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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기업 벤처링의 목표와 방법론

밥 빨리 짓자고 화력 키우면 숯덩이 돼
사내 벤처는 3년 이상 길게 보고 키워라

이복연 | 274호 (2019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기업 벤처링(Corporate Venturing)의 목표와 방식은 실행의 난이도와 경영진의 위험 감수 경향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다. 국내 대기업이 가장 손쉽게 활용하는 사내 벤처의 경우 목표와 방법이 일관돼야 하며, 추진 주체에 분명한 권한을 부여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사내 벤처 창업자 또한 대기업 구성원이라는 점을 감안해 스타트업의 방법론을 급하게 적용해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대기업의 보고서와 사업계획서를 요구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도 전에 지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사내 벤처는 3년 이상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과를 기대해야 한다.



기업 벤처링(Corporate Venturing)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활용해 전략적, 재무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포괄한다. CV는 기업이 처한 상황과 관점에 따라 구체적인 목표와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다음 본문에서는 CV의 목표를 크게 사업 전략, 조직 혁신, CSR의 관점으로 구분해 살펴본다.


기업 벤처링의 목표
1. 사업 전략적 관점의 CV

기존 사업의 성장: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R&D 강화, 연관 시장에의 진출 등을 위해 CV를 진행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홈쇼핑 업체가 비디오 커머스 스타트업과 콘텐츠 제휴를 하거나 M&A하는 것, 유통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물류를 지원하는 식의 협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신사업 혹은 신시장 진출: 대기업이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있는 신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혹은 신시장 접근 능력이 있는 스타트업과 제휴하는 것이다. 가령, 완성차 업체가 동남아 시장의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에 지분 투자를 한다거나 스마트 차량용 AI 연구 업체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새로운 기술이나 인력의 확보: AI, IoT, 로보틱스, 차세대 콘텐츠 등은 기술 변화의 속도가 극단적으로 빠른 반면 수준급의 인력을 확보하기는 매우 어려운 분야다. 대기업은 내부 R&D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 스타트업과의 협업, M&A 등을 통해 기술과 인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중장기적 시장 변화 조사(tapping): 대기업은 풍부한 보유 자원을 기반으로 다양한 스타트업들과 직간접적 관계를 맺으며 시장 환경의 변화를 학습한다.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당장의 사업적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시장을 배우고 새로운 사업 진입을 위한 타이밍과 노하우를 준비하는 방식이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엔젤투자자 역할을 하거나 보유한 기술과 영업, 마케팅 노하우를 활용한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비즈니스 개발 플랫폼(Business development platform)으로의 변화: 대기업을 일종의 비즈니스 개발 플랫폼으로 변신시키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중국의 텐센트, 미국의 알파벳 1 등은 자체 핵심 사업으로도 대기업이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이들과 자원을 공유해 그로부터 얻은 투자 수익을 새로운 기업에 재투자하는 비즈니스 개발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한다. 국내에 이 정도로 공격적으로 CV를 추진하는 기업은 아직 없다.

2. 조직 혁신 관점의 CV

직원 아이디어의 사업화 지원: CV를 통해 직원 개개인이 가진 사업 아이디어를 공식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시장과 기술을 학습하는 문화를 조직에 확산할 수 있다. 국내 기업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신사업 발굴 및 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 방법론 적용: 대기업은 기존에 잘 알려진 글로벌 기업 혹은 다른 대기업의 성공사례뿐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스타트업의 성공 방식이나 사업화 전략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시도는 이론적인 탐색과 학습에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조직문화 및 사업 추진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조직문화 개선 시도: 직원들 대상의 스타트업 아이디어 공모전이나 기존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 프로그램 2 의 일환으로 창업을 지원하는 시도가 해당된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제대로 사업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에게는 회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존중한다는 이미지를, 정년이 가까운 직원들에게는 회사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지원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3. CSR을 통한 기업의 대내외적 이미지 개선

빌게이츠재단처럼 기업이 단순 기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CSR 활동의 일환으로 CV를 운영하는 것이다. 신한은행의 성수 두드림 스페이스처럼 국내 금융회사들이 스타트업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업 벤처링의 추진 방식
CV의 추진 방식은 실행 난이도와 기업의 위험 감수 경향 등에 따라 대내적, 대외적 프로그램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대내적 프로그램

직원 대상 사업 아이디어 공모전 & 해커톤: 사내에 젊고 열정적인 직원이 많은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다. 추진 과정에서 리스크가 크지 않으며 CV 이전에 기업 문화 개선을 위한 이벤트처럼 접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두 차례의 이벤트로는 실제 신사업으로 추진할 만한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이 매우 낮다.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 프로그램으로서의 창업 지원: 장년층 직원들이 퇴사하기 전에 자기 사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퇴사 직후엔 최소한의 초기 매출을 올릴 수 있도록 일정한 투자비와 매출처를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규모 창업의 생존율이 낮을 경우 직원들의 불안과 불만이 클 수 있고 기업에 따라 직원의 창업 초기 매출을 전혀 지원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효과가 크지 않다.

직원 교육에 스타트업 방법론 적용: 대기업이 스타트업처럼 최소한의 투자로 시장에 접근하는 워크숍이나 모의 창업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고객의 수요를 직접 관찰하는 방법을 배우고, 대기업의 풍부한 자원을 보다 실효성 있게 활용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신사업 부문의 스타트업 방법론 적용: 대기업의 신사업 부문이 새로운 시장 기회를 발굴하기 위해 벤처캐피털 또는 외부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신사업 부문은 사내에서 스타트업과 신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시장 변화의 방향을 가장 잘 짚어내는 안테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신사업팀에 스타트업을 이해하고 협업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을 진행하는 것이다.

사내 벤처 프로그램: 국내 30대 그룹 중 절반 이상이 그룹 혹은 계열사 차원에서 사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내 벤처 프로그램의 현실과 과제에 대해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2. 대외적 프로그램

CSR의 일환으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운영: 청년에게 창업 교육을 지원하거나 사회적 약자가 주축이 되는 창업 기업이나 사회적 기업(Social venture)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존 현금 기부 방식이 일시적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면 CV를 활용하는 CSR은 기업의 보유 자원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는 데 유리하다.

스타트업과 간접적 연계: 외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거나 지원금, 코워킹 스페이스,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대기업들은 주력 사업과 연계된 스타트업을 선발해 금전적 지원 외에도 기술 개발, 네트워킹, 고객 발굴 및 초기 고객 확보, 영업 및 물류망 확보, 마케팅 등의 실질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기술 및 시장 동향의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이 크다.

스타트업과 직접적 연계: 다양한 형태로 스타트업을 발굴해 지분을 확보하거나, 이사회에 참여하거나, 계약 관계를 맺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다. 스타트업 멘토링과 이사회 참여, 엔젤 펀딩을 통한 소규모 지분 참여, 액셀러레이팅, 스타트업과의 업무 파트너십 체결 등이 해당된다.

3. 서비스로서의 스타트업(Startup as a Service): 대기업이 내부 자원, 즉 인력, 영업망, 마케팅, 자본, 기술 등을 활용해 외부의 스타트업을 본격적으로 키우는 것이다. 액셀러레이터로 단순히 양육 후 지분 수익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신사업을 키우듯이 스타트업을 키우는 형태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만들어내는 공장’ 또는 ‘사업 개발 플랫폼’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사내 신사업팀이나 R&D 부서에 지원하듯이 외부 스타트업들에 투자와 지원을 하고 그들 중에서 성공사례가 생겨나면 대기업에 편입한다. 국내에서는 사례가 많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3M, J&J, AXA, 재규어랜드로버 같은 기업들이 업종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시도하는 방식이다.

4. M&A 또는 조인트 벤처 설립: 외부 스타트업을 기업의 계열사로 편입하는 방식이다. 스타트업이 보유한 특정 기술, 인력, IP 등을 목표로 할 때 활용된다. 통상적으로 M&A를 전략기획팀의 업무로 치부하는데 스타트업을 활발하게 M&A하는 회사에서는 이런 업무만을 전담하는 별도의 조직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CV의 다양한 목표와 추진 방식은 구현 난이도와 기업 경영진의 위험 감수 경향에 따라 [그림 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기업 벤처링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제언
-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사내 벤처는 대규모 투자나 조직이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대내외적으로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확산할 수 있으며 잘될 경우 사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가장 손쉽게 택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름만 사내 벤처일 뿐 통상의 기업 교육 프로그램처럼 운영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신사업팀의 아이디어를 평가할 때처럼 수많은 근거와 서류 작업을 요구해서 아이디어가 쉽게 사장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규모가 크지 않고 리스크가 작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애초의 목표와 반대로 젊은 직원들의 냉소와 경영진에 대한 불신을 키우며, 조직 내부에 불필요한 혼란만 일으켜 추진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다음에서 대기업의 사내 벤처 운영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해결 과제를 제시한다.

1. 목표와 방법을 정렬(align)할 것

국내 사내 벤처 프로그램의 상당수는 인사팀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운영한다. 즉, 인사 프로그램이지 기업의 사업적, 전략적 목적의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경우 사내 벤처 프로그램의 목표는 조직문화의 개선, 젊은 직원들에 대한 동기부여와 사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가 된다. 그런데 기업은 이런 목표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내 벤처 아이디어를 모집할 때는 ‘당사의 기존 사업과 연계성’ ‘당사 전략 방향과 일치’ ‘당사 신사업팀의 아이디어 구체화’ 등을 조건으로 내건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활기찬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도면서 실제로는 ‘기업의 사업적 목적에 직접적 도움이 될 것’을 명시하는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반복적으로 실행하고 실패했던 ‘직원 대상 혁신 아이디어 공모’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또한 아이디어의 평가를 대기업 내부의 사업부 임원들이 하는 것도 문제다. 임원들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의 시각이 문제가 된다. 이들의 시각은 철저히 자신이 수행하던 사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대부분 스타트업의 방법론이나 일하는 방식에 무지하다. 이들이 기존 사업의 개선 아이디어나 신사업 아이디어를 평가하듯 사내 벤처의 아이디어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아이디어는 생명력을 잃고 임원들과 다른 시각을 가진 직원들은 냉소적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기껏해야 사업 개선 혹은 프로세스 개선 등을 담은 창의성 수준이 낮은 아이디어들이 ‘사내 벤처’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보고서로 포장돼 발표된다. 이를 두고 임원들은 아이디어가 맘에 들지 않으니 ‘사내 벤처 별것 없다’고 한숨짓고 그 뒤로 프로그램은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인사적인 목적의 사내 벤처라면 아이디어가 회사의 기존 사업과 관련이 없더라도 잠재력과 실행력이 뛰어난 팀을 선발해 스타를 만드는 게 맞다. 회사가 정말 직원들의 생각과 아이디어에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업적인 목적이라면 아이디어를 사내 벤처뿐 아니라 외부 스타트업으로부터 공모해서 사업부에 도움을 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외부 업체는 회사 사정을 몰라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임원들도 봤는데 스타트업을 외부 용역업체와 구분하지 못하는 태도다. 목적과 도구, 실행 방법이 제대로 정렬되지 않으면 사내 벤처는 하나 마나 한 수준이 아니라 ‘우리 회사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직원들에게 심어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2. 추진 주체를 명확히 하고 힘을 실어줄 것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두 번째로 큰 이슈는 운영 주체다. 사내 벤처는 거창한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로부터 나오는 아이디어 대부분은 혁신성도 낮고, 실현 가능성도 별로 없다. 이는 사내 벤처에 참여한 직원들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원래 스타트업 아이디어 대부분이 처음에 별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경영진은 첫술부터 배부르길 원한다. 대기업 임원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업과 직접적인 연계성을 못 찾거나, 당장 1∼2년 내로 큰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해당 아이디어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프로그램을 출범시킨 부서와 담당자를 비난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힘들게 시작한 프로그램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을뿐더러 선발된 사내 벤처 후보군도 사업화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는 원래 혁신적이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빈약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현실화시켜 나가면서 경쟁력을 갖추고, 그 경쟁력을 끝까지 유지시켜낼 때 비로소 혁신성을 갖게 된다. 페이스북은 사실상 똑같은 서비스를 하는 업체 50여 개와 경쟁해서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이고, 쿠팡은 100여 개의 소셜커머스 업체들을 밀어내며 물류 혁신을 이뤄냈고, 배달의민족 역시 100여 개의 배달 앱을 물리치고 살아남았기에 국내 배달음식 및 요식업 전반에 영향력을 갖는 업체가 됐다. 이들 모두 지금은 시장 혁신의 선도자가 됐지만 그들의 아이디어 자체가 혁신적이어서라기보다는 강력한 실행을 통해 고객 가치를 키우면서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아이디어의 내용과 관계없이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그 일을 책임지는 부서를 도와야 한다. 회사는 1년 사이클로 돌아가지만 사내 벤처 프로그램은 3년 사이클로도 제대로 된 실적이 나오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3. 스타트업의 방식을 너무 급하게 적용하지 말 것

대기업 사내 벤처 프로그램의 운영 주체가 부딪히는 세 번째 이슈는 사내 벤처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래서 사내 벤처가 스타트업이라는 점을 감안해 스타트업 보육 전문 기관, 특히 유명한 액셀러레이터를 교육 주체로 데려오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액셀러레이터 인력 대부분이 대기업 경험이 없거나 매우 짧게만 갖고 있다. 하지만 사내 벤처의 운영 주체,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임원, 사내 벤처 창업팀 모두 대기업 구성원이다. 액셀러레이터가 통상적인 스타트업에 하는 조언과 같은 내용의 컨설팅을 해주면 다양한 어려움이 생긴다. 가령, 스타트업은 사업 계획을 구체화하면 외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IR 자료를 만들지만 사내 벤처는 사업 계획에 대한 임원 설득용 보고서를 만들게 된다. IR 자료에는 차별성과 실현 가능성, 스케일업(scale-up) 방안 등이 중점적으로 들어가지만 대기업 내부 보고서에는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방안이 들어가고 향후 5년간의 재무 계획이 아주 상세하게 서술된다. 피칭 시간도 스타트업은 5∼10분이지만 대기업은 보고받는 임원 마음이다. 그저 보고서 관련 항목의 차이처럼 보이겠지만 현실에서는 스타트업 전문 기관과 사내 벤처창업팀, 프로그램 운영팀 사이에 가장 많은 갈등이 생기는 부분이다. 서로 사업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대상자가 다르고, 의사결정권자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교육과 보육도 대기업과 스타트업 양쪽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 둘을 모두 잘 아는 액셀러레이터나 사내 벤처 교육 기관은 시장에 별로 없다. 결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팀이 ‘사내 벤처가 스타트업의 사업 추진 방식을 따르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대기업식의 보고 양식과 보고 라인을 따라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보고나 의사결정 이슈 말고도 문제는 또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내 벤처 창업가도 대기업 직원이라는 점이다. 사내 벤처 창업가가 진짜 창업가처럼 사고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흔히 대기업 출신 창업자들이 “대기업 물 빼려면 3년 걸린다”고들 말한다. 애초에 운영 주체가 사내 벤처를 뽑을 때 임원들의 입맛을 잘 맞출 팀이 아니라 독립된 사업 주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팀을 선발해야 한다.


4. 대기업식 보고서와 사업 계획을 요구하지 말 것

한 대기업의 사내 벤처가 조언을 요청한 적이 있다. 사내 벤처 프로그램에서 창업 지원금을 주고 창업자를 1년간 현업에서 빼주는 조건으로 팀을 선발했다고 한다. 문제는 회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 소속팀의 팀장부터 인사, 기획, 신사업 담당 임원, CFO 및 대표이사에게까지 각각 보고를 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선발된 뒤에 무려 5개월에 걸쳐 그 팀이 한 일이라고는 애초에 약속됐던 지원금과 업무 배제를 확정하기 위해 현업 일은 그대로 하면서 내부 보고서를 만든 것뿐이었다. 5개월의 보고 동안 임원별로 서로 다른 피드백을 했고, 보고서가 대표이사에게 갈 때쯤엔 사내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실행하지도 않을 사업 기획 보고서와 완전히 똑같아졌다. 이 팀은 이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도움을 청했다.

강력한 R&D에 기반하거나 특허 등 IP를 활용한 사업 모델을 제외하면 사내 벤처라고 해도 외부 스타트업들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비즈니스 아이디어란 있을 수 없다. 한 해 국내에서만 10만 개 이상의 창업이 이뤄진다고 하는데 고작해야 20개 내외인 사내 벤처팀의 아이디어가 이들 10만 개와 완전히 다를 확률은 너무나도 낮다. 그 때문에 사내 벤처이건, 보통 스타트업이건 시장에서 아이디어 실현 과정의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아이디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창업 팀이며 그들의 혁신적인 에너지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는 내부 보고 과정에서 잘리고, 임원들의 입맛에 맞춰 바뀌고, 길고 긴 관료적 결재 과정을 거치는 동안 팀이 지쳐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상황에서 사내 벤처팀이 외부의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살아남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사내 벤처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의 혜택이나 교육, 보육의 품질만큼이나 기업 내부의 관료적, 정치적 입김에서 아이디어와 팀을 독립적으로 지키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비슷한 문제로 창업자들이 현업 팀에 남아 있으면서 창업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전례가 없다’ 또는 ‘과다한 혜택이 특정 직원에게 쏠리면 다른 직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간다’는 이유로 오전엔 현업, 오후엔 창업하든지, 아니면 주 3일은 현업, 나머지는 창업 준비를 하라는 식이다.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매달려도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것이 스타트업이다. 아무리 능력자여도 이렇게 준비해서 성공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창업자도 이런 상황이 되면 그냥 창업 아이디어를 접고 현업 팀에 집중하게 된다. 당연히 아이디어의 사업화도 안 되고, 직원들 사이에는 회사와 경영진에 대한 냉소만 흐르게 될 것이다.


5. 장기간에 걸친 성과(return)를 기대할 것

많은 경우 사내 벤처 프로그램에 주는 사업화 기간은 1년 정도다. 이 기간 동안 아이디어 구체화, 시제품 제작, MVP 테스트, 제품 고도화, 초기 고객 확보, 시장 진입 & 매출 확보까지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 1년 내로 돈을 벌어오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중에서 1년 차부터 매출을 올리는, 그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규모로 매출을 올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1년 차에 매출을 올렸다는 팀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식적인 법인 설립부터 1년이라는 의미지 팀 빌딩, 아이디어 구체화, 소규모의 시장 테스트 등은 법인 설립 한참 전부터 시작한 팀이 대부분이다. 사내 벤처에 지원을 많이 해줬으니 성과를 기대하는 게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화력이 세니 밥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빨리하겠다고 화력을 집중해봐야 밥은 숯덩어리가 될 뿐이다. 쌀이 밥이 되려면 어차피 일정 시간이 소요된다.

1년 차 말쯤 성과를 확인할 땐 제품의 고도화와 초기 고객 기반 확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며, 3년 정도의 기간에 걸쳐 아이디어가 발전할 것이라는 중장기적 전망을 프로그램 운영진과 임원 모두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임원들이 사내 벤처를 그해 실적으로 포장하고 싶고, 창업팀 역시 창업에 실패할 경우 부서 복귀도 제대로 못할 수 있다는 공포에 스스로를 급하게 몰아댄다고 해도 모든 일엔 순서가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느린 진도의 압박을 견딜 수 없는 창업팀이라면 애초에 선발해서도 안 되고 인내심이 약한 임원들이라면 애초 프로그램 자체를 승인하면 안 된다.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면 그다음부터는 인내심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필자소개 이복연 패스파인더넷 대표 bokyun.lee@pathfindernet.co.kr
필자는 기업 사내 벤처 및 기업 벤처링 전문 교육 업체 패스파인더넷 공동 대표다. 한국IBM, 삼성SDI, 롯데그룹 미래전략센터 등에서 신사업 전략 및 시장 진입 마케팅, Alliance 전략 수립 등의 업무를 수행했으며 16년 이후 다수의 스타트업 보육 프로그램에서 비즈니스 모델링 및 시장 진입에 관한 코칭을 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인류학과, 미네소타주립대 MBA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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