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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서틴스플로어 송영일 대표 인터뷰

5G가 만드는 진짜 VR 시대
콘텐츠가 비즈니스를 만든다

이미영 | 275호 (2019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5G 통신기술을 통해 가장 혁명적인 변화를 겪을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다. 특히 VR·AR 서비스가 주목된다. 4G 환경에선 기술적 한계로 구현이 불가능했던 서비스가 5G 환경에선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VR 콘텐츠 제작업체인 서틴스플로어는 4년 전부터 이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보고 관련 콘텐츠를 개발해왔으며 고급 촬영기술 및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개발 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5G 시대에 VR 서비스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기 위해선 서비스와 관련한 핵심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규모나 영향력에 관계없이 관련 기업들이 동등한 관계로 협업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비즈니스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한연규(성균관대 영문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느 평범한 아파트의 거실이다. 방 안에 문이 5개 놓여 있었다. 문을 선택해 들어가 보라는 안내 메시지가 귀에 들린다. 머뭇거리다 중앙에 놓인 문을 선택해 발을 옮겼다. 갑자기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발밑에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곤 반대편 낭떠러지까지 연결된 가느다란 줄뿐.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디뎠지만 나머지 발을 차마 뗄 수 없었다. 황급히 거실로 돌아와 다른 문을 열었다. 이번엔 가수 설현이 손을 잡아끌며 함께 요트를 타러 가자고 한다. 요트 안에는 신나게 춤과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클럽에서나 느낄 법한 스피커의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서울 서초구 본마을에 위치한 스타트업 서틴스플로어 사무실을 찾아 이들이 최근 제작한 가상현실(VR) 콘텐츠를 경험해봤다. 여행, 스포츠 등 각종 VR을 골라 체험할 수 있는 실감형 VR 솔루션 ‘매트릭스 시네마’와 ‘매트릭스 게이트’다. VR 기기인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ead Mount Disply, HMD)를 착용하면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순간 이동하게 된다. 각 컨셉에 따라 특수한 촬영기법, 영상제작 기법을 적용해 사용자의 몰입감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 최근 이 VR 솔루션이 공개된 후 한국 기업들은 물론 해외 기업들의 협업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5년 전 VR 콘텐츠 제작에 관심을 가지고 창업을 시작한 송영일 서틴스플로어 대표는 “5G 시대에는 미디어 콘텐츠가 더욱 성장하고, 특히 4G 시대에 구현이 어려웠던 VR 서비스가 현실화하면서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VR 서비스를 새로운 기회로 성장시키기 위해 투자자와 개발자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핵심 서비스 경쟁력 강화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BR은 서틴스플로어 사무실에서 송 대표를 만나 VR 서비스를 5G 시대의 기회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물었다.



송영일 서틴스플로어 대표는 온라인 게임 개발, 퍼블리싱 전문가로 활약했다. 호주 캔버라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2000년 오투미디어를 설립·운영했다. 오투잼이라는 리듬게임을 개발해 유명해졌다. 2003년 태국으로 건너간 그는 게임 퍼블리싱 회사인 엔플렉스 태국지사 부사장으로 일했다. 이후 싸이월드 대만 마케팅 이사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와 게임회사인 SNP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다. 사업이 부진해 방황하던 중 2012년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다가 VR에서 가능성을 발견, 서틴스플로어라는 회사를 차렸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운영하는 5G 포럼의 융합 미디어 및 스마트시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VR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2014년 서틴스플로어를 창업한 계기가 궁금하다.

과거 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아쉬운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2007년 온라인 게임 개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때였다. 중국에 출장을 가서 놀라운 IT 디바이스를 경험했다. 바로 아이폰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정식 판매하고 있지 않았던 때다. 이걸 보면서 ‘아, 이제 정말 모바일 시대가 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회사에 모바일 게임팀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회사 내부 반응이 시큰둥했다. 피처폰이 대세였던 시대였기 때문에 투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투자자들도 당장 수익을 낼 수 없고 전망이 밝지 않다는 이유에서 반대했다. 그렇게 모바일 게임 사업을 시작도 하지 못하고 접었다.

그런데 2009년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세상이 바뀌었다. 다들 모바일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위기가 왔고 결국 2012년 회사를 정리해야만 했다. 이 경험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가 시작됐을 때 제대로 준비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2014년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던 중 우연히 VR 기기 개발업체인 오큘러스의 HMD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게임 개발을 할 때 개발자들이 늘 하던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신개념 디바이스였다. 스마트폰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걸 실제로 보고 VR 시대가 곧 도래한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회사를 차리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 신기하게도 회사를 설립하고 얼마 후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틀린 길을 가고 있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DBR mini box: 5G 이동통신 기술의 정의와 특징

5G의 특징은 1) 초고속(Enhanced Mobile Broadband) 2) 초저지연(Ultra-Reliable and Low Latency Communication) 3) 초연결(Massive Machine Type Communication)로 압축된다. 5G는 데이터 전송량이 큰 고주파 대역을 사용함으로써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게 전송할 수 있다. 4G(LTE)와 비교해 이론상 최고 속도(20Gbps)는 20배, 체감 속도(100Mbps)는 10배 더 빠른 기술 스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초저지연 수준도 1ms(1000분의 1초)로, 평균 100ms를 상회했던 3G보다 대폭 개선된다. 또한 ㎢당 100만 대 이상의 대규모 단말이 동시 접속 가능하다. 4G보다 10배 증가한 수준이다.




VR ‘콘텐츠’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서비스든 새롭게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콘텐츠다. 특히 VR 서비스에는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가 담겨야 한다. 기존 콘텐츠는 외부의 시선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상호작용을 한다. VR 서비스는 내가 그 장면, 상황의 주인공이 돼서 콘텐츠와 상호작용한다. HMD를 썼을 때 유저 입장에서 마치 그 상황에 실제로 들어간 것과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콘텐츠를 만드냐에 따라 사람이 느끼는 몰입감이 달라지는 것이다. VR 콘텐츠 제작 방식이 기존 영상 매체의 콘텐츠 제작방식과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당시 VR 시장은 걸음마 단계였다. 서비스를 선점할 기회가 있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누구도 정답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잘 만들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반보 더 빨리 들어가 먼저 그 솔루션을 찾아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전문가가 5G가 만들어내는 첫 번째 물결이 미디어 산업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IHS마킷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 기준 5G의 산업가치가 약 3조5000만 달러(약 4138조 원)다. 미국에서만 220만 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첫 번째 기회는 미디어에서 생겨날 것이라고 본다.

미디어와 관련된 모바일 트래픽이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압도적이다. 한 연구 자료에 의하면 유튜브가 전 세계 모바일 트래픽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약 37%다.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다른 미디어 콘텐츠 트래픽을 합하면 전체 모바일 트래픽의 약 75% 이상을 차지한다. 5G에서는 이러한 추세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인텔은 5G 통신 기반이 어느 정도 정착할 것이라 예상되는 2023년까지 영상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네트워크 트래픽이 연간 45%씩 늘어나며 5년 내 모든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의 73%가 미디어 트래픽이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를 보면 미디어와 콘텐츠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콘텐츠 제작사는 물론 통신기업에서 IT 기업까지 모두 자사만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5G 통신 인프라와 콘텐츠를 결합한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해 최대한 많은 콘텐츠 유저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오리지널 IP(Intellectual Property)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먼저, 디즈니는 디즈니+라는 서비스를 2019년 하반기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디즈니 영화는 물론 마블 시리즈,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까지 월 약 6.99달러만 내면 볼 수 있다. 애플도 애플tv+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게임과 잡지뿐만 아니라 애플만의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거장 감독은 물론 이완 맥그리거, 제니퍼 가너와 같은 톱 할리우드 배우와 오프라 윈프리 같은 영향력 있는 방송인까지 애플의 콘텐츠 제작 플랫폼으로 끌어들였다.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디바이스를 판매하는 기업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수많은 콘텐츠 유저를 확보했고 미국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AT&T는 HBO, CNN, 카툰네트워크 등의 콘텐츠 제작사를 보유하고 있다. 왕좌의 게임, 프렌즈, 원더우먼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콘텐츠가 AT&T 소유인 셈이다. 이 회사들은 고도화된 통신기술을 보유하거나 뛰어난 디바이스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킬러 콘텐츠가 없으면 가입자나 유저를 늘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미디어 업계에서 5G 시대의 킬러 서비스로 VR을 꼽는 이유가 궁금하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분명 5G 시대에는 미디어 콘텐츠 소비가 더욱 활성화할 것이다. 통신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용량이 큰 콘텐츠를 보다 빠르게, 지연 현상 없이 플랫폼에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다. 무엇보다 디스플레이 화질이 좋아진다. 4K UHD 해상도는 물론 8K UHD 해상도의 영상을 제작하고 전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화질 영상 서비스는 5G 통신 기반 기술을 빛나게 할 서비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저들이 영상 콘텐츠를 더 편리하고 선명하게 소비할 수는 있지만 과거와 확연한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선명한 화질의 영상을 더 실감 나고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정도의 차이다. 지금도 4K 영상을 전송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뿐이지 콘텐츠 이용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VR 콘텐츠는 상황이 좀 다르다. 4분짜리 360도 VR 콘텐츠를 4K 고화질로 전송할 때 들어가는 데이터 용량이 약 16기가바이트 정도다. 그렇다면 40분짜리 VR 콘텐츠에는 데이터가 160기가바이트에 달한다. 4G 통신 기반에서는 다운로드받는 것도, 스트리밍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5G 통신 기반에서는 VR 콘텐츠 전송이 가능해진다. 엔드 유저들이 과거와 확연하게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 VR은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을까?

VR은 단순히 가상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VR은 ‘실감미디어’다. HMD를 쓰는 순간 유저는 실생활과 분리된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유저는 마치 그곳에 실제로 있는 것과 같은 실재감과 몰입감, 임장감을 느껴야 한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간접 경험의 ‘끝판왕’인 셈이다.

VR 콘텐츠는 게임이 될 수도 있고, 체험형 콘텐츠가 될 수도 있고, 교육용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명확한 것은 콘텐츠 소비자들이 굳이 HMD를 착용하면서까지 보고 싶은 콘텐츠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청할 만한 가치, 경험할 만한 가치, 기존 사용자 경험(UX)과 사용자 환경(UI)을 넘어서는 가치,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서틴스플로어도 지난 5년간 콘텐츠를 만들면서 많은 실험을 해봤다. 바닷속도 들어가 볼 수 있고 록그룹 메탈리카가 음악을 제작하는 튜닝룸에도 들어가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었다. VR 게임, 익스트림 스포츠, 모터스포츠 등 다양한 상황을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도 제작했다. 이렇게 실험을 해보면서 대상에 따라, 상황에 따라 유저에게 최적화한 VR 콘텐츠 솔루션을 찾아내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3D TV가 실패했던 것처럼 VR 서비스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다.

3D TV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명확하다. 3D TV는 TV 제조사가 주도했다. 이 회사들이 TV에 3D 영상을 볼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하고, 집에서도 3D 영상을 즐길 수 있도록 3D 전용 안경도 개발했다. 처음엔 소비자들이 신기해하고 직접 착용해 영상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혹자는 굳이 집에서 안경까지 쓰고 영상을 즐기려는 것에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느꼈다고 주장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핵심은 아니다. 3D TV가 잘 안 된 이유는 콘텐츠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3D 영상을 만들려면 전용 장비도 구매해야 하고 영상 제작을 위한 투자비도 많이 든다. TV 제조사가 3D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 그렇다고 시장이 크지 않은데 콘텐츠 제작사들이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VR은 상황이 좀 다르다.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그 중심에는 HMD가 있다. HMD는 엄밀히 따지면 스마트폰 이후 등장한 새로운 디바이스다. 새 디바이스를 제조하기 위해선 디스플레이, 칩셋, 그래픽카드 등이 필요하다. VR 전용 콘텐츠도 있어야 한다. 시장에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것이다. 관련 회사들이 새로운 시장 기회를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다.

게다가 HMD를 대중시장에 보급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사실 VR 서비스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작동이 번거롭고 비싼 HMD 장비다. 최근 대표적인 VR 장비업체인 오큘러스가 무선으로도 작동하는 ‘독립형(Stand alone HMD)’를 선보였다. 과거에는 이 기기가 유선으로 연결돼 있어서 이동의 제한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5G 통신 칩만 넣으면 되기 때문에 HMD를 착용한 유저의 동선이 자유로워진다. 가격도 30만∼40만 대로 이전보다 훨씬 저렴해졌다.


VR 서비스는 게임 유저들로 시작해 점점 확대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구글이 출시한 서비스인 스태디아(STADIA)도 주목할 만하다. 이 회사는 별도의 디바이스 없이 클라우드로 연결해 게임을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쉽게 얘기하면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모바일, 저사양 PC를 이용해도 고화질의 끊김 없는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5G를 이용하면 서비스의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스태디아는 디바이스와 상관없이 통신망을 통해 데이터센터에 저장된 게임과 유저를 연결한다. 게임을 즐기는 전 세계 20억 유저를 한곳으로 모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클라우드를 이용해 VR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HMD 장비를 훨씬 간소화할 수 있다. 데이터 프로세싱 작업을 모두 클라우드에서 진행하게 되면 HMD는 영상만 수신하면 된다. HMD에 들어가는 부품도 통신 센서와 고화질 디스플레이면 충분해진다. 부품이 줄어드니 HMD가 소비하는 에너지도 줄어든다. 가격도 훨씬 저렴해질 수 있다. 만약 20억 명의 게임 유저를 대상으로 정말 재미있는 VR 게임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VR 서비스가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서틴스플로어는 어떻게 VR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나?

남들이 하지 않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360도 VR 콘텐츠의 경우 여러 각도에서 영상을 촬영해 이어 붙여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야 하는 등 제작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놀이기구, 자동차 경주, 수중 영상 등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을 촬영해 VR 콘텐츠로 만들었다. VR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기획, 촬영, 사운드 등 모든 공정을 인하우스에서 진행하자는 원칙을 세워 제작한 것이다.

비용도 시간도 정말 많이 들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영상을 만들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만의 콘텐츠 IP와 특허를 축적했다. 최근엔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된 인기 콘텐츠 ‘탑기어’를 제작한 PD, 지상파 방송국 PD 등이 합류해 영상 제작 수준이 크게 향상됐다.

사실 초기 멤버 중에는 VR 콘텐츠를 제작해보거나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전문가가 없었다.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그런데 오히려 잘 모르는 ‘초짜’였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목표를 높게 잡고 계속해서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급 기술을 축적할 수 있게 됐다. VR 콘텐츠는 카메라 여러 대를 가지고 촬영한 영상을 360도 화면으로 만들어주는 ‘스티칭’ 기법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영상을 찍고 또 찍으면서 가장 실감 나는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 최적화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수중 촬영 솔루션, 드론 솔루션 등 사람이 실제 경험한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촬영 기법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서틴스플로어의 구체적인 성과가 궁금하다.

처음에 서틴스플로어가 알려진 계기는 2016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였다. 롤러코스터 체험 영상을 삼성 기어(Gear) VR 론칭 시 제공했다. 당시 이 체험관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덩달아 우리 회사도 조금씩 알려졌다. 그러다 코카콜라와 함께 익스트림 스포츠를 주제로 한 환타 VR 프로모션을 찍게 됐다. 이 영상이 미국 구글의 ‘Think with Google’ 행사에 소개되면서 인지도가 확대됐다. 그 이후에도 레드불, 여러 자동차 회사와의 특수 촬영을 기반으로 한 360도 VR 콘텐츠를 제작해 큰 호응을 얻었다.

콘텐츠 자체의 품질을 높이다 보니 예상 밖의 분야로도 확장할 수 있었다. 병원과 같이 정밀한 촬영을 요구하는 기관과도 협업해 교육용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과 수술 관련 교육 영상을 제작했다. 2년 전부터 다양한 수술 장면을 촬영해 영상 콘텐츠를 축적하고 있다. 이 외에도 MRI 등과 같은 복잡한 의료장비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 등도 만들고 있다.

우리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도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최근에 우리가 만든 영화 ‘더 웨일(The Whale)’이 대표적인 예다. 더 웨일은 2019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VR 콘텐츠 어워즈인 ‘VR FEST 2019’에서 라이브 액션 VR 부문 ‘베스트 VR 내러티브 필름’ 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울산 명물인 귀신고래 전설을 모티브로 해 귀신고래의 탄생과 일생을 담은 VR 다큐멘터리다. 실감 나는 수중 촬영과 독특한 소재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해외 기업들의 협업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VR 콘텐츠는 전 세계가 같은 출발선상에 있다. 누가 더 잘 만들지도, 못 만들지도 않는 상황이다. 영화계는 마블스튜디오, 디즈니 등 업력이 오래되고 시장 영향력이 매우 큰 회사들이 있지만 VR 콘텐츠는 그런 회사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잘만 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1등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시장이 작은 한국보다 글로벌 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콘텐츠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고 다양한 파트너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업 초기부터 태국과 캐나다 등지에 지사를 설립했고, 곧 일본과 영국 등에 지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실제로 해외에서 서틴스플로어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다. 한국인 특유의 꼼꼼함과 디테일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 같다. 실감나는 콘텐츠를 위해 사소한 부분까지도 수정하고 또 수정해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것을 높이 평가해줬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애플tv+가 위협적인 경쟁자가 되진 않을까?

해외 회사들과 일하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보다 경쟁력 있는 기술이나 제품을 보유한 회사가 있으면 그 회사와 경쟁해서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협업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랑 함께하자, 그러면 시너지가 날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다. 만약 넷플릭스가 자사 콘텐츠로 VR 서비스를 할 계획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넷플릭스 입장에선 VR 콘텐츠 담당 팀을 새로 꾸리느니 우리 같은 회사를 인수합병하거나 함께 협업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VR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를 ‘하청’을 주는 업체로 생각하거나 잠재적 경쟁자로 보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VR 비즈니스가 성공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조언해 달라.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인내가 필요하다. VR을 통해 당장 돈을 벌기는 어렵다. 5G 서비스를 제대로 구현해내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5G 전파도 짧고, 많은 데이터 트래픽을 전송하기 때문에 기지국이 4G보다 약 5배 더 많이 필요하다. 전국에 망을 제대로 구축하는 데만 수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업계에선 통상 2025년 정도 돼야 5G를 사용하는 기기 사용자가 전체 이동통신 사용자의 약 57%를 차지해 5G 콘텐츠 사용이 활발해 질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의 경우 약 2023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당장 수익을 낼 수 있거나 매출을 만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닌 셈이다.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서 투자하는 단계다. 이렇게 많은 세월을 거쳐 서비스가 고도화되고 숙성되면 관련 분야에서 성공하는 기업이 나온다. 넷플릭스는 1990년대 후반 만들어진 회사고, 유튜브도 구글이 약 10년 넘게 투자한 회사였다.

둘째, VR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스타트업도 투자 유치에 너무 매몰돼선 안 된다. 기존에 없었던 서비스로 승부를 보기 위해선 시장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하고 스스로 검증받아야 한다. 서비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유치한 투자금보다 회사의 가능성을 더욱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도 이 부분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자체 콘텐츠 제작에 더 투자하고, 어려운 콘텐츠 제작에 도전해 우리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각 주체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협업해야 한다. 5G 시대에선 혼자 성공할 수 있는 사업도, 어떤 기업이 주도해 끌고 갈 수 있는 비즈니스도 없다. 각 회사가 자신의 역할과 역량에 맞게 일하면서 서로 필요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통신사는 인프라를, 콘텐츠 회사는 콘텐츠를, 플랫폼 회사는 관련 서비스를 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서로 시너지를 내면 된다. 통신사가 콘텐츠 서비스까지 제공하기 위해 콘텐츠 업체에 적은 비용을 주고 콘텐츠를 의뢰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이 업체들이 제작하는 콘텐츠 품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익성도 점점 떨어져 콘텐츠 역량을 개발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오히려 콘텐츠 전문 회사는 더욱 자신의 역량을 키울 수 있게, 디바이스 회사도 더욱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서로 도와주고 끌어주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좋은 본보기로 영국을 예로 들 수 있다. 영국에는 이머시브 UK(Immersive UK)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정부에서 주관하는 것인데 영국의 방송국, 디자인회사, 제조회사 등이 모두 여기 다 들어가 있다.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개발할 것’이다. 서로의 자원을 활용하고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내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뤄지는 프로젝트는 정부에서 모두 투자한다.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만약 롤스로이스나 BBC 같은 대기업의 역량이 필요하면 바로 요청할 수 있다. 요청받은 회사도 적극적으로 협업한다. 덩치가 크고 자본이 많은 회사라고 해서 프로젝트를 주도하지 않는다. 이런 협력관계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나올 수 있다. 한국에서도 지금보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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