를 선택하듯이 골라 쓰는 도구라는 관점이다. 하지만 아직 누가 어떤 자아를 고르거나 혹은 통합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불분명하다.

자아에 대한 모호함을 걷어버릴 획기적인 이론이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나왔다. 구소련의 교육심리학자인 레프 비고츠키(Vygotsky)는 자아가 엄마의 자궁 안과 같은 진공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는 사회로부터 유입된다고 주장한다. 3 그를 필두로 한 이들 ‘역사문화학파’는 역사와 문화가 다르면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비고츠키의 동료인 발달심리학자, 알렉산더 루리아(Luria)가 1930년 초반에 우즈베키스탄 농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하나를 살펴보자.4 ‘나무, 톱, 도끼, 망치’ 이 네 가지 중 하나를 나머지 것들과 다른 속성을 가진 물체로 구분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이렇게 질문을 했더니 ‘나무’라고 답한 사람들과 ‘망치’라고 답한 사람들로 나뉘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글을 아는가, 모르는가에 따라 답이 달라졌다. 문맹인 농부는 망치를, 글을 읽을 줄 아는 농부는 나무를 선택했다. 망치를 선택한 사람들은 일상의 맥락에서 함께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맥락적 지식(contextual knowledge)’을 사용했다. 반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재료와 도구라는 ‘추상적 지식(abstract knowledge)’을 사용해 재료인 나무를 선택했다. 루리아 실험의 한국판도 있다.

‘무, 배추, 참나무, 칼’ 가운데 하나를 나머지 것들과 다른 속성을 가진 물체로 구분한다면? 추상적 지식을 동원하면 칼이겠지만, 맥락적인 지식 차원에서는 ‘참나무’다. 매일 먹는 김치라는 일상의 맥락이 개입된 까닭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글이나 김치가 자연물이 아닌 문화적인 발명품이라는 점이다. 즉, 문화적 환경이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역사문화학파의 전통은 현대 문화심리학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으로 사용된다. 환경 변화를 극적으로 일으키는 기술은 곧 인간 심리와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사건은 그 뒤에 나타났다. 글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단순히 말을 적을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정도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과거에 글을 아는 사람, 즉 식자(識者)는 그 사람의 정치경제적인 지위를 넘어 인격의 정도까지 내포하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자동차는 그저 사람의 발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었으며, 아이폰이 그냥 전화기의 한 종류가 아님은 상식이다. 자동차의 가격과 스마트폰의 가격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그 성능의 차이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징으로 보이느냐 정도가 더 핵심 요인이 된다. 세상이 진보하면 할수록 도구의 표면적 기능(manifest function)보다 이런 문화적 상징으로서 잠재적 기능(latent function)이 더 중요해진다. 5 돈을 벌거나 권력을 잡으려면 도구의 잠재적 기능인 문화적 기호작용(sign-action)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6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자동차나 전화기 성능이 역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이 얼마나 ‘폼’나는가가 핵심이다. 따라서 필자는 메타버스도 결국 기술이 아닌 문화적 맥락의 해석 체계로 들여다볼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장면의 세계관 vs. 파스타의 세계관

파스타를 이탈리아 자장면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대중 음식이라는 의미다. 살펴보면 재료나 요리법도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다른 게 딱 하나 있다. 가격이다. 파스타가 약간 비싸다. 자장면과 파스타의 가격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사람의 행동 관찰이 중요한 심리학의 접근으로 보자면, 한 가지 차별성이 보인다. 바로 도구다. 젓가락을 사용해 면치기를 하는가, 아니면 포크와 스푼을 같이 사용해서 돌돌 말아서 먹는가 말이다. 결국 이 약간의 가격 차이는 젓가락과 포크로 먹는 행위의 문화적 기호 작용 차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식사에 그치지 않는다. 적어도 파스타를 먹으며 고량주를 찾지 않으며, 자장면을 먹으며 와인을 주문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먹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내용도 달라진다. 이 사례는 ‘그 도구가 어떤 문화적 맥락들과 연관이 있는가’가 ‘도구의 차이’보다 더 중요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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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이나 틀이다. 나아가 문화적 기호 체계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결국 세계관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가치 평가 체계의 차이를 만든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없던 욕망이 생기거나, 있던 욕망의 순위와 강도가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파스타와 자장면의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핵심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만일 파스타의 가치를 해석할 수 있는 세계관이 없었다면 파스타 자체가 소비될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다. 2003년 메타버스 구현을 목표로 야심 차게 출발한 미국의 가상현실 서비스 ‘세컨드라이프’의 실패는 문화적 기호 체계가 충분히 발현되기에는 아직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무르익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또한 마차의 세계관과 자동차의 세계관은 극명하게 다르다. 자동차를 타본 사람은 마차를 타본 사람과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된다. 단순히 물리적인 속도나 동력원의 차이 수준을 뛰어넘는 새로운 욕망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선 자동차로 인해 물리적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마차 세계관에 살던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세상을 반경 30㎞ 안쪽으로 두었다고 한다.7 평생 여기를 벗어날 일이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이 범위의 사람들과 결혼을 하고 거래를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자동차가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그 범위는 300㎞ 이상으로 확장됐다. 이전 세대보다 100배 넓은 삶의 영역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욕망의 범위도 그 이상 확장됐다.

자동차와 더불어 새롭게 부각된 문화코드 기호는 ‘개인’이었다. 자동차가 대중화될 무렵 나타난 용어가 ‘마이카(My Car)’다. 우리 집 차가 아니라 내 차다. 내 차란 의미는 개인 공간을 갖는다는 의미와 함께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언제든 갈 수 있는 자유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부모의 영향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청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차를 구하려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자동차 면허를 얻었다는 것은 성인임을 증명하는 기호적 가치를 의미하게 됐다. 또한 신혼부부가 자동차를 타고 손을 흔들며 함께 떠나는 모습도 신혼여행의 단골 클리셰가 됐다. 깡통을 매달아서 달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이다. 참고로 여행이란 개념도 근대 운송수단의 발달과 더불어 대중화된 개념이다.8

자동차의 세계관은 단순히 개인의 욕망을 넘어 실물경제의 변화로도 나타났다. 우선 부동산의 지형 변화다. 기존의 비싼 땅은 시내의 중심가에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의 대중화와 함께 나타난 도로망의 변화는 한적하고 경치 좋은 교외의 가치를 급상승시켰다. 또한 장보기에서도 한적한 곳에 월마트와 같은 대형마트가 생겨서 저렴한 가격의 대량 구매라는 패턴을 만들었다. 잠들지 않는 욕망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주유소와 맥도날드 같은 휴게음식점으로 이어졌다. 그것도 자동차에 앉은 채 음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말이다. 이 모든 것은 마차의 세계관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문화적 기호 체계들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자동차를 사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자동차 값이 비싼 것도 이유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동차의 문화적 기호로서 가치가 떨어진 까닭이리라. 그 대신 게임과 같은 온라인 활동에 돈과 시간을 들이기 시작했다. 마차의 세계관에서 자동차의 세계관으로 바뀐 지 100여 년 만에 자동차로 닿을 수 없는 메타버스로 활동 범위를 넓히게 된 것이다. 현실에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내용과 형식의 세계로 말이다.

온라인 경험은 가짜 경험일까

문화적 경험 변화는 관념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몸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실험이 1998년 네이처지를 통해 알려진 고무손 실험(the rubber hand illusion)이다.9 실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실험 참가자에게 자신의 한 손은 보이지 않게 가리고, 가짜 고무손을 그 사람의 손인 것처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 후 감춰진 손과 고무손을 동시에 부드러운 붓으로 쓰다듬기 시작한다. 동기화가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 후 자신의 손을 가리키라는 지시에 실험 참가자는 진짜 자기 손이 아니라 고무손을 가리켰다. 그리고 가짜 고무손을 바늘로 찌르려고 하자 화들짝 놀랐다. 마치 자신의 손을 찌르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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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한 연구에서 고무손에 대한 위협은 실제 신체를 담당하는 뇌 부위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무손이 자신의 신경망에 포함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실험은 사람의 신경이 몸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몸 밖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기념비적인 연구로 평가된다.

고무손 실험 이후 이런 현상은 감각적 착각 그 이상을 의미한다는 후속 연구들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2003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은 사이버상의 사회적 따돌림(왕따)이 신체적인 것과 동일한 수준의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미국 UCLA 아이젠버거(Eisenberger) 교수팀은 ‘사이버볼(Cyberball)’이라는 게임을 통해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10. 연구자들은 연구 대상인 피험자에게 나머지 사이버볼 참여자가 다른 방에 있는 피험자라고 알려줬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상의 가상 인물들이었다. 실험은 사회적 따돌림을 당하는 조건의 피험자가 처음 몇 차례 패스를 받은 뒤부터는 공을 받지 못하고 다른 참여자들끼리 공을 주고받는 것을 구경만 하는 왕따를 경험하게 설계됐다.

연구팀이 게임 속에서 왕따를 당한 사람의 fMRI 영상을 분석한 결과, 전두대상피질은 활성화된 반면 전전두엽피질의 활동은 위축됐다. 신체적인 고통을 당할 때와 같은 반응이 사이버볼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흔히 따돌림이나 타인으로부터 실망을 느낄 때,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은 단순한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이다.

신경에는 가소성(Plasticity)이 있어서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고 사용할수록 예민해진다. 마우스를 통해 느끼는 타격감은 그냥 헛소리가 아니며, 게임상에서 내 캐릭터가 공격을 받을 때 아프다는 표현은 진짜로 아픈 것이다. 하물며 유모차에서부터 스마트폰에 동기화되고, 코로나19 사태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메타버스는 현실과 차이가 없는 경험일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거인족의 활동무대가 판도라 대신 메타버스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메타버스 속의 새로운 경험들

메타버스는 이미 시작됐다. 그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왔을 뿐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챔피언십의 동시 접속자 수는 4600만 명이었다. 이 기록은 가장 최근 열린 리우올림픽 개막식 시청자가 2600만 명이었다는 것과 비교할 때 올림픽을 넘어서는 뷰어십(Viewer-ship)을 기록한 것이다. 당연히 광고나 후원도 게임대회로 집중됐고, 선수들의 연봉도 오프라인 스포츠 이상을 기록하게 된다. 우리나라 LoL 프로게임단 T1에 소속된 선수 페이커의 연봉은 5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금액은 우리나라 프로야구선수 최고액 연봉자 이대호 선수가 받는 25억 원의 2배 이상이다. 인기와 관심이 스포츠보다 게임으로 모이다 보니 이제 웨스트햄, 샬케, 발렌시아 같은 유럽의 유명 축구 클럽들도 e스포츠(e-sports)팀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농구는 NBA2K라는 게임으로 리그를 2018년에 출범해 운영 중이며 모터스포츠인 F1은 연맹이 직접 이 스포츠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급기야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이런 움직임은 e스포츠가 스포츠로 인정을 받았다기보다는 거의 모든 스포츠가 e스포츠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적절할 듯하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메타버스를 경험한 이들에게 오프라인 스포츠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이리라.

현실에서 한물간 상품들이 메타버스를 통해 재부상하는 사례도 늘었다. 레고가 대표적인 예다. 아이들이 장난감 대신 게임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장난감 시장이 위축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에 레고는 게임과 경쟁을 하기보다 협업을 통해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 그들은 ‘슈퍼마리오’ ‘오버워치’ ‘마인크래프트’ 등 게임 IP와 레고를 통해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유니티 레고 마이크로게임(Unity LEGO Microgame)’을 만들기도 했다. 오래전 인기 있던 장난감이 아닌 익숙하면서도 가장 진보적인 놀이도구로 탈바꿈에 성공한 것이다.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던 시절엔 ‘옷은 입어봐야 안다’며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산다는 것을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인터넷으로 옷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모든 옷을 그렇게 구매하지는 않지만 인터넷으로 쇼핑몰의 신뢰도와 먼저 샀던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서 별 의심 없이 산다. 옷을 온라인으로 고르는 감각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옷을 화면으로 보고 구입하고, 아버지가 놀던 장난감으로 아들은 코딩을 하기도 하며, 게임을 직접 즐기는 사람뿐 아니라 유튜브나 트위치를 통해 게임을 보려고 오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자연스럽게 자본이 몰리면서 다양한 문화적 기호들이 축적되고 커져갔다. 그에 따라 기호적 가치뿐 아니라 온라인상의 감각들도 세밀해졌다. 메타버스가 무르익어 만개하기 딱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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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LoL월드챔피언십(일명 롤드컵)에 루이뷔통이 후원사로 참여했다. 우승 트로피를 루이뷔통 커버에 담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게임 속의 ‘키아나’라는 캐릭터의 의상과 액세서리에 루이뷔통 문양이 들어가는 마케팅을 진행했다. 그리고 루이뷔통 매장에서 키아나가 착용하는 바지와 같은 의상이나 귀걸이, 장갑, 부츠와 같은 장신구 등으로 구성된 키아나 프레스티지 에디션이 출시되자마자 금방 매진된 사태가 보도되기도 했다. 또 다른 명품 브랜드 구찌는 2020년 6월 ‘테니스 클래시’라는 게임을 출시했다. 이 게임 속에는 남녀용 슈트와 티셔츠 등 총 4개의 게임 캐릭터용 패션 아이템이 있다. 게임머니로 이를 구매해 자신의 아바타에 입힐 수 있음은 물론 현실에서도 똑같은 디자인의 옷과 운동화를 살 수 있도록 온라인 구매 사이트로도 연결해 게임 안팎에서 구찌로 대동단결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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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이미 우리는 유니버스의 세계관을 메타버스의 세계관으로 전환되는 과정 중에 있다. 마치 마차의 세계관을 자동차의 세계관이 전환한 것처럼 말이다.

메타버스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한 문화심리학적 전략

메타버스는 이미 선택의 문제 수준을 넘어서 적응의 수준으로 다가왔다. 따라서 어떻게 그 속에서 많은 사람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문화적 기호 체계, 즉 세계관을 구축하고 강화할 것인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세계관은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알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때 이야기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기에 많은 빈틈이 있다. 이런 빈틈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준다. 더 중요한 점은 이야기가 그냥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이야기 중 하나가 자신의 내러티브, 즉 핵심 신념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판단하는 자존감이든, 남을 평가하는 가치 판단이든 거의 모든 사고의 기반이 된다. 그중 종교만큼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세계관은 아마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일 듯하다.

사전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의 작가,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동양 문화의 여러 측면을 묘사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교문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에 따르면, 오리엔탈리즘이란 18∼19세기 제국주의 단계를 거치며 ‘서양인들이 동양을 볼 때 선입견을 가지고 본다는 것으로,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다.11 서양을 주인공으로 구성하기 위해 그와 대비되는 동양을 가상의 악당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기나긴 종교전쟁이나 최근 스타벅스의 직원이 아시아계 소비자의 음료에 찢어진 눈(chink eyes)을 컵에 그려 논란이 됐던 사건 등 오리엔탈리즘은 여전하면서도 은밀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 사실 앞서 자장면과 스파게티의 가격 차이도 거시적으로 보면 오리엔탈리즘이 영향을 미친 사례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양 사람들이 고정관념이 강하다거나 동양 사람들이 억울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오리엔탈리즘이 시사하는 것은 주체가 구성되려면 타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타자가 악당이면 악당일수록 그 주체가 선명해진다. 참고로 오리엔탈리즘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이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이다. 여기서는 동양이 주인공이고 서양이 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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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세계관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으로 현실의 세계관이 있다. 메타버스의 세계관은 현실의 부조리, 불평등, 환경 파괴와 상반되는 인정, 존중, 공존이 가능한 스토리라면 어떨까 싶다. 당연히 이런 스토리를 증명할 수 있는 주인공과 에피소드가 필요하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스토리의 진정성을 믿고 기꺼이 스토리 속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대의가 아니라 사소한 증거에서 확신을 얻는다. 영화 토이스토리 팬들이 판매되는 우디 인형의 구두 밑에 새겨진 ‘앤디’의 이름을 보면서 “이 인형은 공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토이스토리 영화에서 왔다”고 굳게 믿는 것처럼 말이다. 진정성은 결국 세계관 참여자의 수로 이어진다. 이는 흥행의 문제를 넘어 세계관의 지속성과 파급력에 직결되는 요인이기에 더더욱 중요하다.

두 번째 전략은 비교가 필요 없는 새로운 세계관 형성 전략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머니가 해주셨던 음식이 가장 맛있다. 어머니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다른 집 음식들과 비교해봐서가 아니다. 그냥 맛의 표준으로 굳게 자리를 잡았기에 가능한 평가다. 세계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종교는 사실 아주 우습게 선택된다. 부모가 믿었던 종교가 자녀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다른 종교와의 비교나 종교관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막 깨어난 새가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각인(imprinting)하듯 처음 접한 종교와 음식은 이들에게 세상의 표준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정신분석학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Rapaille)는 문화코드(the culture code)라고 불렀다. 12 문화코드란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 의미’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메타버스의 문화코드는 이미 메타버스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와 다르게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문화코드가 형성되지 않은 성인들에게 메타버스는 영원한 타향일 가능성이 높다. 결코 화합할 수 없는 그런 타향 말이다.

1970년대 네슬레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일본 진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일본은 전통 차 문화가 뿌리 깊게 발달해 커피를 정착시키기 어려웠다. 이런 현상을 분석한 결과 일본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차에 대한 문화적 각인이 강해 커피에 대한 감정을 형성할 기회조차 없었음을 발견한다. 이에 네슬레는 커피 문화코드가 각인되는 중인 어린이나 젊은 층을 대상으로 커피 향이 나는 과자를 만들어 보급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 과자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고 이는 커피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런 네슬레의 노력은 일본이 45만 톤(2019년 기준)의 커피를 소비하는 대국으로 만들었다.

메타버스에서 문화코드 각인 전략은 이미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트라이더에 포르셰가 진출한 것이나, 10대들이 열광하는 유명 프로 게임팀과 경기에 벤츠와 BMW가 후원하는 것과 같은 것을 볼 때 그렇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일찍부터 친숙하게 만드는 전략에 머문다는 것이다. 명차들이 왜 명차인지, 다른 차가 아닌 그 차를 왜 선택해야 하는지는 아직 알려주지 못한 듯하다. 네슬레가 커피를 잘 마시지 않던 일본인들에게 커피라는 개념을 문화적으로 각인하며 시장을 닦았지만 결국 스타벅스가 ‘새로운 커피’로 그 지위를 차지한 것처럼 말이다. 네슬레가 메타버스에 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사례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이케아 효과(IKEA effect) 전략이다. 마이크 노튼 하버드대 교수와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가 북유럽 조립식 가구의 브랜드에서 가져와 이름 붙인 심리적 효과다.13 사람들은 비슷한 가격을 지불하고 완성된 가구를 사는 편리함 대신 직접 조립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케아 가구를 산다. 이들은 그 이유가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완성품 가구는 아빠가 돈 주고 여러 물건 중 하나를 산 것이지만 이케아 가구는 ‘아빠가 만들어 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구’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 중 공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편리함’과 ‘가치로움’이 대표적이다. 흔히 첨단기술을 활용한 메타버스가 편리함 쪽에 더욱 가깝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면 당연히 삶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정말 순진한 생각이다. 편리하면서도 가치로운 것은 심리학적으로 절대 존재할 수 없다. 예를 들면, 가치 있는 종교는 존재하지만 편리한 종교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해병대 군 생활이 가치 있는 것은 훈련이 고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가치는 나의 노력과 헌신이 얼마나 투입됐는가와 비례한다. 그래서 메타버스가 ‘가치로운’ 것이 되려면 편리가 아닌 ‘기획된 불편함’, 즉 헌신과 노력을 얼마나 적절하게 배치할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 불편함을 넘어선 자만이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개연성이 준비돼야 한다. 이런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충성도(loyalty)와 직결되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문화적 전개는 보편에서 개별로 진화해왔다. 영화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TV가 나왔으며, 기차가 등장한 다음 자동차가 보편화됐듯 말이다. 메타버스가 인류의 역사에 포함된다면 유니버스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넘어 개별적인 취향과 기호의 세련화가 결국 메타버스를 메타버스답게 만들어주는 결정 요인이 될 것이다. 이것이 메타버스를 새로운 사회적 트렌드나 새로운 기술로만 봐서는 곤란한 이유이며, 문화심리학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심리학박사 zzazan01@daum.net
필자는 중앙대에서 문화사회심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명지대와 중앙대 비전임교수를 거쳐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문화 현상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기 위해 관련 연구, 강연 및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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