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3. 컨셉 기반 플랫폼

여기서만 보고 즐길 수 있는 건 무엇? 컨셉 탄탄한 플랫폼에 경계는 없다

242호 (2018년 2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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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제품 특성에 기초한 브랜드는 다양한 상품군으로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라이프 스타일 컨셉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를 무한 확장하는 일본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무인양품은 ‘이유 있게 싼’ 컨셉으로 결코 싸지만 않게, 다양한 제품군을 판매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츠타야, 이토야 같은 회사들도 고객을 오래 머물고 싶게 만드는 컨셉을 바탕으로 플랫폼 기능을 함으로써 고객 구매를 전방위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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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확장,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브랜드를 해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이름을 모든 곳에 다 갖다 붙이는 것이다.”

브랜드와 관련한 유명한 경구다. 이 경구를 증명하는 사례로는 구찌(Gucci)가 대표적이다.

188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한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구치오 구치(Guccio Gucci)는 1923년 승마 관련 가죽 전문점인 자신의 첫 가게를 낸다. 2차 세계대전 무렵 부족한 가죽 대신 캔버스 천으로 만든 가방이 오히려 호응을 얻으면서 세계적 브랜드로 도약한다. 1960년대 말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1970년대 들어서면서 20년간의 암흑기를 맞이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가문 내 형제들 간 재산 싸움이 심했다. 법적 문제를 다투느라 기업을 돌볼 형편이 못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무분별한 라이선스 남발이었다. 어린 시절 동네 목욕탕에서도 구찌 로고가 박힌 수건을 볼 수 있었다. 동네 시장에서 몇 켤레씩 묶어 파는 양말에도 구찌 로고가 박혀 있었다. 모조품인지, 실제 라이선스를 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구찌는 명품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결혼 20주년에 집사람에게 구찌 가방을 선물하면 다음 날 아침 밥상이 달라진다(나빠진다는 의미)’는 조롱 섞인 말까지 나왔을까!

다행히도 구찌는 1994년 톰 포드(Tom Ford)가 디자인 총책임을 맡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브랜드 라이선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 제품이 무려 10만여 종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 상품군을 대폭 축소하면서 구찌의 부활이 시작됐다. 구찌 사례는 아무리 좋은 브랜드라고 해서 아무 상품에나 갖다 붙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줬다.

1990년 브랜드 연구의 대가인 데이비드 아커(David Aaker) 교수와 케빈 켈러(Kevin Keller) 교수는 몇몇 유명 상품과 가상의 브랜드 확장에 대한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브랜드 확장에 관한 가장 유명한 논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예컨대 맥도날드가 즉석 사진 현상소 사업에 진출한다. 그럼 고객은 무엇을 연상할까? ‘저질 사진’을 가장 많이 떠올렸으며 ‘음식 사업이나 잘해라’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그나마 괜찮았던 코멘트는 ‘빠르기는 하겠다’ 정도였다. 이번에는 맥도날드가 테마파크 사업에 진출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뭔가 재미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가족 공원 같다’는 반응이 나타났다. 패스트푸드와 테마파크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어린이, 가족, 생일 파티 등의 연상 작용이 궁극적으로 테마파크와 잘 연결된 것이다. 맥도날드의 친근한 모습이 좋은 반응을 얻는 데 한몫했음이 틀림없다.

수많은 브랜드 전문가는 함부로 브랜드 확장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The Immutable Laws of Marketing)』으로 유명한 앨 라이즈(Al Ries)와 잭 트라우트(Jack Trout)는 “브랜드 확장이 지나치면 이미지를 희석해 브랜드 전체의 힘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들도 전문가들의 의견에 수긍해 브랜드 확장을 자제해왔다. 예컨대 청정원이란 브랜드는 사이다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다. 사이다를 만들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컨셉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칠성사이다라는 이름을 들으면 청량감이 떠오르지만 청정원 사이다라는 이름을 들으면 조미료와 연관된 사이다를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릴 수 있다. 만약 청정원이 사이다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당연히 다른 브랜드를 쓸 것이다.

무인양품, 기존 브랜드 이론을 무력화하다

그런데 기존 브랜드 이론을 완전히 뒤집는 브랜드가 등장했다. 바로 무인양품이다. 무인양품은 지우개, 노트 등 필기구부터 티셔츠, 양말, 청바지 등 의류, 새우깡 같은 과자류까지 판다. 일본 도쿄역 근처 유라쿠초(有楽町)역 인근에 위치한 무인양품의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에 가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옥수수, 감자같이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다. 농부의 이름, 사진뿐 아니라 재배하는 과정을 비디오로 찍어서 보여준다. 제품에 신뢰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오두막집도 판다. 재료비, 시공비 합쳐서 300만 엔 정도인데 지난 11월 말까지 총 6채를 팔았다고 한다. “우리가 이런 것까지도 판다”며 장식용으로 파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2층에 올라가면 식당(meal & cafe)이 있다. 건강식 위주로 1식3찬을 제공한다. 가격도 1000엔 이하로 저렴한데 맛도 있어 늘 장사진을 이룬다. 제품으로만 본다면 무인양품에는 CJ제일제당, 에잇세컨즈, 한샘가구, 아모레퍼시픽, LG전자, 두산건설, 에이스침대, 삼천리자전거에 양재동 원예타운, 에버랜드 급식사업부까지 다 들어 있는 셈이다. 세상에 이런 브랜드가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금의 무인양품이 탄생한 배경을 살펴보자. 1964년 무인양품을 만든 쓰쓰미 세이지(堤清二)의 부친이 사망한다. 그의 부친은 당대 유명 사업가 및 정치가로서 부동산과 철도 관련 큰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쓰쓰미 세이지는 세 번째 부인의 아들이었는데 부친은 법적으로 부인은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부인이라 불리는 여성이 낳은 아들 쓰쓰미 요시아키(堤 義明)에게 재산의 대부분을 물려줬다. 쓰쓰미 세이지가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당시 2류 백화점이었던 세이부(西武)백화점뿐이었다. 애첩의 아들을 보는 본처 아들의 심경이 어땠을까. TV 막장 드라마에서처럼 극도의 분함과 억울함으로 화병에 걸릴 지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이지는 이복동생과 법정 다툼에 들어간다. 그렇지만 그 소송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있었던 같다.

그는 법정 다툼 기간 미국에 건너가 시어스(Sears, Roebuck and Company)를 방문한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1980년대까지 미국 1위 유통업체를 고수했던 시어스를 방문하는 건 벤치마킹 차원에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세이지는 시어스의 연구실을 지나다 연구원들의 대화를 듣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책상에는 일본 카메라를 포함해 전 세계 카메라 20여 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저 카메라는 셔터 속도가 1/2000이야. 그런데 이를 1/500로 느리게 해도 사진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별 차이를 못 느끼지. 그렇다면 속도를 조금 느리게 하고 가격을 낮추는 게 좋지 않을까?” 연구원들은 제조 물량과 가격에 관한 문제를 얘기하고 있었다.

시어스는 유통업체다. 제조업체가 만든 제품을 마진을 붙여 소비자에게 넘기면 된다. 그런데 유통업체가 제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당시 세이지에게 강한 충격을 줬다. 시간이 흘러 1980년, 본인이 미국에서 보고 온 것을 실현할 때가 왔다고 판단한 세이지는 임원들과 외부 전문가를 불러 모아 PB(Private Brand) 상품을 만들 것을 지시한다. 당시 세이부백화점 그룹 내에는 세이유(西友)라는 양판점이 있었는데 이곳의 PB로 무인양품(無印良品)을 론칭한다. 무인양품이 무슨 뜻인가? 브랜드는 없지만 품질이 좋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신세계에서 운영하는 노브랜드(no brand)라는 PB의 원조 격이다.

세이지는 당초 40개의 제품을 내놓았는데 그중 ‘깨진 표고버섯’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본인은 국물 맛을 내는 다시(dashi)를 중요하게 여긴다. 표고버섯을 그 용도로 많이 구매하는데 모양이 예쁘고 흠집이 없는 것을 고가에 구매한다. 그런데 어차피 국물용 표고버섯은 찢어서 넣지 않나? 깨진 표고버섯도 국물 맛을 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나? 이런 제품을 저렴하게 팔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소비자에게 던졌다. 1980년 일본 소비시장에는 ‘싼 게 비지떡’이란 인식이 남아 있었다. 당연히 가격이 비싼 제품이 좋은 제품이란 의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무인양품의 ‘깨진 표고버섯’ 제안은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차피 국물을 낼 것이란 이유로 가격이 싸다면 기꺼이 구매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유 없이 비싼 제품이 아닌 ‘이유 있게 싼(わけあって、安い)’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컨셉이었다. 이런 컨셉은 무인양품의 제품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무인양품 하면 가성비, 무조건 싸지 않더라도 심리적 만족을 주는 가심비가 뛰어난 제품이라 생각한다. 무인양품은 일본어로 ‘무지루시료힝’이라 발음한다. 줄이길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앞의 두 글자를 따서 무지(Muji)라고 읽는다. 애플 마니아가 있듯 무지러(Mujier)도 있다. 무지러는 무인양품의 철학에 공감해 지우개건, 간식거리건 무인양품만을 구매하는 소비자를 지칭한다.

소비자가 기업의 철학에 공감한다면 기업은 무서울 게 없다. 어느 제품군이든지 다 진출할 수 있다. 40년 가까이 내려온 무지의 철학은 단순함(simple), 더 나아가 비어 있음(emptiness)이다. 제품의 거품을 빼고, 포장의 거품을 걷어내면서 무인양품은 거의 모든 상품군에 브랜드를 붙이고 있다. 심지어 무인양품 호텔도 있다. 2018년 1월18일 중국 선전(深川)에 문을 열었다. 조만간 베이징에도 생긴다. 일본에는 2019년 봄에 긴자(銀座)에 문을 연다. 무인양품 호텔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심플한 이미지의 자사 제품이 가득 차 있고, 자사 제품이 커버 못하는 부분도 무인양품과 어울리는, 무인양품의 철학에 동참하는 제품이 가득 차 있는 호텔이 떠오른다. 무인양품 유라쿠초 3층에 가면 무인양품의 미래를 보여주는 코너가 있다. 무지 인필(Muji infill)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집안 살림 모두를 무지 제품으로만 채우겠다는 발상이다. 현재 어디까지 진출해 있고, 향후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뜻이다. 모든 제품을 다 만드는 무지. 브랜드 확장이 지나치면 이미지를 희석시킨다는데 무지는 거칠 것이 없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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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의 시대는 끝, 이젠 플랫폼 경쟁이다

제품의 시대에서 플랫폼의 시대로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다 같은 제품은 편의점에서 팔려도 사이다고, 마트에서 팔려도 같은 사이다이다. 그런데 무지는 제품이 아니라 플랫폼이다. 1980년에 첫 PB 브랜드를 론칭할 때만 해도 40개의 제품군이었다. 론칭에 성공하자 1983년 아오야마에 1호점을 개장했다. 이때부터 무지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스스로 상품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상품의 품질을 보증했다. 무조건 싼 게 아니라 ‘이유 있게 싸다’는 컨셉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무지의 베스트 상품인 버터치킨카레는 연간 170만 봉지가 팔린다. 가격은 300엔대 후반. 같은 사이즈의 다른 브랜드 카레들이 150엔∼200엔대인 데 비하면 엄청 비싼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싸서 무지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이소에 가는 게 맞다. ‘무지’라는 플랫폼에 열광하기 때문에 무지를 방문하고, 또 구매하는 것이다. 무지도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다. 물건을 판매하려고 노력하면 소비자는 외면한다. 소비자가 무지라는 플랫폼에서 오랜 시간 머물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소비자는 지갑을 연다. 요즘 수많은 플랫폼이 카페나 식당을 넣어서 재단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소비자를 오랜 시간 머물게 하기 위해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회사 츠타야(Tsutaya)도 플랫폼 기능에 충실하다. 츠타야를 창업한 마스다 무네야키(增田 宗昭)의 블로그 글을 옮긴 책이 경제경영 서적 판매량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한국에서 츠타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시부야(渋谷) 근방에 위치한 다이칸야마(代官山) 츠타야를 포함해 일본에 1400여 개의 츠타야가 있다고 소개되는데, 여기에는 오류가 있다. 츠타야는 크게 츠타야, 츠타야서점, 츠타야가전으로 나뉜다. 일본에 1400여 개 있다고 알려진 츠타야는 책, CD, 비디오를 대여해 주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동네마다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 크기의 매장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츠타야서점은 츠타야보다 10∼50배 정도 더 크다.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어 책을 사지 않더라도 스타벅스에서 음료 한 잔만 구매하면 원하는 시간만큼 머물 수 있다. 스타벅스 매출이 츠타야서점 매출로 잡히는 구조다. 10개가량의 츠타야서점 중 가장 성공한 곳이 2011년에 개장한 다이칸야마 츠타야다. 평일이건, 휴일이건 손님이 가득 차 있다. 창가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책과 함께 커피를 즐기는 손님들 얼굴에 행복에 가득하다. 츠타야서점은 책을 파는 책방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책을 중심으로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츠타야서점에선 책뿐 아니라 책과 연관된 다른 제품들도 판다. 가전제품과 관련된 책 코너에서 발뮤다 밥솥을 파는 식이다.

직접 방문한 츠타야가전은 더 상상을 초월했다. 일단 책을 판다. 화훼 관련된 책이 진열된 코너에서는 꽃도 판다. 술 관련된 책이 진열된 코너에서는 와인을 판다. 한복판엔 요가 관련된 책이 진열돼 있는데 그 옆에선 요가를 하고 있다. 가전 관련 책이 진열된 곳에는 스멕(smeg) 냉장고, 발뮤다(Balmuda)의 온갖 제품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얼마나 팔릴지 궁금했다. 가전제품은 요도바시카메라, 빅카메라 같은 할인점에서 싸게 판다. 굳이 여기서 살 이유가 없다. 츠타야가전에서 근무하는 직원 여럿에게 직접 물어봤다. 집요하게 질문해봤지만 그들은 끝내 답변하지 못했다. 계획한 만큼 판매량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일단 집객에는 성공했다는 점이다. 스타벅스 커피는 여기서도 필수다. 그리고 절대로 빈 잔을 버리면 안 된다. 실제로 잔이 없는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면 어디선가 종업원이 나타났다. 그나마 영수증을 안 버렸으면 다행인데 영수증마저 없다면 한 잔을 더 시켜야 한다.

츠타야, 츠타야서점, 츠타야가전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츠타야라는 이름과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책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으로 가전 등으로 사업을 무한 확장하고 있다.

플랫폼 공간이 성공하려면 고객을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수익성부터 고민하면 망하기 십상이다. 고객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오래 머물게 하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필자는 한 달에 한두 번 출장차 일본에 갈 때마다 다이칸야마 츠타야를 꼭 들른다. 늘 나올 때마다 좀 더 머물고 싶어 아쉬워한다. 국내에서는 하남 스타필드가 플랫폼 역할을 잘하고 있다. 일단 주차장이 무료다. 주차요금 걱정 안 하니 간 김에 하루 종일 있게 된다. 백화점에서 고객이 보통 두세 시간 머문다면 하남 스타필드에서는 기본 대여섯 시간을 머물게 된다. 대여섯 시간 머물려면 최소 한 끼 식사는 그곳에서 해결해야 한다. 식사한 후 커피는 필수다. 차까지 마시고 나면 한 바퀴 둘러보게 된다. 일반 백화점과는 다른, 외국 쇼핑몰에 온 느낌에 취한 사람들은 마치 여행지에서 돈 쓰듯 지갑을 열기 시작한다. 하남 스타필드의 현재 수익성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인 전략의 방향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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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더 오래 머물게 하는 컨셉이 관건

브랜드가 라이프 스타일을 타고 무한대로 확장하는 시대가 열렸다. 츠타야는 책을 중심으로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한다. 마케팅 업계에서 유명한 긴자의 쌀집 아코메야(Akomeya)는 쌀을 중심으로, 긴자의 문구점 이토야(Itoya)는 문구를 중심으로 한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한다.

이토야는 긴자 대로변에 있는 G 이토야와 그 뒤편에 있는 K 이토야로 구성된다. G 이토야의 모토는 ‘머물고 싶은 공간’, K 이토야의 모토는 ‘어른들의 비밀 아지트’다. 구체적인 컨셉은 다르지만 결국 고객에게 오래 머물러달라는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 돈을 쓰게 될 테니까. 사람들이 오래 머물게 하는 데는 카페나 식당이 필수다. 그래서 이토야는 G 이토야 꼭대기층을 식당으로 만들었다. 바로 아래층에서는 상추를 수경 재배한다. 그 상추로 샐러드를 만드는데 가장 비싼 땅에서 만든 상추라고 한다. 호기심에서라도 한번 먹고 싶어진다. 먹고 나서 배부르면 소화시킬 겸 천천히 매장을 구경한다. 천천히 구경하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호기심은 결국 구매로 이어진다. 이토야를 떠나면서 나도 모르게 몇 개의 물건을 구매했다. 충동구매지만 기분 나쁘기는커녕 작은 행복을 느꼈다. 이토야 디자인이 들어간 100엔짜리 볼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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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트렌드를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소확행(小確幸·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1986년에 발행한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ランゲルハンス島の午後)』의 한 챕터 제목으로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바쁜 일상이지만 순간순간 느끼는 작은 즐거움. 1970∼1980년대 버블 경제 붕괴에 따른 경기 침체로 어렵게 지낸 경험에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심리가 강해졌다고 한다. 예컨대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큰돈을 들이지 않고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이런 행복을 한 방에 제공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이 앞으로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물론 브랜드도 여전히 중요하다. 브레게(Breguet), 오메가(Omega)는 모두 명품 시계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글로벌 시계 시장에서 가장 시장점유율이 높은 스와치(Swatch)그룹의 대표 선수라는 점이다. 스와치는 18개 정도의 시계 브랜드를 갖고 있는데 이 중 7개 브랜드 매장이 있는 플랫폼을 이미 10년 전에 긴자에 만들었다. 니콜라스하이에크센터(Nicolas Hayek Center)라고 명명한 이 플랫폼은 스와치그룹의 플래그십 역할을 톡톡히 한다.

당신이 하는 사업을 플랫폼으로 바꿔 생각해 보자. 그럼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미적 가치의 추구’라는 컨셉을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으로 변신해야 한다. 미장원 공간에 헤어디자인은 물론 미적 가치와 관련된 다양한 상품이 진열될 수 있다. 향수나 속옷, 심지어 미술품일 수도 있다. 미적 가치에 관한 책과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는 필수적으로 장착해야 한다. 이때 카페는 미술관에 부설된 카페 디자인을 참조하면 좋지 않을까. 미장원도 그저 헤어스타일을 가꾸는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몇 시간이고 체류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래서 다음에 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진화해야 한다.

필자는 국내에서 아직 그런 공간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책방에서 진화한 츠타야, 쌀집에서 진화한 아코메야, 문구점에서 진화한 이토야를 보면 이미 누군가는 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미국 화장품 브랜드 레블론(Revlon)의 창업자인 찰스 레브슨(Charles Revson)은 “우리는 공장에서 화장품을 만들지만 우리가 가게에서 파는 것은 희망이다(In the factory we make cosmetics, in the store we sell hope)”라는 명언을 남겼다. 지금 회사가 아직도 공장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정말 큰 일이다. 최소한 가게 수준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속히 가게를 플랫폼으로 변신시켜야 한다. 그것도 여러분의 고객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오고, 떠날 때는 아쉬워하는 그런 공간으로 말이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nexio@factory8.org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드림웍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연구실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공저)』, 『잉잉? 윈윈!』, 『빅프라핏(공저)』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58호 Delicious Strategy 2018년 10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