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3. 마이클 레이너 딜로이트 이노베이션 센터장의 ‘애자일의 3가지 태극’

파괴적 혁신과 인내, 그리고 유연성
애자일 성장을 위한 ‘세 가지 균형추’

264호 (2019년 1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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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애자일한 성장을 위해서는 다음 3가지 쌍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1. 전략과 혁신: 기존 업계의 트레이드오프 구조하에서 경쟁자를 앞서나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시기와 기존의 경쟁구조를 깡그리 부숴버릴 수 있는 혁신을 도입하는 시기를 반복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파괴적 혁신을 가져온 애플은 이후 하이엔드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사업전략을 취하고 있다. 앞으로 다시 파괴적 혁신의 시기가 올 것이다.
2. 생산과 소비: 혁신 기술을 도입해서 제품/서비스/데이터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소비자가 이를 받아들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현재의 디지털 혁명이 헬스케어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으려면 50년(2세대) 정도가 걸릴 것이다.
3. 집중과 유연성: 하나의 시장 세그먼트, 하나의 전략,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나 방향성과 유연성도 중요하다. 넷플릭스는 저가 비디오 시장에서 중가 시장으로 올라가고 있으며 테슬라는 고가 시장에서 중가 시장으로 내려가고 있다.




우선 오랫동안 크리스텐슨 교수 아래에서 수학한 사람으로서 같은 무대에서 강연을 하게 돼 기쁘다. 오랜 기간 크리스텐슨 교수를 알고 지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이야기했을 때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오늘 강연은 크리스텐슨 교수의 저서들과 그분의 이론에서 확장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약간 다른 입장을 제기하는 부분도 있다. 물론 나는 내 의견을 고수할 것이지만 이는 다른 분들의 의견과 상호 보완적일 수도 있고 살짝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과 식견을 교류할 때 더 뛰어난 진리가 도출된다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강연을 제의받은 후 한국의 청중이 나의 강연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활용할 만한 개념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위키피디아를 찾아봤다. 그래서 찾은 ‘태극’이라는 개념을 이 강연에 활용하고자 한다. 혹시 나의 표현이 적절치 않거나 발음이 어색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린다.



태극은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서로 필수적이고 상호보완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어질리티(agility) 역시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어질리티는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보완적인, 두 개의 세트로 이뤄진 3개의 아이디어 쌍으로 나눠볼 수 있다. 지난 20년간 내가 진행한 연구 결과를 통해 도출된 내용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고자 한다. 어질리티의 3개 태극은 ‘전략과 혁신’ ‘생산과 소비’ ‘헌신과 유연성’이다. 이 각각의 쌍을 여러분께 순서대로 설명드리고자 한다.

전략과 혁신이라는 개념부터 시작하겠다. 크리스텐슨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 우리는 의사결정을 할 때 이론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론을 세우기 앞서 항상 그 이론에 들어가는 개념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한다. 하지만 전략과 혁신이란 개념을 다룰 때 우리가 너무나 자주, 너무나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적 인플레이션이 벌어지고 나중에는 그 원래의 의미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우선 내가 어떻게 이 용어들을 정의하는지를 밝힌다. 나는 전략과 혁신을 일종의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계 1 에 있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분들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것이다.



[그림 1]은 내가 자주 사용하고 오늘 여러분이 계속 보게 될 그래프다. 여기서 Y축은 가격이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가격이 높고 위쪽으로 갈수록 가격이 낮아진다. 일반적인 방식과는 정반대인데 이는 가격이 낮을수록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X축은 성능이다. 우측으로 갈수록 성능, 혹은 성과가 높은 것이다.

호텔 산업의 예를 들어보자. 모든 호텔은 기능, 편의성, 가격 간의 트레이드오프를 갖고 있다. 이 행사가 개최되고 있는 호텔(신라호텔)은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고,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결과 가격이 상당히 비쌀 수밖에 없다. 어떤 호텔이든 시장 내에서 경쟁적인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어느 정도의 트레이드오프를 감수해야 한다. 미국의 저가 호텔 체인인 ‘모텔 6’의 경우, 심플한 방에 침대와 책상, TV 정도만 있다. 예전에는 전화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텔의 마케팅 슬로건은 ‘당신을 위해 불을 켜두겠습니다’이다. 이것은 손님을 환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더 잘 생각해보면 이들이 고객에게 보장하는 서비스가 고작 불을 켜두는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모텔 6는 시장에서 고성능과 같은 높은 가치를 제공할 수는 없다. 당신이 이 모텔에 도착해서 ‘가격 상관없이 제일 좋은 방을 달라’고 요구한다 하더라도 쓰레기통이 보이는 방이 아니면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즉 모텔 6에서는 낮은 가격에 대한 트레이드오프로 기능과 편의성을 희생했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많이 내도 매우 훌륭한 방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이 그들의 전략적인 선택이다. 어느 호텔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전략적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선택을 한다. 크라운플라자는 중간 가격대의 비즈니스호텔이다. 그래프의 중간 즈음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부터 흥미로워진다. 어떤 기업이 이 그래프상에서 다른 기업보다 바깥쪽에 위치하면, 즉 하나의 시장 세그먼트 안에서 비슷한 입지에 있으면서 경쟁자들보다 조금 더 우수한 지점이 있다면 그 시장 세그먼트에서 성공할 것이다. 모텔 6는 낮은 비용에 낮은 퀄리티의 방을 제공하지만 괜찮은 정도의 서비스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저가 숙박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다. 크라운플라자도 해당 세그먼트에서 남들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포시즌스호텔을 생각해 보자. 이곳은 엄청나게 비싸지만 입지도 좋고 24시간 훌륭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즉, 각각의 세그먼트는 각각의 전선(戰線)이 있다. 전략을 세우고자 할 때 경쟁에서 이기는 게 관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모텔 6가 포시즌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고객층도 다르고 서비스도 다르다.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것이 좋은 전략의 핵심이다. 일관성 있는 선택들을 내리고 그에 따르는 트레이드오프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는 것, 그럼으로써 경쟁에서 차별화되는 것이다.

이 인사이트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기반이다. 전략이라는 것은 제약 사항을 수용함으로써 차별화를 이루는 것이다. 반면, 혁신이라는 것은 이러한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파괴함으로써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A 아니면 B’가 아니라 ‘A와 B를 모두 제공하는 것’이 혁신이다. 기능과 가격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기능과 가격 모두를 잡는 것이 혁신이다. 호텔 산업에서 이렇게 제약사항을 모두 탈피하면서 성공한 기업이 뭐가 있을까. 에어비앤비가 있다. 당신이 맨해튼에서 좋은 방을 얻고자 한다면 돈을 많이 써야 한다. 센트럴파크 옆 아파트를 사려면 수백만 달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에어비앤비를 통하면 300달러에 그런 집에서 머물 수 있다. 에어비앤비는 호텔산업의 전략적 기반이 됐던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부숴버렸다. 사용하지 않는 유휴 자산을 활용해서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에어비앤비는 자신만의 전선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같은 시장 세그먼트에서 활동하는 경쟁사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전략은 제약사항과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수용하면서 차별화하는 것이고, 혁신은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파괴함으로써 차별화하는 것이다.

휴대전화 업계의 사례로 넘어가 보자. 2004년 노키아는 저비용, 저가격에 바형 휴대폰을 만들어 파는 업체였다. 그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강자였다. 또 모토로라는 플립 방식의 핸드폰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레이저(Razr)’ 모델은 당시 기준으로 산업디자인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한 제품이었다. 이 회사는 중간 가격대의 시장을 지배했다. 블랙베리를 만든 RIM(Research In Motion)은 높은 가격에 고성능 기기를 제공하는 업체였다. 내가 살고 있던 몬트리올과 멀지 않은 곳에 RIM 공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이 세 기업, 노키아, 모토로라, RIM은 모두 성공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각자의 시장 입지에 맞는 전략을 갖고 그에 맞는 제품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또 각자 뛰어난 개발자와 경영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5년, 노키아가 조금 더 역량을 발휘해서 자신의 전선을 확장했다. 기존 제품을 좀 더 개선하는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을 통해 모토로라의 시장을 침범한 것이다. 모토로라도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들 역시 뛰어난 개발자를 투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즉, 존속적 혁신에는 존속적 혁신으로 대응을 하자는 것이었다. 모토로라의 저변 확장으로 RIM의 시장이 침범받게 되는 상황에 처하자 RIM도 제품군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 노키아, 모토로라, RIM 3개 사 모두 이전과 비교해 획기적으로 개선된 단말기를 내놓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4년 동안 수억 달러씩을 투입하면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존속적 혁신을 추구했는데도 그들의 입지는 4년 전과 똑같았다. 계속 속도를 내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경쟁에서 이탈할 수 없었다. 세 기업이 보여준 혁신은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상대적인 입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애플의 아이폰 사례를 보자. 2007년에 처음 등장한 아이폰은 새로운 기능들을 선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폰에서 가장 약한 기능은 전화 기능이었다. 아이폰은 새로운 기술들을 활용해 다른 제조사보다 훨씬 더 빠르게 시장을 확대했다. 기존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파괴했다. 물론 이런 혁신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휴대폰 업계의 2018년 경쟁구도를 생각해보자. 이제는 새로운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형성됐다. 고가 시장의 애플, 중가 시장의 삼성, 저가 시장의 화웨이 같은 강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과거 노키아-모토로라-RIM이 했던 것처럼 이 회사들은 각자의 전략을 갖고 각자의 세그먼트에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전략 중심의 시장에서 혁신 중심의 시장이 됐다가 다시 전략 중심의 시장이 된 것이다. 앞으로는 어떨까? 아마도 폴더블폰(접었다 펼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진 스마트폰)이나 배터리 연장 기술 등이 도입되면 다시 혁신 중심의 시장으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정리하면, 전략과 혁신은 내가 말하는 어질리티의 첫 번째 태극을 이루는 쌍이다.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수용하는 것이 전략이고,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혁신이다.

이러한 인사이트를 놓친 기업의 사례와 반대로 이를 잘 활용한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자. 다시 호텔 사례를 알아보자. 홀리데이인은 미국의 저가 호텔 체인으로 차를 타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가족들을 위한 숙박업소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홀리데이인도 트레이드오프를 받아들임으로써 매우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시장 세그먼트가 포화되고 크라운플라자 같은 경쟁자들이 더 낮은 임금이나 비용 등의 방법을 찾아서 성장하는 동안 홀리데이인은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파괴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홀리데이인은 높은 수익성이나 큰 성장을 이룰 수 없었다.

첫 번째 태극을 잘 활용한 사례로는 사우스웨스트항공사가 있다. 사우스웨스트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에 저가 항공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단거리 노선만 운영하며 2급 공항만 이용하고 단 한 종류의 항공기만 사용하는 등 시장의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수용한 것이다. 그러다가 1980년 후반에 보잉 787 항공기가 나오면서 사우스웨스트항공도 장거리 운행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에 사우스웨스트항공사를 정의했던 주요한 제약 하나를 파괴할 수 있었고 이 항공사를 성공으로 이끌어 미국에서 가장 큰 항공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정리하면, 홀리데이인은 트레이드오프를 수용하는 법을 일찍이 발견했지만 이를 파괴하는 것의 중요성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우스웨스트는 이를 이해하고 기회가 왔을 때 충분히 활용했다.

이제 애자일의 두 번째 태극을 이루는 쌍, 생산과 소비를 다뤄보자. 이것은 좀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1770년 무렵 시작한 산업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베네수엘라의 사회학자인 카를로타 페레즈(Carlota Perez)의 저술을 보면 인류의 산업혁명은 100년 주기로 진행됐다. 그리고 이것은 50년짜리 두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씨를 뿌리는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수확을 하는 단계다. 첫 번째는 생산, 두 번째 단계는 소비라고 볼 수 있다. 1차 산업혁명은 1770년 무렵 시작했는데 수차(water mill) 기술의 발전이 동력이었다. 이 덕분에 소비재, 특히 섬유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당장 소비자들에게 이 제품들을 전달할 여력이 없었다. 이는 그다음 50년 사이클에서 해결됐다. 1820∼1870년 사이에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 자동차, 증기선 등이 확보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물자와 사람의 이동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전신이라는 통신기술도 발전하게 됐다. 물자와 사람이 더 먼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고 상호 간에 통신을 하게 되면서 드디어 새로운 물자를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꽃피웠다.

그다음 2차 산업혁명 시대가 시작됐다. 1870년에서 1920년까지 인류는 철강과 같은 물건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얻게 됐다. 화학제품, 제지, 포장재 등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는 이런 것들은 대기업이 생산해서 대기업에 의해 소비되는 산업재였다. 그러다가 1920∼1970년 사이에 드디어 일반 소비자들도 이런 신문물의 혜택을 보게 됐다. 석유와 전기가 보급되면서 수억 명이 자동차를 활용할 수 있게 됐고 냉장고, 선풍기,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이 대중화됐다. 또 백화점 같은 현대적 유통채널의 덕을 보기도 했다.

1970년에서 2020년까지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이 시기에는 데이터를 대량 생산하는 방법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컴퓨터와 광섬유 통신을 비롯한 지난 50년간의 기술 발전 덕분에 데이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데이터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은 아직 준비 중에 있다. 그렇다면 향후 50년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 카를로타 페레즈가 이론화한 것처럼 향후 50년간 우리는 데이터를 어떻게 소비할지 고민할 것이다. 유전자 편집, 클라우드 컴퓨팅, 3D프린팅, 인공지능, 센서기술과 사물인터넷 같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할 것이다. 또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을 통해서 안정적으로 구현된 거래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 기술들의 공통점은 데이터를 소비하게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해보자. 왜 항상 50년씩이나 걸려야 하는가? 나의 주변 사람들도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기술은 이렇게 급속도로, 너무나 급격하게 변화하는데 왜 사람들이 데이터 소비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는 50년이나 걸리냐는 것이다. 이는 경험적인 답변을 필요로 하는 질문들이지만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했듯이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데이터가 없으니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자. 지난 5번의 50년 주기를 돌이켜보면 과거에도 기술의 변화 속도는 매우 빨랐지만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돼 사회를 바꾸기까지는 50년이 걸렸다. 즉, 변화의 제약을 가져오는 걸림돌은 기술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신기술을 삶에 반영하고, 경제활동을 구성하고, 우리 문화를 구성하고 실현해 나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사람’이고 사람이 이러한 변화를 실제 생활에 반영하는 데 50년, 즉 2세대 정도가 걸린다는 것이다. 어떤 기술의 초기 단계를 봤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 정도가 돼야 생산된 데이터를 제대로 소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야 생산 다음에 소비가 따라온다.

특히 데이터 측면에서 이 태극의 두 가지 요소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또는 성공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통합(integrate)됐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헬스케어 분야다. 이 분야에서는 이미 데이터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를 소비하는 방법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헬스케어 전문가들은 각종 센서를 사용하는 등 많은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있고 이를 활용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려 하지만 아직 쉽지가 않다. 상대적으로 소셜미디어 회사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데이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의 혁신을 이루고 있는 편이다. 물론 소셜미디어 기업들 역시 앞으로는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방향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데이터를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다음은 세 번째 태극인 집중(commitment)과 유연성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홈비디오 업계를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이 시장에는 세 가지 포지션이 있다. 구독형(subscription), 대여(rental)형, 온디맨드(VOD)형이다. 구독형 포지션을 취하는 넷플릭스는 1990년대에 DVD를 우편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반면 블록버스터는 실제로 가게에 가서 점원과 이야기를 해서 DVD를 빌리는 방식이었다. 또 VOD는 케이블을 통해 원하는 비디오를 보게 해주는 서비스다. 이 세 가지 형태는 각기 다른 시장 세그먼트, 각기 다른 트레이드오프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이 트레이드오프를 무너뜨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합했다. 다른 경쟁 시장으로도 진입할 수 있게 됐다. 핸드폰과 브로드밴드, 인터넷 기술의 발전에 따라 우편 기반의 DVD 서비스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넘어갈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즉, 넷플릭스는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하듯 저가 시장에서부터 시장을 와해(disruption)한 사례다.

중간 가격대 시장에서는 확산(diffusion)이 일어난다. 우버가 좋은 사례다. 교통수단에는 버스, 지하철 같은 저가 시장도 있고, 중간 가격대의 택시 서비스도 있고, 고가의 리무진 서비스도 있다. 우버는 중간 시장에서 확산 전략을 취했다. 우버는 택시를 잡기 위해 길에서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앱을 사용하면 훨씬 더 빨리 교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운전자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교육했다. 이렇게 소비자를 교육함으로써 우버나 리프트는 시장의 저변을 빠르게 확장했다. 버스나 리무진 서비스는 이런 속도로 시장의 저변을 확장하지 못했다.

시장의 하단에서는 넷플릭스와 같은 와해가 일어나고, 시장의 중간 단계에서는 우버와 같은 확산이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고급 시장을 보자. 크리스텐슨 교수는 테슬라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테슬라는 굉장히 비싼 차다. 테슬라는 가격을 점차 낮추면서도 성능은 줄여나가지 않겠다는 하향(devolution) 전략을 취하고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했듯 테슬라와 중국의 전기차 업체는 각각의 트레이드오프에 맞춰서 각기 다른 베팅을 하고 있다. 가격을 맞춰서 성능을 낮출 것인지, 가격을 유지하면서 최고의 성능을 제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출발점이 결과를 결정한다. 넷플릭스는 저가 시장에서 시작했다. 메인스트림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만큼 퍼포먼스가 충분하지 않았지만 가격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도 가격은 계속 낮게 유지하면서 점차 서비스 품질을 높이면서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취했다. 우버는 중간 단계 시장에서 시작했다. 처음부터 가격이나 성능 면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했고 다만 고객들이 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시간을 들이며 점차 확산해나갔다. 테슬라의 경우는 하이엔드 시장에서 시작했다.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었으며 이 성능을 저하하지 않으면서 가격을 조금씩 낮춰가는 방법을 택했다.

이 3가지 방법, 즉 하위 시장으로부터의 와해, 중간 시장으로부터의 확산, 상위 시장으로부터의 하향 외에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와해 활동이다. 초창기 미국의 모바일 서비스 업체들이 그 예다.

정리하자면, 시장의 어느 부분에서 출발할지를 정하고, 또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해하는 것이 헌신과 유연성 사이의 관계를 정의한다. 선택을 내려야 한다. 하위 거점에서 시작해 와해적 혁신을 할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혁신을 할 것인지, 중간 시장에서부터의 확산부터 시작할 것인지, 상위 시장에서 톱다운으로 하향을 시작할 것인지 중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유연성이 굉장히 필요하다.

유연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인도의 가드레지(Godrej)라는 냉장고 회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나는 다른 냉장고 회사인 초투쿨(Chotukool)을 예로 들고자 한다. 이 회사는 처음에 가드레지처럼 보급형 시장을 타깃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 성능도 안 좋고 가격도 저렴하게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큰 시장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이 회사는 전략을 바꿨다. 더 화려하고, 예쁘고 섹시한 디자인의 냉장고를 만들어서 부유한 중국인을 대상으로 판매했다. 이 시장도 상당히 수익성이 높고 규모가 크지만 혁신적인 파괴를 갖고 오는 시장은 아니다. 수천만 명의 삶을 바꿔 놓을 제품은 아니다. 초투쿨은 처음에 시작했던 거점이 있었고 자신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지만 유연성을 발휘해서 중간에 경로를 바꾼 것이다.

트로브(Trov)라는 회사를 보자. 뉴욕에 있는 회사인데 청년층을 공략하고 있는 보험사이다. 청년층은 비싼 전자기기를 사용하기 마련이다. 집이나 차를 사는 대신 TV, 전화기, 노트북 등에 자신의 자산 70% 이상을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다. 파손이나 도난에 대비해 보험을 들 법도 하지만 일반적인 보험회사 상품의 경우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고객 입장에서 3000달러짜리 노트북을 위해 매달 20∼30달러를 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트로브가 한 일은 무엇일까. 이 회사는 앱을 만들어서 원할 때마다 보험을 활성화/비활성화할 수 있게 했다. 그러면 모럴헤저드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제품 도난 위험이 큰 상황에서만 보험을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트로브는 이런 문제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고객이 이렇게 하기를 권장한다. 트로브는 시간제로 요금을 부과하는데 시간당 비용으로 보면 일반적인 보험상품보다 훨씬 비싸다. 하지만 특정한 시간에만 보험을 활성화하므로 실제로 고객이 지불하는 비용은 훨씬 낮다. 모두가 이득을 보는 것이다. 노트북이 안전한 내 아파트에 있는 경우 보험을 끄면 된다. 하지만 스타벅스에 가서 공부를 할 때는 보험을 키면 된다. 화장실을 가거나 라떼를 받으러 갔을 때 도난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로브는 같은 문제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택했고 그것을 더욱 발전, 개선시켜 나가는 데 총력을 다한다. 처음 시작했던 시장 세그먼트에 집중하며 계속해서 성장을 해나가고 있다. 그들의 사업 모델은 어느 국가에서나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세 가지 태극에 대해 말씀드렸다. 첫 번째 태극은 전략과 혁신이었다. 전략은 트레이드오프 요소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고, 혁신은 트레이드오프를 파괴하는 것이다. 두 번째 태극은 생산과 소비였다. 우리가 새로 생산할 리소스가 무엇인지, 새로 소비하는 리소스가 무엇인지 배워가면서 시장을 확장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집중과 유연성이다. 내가 선택한 거점에 계속 집중하며 더 큰 잠재력을 키우는 씨앗을 심는 동시에 유연성과 인내심을 가져서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어느 시점부터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 회사의 CEO가 ‘우리가 지금 성장할 시점이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이 아니다. 브로드밴드 인터넷망이 보급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인내를 갖고 그 시기가 오기를 기다렸으며 마침내 때가 왔을 때 공격적으로 활동했다. 우버는 왜 그 시점에 성장할 수 있었을까? 역시 CEO의 선언이 아니라 4G 통신과 무선 인터넷이 확장되면서 차량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서비스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성장과 혁신은 단순히 누군가의 선언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기술의 변화, 조직의 변화가 녹아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시장 세그먼트에서 이러한 요소들을 전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고객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 잘 이해해야 한다. 전략과 혁신, 생산과 소비, 집중과 유연성은 굉장히 다르지만 동시에 서로 보완적인 개념들이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어질리티의 태극이 된다.

정리=조진서 기자 cjs@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268호 통제에서 자율로 2019년 3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