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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데이비드 아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

“상품을 자랑하지 말고,
‘시그너처 스토리’로 고객을 감동시켜라”

배미정 | 286호 (2019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브랜드 분야 최고 권위자인 데이비드 아커 교수가 제시한 오늘날 한국 기업에 필요한 브랜드 전략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머스트 해브(Must Have)’를 갖춘 하위 카테고리를 구축하고 관리함으로써 브랜드를 성장시켜라.
2. 기업이 무엇을 보여줄지를 고민하지 말고 고객의 ‘스위트 스폿(Sweet Spot)’을 찾아서 그것을 브랜드와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해라.
3. 고객, 직원, CEO 등의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발굴해 브랜드 비전에 생명에 불어넣어라.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조수경(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데이비드 아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하스비즈니스스쿨 명예교수가 2014년 펴낸 저서 『브랜드 성공을 주도하는 20가지 원칙(Aaker on Branding)』의 한국어 번역본 출간을 기념해 방한했다. 아커 교수는 『브랜드 자산의 전략적 경영(Managing Brand Equity)』과 『데이비드 아커의 브랜드 경영(Building Strong Brands)』 등의 저작으로 유명한 브랜딩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특히 기업이 단기적 재무 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현실을 비판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구해야 할 ‘브랜드 에쿼티(brand equity)’ 개념을 정립해 체계적인 브랜드 전략의 필요성을 널리 알렸다. DBR이 지난 10월10일 방한한 아커 교수를 만나 오늘날 한국 기업에 필요한 브랜드 전략의 핵심을 물었다. 인터뷰와 더불어 10월11일 고려대학교 우당기념관에서 열린 아커 교수의 강연 내용도 함께 정리했다.


이번에 한국에 출간된 책 『브랜드 성공을 주도하는 20가지 원칙』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2014년에 출간된 책 『Aaker on Branding』은 이전까지 출간된 책에서 다룬 내용을 20가지 핵심 원칙으로 간결하게 요약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그동안 브랜드에 관한 책을 7권 냈는데 내용이 전문적이고 분량도 방대하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낸 책들을 한 권으로 압축한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의 독자들도 이 책을 먼저 읽고, 본인의 관심 분야에 따라 이전에 출간된 다른 책을 찾아서 자세히 읽어보길 추천한다. 1


트렌드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하고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브랜드 자산을 꾸준히 성장시키는 게 쉽지 않다. 20개 원칙 중에서 오늘날 기업에 가장 필요한 원칙이 있다면 무엇일까?

새로운 하위 카테고리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새로운 하위 카테고리(New Subcategory)를 갖는 것이다. 더 이상 기존 카테고리 내에서 ‘내 브랜드가 당신 브랜드보다 낫다’는 식의 마케팅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라이크 투 해브(Like to Have)’가 아닌 ‘머스트 해브(Must Have)’를 목표로 내 브랜드를 하위 카테고리 내에서 가장 선호되는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 ‘머스트 해브’는 새로운 혹은 이전보다 나은 소비자의 경험이나 의미 있는 브랜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시장점유율이 유의미하게 바뀌는 순간은 대규모 혁신을 통해 ‘머스트 해브’가 통했을 때뿐이다. 예컨대, 일본 내 라거 맥주의 제왕이었던 기린(Kirin)은 약 25년간 60%의 시장점유율을 누렸는데 1986년 아사히가 아사히 슈퍼 드라이를 도입하면서 점유율이 크게 줄었다. 기린 또한 뒤이어 드라이 맥주를 내놨지만 기존 라거 맥주로 쌓은 명성 때문에 아사히에 대항할 수 없었다. 하위 카테고리를 개발해 원조로 자리매김하면 그에 따른 보상이 어마어마하다. 어떤 업종의 카테고리를 보더라도 거의 예외 없이 ‘머스트 해브’가 적용될 때만 브랜드가 실질적인 성장을 이룬다.



‘머스트 해브’를 갖춘 브랜드를 새로 만들더라도 경쟁자들이 금방 모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위 카테고리를 구축한 다음에는 경쟁자들이 브랜드의 연관성(relevance)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거나 예방하는 장벽을 만들어야 한다. 즉, 혁신을 브랜딩해야 한다. 유니클로는 가벼우면서 열을 보존하는 섬유 기술을 개발하고, 겨울에 거대한 점퍼 대신 가볍게 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내의 ‘히트텍’을 만들었다. 반대로 여름용으로는 열기를 방출하는 섬유 기술을 활용해 ‘에어리즘’을 만들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알렸다. 히트텍이나 에어리즘을 살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유니클로밖에 없다. 경쟁자를 상대로 장벽을 만든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다른 기업이 모방할 수 없는 ‘머스트 해브’를 꾸준히 발전시키는 방법도 있다. 에어비앤비는 빈방의 매트리스 하나를 손님에게 내어주는 아이디어로 창업했지만 이후 기업가적인 호스트를 양성하고 호스트가 줄 수 있는 새로운 고객 경험을 진화시켜나갔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들에게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이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매년 콘퍼런스를 열었다. 호스트들은 이제 단순히 방을 내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마다 특화된 여행 경험을 제공한다. 창업할 때만 해도 에어비앤비에 이런 콘셉트는 없었다. 호스트들과 함께 브랜드 비전이 진화한 것이다. 에어비앤비와 경쟁하려는 기업은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만이 가진 ‘머스트 해브’를 넘어서야 하는 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브랜드 비전은 어떻게 수립해야 할까?

브랜드 비전은 고객과 직원, 파트너 등 브랜드와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가 인식하는 브랜드의 모습을 말한다. ‘브랜드가 무엇을 나타내길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브랜드 비전 하면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문구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비전은 하나의 생각이나 문구로 정의할 수 없다. 브랜드 비전을 세 단어로 요약하려는 노력은 별 쓸모가 없다. 오히려 불완전한 브랜드 비전이 탄생할 수 있다. 브랜드 비전은 10개 이상의 다차원적인 요소에 기반한다고 이해하는 게 낫다. 많은 기업이 브랜드 비전을 수립하면서 ‘상자를 채우는 식(fill in the box)’으로 특정 비즈니스 모델에 껴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브랜드를 둘러싼 맥락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그런 완벽한 박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을 가장 차별화(differentiate)시키는, 또 고객과 공명(resonate)할 수 있는, 마지막으로 현재 기업이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브랜드 요소를 찾아야 한다. 브랜드 비전의 요소는 단순히 기능적 편익일 필요도 없다.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개성(personality)을 담을 수도 있다. 예컨대, 버클리 하스비즈니스스쿨의 브랜드 비전 중 하나는 ‘거만하지 않은 자신감(confidence without attitude)’이다. 브랜드의 비전 요소는 윤리적일 수 있고, 공동체와 환경 문제 등을 고려한 고차원적 목적을 담을 수도 있다. 기업은 자산과 기술, 조직적 자원을 활용해 돈을 버는 것 이상의 고차원적인 목적을 추구한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이들과 공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브랜딩 전략을 짤 때 기업이 흔히 하는 질문은 ‘우리 상품 혹은 서비스가 고객에게 어떤 편익(benefit)을 줄 수 있을까’이다. 하지만 정작 고객은 기업이 무엇을 줄지에 관심이 없다. 고객이 진짜 관심이 있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고, 거기서 브랜드와 공동 관심(shared interest)을 찾아서 연결시켜야 한다. 세포라는 세포라 회원들을 위한 커뮤니티 ‘뷰티 인사이더(Beauty Insider)’를 통해 고객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진짜 스위트 스폿을 찾는다. 브랜드는 고객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요즘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 채널들의 위기가 심각하다. 한국에서는 이마트가 사상 첫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오프라인 유통 채널이 온라인과의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의 아마존, 중국의 알리바바, 일본의 라쿠텐 같은 거대한 온라인 쇼핑몰은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상품과 편리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쇼핑 경험을 바꿔놓았다.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가 무려 1억 명이 넘는다. 이제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원 클릭’ 주문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습관을 바꿔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아마존에 대항하는 데 성공한 대형 유통 채널의 사례로 월마트의 ‘픽업 서비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존의 단점은 주문한 다음 배달되기까지 물건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항해 월마트는 온라인으로 주문한 다음 배달을 기다릴 필요 없이 매장에서 바로 물건을 수령할 수 있는 픽업 서비스를 내놨다. 고객은 매장 안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 직원들이 알아서 물건을 차에 넣어준다. 월마트의 오프라인 매장들이 이제는 물건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식료품 부문의 픽업 서비스는 아마존이 따라가지 못한다. 이마트 같은 대형 유통 채널은 기존 영업점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배달하는 것뿐 아니라 매장에서도 ‘온라인으로 주문하라’고 말하고 바로 물건을 가져다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전문적인, 완전히 새로운 하위 카테고리를 만드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달러셰이브클럽(Dollar Shave Club)이란 회사는 매달 면도날을 새것으로 교체해주는 서비스로 아마존을 이겼다. 이들은 언더독을 자처하면서 익살스런 동영상으로 경쟁사를 비웃는다.


온라인상에 각종 정보가 범람하면서 기업 입장에서 브랜드 혹은 상품에 관해 더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 같다.

고객과의 연관성(Relevance)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다시 말해, 구매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기면 안 된다. 달러셰이브클럽에서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면도날 옵션은 일반(plain), 더 좋은 것(little better), 최고(the best) 등 3가지뿐이다. 여기서 파는 칫솔은 검은색과 흰색뿐이다. 이마트의 노브랜드 같은 브랜드도 모든 종류의 상품을 2∼3가지 버전으로 내놔 고객의 선택을 단순화했다. 이런 기업들은 고객을 위해 최고의 상품을 골라서 선택 범위를 좁혔음을 강조하면서 신뢰성(Credibility)과 진정성(Authenticity)을 전달한다. 반면 아마존은 수천 개의 면도기와 칫솔을 팔고 있다. 아마존은 너무 많은 종류의 상품을 파는데, 그런 면에서 아마존에 전문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나중에 사람들이 아마존에 가지 않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온라인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다음 오프라인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와비파커(Warby Parker)는 안경 업체 최초로 온라인을 통해 안경을 판매해 신뢰를 얻은 다음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데 성공한 흥미로운 케이스다. 현재 오프라인 매장이 수백 개에 달한다. 신뢰에 힘입어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업에서 마케터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마케팅최고책임자(CMO)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과거 마케터는 광고나 홍보 전술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근 20년 새 마케터가 최고위임원급인 ‘C레벨’의 일원에 포함되면서 전술이 아니라 전략을 다루기 시작했다. CMO는 사업 전략에 따라 브랜드 비전을 수립하고, 반대로 브랜딩을 통해 사업 전략을 현실화하는 역할도 한다. CMO가 주요한 의사결정 테이블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CMO는 특히 기업의 사일로(silo)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자리다. 제품별, 국가별 사업부 간 업무를 조정하고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상품이나 서비스 카테고리가 늘어나고, 사업부별로 마케팅 부서를 따로 두게 된다. 이때 CMO는 자연스럽게 사업부 간 업무를 조율하면서 공통의 브랜드를 만드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데이터를 통해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마케터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히 소셜미디어에 어떤 게시물을 올릴지 고민하는 데 그치지 말고, 검색 엔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상품을 어떻게 찾았으며,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파악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브랜딩의 핵심은 무엇일까?

더 이상 자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자세히 묘사하는 방식은 고객에게 기억되지도, 고객의 인식을 바꾸지도,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하지만 스토리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인식을 바꾸고, 또 영감을 줄 수 있다. 신간 『Creating Signature Stories』에서 스토리의 힘을 강조한 이유다. 기업에 브랜드 스토리를 들려 달라고 요청하면 브랜드가 줄 수 있는 편익을 나열한다. 시그너처 스토리는 그런 게 아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런 일 때문에 누가 울고 웃었는지를 얘기해주는 것이다. 이런 스토리는 직원, 고객, CEO, 상품 등과 관련해 언제 어디서나 발굴될 수 있다. 미국의 노스트롬백화점의 타이어 환불 스토리는 1970년대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한 남자가 노스트롬백화점에서 팔지도 않는 타이어를 가져다가 영수증도 없이 환불해달라고 했는데, 직원이 그 자리에서 바로 환불해줬다는 내용이다. 이 스토리의 핵심은 고객이 사지도 않은 타이어를 환불해 백화점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는 게 아니다. 노스트롬백화점은 일개 직원이 고객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환불해줄 수 있을 정도의 재량권을 갖고 서비스한다는 게 핵심이다. 무려 35년이 넘은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최근 어느 강의석상에서 물어봤더니 절반 이상이 이 이야기를 기억한다고 손을 들었다. 광고 한번 한 적이 없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게 바로 스토리의 마법이다.

‘시그너처 스토리’는 브랜드의 ‘머스트 해브’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화상 인터넷 전화 서비스 업체 스카이프(Skype)는 브랜드의 ‘머스트 해브’인 가시성(visibility)과 친밀한 관계(intimate relationship)를 두 소녀의 우정 이야기로 감동적으로 전했다. 뉴질랜드에 사는 페이지(Paige)와 인디애나에 사는 사라(Sarah)는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지만 스카이프를 통해 대화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나눴다. 두 소녀 모두 왼쪽 팔이 없다. 두 소녀는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고 상처를 공유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 소녀들의 스토리는 TV쇼로 방영돼 화제가 됐을 뿐 아니라 언론에 3000번 이상 언급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스토리 덕분에 스카이프는 경쟁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머스트 해브’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은 이런 시그너처 스토리가 중심이 돼야 한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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