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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찬 인사이드 석좌교수 인터뷰

기존 시장 파괴 않고 새 시장 창출, 블루오션 시프트의 핵심은 ‘인간다움’

이미영 | 241호 (2018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파괴적 시장 창출이 아닌 비파괴적 시장 창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문제를 획기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기존 시장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파괴적 혁신과는 달리 비파괴적 혁신은 현재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기존 시장을 유지·확대할 수 있고 기술 혁신이 반드시 동반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다. 비파괴적 창출의 핵심은 ‘가치 혁신’이다. 가치 혁신은 대중에게 제공하지 않았던 새로운 종류의 가치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비용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가치-비용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블루오션 시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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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는 과거와 비교해 새로울 게 없다(Nothing to be excited about).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비즈니스는 기술 혁신이 아닌 가치 혁신이 중심이 될 것이다. 기술은 충분조건이지 필수조건이 아니다. 블루오션 시프트는 가치 혁신을 통해 제품 및 서비스의 차별화와 저비용을 동시에 추구한다.”

블루오션 전략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김위찬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최근 르네 마보안 인시아드 교수와 함께 출간한 책 『블루오션 시프트』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이 책에는 10여 년 동안 블루오션 전략을 적용한 기업들의 사례를 토대로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이 담겨있다. DBR은 1월10일 한국을 방문한 김 교수와 만나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블루오션으로 ‘이동(시프트)’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물었다.


『블루오션 전략』을 낸 지 12년 만에 『블루오션 시프트』를 출간한 배경은 무엇인가.

블루오션 시프트는 우리가 2005년에 제시한 블루오션 전략에 체계적인 방법론을 더한 것이다. 블루오션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고객을 탐색해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2005년 르네 마보안 교수와 출간한 『블루오션 전략』은 과거 사례들을 중심으로 개념을 소개했다. 과거 120여 년(1880∼2000년) 동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낸 사례 100여 개를 찾아 그 공통점을 정리해 블루오션 전략으로 도출한 것이다. 즉, ‘블루오션이 무엇이다’라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것이 가깝다. 그렇다 보니 블루오션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방법론은 미흡했다. 실제로 블루오션 전략을 실행하려는 많은 기업이나 기관이 블루오션 전략은 이해하지만 어떻게 실행해 나가야 할지 어려움을 호소했다.

흔히 ‘창조’ 하면 창업가 정신을 떠올린다.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하면서 경험하고, 그것을 토대로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실리콘밸리다. 여기서 성공하는 사례는 약 10∼15% 남짓이다. 아주 특별한 일부만이 성공한다. 위험을 감수해야 성공할 수 있는 건데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블루오션 전략에서 생각하는 창조는 전략의 일부다. 전략은 방법론을 체계화해 새로운 시도를 했을 때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다. 나와 마보안 교수가 블루오션 전략을 실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도출하기 위해 후속 연구를 시작한 이유다.

나와 마보안 교수는 지난 10년간 실제로 블루오션 전략을 적용한 기업, 정부, 비영리기관 등의 사례들을 분석해 블루오션 전략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도출했다. 얼핏 보면 전략 캔버스를 비롯해 지난 책에 나온 분석툴이 그대로 적용된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책에선 실행 단계를 5개로 나누고, 단계별로 어떤 분석툴을 적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품질관리(Quality Control)를 하기 위한 분석 툴이 식스시그마(Six Sigma)라면, 창조적 역량을 기르기 위한 툴이 바로 ‘블루오션 시프트’인 셈이다.

실패한 기업들의 공통점을 알고 싶다.

블루오션을 창출하려는 이상은 있지만 실제 실행을 할 때 레드오션의 함정에 빠져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초기에 블루오션 시프트를 위한 팀을 구성할 때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이나 부서원들을 모두 참여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핵심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이번에 다룬 사례 중 유럽 가전기기 업체가 있다. 이 회사는 다리미 시장에서 남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겠다고 결정했다. 오랫동안 혼자 살고 있는 남성일수록 다림질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을 반영해 스팀다리미를 개발했다. 하지만 상품 개발 후 마케팅팀이 관여하면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마케팅팀이 생각하는 고객은 여성이었고, 이 제품의 기능으론 여성 소비자들을 끌어들이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포장 박스에 핑크색 줄을 더했고, 개발된 제품을 일반 다리미의 ‘보조 다리미’로 광고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애초에 타깃이었던 남성 고객도, 기존 다리미에 익숙한 여성 고객도 모두 놓쳤다. (이처럼 처음부터 블루오션팀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새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타당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재무적인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 원가에 바람직한 이윤을 정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취해선 안 된다. 목표 원가를 초기에 설정해 이에 맞춰야 한다. 목표 원가를 공격적으로 정하면 처음엔 사람들이 부담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블루오션 전략을 실행할 때 목표 원가를 정하지 않아 결국 전체 서비스나 제품의 가격이 높아지거나 목표했던 가치보다 낮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보통 블루오션팀을 꾸릴 때 보수적인 재무팀을 제외하는 경우가 있다. 무조건 비용 문제를 들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일 수 있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재무팀이 합류하게 되면 목표 원가를 세울 때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 가지 더 당부할 것은 블루오션과 틈새시장, 차별화 시장 등을 혼동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블루오션은 틈새시장이나 차별화와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국내에선 여전히 블루오션을 경쟁적 패러다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식품시장의 블루오션, 할랄시장이 뜬다’나 ‘새 블루오션 반려동물 시장 선점 경쟁’ 등의 기사 제목처럼 말이다. 물론 할랄시장과 반려동물 시장은 잠재 수요와 발전 가능성이 아주 크다. 하지만 단순히 떠오르는 시장이라고 해서 블루오션이 아니다. 또한 블루오션에 ‘경쟁 패러다임’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블루오션 시프트』에서 비파괴적 혁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책에선 블루오션적 관점에서 ‘창출(Creation)’을 재정의했다. 블루오션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나와 마보안 교수의 이론이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와 맥을 같이한다고 봤다. 더 최신 이론으론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의 ‘파괴적 혁신’도 포함된다. 물론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필름카메라가 사라지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2G 휴대전화가 사라지듯 기술이 주축이 되는 시장 창출은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유명 주방기기 브랜드인 ‘테팔(Tefal)’을 보유한 프랑스 다국적 회사 세브(SEB)의 감자튀김기 ‘액티프라이’를 예로 들어보겠다. 이 기업은 감자튀김을 한 번 조리하는 데 평균 2.5리터의 식용유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 쓴 식용유는 처치 곤란인데다 조리에 쓰인 주방도구 설거지도 매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식용유를 많이 써서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세브는 2006년 튀기지 않고도 맛이 좋은 감자튀김기 액티프라이를 개발했다. 식용유 한 스푼으로 감자튀김을 만들 수 있다. 칼로리는 40%가 줄었고, 지방은 80% 감소했다. 식감도 훌륭했다.

액티프라이는 기존 시장을 해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감자튀김 요리를 하지 않았던 비고객을 확보해 새로운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액티프라이 하나만으로 세브 주가가 5%나 올라갔다. 비파괴적 시장이 창출된 것이다.

이외에도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신용대출을 해주는 서비스인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 Finance), 화이자(Pfizer)가 개발한 비아그라 등도 기존의 시장을 파괴하지 않고 시장을 창출한 사례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얘기할 때 파괴적 창출을 더 강조한다.

파괴적 창출은 우리가 미래를 생각할 때 걱정하는 고민의 핵심을 담고 있다. 파괴적 창출은 대부분 기술 혁신과 맥을 같이한다. 정보기술(IT)의 발달이 대표적인 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생산성은 확실히 높아지고 있다. 경제학에서도 생산성이 높아지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기본 논리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 지금 우리는 ‘생산성 모순(Productivity Paradox)’에 빠져 있다.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빈곤 계층도 늘어나고 있다. 경제학자들도 이 상황을 풀기 위해서 많은 논문을 쓰면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 같은 상황이 심화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2010년대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혁신은 파괴적 창출과 같다고 보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제는 ‘파괴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2020년, 2030년 다가오는 미래에는 IT를 개발하는 것보다 비파괴적 창출에 더 집중해야 한다. 비파괴적 혁신은 AI처럼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 생산성도 높이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1석2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강조하는 ‘블루오션 시프트’다.

비파괴적 창출은 어떻게 달성할 수 있나.

우리가 정의한 비파괴적 창출은 ‘새로운 문제를 규명하고 해결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산업 내에 존재하는 기존 문제에 획기적인 해법을 제공하는 ‘파괴적 창출’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선 일단 가치-비용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마이클 포터 교수는 구매자 가치와 비용은 서로 상쇄하는 관계라는 것을 생산성 경계(productivity frontier)로 보여준다. 이 때문에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차별화 혹은 저비용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해 나아가야 한다. 블루오션 시프트는 생산선 경계 곡선을 우상향으로 ‘이동(Shift)’시킨다. 가치는 올리면서 비용은 낮추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가치-비용 경계(value-cost frontier)를 여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차별화된 성격과 수준의 가치를 대중에게 제공(different kinds and degree of value for mass)’해야 한다. 수준을 다르게 하는 것은 약간의 개량으로도 가능하지만 성격을 바꾸는 것은 누구나 하지 못한다. 새로운 성격/종류(kinds)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 블루오션 시프트가 말하는 ‘가치 혁신(Value Innovat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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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를 예로 들어보자. 스타벅스가 블루오션 전략 관점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커피 때문이 아니었다. 커피 외에 다른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차별화로는 안 된다. 새로운 가치를 많은 사람에게 제공해야 한다.

가치 혁신을 달성하기 위해서 블루오션 전략 툴인 ERRC(Eliminate, Reduce, Raise, Create)를 적용할 수 있다. 생산성 경계에서와같이 가치를 조금 올리고 내려서 조종하는 것으론 안 된다. 새로운 가치를 위해 과감하게 제거(Eliminate)하고, 새롭게 창출(Create)하는 요소들을 발견해야 한다.

고급 5성급 호텔에 견줄 만한 서비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3성급 시티즌M호텔이 대표적인 예다. 이 호텔은 고객들이 원하는 가치를 강조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가치들을 제거해 새로운 가치-비용의 경계를 열었다. 고객들을 인터뷰한 결과, 호텔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접근성과 수면 환경이었다. 시티즌M호텔은 5성급에 견줄 만한 침대와 샤워 시설을 설치하는 대신 가격을 낮추고 객실 크기를 축소했다. 관광객들이 오히려 성가시다고 느끼는 벨보이나 도어맨 서비스, 대기시간이 긴 프런트 데스크를 과감히 없앴다. 대신 셀프 체크인 단말기를 설치하고, 어떤 일이든 도와주고, 간단한 일 처리가 가능한 ‘앰배서더(ambassador)’라는 새로운 직원을 배치했다. 그 결과, 객실 이용률은 90%에 달했고, 인건비는 업계 평균의 절반으로 낮췄다. 시티즌M호텔은 ‘저렴한 가격대의 고급 호텔’이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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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영 전략을 이야기할 때 AI, 빅데이터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술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혁신적인 기술이 있어야 가치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기술은 필요조건이 아닌 충분조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혁신적 기술을 활용한다고 해서 언제나 가치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 얘기는 반대로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거나, 이용하지 않아도 가치 혁신이 가능하면 시장은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블루오션에 도달한 미국의 한 대형 약국 체인을 예로 들어보자. 이 회사는 약국에 간호사를 배치해 사람들이 병원에서 진료를 한 후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받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답은 현장 경험이다. IT, 마케팅, 재무 등 이 회사의 각 부서장이 호텔에 모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고객의 경험을 체험해보기 위해서다. 이들 중 IT 부장이 자원해 인후염이 걸렸다고 가정하고 오전 9시30분에 자신의 집을 나서 병원, 병원에서 약국, 약국에서 호텔로 돌아왔다. 무려 6시간이 걸렸다. 진료 시간은 약 10분에 불과했지만 병원과 약국이 모두 멀리 떨어져 있었고, 교통 사정이 안 좋아 길에 버리는 시간도 많았다. 이를 경험한 팀원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차라리 병원을 가지 않겠다는 의견도 속출했다. 이들은 약국에서도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의사보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으면서 처방전을 쓸 수 있는 간호사를 약국마다 고용했다.

통찰이 부족할 때는 현장을 둘러보고 그곳에서 힌트를 얻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데이터에만 집착해 현 상황에 매몰되거나 새로운 현상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블루오션 시프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블루오션 시프트』의 부제목은 ‘새로운 성장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검증된 과정(Proven steps to inspire confidence, seize new growth)’이다. 즉 성장에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신감을 고취할 수 있는 근간을 ‘인간다움(humanness)’으로 표현했다.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얘기다. 성장은 경제학적인 언어고, 자신감은 심리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용어이기 때문이다.

경영학계에서도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경영전략은 경제학에 기반을 두고 있어 경제학은 인간의 감정을 다루지 않는다. 자신감은 리더십이나 HR(Human Resource)에서 일부 다뤄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은 사회학이나 심리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통 자신감과 경영전략은 독립된 영역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의 깊은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확인했다. 어떤 회사를 가보면 아이디어는 굉장히 많다. 그런데 성과는 매우 낮다. 코닥이 대표적인 사례다. 디지털카메라를 먼저 만들어 놓고도 후발주자인 캐논에 빼앗겼다.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실행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원인은 자신감이 부족해서다. 새로운 시도를 했을 때 실패할 것이란 두려움, 시도를 했을 때 결과에 대한 책임감, 자신이 선도하고 있는 필름 시장이 사장될 수 있다는 불안감 등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술 혁신을 이룬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기술 혁신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한 가치를 만들어 내고 고민하는 것은 사람의 창조적 역량이다. 성장과 인간의 자신감, 즉 인간다움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다움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

블루오션 시프트는 변화를 향한 여정이다. 현재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모색하고, 그것을 실행해 나가야 한다. 블루오션 시프트는 추진 과정에서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새로운 전략을 실행해 나가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블루오션 시프트에서 ‘인간다움’이란 기업의 DNA를 바꾸거나 조직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수평적 조직문화 조성하는 등의 ‘사람경영(People Management)’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다움’을 전략 수립과 실행의 과정 속에 반영한 것이다. 조직의 문화나 크기에 상관없이 시스템과 절차로 구성원들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도전정신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 가지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대신 스스로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 그 방식이란 ‘세분화’, 체험에 의한 ‘직접적인 발견’, 전 과정에서의 ‘공정한 절차’다.

우선 조직은 큰 과제를 작고 구체적인 단위로 ‘세분화’해야 한다. 구성원 개개인이 충분히 추진할 수 있을 만한 일로 쪼개 부담감을 줄여 자신감을 고취시킨다. 예를 들어, 오늘 당장 기존 시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 구체적으로 우리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구매자 집단을 조사해 보라고 하거나, 현재 속해 있는 산업의 경쟁 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라고 하는 등 구체적인 단계를 제시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 번 도전해볼 만한 일이 되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이 과정에서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변화의 필요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른바 ‘직접적인 발견’이다. 과제를 수행하면서 우리 조직이 레드오션에 직면했다는 사실도 자각할 수 있다. 또한 직접 시장조사를 하거나 현장을 방문하면서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정한 절차’다. 구성원들 간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고,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한 일에 대해서 투명한 절차를 통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인간다움은 블루오션 시프트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블루오션 시프트 추진 과정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첫째, 어떠한 블루오션 과제를 추진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어떤 사업이나 시장을 공략할지, 어떻게 팀을 구성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과제를 추진하기 전, 조직의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통해 블루오션 시프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셋째, 조직이 속한 산업에서 느끼는 고객의 불편함을 파악한다. 또한 비고객을 고객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 여부도 분석한다. 넷째, 어떻게 하면 시장을 재구성할 수 있을지, 저비용과 차별화를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전략 방안을 공개 회의인 ‘블루오션 품평회’를 통해 공개해 전략을 선택한다. 이후 사업모델을 공식화해 추진해 나간다.

이 과정 속에 인간다움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각 개척자-이주자-안주자 지도(PMS), 전략 캔버스, 구매자 효용성 지도 등 분석툴을 이용해 과제를 하나하나 수행한다. 과제를 완성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 단계가 하나씩 완료될 때 조직원들은 결과물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때마다 팀원들을 포함한 조직이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고, 서로의 동의를 구하면서 신뢰를 쌓아간다. 자신감이라는 무형적 요소가 시스템과 절차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내가 처음부터 인간다움이 매우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블루오션팀들이 실행 단계를 거치면서 심리가 변해가는 것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두려워하다가도 한 단계씩 완성하면서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매우 즐거워한다.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 나가면서 자신에게 숨어 있는 역량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땐 이런 현상이 무엇인지 정의하진 못했다. 하지만 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를 목격한 후 이런 변화가 결국 ‘인간다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자신감이 성장의 핵심 요소이며, 인간 없이는 전략도 없다는 사실 말이다.

제조업 같은 B2B 분야에서도 블루오션 시프트가 가능할까?

블루오션 시프트는 기업의 크기나 성격, 산업에 관계없이 추진할 수 있다.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이라고 해서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B2B 회사다’라는 시장의 특성과 경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이미 레드오션의 관점에서 나의 한계를 규정짓는 것이다. 화학업체 듀폰은 기존의 스판덱스(Spandex) 소재 시장의 저가 경쟁에서 벗어나 ‘라이크라’라는 브랜드의 스판덱스 제품을 만들어 냈다. 기존 원료와 원단 제작에서 비용 절감에 중점을 뒀던 전략과는 달리 ‘고객의 고객’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했다. 자신이 속한 산업의 경계를 넘어 그들의 고객, 즉 속옷 회사나 운동복 제작 업체 입장에서 그들의 제품이 뛰어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나라 제조기업들도 이러한 시도를 통해 또 다른 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기업의 위치를 제대로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분석한 사례 중 미국의 전자제품 서비스 회사가 있었는데, 이 회사 경영진은 앞으로 회사의 새로운 성장을 대비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조직원들은 경영진의 판단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회사는 지난 몇 년 동안 사업 성과가 제법 좋았기 때문이다. 기업 회계 관점에서 봤을 때 수익성도 높았고, 매출 성장률도 경쟁사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렇게 분석하면 블루오션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사업의 서비스라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이 분석해본 결과, 수리 서비스 품질, 고객 서비스 수준, 가격 등은 경쟁사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관점만 바꿔도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장기 계약을 주로 하는 산업에서 재무적 성과는 실제로 회사가 제공하는 혁신적인 가치나 미래의 성장을 의미한다기보다 과거의 성공과 고객의 타성을 더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인터뷰이 소개

『블루오션 시프트』 공동 저자인 김위찬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석좌 교수는 인시아드 블루오션 전략연구소(INSEAD Blue Ocean Strategy Institute) 공동 소장을 맡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특별 회원이자 블루오션 글로벌 네트워크(Blue Ocean Network)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2005년 블루오션 전략연구소 공동 소장인 르네 마보안 인시아드 교수와 공동 집필한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으로 경영학계와 기업 현장에 큰 반향을 일으킨 세계적인 석학이다. 『블루오션 전략』은 44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 100개 국가에서 400만 부 이상이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아마존닷컴에서 ‘최고의 경제경영서 10’ 등에 선정됐고, 김 교수와 마보안 교수는 세계 최고 경영 사상가 50인을 선정한 ‘더싱커스(The Thinkers) 50’에서 2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4년 세계경영컨설팅협회로부터 칼 슬로언상을 수상하는 등 최근까지도 블루오션 전략의 적용과 확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와 마보안 교수는 최근 출간한 『블루오션 시프트』도 공동 집필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경민(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블루오션 시프트』 공동 저자인 르네 마보안 교수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으며 이번 인터뷰에도 반영했습니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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