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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한국형 리쇼어링 전략

김현진 | 303호 (2020년 8월 Issue 2)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원소는 118개, 지구가 생성될 때부터 자연적으로 존재했던 원소의 개수는 84개입니다. 이 중 무려 75개가 휴대전화 한 대를 생산하는 데 사용됩니다.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휴대전화가 전 세계 곳곳에 산재된 재료들로 만들어지는 ‘전 지구적’인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수치로,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성을 가리킬 때 종종 인용됩니다.

자유무역을 향해 함께 손잡고 걸어가던 그 ‘지구’는 하지만, 길동무의 손을 놓고 집 앞 대문을 걸어 잠그는 모양새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행보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the Subject of Manufactures)’를 의회에 제출했던 1791년, 그때 그 시절을 소환합니다. 그는 당시 자유무역을 선도한 영국을 견제하는 의미에서 “미국의 미래는 제조업에 있다.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입 공산품에 대해 관세를 매겨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공급망 붕괴는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기조, 영국의 브렉시트 등 반세계화 움직임의 강화, 미•중 무역전쟁 등 최근 상황에 도화선으로 작용하며 보호무역을 본격 촉진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하에 제조업의 자국 리턴, 즉 리쇼어링은 이미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2011년부터 계속 마이너스(역외생산 의존도 증가)였던 미국의 리쇼어링 지수는 지난해 98로 반등하며 플러스로 전환(리쇼어링 확대)되면서 최근 10년 새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습니다. 유럽연합(EU)에서도 2014∼2018년 사이 총 253개 기업이 유턴했으며 이 가운데 제조업이 85%를 차지합니다.

특히 이번 감염병 사태를 상대적으로 잘 대처하고 있는 국가들이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라 할 만한 한국, 대만,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유럽 제조업의 핵심인 독일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리쇼어링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당위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한국은 2013년 유턴기업지원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복귀한 기업이 74개에 불과해 그 성과가 미미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각종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기업들 역시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공급망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직접 리쇼어링 대열에 합류하는 데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하지만 최근 경험한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 세계 무역 지형 변화와 이에 발맞춰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는 유턴 기업 활성화 방안 등의 움직임을 살핀다면, 지금이야말로 반드시 리쇼어링의 득과 실을 다시 한번 엄정히 따져 봐야 할 때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DBR 스페셜 리포트는 세계 평균(56%)보다 월등히 높은 무역 의존도(80.8%)와 제조업 비중(GDP 상위 20위 국가 중 2위 권) 등 국내 경제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한 ‘한국형 리쇼어링 전략’을 입체적으로 조망합니다.

고부가가치의 기술 사업이나 전략 산업은 국내 거점에서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집중하고, 단순 생산과 공급은 모듈화해서 현지 시장 수요가 크고 비용 절감 효과도 낼 수 있는 신흥 시장으로 다변화하는 ‘넥스트 쇼어링’이 리쇼어링을 보다 유연하게 구현하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득실을 면밀히 살펴 생산 거점을 자국으로 유턴하는 대신 주변 국가로 재배치(reconfiguring)하며 공급선 다변화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전략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국내 복귀 기업의 유치 숫자만 늘리는 데 급급하지 않도록 사후 관리를 통해 얼마나 복귀 기업이 성공적으로 국내에 재정착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평가 시스템도 도입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수출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던 우리 경제였기에 리쇼어링에 있어서도 보다 유연하고 현명한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오티스엘리베이터, 프라다 등 다양한 해외 케이스를 통해서도 뉴노멀 시기에 가장 적합한 공급망 관리 전략이 무엇일지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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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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