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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표준의 관점에서 본 5G 생태계

표준은 정해졌다. 이제부턴 속도다
비즈니스 생태계 조성에 올인하라

이희진 | 275호 (2019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5G 시대에서는 어떤 때보다 ‘비즈니스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5G 표준 제정과 관련이 있다. 이전 세대 통신 기술에서 각 국가와 기업들이 표준 경쟁을 벌였던 것과는 달리 협업해 하나의 표준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싸움은 어떤 기술을 채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표준 기술을 누가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업들이 다른 기업과 협력하고 연합하기 위한 전략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5G 시대에서 새로이 나타나는 현상인 이종 산업 간의 ‘표준 충돌’도 고려해야 한다.



들어가기

“국가 차원의 5세대(G) 전략을 추진해 세계 최고 5G 생태계를 조성하겠다.”
“5G 경쟁에서 미국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과감한 조치를 취하겠다.”
“삼류 기업은 제품을 만들고, 이류 기업은 기술을 개발하고, 일류 기업은 표준을 제정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각각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G 이동통신 기술 상용화를 맞이해 한 발언이다. 5G 발전을 위한 국가적 결기를 보여준다. 세 번째는 중국의 산업 정책 입안자와 기업가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이다. 저임금에 기반한 세계의 공장이라는 이미지를 넘어서서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 개발에 주력해 경기의 규칙(rule of the game)을 만드는 역할로 나아가겠다는 중국의 비전을 보여준다.

주요 국가들이 향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분야로 5G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4월 5G 무선통신 서비스 상용화가 시작되면서 5G의 발전 방향에 관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표준 및 표준화라는 관점에서 기업의 대응 전략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5G 표준

표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관점, 정의하는 목적 등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국제 표준화 기구들의 표준 정의를 소개한다. 세계 양대 표준화 기구인 국제표준화기구(ISO,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International Electrotechnical Commission)가 공동으로 작성한 가이드(ISO/IEC Guide 2, 2004)에 따르면 표준은 ‘합의에 의해 제정되고, 인정된 기관에 의해 승인됐으며, 주어진 범위 내에서 최적 수준의 질서 확립을 목적으로 공통적이고 반복적인 사용을 위해 규칙, 지침 또는 특성을 제공하는 문서’(한국표준협회, 2008, pp. 19-20)로 정의된다.

얼핏 보면 이 정의가 5G 무선통신표준과 무슨 상관이 있나 의아할 수도 있다. 현재 5G 표준은 국제 표준 기술 단체인 3GPP(3rd Generation Partnership Project) 1 에서 정하고 있다. 5G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통신과 서비스가 갖춰야 할 성능과 특성에 대해서 수년간 논의를 거쳐 하나씩 합의가 이뤄져 가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은 오는 2020년 5G 표준의 공식 명칭인 ‘IMT-2020’을 공식 승인할 예정이다. 만일 각각의 통신사업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고 속도의 통신 방식을 고안해서 사용하고자 한다면 소통을 위한 ‘질서 확립’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5G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1㎢당 100만 개의 기기를 연결할 수 있는 초연결성이다. 이 기기들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하나의 문법이 사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복잡성, 혼란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쉬운 예로, 우리나라의 교통카드는 전국 어디를 가도 사용이 가능하다. 즉, 호환(compatible)이 된다. 이렇게 도시 간 교통카드가 호환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이것들은 모두 표준화 과정을 거쳐 하나의 규범, 기술, 크기, 통신 프로토콜 등을 하나로 통일한 결과다. 표준이라는 질서를 확립해 전례 없는 편리함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산업에서의 표준은 정보통신기기 사이의 소통(communication)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명세의 집합이다. 산업 차원에서 보면 이 기술적 명세는 통신사업자, 통신기기 제조업체, 서비스 제공자, 콘텐츠 개발자, 그리고 사용자 사이의 활동과 소통을 효과적으로 조절해 주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DBR mini box I: 중국의 5G 기술 발전현황
중국은 이전의 독자 개발 전략을 버리고 5G 국제 표준에 참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런 방향 전환은 화웨이 같은 중국 통신장비업체들이 ‘5G로부터’ 가치를 만들어내는 전략을 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막대한 크기의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석권한다는 단순 논리에서 향상된 기술력과 지적재산권을 바탕으로 거기서 수익을 내는 전략으로 옮겨 간 것으로 풀이된다. 한 조사(IPLYTICS, 2019)에 의하면 5G 관련 표준 특허(SEP, standard essential patents)를 화웨이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1554개), ZTE 등을 포함한 중국 기업들이 3분의 1 이상을 점하고 있다.(그림 2) 표준 특허는 5G 표준을 사용해 5G 기술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특허이고 따라서 5G 시장이 자율자동차, 스마트 에너지, 스마트 팩토리 등으로 확장될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또한 5G 표준 개발에 기여하는 제출 문건에 있어서도 중국이 압도적인데 화웨이가 1만844건을 제출한 것을 필두로 중국 기업들의 기여도가 40%에 육박한다. (그림 3)



5G 표준과 생태계 형성

이번 5G 표준이 이전 세대 표준과 다른 점은 기술적 경쟁 상대 없이 하나의 표준이 ITU의 사양을 맞추기 위해 3GPP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세계의 대표적인 통신사업자, 통신장비 제조업체, 칩 제조사, 단말기 회사 등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의 표준을 제정하고 있다. 자국 고유의 기술에 바탕을 둔 독자 노선을 줄곧 고집하던 중국도 WAPI 2 와 TD-SCDMA 등의 국제표준화에서 별 재미를 못 보자 공동 개발이라는 큰 장에 합류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DBR mini box ‘중국의 5G 기술 발전 현황’ 참고) 이렇게 5G에서 하나의 표준만이 만들어지게 됨에 따라 불필요한 경쟁이 줄어들고 시장을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확대할 수 있게 됐다.



5G와 관련한 글들을 보면 예외 없이 생태계를 강조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5G 표준 제정에서는 경쟁하는 기술 표준이 없이 세계적으로 하나의 표준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싸움은 어떤 기술을 채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표준 기술을 가지고 누가 잘 활용하느냐,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그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작동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즉, 관련 기업들 간의 연합, 협력과 경쟁의 양상을 고려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더욱이 5G 이동통신 기술은 IoT, AI,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4차 산업혁명의 융·복합 산업을 본격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다. 단지 데이터를 빨리 주고받는 것(초광대역 서비스, Enhanced Mobile Broadband)이 아니라 고신뢰/초저지연(Ultra Reliable & Low Latency), 초연결성(Massive Machine-Type Communications)을 지닌 통신방식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을 둘러싼 다양한 참여자를 어떻게 끌어들이고, 어떻게 수익을 창출해서 어떻게 나눌 것인가 등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디지털 기술 및 디지털 비즈니스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3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산업은 [그림 3]과 같이 네 개의 층화 구조(layered architecture)로 개념화할 수 있다(Yoo et al., 2010). 5G와 같은 통신 인프라가 개발되고 구축되면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일반 유저가 사용하는 5G 스마트폰 등을 포함하는 기기(디바이스) 층이 만들어진다. 네트워크 층도 마찬가지지만 디바이스 층에는 스마트폰과 같은 물리적 측면과 iOS, 안드로이드 등의 오퍼레이팅 시스템과 같은 논리적 측면이 있다. 논리적 구조는 물리적 기계를 통제하고 유지하며, 물리적 기계를 다른 층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생태계 형성에 있어서 논리적 구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위에 이 디바이스를 사용해 응용 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 층이 형성된다.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저장하고, 소비하면서 텍스트, 소리, 이미지, 비디오와 같은 데이터를 다루는 콘텐츠 층이 형성된다. 이 네 층에 속하는 참가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상호작용하고, 협력하면서 비즈니스 생태계가 작동한다.



한편 디지털 산업의 층화 구조는 점차 모듈화와 결합돼 가고 있다(Yoo et al., 2010). 모듈 구조란 제품이 느슨하게 연결된 구성요소들로 분해되는 구조를 말하고, 각 구성요소는 하나의 기능과 일대일 대칭을 이룬다. 이 구성요소들을 연결하는 것이 표준화된 인터페이스다.

모듈 구조는 쉽게 말해 레고를 생각하면 된다. 레고의 지붕 모양 조각은 지붕의 기능을 수행하면서(일대일 대칭) 이런저런 형태와 색깔의 집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지어진 집들을 하나의 구성요소로 삼아 다양한 마을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이유는 규격화된 꼭지(Lego standard stud)가 있기 때문이다. 이 규격화된 꼭지가 층과 층을 연결하는 ‘표준’이다.

층화 모듈 구조(layered modular architecture)에서는 네트워크-디바이스-서비스-콘텐츠로 이어지는 제품 및 서비스 개발이 좀 더 쉬워질 수 있다. 모듈이 아닌 통합 구조(integral structure)에서는 기능적 요소와 물리적 요소가 복잡하고 중첩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제품의 한 부분만 변경하려고 해도 전체 제품에 미치는 영향을 총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반면 층화 모듈 구조에서는 신제품의 디자인 결정에서 다른 층을 최소한으로만 고려해도 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프로토콜 또는 표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표준을 활용하게 되면 신제품을 다른 층의 구성요소들과 결합해 새로운 조합의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핵심 모듈을 지닌 VR 업체는 게임 제작자와 함께 게임 서비스를 구상할 수 있고, 병원과 함께 원격 진료를 위한 서비스도 개발할 수 있다. 또 제조업체와 협업해서 스마트 팩토리를 관리하고 제어할 수 있는 서비스도 실행해 볼 수 있다. 핵심 기술만 가지고 있다면 다양한 서비스와 붙이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듯 모듈 층화 구조가 다종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낳을 수 있는 것(generativity)은 층 사이가 느슨하게 연결돼 있어서 혁신이 어느 층에서도 독립적으로 나올 수 있고, 이 혁신이 다른 층으로 연쇄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층화 모듈 구조는 새로운 산업 조직 논리를 가져온다. 여기에서는 주도 기업이 A부터 Z까지 모든 걸 다하는 수직적 통합이 아니다. 다른 층에 속하는 참가자들이 놀 수 있는 장(場), 즉 플랫폼을 만들고 그 마당에 연결돼 있으면 된다. 또 이 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용해야만 하는 표준화된 인터페이스를 관리하면 된다. 이 플랫폼을 통해 다른 층의 다면 시장을 만족시키면서 활발한 생태계를 건설할 수 있다.

이 생태계를 형성하고 이끄는 선도 기업은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길목 잡기’ ‘세 불리기’ ‘오지랖 넓히기’ 등 세 가지 방안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이는 5G 비즈니스 생태계 형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첫째, 길목 잡기다. 길목 잡기는 생태계 참가자들의 상호 작용을 촉진하고 주도하기 위해서 표준화된 인터페이스와 개발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다(Willianson and De Myer, 2012, 39). 이동통신 사업자, IT 기업 등 선도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 솔루션과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플랫폼/생태계 참가자들을 불러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네트워크 인터페이스 표준화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같은 수단이 이용된다. 표준 인터페이스와 프로토콜은 거래 비용을 줄이고,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 유연성을 증가시킨다. 이를 통해 다른 층에 속한 다종다양한 보완재 생산자들이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다. 여러 층의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에 연결하는 API를 제공한 ‘구글맵’이 대표적인 예다. 구글맵은 단순히 하나의 지도로서 기능하지 않았다. 다양한 기기, 이종 산업의 앱, 서비스에 활용 가능했다. 이를 통해 콘텐츠, 서비스, 기기 등 여러 층에 속한 참여자를 자연스럽게 ‘구글 제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둘째, 세 불리기다. ‘길목 잡기’의 방점이 내가 제공하는 수단을 사용하게 하는 데 있다면 ‘세 불리기’는 보완재 생산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생태계 확장을 강조한다. 생태계가 성장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다종다양한 보완재가 시장에 나와야 하고 위에서 제공한 인터페이스와 API를 토대로 세를 불려야 한다. 오자플 등(Ozapl et al.(2018)에 의하면 보완재 제조업체들은 새로운 세대 기술이 나오면 그것을 사용한 보완재를 재빨리 만들어내야 하나 신세대 기술을 학습하고, 그것을 활용해 신제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는 현재 5G 초기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미 초기 사용자로부터 나오는 불만이 5G를 제대로 느낄 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5G 초기 소비자 시장을 열 응용 프로그램은 VR과 AR과 같은 실감형 콘텐츠와 관련한 서비스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관련 개발자들이 성숙하기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세를 불려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선도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선도 기업들은 신세대 플랫폼 기술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해 주고 플랫폼 고유의 개발 도구를 공유함으로써 보완재 기업들의 어려움을 덜어 줘야 한다. 이로써 플랫폼 참여자를 늘려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다.

DBR mini box II: 표준과 표준 경쟁

표준이 5G처럼 항상 공적 기구에 의해 공식적 절차 따라서만 정해지지는 않는다. 이런 표준을 공적 표준이라고 한다면 시장에서 정해지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표준)이 있다. 이 시장 표준이 기업에는 더욱 강력한 자산, 무기가 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 오퍼레이팅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자신만의 방식이 세계적 차원에서 채택이 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고전적인 이야기가 된 소니의 베타맥스와 마쓰시타의 VHS 사이의 비디오 포맷 경쟁, 블루레이와 HD-DVD의 경쟁에서 보듯이 이 싸움은 종종 ‘all-or-nothing’의 결과로 끝나고 기업에는 너무나 큰 위험 부담을 안겨준다. 패배한 기업에는 수년 동안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개발한 신기술이 쓰레기통으로 가야 하는 참혹한 결과를 안겨주기 때문에 이 경쟁은 ‘표준 전쟁(standards war)’이라고도 불린다. 기업들은 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컨소시엄 등을 결성해서 공동으로 표준을 개발하는 쪽에 힘을 기울인다. 그래서 표준의 제정 또는 표준화에서는 ‘협력’ ‘연합’ (alliance)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공적 표준화 기구를 통해서도 이런 협력이 이뤄지지만 컨소시엄을 통한 방법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협력과 연합을 통해서 표준이 만들어진다고는 하지만 한 기술 분야에 하나의 컨소시엄만이 존재하거나 하나의 표준만이 제안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세대 이동통신에는 항상 경쟁하는 두세 개의 다른 표준이 제안돼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2G에는 유럽 중심의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과 미국 퀄컴의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가 맞섰다. 우리나라가 안정적인 GSM이 아니라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해서 퀄컴과 손을 잡은 전략적 선택이 이후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 발전의 계기가 된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3G에서는 여기에 중국까지 독자 표준인 TD-SCDMA(Time-Division Synchronus CDMA)를 가지고 나왔다. 4G에서는 3GPP의 LTE(Long-Term Evolution) 표준이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이때는 우리나라의 와이브로(WiBro, Wireless Broadband)를 내세웠지만 국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실한 결과를 낳았다. 이렇듯 표준 경쟁의 또 다른 문제점은 수용자들이 어느 것이 주류로 되나 눈치를 보느라 시장 확대가 빠르게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오지랖 넓히기다. 5G 시대에는 비로소 4차 산업혁명의 융·복합 산업을 본격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갖춰진다. 5G의 잠재력은 산업 간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 5G 잠재력의 실현은 B2B(기업 간 거래)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것이 업계와 학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5G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융·복합 산업에서도 생태계 형성이 필요한데 생태계는 일개 기업의 역량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김지환 외, 2018). 5G의 직접 응용 산업 분야인 커넥티드카, 스마트 팩토리 등에서 글로벌 차원의 협력체가 만들어지는 이유다.

3GPP는 커넥티드카, 산업용 IoT 등 5G 기반 융·복합 서비스별 요구사항을 반영해 타 산업과의 융합을 고려한 표준화를 2019년 12월 완성할 예정이다. 이와는 별개로 커넥티드카 분야에서는 5GAA(5G Automotive Association), 스마트 팩토리 분야에서는 5G-ACIA(5G Alliance for Connected Industries and Automation)가 각 분야에서 필요한 세부적인 표준화를 진행하고 있다. 5GAA는 독일 자동차 업체와 글로벌 통신장비 업계를 중심으로 커텍티드카의 기술 표준화 및 비즈니스 모델 수립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5G-ACIA는 5G 기술을 제조업 공장 자동화에 순조롭게 활용하려면 5G 표준에 산업계 요구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하에 만들어졌다. 이들 글로벌 협의체는 각 분야에서 표준을 주도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해 생태계를 형성할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국내 기업들의 이들 연합체 참여도가 다른 나라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김지환 외, 2018). 국내의 선도 기업들은 각 분야의 글로벌 협력체에 적극 참여해 표준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5G 통신 표준 그 자체뿐만 아니라 5G 융·복합 서비스 관련 국제 표준화 체계 구축을 통해 주도권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초 상용화가 빛이 바래지 않으려면 ‘오지랖을 넓혀서’ 국내 5G 융·복합 서비스의 표준화 선점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표준 충돌(Standards clashes)

5G 시대에서는 이전의 표준 경쟁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5G가 실현시킬 스마트 시티, 스마트 팩토리 등의 융·복합 산업에서도 이전 세대의 정보통신 발전 단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표준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세계의 4차 산업 선도 기업들은 5G 통신 표준에서 특허, 표준 특허를 보유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5GAA에서 보듯이 각각의 분야에서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표준을 둘러싼 경쟁을 벌일 것이다. 그런데 4차 산업 융합 영역에서의 표준 경쟁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지금까지 표준 전쟁은 블루레이 vs. HD-DVD 대결(DBR mini box ‘표준과 표준 경쟁’ 참고)에서 보듯이 동일 산업 내에서 호환되지 않는 기술들이 시장 지배를 위해서 경쟁하는 모양이었다.

5G 시대의 스마트 시티와 같은 대규모 기술 시스템은 이전까지 서로 별개로 발전돼왔던 교통, 전기, 수도, 보건, 행정 등 다양한 분야가 데이터를 중심으로 통합돼야 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5G가 실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표준 경쟁은 동일 사업 분야에서 호환되지 않는 두 기술 표준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 상관없이 별개로 발전돼 오던 산업 분야에서 개발된 별도의 기술 표준들이 부딪히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을 ‘표준 충돌(standards clash)’이라고 부른다(Eom et al., 2018).

이런 현상은 이미 국내에서 발생한 적이 있다. 2013년 하반기 BMW의 전기자동차 모델 i3의 국내 출시가 발표되면서 전기차 충전 표준 논란이 시작됐다(허준·이희진, 2015). i3는 콤보 방식의 충전 표준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미국, 유럽의 자동차업체들이 채택하면서 사실상 글로벌 전기차 충전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일본 업체들이 개발한 차데모(CHAdeMO) 충전 방식이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국내 표준과 호환되지 않는 콤보 표준 사용을 반대했을 성싶다. 그런데 BMW의 콤보 방식에 정작 반기를 든 곳은 한국전력이었다. 전력산업이라는 이종산업에 속하는 한국전력이 글로벌 전기차 표준의 국내 진출에 반발한 것이다.

콤보의 통신 표준이 국내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 그리드 통신 표준과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전기차 충전을 위해서는 차량 내 배터리 관리 장치와 충전기 사이에 충전상태, 과금 등의 정보가 교환돼야 한다. 콤보 표준에서 사용하는 통신기술은 HPGP PLC(HomePlug Green PHY Power Line Communication)로 전력선을 통신선으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한편 국내 스마트 그리드에서는 원격으로 전기 사용량을 검침할 수 있는 원격 검침 인프라가 설치되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검침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기술로 또 다른 PLC 기술인 HS PLC(High Speed Power Line Communication)를 채택하고 있었다. 문제는 콤보의 HPGP PLC 통신 표준과 국내 스마트 그리드에서 사용하는 HS PLC 통신 표준이 대부분 중첩되는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기 때문에 상호 통신 간섭이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이 사례가 주목되는 이유는 서로 무관하게 발전해 왔던 자동차 산업과 전력 산업이 전기자동차, 스마트 그리드라는 혁신의 방향으로 가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표준 충돌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스마트 시티, 스마트홈, 스마트 팩토리 등 5G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Eom et al., 2018). 5G 시대의 신제품, 신서비스를 위한 혁신과 R&D는 산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협력과 경쟁의 맥락에서 벌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가기

2G 전환기에 CDMA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산업의 발전 계기가 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5G도 한국의 디지털 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기회가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5G 최초 상용화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기술진에 의해 개발됐고 기술적으로도 손색이 없던 와이브로가 박제 기술로 남게 된 사연을 돌이켜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의 실감형 콘텐츠 등 응용 제품 및 서비스 시장의 활성화와 커넥티드카, 스마트 팩토리 등 5G를 기반으로 하는 융·복합 산업 발전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다시 말해서, 5G를 둘러싸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계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생태계 발전을 위한 협력, 연합과 경쟁의 역학을 표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이전 세대 이동통신사업은 휴대폰 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개인 소비자 시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개인행동 양식의 변화, 그것을 야기하고 활용하는 다양한 사업 기회의 창출 등 이전 세상과 비교해서 혁명적이라 할 변화를 낳았다. 5G는 커넥티드카, 스마트 팩토리, 헬스케어, 에너지 관리, 스마트 시티 등 소위 말하는 4차 산업시대 융·복합 산업의 기반이 되고, 확장성 면에서 이전 세대 이동통신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B2C를 넘어서 B2B에서의 의미가 더 강조되는 이유다. 이전 세대의 이동통신은 통신 산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해외 진출이 여의치 않았다. 5G는 융·복합 산업에서의 활용이 발전의 한 축이 되기 때문에 해외 진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국내 5G 비즈니스 생태계의 공고화는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전제다. 5G 통신 기반 구축만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실감형 콘텐츠,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헬스, 스마트 시티 등에서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것들의 상호연결성 또는 서비스 표준을 제시할 수 있다면 국내 관련 업계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 기반을 닦은 후 5G 융·복합 산업 및 서비스 관련 국제 표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도권을 잡을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5G 장비 및 기기, 운영 노하우, 서비스, 콘텐츠를 묶어 사업 생태계를 패키지로 해서 해외로 나아가는 날을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이희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heejinmelb@yonsei.ac.kr
필자는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영국 브루넬대와 호주 멜번대 교수를 지냈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이며 연세대 미래융합연구원에 소속된 ‘융복합 산업화와 표준화 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다. 연구 주제로 시간-표준-철도 세 키워드를 좇고 있다.


참고문헌
1. 김지환, 정아름, 김인희, 신정우. (2018). 5G 이동통신의 시장 확산 방안 연구. 기본연구 18-04. 정보통신정책연구원.
2. 한국표준협회. (2008). 미래사회와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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