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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힙스터 공략법

저항적 스타일을 소비하는 현실주의자, 현실과의 타협점에 비즈니스 틈새 있다

김서윤 | 243호 (2018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힙스터는 ‘거부’가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저항하는 집단이다. 이런 힙스터는 태생부터 모순점을 갖고 있다. 다 같은 것, 그저 주어지는 것을 피하려고 하다 보니 도리어 하나의 모습을 갖게 된다. 획일적인 것을 거부했지만, 결국 ‘힙스터스러움’을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몇 가지 아이템으로 수렴한다. 이 중에서 한국의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은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기보다 ‘몇 가지 아이템’과 ‘스타일’로 자신의 ‘힙함’을 드러낸다. 역설적으로 여기에 비즈니스가 들어갈 틈새가 있다. ‘불편한 식당’ ‘벼룩시장’ ‘디지로그 아이템’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소비 성향을 추적하고 현실주의자 힙스터를 추종하는 힙스터 추종자들의 트렌드를 예측한다면 기업은 지속적인 틈새시장, 작지만 영향력 있는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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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힙스터(Hipster)’의 이미지를 대강이나마 그릴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이나 망원동, 밴드 ‘혁오’, 수제 맥주, 음악 페스티벌, 아이슬란드 여행, 무인양품, 단골 동네 술집.

그러나 막상 힙스터가 누구인지 문장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힙(hip)’한 사람을 두고 힙스터라고 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이마저도 애매하고 불분명하다. 마치 2000년대 한창 유행했던 ‘쿨(cool)’처럼 ‘힙스터’ 역시 상당히 추상적인 표현처럼 보인다.

힙스터는 역사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비주류, 반문화(counter-culture)를 상징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문화사적으로는 1960년대 히피 집단의 어원이기도 하다.1

본래 힙스터란 흑인 재즈 뮤지션을 추종하는 백인 중산층 젊은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재즈를 광적으로 즐기던 청년들은 1950년대에 들어서 ‘비트닉(beatnik)’이라는 집단을 구성한다. 미국 뉴욕 그리니치빌리지나 샌프란시스코 헤이트애시베리 구역에 모여 살던 비트닉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방랑자 문학인’이다. 주류(mainstream)의 질서와 도덕에 반발해 모인 문학청년들이었다.

비트닉의 가장 주요한 정서는 주류에 대한 분노, 저항의식과 동시에 지니고 있는 패배의식, 허무주의, 비관주의였다. 이것은 1960년대 히피부터 펑크와 레게, 록과 힙합으로 이어진 하위문화(subcultures)의 주된 정서이기도 하다. 근 수십 년 동안 주류에 대한 대항으로 나타난 하위문화에는 기성세대의 안정된 삶과 주류사회의 보수적인 관념에 저항하는 방탕하고 반항적인 청년의식이 깃들어 있다. 수없이 반복된 세대 간 갈등의 원형이 1940년대 힙스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2

지금 2018년의 힙스터에게서는 그 반항적인 모습을 찾기 어렵다. 힙스터가 저항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힙스터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블루보틀 커피를 찾고 싶어 하는 이유, 동네 작은 식당에서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먹고 싶어 하는 이유에는 대기업이 잠식한 소비시장에 대한 저항이 포함돼 있다.

다만 이 저항은 결코 히피스럽지 않다. 오히려 굉장히 온순하다. 최근 십여 년간 힙스터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해 온 미국에서는 힙스터라는 집단을 아예 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다음 문장을 보자. ‘힙스터에 주의하라’라는 아티클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힙스터 집단과 청년 하위문화로서의 환경주의와 반자본주의에 대한 오랜 열망 사이에 여전히 연결고리가 있는가 하는 겁니다. 확실히 이런 것들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대중음악의 하위문화로 섞여 들어갔죠. … 여러분은 힙스터 문화와 반자본주의자와 환경주의자 간에 애정이, 순수한 애정이 남아 있다고 보십니까?”3

이런 비판을 받게 된 이유는 최근 힙스터들의 행동양식이 그동안의 하위문화 집단과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히피는 전쟁을 반대하면서 안정된 집을 박차고 나가 떠돌이 생활을 했다. 펑크족은 악기를 때려 부술 정도로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다. 래퍼들은 서로를 욕하고 폭력까지 행사하며 자신들의 진정성(authenticity)을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힙스터는 다르다.

힙스터가 핵심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시스템이다. 대량 생산 시스템, 글로벌 대기업은 물론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를 거부한다. 하지만 시스템에 대해 투쟁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전복시키려고 하는 대신 힙스터는 ‘선택’한다.

소비로 실천하는 힙스터

힙스터는 스타벅스 대신 ‘서드웨이브커피(third wave coffee)’를 마신다. 서드웨이브커피란 질 좋은 농장에서 수확한 원두를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니라 핸드드립이나 프렌치프레스로 내려주는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다.4  힙스터들은 단순히 ‘남들과 똑같은 커피를 마시기 싫어서’ 서드웨이브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스타벅스 커피가 어떻게 내 책상 위에 놓이게 되는지 곰곰이 따져보니 ‘나와 맞지 않아’ 다른 대안을 찾다가 서드웨이브커피에 이르는 것이다.

서드웨이브커피를 좋아하는 37살 힙스터 A씨의 사례를 들어보자. 그는 CD나 MP3보다 LP판으로 듣는 음악을 더 좋아한다. 외국 아티스트의 노래를 즐겨 듣지만 굳이 한국 음악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아이돌 그룹 중에서 고르라면 f(x)의 노래를 듣곤 한다.

“그만그만한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도 f(x)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보통 힙스터라고 하면 남들과 같은 것은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여겨지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돌 음악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천편일률적이지 않다면 열린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의 집 주방에는 요즘 힙스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아이템, 일본의 생활가전 회사 ‘발뮤다’의 토스터가 있다. “차이가 난다는 것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발뮤다의 토스터는 다른 토스터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어딘가 달라요. 디자인이 다르고, 제품이 주는 감성이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발뮤다 토스터를 샀어요.”

‘다르다’ ‘새롭다’ ‘진정성 있다’ 힙스터는 똑같은 세상에서 무의미한 일상, 파편화되고 기계화된 자아를 거부하기 위해 몇 가지 아이템을 선택한다. 선택은 소비함으로써 실천된다. 문제는 소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본이다.

앞서 얘기한 37살 힙스터는 중산층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서울 시내 명문 사립대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건설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가 부모로부터 독립한 것은 30대 중반의 일이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며 히피스러운 삶을 꿈꾸기도 했다. 이때 확립된 진보적 성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만 적극적인 사회 운동에 동참해본 적은 없다.

대신 진보적인 스타일은 고수한다. 그에게는 자본이 충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종의 소극적 저항’이라고 표현하는 소비 활동으로 그는 자신의 진보적인 실천을 시행한다. 국내 재벌 기업에서 찍어낸 제품은 잘 사지 않는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어디에서, 누가 만들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된 것인지 꼼꼼하게 따진다. 따라서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 그에게 서드웨이브커피는 좋은 선택이다.

소비로 실천되는 힙스터의 문화는 주된 비판의 대상이다. 뉴욕의 정치·문화저널 ‘n+1’의 편집자이자 뉴욕 뉴스쿨(New School) 교수인 마크 그리프는 ‘힙스터는 생산적인 집단이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힙스터는 어쩌면 ‘최첨단 소비자’, 혹은 톰 프랭크의 용어를 따르면 ‘저항적 소비자’의 다른 이름이다. 힙스터의 정의에 실제로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없다. 그들은 더 이상 힙스터가 아니다. … 힙스터에게 예술은 다른 사람들에겐 열려 있지 않은 카테고리-그런 면에서 볼 때 유행에 민감하게 빈티지 티셔츠와 청바지, 음식 등-를 대량 소비하는 일이다.”5

더욱이 힙스터의 소비는 체제순응적이다. 힙스터는 자발적으로 형성된 진보 그룹이기는 하지만 신자유주의 소비 체제의 전체적인 틀을 바꾸는 대신 몇 가지 소비 형태에 대해 의문을 품고 “신자유주의적 좋은 일”을 한다.6  유전자 조작식품을 거부하고 친환경적인 유기농 농산물을 사기 위해 올가홀푸드(www.orga.co.kr) 매장을 찾는 힙스터들을 떠올려보자. 올가홀푸드는 풀무원에서 운영하는 친환경 식품 브랜드다. 보통 슈퍼마켓보다 조금씩은 비싼 제품을 판매한다.

힙스터가 정말로 완전히 ‘힙’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힙한 선택을 하는 힙스터도 있다. 양효실의 책에는 홍대에서 음악을 하던 인디 음악가들이 대규모 재개발 계획에 밀려나 농성을 하게 되면서 생겨난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사례가 나온다.

홍대에서 평범하게 음악을 하던 음악가들이 재개발에 밀려나 농성하던 칼국수집에 모였다. 이들에게서 흘러나온 노래는 오래된 투쟁가 ‘인터내셔널가’다.7  여기에 이르면 음악가는 힙스터가 아니라 투사가 된다. 힙스터는 전면에 나서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을 추종하기는 하지만 변화를 이끌기에 힙스터는 지나치게 안정적이다.

체제와 타협한 히피의 자손

“힙스터족은 마치 포주처럼 차려입은 전형적으로 하층계급 ‘댄디’이지만 게토 지역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천박하고 충동적인 유형들과 구분하기 위해 냉정하고 지적인 척한다.”8

문화사적으로도 하위문화 집단이 처음부터 투사였던 것은 아니었다. 1940년대 원래의 힙스터 역시 체제를 완전히 전복하지 않는 순응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힙스터들은 역사적으로, 경험적으로 ‘투쟁’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알고 있다. 미국의 작가 패트리스 에번스(Patrice Evans)는 1990년대 미국 흑인의 하위문화로 힙합이 등장한 시기에 성장했던 젊은이들이 힙합을 통해 흑인들이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목격했지만 동시에 힙합이 상업적으로 착취당하는 과정도 목격했다는 점을 지적했다.9

힙스터에게 문제의식이 없다고 폄하하는 것은 힙스터가 구조적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감과 패배감을 모르고 하는 비판이다. 힙스터의 선배들은 세계화에 저항해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 등 대규모의 시위를 일으켰지만 전 세계를 장악하는 글로벌 대기업들은 속속 탄생했다. 부의 양극화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청년들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날이 갈수록 양극화 문제는 심화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힙스터는 더 이상 거대 담론을 얘기하지 않는다.

힙스터가 에너지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자전거를 사서 출퇴근하는 식으로 삶을 바꿀 것이다. 거대한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것보다 이런 방식이 ‘더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교통보다 자전거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더 진정성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도 자전거에 비하면 덜 친환경적이다.

한동안 힙스터들 사이에서 픽시(Pixie) 자전거가 필수 품목 중 하나였던 원인이 여기에 있다. 기어가 고정돼 있어 페달을 밟는 대로 움직이는 픽시 자전거의 매력은 단순함이다. 단순한 만큼 저렴하고 가볍기 때문에 픽시 자전거는 내 멋대로 꾸미기에도 용이한 물건이다. 바퀴부터 핸들, 페달까지 알록달록한 색으로 코팅하고 갖가지 장치를 부착하는 등 한껏 개성을 드러낸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자전거도 아니고 복잡한 기능이 잔뜩 포함된 자전거도 아니다. 단순하지만 유일한 픽시 자전거는 힙스터에게 꼭 맞는 제품이다.

문제는 힙스터가 태생부터 모순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간단하게 말해 힙스터들은 다 같은 것, 그저 주어지는 것을 피하려고 하다 보니 도리어 하나의 모습을 갖게 된다. 획일적인 것을 거부하려 했지만 결국 ‘힙스터스러움’을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몇 가지 아이템으로 수렴한다. 모순적이게도 힙스터는 힙스터이기를 거부해야 진정한 힙스터가 될 수 있다.10

2∼3년에 한 번씩 이직(移職)하는 33살 마케팅 전문가 B씨는 스스로를 “힙스터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힙스터다. 그가 최근 소비했던 모든 상품은 힙스터라면 관심을 가졌을 법한 것들이다. 픽시 자전거, ‘무인양품’의 단순해 보이는 생활용품, 출판사 없이 발간되는 독립 잡지, 20년 전에 썼을 법한 필름카메라,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턴테이블. 상품의 구입 주기는 매우 짧다.

“제가 픽시 자전거나 필름카메라를 살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TV에서, 신문에서 픽시 자전거가 유행이다, 필름카메라가 다시 많이 팔리기 시작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 이유가 희석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속적으로 힙한 것을 찾아다니는 힙스터는 하위문화의 주체라기보다 얼리어댑터, 블루슈머(Bluesumer), 프로슈머(Prosumer), 모디슈머(Modisumer)11 에 가까워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힙스터의 하위문화적 특징은 사라지고 스타일로서 힙스터만 남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힙스터는 바로 이 시점에서 수입됐다. 거의 모든 하위문화가 그렇듯 힙스터 역시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문화사적 변화를 거쳐 형성된 힙스터가 스타일만 남게 될 무렵 유학생이나 젊은 여행자를 중심으로 힙스터 문화가 점차 알려졌다. 한 예로 서드웨이브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을 들 수 있다. 처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할 때만 해도 스타벅스에 대항하는 ‘진정성 있는’ 카페처럼 보였던 블루보틀이 미 전역에 매장을 두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되고 나서 한국에서도 ‘블루보틀스러운’ 카페가 유행했다. 이런 카페에서는 미니멀 한 인테리어,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 같은 것이 꼭 포함돼 있다.

커피뿐만 아니라 한국의 힙스터는 문화 교류로 얻어진 결과물이다. 미국에 공부하러 떠났던 유학생, 여행자들이 경험했던 힙스터 문화는 일종의 집단의식을 만들어줬다. 천편일률적이고 위계적인 한국 사회에 불만을 갖고 있던 청년들에게 미국과 유럽의 힙스터 문화는 자신의 사회적 기반을 흔들지 않고도 ‘남다름’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한국에서 힙스터 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알기 위해서는 ‘힙’한 정서를 공유하는 힙합의 수입 경로를 관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한국 힙합 장르는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했는데 특히 힙합 자본은 힙합의 장르적 성장보다 더 빠르게 진화했다. 한국에서 힙합은 사회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라기보다 음악 장르의 하나로 수입됐다. 한국 래퍼와 힙합 팬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정서’가 아니라 ‘스타일’이었다. 차별과 억압에 분노하는 정서가 아니라 힙합의 역사가 만들어낸 저항의 스타일에 래퍼와 팬들은 강한 매력을 느낀 것이다. 한국 힙합문화와 래퍼에 대해 연구한 성연주 등에 따르면 “한국 힙합장의 래퍼들은 모두 비슷한 외모와 패션을 선보인다”고 한다.12  이런 경향은 힙합의 진입장벽도 많이 낮췄다. 누구나 몇 가지 아이템만 가진다면 래퍼나 힙합 팬으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

힙스터도 힙합과 마찬가지다. 한국의 힙스터는 스타일로 설명된다. 문화사적으로 힙스터가 형성된 역사에 공감하기보다 힙스터의 스타일로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 하는 추종자에게 힙스터는 매력적인 집단이다. 몇 가지 아이템만 갖추면 힙스터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보니 진입장벽도 낮은 편이다.

현실주의자 힙스터가 원하는 것을 보라

여기서 바로 한국 힙스터가 가지는 비즈니스적 함의가 도출된다. 한국의 힙스터는 타협의 문제를 안고 있다. 힙스터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은 매우 약하다. 미국 뉴욕의 힙스터는 한눈에 봐도 힙스터임을 알 수 있는 패션을 선보인다. 힙스터의 직업을 분류해보면 창작자, IT 산업 종사자 등으로 좁혀진다. 하지만 한국의 힙스터는 평범한 시민에 가깝다. 대기업 사원으로,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도 힙스터 아이템을 갖추며 힙스터 스타일을 즐기는 ‘현실주의자 힙스터’가 더 많다.

한국에서 힙스터와 비즈니스의 접점은 ‘진짜 힙스터’가 아니라 ‘현실주의자 힙스터’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시작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로 번진 미국 힙스터들의 삶에 대해 관찰한 사쿠마 유미코의 『힙한 생활 혁명』에는 생활 방식을 바꾼 힙스터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식재료를 살 때는 주말마다 동네에 조그맣게 열리는 생산자 시장에 간다든가, 건물 옥상에 정원을 만들어 놓고 직접 수확하는 힙스터들이 있다.13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 ‘힙한 생활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힙스터는 많지 않다. 대신 식품 전문 쇼핑앱 ‘마켓컬리’나 ‘헬로네이쳐’에서 생산자 사진과 함께 소개되는 친환경 농산물을 구입한다.

현실주의자 힙스터가 어느 지점에서 현실과 타협하는지를 관찰하는 일은 다음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기도 한다. 초기에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훌쩍 아이슬란드, 남미로 떠난 힙스터들이 있었다. 안락한 생활을 제쳐두고 힘들고 고된 길을 택한 힙스터들은 한국에 돌아와 ‘나를 찾는 여행’을 했다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도자 격인 힙스터의 뒤를 이은 것이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이다. 이들은 선배 힙스터처럼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훌쩍 떠나지 않는다.

대기업 통신사에 근무하면서도 일 년에 서너 번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여행지로 여행을 다녀오는 30대 초반의 한 힙스터는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의 줄임말)’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에 그는 추석 연휴를 이용해 남미 3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겨울 승진심사를 통과했다.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만두지 않기 위해서 여행을 다녀오는 것 같아요. 한 번 바람을 쐬고 나면 현실을 받아들이기 편하거든요.”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에게 힙한 아이템이란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반항심을 가라앉히고 현실과 타협할 수 있게 만드는 것들이다. 현실에 타협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누구나 힙스터가 될 수 있지만 완전한 힙스터로 사는 사람은 드물다’.

TV를 보지 않고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힙스터, 퀴어축제에는 가지 않지만 퀴어영화는 일부러 찾아보는 힙스터, 음반을 사지 않지만 음악 페스티벌에는 참여하는 힙스터같이 힙스터의 현실 타협 지점에는 ‘힙스터스러움’을 소비하고자 하는 일반인에게도 적용되는 ‘힙’한 것들이 많다.

한국 힙스터들이 좋아하는 대중음악 가수 중 f(x)가 꼽히는 것은 그래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f(x)는 대형 기획사 SM에서 철저히 기획해 만들어진 여성 아이돌그룹이지만 전형적인 아이돌그룹의 리듬과 스타일에서 벗어나 있다. 힙스터가 f(x)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에는 대중적인 아이돌그룹이 주는 즐거움, 예를 들어 멋진 외모와 세련된 팬서비스 마케팅을 즐기는 동시에 획일적인 아이돌 시장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도 표현할 수 있다.

현실주의자 힙스터에 대한 문화학적 분석은 이제 와서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이전의 하위문화 집단은 체제와 변주하는 다양한 상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힙스터는 오히려 명료하다. 저항과 타협의 경계를 이루는 스타일 이외에 힙스터가 숨기는 것은 없다. ‘주의(ism)’처럼 보이지만 힙스터는 그저 행동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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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자 힙스터 공략법

1. 불편한 식당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코브라파스타클럽, 홍대 인근의 버터밀크, 경기도 고양시의 양지미식당, 제주도 주르레식당. SNS에서 가장 핫한 이 음식점들의 공통점이라면 ‘불편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여러 음식점 브랜드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졌지만 장진우 셰프의 ‘장진우식당’ 역시 같은 이미지였다.

우선 이 음식점들은 찾아가기 쉽지 않은 위치에 있다. 망원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코브라파스타클럽은 예약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곳이다. 매일 밤 10시 반에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다음날 예약을 받는데 선착순이라 1분만 늦어도 예약에 실패하기 일쑤다.

홍대 인근의 팬케이크 전문점 버터밀크 같은 곳은 예약을 아예 받지 않는다. 테이블이 5∼6개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음식점인데 개점시간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야 겨우 개점시간에 맞춰 입장할 수 있다. 식당에 들어가서도 음식이 나오기까지 30분은 넘게 걸린다.

현실주의자 힙스터는 이런 식당을 놓치지 않는다. 꼭 코브라파스타클럽처럼 예약하기조차 어려운 곳이 아니더라도 주인이 직접 재료를 사 와서 주문받고 만드느라 느리게 제공되는 음식점은 요즘에 매우 ‘힙’한 장소다.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에게 기다림, 불편함 같은 요소는 평소에는 잊고 지내지만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힙’함은 ‘슬로시티’나 ‘슬로푸드’ 같은 사회 운동이 추구하는 ‘느리게 살기’와는 다르다. 슬로푸드 운동은 생활양식 전반을 바꾸려는 것이지만 힙스터의 ‘불편한 식당’은 체험에 가깝다.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어렵지만 제공된 불편함을 즐기는 일은 쉽다. ‘불편한 식당’은 날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막상 채식 인구나 슬로푸드 시장이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느리게 살기’의 취지에 공감하는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은 삶을 바꾸기보다 체험함으로써 현실과 타협한다.

2. 시장: 플리마켓, 야시장

힙스터들은 대형 마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상징하는 대형 마트야말로 힙스터들이 방문하기 꺼려 할 만한 장소다. 그렇다고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이 전통시장을 즐겨 찾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주말이나 특정 날짜에 열리는 플리마켓에 간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한남동, 마포구 연남동 인근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플리마켓 일정과 개최방식은 주로 SNS를 통해 알려지곤 한다. 이들 플리마켓에서 파는 품목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마을마다 열리는 주말 농산물 시장과는 좀 다르다. 가죽제품, 장식품, 사용하던 가방이나 의류 등이 대부분이다. 생활필수품은 대형 마트에서 구매하지만 플리마켓에 들러 생산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현실주의자 힙스터의 현실적인 소비 생활이다.

이런 플리마켓을 활용하는 스타트업도 생겨나고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시작한 ‘아이디어스(www.idus.com)’는 판매자가 직접 생산한 물건을 파는 온라인 플리마켓이다. 주로 판매되는 제품은 디퓨저, 향초, 가죽제품 등. 오프라인 플리마켓에서 주로 보던 제품들이다.

3. 아날로그 아이템: LP, 라디오, 양날면도기

디지털은 더 이상 힙하지 않다. 빠르고 효율적인 디지털은 힙스터가 저항하고자 하는 사회의 메인스트림이 돼버렸다. 힙스터라면 자연스럽게 ‘반(反)디지털’로 향하고자 하겠지만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은 러다이트(Luddites, 신기술 반대자)가 아니다.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의 반디지털적인 삶은 아이템으로 구성된다.

LP와 턴테이블은 디지털화된 음악의 ‘본질’을 되살려주는 좋은 아이템이다. 마음대로 고르고 건너뛰며 듣는 디지털 음악이 아니라 창작자의 의도대로 기다려 듣는 아날로그 음악을 힙스터들은 좋아한다. 그렇게 아날로그 LP판을 읽는 요즘의 턴테이블에는 블루투스나 USB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돼 있다. 무겁고 쓰임이 한정적인 아날로그 제품보다 현실주의자 힙스터들은 디지털이 가미된 ‘디지로그(Digilog)’ 제품을 즐겨 찾는다.


결론: 한국형 힙스터, 현실주의자 힙스터

이 글에서는 한국의 힙스터들이 실제 삶의 방식 자체를 완전히 힙스터로 바꾸었다기보다는 ‘힙한 스타일’을 수입해옴으로써 ‘아이템’과 몇 가지 ‘행동’ 위주로 집단을 형성해왔음을 밝혔다. 물론 미국과 유럽의 힙스터처럼 생활하는 경우도 있고, 그중 일부는 농담처럼 ‘효리를 따라 제주도로 이사’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비즈니스 측면에서, 비즈니스 친화적이지 않은 ‘힙스터’가 비즈니스와 만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힙스터 스타일’을 완성시켜줄 수 있는 아이템과 장소를 파악하고, 선점하며, 궁극적으로는 ‘소비’의 형태로 ‘힙한 스타일’을 따라오는 ‘현실주의자 힙스터’를 공략할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덕후’처럼 그 자체로 대량 소비 집단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스타일은 그 자체로 수많은 현실주의자 힙스터, 그 뒤를 따르는 힙스터 추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작지만 영향력 있는 시장을 끊임없이 창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meinen.29@gmail.com
필자는 서울대 인류학과 재학 시절부터 여성주의, 문화학, 인류학 및 사회학에 관심을 가져왔고, 현재도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와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탈학교’ 학생으로 10대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청소년 하위문화/서브컬처에도 관심이 많다. 한국의 여성 서브컬처를 관찰하고 제대로 분석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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