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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대변환과 기업의 전략

‘수축사회’ 스타트… 과거 성공 경험 잊어라

홍성국 | 270호 (2019년 4월 Issue 1)
최근 자영업 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중에서도 불과 1∼2년 사이에 10만 명 이상 일자리가 줄어든 분야가 있으니 바로 교육 서비스 산업이다. 주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학생이 많은 태권도장, 예체능 학원들도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변화의 전조 증세는 이미 있었다. 대입 중심의 한국 교육 시장은 현재 대학 입시생이 태어난 20년 전부터 축소되기 시작했다.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학생 수가 빠르게 줄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유치원부터 고교생까지 학생 수는 2014년 698만6000명에서 2016년 663만6000명, 2018년 630만1000명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저출산 여파로 1년 새 학생 수가 16만 명 줄었다는 경고음이 나왔다. 출생아 수를 보면 상황은 더 암담하다. 베이비붐세대로 유명한 58년 개띠나 71년 돼지띠가 무려 100만 명 정도 태어난 데 반해 2018년에는 약 33만 명이 출생하는 데 그쳤다. 합계 출산율은 한 명에도 못 미치는 0.98명을 기록했다. 이 같은 결과로 미뤄볼 때 초등학생 이하 사교육 시장은 추가적으로 붕괴할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 시장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그동안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예측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미래가 이제 현재를 옥죄기 시작했다. 인구 감소 외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다. 공급 과잉, 과잉 부채, 4차 산업혁명 등은 모두 역사상 최초로 맞는 변화다.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세상은 한참 전에 끝났다. 10년 혹은 20년 후의 세상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당장의 끼니를 때우기 위한 정책보다는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어떠한가? 먼 미래보다 눈앞의 먹거리에만 집중하면서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유행하고 있다. 미국은 급증하는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대규모 장벽 설치를 추진하고 있고, 복지국가의 표본이었던 북유럽마저 극우주의 정치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지상낙원으로 불리던 노르웨이의 1인당 GDP가 최근 급감하는 등 북유럽 국가의 경제 성장이 둔화된 탓이다. 블룸버그경제에 따르면 G20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을 합한 금액을 ‘100’으로 봤을 때 포퓰리즘 국가 GDP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불과 10년 만에 4%에서 41%로 늘어났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의 비중은 83%에서 32%로 급속히 줄었다. 수축 사회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구구조가 역피라미드 형태를 띠면 어디에 돈을 많이 써야 할까? 세금은 어떻게 걷고, 사회안전망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양극화로 불가피하게 증가할 사회 갈등을 예방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국제 질서는 치열한 제로섬 전쟁터가 될 텐데 장기적으로 외교정책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저성장을 돌파하기 위해서 교육제도는 어떻게 고치고, 경제 활력은 어떻게 높일 것인가? 오늘날 국가, 산업을 불문하고 경쟁의 승패는 ‘누가 더 멀리 보느냐’에 달렸다. 10년 후, 20년 후를 살필 때 접근도 달라져야 한다. 주어진 기초 환경을 기반으로 미래를 살피는 식의 예측 적중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아예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분석의 기초가 되는 모든 조건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팽창하던 세계가 제로섬 사회를 거쳐 수축을 시작했다.


세 가지 거대한 전환
세계는 수축 사회로 넘어가기 직전 전환기에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세 가지가 과거 팽창의 시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첫 번째 전환은 앞서 언급한 ‘인구 감소’다. 물론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보면 21세기 중반까지는 인구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많지만 중국과 일본, 한국과 유럽연합(EU)을 필두로 여러 국가에서 인구가 줄면서 역피라미드형 구조는 점점 더 당연해 질 것이다. 유엔(UN)에 따르면 중국의 인구는 2029년 14억 4157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30년 14억4118만 명부터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 예상 시점인 2032년보다도 2년 더 빠르다. 일본은 이미 인구가 줄고 있다. 이처럼 인구 증가를 가정한 기존 사회 시스템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연금을 시작으로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이 차례로 고갈될 것이다.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지난해 국민연금 장기 재정 추계 결과를 발표하면서 적립 기금이 2042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기 시작해 2057년에는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5년 전 재정 계산 때보다 기금 고갈 시점이 3년 앞당겨진 것이다. 또한 건강보험이나 다양한 형태의 민간 보험 등 사회안전망도 지탱이 어려워질지 모른다. 생산 가능 인구가 줄면 납세자도, 민간 소비도 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전환은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생산성 향상에 따른 공급 과잉이다. 사람이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기기 시작한 것이다. 생산 현장에서 기계 사용이 증가하면서 생산성은 상승하지만 임금은 오르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또한 생산과 소비의 밸류체인을 장악한 소수와 다수 사이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같은 공장에서 예전보다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대량 생산하게 되면서 모든 산업 분야가 ‘공급 과잉’ 상태에 빠졌다. 인구 감소가 소비를 둔화시키고 있는 동시에 빠른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공급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배터리, 태양광, 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분야들은 공급 과잉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기존 산업은 말할 것도 없다. 투자정보 제공업체 WiseFn 분석 결과 한국 전체 산업 매출액과 영업이익의 약 70%를 차지하는 자동차, IT, 소재(철강, 화학, 정유), 산업재(기계, 조선, 건설, 운송) 분야는 세계적으로도 공급과잉이 가장 심한 산업들이다.



세 번째 전환은 환경오염이다. 환경오염을 방지하거나 치유하는 데 드는 비용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환경 관련 비용을 연 100조 원가량 부담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환경부에서 발간하는 환경산업통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환경보전이나 관리를 위해 환경 시설 및 측정기기 등을 제작, 설치하거나 환경 기술 등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 활동 매출액이 2016년 98억 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이 비용이 더 늘어나서 결국 경제에도 압박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기업에 주는 시사점
수축 사회는 기업을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경영 환경으로 내몰고 있다. 수축 사회에 놓인 기업의 처지는 전투 용어인 ‘뷰카(VUCA)’로도 표현될 수 있다. 뷰카란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첫 글자를 결합한 용어다. 이 네 가지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높은 경각심과 기민한 상황 판단이 동시에 요구된다. 경쟁 기업과의 전투는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데, 아군의 전투력은 약화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변하는 경영 원칙을 세우고 강력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수축 사회에서 길을 찾아줄 지도는 없다. 사회와 기업의 방향성과 미션(mission)을 확실히 정하고 오직 장기 방향이라는 ‘나침반’에 의지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정경 유착이나 갑의 횡포 같은 꼼수 경영은 변동성이 높아진 사회에서 언제든 기업의 리스크가 돼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또한 기업 오너나 경영자라고 해서 함부로 직권을 남용할 경우 구성원들의 업무 몰입도, 주인의식과 성취욕,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약해진 개인을 붙잡으려면 리더십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전사적으로 ‘사람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공유해야 한다. 최근 몇몇 항공사 오너의 갑질 논란에서 보듯이 오늘날에는 회사의 경영진과 종업원들의 이해가 충돌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모든 세부내용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외부에 알려진다. 이런 기업들은 미래의 변화에 대비하기도 전에 조직문화와 사람 문제로 오히려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과거의 성공 경험은 잊어야 한다. 수축 사회에서는 팽창사회에서 통용되던 방식이 실패 방정식이 되고 있다. 현재 매출과 수익을 무시하고, 미래의 변화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직 전체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만 보도록 빠르게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가령, 가장 안정적이고 변화가 적은 것으로 알려진 필수 소비재인 라면 시장에서조차 최근에는 피 튀기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인구 감소’로 라면을 주로 소비하는 젊은 층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라면은 전형적인 수축 사회형 산업이 됐다. 이 틈을 타 각 업체는 연일 소비자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을 신제품과 마케팅 기법을 내놓고 있고, 업계 1위를 고수하던 농심의 아성은 오뚜기, 야쿠르트 등 후발주자의 치열한 공세에 흔들리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오뚜기 진라면(11.9%)이 처음으로 농심 신라면(11.8%, 블랙 제외)의 시장점유율을 제쳤을 정도다. 인구가 지금보다 더 줄어든다면 시장의 빠른 재편을 넘어 생존까지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모든 산업이 공급 과잉이기 때문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즉, 창의성을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돼야 한다. 예를 들어, 움직이는 침대를 만드는 기업 ‘체리쉬’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침대에 적용해 사람들의 깊은 수면을 유도하고, 디스크 등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 적합한 취침 환경을 제공한다. 체리쉬가 처음 선보인 ‘인공지능 모션베드’는 네이버의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가 장착된 스피커와 연동해 음성 인식 기능으로 침대 모션을 조작할 수 있다. 또한 침대에 탑재된 인공지능 스피커에 설정된 문구를 말하면 무중력 모드, 머리나 다리 올리기 모드 등 모션이 작동된다. 이 회사는 단지 침대를 넘어 가구, 주방, 커튼, 식탁 등 가정의 모든 분야에 IoT 기술을 적용 중이다. 이런 식으로 과거에 없던 제품을 선도하고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5년이 골든 타임
세 가지 전환이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압박하고 있다. 징후가 곳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 땜질식 처방만 반복하느라 상황을 악화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가 수축 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 각국은 금리를 낮추고 빚(부채)을 늘리는 미봉책으로 사회와 경제를 지탱시켜 왔다.

일각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로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이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편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에서 소외된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공장 자동화가 이뤄지고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면서 제품 생산에 있어 노동 투입 비중이 줄어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생산 현장에 로봇 사용이 크게 늘어나면서 공장의 생산량이 증가한 반면 1억 대 이상의 차량 생산 능력을 갖춘 세계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 숫자는 오히려 줄고 있다. 생산보다는 연구개발(R&D) 분야 고용을 늘려가는 추세다. 또 전기차나 자율주행 자동차의 경우 더 적은 인력으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신기술 도입이 늘어날수록 내연 기관차 생산(내연기관 부문)·버스·화물·석유산업 부문의 기존 노동자들은 아예 사라질 것이다. 낙관은 금물이다.

향후 5년 정도가 수축 사회를 준비하는 골든 타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5년이 흐르면 기존 베이비부머들이 생산의 주체에서 은퇴 후 복지 혜택의 수혜 대상으로 전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 구조도 부담이다. 이미 2018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1530조 원대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5년 후 2000조 원에 육박하면서 한국 경제를 옭아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가계신용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가계신용 잔액은 전년 말보다 83조8000억 원 증가한 1534조6000억 원을 기록했다.

만일 한국과 세계가 지금과 같은 단기 대응에 치중한다면 2030년경 완전히 수축 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60년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 신화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강한 ‘팽창 사회’였다가 일거에 수축 사회에 진입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충격도 더 크다. 그동안 고성장 시기에는 위기를 겪더라도 외부 환경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1차, 2차 오일쇼크는 중동 건설 붐과 3저 효과의 도움으로 극복했고 IMF 외환위기는 벤처 버블과 브릭스(BRICs) 투자 붐으로 이겨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전 세계적 저금리 현상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제 세계 전체가 수축 사회에 빠지면서 해외로부터의 도움을 얻기가 더 힘들어졌다. 오히려 수출 감소로 위기가 더 증폭될 상황에 처했다. 앞서 말한 1) 확고한 경영 원칙의 수립과 이행 2) 과거와 결별하는 빠른 태세 전환 3) 공급 과잉에 맞선 새로운 수요 창출을 통해 위기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 국가나 기업, 개인은 수축 사회에서도 승리자가 될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엄청난 양극화에 따른 사회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과거 성장 시대의 방정식으로는 한발도 나아갈 수 없다.

필자소개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 전 대우증권 사장 hyean.skhong@gmail.com
필자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대우증권에 입사, 30년간 재직한 ‘정통 대우맨’이다. 경력의 대부분을 투자분석부와 리서치센터에 몸담았고 미래에셋대우사장까지 지냈다. 현재는 혜안리서치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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