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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업무용 협업 툴 강자로 떠오른 토스랩의 ‘잔디’

영어 기반 업무용 협업 툴 불편함 끝!
아시아 시장에 협업의 ‘잔디’를 심다

장재웅 | 297호 (2020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토스랩의 업무용 협업 툴 서비스인 ‘잔디’는 협업 툴 시장의 강자인 미국의 ‘슬랙(Slack)’에 맞서 ‘현지화’라는 키워드로 아시아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슬랙이 영어 기반의 서비스고 개발자 중심 조직에 적합한 협업 툴이다 보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널리 쓰이지 못한다는 한계를 목격하고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 다양한 언어 지원, 아시아 기업 조직문화에 맞춘 조직도 및 관리 기능 강화, 스마트워크를 위한 잔디 활용법 컨설팅 등을 통해 아시아 지역을 집중 공략해 서비스 론칭 5년 만에 200만 사용자를 돌파했다. 특히 론칭 초반부터 대만,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을 공략해 현재 매출의 1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할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빠르게 쌓고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장동욱(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오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00명입니다.”

지난 2월21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으로 세 자릿수를 돌파했다. 코로나19가 금세 잠잠해 질 것이라는 기대는 삽시간에 사라졌다. 공포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공포는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기업들 역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의 확산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 전환을 시도했지만 준비 부족으로 혼란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IT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회사는 사무실이나 현장 출근을 유지하며 서로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우물쭈물하는 사이 코로나19는 더 빠르게 퍼졌고 이내 건물 폐쇄 명령이 줄을 이었다. 대기업 최초로 확진자가 발생한 GS홈쇼핑에 이어 SKT, LS타워, 아모레퍼시픽까지 건물이 폐쇄됐고, 이후 선제적으로 건물을 닫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어갔다. 불과 일주일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외부인 출입 금지는 물론 화상회의, 출장 금지, 식당 이용 시간 변경 등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상황들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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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빠른 확산세는 2014년 창업해 ‘잔디’라는 협업 툴1 을 앞세워 국내 기업형 메신저 시장을 개척해 나가던 토스랩에도 위기였다. 한창 열심히 영업을 다녀야 할 시기에 영업 미팅들이 모두 취소됐고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국내 및 해외 마케팅 행사까지 기약 없이 연기됐다. 빠른 성장과 투자 유치가 필수인 스타트업에 영업, 마케팅의 고립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이내 반전이 일어났다. 3월 들어 하루에만 5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자 토스랩을 찾는 기업들의 다급한 전화가 줄을 이었다. 한 중견 기업 담당자는 대뜸 토스랩에 전화를 걸어 “영업하러 올 필요 없으니 다음 주부터 어떻게든 쓸 수 있게 해주세요”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통상 중견기업 정도의 규모라면 새로운 업무용 소프트웨어 도입에 최소 3개월에서 최대 6개월까지 걸린다. 도입하려는 업체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맞춰줘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입하려는 고객사가 조건을 맞출 테니 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긴박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현재까지 잔디의 성장세는 말 그대로 ‘파죽지세’다. 넥센타이어, 한양건설 등 500개 기업이 코로나19 이후 새롭게 잔디의 고객사가 됐다. 여기에 신규 가입자가 80% 증가했으며 해외에서만 7000명의 해외 사용자가 유입됐다. 또한 4월 중순에는 누적 사용자 200만 명 달성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특히 최근에는 협업 툴에 익숙한 스타트업과 IT 기업을 넘어 제조업 등 전통 산업 분야 중견 기업과 대기업, 심지어 공공기관까지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의 장기화로 ‘비대면 업무’가 기업의 뉴노멀이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빠르게 성장세를 키우고 있는 토스랩의 성장 스토리를 DBR이 취재했다.

만연한 업무 비효율성과 낮은 생산성

토스랩을 창업한 김대현 대표는 창업 전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두루 경험했다. 첫 직장은 티머니였는데 당시 김 대표는 주로 해외 사업을 맡아서 국내의 우수한 환승 시스템을 뉴질랜드, 콜롬비아, 말레이시아 등에 수출하는 업무를 했다. 그러다 2010년 당시 신생 기업이던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현 티몬)’로 자리를 옮겨 티켓몬스터의 로컬 비즈니스를 총괄하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할수록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특히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거치며 경험한 다양한 문제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풀어보고 싶어졌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도 기본적으로 조직 내 비효율이 발생했는데 김 대표가 느끼기에 이런 비효율의 원인은 ‘정보 공유의 부재’와 ‘커뮤니케이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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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이나 대리 때 팀장 지시로 밤을 새워서 만든 보고서가 정작 임원 회의에서는 그저 잠시 들여다보고 버려지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애초에 업무 지시가 제대로 내려오면 이런 ‘삽질’도 줄일 수 있고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데 결국 불투명한 의사소통 체계로 우리는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 않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 대표가 이런 고민을 하던 시기는 모바일 기술의 발달로 개인용 메신저와 소셜미디어들이 대거 등장하며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바꾸고 있던 때였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슬랙(Slack)’으로 대표되는 협업 툴들이 많이 쓰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슬랙은 미국 개발자 스튜어트 버터필드가 만든 협업 툴로 프로그램 하나만 설치하면 업무용 메신저, 문서 공유 등의 기능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업무용 협업 툴이다. 김 대표는 미국 시장에서 슬랙이 빠르게 인기를 얻고 폭넓게 쓰이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DBR mini box I ‘슬랙 vs. 잔디’ 참고.)

여기에 2014년을 전후해 전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열풍도 업무용 협업 툴의 시장성을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 국내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하에 디지털 전환에 대한 필요가 높아지면서 ‘업무의 효율성’과 ‘외부 조직과의 협업’이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디지털 전환을 발 빠르게 완료한 해외 혁신 기업들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 주목을 받은 것이 바로 ‘협업 툴’이다. 김 대표는 “미국의 업무 방식 변화를 보면서 시차는 있겠지만 한국에도 협업툴 활용 바람이 불겠다고 직감했다”고 설명했다.

e메일과 메신저를 뛰어넘는 업무용 협업 툴

그러나 사업 아이템이 있다고 해서 아이템을 사업화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김 대표 역시 업무용 협업 툴이라는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당시 김 대표의 직속 상사이자 티몬의 창업자인 신현성 의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신 의장은 김 대표의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토스랩의 밑그림을 그려줬다. 또한 직접 토스랩의 엔젤투자자로도 참여했다.

김 대표와 신 의장이 생각한 토스랩의 방향성은 ‘e메일과 개인용 메신저의 한계를 뛰어넘는 아시아 기업에 잘 맞는 업무용 메신저’였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업무용 메신저’고, 또 다른 하나는 ‘아시아’다.

김 대표가 ‘업무용 메신저’를 강조한 이유는 이전까지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은 불편한 e메일이나 보안 문제가 있는 개인 메신저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 2000년대 대표적인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e메일이었고 이는 현재도 유효하다. e메일은 전통적 소통 도구이기 때문에 모두가 익숙하게 사용했고 별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 업무 관련 증빙을 남기는 데도 용이하다. 그러나 e메일은 커뮤니케이션 속도를 떨어뜨린다는 큰 단점이 있다. 일단 e메일은 대표적인 ‘비동기 커뮤니케이션(asynchronous communication) 툴’이기 때문에 e메일을 보내 놓고 회신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 즉각적인 피드백과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해지는 경영 환경에 잘 맞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툴이다.

그래서 대기업의 경우 e메일 외 사내 메신저를 활용한다. 사내 메신저는 사내 조직도를 통해 업무 관련자를 빠르게 찾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피드백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회사에서만 쓰기 때문에 사생활과 구분하기도 쉽다. 반면 외부 협력업체나 바이어 등과의 소통은 별개로 해야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업무에 MSN 메신저나 네이트온 메신저 등을 활용하는 일이 늘었다. 이후 2013년 6월 카카오톡이 PC 버전을 내놓으면서 카카오톡이 업무용 메신저의 자리도 대신했다. 하지만 개인용 메신저를 업무에 활용하는 것은 여러 문제가 있었다. 일단 보안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회사의 중요한 기밀이 개인용 메신저를 통해 외부로 새어 나갈 위험이 커진 것이다. 또 개인용 메신저는 업무용 커뮤니케이션 외에도 개인적인 대화, 광고 등이 혼재돼 있어 업무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여기에 개인용 메신저를 쓰면서 사생활과 업무의 경계가 사라져 오히려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는 점도 큰 문제였다.

토스랩은 이 같은 문제점에 착안해 개인용 메신저의 편리함을 유지하면서도 보안 및 사생활 보호가 가능한 협업 도구 개발에 착수했다. 먼저, 시스템의 편의성과 사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기존 사내 메신저의 경우 회사에서 지급한 노트북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거나 회사가 아닌 외부에서 접속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기존 무료 개인용 메신저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보안성을 크게 강화하고자 했다. 또한 개인용 메신저의 한계로 지적되는 ‘파일 관리 기간’ 이슈도 해결하고자 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토스랩은 슬랙과의 차별화를 위해 ‘아시아 기업 문화’에 주목했다. 실리콘밸리 조직문화에 맞춰 영어로 서비스되는 슬랙과 비교해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언어와 아시아 국가 특유의 조직문화를 담은 서비스를 내놓아 슬랙이 등한시한 아시아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방향이 정해지고 김대현 대표를 포함해 뜻이 맞는 청년 네 명이 모여 2014년 여름, 드디어 토스랩을 세웠다. 그리고 약 1년의 개발 기간을 걸쳐 2015년 5월 ‘잔디’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DBR mini box I 슬랙 vs. 잔디

업무용 협업 툴 시장의 절대 강자는 슬랙(Slack)이다. 슬랙은 북미권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2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메신저 기반 협업 툴이다. 아마존, 스타벅스, BBC, 뉴욕타임스, 오라클 등 전 세계 50만 곳의 기업이 슬랙의 고객이다. 지난해 미국 증시에 상장됐는데 기업 가치가 148억 달러(약 18조 원)에 이른다.

잔디는 초반부터 한국판 슬랙을 목표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슬랙처럼 가입자 기반의 SaaS(Software as a Service)를 비즈니스 모델로 정했으며 ‘프리-미엄(Free-mium)’이라는 수익 모델을 선보였다. 여기서 프리-미엄은 처음에 제한된 버전의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그 이후 기능과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몇 가지 단계별 요금제를 선택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슬랙을 벤치마킹한 것은 아니다. 잔디는 슬랙이 갖고 있는 장점은 채용하고 단점은 개선하는 방식으로 한국 및 아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한 메신저형 협업 툴을 지향하고 있다.

1. 아시아권 특화 서비스

잔디는 개발 단계부터 타깃을 한국과 인근 아시아권으로 잡았다. 슬랙이 집중하지 않는 아시아 시장을 발 빠르게 선점하기 위해서다. 슬랙을 많이 사용하는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슬랙 이용 시 불편한 점으로 ‘한국어 미지원’을 자주 꼽는다. 슬랙은 일본어 외 아시아 국가 언어를 지원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잔디는 한국어를 비롯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 다양한 언어를 지원한다. 메신저형 협업 툴이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점에서 다양한 언어를 지원하는 것은 잔디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슬랙은 북미권, 그중에서도 실리콘밸리에서 많이 쓰이는 툴이다. 그러다 보니 아시아 기업들의 문화와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일례로 직급과 체계가 중요시되는 아시아권에서는 협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팀원들의 직함, 소속, 연락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조직도가 유용하다. 잔디는 슬랙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조직도를 제공해 부서별 팀원의 정보를 바로 알 수 있게 했다.

또 슬랙은 팀이 아닌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개인이 필요한 주제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면 방을 만들고 그 방에 협업할 사람을 초대하는 구조다. 이에 반해 잔디는 관리자 기능이 강화돼 있다. 슬랙이 더 민주적인 방법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아시아권 기업들은 관리자의 권한 강화를 선호한다.

2. 쉽고 익숙한 UI/UX

슬랙은 개발자들이 많이 쓰는 툴이다 보니 비개발자들에게는 직관적이지 않아서 처음 슬랙을 사용하는 경우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주로 텍스트를 입력하는 ‘명령어’ 방식으로 UI(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구성돼 있기 때문. 이에 반해 잔디는 서비스 개발 초기부터 무료 개인용 메신저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카카오톡이나 라인과 같은 개인용 메신저를 사용해 본 경험만 있다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잔디는 채팅형 메신저 서비스 외 게시판형 보드뷰를 함께 제공한다. 보드뷰는 공지사항이나 결재 사항, 보고 사항을 공유하기에 적합하다.

3. 연동 기능

슬랙은 개발 직군에 특화된 서비스다 보니 개발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수의 글로벌 서비스와만 연동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잔디는 구글 캘린더, 트렐로(Trello), 지라(Jira), 깃허브(Github), 비트버킷(Bitbucket) 등 개발자들이 활발하게 사용하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웹훅(Webhook)을 이용해 그룹웨어와 같은 사내 시스템과도 연동이 가능하다.

기능이 아닌 ‘서비스’, 중견 및 스타트업의 통점(Pain Point)을 공략하다

사실 업무용 메신저는 새로운 ‘발명’은 아니었다. 토스랩이 잔디를 론칭하던 2015년에는 이미 국내에 몇몇 업무용 협업 툴이 상용화돼 경쟁 중이었다. 카카오의 아지트, 웹캐쉬가 만든 플로우 등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협업 툴에 대한 수요는 많지 않았고 그래서 시장도 크지 않았다.

특히 국내 대기업의 경우 SI(System Integration) 계열사를 통해 계열사별로 통합된 그룹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사내 e메일 계정, 사내 메신저, 전자 결재 시스템, 조직도, 전자회의 시스템 등이 연동된 그룹웨어는 모든 계열사가 쓰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직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또 중견 기업은 여전히 e메일 위주의 업무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고 그룹웨어 대신 카카오톡과 같은 무료 메신저를 업무에 활용하는 비중이 높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토스랩은 서비스 론칭 후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B2B용 소프트웨어다 보니 주변 지인을 활용한 영업도 한계가 있었다. 양진호 토스랩 이사는 “차라리 개인용 SNS였다면 써달라고 부탁하면 가입자 수라도 늘릴 텐데 업무용 메신저다 보니 친분만으로 영업망을 넓히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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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떻게든 잔디라는 서비스를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입소문이 나서 사용자가 늘고 그로 인해 서비스에 대한 레퍼런스가 쌓여야만 영업 활동이 가능하고 대기업을 뚫어볼 엄두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선 타깃을 정확히 정해서 접근해야 했다. 김 대표는 초기 타깃을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으로 정했다. 이미 사용하는 그룹웨어가 있고 의사결정의 속도가 느린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입소문을 통한 고객 유치가 쉬울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경우 무료로 배포되는 개인용 메신저를 업무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잔디에 이점이 있었다. 잔디가 개인용 메신저 대비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더 편한 서비스를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개인용 메신저 시장도 초반 네이트온, 마이피플, 라인 등이 카카오톡과 경쟁했지만 결국 소비자는 스스로 느끼기에 편의성이 가장 극대화돼 있는 서비스 하나를 선택해 활용하기 때문에 카카오톡이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다”며 “업무용 메신저도 결국에는 고객들이 원하는 서비스의 ‘편의성’에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야 꽉 막힌 판로를 뚫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토스랩은 잔디 론칭 초기 과감하게 ‘무료 배포’를 시도했다. 누구든 원하면 잔디를 써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창업 초기 신현성 의장 등 든든한 지원군 덕에 투자금의 여유가 있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만큼 잔디가 기존 개인용 메신저나 슬랙 등 외산 협업 툴과의 경쟁에서 강점이 있다는 자신감때문이었다.

토스랩은 실제 카카오톡이나 네이트온 등 개인용 메신저 대비 업무에 특화된 여러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단 잔디는 기본적으로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카카오톡처럼 일과 생활의 경계가 흐려지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잔디는 한 번 공유된 파일은 만료 기간 없이 영구적으로 보관된다. 그래서 언제든 파일을 찾아서 열어볼 수 있다. 새로운 멤버를 대화방에 초대했을 때 신규 멤버가 그전에 이뤄진 대화를 모두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인수인계에 특화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관리자 권한으로 퇴사자는 탈퇴시키고, 필요에 따라 멤버를 차단할 수도 있고 처음부터 제한된 권한을 지닌 ‘준회원’으로 초대할 수도 있다. 보안을 위한 기능이다.

잔디는 잔디 커넥트를 통해 그룹웨어, ERP 등 기존 시스템은 물론 구글 캘린더, 트렐로, 지라 등 외부 서비스와의 연동도 가능하다. 일정을 관리하기 위해 구글 캘린더만 업데이트하면 별도로 알릴 필요 없이 잔디에서 알림을 받아볼 수 있다. 이러한 자동화는 커뮤니케이션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줄 뿐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개인용 메신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능이다.

업무용 메신저니까 B2B? 우리는 B2C부터

자신감 있게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풀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서비스를 론칭했으면 마케팅을 해야 했다. 하지만 무명의 신생 스타트업에 마케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업무용 메신저는 타깃 고객이 기업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더욱 컸다. 통상 SAP, IBM 등 업무용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회사들은 공통적으로 하향식 B2B 영업을 한다. 영업 담당자가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살 만한 대기업들을 돌아다니며 기업 IT 담당을 만나 영업 활동을 벌이고 대기업은 이들 중 자신과 맞는 회사를 골라 패키지로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이를 전사에 공급한다. 그래서 신생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발주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레퍼런스도 없거니와 기본적으로 대기업은 패키지 구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김대현 대표 역시 초기 이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다양한 업무용 소프트웨어 관련 세미나나 행사에 참가해 잔디를 알리려고 노력했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그래서 토스랩은 초반 잔디를 홍보하면서 과감하게 B2C 위주의 마케팅을 진행한다. 김 대표는 “잔디 출시 초반만 해도 국내 시장서 기업에 패키지가 아닌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판다는 개념 자체가 익숙지 않았다”며 “결국 엔드 유저를 직접 타깃으로 마케팅을 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B2C 마케팅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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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C를 타깃으로 소프트웨어를 판다는 생각은 잔디가 메신저형 협업 툴이라서 가능했다. 앞서도 설명했듯 잔디는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형 메신저와 최대한 비슷하게 설계했다. 그 때문에 카카오톡이나 라인 등 메신저 사용 경험이 있다면 무리 없이 쉽게 사용해볼 수 있다. 또한 애초에 ‘팀’을 기본 단위로 해서 워크플레이스 전용으로 협업에 최적화해 만든 서비스기 때문에 한두 명의 ‘얼리어댑터’가 직접 써보고 자연스럽게 팀에 도입을 제안해 확산이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양진호 토스랩 COO(이사)는 “이미 에버노트나 드롭박스와 같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많이 쓰기 시작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잔디를 팀 단위로 빠르게 도입하고 업무 생산성 향상을 직접 체험하면 자연스럽게 점진적 확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B2B를 완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다양한 업체를 찾아다니며 잔디라는 서비스에 대해 알렸다. 일례로 지금은 직원 수가 200명이 넘는 부동산 중개 서비스로 성장한 집토스의 경우 창업 초기 직원이 6명일 때부터 토스랩의 영업 직원이 공을 들여 토스랩의 고객사로 영입한 케이스다. 실제 거래를 성사시킨 토스랩 영업 직원은 집토스 사무실 근처에 집을 구한다는 핑계로 자주 집토스 사무실에 들러가며 회사 관계자들과 안면을 텄고 그 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이 회사를 잔디의 주요 고객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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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잔디의 초창기 유저로는 대표적으로 디자인다나함, 마리몬드 등이 있다. 이 중 마리몬드의 경우는 잔디 도입 전 슬랙을 커뮤니케이션 툴로 쓰다가 UX의 불편함, 높은 가격 등을 이유로 잔디로 갈아탄 케이스다. 디자인다나함과 집토스의 경우는 비IT 관련 인력이나 파트너들이 많아 처음부터 잔디를 커뮤니케이션 툴로 선정했다.

이런 스타트업들과 중소기업들의 호응 속에서 잔디는 론칭 1년 6개월에 누적 가입팀 8만3000여 곳을 돌파했다. 특히 한국뿐 아니라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잔디를 사용하는 기업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대만 게임사 OMG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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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비스 론칭 초기 잔디라는 브랜드명을 널리 알리게 되는 사건이 하나 터지는데, 바로 토스랩이 퀄컴 주관 스타트업 경진대회 ‘큐프라이즈(QPrize)’에 참가해 글로벌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 대회를 계기로 국내외에서 잔디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고 토스랩은 퀄컴벤처스 등으로부터 30억 원의 추가 투자를 받게 된다. 김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심사위원들에게 ‘구글이 전 세계 넘버원이지만 한국에서는 네이버가 구글을 누르고 있고 우버도 가장 유명한 차량 공유 서비스지만 아시아에서는 그랩의 아성을 넘지 못한다’는 점을 어필하며 아시아에 맞는 협업 툴의 강점을 설명한 것이 우승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레퍼런스가 쌓이며 시장이 열리다

잔디는 예상보다 빠르게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7년 초에는 이미 잔디를 사용하는 누적 팀 수가 9만 개를 넘어섰다. 그리고 토스랩은 이즈음부터 본격적인 유료화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가입자를 확보했기 때문에 네트워크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시점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2016년 1월 부분 유료화를 시도하며 가능성을 점검한 토스랩은 2017년 초, 본격적인 유료화 모델을 선보인다. 유료화 모델은 크게 프리미엄(Premium)과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로 나뉘는데 [그림 3]에서 보듯 제한 없는 메시지 검색 횟수와 자유로운 클라우드 용량 등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유료화와 함께 2017년 하반기부터 토스랩은 스타트업을 넘어 중견 기업까지 고객을 확대한다. 특히 잔디가 협업 툴로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전통 산업에 속한 기업들도 하나둘 잔디에 관심을 보였다.

문제는 토스랩과 중견 기업들 사이에 협업 툴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토스랩은 그동안 스타트업들의 입장만을 고려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왔다. 스타트업은 이미 슬랙 등 다른 업무용 협업 툴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잔디의 도입을 결정할 때 잔디가 협업 툴로서 편의성과 효율성이 있는지가 중요한 의사결정 포인트였다. 그러나 오랜 역사와 수직적 조직문화를 자랑하는 전통적 기업들은 잔디에 기대하는 기능들이 달랐다. 전통 기업들의 경우 업무용 협업 툴을 도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에 사용하는 그룹웨어나 SAP와 같은 ERP 시스템과의 연동이었다. 또 관리자들의 관리 권한 강화, 도입 비용, 전사적 도입을 위한 교육 등 지금까지 토스랩이 고민하지 않았던 다양한 요구사항을 쏟아냈다.

일례로 토스랩의 첫 중견 기업 클라이언트는 60년 전통의 기초석유화학기업인 동성코퍼레이션이었다. 이 회사는 직원 수가 1400명이 넘는 큰 회사였는데, 이 회사의 경우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느린 의사결정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업무 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업무용 협업 툴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오래된 그룹웨어와 e메일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방해하는 요소라는 내부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 내부적으로 시중에 존재하는 9개의 협업 툴을 비교 분석한 후 최종적으로 잔디를 선정해 토스랩과 미팅을 했다. 이 자리에서 동성코퍼레이션은 잔디에 없던 기능을 몇 가지 추가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조직도’다.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이 쓰는 사내 메신저의 경우 조직도 기능이 있어 회사 내 업무 담당자를 찾는 것이 매우 편하다. 조직도에 들어가 담당자를 찾아서 메시지를 보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잔디를 위시한 대다수의 협업 툴은 이런 기능이 없었다. 하지만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아시아 기업에 조직도는 필수였다. 내가 누구와 업무 협의를 해야 하는지, 그 사람이 나보다 선임인지, 후임인지를 판단하는 데 조직도는 필수기 때문이다.

또 동성코퍼레이션은 직원들이 잔디를 얼마나 제대로 쓰는지를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해 줄 것을 요구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메시지 확인 여부 기능’이다. 동성코퍼레이션 기업문화팀은 이 기능을 활용해 공지사항 토픽 내 메시지를 장기간 읽지 않은 직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또한 동성코퍼레이션을 상대하면서 토스랩은 기업의 크기가 커질수록 소프트웨어 도입 자체에 대한 교육이 필수라는 점도 깨닫게 된다. 직원들이 많을수록 기존에 사용하던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반감이 있을 수밖에 없고 모든 직원이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동성코퍼레이션과 협상을 통해 중견 기업의 니즈를 어느 정도 파악한 토스랩은 이후 게임빌컴투스, 넥센타이어, 대양그룹 등을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비슷한 문화와 업무 방식을 가진 스타트업들만 상대하다 전통적인 문화와 업무 방식의 제조업체들과 미팅을 하면서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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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잔디를 선택한 이유

토스랩의 잔디는 국내 협업 툴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 속에 매년 100%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누적 투자액도 130억 원을 넘겼고 2019년 8월에는 잔디를 사용하는 누적 사용팀도 20만 개를 넘어섰다. 불과 4년 만에 잔디는 국내 협업 툴 시장을 이끄는 선도 기업이 됐다.

사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여전히 국내 협업 툴 시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빠른 성장세와 달리 국내서는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적용 사례가 늘었을 뿐 대기업 적용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 환경에서 큰 변화를 주도하는 쪽은 역시 대기업이다. 대기업이 참여하지 않는 가운데 협업 툴 시장에 대한 의문부호가 여전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실제 앞서 설명한 대로 대기업은 전사 차원에서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사용하기 때문에 뚫기 쉬운 시장이 아니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보수적인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스마트워크나 협업 툴의 필요성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먼저 나서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는 모양새였다. 여기에는 그룹 내 SI 계열사의 존재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비싼 돈을 들여 SI 계열사가 개발해 제공한 그룹웨어와 사내 메신저는 빠르게 변화하는 모바일 환경에서 범용성이 떨어졌다. 특히 갈수록 타사 혹은 거래처와의 협업이 많아지는 상황이라 활용도는 더욱 떨어졌다. 일부 그룹웨어는 경쟁사인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와 호환이 되지 않도록 설정돼 있는 경우도 있어 여러모로 불편함이 컸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대기업 내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었다. 소규모 팀 위주로 잔디를 쓰는 조직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 일부 IT 관련 업무를 하는 팀이나 얼리어댑터 성향의 직원이 많은 팀에서 “카톡 방이 너무 많아 불편하니 대안을 찾아보자”며 개별적으로 잔디를 쓰는 직원들이 생겨났다. 특히 이들 소규모 팀이 잔디를 활용해본 후 “잔디를 쓰니 카카오톡을 업무에 안 써도 돼서 좋다”라든지 “주제별, 프로젝트별로 나눠서 대화방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와 같은 긍정적 피드백을 내부 직원들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잔디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었다.

하지만 토스랩은 서두르지 않았다.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여기서 적당한 때란 한 회사의 직원 중 20∼30% 정도가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될 때였다. 보통 한 회사에서 30% 정도의 직원이 잔디를 쓰게 되면 그 소문이 IT팀에게도 전달된다. 그러면 IT팀에서는 잔디라는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갖고 리서치를 하게 되고 이후 필요성이 인정되면 토스랩에 연락을 해 미팅을 요청한다. 이때부터 토스랩의 발 빠른 대응이 빛을 발한다. 토스랩은 스타트업, 중소기업, 중견 기업 등 다양한 산업별, 규모별, 상황별 기업이 가진 니즈를 해결하며 쌓아 올린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기업 IT팀을 만나 여러 차례 미팅을 거치며 요구 사항을 해결한다. 이때 모든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고객사의 요구 중 첫째, 잔디를 가장 오래 사용해 본 토스랩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가, 둘째, 요청사항이 개발되면 다른 고객들에게도 유용할까, 셋째, 이 기능을 개발했을 때 추가 유저 확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등을 판단해 우선순위를 정해 업무를 처리한다. 이렇게 해서 특정 계열사에 잔디가 도입되고 효과가 인정되면 자연스럽게 전체 그룹으로 확산된다. 실제 국내 대기업 중 LG와 CJ 등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잔디를 도입해 사용 중이다. 특히 LG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잔디 사용을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현 대표는 “처음부터 LG나 CJ의 IT팀을 접촉해 잔디를 팔려고 했으면 아마 거절당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일단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잔디를 쓰는 팀들이 생긴 후 IT 담당자를 만나니 협상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LG CNS의 경우는 IT 기업으로 큰 틀에서 토스랩의 경쟁사가 될 수 있지만 오히려 먼저 토스랩에 손을 내민 케이스다. LG CNS 역시 스마트워크라는 ‘메가 트렌드’의 움직임을 읽고 수년 전부터 그룹용 협업 툴 개발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룹웨어 프로젝트나 인프라 구축 사업 등에 비해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 형태로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방식은 LG CNS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고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차라리 시장에서 잘하는 업체와 손을 잡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이에 토스랩은 2019년 9월 LG CNS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함께 시장 확대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여기에 올해 초,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협업 툴 시장에 대한 가능성은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업무 방식이 기업의 뉴노멀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정부와 기업의 숱한 노력으로도 도입되지 않았던 재택근무와 유연 근무, 스마트워크가 빠르게 확산되고 그 여파로 협업 툴에 대한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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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기업문화 맞춤 현지화로 해외 진출

토스랩의 성장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국내 시장은 스타트업 -중견 기업 - 대기업 순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확장해 나간 반면 해외 시장은 서비스 론칭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개척해 나갔다는 점이다. 실제 토스랩은 잔디라는 서비스가 출시되기도 전인 2015년 1월 대만에 지사를 설립하며 아시아 진출을 본격화했다. 그 덕분에 현재 토스랩 매출의 1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오고 있고 해외에서 발생하는 매출액이 연평균 2배 이상 성장하고 있다. 또 신규 유입 고객의 20% 정도가 외국 고객이다. 심지어 대만에서는 잔디가 시장점유율 1위 협업 툴이다. 일본의 경우 일본 비전(Vison)사와 파트너 제휴를 맺고 본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토스랩이 초반부터 해외 시장을 노린 이유는 한국 B2B 소프트웨어 시장의 폐쇄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B2B 소프트웨어 시장은 이름 있는 거대 기업들의 놀이터였고 잔디와 같은 개별 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사는 설 자리가 넓지 않았다. 여기에 잔디가 SaaS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해외 진출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크게 수정할 필요 없이 다른 기업에 손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해외 진출에 유리한 원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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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선순위는 있다. 일단 아시아 국가여도 영어가 익숙한 나라들은 우선 진출 대상국에서 배제됐다. 대표적으로 홍콩과 싱가포르를 들 수 있다. 이 시장에서는 슬랙, 팀즈 등 북미권 협업 툴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현지 언어에 대한 니즈가 높은 시장에서는 잔디가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최근에는 동남아를 넘어 극동 아시아인 UAE까지 시장을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잔디가 이렇게 폭넓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진호 이사는 “각 국가에 속한 기업들이 처한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에서 카카오톡이 업무용 메신저로 쓰이면서 일과 생활의 경계가 무너지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처럼 일본과 대만에서는 라인이, 베트남에서는 Zalo 메신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고 똑같은 부작용이 생기고 있었다. 잔디가 이처럼 일과 생활의 경계가 사라짐으로써 오는 스트레스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 협업 툴은 생소한 개념이었고 특히 영어만을 지원하는 슬랙은 그래서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토스랩은 초반부터 이런 언어적 장벽을 인지하고 다양한 언어를 서비스함으로써 슬랙과 팀즈가 눈여겨보지 않던 시장을 먼저 개척한 셈이다. 결국 토스랩의 성공은 ‘현지화 노력’ 덕분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잔디의 경쟁력과 과제

토스랩의 잔디는 서비스 론칭 5년 만에 국내 최대 사용자를 보유한 국산 협업 툴의 대표주자로 성장했다. 현재 잔디의 등록 유저 수는 200만 명을 넘었고 업무에 잔디를 활용하는 팀이 20만 팀을 돌파했다. 특히 유료 상품 전환율이 40%로 경쟁사 대비 월등하다. 이는 슬랙의 전환율 30%보다도 높은 수치다. 또 무신사, 집토스, 야나두 등 기존 고객사들의 사업이 확장되면서 고객사 사용자 수 증가로 인한 매출액 증가분이 이탈 사용자보다 커져 금액 기준 순고객 유지율(Net Revenue Retention)이 120%를 넘어섰다.

토스랩의 이 같은 성장세는 스타트업을 넘어 중견 기업 및 대기업으로 고객의 저변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토스랩의 잔디가 갖고 있는 ‘맞춤형 현지화 제공 능력’과 ‘소프트웨어의 범용성’ 덕분이다. 이는 슬랙이나 마이크로소프트 팀즈(Teams)와 비교해 잔디가 갖는 강점이다.

1. 구글 대신 네이버? 우버 대신 그랩? 슬랙 대신 잔디

토스랩은 잔디라는 서비스를 론칭하기 전에 치밀하게 시장을 분석하고 타깃 시장을 ‘아시아’로 한정해 타깃 시장에 가장 잘 맞는 협업 툴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전략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현 대표가 경험을 통해 ‘현지화’가 스타트업의 성패를 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티켓몬스터 창업 초기 회사에 합류해 사원부터 로컬사업부 기획실장까지 빠르게 승진하며 회사의 성장을 지켜봤는데, 이 과정에서 초반 다양한 외국산 소셜커머스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결국 현지화에 실패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후 그는 토스랩을 창업하면서 한국과 아시아 문화권의 특성을 반영한 협업 툴을 개발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실제 토스랩의 잔디는 2015년 서비스 출시 이후 꾸준히 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만과 일본, 베트남의 경우 이미 잔디를 유료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고 말레이시아와 UAE에서도 잔디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일본에서 토스랩으로 잔디에 대한 문의가 폭증했는데 보수적인 일본의 기업 문화를 생각했을 때 유의미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2. 소프트웨어를 팔지 않는다. 문화를 판다

기업들이 협업용 메신저를 도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사결정의 속도와 질을 높여 생산성 향상을 이루기 위해서다. 기존에 업무에 주로 사용하던 e메일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은 이미 다양한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그래서 슬랙의 창업자인 스튜어트 버터필드 대표는 “수년 내 슬랙이 e메일을 대체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은 단순히 협업 툴만 도입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협업 툴 도입은 자칫 조직 내부의 혼란만 가중하고 개별 직원들의 업무량만 늘릴 뿐이다. 실제로 회사가 처한 상황 맥락이나 회사의 조직문화와 협업 툴이 가진 철학과의 핏(fit)을 고민하지 않고 무턱대고 잘나가는 혁신 기업들이 쓰는 협업 툴을 도입했다가 실패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토스랩 역시 서비스 론칭 초반에는 협업 툴과 협업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스타트업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중견 기업 이상의 회사들을 상대하면서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데 그쳐서는 잔디가 제대로 쓰여 보지도 못한 채 부정적인 인식만 남기고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후 1대1 라이브 톡과 유선 상담 등 고객지원, 스마트워크 관련 교육 세미나 주최 등을 통해 잔디 사용법뿐만 아니라 스마트워크에 필요한 협업 문화 확산을 위한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고객사의 요청이 있을 경우 고객사를 직접 방문해 기존 그룹웨어와의 연동, 업무 특성이나 회사 상황에 맞는 잔디 활용법 등을 컨설팅하고 필요한 경우 사내 확산 및 정착을 위한 교육도 진행한다. 이는 단순히 e메일 질의와 문서로만 고객을 응대하는 외산 소프트웨어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그 덕분에 실제 잔디가 고객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잔디를 활용하기 시작한 이후 고객사 평균 미팅은 29% 줄었고, 사내 e메일 전송 건수는 무려 82%나 감소했다. 이에 반해 생산성은 56% 증가했다. 특히 토스랩의 이 같은 맞춤형 교육 서비스는 수평적 조직문화 도입을 위해 협업 툴 사용을 고민하는 많은 기업이 잔디를 선택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줬다.

3. 목적에 최적화된 외부 서비스와의 연동성

전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기업들이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의 트렌드를 따라가 보면 협업 툴이 목적에 맞게 세분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슬랙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툴이 협업 툴의 대표적인 모델이었다면 최근에는 화상회의 툴, 스케줄링 툴, 업무관리 툴, 원페이지 협업 툴 등 그 기능에 따라 협업 툴 시장이 갈수록 세분화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기능이 바로 얼마나 많은 소프트웨어와 쉽게 연동할 수 있는지 여부다.

토스랩은 잔디 커넥트(JANDI Connect)를 통해 구글 캘린더, 트렐로, 지라, 깃허브 등 업무에 자주 사용되는 다양한 협업 툴을 실시간 연동해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잔디는 웹훅을 통해 외부 서비스와의 연동도 지원하는데, 여기서 웹훅은 외부 서버에서 특정 작업을 수행했을 때, 해당 작업이 수행됐음을 잔디에 알리는 개념을 말한다. 이를 통해 잔디는 기존에 기업들이 사내에서 활용하고 있는 그룹웨어나 ERP 시스템과 연동이 가능하다. 이런 잔디만의 개방성이 국내 중견 기업 및 대기업 고객 유치를 가능하게 한 비결이다.

사실 잔디는 국산 협업 툴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1인자일 뿐 협업 툴 시장의 선두 주자인 팀즈나 슬랙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또한 국내 협업 툴 시장 규모도 세계 업무용 협업 툴 시장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다. 미국 시장 조사 컨설팅 기업인 마켓츠앤드마켓츠(MarketsandMarkets)는 업무용 협업 툴 시장이 2021년 287억 달러(34조2878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반해 국내 시장 규모는 3000억∼5000억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여전히 개인용 메신저를 업무용으로 쓰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협업 툴의 절대 강자인 슬랙이 슬슬 한국 진출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 감지되면서 토스랩으로서는 강력한 경쟁자와 승부를 봐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다행인 점은 코로나19 이후로 지금까지 방관적 자세를 견지하던 국내 대기업이나 금융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협업 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특히 과거 클라우드 서비스를 보안 문제 때문에 등한시하던 기업들의 시선이 많이 개선된 점도 기회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강력한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토스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층 강화된 현지화를 통해 빠르게 다수의 도입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DBR mini box II 잔디의 조직문화와 ‘플렉시모트(Fleximote)’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한 2월22일, 김대현 토스랩 대표는 이례적으로 주말에 주요 경영진을 소집했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비하기 위한 긴급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음을 알리고 전사 재택근무를 지시한다. 이후 2월24일 월요일 오전, 사무실로 출근한 직원들은 재택근무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현재 진행 중인 업무에 대한 공유를 마치고 오후부터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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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랩이 이렇듯 불과 반나절 만에 신속하게 재택근무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토스랩의 서비스인 잔디뿐만이 아니라 토스랩이 내부적으로 활용하는 모든 업무용 툴이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였기 때문이다. 양진호 토스랩 COO는 “토스랩은 코로나19 이전부터 클라우드 기반의 잔디, 트렐로, 지스위트와 같은 협업 툴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도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나 있었고 실제 코로나19 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상 상황에서 신속하게 업무 방식을 바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토스랩은 이러한 유연 원격 근무 제도를 ‘플렉시모트(Fleximote)’라고 명명했다. 플렉시모트는 유연함을 뜻하는 Flexible과 리모트워크(Remote work)의 합성어다.

토스랩이 코로나19 전부터 유연 원격 근무에 대한 대비가 잘 돼 있었던 것은 토스랩의 미션이 ‘협업 문화를 확산시켜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협업은 단순히 일을 여럿이 나눠서 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 간 정보 공유와 소통을 의미한다. 그래서 토스랩의 조직문화는 애초에 공유와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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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토스랩은 매주 월요일 아침 ‘잔디 브리핑’이라는 전사 회의를 통해 회사의 현안을 공유하고 한 달에 한 번 금요일 아침에는 함께 아침밥을 먹으며 타운홀 미팅을 열어 각 팀의 주요 이슈와 성공 사례 등을 공유한다. 또한 토스랩은 불필요한 형식과 규제보다는 자율과 책임을 통한 조직원 개개인의 내재적 동기부여를 중시한다. 하지만 방임에 가까운 자율보다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이 부분을 모든 멤버가 지키는 방식으로 자율과 책임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플렉시모트는 공유와 소통, 자율과 책임으로 이뤄진 토스랩 조직문화의 결과물이다.

DBR mini box III : 성공요인과 시사점
‘잔디’가 만드는 업무 현장의 ‘연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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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가 스마트워크에 끼친 영향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연결(Connection)’을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약 2개월 동안 비자발적 재택근무를 실시하면서 기업 내 ‘연결’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워크숍과 단합 대회 같은 이벤트가 조직 구성원을 하나로 연결시켜준다고 믿던 많은 회사는 코로나19로 인해 강제적 재택근무를 해야 될 상황에 처하자 비상이 걸렸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실무자들은 애꿎은 컴퓨터 파일만 정리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고, 비대면 상태에서 어떻게 업무를 지시해야 하는지 모르는 리더들은 팀원의 시간별 업무 일정을 체크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반면 회식도, 단합 대회도 없었지만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비전과 목적을 과하다 싶을 만큼 재확인하고 주요 일정을 사전에 협의했던 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파르게 증가하자 자연스럽게 재택근무 모드로 전환했다. 업무 공간이 사무실이든, 각자의 방이든 상관없이 직원들이 업무적으로 확실히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일터에서의 연결은 크게 ‘실질적 연결’과 ‘내용적 연결’이 있다. 실질적 연결이란 업무적으로 다른 구성원들의 응답이나 피드백을 얼마나 빨리 획득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실제 기업 사례를 살펴보자. 코로나19 이전, A 기업은 전 직원이 매일 사무실로 출근했지만 직속 팀장이나 부장에게 업무 컨펌을 받으려면 하루 정도 대기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분명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지만 회의에 서류 작업에, 막상 중요한 업무 진행과 관련된 피드백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위세를 떨치던 기간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각자 재택근무를 하느라 얼굴은 못 보지만 메신저로 보낸 업무에 대해 늦어도 1∼2시간 내에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과 비교하면 업무의 진행 속도가 ‘무궁화호’급에서 ‘KTX’급으로 빨라진 셈이다.

‘잔디’와 같은 업무용 메신저는 조직 구성원들의 실질적인 연결을 강화시킨다. 대화방에서 메시지를 보낼 때는 e메일 발송 상황처럼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상대가 메일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업무상 필요한 피드백을 길게는 1∼2시간, 대부분은 즉시 받을 수 있다. 다른 구성원과 협업할 때의 시간 지연을 최소화해서 업무의 병목을 제거한다. 짧아진 시간만큼 직원 간의 연결은 오히려 강해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내용적 연결은 업무에 대한 공감과 관련이 있다. ‘내용적 연결 상태’가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Why(왜)를 알아야 한다. 내가 지시받은 이 업무의 목적은 무엇인지, 왜 지금 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일인지 ‘의미 접속’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소위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라 불리는 고성과자들은 이러한 의미 접속에 탁월하다. 일 자체에 쏟는 에너지만큼이나 ‘Why’를 찾아 개인적 의미로 연결하는 데 능하다. 이유를 찾고 나면 열정은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내면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기 때문이다. 둘째, 맥락(Context)을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해, 어떤 배경과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업무 히스토리를 알아야 업무의 현재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함께 일하는 멤버들과의 연결감이 생긴다. 그러나 ‘맥락’은 초창기부터 그 업무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기가 쉽지 않다. 마음먹고 그 맥락을 공유한다고 해도 중간에 새로운 멤버가 생길 때마다 일이 진행돼 온 과정을 이야기해준다는 건 여간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 아니다. 셋째,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돼야 한다. 쉽게 말해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지해야 한다. 최근 어떤 컴플레인이 주로 들어오는지, 어제 완성한 기획서에 대해 부서장이 어떤 피드백을 줬는지, 오늘 임원 회의에서 결정된 주요 사항은 무엇인지. 이러한 내용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시차 없이 공유해야 의미적 연결이 가능하다. 나는 지난주에 제출한 기획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타 부서 사람을 통해 이 프로젝트가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한 팀에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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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잔디’는 구성원들이 내용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업무에 대한 목적은 수시로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어볼 수 있고, 프로젝트 중간에 합류하더라도 앞서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통해 쉽게 일의 맥락을 따라잡을 수 있다. 또 출장으로 사무실을 떠나 있어도 대화방에 업데이트되는 메시지를 통해 일의 진행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내용적 연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 환경이 변하면서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연결이 바로 ‘외부와의 연결’이다.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 네덜란드가 대대적으로 업무 공간을 리뉴얼했는데 이 리뉴얼의 핵심은 ‘경계 없는 연결’이었다. 건물의 60%를 외부인도 사용 가능할 수 있게 오픈했다. 2000년 초반의 사무실이 직원 간의 연결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번 리뉴얼은 조직을 넘어선 연결을 향해 있었다. ‘경계 없는 연결’이야말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VUCAi 시대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장이다.

조직 내부의 사일로를 허물자는 구호는 이제 구시대적이다. 저렴한 비용의 클라우드와 공유 문서 서비스 덕분에 조직 구성원 간의 협업은 예전처럼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이제 관건은 외부와의 연결이다. 우리 조직에 없는 전문성을 어떻게 수급할 수 있느냐가 성과를 가르고, 외부 전문가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다른 조직에 있지만 한 팀처럼 빠르게 소통하고 정보를 교류해야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 외부 업체와의 협업이 증가하는 경영 환경의 변화는 결국 기존에 기업들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던 그룹웨어 시대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그룹웨어는 회사 내부 직원들의 소통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외부 협력사와의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VUCA 시대에는 외부인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협업 툴이 중요하다.


필자소개 최두옥 베타랩 대표 dooook@gmail.com
필자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마케팅본부와 공간 비즈니스 그룹 ‘토즈’를 거쳐 2009년부터 국내에서 스마트워크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현재 스마트워크 R&D 그룹 베타랩의 대표로 재직 중이며 다수의 기업과 스마트워크 관련 컨설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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