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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글로벌 기후변화 시장 움직임과 한국 기업들의 전략

청정 자산 확보 위해 포트폴리오 관리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선점할 기회로

김성우 | 316호 (2021년 0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목표에 따라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 전략과 실천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사업의 실행 주체로서 기업의 역할이 막중하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1) 포트폴리오 변경 2) 청정에너지 구입(RE100) 3) 협력을 통한 시장 선점 4) 기업 경계를 넘어 전후방으로 탈탄소화 촉진 5) 혁신 기술 개발이라는 다섯 가지 전략을 통해 기후 행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에 탄소중립을 이루고 기후변화로 인해 형성되는 신(新)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은 친환경 사업의 핵심 부품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그룹사 내의 시너지를 활용하는 등의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2020년 12월, 외교부 주관의 ‘기후 행동을 위한 거버넌스 라운드테이블(Roundtable on Governance for Climate Action)’이 서울에서 열렸다.1 필자는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이전까지의 기후 행동 관련 국제회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일단 참여자들의 열의에서 과거 대비 ‘온도차’가 느껴졌다. 기후변화 대응 방안의 실행과 확산에 대한 토의에는 모두가 몰입해 의견을 제시했다. 바이든의 당선 소식이 불을 지핀 것이다.

바이든 당선 이전, 즉 트럼프 시대에는 국제사회가 모두 미국을 우려했다. 기후변화 이슈에 미국을 끌어들이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이 돌아왔다. 중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탄소배출량(15%)을 내뿜는 미국이 다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것이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이루고,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5도 높은 수준 이내까지 조절하자는 전 세계적 약속이 지켜질 희망이 생긴 셈이다. 관건은 국제적인 협력을 통한 실행과 스피드, 이를 위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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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을 느끼는 지구, 인공호흡기를 달기 전에

실행과 스피드가 강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의 기후변화 속도가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14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20년 지구 표면 온도가 1951∼1980년과 비교해 평균 섭씨 1.02도 높았고, 2016년과 더불어 역대 가장 더운 해였다고 발표했다. 최근 7개 년이 역사상 가장 더운 기간이었고, 기록은 계속 경신될 전망이다.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10년(2010∼2019년) 동안 매년 1.5%씩 증가했다. 증가 추세가 계속되면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목표 달성이 어려운 건 물론,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3.2도 높은 수준까지 평균기온이 상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올해 들어 5∼6일 간격으로 폭설이 닥쳐 국내 교통과 물류가 마비되는 걸 보고 지구가 열이 올라 오한이 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상청은 릴레이성으로 눈이 내리는 건 기상학적으로 가능한 현상이나 이번처럼 폭설이 연달아 오는 건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북극의 찬 공기가 내려와 기상 불안정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구의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도밖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일상에는 차질이 생긴다. 섭씨 2도를 넘어 섭씨 3도가 넘게 오를 경우, 지구는 오한을 넘어 인공호흡기를 달거나 사망에 이를지 모른다.

기후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돼 지구가 회복할 수 없는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하는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가 생태계, 사회 및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려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 늘어날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전 세계 국가의 경제 구조와 기업의 경영 전략, 개인의 생활 패턴까지 신속하게 바꿔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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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해결책 실행 원년

많은 국가가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규제 및 정책 강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유럽은 탄소국경세(탄소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의 상품을 규제가 강한 국가로 수출 시 세금 부과)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고, 자동차 배출 관련 규제 및 플라스틱세 신설 등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바이든 취임 이후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해 기후 위기 해결사로 국제사회에 다시 등장하려고 준비 중이다. 중국도 지난해 9월 탄소중립 선언 후 올해 2월1일부터 발전 부문을 시작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을 공식적으로 열겠다고 선포했다. 전 세계 석탄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는 중국에서 탄소에 가격을 매기겠다는 움직임은 기후변화 억제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타고 세계자연기금(WWF), 이케아, 스웨덴 통신 장비 제조사 에릭슨(Ericsson) 등 글로벌 시민사회•기업•학계가 협력해 작년 초 발표한 ‘기하급수적 변혁 로드맵 1.5(Exponential Roadmap 1.5)’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마이크로칩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서 착안한 ‘탄소의 법칙(carbon law)’이 있다. 탄소의 법칙에 따르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10년마다 탄소배출량을 절반씩 줄여야 한다. 즉, 인류는 전 세계 탄소배출량이 피크에 달하는 2020년 이후 2030년까지 1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을 감축해야 한다.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위해 2030년까지 줄여야 할 탄소배출량이 향후 어느 때보다도 막대하기에 10년간의 치밀한 전략과 빠른 실행이 요구된다. ‘기하급수적 변혁 로드맵 1.5’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하기 위해 필요한 36가지 부문별 해결책을 제시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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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결국 해결책의 실행은 정책, 금융, 기술, 주요 국가•단체•기업들의 리더십에 달렸다고 결론지었다. 네 가지 요인이 합을 맞춰야 기후 행동 역시 규모화에 성공하고, 탄소의 법칙의 지수함수대로 탄소 절감을 이룰 수 있다. 2021년은 국가들의 정책 의지로 보나, 금융계의 투자 성향으로 보나, 기술 혁신의 속도로 보나 제시된 해결책이 실현되기 시작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기후 대응 전략 5가지

해결책이 있어도 누군가가 실행해야 한다. 즉, 탄소배출을 줄이고 탄소를 제거하기 위한 사업을 투자•개발•건설•제조•판매•운영할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 중 기업의 역할이 막중하다. 그럼 선진 기업은 어떤 형태로 기후 행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을까? 크게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략 1 포트폴리오 변경

탄소 배출이 많은 자산을 매도하거나 반대로 청정 자산을 매입하는 전략이다. 에너지 생산 업체이자 스페인의 한국전력공사(한전) 격 기관인 ‘이베르드롤라(Iberdrola)’는 ‘2020∼2025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750억 유로를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2019년 32GW에서 2025년 60GW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를 통해 이베르드롤라의 순이익은 34억 유로에서 50억 유로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번 투자의 85%는 미국과 유럽에 집중될 계획이다.

청정 자산 확보를 위한 포트폴리오 관리는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다. 공장 단위의 포트폴리오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쉽게 생각하면 탄소 고배출 공장은 팔고, 저배출 공장을 새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가진 기술력 및 생산 제품 라인에 따라 공장에서 발생될 수 있는 탄소 배출은 천차만별이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고탄소 공장도 이전 주인과는 다른 기술을 가진 새 주인을 만나면 탄소배출량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공장을 사고파는 데 있어서 탄소 배출을 고려하는 일이 흔치 않았으나 앞으로는 기업이 가진 기술과 공장과의 시너지를 통한 탄소 절감 효과가 경영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DBR mini box I
이베르드롤라의 재원 조성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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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르드롤라가 ‘2020∼2025 투자 계획’에 쏟을 750억 유로는 한화로 약 100조7000억 원이다. 이처럼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이베르드롤라는 재생에너지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해 공공과 민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투자를 유치해 재원을 조성하고 있다.

이베르드롤라는 2014년 이후 총 19번에 걸쳐 150억 유로 규모로 환경친화적 프로젝트를 목적으로 내놓는 채권인 ‘그린본드(green bond)’를 발행했다. 올해 2월에는 ‘2020∼2025 투자 계획’의 일환으로, 두 종류의 그린본드를 동시에 발행하는 ‘그린 하이브리드 본드(green hybrid bond)’를 역사상 최대 규모(20억 유로)로 내놓았다. 목표보다 5배 이상 많은 100억 유로의 매수 주문이 몰렸고 시티, 뱅크오브아메리카, 골드만삭스 등이 주요 투자자로 나섰다. 이를 계기로 이베르드롤라는 세계에서 그린본드를 가장 많이 발행한 기관이 됐다.

이베르드롤라의 ‘2020∼2025 투자 계획’의 75∼81%는 ‘EU 분류 체계(EU taxonomy)’를 따른다. 그린본드를 발행하는 기업은 친환경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얻는다. 이에 그린본드가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환경보호를 빙자해 이득만을 취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 리스크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EU 분류 체계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을 판별하는 기준이다. 투자 계획에 EU 분류 체계를 반영해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고, 그린본드를 더욱 수월하게 유치하고자 하는 이베르드롤라의 판단이 숨어 있는 것이다.

친환경 관련 사업으로 용도가 제한된 대출인 ‘그린론(green loan)’도 공공 금융기관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2019년 5월에는 스페인금융공사(ICO)로부터 포르투갈 지역에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공장을 신설하기 위해 4억 유로의 그린론을 받았다. 이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론으로 알려졌다.

작년 8월에는 팬데믹으로부터 경제를 구제하기 위한 유럽형 그린뉴딜에 참여해 유럽투자은행(EIB)과 스페인금융공사로부터 8억 유로 규모의 그린론을 받았다. 재생에너지 시설을 설립해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동시에 경제 성장과 실업률 해소를 달성하겠다는 목적이다.


전략 2 청정에너지 구입

비즈니스 모델 변경 없이 청정에너지를 구입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즉, ‘RE100’에 동참하는 것이다. RE100은 기업이 생산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기업 간의 자발적인 약속이다. 애플, 구글, 월마트 등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RE100에 참여하는 기업이 급격히 늘어 현재 RE100을 선언한 기업은 전 세계 300개에 육박한다.

세계적 흐름에 맞게 국내에도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대기업들이 RE100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작년 7월 LG화학이 최초로 RE100 실행을 발표했고, 11월에는 SK 계열사 6곳이 국내 기업 중 최초로 RE100 가입 소식을 전했다. 2021년부터 기업을 포함한 전기 소비자가 재생에너지 전기를 선택적으로 구매해 사용할 수 있는 한국형 RE100(K-RE100)제도가 본격 시행돼 RE100을 둘러싼 산업계의 흐름과 정책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게 됐다. 제도 구축과 더불어 재생에너지 생산 인프라가 확충돼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낮아지면 국내 기업들의 RE100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전략 3 협력을 통한 시장 선점

덴마크에서는 6개의 대기업이 파트너십을 맺고 전 세계 최초로 2023년부터 대규모 그린 수소 생산 시설을 단계적으로 운영해 해상풍력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계획을 밝혔다. 이로써 연간 85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감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참여한 기업은 해운 업체 ‘머스크(AP moller-Maersk)’, 항공사 ‘스칸디나비아항공(SAS)’, 물류 업체 ‘DSV(DSB Panalpina)’, 여객선 업체 ‘DFDS’, 공항사 ‘코펜하겐공항’, 재생에너지 업체 ‘오스테드(Orsted)’이다. 해상풍력으로 수소를 만드는 회사, 수소를 운반하는 회사,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회사가 모두 포함돼 있다. 즉, 그린 수소 가치사슬(value chain)에 전방위로 얽힌 기업들이 모인 것이다.

이들 기업이 그린 수소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저렴한 수소의 생산과 탄소 절감 효과만이 전부가 아니다. 향후 그린 수소 영역의 가격과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소의 생산부터 물류, 사용까지 가치사슬 전역에서 노하우를 축적하면, 두 번째 그린 수소 생산시설은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지을 수 있다. 이는 수소 가격의 절감으로 이어져 수소 공급 시장에서 가격 우위를 선점할 수 있게 된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수소 사용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안정적으로 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저렴하고 경험 많은 업체가 시장을 선점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전략 4 기업 전후방으로 탈탄소화 촉진

기업 스스로뿐만 아니라 고객사나 협력사의 탄소 감축도 함께 도모할 수 있다. 프랑스의 한전 격인 ‘엔지(Engie)’는 고객사인 미국 유타대 캠퍼스 81개 건물 및 시설의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조명을 달고, 효율성 높은 공조 시스템 설비로 교체하고, 에너지의 출입을 관리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에너지 비용 약 2700만 달러가 절약됐고, 2050년까지 탄소제로화를 이루겠다는 유타대의 기후 행동 계획에도 기여했다.

고객사와 탈탄소화를 도모하는 계약은 다양한 형태로 체결할 수 있다. 탈탄소화 설비를 공급하면서 장기적으로 발생할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에 따른 이익을 고객사와 서로 나눠 가질 수도 있고, 모든 이익을 고객사에 돌리는 대신 설비는 고객사가 전액 부담하도록 할 수도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은 물론, 재무적 이익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고객사의 탄소 절감을 도와 고객사가 장기적인 이익을 체감하기 시작하면 고객 ‘록인(lock in)’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탈탄소화를 협력사에 동참하도록 요구하는 것 역시 RE100의 핵심 쟁점이다. RE100이 기여할 수 있는 탄소 절감 효과 이상으로 국내에서 기업과 정부 모두에 RE100이 주요 기후 행동 과제가 된 것은 한국이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해외 업체들이 RE100을 선언하면서 이들에게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협력사들도 재생에너지를 사용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작년 7월, 애플은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받는 주요 협력사인 SK하이닉스와 ‘협력업체 청정에너지 프로그램(Supplier Clean Energy Program)’ 협약을 맺었다. 협약에 따라 SK하이닉스에서 애플로 납품되는 반도체는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될 예정이다. 작년 5월 BMW의 RE100 선언도 BMW 전기차에 5세대 배터리 셀을 공급하기로 한 삼성SDI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협력사들에 RE100 동참을 제안하는 기업들의 주요 논리는 공생이다. 기후 행동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고 빠른 녹색 전환에 성공해야 자사와 협력사가 모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재생에너지 비용이 갈수록 저렴해지는 혜택을 협력사가 누리게 되면 원청 업체도 장기적으로 생산 원가 절감 등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협력사들의 재생에너지 도입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있다. 애플은 이미 2018년에 RE100을 달성했다. 그럼에도 애플은 ‘협력업체 청정에너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협력사들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금전적으로 또는 제도적으로 지원한다.월마트는 유통업의 특성상 탄소발자국의 10% 이하만이 월마트 자사에서, 나머지 90% 이상이 협력사에서 발생한다. 월마트 또한 이런 배출 특성을 감안해 ‘프로젝트 기가톤(Project Gigaton)’을 진행해 협력사들의 탄소 절감을 돕고 있다.(DBR mini box Ⅱ ‘월마트의 ‘프로젝트 기가톤(Project Gigaton)’ 참고.)

DBR mini box II
월마트의 ‘프로젝트 기가톤(Project Gigaton)’

‘프로젝트 기가톤’은 2030년까지 월마트 전체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10억 톤(1기가 톤) 감축을 목표로, 2017년에 시작된 협력사 지원 프로그램이다. 온실가스 10억 톤 감축은 전 세계 2억1100만 명이 1년간 자동차를 타지 않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현재까지 목표치의 20%가량인 2억3000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했다. 미국, 인도, 중국 등 전 세계 50개국에서 3171개의 협력사가 참여하고 있다.

월마트는 협력사와 함께 구체성(specific), 측정 가능성(measurable), 달성 가능성(achievable), 기존 사업과의 적합성(relevant), 감축 목표 시기(time limited)라는 ‘스마트 골(SMART goal)’을 기준으로 협력사가 감축 목표치를 정하도록 한다.

이때 월마트가 개발한 ‘프로젝트 기가톤 계산기(Project Gigaton Calculators)’를 활용하면 계획을 통해 감축 가능한 탄소배출량의 추정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협력사가 정식으로 프로젝트 기가톤에 가입하면 월마트에서 매년 감축 성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협력사들이 목표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점검할 수 있게 돕는다. 그 덕분에 자체 탄소 배출 측정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작은 기업들도 프로젝트 기가톤에 참여할 수 있다.

월마트는 △에너지 △농업 △폐기물 △제품 △삼림 △패키지 측면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도록 협력사를 지원하고 있다. ‘환경방어기금(Environmental Defense Fund, EDF)’과 같은 NGO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협력사들이 6개 분야에서 개선을 거두기 위한 실행을 돕는다. 주로 개선 방안에 대한 베스트 프랙티스를 공유하고 적용하는 방식으로 협력사에 도움을 준다.

오레오,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등으로 유명한 미국 유명 제과업체 ‘몬델리즈(Mondelez)’도 프로젝트 기가톤에 참여했다. 몬델리즈는 월마트와 함께 2020년 초까지 포장재 약 6만5000파운드(약 3만㎏)를 줄였고, 2025년까지는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만을 전면적으로 사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선반 준비 포장(shelf-ready packaging, SRP)’ 방식을 통해 몬델리즈의 포장과 월마트의 폐기물을 동시에 효과적으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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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5 혁신 기술 개발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혁신 기술을 개발해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예는 단연 테슬라다. 상장 직후(2010년) 5 달러선에 머물렀던 이 회사의 주가는 2013년부터 2019년 사이 50달러 수준으로 뛰었다. 그리고 2020년에 들어서자 주가는 50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에너지 시장에서도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선도 기업들이 전통 메이저 석유사들의 시가총액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에선 덴마크의 석유공사였던 오스테드가 재생에너지 업체로 전환에 성공, 해상풍력 개발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우뚝 섰다. 오스테드는 작년 말, 글로벌 오일 메이저 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시가총액을 추월했다. 미국에서는 재생에너지 유틸리티 회사인 ‘넥스트에라(Nextera)’의 시가총액이 10여 년 전 세계 시가총액 최대 기업이었던 굴지의 석유 업체 ‘엑슨모빌(ExxonMobil)’을 한 때 넘어서는 등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에너지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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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아마존 제프 베이조스, 소프트뱅크 손정의, 알리바바 마윈 등과 함께 2015년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Breakthrough Energy Ventures, BEV)’를 출범했다. BEV는 2018년부터 수송, 농업, 건물, 에너지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BEV가 투자한 기업 중 ‘퀴드넷에너지(Quidnet Energy)’는 에너지 저장 기술 업체다. 자연환경에 따라 간헐적으로 발전하는 재생에너지를 실생활에 활용하기 위해선 에너지 저장 기술이 필수다. 퀴드넷에너지는 재생에너지를 통해 만든 전기를 물의 압력으로 바꿔 땅속 셰일층에 저장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공기와 태양 빛에서부터 수증기를 추출해 식음수를 얻는 ‘소스(SOURCE)’, 분자 단위로 공기의 질을 조절해 공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 ‘엔베리드 시스템즈(enVerid Systems)’ 등도 BEV 포트폴리오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 탄소중립의 난이도

우리 정부도 2020년 12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로 한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그림 6) 경제 구조의 저탄소화, 신유망 저탄소산업 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 전환 등 3대 정책 방향 아래, 석탄발전 축소 등 에너지 전환 가속화, 고탄소 산업구조의 혁신, 친환경차 보급 확대, 순환경제 활성화 등 10대 과제를 제시했다.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한 경제구조 대전환의 밑그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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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2주 후, 주택 문제는 2년 후, 에너지 문제는 20년 후에 정책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기후 대응 문제는 장기 실행 관점에서의 지속가능한 시나리오와 상세 추진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 기업, 단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협력해야만 가까스로 이룰 수 있는 어려운 숙제임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8년, 7억2800만 톤을 정점으로 감소할 전망이라고 해도 타 국가들에 비해 정점 이후 탄소중립까지 남은 기간이 촉박하다. 유럽은 60년, 일본은 37년인 반면 한국은 32년밖에 남지 않았다.

고탄소 산업이 국내 경제의 중심이란 점도 탄소중립의 난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 및 관련 서비스의 GDP 비중은 65%이다. 그리고 철강•석유화학•시멘트•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제조업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조선•반도체 세계 1위, 석유화학 세계 4위, 자동차•철강 세계 6위라는 영광 뒤에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 구조 및 에너지믹스라는 함정이 숨어 있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더 이상 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게 의미가 없는 글로벌 대세이고, 미국이 글로벌 기후 리더로 복귀하면서 탄소 국경세 등 기후 위기 대응 실행에 동참하기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즉, 동참하지 않으면 투자, 수출, 해외 자금 조달, 기업 신용등급 등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개방형 통상 국가인 우리나라는 탄소중립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미래 세대에 대한 걱정에 앞서 당장 우리 세대의 국가 경쟁력부터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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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을 위한 제언: 그룹사 내 시너지 창출

국내 기업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세계적인 급류에 휩쓸려 어리둥절하고 있다. 이전까지 전담 팀이 기업의 친환경 관련 정책을 세웠지만 점차 그 책임이 이사회와 경영진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체감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주목하기 시작한 단계다.

국내 기업들이 풍력발전 설비 세계 1위 덴마크 기업인 ‘베스타스(Vestas)’나 전기차 분야 시가총액 세계 1위인 테슬라를 단기간 내에 따라잡을 순 없다. 그러나 그간 닦아 온 제조업 분야의 강점을 살리고, 그룹사 내의 시너지를 도모하면 국내 기업들 역시 녹색 전환에 성공하고, 나아가 기후변화를 계기로 태동되는 신사업 분야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친환경 사업에 필요한 재료와 부품들을 최상급으로 갖추고 있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는 두말할 것도 없고, 발전 설비에 필요한 어마어마한 양의 철강 역시 이미 글로벌 톱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태양광발전 설비에 필요한 반도체 소재,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배달하기 위해 필요한 케이블과 전력 변환 장치, 막대한 해상풍력 발전소 투자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해양 플랜트 건설 기술 등도 전 세계에서 우리 기업들이 앞서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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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는 6개의 대기업이 수소 생산 단지를 구축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룹사 중심의 국내 대기업에서는 하나의 그룹사 안에 친환경 사업을 개발하고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한 명의 리더 아래 에너지, 운송, IT 등 관련 사업이 조성돼 있어 더욱 신속하게 의사결정과 실행을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막대한 비용이 드는 친환경 사업을 새로 벌이는 일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초기 기술 개발과 사업 타당성 검토까지의 과정은 정부가 지원하고, 일차적으로 사업이 검증된 이후 기업이 투자를 쏟기 시작하는 모델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6개 덴마크 대기업도 정부에 초기 기술 개발과 사업 타당성 검토를 요청한 상태다.

더불어 그룹사가 그간 축적한 B2C 사업 분야의 노하우를 친환경 사업에도 적극 전파하고 적용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은 탄소 절감을 위해 제조 및 생산 영역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업에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을 잘 만들어도 소비자들이 구입하지 않으면 탄소 절감은 물론 사업 활성화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이에 B2C 노하우까지 접목하면 효과가 증대될 수 있다.

예컨대, 텔레콤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고객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가격 정책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회사 입장에서는 고객들이 데이터를 양껏 쓰고 많은 요금을 내는 게 단적으로 봤을 땐 이득일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 사용량을 한정하고 그에 따른 가격을 설정함으로써 고객들에게 합리적인 데이터 소비를 장려한다. 고객 입장에서 이득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장기적인 충성 고객이 된다. 이 과정에서 고객들로부터 특정한 행동이 유도된다. 요금제 이상으로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B2C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특정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비법을 보유하고 있다. 가격 정책일 수도 있고, 프로모션 전략일 수도 있고, 유통망 관리일 수도 있다. 소비자들의 녹색 소비를 장려하는 일 역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부의 몫으로만 남겨놓지 않고 기업이 먼저 나설 때, 탄소중립과 시장 선점에 한발 가까워지는 것이다. 최근 친환경 패키징 마케팅이 사회적 가치를 담은 제품 및 서비스에 소비를 선호하는 MZ세대의 특성을 잘 반영한 사례이다. 물론 소비자들 역시 기업의 그린워싱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글로벌 톱 수준인 제조 기업들과 대기업들이 글로벌 탄소중립 시장에서 확실히 자리매김 해야 국내 산업들의 장기 성장동력 마련도 수월해진다.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당시, 금보다 청바지, 삽, 곡갱이 시장을 선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탄소중립이라는 불편한 숙제가 국제사회에 던져지지 않았다면 7대 메이저 석유회사가 주도해 온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상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이 상상을 실현할 탄소중립이라는 기회가 왔다. 탄소중립 추진 전략은 시장에 초점이 있어야 지속가능하게 달성할 수 있다.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sungwoo.kim@kimchang.com
필자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은행 미래사회 외부자문위원 및 KPMG의 지속가능성 부문 아시아태평양 대표를 지낸 글로벌 전문가다. 미국 듀크대에서 환경공학 석사를, aSSIST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코에서 환경에너지 투자를 담당했고, 녹색기후기금 송도 유치와 에너지 신산업 발굴 공로로 산업포장 및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서울대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주)이도 사외이사와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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