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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컨셉 메이킹 방법론

‘자기다움’을 표현하는 단 한 단어, 평범한 컨셉을 특별하게 만든다

김동욱 | 242호 (2018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컨셉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성과 소비자 니즈를 결합하는 동시에 시장의 비어 있는 틈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변화무쌍한 디지털 시대에 컨셉을 만드는 이론이나 공식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결국 좋은 컨셉은 브랜드의 ‘자기다움’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좋은 컨셉은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고, 고루한 유산을 새로운 자산으로 재탄생시킨다. 선입견을 거부하는 끝없는 회의, 한 단어를 향해 아이디어를 벼리는 치열한 과정을 감내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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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차별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는 대기업이나 유명 브랜드뿐 아니라 개인과 중소기업에도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해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 하지만 늘어난 기회만큼 경쟁의 강도가 높아졌다. 차별화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컨셉은 차별화의 압박을 넘어설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인데 많은 이가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곤 한다.

문제는 차별화를 위한 컨셉 만들기에 정해진 공식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변화무쌍한 디지털 시대에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컨셉을 만드는 작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돋보이게 만드는 힘은 결국 컨셉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필자는 광고업계에서 컨셉 디렉터로 일하면서 팀원들과 함께 만든 컨셉이 성공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은 컨셉을 만드는 법칙이나 기술이 따로 있기보다는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벼리는 과정에서 비로소 좋은 컨셉이 탄생한다는 진실이다. 성공적인 컨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똑같은 요리 달인의 레서피를 따라서 요리해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결과물을 내놓듯이 독자들도 필자의 경험을 참고해 자기만의 컨셉을 찾아내기 바란다.

약점도 강점으로 만드는 컨셉의 힘

‘한국의 버즈피드’를 표방한 피키캐스트가 창업 초기 10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며 10∼20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뉴스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일까. 피키캐스트는 ‘우주의 얕은 지식’이란 컨셉 하나로 대박이 난 이례적인 케이스다.

피키캐스트의 컨셉 메이킹은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오리엔테이션에서 광고주가 제시한 과제에서 출발했다. 광고주의 과제는 다음과 같았다.

“신문이나 잡지 같은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틀을 깨고, 모바일 환경에 맞춘 스낵 저널리즘을 표방한 미국의 스타트업이 바로 ‘버즈피드’다. 모바일 미디어 환경에 맞춘 에디터의 편집으로 10∼20대의 정서에 맞게 재탄생한 뉴스를 제공한다. 배달의민족처럼 1000만 다운로드를 만들어 달라. 그래서 카테고리의 리더에 걸맞은, 세상에 없던 특별한 브랜드가 돼야 한다.”

당시 1000만이란 숫자는 스마트폰을 가진 인구가 모두 다운로드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의 컨셉으로 세상에 없는 특별한 브랜드를 만들어달라니 다소 과도한 요구였다. 더군다나 광고 집행 비용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 스타트업이었다. 피키캐스트 경영진은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20대들인데다 광고 업무도 처음이었다.

해당 과제를 받은 필자의 팀은 우선 모바일 저널리즘이 생소한 대중들에게 피키캐스트가 어떤 회사인지 알려주는 것을 컨셉의 목표로 세웠다. ‘세상을 즐겁게’라는 피키캐스트의 경영 철학과 뉴스 생산 업체라는 피키캐스트 본연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자는 전략이었다.

피키캐스트가 추구하는 뉴스는 전통적인 뉴스의 성격과 달랐기 때문에 이를 새롭게 지칭할 단어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택한 단어는 뉴스 대신 ‘콘텐츠’였다. 젊은 감각으로 앞서가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장이 되겠다는 의미를 더해 ‘Joyful Contents Factory’라는 컨셉을 제시했다. ‘즐거운 콘텐츠 공장’이라고 하면 트렌드에 뒤처지는 것처럼 보일까 봐 영어로 제안했다.

하지만 광고주는 ‘Joyful Contents Factory’가 피키캐스트의 정체성을 정확히 말해주고는 있지만 주요 타깃인 10∼20대 초반도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타깃 유저인 10∼20대 초반의 감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올드하고 고리타분해 보인다는 악평이 이어졌다. 너무 뻔하고 평범해서 향후 강력한 경쟁 브랜드가 될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 카드뉴스가 이 컨셉을 말한다 해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피키캐스트의 신념이나 철학은 들어 있지만 소비자 편익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피드백이었다. 광고주들의 입맛에 맞춘다는 명목으로 날카롭기보다는 보편타당해 보이는 컨셉으로 타협했던 스스로를 뜨끔하게 만들었다.

이에 우리 팀은 타깃 소비자의 감성을 겨냥하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는 쪽으로 심기일전해 다음의 3가지 컨셉을 제시했다. 첫 번째 컨셉은 ‘세상 모든 이슈의 중심, 이슈 팩토리 피키캐스트’였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거나 인기 있는 콘텐츠를 보면 공통적으로 ‘어제-, 요즘-, 잘나가는-, 요즘 뜨는-’ 같은 것들이다. 즉 타깃 세대들은 즉시성이 있는 콘텐츠를 좋아한다.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고 싶지 않고, 시대에 앞선 이야기들을 소비하고 싶은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이 컨셉은 에디터들이 직접 콘텐츠를 편집하고, 하루에 재깍재깍 2∼3번 업데이트해서 이슈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해줄 수 있는 최고의 미디어라는 점을 어필할 수 있다. 이슈가 될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스낵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피키캐스트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 컨셉 ‘픽 하면 척’은 피키캐스트의 정체성보다 소비자 행동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컨셉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소한 것도 남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는 게 일상이다. 대화를 하더라도 “그 영화 봤어?”라고 묻는 대신 “그 영화 비하인드 기사 봤지?”라고 묻는다. 대화의 꺼리와 수다의 재료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앞서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이런 타깃 세대들이 피키캐스트 같은 미디어를 소비하려는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뒤처지지 않게 ‘척’하고 싶은 것 아닐까? 여기서 소비자가 ‘픽’만 하면 우리가 ‘척’하게 해주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컨셉 ‘픽 하면 척’을 제시했다.

‘우주의 얕은 지식’은 세 번째 컨셉이다. 타깃 세대인 대한민국 청년들은 모두 전쟁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피키캐스트는 이들에게 어떤 주제든 즐겁게 소개하고, 지루한 역사도 꿀팁으로 승화시키며, 방대한 이야기도 야매로 쉽게 풀어서 제공한다. 요즘 세대는 사진 한 장에도 쉽게 재미를 느끼고, 지식경연대회를 해도 ‘얕은 지식 경연대회’를 하고,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얕은 지식을 좋아하고 환호하는 시대정신에 따라 피키캐스트는 무게 잡지 않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다양성의 끝이 없는 콘텐츠를 다루는 미디어로 포지셔닝하겠다고 강조했다.

광고주들이 장고 끝에 결정한 컨셉은 첫 번째 ‘세상 모든 이슈의 중심 이슈 팩토리 피키캐스트’였다. 당시 광고주는 ‘우주의 얕은 지식’이란 컨셉은 너무 가볍고 회사가 향후 성장할 것을 감안했을 때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한다고 반대했다. 반대로 이슈 팩토리는 뉴스의 즉시성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회사가 넘버원이 되겠다는 다짐까지 담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컨셉디렉터인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세상의 모든 이슈’가 업계 넘버원이 되고 싶은 경영진이 혹할 수 있는 컨셉임은 분명하지만 그 컨셉이 가장 피키다운 컨셉인지는 의심스러웠다. 피키의 콘텐츠가 얕은 것은 피키만의 색깔이고 다른 브랜드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강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얕다고 하면 약점이지만 피키가 얕은 걸 얕다고 말하는 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었다. 필자는 “우주의 얕은 지식이야말로 피키의 정체성과 타깃들의 감성을 동시에 대변할 수 있는 컨셉”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광고주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진심이 담긴 설득에 손을 들어줬다. 지식의 얕음을 쉽고, 실용적이며, 재밌고, 개방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 피키캐스트의 정체성에 잘 맞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피키는 ‘우주의 얕은 지식’이란 컨셉으로 광고뿐 아니라 뉴스 콘텐츠까지 만들었고 1000만 다운로드의 목표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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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키캐스트의 컨셉이 먹힐 수 있었던 비결은 “그래, 우리 얕아, 그게 뭐 어때?”라는 식의 당당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얕음을 약점이라고 생각할 때 약점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나다운 정체성임을 당당하게 내세운 게 밑거름이 됐다. 광고주와 대행사가 컨셉 설계 단계에서 소비자와 브랜드의 정체성 양쪽에서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고 컨셉에 녹여내고자 한 최선의 결과물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꾸밈없는 자신의 모습에 당당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주변에 사람을 끌어모으고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매력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품이나 서비스, 기업의 컨셉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가진 특성 그대로를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 없는 걸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 않고 세상에 보여주는 게 진정한 브랜딩의 시작이자 남들과 다른 특별한 브랜드가 되는 지름길이다. 모두가 약점이라고 하더라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장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강력한 컨셉이 나올 수 있다.

브랜드 고유의 DNA를 놓치지 말자

데상트는 잘나가는 스포츠 의류 회사지만 신발 부문에서는 아디다스, 나이키 같은 글로벌 브랜드에 한참 뒤졌었다. 데상트가 러닝화 포지셔닝을 요청하는 경쟁 프레젠테이션 오리엔테이션에서 제시한 과제는 “데상트 러닝화가 가진 안정성(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발목을 잡아주는)을 포지셔닝하되, 데상트만의 색깔을 살리면서, 아디다스와 나이키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광고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과제를 받은 첫 느낌은 황당함이었다. 당시만 해도 러닝화는 경량감과 쿠셔닝이 없으면 팔리지 않던 시대였다. 그런데 반대로 바닥이 딱딱하고 뒤꿈치 보호를 위해 딱딱하게 발목을 잡아주는 러닝화의 특성을 ‘안정성’이란 스펙으로 강조해달라니 얼토당토않게 느껴졌다. 러닝화의 강자인 나이키와 아디다스와 다르게 포지셔닝할 수 있을까? 두 브랜드 사이의 비좁은 틈을 어떻게 비집고 들어갈까. 고민이 깊어졌다.

스포츠 웨어는 패션 업종이라 논리적이거나 이론적인 접근보다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감성적인 접근이 더 적합했다. 그래서 길을 정해놓고 한 방향으로 컨셉을 만드는 대신 마구잡이로 느낌 닿는 방향으로 아이디어를 내보자고 팀원들에게 제안했다. 그러다보니 워낙 다양한 방향에서 컨셉이 나와 처음부터 맞는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다. 6번에 걸친 회의 과정에서 버려진 컨셉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회의에서는 ‘Keep your perfor mance’ ‘Keep your running’ ‘Protect your balance’ ‘Keep all’ ‘Tight your running’같이 ‘안정성’이란 제품의 특성에 치우친 다소 1차
원적인 컨셉이 많이 나왔다. ‘Be wild’ ‘Dead run’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식의 소비자 편익에 집중한 컨셉도 나왔다. 소비자 중심이냐, 제품 중심이냐의 갈림길에서 중간 지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문제는 이런 컨셉들이 데상트의 정체성이 묻어난다기보다는 일반적으로 다른 어떤 브랜드를 갖다 붙여도 다 말이 되는 내용이었다. 이런 컨셉을 취하게 되면 기존 소비자 인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리딩 브랜드한테만 좋은 일을 시켜줄 위험이 크다. 팀원들에게 러너들이 “데상트의 제품 특징인 ‘안정성’이란 기능으로 얻게 될 소비자 편익을 함께 감안한 컨셉”을 만들어보자고 다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2차 회의에서는 ‘완주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나 ‘You Run We Run’(당신이 달릴 때 비로소 블레이즈 플러스의 러닝이 시작된다), ‘devil’s run(악마 같은 위험이 도사리는 도시를 위한 러닝)’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설명적이거나 추상적인 컨셉들이 다소 눈에 띄었다. 역시나 아쉬운 점은 경쟁사 러닝화 브랜드의 광고에서 나왔던 컨셉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팀원들이 소비자 편익을 감안한 쪽의 컨셉을 많이 들고 왔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소비자에게 제대로 각인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쉽게 말해 완주를 위한 기술이라고 광고를 만들면 데상트의 광고라고 생각하기보다 나이키나 아디다스의 광고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데상트를 극렬히 좋아하는 유저나 임직원이 아니라면 데상트에 관한 정보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싶었다.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3차 회의에서는 ‘러너의 저항력’과 ‘Keep your balance’처럼 저항력, 균형 같은 러너를 위한 가치와 감성을 결합한 컨셉들이 눈에 띄었는데 광고주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정도로 와 닿지 않았다. 너무 광의의 컨셉이고 가치 중심적이라 여전히 데상트 같은 후발주자들이 담기엔 큰 그릇처럼 보였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장비’ ‘5가지 기어’ 같은 말은 안정성도 느껴질 뿐 아니라 다른 광고에서도 본 적 없는 차별화된 단어였다. 하지만 운동화 브랜드, 그것도 외국 브랜드에 장비라는 워딩을 컨셉으로 쓸 수는 없었다. 신선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서 우선 장비와 기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고 무작정 좀 더 다른 것을 더 찾아보자고 팀원들을 독려했다.

회의가 3번째로 넘어가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회의에 던져진 컨셉들이 늘어나면서 더 헷갈리고 이렇게 결론을 못 내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닥친다. 이후로 5차 회의까지 컨셉 하나를 정하는 데 열흘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계속 파고, 복기하는 과정을 맴돌면서 복잡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선명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계속 같은 컨셉을 들고 오는 팀원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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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상트는 스키에서 시작됐어요. 스키웨어는 스키를 타는 이들에겐 중요한 장비인데, 장비가 그들의 안전과 퍼포먼스를 위한 도구예요.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안전과 퍼포먼스를 담보해줄 수 있는 그런 장비가 필요한 거지요. 그렇다면 안정성을 통해 러닝의 퍼포먼스를 책임지고 러너의 발목을 지켜주는 기술을 지닌 러닝화는 어떨까요? 어쩌면 러닝화는 러너들에게는 장비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데상트는 러너들을 위한 장비인 셈이죠.”

결국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승리한 컨셉은 ‘러너들을 위한 장비. Runner’s Gear, 데상트!’였다. 기어가 나오게 된 계기는 결국 데상트가 가진 스키 DNA에서 출발했다. 많은 이가 컨셉을 만들면서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를 좇아가려고 하다가 정작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DNA를 놓치고 있다. DNA에서 출발하는 게 식상해 보이고 내부에선 소위 질릴 법도 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진행한 광고 캠페인 중 홈플러스의 ‘빼는 것이 플러스다.’ 캠페인의 컨셉도 브랜드의 DNA에서 시작했다. 기업 내부에서는 근 10년간 이름에 들어 있는 플러스로 수백 편의 광고를 만들어왔는데, 또 쓰는 것에 식상해 했다. 하지만 신임 대표는 취임과 함께 내준 광고 캠페인의 오리엔테이션에서 모두의 예상과 반대로 플러스를 갖고 캠페인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줬다. 플러스는 회사 내부에선 지겹지만 소비자들이 기억해주고 알아봐주는 자산이라는 점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가진 자산이 그리 많지 않은데 수년간 쌓아온 플러스라는 말을 살리지 않고 죽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였다. 이에 필자는 새로워진 홈플러스의 캠페인에서 생활에 필요 없는 것은 빼고 파는 것이 소비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준다는 신임 대표의 경영철학을 담아 ‘빼는 것이 플러스’라는 컨셉을 제안했다.

기업의 실무자들은 회사의 DNA를 고루한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기억하는 것은 식상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하나의 단추 같은 것이다. 그 DNA를 소비자 인식 속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을 사용했는지 안다면 DNA를 간과하고 브랜드의 컨셉을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엄청난 낭비일 수 있다. 컨셉 설계는 그 브랜드가 가진 DNA가 무엇인지, 자산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물론 그 DNA를 활용할 때 과거에 했던 방식 그대로가 아니라 시대에 맞는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소통 방식을 차용해야 한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Running Gear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게 아니라 우주선의 착륙이라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 제품을 소비하는 이들의 취향에 맞는 광고로 만들었다. 또 홈플러스도 가수 윤종신의 목소리를 통해 홈플러스의 또 하나의 DNA이자 자산인 노래를 활용한 광고로 만들었다. ‘How to say’의 방법은 시대의 타깃 고객에게 맞게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토미 라소다 전 LA다저스의 감독은 “내 몸속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며 파란색 다저스 유니폼에 새겨진 DNA를 강조했다. 모든 브랜드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그만의 DNA가 있다. 그걸 무시하고서는 절대 좋은 컨셉이 나올 수 없다. 컨셉은 결국 브랜드의 ‘자기다움’을 소비자의 니즈로 해석해내는 것이다.

강력한 한 단어에 집착하라

혁신적인 상품과 직관적인 마케팅으로 유명한 현대캐피탈의 광고를 맡는 일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여느 광고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전문적이고 전략적인 브랜딩을 추구하는 광고주의 안목을 만족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은 2015년 기업 PR 광고를 통해 경쟁 브랜드와 차별화된, 독보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하고자 했다.

“자동차 금융과 개인 금융 두 가지 사업만 하는 금융회사로 소비자에게 각인시켜달라”는 게 현대캐피탈의 요구였다. 현대자동차가 대주주인 현대캐피탈은 대부업뿐 아니라 자동차금융을 대규모 취급하고 있는 게 다른 캐피탈사와 차별점이다. 이런 차별화된 특성을 살리는 게 주요 과제였다.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 금융을 하는 회사라는 것을 어떻게 소비자에게 각인할 수 있을까.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한 팀원이 던진 한마디로 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2 is all. 개인 금융과 자동차 금융. 어차피 이 두 가지가 전부 아니에요? 그리고 우린 이 두 가지 금융을 모두 잘한다는 자신감. 캐피탈 하면 대부업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소비자들의 관점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의 고민들이 명료하게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불편했던 것 중의 하나는 짧은 광고 시간, 많지 않은 매체 비용으로 효과를 보려면 지금보다는 더 간단하고 임팩트 있는 단어가 필요했다. “두 가지 금융이 다야”라는 문장으로 전체 광고를 이끌어가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이렇게 모호한 표현으로 광고를 만들면 구구절절 설명하는 광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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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팩트 있고 심플한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던 중에 머리나 식혀볼까 하는 마음으로 TV를 틀었다. 그렇게 우연히 유재석과 박진영이 가요제를 준비하는 ‘무한도전’의 한 장면을 보게 됐다.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막혀 있던 문제의 해답을 찾았다. “제가 항상 작업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게 단어예요. 뭐든지 한 단어에서부터 생각해야 해요. 음악도, 춤도, 패션도 다 한 단어에서 시작해요.” 컨셉도 마찬가지다. 한 단어에서 시작하면 해답이 보인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핵심을 상기시켰다.

다음 날 팀원들에게 “금융은 두 가지가 전부야” “우린 이 두 가지 금융을 잘해” 이 두 문장을 연결할 수 있는 한 단어를 찾아보자는 주문을 했다. 끝없는 회의의 종지부를 찍어준 한마디는 바로 ‘집중’이었다. 집중은 무조건 잘한다는 말보다 어떻게 잘한다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긍정적인 단어였다. 마침내 “두 가지 금융에 집중한다.” 이 한마디로 광고주의 선택을 받았고, 그 컨셉을 그대로 담은 광고를 방송에 내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것도 장황하게. 하지만 컨셉은 직관적으로 다가와야 한다. 처음 들었을 때 각인되지 않으면 다른 수많은 광고에 묻히게 된다. 강력한 한 단어로 컨셉을 말할 수 없으면 브랜드의 메시지를 기억하게 만들기도 쉽지 않다. 이는 광고, 마케팅뿐 아니라 비즈니스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많은 이가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 단어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컨셉이 과연 나올 수 있을지 의심부터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금 더 설명해도 되고, 조금 늘어져도 괜찮다며 타협하고 포기하는 우를 범한다. 하지만 끝까지 한 단어에 집착하다 보면 평범했던 컨셉도 특별해질 수 있다. 요즘 등장한 다양한 디지털 매체들은 TV 광고와 달리 15초라는 짧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갈수록 더 많이 설명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과 같은 때일수록 한 단어로 기억할 수 있는 컨셉이 가장 강렬하게 타깃 고객에게 꽂힐 수 있다.

컨셉은 칼날을 가는 과정의 기술

컨셉은 생물과 같다. 누군가가 제시한 한 단어에서 시작하지만 거기에 많은 사람이 물과 거름을 주는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처음에 완벽하지 않았던 컨셉은 수많은 회의를 거치면서 스스로 성장한다. 회의를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가 컨셉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회의라도 컨셉의 칼날이 날카로워지는 회의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칼날이 무뎌지거나 새로운 칼을 다시 갈아야 하는 황당한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필자가 회의를 주재할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 선입견(bias)이다. 특히 첫 번째 회의의 bias를 가장 경계한다. 첫 번째 회의 때 컨셉디렉터가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던져주고 그곳에서 컨셉을 파보라고 하는 경우 십중팔구는 잘못된 방향성일 경우가 많다. 컨셉은 방향성을 잡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문제 해결을 위한 컨셉을 찾기 위해서는 특정 가이드라인이나 방향성을 갖지 않고 팀원들에게 과제를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팀원들이 팀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갖고 온다. 컨셉디렉터는 “나는 항상 옳지 않다”는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한다. 여러 가지 방향성의 컨셉이 나오면 선뜻 고르기가 쉽지 않은데 늘 그 와중에도 눈길을 끄는 컨셉이 있었다.

최종 방향성에 대한 결정은 책임을 지는 컨셉디렉터가 해야 한다. 보통 많은 디렉터가 다수결이나 소비자 조사 등으로 컨셉의 방향성을 결정하곤 한다. 이것이야말로 책임 회피다. 컨셉에 정답은 없지만 해답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결보다는 그 브랜드를 가장 잘 아는, 그리고 잘 이해하는 이의 결정이 종종 더 가치를 가진다. 필자의 경우 자꾸 곱씹고 곱씹어 봐도, 누가 다른 컨셉을 얘기해도,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 그런 컨셉의 방향성이 물밑에서 올라오듯 마음속에 올라왔다.

첫 번째 회의는 컨셉의 씨를 뿌리는 작업이다. 한 곳에만 씨를 뿌리는 게 아니라 이곳저곳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두 번째 회의에서 팀원들은 자기가 원하는 컨셉을 마음대로 가져온다. 그러다보면 팀원들 중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생긴다. 비슷한 방향의 컨셉을 가져오면 그 컨셉의 방향이 어느 정도 ‘in the box’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첫 번째 회의에서는 방향을 가늠만 할 뿐 절대로 컨셉을 정하지 않는다. 어떤 방향으로 갈지가 결정되면 그다음부터는 날을 벼리는 과정에 들어간다.

세 번째 회의부터는 보통 브랜드의 정체성과 소비자의 편익, 그리고 경쟁의 관점을 모두 감안한 컨셉을 가져오라는 가이드라인을 준다. 이때부터가 칼날을 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컨셉이 날카로워질 때까지 연이어 회의를 한다. 날이 너무 날카로워 가만히 놔둬도 모든 이들이 알아볼 때까지 말이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마구 펼쳐놓고 생각하다 보면 브랜드에 걸맞은 컨셉이 그 안에 숨어 있고, 어느 순간 낭중지추라는 금언처럼 하나의 컨셉은 서서히 도드라져 보이게 된다.

컨셉은 불확실이 쌓이고 쌓인 다음, 그 불확실들이 하나둘씩 제거되다 보면 생기는 확신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의 기술이다.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컨셉을 만드는 법칙이 있다고 수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변수는 더 많아졌고, 더 다양한 타깃과 시장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통하는 마스터키 같은 법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제품의 특성과 소비자의 니즈를 결합시키면서 비어 있는 틈을 찾아내야 한다. 소비자는 순순히 새로운 브랜드나 제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존 것들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들어갈 틈이 없다. 생각의 관성과 습관은 그 자리를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제품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제품을 구매할 타깃의 필요를 정확하게 파악해 비어 있는 틈을 찾아내야 한다. 새로운 제품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혜택을 드러내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건 단순히 광고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삶 속 경쟁이 있는 모든 곳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이자 자세다.

‘우주인의 볼펜’이란 예화가 있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전쟁이 한창 펼쳐지던 1970년대, 우주 정거장에 있는 우주인들에게는 작지만 사소한 골칫거리가 있었다. 무중력상태인 우주에서 가지고 갔던 볼펜으로는 필기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사(NASA)는 우주에서도 원활히 사용할 수 있는 볼펜 개발에 착수한다. 수십억의 비용을 들이고 몇 개월에 걸쳐서 우주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 있는 볼펜을 마침내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시각 러시아에서는 단돈 1달러에 이 문제를 해결했다. 어떤 방법이었을까?

바로 연필을 사용한 것이다. 무중력 상태의 볼펜이나 1달러짜리 연필이나 본질은 필기이다. 문제의 해결은 본질을 파악하는 것. 우리는 간혹 본질을 파악하고 그 지점에서 문제 해결을 하려 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긴 그 지점에서 다시 해결하려 한다. 컨셉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가진 본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방법을 거기서 찾기 시작하면 된다. 그것은 브랜드 그 자체의 DNA나 의심의 연속, 한 단어의 집착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김동욱 bryan8 대표 bryan082@gmail.com
필자는 광고대행사 이노션에서 월드와이드 캠페인 디렉터 팀장으로 피키캐스트 ‘우주의 얕은 지식’, 구글플레이 ‘즐거움을 플레이하세요’, 현대캐피탈 ‘집중에 집중하다’, LG전자의 엑스캔버스, 홈플러스 ‘빼는 것이 플러스다’, 데상트 블레이즈 ‘RUNNER’S GEAR’ 같은 광고를 만들었다. 아모레퍼시픽 라네즈 ‘스킨의 힘을 믿으세요’ 캠페인으로 대한민국 광고대상 최우수상을 받고, 피키캐스트의 ‘우주의 얕은 지식’으로 2015 한국광고홍보학회 광고 부문 대상을 받았다. 역서로 『사치는 어떻게 생각할까? :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집단』, 저서로 『결국, 컨셉』이 있다. 미시간주립대에서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받았다. 현재 광고회사 bryan8의 대표다.
  • 김동욱 | 광고대행사 이노션 월드와이드 캠페인 디렉터 팀장
    현) 광고회사 bryan8 대표
    역서 『사치는 어떻게 생각할까? :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집단』,
    저서 『결국, 컨셉』
    bryan0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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