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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는 빵집’ 오월의 종

“즐겁게 만들자, 그리고 기다리자”
트렌드 대신 묵묵히 시간을 감내하다

최한나 | 258호 (2018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창업 후 약 5년간 부진을 면치 못했던 오월의 종이 오픈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빵 나오기를 기다리는 인기 빵집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1. 기존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담백한 빵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개척, 선도적 위치를 점유
2. 직원 모두를 베이커로 육성해 조직 충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고객 신뢰도를 제고
3.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제품의 질과 제조 방식을 유지해 장수 빵집으로서 기초를 다짐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진영(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자리 잡은 빵집 ‘오월의 종(May Bell)’은 매일 오전 11시에 문을 연다. 10시가 넘어가면서부터 빵집 문 앞에 사람들이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한다. 11시가 임박할 때쯤이면 줄은 이미 길게 늘어져 있다. 빵집이 대로변에 있기 때문에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보기 일쑤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시간을 보낸다. 정각 11시, 문이 열리면 작은 빵집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찬다. 5평 남짓한 공간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갓 구워져 나온 빵들이 속속 사람들 손에 실려 나간다. 공식적인 폐점 시간은 오후 6시지만 그때까지 문이 열려 있는 날은 드물다. 오후 3시 전후로 빵이 동나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오후 2시를 넘기지 못할 때도 많다.

오월의 종이 한남동에 들어선 것은 2007년. 초기 2년 정도는 저녁 늦게까지 장사하는 주변 상인들을 찾아 무료로 나눠줬을 정도로 빵이 남았지만 그 후로는 제시간에 문을 닫는 날이 한 달에 몇 번 안 될 정도로 일찌감치 다 팔리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많은 이가 오월의 종을 우리나라 대표 빵집 중 하나로 꼽는다. 오월의 종이 부진을 딛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빵집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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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에서 한 번, 한남동에서 다시 한 번
사회생활의 시작은 시멘트 회사였다. 이직을 한 번 하고 5년 만에 과장 직함을 달았을 정도로 꽤 안정적인 커리어를 밟고 있었다. 한창 일에 몰두하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에 그가 화장실에서 그랬듯 멍해진 아내에게 4년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특수 시멘트를 다루는 회사였다. 공사용 시멘트를 판매하기 위해 입찰에 들어가곤 했는데 부장님이나 이사님들 모시고 입찰 현장에 가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나이, 저 직급이 돼도 하는 일이 크게 달라지지 않겠구나 싶어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 느낌들이 쌓이다가 한순간에 터지면서 사표 쓰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 같다.” 현재 오월의 종 3개 점을 이끌고 있는 정웅 대표의 말이다.

그는 그길로 곧장 학원에 등록해 1년간 제과제빵의 기본을 배웠다. 많은 분야 중에 왜 하필 빵이었을까. 그는 “그저 회사 앞에 큰 제빵학원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출근하느라 매일 아침 바쁘게 걸음을 옮길 때 학원으로 들어가는 수강생들을 보며 늘 궁금했다고 했다. 일단 회사 문을 박차고 나오긴 했는데 결혼도 한 상태였고 다른 기술이나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라 부담이 작지 않은 전직(轉職)이었다. 다만 빵을 만드는 일은 정년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일이겠다, 남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기보다는 내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비중이 높아지겠다는 정도의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서른 넘어 학원을 찾아가자 접수 받는 직원이 나이 제한을 이유로 수강이 어렵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빵을 꼭 배우고 싶다고 매달리다시피 요청하고 있으려니 안에서 나이가 지긋하게 든 중년 남성이 나왔다. 그 학원은 물론 리치몬드라는 대형 빵집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었다. 그는 정 대표의 간절함을 읽었고 수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그뿐만 아니라 1년 과정이 끝났을 때 자신의 빵집에서 일하며 현장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다. 정 대표는 제빵 과정
1년을 마치고 리치몬드 등 서울 시내 빵집들에서 스태프로 일하다가 2004년 경기도 일산에 오월의 종이라는 빵집을 처음 열었다. 그러니까 한남동 오월의 종 이전에 일산에 같은 이름의 빵집이 먼저 있었다는 얘기다. 대체로 10년 이상 다른 빵집에서 경력을 쌓은 후 자기 빵집을 내는 일반적인 관행보다 훨씬 빠른 창업이었다. 주변에서 ‘되겠어?’라는 눈길로 봤고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서울이 아닌 외곽에서 창업한 이유였다. 그리고 3년간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빵은 매일 남았다. 손님 구경을 아예 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보증금을 고스란히 날렸고 빚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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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문을 닫고 새 길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빵을 사러 자주 오던 손님 한 분이 이태원 대로변에 목 좋은 가게 자리가 났다며 한번 가보라고 추천했다. “사장님 빵은 이태원과 어울린다”는 말과 함께였다. 자금도, 열의도 바닥을 드러냈을 때였다. 그저 “알았다”고만 하고 잊어버렸다. 그 손님이 다시 빵을 사러 와서는 “그 자리에 가봤냐”고 물었다. 다시 대답만 하고 넘기려다가 큰 기대 없이 구경이나 가보자는 마음으로 이태원을 찾았다. 가보니 추천대로 자리가 나쁘지 않았다. 큰길가에 위치해 오가는 사람이 많았고 공간이 작지만 알차 보였다. ‘나쁘지 않네’ 하고 돌아서는데 한 중년 여성이 그에게 다가와 뭐 하려고 하냐고 물었다. 빵집 하려 한다고 답했더니 여기 괜찮다며 들어오라고 했다. “돈이 없어요.” “얼마나 없는데?” 정 대표는 화가 나기도 하고 자신의 처지가 실망스럽기도 해서 퉁명스럽게 답했다. “하나도 없어요.” 중년 여성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잠깐 이리 좀 와보라’며 자신의 부동산으로 그를 데려갔다. 알고 보니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여기 권리금이 얼마고, 월세가 얼마고… 하며 혼자 계산을 하던 부동산 사장은 “내가 5000만 원 빌려줄 테니 한번 해보라”고 했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반드시 3개월 안에 갚을 것, 그동안 은행 금리에 맞춰 이자를 낼 것. 정 대표가 당황해 하고 있는 사이 이미 가게 주인이 도착했고 계약서에 도장이 찍혔다. 그렇게 2007년 두 번째 오월의 종이 한남동에 문을 열었다. 훗날 정 대표가 부동산 사장에게 뭘 보고 자신에게 돈을 빌려줬느냐고 물었을 때 들은 답은 다음과 같다. “부동산을 오랫동안 하면서 많은 사람을 겪었고 얼굴만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는데 당신은 잘 모르겠더라.”

이태원으로 옮겨왔지만 상황은 전과 비슷했다. 매일 빵이 남았다. 2년간 비슷한 날이 이어졌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외국인이 많은 지역적 특성상 일산보다 매출이 좀 늘긴 했으나 여전히 빵은 남았다. 저녁마다 남는 빵을 조각으로 잘라 늦게까지 영업하는 주변 상점들에 나눠주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빵이 다 팔렸다. 오늘 이 주변에 무슨 행사가 있나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오월의 종에서 만든 빵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완판 행진을 벌였다.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빵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풍경도 흔해졌다. 그렇게 10여 년, 오월의 종은 대한민국 대표 빵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좋아하는 빵을 만들자
본래 빵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누가 사다 놓으면 하나 집어먹을까 스스로 사 먹은 적도 거의 없다는 정 대표다. 특히 그는 케이크나 디저트류에 관심이 없었다. “제과제빵을 배우면서 당연히 케이크도 배웠는데 만들면서도, 다 만들고 먹어보면서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정 대표의 말이다. 당시 대부분의 빵집은 케이크 등 제과 쪽 비중을 70%, 제빵 쪽 비중을 30% 정도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케이크 등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 수익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끌린 것은 담백하고 심심해 일반적으로 ‘식사빵’이라고 불리는 빵들이었다. 특히 그는 호밀이나 통밀 등 당시로써는 잘 사용되지 않았던 종류의 재료에 관심이 컸다. 호밀이나 통밀을 사용하면 일반 밀에 비해 잘 부풀지 않아 식감이 거칠고 질기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일반 밀가루와 달리 텁텁하고 시큼한 맛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단맛이 적다. 그는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입장에서 그나마 잘 먹었던 것이 달지 않고 담백한 류”라며 “내가 하는 빵집이니 내 마음대로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월의 종에는 케이크가 없다. 단팥빵이나 크림치즈빵처럼 단맛을 가진 빵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담백한 종류다. 건과일통밀빵, 무화과호밀빵, 크렌베리호밀빵처럼 부재료를 더해 퍽퍽함을 덜어주기도 하지만 100% 통밀빵, 100% 호밀빵처럼 과감하게 심심함을 내세우기도 한다.

일산에서 망하고 한남동으로 넘어왔을 때도 빵의 종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빵집처럼 케이크도 내놓고 디저트류도 만들어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만드는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메뉴는 오래 갈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남동에 문을 연 두 번째 오월의 종에서는 오히려 이런 기조를 강화했다. 호밀이나 통밀을 더욱 많이 사용했고 우유나 버터 없이 물과 소금으로만 맛을 내는 담백한 빵들의 비중을 높였다. 발효와 재료에 대한 공부에도 박차를 가했다.

빵을 만들 때 그가 준수하는 원칙이 하나 더 있다. ‘무엇을 넣었다’고 표기했다면 반드시 그 맛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오월의 종에 진열된 빵들은 모두 재료를 이름으로 하고 있다. 건과일통밀빵은 통밀을 베이스로 건과일이 들어간 빵이고, 무화과호밀빵은 호밀을 베이스로 무화과가 들어간 빵이다. 손님들이 이름만 보고도 어떤 빵인지, 무슨 맛이 날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건과일을 이름으로 달고 있으면서 건과일 맛이 나지 않고 통밀을 이름으로 달고 있으면서 통밀 맛이 나지 않는 것을, 그는 ‘사기’라고 했다. 오월의 종의 대표 빵인 무화과호밀빵을 두고 ‘무화과를 샀는데 호밀빵이 딸려온 듯’ ‘무화과가 어디 있나 찾아봐야 하는 다른 빵집과 다르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그만큼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넉넉히 쓴다.

그는 말한다. 빵을 만드는 것은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새벽 4시쯤 나와 전날 만들어놓은 반죽과 2주 전부터 배양해놓은 발효종을 체크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반죽도, 발효도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람은 그저 잘 반죽될 수 있도록 물과 밀가루의 비율을 맞추고, 잘 발효될 수 있도록 온도와 습도를 꼼꼼히 체크할 뿐이다. “일단 밀가루에 물이 들어가면 그 후부터는 사람이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형태를 잡아주거나 장소를 옮겨주는 것밖에는. 기다리고, 또 적절히 개입하면서 그 시간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 좋은 빵을 만들 수 있다.” 정 대표의 말이다.

처음 빵집을 열었을 때 오픈시간은 오전 8시였다. 통상 빵집들이 문을 여는 시간이다. 정 대표도 그에 맞춰 8시를 오픈시간으로 잡았다. 하지만 새벽부터 나와 반죽하고 발효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문은 열었으나 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당시로써는 드물었던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했기 때문이다. 전날 만들어놓지 않는 이상 아침 8시에 빵을 내놓기란 불가능했다. 오전에 손님이 찾아오면 ‘지금 발효 중이니 좀 기다리시라’고 해야 했다. 빵 만들다가 재료가 떨어져 손님을 세워둔 채로 인근 상점에 다녀온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을 참다못해 열었던 문을 다시 닫기도 했다. 결국 오픈시간을 오전 11시로 늦췄다. 제대로 반죽하고 발효해 그날 구운 빵만 팔겠다는 생각에서다. 지금도 오월의 종은 빵집치고는 늦은 시간인 오전 11시에 문을 연다. 갓 나온 빵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는 망설임 없이 기계로 갈아버린다.

모든 직원이 빵을 만든다
현재 오월의 종은 총 3개 점이 있다. 한남동에 1호점과 2호점이 있고 영등포에 3호점이 있다. 3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총 20여 명. 특이한 점은 직접 오븐 앞에 서는 직원 외에 계산을 해주는 직원, 매장을 정리하는 직원, 빵을 썰어주는 직원 등 모든 직원이 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큼직하게 몇 개의 영역을 짜놓고 주로 활동하는 분야를 정해두기는 하지만 오븐 앞에서 빵을 굽다가도 계산하는 영역이 분주하면 급하게 달려가 돕기도 한다. 빵을 썰어주다가도 빵을 만드는 부엌에 급한 상황이 생기면 또 긴급 투입된다.

주 역할에 상관없이 모든 직원으로 하여금 빵 만드는 법을 배우고 직접 만들어보도록 하는 것은 정 대표의 원칙이다. 직접 만들어봐야 우리가 만들어 파는 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직접 만들어보면 재료나 부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궁금해 하는 손님들에게 정확하고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제과제빵을 배웠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만 채용하는 것은 아니다. 반죽 한 번 안 해 본 사람도 뽑는다. 직원 중에는 요가 강사였던 사람도 있고, 국악을 전공한 사람도 있다. 디자인을 하거나 IT 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도 있다. 정 대표는 간절함을 본다. 그가 그랬듯, 빵에 대한 기술이나 지식보다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가진 간절함을 보고 채용한다.

처음 오월의 종에 들어가면 한 달 안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종목이 꼭 빵일 필요는 없다. 어떤 것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계획서로 써보라는 주문을 받는다. 끙끙거리며 작성해 온 계획서에 그는 틈날 때마다 군데군데 연필로 보충해둔다. 그러다 그 직원이 퇴직할 때 사업계획서를 돌려준다. 그가 오월의 종을 통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만들었듯 오월의 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직원들은 그를 사장님이 아닌 ‘형님’이라고 부른다. 나이와 성별 불문, 오래 굳어진 호칭이다. 단순히 월급을 주고받는 이상의 관계인 셈이다. 직원들은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경험과 고민들을 그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듣는다.

그는 직원들에게 항상 “빵 만들 때 즐거워야 한다”라든가 “너 중심으로 만들어라”라고 말한다. 빵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만드는 사람의 기분이라는 생각에서다. 출근한 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으면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 있는지 묻고 돌려보내기도 한다. 소규모로 움직이는 팀의 특성상 남은 직원들의 부담이 커지기는 하겠지만 만드는 사람의 심리가 빵에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영역을 로테이션해가며 경험하는 식의 평소의 운영방식이 이런 날의 구멍을 메우는 데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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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빵 맛’을 우선순위로
빵집을 운영하며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빵 맛의 일정함’이다. 반죽과 발효는 온도와 습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이나 날씨, 그 밖의 변수들에 따라 차이가 난다. 빵 만드는 사람이 섬세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어제의 빵 맛과 오늘의 빵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남동 1호점과 2호점, 영등포 3호점에서 만드는 빵이 다 제각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름도, 들어가는 재료도 동일하지만 사실 3개 지점에서 사용하는 레서피는 다 다르다. 만드는 사람이 다르고, 공간이 다르고, 각 공간의 공기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할 수가 없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현장에서 당일 만든 빵을 당일에만 판매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3개 지점에서 사용하는 밀가루 총량은 일주일에 20㎏짜리 50∼60포 정도다. 그는 국산 밀가루를 고집한다. 요즘의 트렌디한 빵집들이 ‘프랑스에서 수입해 온 밀가루‘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 대표는 “편차 없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규모 생산시설에서 나와 일정하게 품질이 유지되면서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 정 대표가 신경 쓰는 것은 신메뉴 개발이다. 창업 이후 10여 년 사이에 새로운 메뉴가 많이 늘어났고 스테디셀러 아이템도 많아졌지만 그는 요즘도 이런저런 재료를 접목해본다. 다양하게 시도하고 확장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직원들의 메뉴 개발도 적극 권장한다. 새로운 빵이 나오면 3개월 정도 내부 테스팅을 거쳐 레서피를 확정하고 매대에 올린다. 판매가 부진하더라도 무조건 1년은 놔둔다는 것이 원칙이다. “빵을 비롯해 모든 음식은 손님의 입맛과 취향을 사로잡는 일인데 이것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다.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정 대표의 말이다. 그가 창업을 위해 그만두는 직원들에게도 하는 말이다. “정성 들여 만들었다면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다만 애정을 기울여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라.”

애써 개발한 레서피라도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든 알려준다. 다른 빵집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도 무방하다. 레서피대로 해도 똑같은 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레서피를 가지고도 더 맛있는 빵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레서피나 빵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온다면 얼마든지 아는 대로 설명해주곤 하지만 빵집 운영이나 메뉴에 대해서는 고객들의 의견을 구하거나 미리 공지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만드는 사람 위주다. 세일이나 이벤트를 한 적도 없다. 불친절하다거나 건방지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그는 만드는 사람에게 편한 방식을 루틴화해두지 않으면 오래 갈 수 없다고 믿는다.

성공요인 및 시사점
1. 우수한 제품 앞세워 새로운 경로 개척
오월의 종이 초기에 부진했던 것은 관행대로의 운영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대개의 빵집은 매출 증가에 도움이 되는 케이크와 디저트류 비중을 높게 두고 심심하고 담백한 빵은 적게 두거나 아예 배치하지 않기도 한다. 오월의 종은 호밀과 통밀 등을 사용해 지극히 담백한 맛의 빵들을 집중적으로 시도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많은 곳에서 활용하고 있는 ‘건강 빵’ 개념을 일찍부터 가져갔던 셈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불기 시작한 웰빙 또는 건강 바람을 타고 담백한 빵, 특히 새하얀 밀가루가 아닌 검은 빛깔의 호밀과 통밀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일찌감치 담백한 빵들을 주력으로 내세웠던 오월의 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 서기 시작한 것도 이때와 맞물린다.

단순히 담백한 맛만을 내세웠다면 웰빙을 내세우며 호밀과 통밀, 천연 발효종 등을 사용하는 트렌디한 후발주자들에게 밀려났을지도 모른다. 오월의 종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단골을 모았고 당일 만든 빵만 판매하는 원칙을 고수하며 신선함을 확보했다. 웰빙 트렌드의 덕을 본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렇게 받게 된 관심이 유지되도록 생산 면에서의 원칙과 기준을 높게 세우고 오랫동안 지켜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2. 팀워크 강화해 충성도와 신뢰도 높여
소규모 상점에서 중요한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팀워크다. 작은 공간에서 거의 종일 시간을 보내고 힘든 작업을 함께해야 하는 사람들끼리 손발이 잘 맞지 않으면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 특히 음식처럼 만드는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이 반영될 수 있는 형태의 제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오월의 종은 사장님이 아닌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도록 해 상하 관계의 어려움을 무너뜨리고 편한 관계를 구축했다. 이렇게 조성된 분위기는 작업을 즐겁게 하고 호흡을 맞춰 가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직접 검토해주는 것 역시 매장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이 매장에서 경험을 쌓고 기술을 배워 나의 꿈을 이뤄가겠다는 생각을 하면 업무 몰입도도 높아질 수 있다.

많은 빵집에서 만드는 사람과 판매하는 사람은 분리돼 있다. 판매하는 사람이 빵을 만드는 과정이나 재료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도를 충분하게 확보하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렇게 되면 빵에 대해 질문하는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 미숙할 수 있고 이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빵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정확하고 상세히 설명해줄 때 제품에 더 강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3.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꾸준함
입맛은 습관이자 문화다. 습관의 변화는 시간을 요한다. 오월의 종은 일산에서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지만 담백한 맛의 빵을 주력으로 하겠다는 원칙을 깨지 않았다. 한남동으로 업장을 옮기면서 오히려 이런 기조를 강화했다. 다른 빵집이 하는 대로, 기존 성공 공식을 따라가기보다는 내 입맛에 맞는 빵을 만들어 사람들을 설득하겠다는 정 대표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는 빵 만드는 일을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정의하거나 판매가 부진하더라도 신메뉴를 1년까지는 매대에 그대로 두는 것과도 일치하는 맥락이다. 빵을 만들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며 기꺼이 그 시간을 감내하겠다는 것이 정 대표, 나아가 오월의 종이 지켜가려는 가치인 셈이다.

요즘의 트렌디한 빵집들이 프랑스산 밀가루를 자랑하지만 일정한 빵 맛을 위해 국산 밀가루 사용을 고집하는 것도 오월의 종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물린다. 결국 오월의 종은 쉽게 바뀌고 변하는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설정한 가치를 꾸준하고 묵직하게 지켜내면서 오랫동안 성공의 바닥을 다져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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