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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olumn

혁신의 출발점은 ‘나’로부터

장진석 | 307호 (2020년 10월 Issue 2)
얼마 전 대기업의 한 임원과 대화를 나눴다. 이 임원은 디지털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조직문화가 경직돼 있는데다 예산 승인은커녕 디지털 인재 한 명 영입하는 것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말로 우리가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많은 국내 기업이 디지털 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자원을 투여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라는 사실이 이미 코로나19 사태로 입증됐다. 과거 산업의 변화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던 것과 달리 요즘은 디지털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업 간 칸막이가 무너지는 파괴의 현장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조 업종인 자동차 업체는 이제 소프트웨어 기업과 경쟁한다. 소프트웨어가 자동차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의 기능과 움직임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데이터가 없으면 신차 개발에 착수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를 빠르게 직감한 BMW나 폴크스바겐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최고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

BCG가 얼마 전 발표한 ‘2020년 세계 50대 혁신 기업’ 리포트에도 이런 흐름이 잘 나타난다. BCG는 2005년부터 전 세계 경영진 25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속한 동종 산업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 어디라고 보는지를 질문했다. 그런데 올해 훨씬 더 많은 응답자가 다른 산업군에 속한 기업을 그들과 같은 산업군의 혁신 기업으로 손꼽았다. 예컨대, 헬스케어 업계가 아마존을, 금융 서비스 업계가 알리바바를 꼽는 식이다. 전혀 다른 경쟁력을 지닌 기업이 기존 시장에 침투해 게임의 룰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산업계는 이미 인정하고 있다.

2005년 이후 매년 세계 50대 혁신 기업 리스트에 오른 기업은 알파벳, 아마존, 애플, HP, IBM,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도요타 등 8개뿐인데 이들 기업의 특징은 강력한 추진력과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연쇄적인 혁신을 추구했다는 점에 있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대기업은 자체 현금 흐름과 투자 조달 능력을 통해 스타트업보다 훨씬 더 혁신의 우위에 설 수 있다.

문제는 진심으로 환골탈태할 의지가 있는가이다. 혁신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과연 기존 성공 방정식을 버리고 나 혹은 내가 속한 조직부터 재창조할 의지가 있는지부터 되물어야 한다. 이 같은 변화는 결코 임원 한 사람, 또는 조직 하나가 전담할 수 없다. 예산 편성에서부터 조직문화에 이르기까지 전사적으로 디지털에 집중하려면 기저에 자리했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과감함과 절박함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 추진하겠다고 결심한 내용을 진정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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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석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디지털부문 매니징디렉터파트너
필자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코리아에서 디지털 부문 자문 서비스를 이끌고 있다. 애자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AI 등을 자문하고 있으며 다양한 업종의 대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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