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SR1.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제대로 하려면

‘한국산’아닌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지역성 살린 고유 콘텐츠에 초점을

모종린 | 277호 (2019년 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성공적인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설계를 위한 3요소
1. 지역성: 지역에서 생활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상품화해 지역 생태계 구축
2. 지속성: 단기적인 유행이나 트렌드가 아니라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라이프스타일에 집중, 더 많은 마니아와 더 열정적인 팬층을 확보
3. 내재성: 조직 전체가 기업이 표방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함으로써 해당 라이프스타일을 기업 문화로 내재화

최근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라이프스타일 숍,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 등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표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라이프스타일 산업이 한국에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라이프스타일을 수출하는 라이프스타일 강국이 될 수 있을까? 아직까진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거의 예외 없이 도쿄, 뉴욕, 노르딕, 킨포크 1 , 웰빙, 휘게 2 등 외국 라이프스타일을 수입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소비, 유통, 생산으로 구분한다면, 한국은 현재 라이프스타일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외국산을 수입하고 유통하는 단계에 와 있다. 한국이 라이프스타일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수입과 유통만으론 부족하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독자적으로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브랜드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수입에서 생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라이프스타일의 ‘국적’이다. 외국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나 이를 단순 판매하는 소매업체(retailer)와는 달리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개발해 국내외 시장에 출시하기를 원하는 생산자는 국적을 따져야 한다. 과연 한국이 한국 것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성공적인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선진국 라이프스타일 기업과 산업이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해 왔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현대 커피 문화를 개척한 스타벅스, 아웃도어와 스포츠 문화의 일상화를 선도하는 나이키, 디자인 기반 가구와 생활용품 산업을 주도하는 이케아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꿈꾸는 한국 기업에 교훈을 줄 수 있다.


선진국 라이프스타일 기업 사례

1. 시애틀과 스타벅스
전 세계적으로 소매유통 시장에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업종은 커피다. 그리고 커피가 도시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창업한 스타벅스다. 스타벅스 업종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에스프레소 커피 카페다. 에스프레소 커피, 에스프레소 커피로 만든 커피 음료, 커피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스타벅스 비즈니스의 본질이다.

스타벅스 혁신의 근원은 창업자의 도전정신이다. 우리가 혁신 모델로 인식하는 스타벅스 모델은 제2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가 개척했다. 원조 스타벅스는 1971년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오픈한 원두커피 판매점이다. 스타벅스의 원조 창업자들은 원두를 로스팅해 판매하면서 원두커피를 시음하게 하는 독특한 소비자 서비스를 선보였다.

뉴욕의 커피 기계 수입상이었던 하워드 슐츠는 1980년 시애틀의 작은 가게가 다량의 커피 기계를 주문하는 것이 궁금해 직접 시애틀 매장을 방문한다. 원두커피를 처음 마셔본 그는 원두커피가 커피 산업의 미래라고 판단해 스타벅스에 자원한다.

스타벅스 마케팅 담당자로 채용된 슐츠는 우연한 기회에 이탈리아를 방문, 현지의 에스프레소 커피 카페 문화를 체험한다. 이후 스타벅스 창업자들에게 에스프레소 커피 카페의 창업을 제안하지만 원두커피 가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었던 창업자들은 슐츠의 제안을 거부한다. 실망한 그는 회사에서 나와 독립적으로 ‘일 지오날레’라는 에스프레소 커피 카페를 창업한다.

그러던 중 슐츠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1987년 스타벅스 창업자들이 캘리포니아 버클리 소재 피츠 커피(Peets’ Coffee)를 인수하기 위해 스타벅스를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버클리로 돌아가는 창업자들로부터 스타벅스를 인수한 슐츠는 제2의 창업을 통해 오늘날의 스타벅스 모델을 탄생시킨다.



처음부터 집과 직장의 대안이 되는 제3의 공간 제공을 목표로 삼은 스타벅스는 현대 도시 문화를 주도하는 ‘공간 비즈니스’를 개척한 기업이다. 창업 후에도 지속적으로 공간 비즈니스를 혁신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초기에는 도시에서 일상을 향유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중요했다. 대안적 공간은 경쟁적인 문화가 강한 다른 하이테크 도시와 달리 여유와 삶의 질을 중시하는 시애틀에 어울리는 개념이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도시에서 이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탄생한 것이다.


스타벅스는 또한 도시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했다. 스타벅스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아침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들고 걸어서 출근하는 진보적이고 트렌디한 대도시 전문직의 일상이다. 이를 상품화하기 위해 스타벅스는 공정무역, 인권, 환경 등 진보적인 가치를 표방하고, 인테리어, 제과, 배경음악 등 모든 매장 요소를 대도시 전문직 취향에 맞게 구성한다.

스타벅스가 최근 주목하는 가치는 커뮤니티다.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의 고객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 문화재로 등록된 건축물에 입점하고, 지역 특색을 드러내는 인테리어로 매장을 디자인하며, 동네 행사 게시판을 설치한다. 많은 젊은이가 이미 스타벅스를 업무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스타벅스는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이 함께 일하고 작업하는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로의 진화를 꾀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스타벅스는 혁신을 시도한다. 미국에서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앱)은 구글이나 애플페이가 아닌 스타벅스 앱이다. 전체 결제의 40%가 앱을 통해 이뤄진다. 스타벅스 앱 사용자 수는 2000만 명을, 선불카드에 충전된 현금 보유량은 1조 원을 넘어섰다. 스타벅스 앱에 축적된 현금 자산이 미국의 보통 지방 은행을 능가할 수준으로 증가했다. 많은 전문가가 이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스타벅스가 막대한 금융 자산과 고객 기반을 활용해 새로운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 시점에서 스타벅스 모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초기에는 제3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커피를 매개로 한 커뮤니티 복합 문화공간으로 정의하는 것이 정확하다. 오늘날 커피가 커뮤니티 구축의 매개체로 등장한 배경에는 커피라는 기호식품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스타벅스가 개척한 비즈니스 모델의 공이 크다. 커뮤니티 복합 문화공간의 힘은 스타벅스 매장 입점이 주변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스타벅스 임팩트’로 입증됐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1997년에서 2014년 사이에 미국 내 일반 주택의 평균 지가 상승률이 65%였던 데 반해 스타벅스 주변 주택은 96%나 오르며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스타벅스 모델은 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스타벅스를 찾은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주변 가게를 방문하는 ‘스필오버(spillover)’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관광객들도 스타벅스 간판이 있느냐, 없느냐로 방문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질적 수준을 가늠한다. 이처럼 복합 문화공간의 위력은 많은 유동인구를 상권으로 끌어들이는 파워를 갖고 있다.

2. 포틀랜드와 나이키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스포츠용품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기업이 있다. 미국 포틀랜드에 본부를 둔 나이키다. 세계 160여 개국에 상품을 수출하는 나이키는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시장으로서 미국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스타벅스와 마찬가지로 나이키도 라이프스타일을 판다. 나이키 덕분에 스포츠는 우리의 일상이 됐다. 나이키는 그 유명한 슬로건 ‘Just do it!’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우리에게 생각만 하지 말고 즉시 행동할 것을 권유한다. 건강, 레크리에이션, 활동적인 삶, 단련된 몸 등이 우리가 나이키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나이키의 브랜드 파워와 사회적 영향력은 대단하다. ‘에어 조던 시리즈’가 출시될 때면 나이키 매장은 경비가 삼엄해진다. 신상품을 훔치려는 강도를 막고 신제품을 사기 위해 서로 몸싸움을 벌이는 소비자들의 폭행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이키 운동화는 초·중등학교 남학생의 패션과 유행을 주도하기도 한다. 그 또래의 청소년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증명하기 위해 나이키 운동화를 찾는다. 신상품이 출시되는 날이면 나이키 매장 앞은 수많은 학생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심지어 신제품을 사려고 결석하는 학생이 늘자 일부 학교는 신제품을 주말에만 판매하라고 회사에 요구하는 일도 일어났다. 학생들은 최고의 스타가 신는 나이키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도 그들과 같아진다고 믿는 듯하다.

나이키의 역사는 1964년 포틀랜드에서 시작됐다. 육상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오리건대에서 선수로 활동한 필 나이트(Phil Knight)는 스탠퍼드경영대학원 재학 당시 카메라 시장과 마찬가지로 운동화 시장에서도 일본 기업이 독일 기업의 영역을 장악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논문을 쓴다. 그는 졸업 후 실제로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의 러닝화를 수입해 판매하는 블루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를 창업했고 1972년 자체 운동화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전환하면서 회사 이름을 나이키로 개명한다.

나이키는 초창기부터 유명 선수 마케팅으로 유명했다. 조깅 붐이 일었던 1970년대의 유명 육상 선수는 모두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 이후에도 1980년대 마이클 조던, 1990년대 타이거 우즈, 2000년대 마리아 샤라포바 등 각 분야의 최고 선수를 광고 모델로 내세워 새로운 운동화를 개발하고 스포츠용품 시장을 개척했다. 나이키는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등에 업고 최고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탄탄히 구축해 나갔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활기찬 아웃도어 활동은 포틀랜드 라이프스타일의 키워드다. ‘미국에서 가장 푸른 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도시 전체에 산책로와 조깅 코스가 잘 꾸며져 있다. 포틀랜드의 도보 지수(Walk Score)는 70점대에 육박해 미국에서 걷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자전거를 즐기기에도 최적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포틀랜드는 나이키가 강조하는 ‘스포츠는 곧 일상’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는 도시다. 따라서 나이키 창업자 나이트의 고향이기도 한 포틀랜드는 나이키 기업 문화와 전통을 꽃피우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이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은 한마디로 ‘건강하고 책임 있는 삶’으로 요약된다. 책임 있는 삶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이상적인 포틀랜드 사람은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적당히 섭취한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사회의 건강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사회적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포틀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을 보호하는 일에도 철저하다. 재활용 비율이 63%가 넘는 오리건은 미국에서 재활용을 가장 많이 하는 주다. 포틀랜드 사람은 자연을 즐기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인권 등 기타 사회문제에도 적극 참여한다.

출신 도시의 진보성에 부응해 나이키도 환경, 인권, 자선사업 등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트레이시 카바쇼의 저서 『열정으로 시작해 꿈이 된 기업 나이키 이야기』에는 나이키 CEO인 마크 파커(Mark Parker)의 포부가 소개돼 있다. 파커는 나이키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친환경 성장을 추구하는 세계적 흐름의 선두에 서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나이키 사회 공헌 활동의 대표적인 예가 ‘컨시더드 디자인(Considered Design)’이다. 컨시더드 디자인이란 재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의 비중을 높이고 불필요한 원료 및 유기화합물 등을 감소하거나 제거하는 공법이다. 마크 파커는 나이키의 스포츠용품뿐만 아니라 시설 관리, 개보수, 건축 설계에도 컨시더드 디자인을 적용해 지속가능성 원칙을 살린 성장과 혁신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틀랜드와 나이키는 이처럼 문화와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라 할 수 있다. 포틀랜드는 스포츠용품 소비자, 창조 인재로 나이키의 산업 생태계를 지원하고, 나이키는 육상, 아웃도어, 환경, 지역 인재 등 포틀랜드 자원을 연결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개척한다. 나이키 창업자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을 읽으면 오리건과 포틀랜드의 정체성이 나이키에 얼마나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오리건대의 전설적인 육상부 코치 빌 보워먼(Bill Bowerman)이 동업자로 참여하는 등 나이키의 창업 멤버 대부분은 육상선수 출신이었다. 나이트의 표현대로 나이키는 오리건의 남자들이 세운 회사다.



3. 스몰란드와 이케아
이케아 광명점에는 ‘낯선’ 포스터 하나가 있다. 돌벽과 벌판, 숲을 배경으로 ‘스몰란드,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이 포스터를 보면 자연스레 스몰란드가 어딘지 궁금해진다. 이 매장이 운영하는 어린이 놀이방 ‘스몰란드’를 기억하는 소비자는 이곳을 어린이가 노는 ‘작은 장소’쯤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포스터의 스몰란드는 스웨덴 남부에 위치한 인구 72만 명의 작은 지방, 1943년 잉바르 캄프라드가 이케아를 창업한 바로 그곳이다.

먼 나라 한국의 매장에 전시한 포스터는 고향에 대한 이케아의 애정을 보여준다. 아니, 애정이라는 말은 기업과 지역의 관계를 너무 단순화하는 것일지 모른다. 창업자 캄프라드는 공식적으로 “암석으로 뒤덮인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정직하고 절약하며 서로 힘을 모으는 스몰란드 사람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한다. 스몰란드는 그에게 고향 이상의 존재이며 그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홍보하는 핵심 자산이다.

이케아의 기업 역사와 경영 방식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지역 정체성이 왜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케아는 창업의 지향점 자체가 지역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스몰란드의 평범한 농가는 기능성이 뛰어나고 저렴한 가구를 원했고, 이케아는 그런 가구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출발했다. 이런 창업 철학을 유지하는 기업이 많은 사람에게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서민을 위한 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배달 판매, 카탈로그 배포, 조립식 가구, 매장 위치와 구조 등 전설적인 마케팅 방식 역시 출신 지역의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인구밀도가 낮은 농업 지역인 스몰란드에서 사업을 시작한 캄프라드는 지역 환경을 고려해 카탈로그를 제작, 주문을 받고 배달하는 마케팅 방식을 선택했다. 차로 운반하기 쉬운 조립식 가구(플랫팩)를 개발하고,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도록 매장 내 식당을 연 것도 뚜렷한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지역의 특성상 자동차를 타고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이 많은 데서 착안했다.

지역 문화에 기반한 창업 모델과 정신을 고수하는 이케아의 ‘뿌리 경영’은 상품 개발과 마케팅 방식뿐만 아니라 기업 문화, 기업 구조, 인재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일관되게 찾을 수 있다. 새로운 건물을 준공할 때 화려한 기념비 대신 돌담을 쌓고 팻말을 올려놓는 것이 뿌리 경영의 상징이다. 스몰란드 농부가 바람을 막기 위해 들판에 쌓는 돌담(광명 매장 포스터 속의 그 돌담)을 재연하는 것이다.

기업 구조도 고유의 뿌리 경영을 반영한다.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이케아는 현재 세계 곳곳에 매장과 계열사를 두고 역외 지주회사도 활용하지만 실질적인 본사는 캄프라드가 매일 출근하던 스몰란드 본사다. 가구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인 상품개발을 담당하는 스몰란드 본사가 매년 세계 모든 매장에서 판매하는 상품 라인업을 결정한다.

이케아는 또한 뿌리 정신을 적극적으로 교육한다. 직원들은 본사를 방문해 연수를 받고 내부 홍보를 통해 스몰란드의 의미를 구체적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지역 문화를 승계하고자 하는 의지는 캄프라드의 인력 활용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기업 핵심 인력들은 스몰란드 출신이 많고, 1980년대까지는 회사 경영진 대부분이 이 지역 출신이었다. 지역 문화 정체성을 공유하는 인재들의 협력 정신이 저비용 경영 구조를 일군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이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본질: 지역성

스타벅스, 나이키, 이케아 사례가 강조하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경쟁력은 지역성이다. 최근 주목받는 라이프스타일도 대부분 특정 국가나 지역이 배출한 문화다. 한 지역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상품화하는 건 어렵다. 즉 ▲힙스터, 빈티지, 카운터 컬처, 독립문화(인디)는 뉴욕과 캘리포니아 ▲웰빙, 비건, 그린 라이프스타일은 캘리포니아 ▲휘게, 라곰 3 라이프스타일은 북유럽 ▲미니멀, 심플 라이프스타일은 캘리포니아와 일본 등 각각의 라이프스타일이 시작되고 산업화된 지역/국가가 존재한다. 한국과 중국 소비자가 열광하는 미니멀리즘 브랜드 무인양품은 하라 켄야가 ‘섬세, 정중, 치밀, 간결’로 표현한 일본인의 가치관을 구현한 디자인을 판다. 이케아가 추구하는 실용성과 기능성은 이케아와 창업자가 성장한 스웨덴 스몰란드 지역의 문화다. 한국에서 라이프스타일 열풍을 일으킨 일본 기업 츠타야도 업의 본질과 올바른 삶에 대한 고민, 소비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 일본 고유의 상인과 장인 문화를 바탕으로 책과 콘텐츠를 통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재해석하는 기업이다.

이처럼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기업의 공통점은 지역 문화의 성공적인 상품화에 있다. 출신 지역에서 시장 가치가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발굴하고 창업가의 경영 철학으로 흡수해 비즈니스 모델을 디자인하는 일, 지역 문화, 개인 가치, 시장 수요가 교차하는 영역에서 혁신적인 소재와 모델을 찾는 일, 지역 문화를 창업 철학과 시장 가치로 재해석하는 일, 이것이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본질이다.

라이프스타일 생산 과정에서 지역성이 중요한 이유는 ‘진정성’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 소비자가 체험하고 수용하길 원하는 ‘진짜’ 라이프스타일이다. 라이프스타일 전파의 일반적인 유형도 특정 지역에서 생활화, 산업화가 된 라이프스타일이 해외나 다른 지역으로 수출되는 것이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에서 먼저 상품화된 라이프스타일이 캘리포니아 라이프스타일로 다른 지역에 수출된다. 역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하고 활동하지 않는 기업이 ‘캘리포니아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데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역성은 또한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지역문화를 공유하는 소비자, 생산자, 전문 인력으로 형성된 지역 생태계가 생산하는 라이프스타일 상품은 다른 지역이 쉽게 모방할 수 없다. 타 지역에서 이를 소비할 수는 있어도 생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애틀과 포틀랜드는 역설적으로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지역성이 왜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역 기반이 약한 라이프스타일을 산업화하려면 시애틀의 커피 산업, 포틀랜드의 아웃도어 산업 수준의 거대한 생태계를 건설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 문화에 기반을 둔 라이프스타일 경영을 통해 세계적인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성장한 선진국 기업의 사례가 기업과 도시에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한국 기업들은 지금 기술개발, 인재양성, 해외 진출, 인문경영 등 차별적 경쟁력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런 기업에 지역 문화를 통해 기업 이념을 구체화하고 비즈니스 모델의 일체성을 고수하는 라이프스타일 경영은 새로운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한다. 한국 기업도 이제 뿌리 경영을 통해 다른 기업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제품과 문화를 창출하고, 이를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새로운 무기로 활용할 때가 됐다.

특히 스웨덴의 이케아는 한국 도시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농업 지역인 스몰란드가 글로벌 대기업을 키울 수 있다면 산업 인프라나 중심 지역과의 연계 등 그보다 우수한 환경을 가진 한국 도시는 더 많은 지역 산업을 개척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한국 도시에 가장 필요한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선명한 지역 정체성일 것이다. 스몰란드의 성공이 보여주듯이 정체성이 뚜렷한 지역 도시만이 뿌리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과 기업인을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DBR mini box: 아모레퍼시픽 ‘이니스프리’와 제주

한국에서도 지역 자원과 문화를 활용한 라이프스타일 기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제주 마케팅’으로 세계적인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를 개발한 아모레퍼시픽이다.

비록 최근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이니스프리는 중국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화장품으로 자리 잡은 브랜드다. 이니스프리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류다. 중국 소비자는 한류 스타의 외모를 닮고 그들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고 싶어 한다. 한류 열풍 속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화장품에 호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류만으로는 이 기업의 성공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한류 열풍을 이용해 해외에 진출하는 수많은 기업 가운데 이 회사가 독보적인 수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어떻게 다른 기업보다 효과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감을 ‘상품’에 대한 호감으로 전환했는가? 그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한국 대기업 가운데 예외적으로 자신이 한국 기업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는 점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샘이 만나 강을 이루고 다시 바다를 이루어내듯이, 우리는 아시아의 깊고 다양한 지혜를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Asian Beauty Creator)’로서 소명을 수행하고 있다”며 아시아 지역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여기서 ‘아시안 뷰티’는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화장품 재료를 한의학에서 찾고 한방 소재를 성공적으로 상품화함으로써 아시안 뷰티를 몸소 정의한다.

지역 브랜딩은 아시아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제주로 옮겨지고 있다. 대표적인 녹차 브랜드 오설록을 제주 티하우스로 마케팅할 뿐 아니라 제주를 모티브로 한 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매장에 들어서면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볼 수 있다.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는 청정섬 제주를 느끼고 경험하는 도심 속의 힐링 공간입니다. 제주에서 얻은 좋은 재료로 만든 화장품과 건강한 식음료, 일상 속에서 자연을 쉽고 가깝게 경험하는 가드닝(gardening) 등 오직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제주를 향장, 건강한 음식, 가드닝이라는 키워드로 정의하고 적극적으로 브랜드화하는 것이다.

제주 마케팅은 한국 상황에서 매우 파격적인 시도다. 한국의 문화 중심지는 단연 서울로, 한국인은 오랫동안 지역을 향수의 대상으로 생각했을 뿐 살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런 편견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제주를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삶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재설정했다.

지역 브랜드 전략은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기업’이라는 아모레퍼시픽의 이념과도 상통한다. 아름다움을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기업이기에 지역 문화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사고가 가능하다. 이런 기업 철학은 생산 현장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오산에 위치한 뷰티 사업장은 단지 내에 미술관을 운영하고 예술적인 건축물과 조경, 미술 작품으로 공장을 아름답게 디자인했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경영학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지역 문화, 시장 수요, 창업자 가치 기반으로 디자인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성패도 지역성, 지속성, 내재성 등 기본 경쟁력 요소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강화하는 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째, 지역성, 즉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고 지역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로컬 소비를 통해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다른 지역에 수출할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육성할 수 있다. 처음부터 지역에서 생활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해 상품화하는 것이 지역 생태계를 상대적으로 쉽게 구축하는 방법이다.

둘째, 라이프스타일의 지속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관에 기반한 라이프스타일은 단기적인 유행이나 트렌드와는 다른 현상이다. 『물욕 없는 세계』의 저자 스가쓰케 마사노부는 “패션은 그 경향이 현저해 강의 흐름처럼 흘러가는 것과 바닥에 침전해서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것이 있다”라고 설명함으로써 유행과 라이프스타일을 구분한다.

지속성은 지역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라이프스타일이 그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시장에서 장기간 수요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창업 후에는 소비자와 함께 호흡하고 동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많은 마니아, 더 열정적인 팬층을 확보함으로써 라이프스타일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라이프스타일을 기업 문화로 내재화하는 일이다. 창업자와 더불어 조직 전체가 기업이 표방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해야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취향을 적극 표출하고 직접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소비의 질적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피상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만족하지 못한다. 생산방식이나 기업 내 조직문화가 물질주의 시대적 방식에 머물러 있으면서 라이프스타일을 새로운 마케팅 도구로만 인식하는 기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이 중에서 한국 기업에 가장 생소한 일이 지역성 구현일 것이다. 지역성과 결합한 고유의 콘텐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지역에서 충성고객층을 구축하는 것이 라이프스타일 경영의 핵심 과제다. 지역 문화와 가치가 일상과 지역 산업에 배어 있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지역성이 많이 희석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역 자원을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는 지역 자원이 많이 남아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에서 필요로 하는 로컬 콘텐츠는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가? 문화산업에서 콘텐츠란 ‘부호, 문자, 도형, 색채, 음성, 음향, 이미지, 영상 등의 자료 또는 정보’를 말한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문화창조산업뿐만 아니라 리테일 산업에서도 활동하기 때문에 콘텐츠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리테일 산업에서 콘텐츠는 브랜드, 제품, 공간, 커뮤니티 공공재 등 유·무형 혼합 콘텐츠를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생산물(output)로 정의한다. 콘텐츠를 이렇게 정의하면 로컬 콘텐츠의 의미는 명확해진다. 로컬 콘텐츠는 지역 자원에서 추출된 콘텐츠다. 환경, 역사, 문화, 공동체, 지리, 장소 등의 지역 자원이 로컬 콘텐츠 생산 과정에서 투입재(input)로 들어간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입재는 지역의 문화와 예술이다. 예컨대, 지역 역사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 건축물은 이를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기업에 즉각적인 공간과 브랜드 콘텐츠를 제공한다. 지역 성격을 띤 투입재 자원은 고전적인 의미의 문화예술 자원, 즉 전문 예술가가 창조하는 문화예술 자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문화의 영역을 생활문화로 확대하면 투입재 자원은 무궁무진해진다. 스타벅스와 나이키가 활용한 시애틀과 포틀랜드의 콘텐츠 소재는 각각 커피와 아웃도어 문화였다.

라이프스타일 기업의 다수가 활동하는 리테일 산업이 생산하는 콘텐츠는 브랜드, 제품, 공간, 커뮤니티 공공재다. 이 중 제품과 공간은 전형적인 무형 콘텐츠가 아닌 유·무형 혼합 콘텐츠로 분류할 수 있다. 브랜드, 제품, 공간, 커뮤니티 공공재를 기획하는 능력이 바로 라이프스타일 기업에 필요한 콘텐츠 개발 능력이다.


한국 라이프스타일 산업은 지역 문화에서 시작해야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사회와 지역 전체에 탈물질주의 정신을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1970년대 이후 서구 문화는 물질적 성공, 경쟁, 사회적 지위를 강조하는 물질주의에서 개성, 다양성, 삶의 질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로 전환했다. 탈물질주의 경제는 가치 지향적 소비와 생산 활동을 중시한다. 소비를 통한 질 높은 삶/문화적 체험/정체성/사회 정의의 추구, 친환경 상품과 유기농 먹거리의 대중화, 공유경제의 일상화, 골목 상권의 부상 같은 움직임은 모두 탈물질주의의 확산을 반영한다. 한국이 선진국 수준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원한다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자기표현, 삶의 질, 정체성 등 그에 필요한 탈물질주의 가치의 수용은 불가피하다.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한국 정부의 과제는 명확하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 문화와 가치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노력을 지원하는 일이다. 해외에서 유입된 라이프스타일을 무조건 배격할 필요는 없다. 외국 라이프스타일도 한국 문화와 융합해 독창적인 라이프스타일 상품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의 발굴과 재해석에 필요한 한국적 문화 의식과 정체성은 무엇일까? 그 누구도 시원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 같은 대기업이 한국 라이프스타일 기업을 자처하고 산업계가 한국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도 라이프스타일 테이커(taker)에서 메이커(maker)가 될 수 있다.


필자소개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jrmo@yonsei.ac.kr
필자는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조교수를 지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경제발전론과 세계화다. 2008년 이후 정책연구를 통해 한국 발전 논의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학 격차, 외국인 투자, 영어 교육, 이민, 지역 발전을 주제로 한국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 제고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작은 도시 큰 기업(2014)』 『라이프스타일 도시(2016)』 『골목길 자본론(2017)』 등이 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