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에게 ‘삶’을 제공한 호그벡 치매마을

243호 (2018년 2월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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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계산하지 않고 그냥 가져가도 괜찮다. 물건들에 가격표도 붙어 있지 않다. 문화센터나 극장에서 문화생활을 즐기지만 누구도 비용을 지불하거나 받지 않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 드 호그벡(De Hogeweyk)이라는 치매마을 이야기다. 2009년에 생긴 이 마을에는 중증 치매 노인 환자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주거공간으로 슈퍼마켓을 비롯해 극장, 우체국, 헤어숍, 레스토랑, 문화센터, 외래 진료 공간 등이 운영된다. 시설 곳곳에는 우체부나 경비원, 점원 등으로 변장한 의료진과 봉사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보통 치매로 확진되면 병원은 가급적 환자를 정상적인 사회생활에서 격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환자는 사회나 가정으로부터 더 고립돼 결국 일상에 복귀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지경에 이른다. 이 사실에 주목한 의료진은 간병인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환자의 자유와 일상성을 강조하는 치매 환자 케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치매로 인한 문제를 국가가 사회문제로 인식하게 해서 정부의 지원을 확대해 환자나 보호자의 부담을 감소시켰다. 실제 이러한 방식으로 돌본 결과, 호그벡 마을에 입주한 치매 환자들은 다른 시설의 환자들보다 평균수명이 길고, 투여하는 약물의 종류와 양도 감소하는 등 환자와 보호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세계는 그야말로 ‘치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치매는 완치가 쉽지 않을뿐더러 치매 환자의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이들을 돌보는 데 들어가는 의료적, 사회적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비용보다 더 큰 문제는 치매 환자를 돌볼 전문 시설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치매 환자는 시설이 열악한 요양원에 보내지거나 가둬진 채 집안에서만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간호사 출신의 이본느 반 아모릉엔(Yvonne Van Amerongen)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드 호그벡 마을을 만들었다. 치매 환자도 일상을 즐길 권리와 자유로운 공간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치매 환자들은 더 이상 격리되지 않고 마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환자들은 취미생활이나 문화활동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스스로 치매 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강요하지 않는 일상 속에서 의료진이나 봉사자의 배려를 받으며 각자의 생활양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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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geweyk.dementiavillage.com/en/

지금까지 병원은 환자를 긴장시키는 형태로 진화했다. 환자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고통의 신음소리와 숨 가쁜 움직임, 팽팽한 긴장감 등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것이 더 병원답고 전문성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일상생활을 옮겨놓은 듯한 병원 같지 않은 병원, 환자복이 아니라 집에서 입던 잠옷을 그대로 입는 내 집 같은 병원, 음악과 향기가 흐르는 카페 같은 진료실 등 편안하고 낯설지 않은 일상을 강조하는 병원이 주목받고 있다. 더 나아가 주거공간 전체가 진료시설임을 내세우지 않고 일상처럼 생활하는 호그벡 치매마을을 비롯해 물리치료사, 약사, 영양사 등 의료진이 일상의 노인환자에게 의료를 배달한다는 재택 케어, 즉 ‘지역포괄케어 시스템’도 등장했다. 일본 히로시마의 미츠기 마을의 생활 주거 공동체형 의료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독특한 발상의 주거공동체형 마을의 등장은 환자가 일상 속에서 자신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재택 케어를 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전화 한 통으로 어디든 달려가는 음식 배달처럼 의료 서비스도 환자가 의료기관을 찾아오는 대신 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찾아 의료 서비스를 ‘배달’한다는 개념이다. 이들 병원은 국가가 본격적인 의료제도를 시행하기 전부터 이미 환자의 일상성을 보장한다는 기본 생각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특히 미츠기병원의 와상환자 제로작전, 방문간호제도 등은 국가 의료시책으로 채택돼 노인보건의료복지의 하나의 원형이 됐다. 지금 미츠기병원을 중심으로 지역주민, 행정, 의사회 등의 이해 관계자들과 함께 종합 지역포괄케어시스템으로 정착했다. 진짜 소중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소소한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한 결과다.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kimjin@yuhs.ac

필자는 1989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중공업 기획실, 삼성 회장비서실 인력개발원, 삼성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에서 인사교육, 전략수립과 현장 적용을 총괄한 HR 전문가다. 호텔신라 서비스 드림팀을 창단해 호텔 품격 서비스의 원형을 보여줬고 차병원그룹 차움의 최고운영총괄을 맡아 의료서비스 분야에도 품격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는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 경희대에서 국제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55호 Network Leadership 2018년 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