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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LG전자 자동차부품사업

부진한 신사업에 ‘독립성’ ‘자율성’ 부여, LG전자의 신성장 엔진으로 급가속

강신형,장재웅 | 239호 (2017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대기업이 전혀 다른 업종에 진입해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특히 재무성과를 기준으로 관리되는 사업부제 조직구조에서 적자투성이인 신사업은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신사업은 자원 투입의 생산성이 떨어지기에 사업부는 자신의 베테랑 인력보다는 신입이나 외부의 경력 직원을 투입하고 이는 신사업의 조직 역량을 약화시킨다. 그런 측면에서 LG전자가 카인포테인먼트 분야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사례는 여러 함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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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21일 하루 동안 LG전자 주가는 12% 넘게 상승했다. 2011년 9월 이후 장중 최대 상승폭이었다. 주가 상승을 견인한 소스는 LG전자가 글로벌 자동차 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에 쉐보레 볼트 전기차(Chevrolet Bolt Electric Vehicle) 핵심 부품을 공급한다는 소식이었다. LG전자는 그동안 GM에 텔레매틱스 단말기 등 IT 부품을 납품했지만 이번 계약은 구동모터, 인버터, 차내 충전기 등의 전기차 구동에 핵심적인 부품을 포함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였다.

실제로 올해 LG전자의 주가를 견인한 것은 GM 볼트 전기차의 판매 호조 및 꾸준한 수주 물량 확보였다. 휴대폰 사업이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부품사업에서 외형 성장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LG전자 주가는 연초 대비 80%가량 올랐다.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LG전자의 향후 성장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자동차 부품 사업의 외형 확대가 이를 불식시켰다.

LG전자는 가전회사로 유명하지만 자동차 부품 사업도 주요 수익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LG전자 VC사업부의 매출액은 2015년 1조8000억 원을 넘어선 데 이어 2016년 2조8000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4조 원에 육박하는 매출이 예상된다. 특히 완성차 업체와의 오랜 협업을 통한 레퍼런스 확보가 중요한 자동차 부품 사업에서 가전과 IT 기기를 만드는 회사가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이 놀랍다. LG전자는 어떻게 자동차 부품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LG전자가 카인포테인먼트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겪은 어려움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LG전자의 신사업 성공 비결을 DBR이 분석했다.


LG전자, 국내 최초 텔레매틱스 단말기 개발하다

자동차 부품 시장은 자동차 제조라인에 투입되는 양산형 시장인 비포마켓(before-market)과 자동차 출시 이후 튜닝, 수리 등 추가 수요에 의해 형성된 시장인 애프터마켓(after-market)으로 양분된다. 비포마켓의 시장 규모가 더 크지만 요구되는 품질, 가격, 공급 기준이 까다롭다.

1990년대 LG전자의 자동차 부품 사업은 애프터마켓 카오디오가 전부였다. 주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러시아 등 CIS 지역이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자동차 부품 사업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당시 AV사업부의 제품 다각화 전략의 일부였다.

변화는 자동차 업계에서 먼저 시작됐다. 90년대 말부터 이동전화가 빠르게 보급되고 새로운 이동통신 기술 표준이 제정됨에 따라 다양한 모바일 서비스가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GM의 경우 1996년 자회사인 온스타(OnStar)를 통해 차량용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온스타는 GPS와 이동통신 기술을 이용해 핸즈프리 통화, 원격차량진단, 긴급 구조, 사고통보 등 안전과 보안에 대한 서비스는 물론 음성 기반의 턴바이턴(turn-by-turn) 길 안내 서비스를 제공했다. GM은 자사의 제조 차량에 온스타 단말기를 빌트인 형태로 탑재했고 원하는 고객에 한해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GM에 자극받은 현대차 역시 이동통신 기술을 이용한 텔레매틱스 서비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4년 모젠(Mozen)이라는 자체 텔레매틱스 서비스의 상용화를 목표로 1998년부터 차량정보시스템 단말기 등 핵심 기술 개발에 투자를 감행했다. 음성 기반의 온스타 단말기와 달리 현대차는 AV기기가 통합된 액정형 단말기를 추구했다. 터치패드 화면에서 차량 AV기기와 공조 장치 등을 제어하는 것은 물론 이동통신망을 통해 지도 기반의 길 안내 서비스, 실시간 교통정보, 무선인터넷, 긴급 구조 등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었다.

현대차는 2000년 10월 망 사업자인 LG텔레콤(현재 LG유플러스)과 무선 차량정보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양 그룹사 간 제휴에는 정몽구 회장과 구본무 회장 간의 친분이 결정적이었다. LG전자는 현대차의 그랜저XG 등 고급 차종에 들어가는 단말기 개발을 맡기로 했다. 2001년 7월 시제품 개발에 착수했고 같은 해 9월에는 2003년 8월 납품을 목표로 현대차와 계약을 체결했다. 2002년 11월, LG전자는 CTO 산하 디지털미디어(DM)연구소 주도로 1년여간 40여 명의 연구인력을 투입해 국내 최초로 AV 통합형 텔레매틱스 단말기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양산은 애프터마켓 카오디오를 생산하던 AV사업부가 맡았다.


카인포테인먼트를 미래 성장 엔진으로 결정하다

그러나 현대차 물량만으로는 텔레매틱스 R&D 및 시설 투자를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현대차에 탑재되는 텔레매틱스 단말기는 차량 구매 시 고객이 옵션으로 선택하는 제품으로 물량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LG전자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현대차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거나 규모의 경제를 위해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 현대차의 제의가 여러 번 있었다. 공동 R&D센터 설립이나 현대오토넷 공동 인수 제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현대차와 JV 형태로 협력할 경우 사업의 주도권을 잃을 여지가 상당했다. 자사의 연구 인력 이탈도 예상되는 문제점 중 하나였다.

고심하던 LG전자 경영진은 2003년, 텔레매틱스, 카AV 등 카인포테인먼트(carinfotainment)1  사업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상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비포마켓 카AV 제품 경쟁입찰에 참여했다. 르노, 폴크스바겐 등과 비포마켓 카오디오 계약을 체결했다. 소니와는 차량용 앰프 등의 AV 부품 공급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애프터마켓 카AV 사업도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나중에 전기차 부품 사업의 핵심 파트너로 등장할 GM과의 첫 번째 계약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당시 GM은 온스타 단말기 대부분을 모토로라에서 공급받고 있었으나 원가 절감을 위해 대체 공급처를 찾고 있었다. LG전자의 현대차 텔레매틱스 단말기 공급 계약 소식을 듣고 GM이 견적을 의뢰했던 것이다. 2003년 6월, LG전자는 2006년 출시 차량에 탑재되는 온스타 단말기에 대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조직도 새롭게 정비했다. 2003년 10월, AV사업부 내 모바일 사업 추진실 조직을 신설해 텔레매틱스, 카AV, MP3플레이어 등의 모바일 AV기기를 전담하도록 하고 DM연구소의 연구인력을 제품 개발에 집중 투입했다. 이후 2004년 7월, 자동차 부문을 카사업 담당 조직으로 분리하고 AV사업부의 설계실을 책임지던 최정혁 연구위원을 수장으로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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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의 높은 진입 장벽

2003년 초, 카인포테인먼트 사업을 확대하기로 결정할 당시만 하더라도 LG전자는 완성차 업체로부터 물량을 수주하면 제품 개발과 생산은 문제없이 해낼 것으로 내다봤다. 핵심 기술인 이동통신과 멀티미디어 응용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범용 부품(LCD, 통신 모듈, 메모리 등)에 대한 규모의 경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AV사업부가 예전부터 애프터마켓 카오디오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기존 보유 장비들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의 진입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현대차 텔레매틱스의 경우 현대차 쪽의 문제도 있었지만 기존 목표보다 4개월이 지나서야 첫 물량을 출하했다. LG전자의 첫 번째 온스타 텔레매틱스 단말기는 소프트웨어 등의 개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2005년 양산 검증 단계에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바로 연이어 수주한 제품도 GM에서 2006년 2월 납품을 요청했으나 GM의 공정 감사 지적 사항이 많아 6개월 지연된 8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손실 규모도 예상보다 컸다. 빠른 사업화를 위해 공격적인 견적을 낸 탓도 있지만 개발 기간이 길어지며 개발비가 당초보다 늘어났고 생산, 품질보증, AS, 물류 등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들이 발생했다.


기본적으로 비포마켓은 애프터마켓보다 개발 과정이 더 까다롭다. 단품 테스트만 통과하면 개발이 완료되는 애프터마켓과 달리 비포마켓은 실차 테스트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텔레매틱스 단말기의 경우 차량 내 다양한 기기들과 연결되기 때문에 단품 테스트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실차 테스트에서는 소프트웨어 쪽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LG전자에는 실차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어 완성차 업체에 가서 테스트를 진행해야 했다. 실차 환경에서 발생하는 소프트웨어상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은 물론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 자체도 경쟁사들에 비해 부족했다.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다 보니 경력사원 충원이 어려워 구성원의 상당수가 신입사원인 탓도 있었다. 개발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요구되는 품질 수준도 달랐다. 자동차는 안전과 직결되는 제품으로 단 하나의 부품 문제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품질 불량으로 인한 제조사의 수리비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AV사업부의 양산 체계는 비포마켓에 대응하는 데 부족함이 많았다. 예를 들어 회로 기판의 납땜이 제대로 됐는지를 검사하고 추적하는 장비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 검사마다 다른 결과 값을 보이는 등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은 검사 장비가 사용되기도 했다. 검사 장비에 대한 조립라인 작업자 교육도 부족했다. LG전자의 협력업체 품질 관리도 문제였다. 텔래매틱스 사업의 규모가 작다 보니 구매부서가 적극적으로 협력업체 관리를 하지 않았고 따라서 입고되는 부품의 불량률이 높았다.

물류 체계도 기존 가전 산업과는 많은 차이가 났다. 자동차는 2만여 개의 부품을 조립해야 하는 제품으로 원가 절감을 위해서는 부품 재고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요타가 JIT 생산방식을 고안해 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위해 협력사는 완성차 업체가 요구하는 전산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물론 완성차 업체의 조립라인 근처에 물류 기지를 운영해 즉각적인 납품이 가능해야 했다. 국내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GM의 경우 미국 현지 투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AV사업부에서 물류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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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업을 위한 조직 보강

2004년 출범한 LG전자의 카사업 담당 조직은 완성차 업체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조직은 자동차 사업과 관련된 전담 개발, 생산 영업 등의 하위 조직을 직접 통제하는 형태가 아니라 AV사업부 내 기능부서들을 간접적으로 리드하는 일종의 제품 관리자 조직이었다. 그러다 보니 관련 부서들 간 긴밀한 연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기존 AV사업부의 베테랑 인력들을 자동차 사업에 할당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해당 기능 부서의 업무 우선순위에서 밀려 완성차 업체의 요구에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전담 인력이 없다 보니 품질관리나 물류 시스템 구축 등 당장 시급하지 않은 업무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회의 때마다 담당자가 변경되는 것도 완성차 업체의 불만을 유발했다. AV사업부 산하의 사업 담당 조직 체계는 거래선 관리가 생명인 자동차 부품 사업을 전개하는 데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이에 LG전자는 2006년 카사업 담당 조직을 AV사업부에서 분리해 준사업부 형태인 카사업팀으로 승격했다. 2005년 자동차 부품 사업의 매출 규모가 1000억 원 수준으로 조 단위 매출 규모가 일반적인 기존 사업부에 비하면 선제적인 조직 개편이었다. AV사업부 산하에 있던 카인포테인먼트 관련 개발 인력들을 독립시켜 별도의 개발실 조직으로 승격하고 AV사업부 영업조직의 일부였던 완성차 거래선 관리 조직을 카사업팀 직속으로 이관했다. 품질관리 부서를 신설해 거래선별 품질 이슈를 해결하도록 했다. 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해 기존 DM연구소 인력 외에 휴대폰 사업부의 R&D 인력을 카인포테인먼트 개발에 투입했다. 텔레매틱스의 핵심 기술인 무선통신 기술을 DM연구소 인력만으로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프터마켓 매출 확대를 위한 영업, 마케팅 인력도 증원했다. 기존 카사업 담당 조직을 이끌던 최정혁 연구위원은 개발 업무에 전념하도록 하고 DM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엄성현 연구위원을 사업팀장으로 임명했다. 텔레매틱스 단말기 개발을 주도하는 DM연구소와의 협업을 강화하려는 포석이었다.

조직을 정비한 LG전자의 카인포테인먼트 사업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매출액은 2004년 600억 원 수준에서 2005년 1100억 원, 2006년 1600억 원, 2007년 2200억 원 수준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특히 텔레매틱스 제품의 매출액은 2004년 25억 원 수준에서 2007년 600억 원 수준으로 3년 만에 20배 이상 늘었다. 외형 성장의 대부분은 GM 온스타 단말기의 추가 수주를 통해 이뤄졌다. 현대차의 경우 내수로 한정돼 있고 2005년 현대차가 인수한 현대오토넷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LG전자의 비중은 제한적이었다. LG전자는 GM과의 2003년 첫 계약 후 사업 기반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견적을 제출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그 결과, GM과의 첫 계약 물량을 선적하기도 전인 2005년 한 해에만 GM으로부터 400만 대 분량을 추가로 수주했다. GM의 글로벌 구매 담당 부사장인 보 앤더슨이 2008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LG전자가 온스타 단말기의 핵심 공급처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품질 수준도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2013년 9월에는 GM이 실시한 아시아 지역 자동차 부품회사 중 개발품질관리 평가에서 LG전자가 최우수 업체로 선정됐고, 2014년 3월에도 LG전자는 GM의 우수협력업체에 선정됐다. GM과의 파트너십은 더욱 공고해졌다.

2008년 말, 사업 기반 확보에 성공한 카사업팀은 카사업부로 승격했고 엄성현 상무를 초대 사업부장으로 임명했다. 소속 본부도 AV사업부 등이 포함된 디지털미디어 사업본부에서 B2B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신설된 BS(Business Solution)본부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기존 가전 사업과 차별화된 업무 프로세스의 구축과 운영이 더욱 가속화할 수 있었다.


카인포테인먼트에서 전기차 부품 사업으로

현대차 텔레매틱스 단말기 개발을 시작하던 2002년부터 LG전자는 자동차 산업의 신사업 기회를 지속적으로 검토해왔다. 멀티미디어, 통신, 방송 등의 IT는 물론 가전 부품인 모터와 컴프레서 등의 차량 적용 가능성을 살펴봤다. 그러나 LG전자는 IT 분야에서 자동차 업계보다 상대적인 기술 경쟁력이 더 우월하다고 판단해 카인포테인먼트 분야의 사업기회를 우선적으로 탐색했다.

새로운 사업기회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보급과 전기차의 상용화가 시작되면서 나타났다. 2008년 테슬라가 고성능 전기차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기업이 전기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9년, LG전자 역시 자사의 모터와 인버터의 전기차 적용 가능성에 대한 기술 검토를 진행했다. 이어 2010년 LG전자는 자매사인 LG화학 등과 함께 GM의 쉐보레 크루즈 전기차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구동 부문의 기술력을 축적해갔다.

2010년 9월 LG전자의 대표이사로 구본준 부회장이 선임됐다. 구본준 부회장은 선임되자마자 자동차 부품 사업을 미래성장 동력으로 적극 육성할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2010년 11월 BS본부 산하의 카사업부를 CEO 직속으로 변경했고 모터, 인버터 등의 전기차 핵심 부품을 담당하는 EC(Energy Component)사업부를 신설했다. 이듬해 카사업부는 HE본부로 이관됐지만 EC사업부는 CEO 직속 사업부 상태를 유지했다. 또 공조 분야의 기술 전문가인 하삼철 전무를 사업부장에 임명해 전기차 부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공조 분야 전문가를 앞세운 LG전자는 GM의 첫 양산형 전기차 모델인 쉐보레 볼트 개발에 LG화학과 함께 참여했다. LG화학이 배터리 분야를, LG전자는 텔레매틱스 등의 전장부품은 물론 자동차 공조용 압축기와 모터, 인버터 등의 구동 부품을 맡았다. 당시 전기차 부품 사업은 LG그룹 내 각 계열사에서 산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부문을, LG전자는 텔레매틱스, Car AV 등의 인포테인먼트 부품을, LG이노텍은 각종 센서와 일반 모터, 카메라 모듈, LED 모듈을, LG CNS의 자회사인 LG V-ENS는 전기차 설계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룹 내 시너지 창출을 위해 전기차 사업을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있었다.

2013년 4월, LG전자는 LG CNS의 100% 자회사로 있던 LG V-ENS의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2004년 LG CNS에서 물적분할된 LG V-ENS는 자동차설계 엔지니어링 전문 회사로 전기차 설계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LG전자는 VC(Vehicle Component)사업본부를 신설하고 LG V-ENS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이우종 사장을 본부장에 임명했다. 이우종 사장은 대우자동차에서 차량개발총괄 상무를 지낸 자동차 전문가였다. CEO 직속으로 있던 EC사업부와 HE본부 산하에 있던 카사업부를 VC사업본부 산하로 이관했다. LG그룹 내 모든 전기차 부품의 납품도 LG전자 VC사업본부를 통하도록 했다. LG전자에 그룹 내 계열사의 모든 역량을 집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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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점

LG전자의 자동차 부품 사업이 현재의 모습을 갖기까지 구성원 개개인의 헌신적인 노력과 적절한 시기의 인수합병, 그룹 계열사의 역량 집결 등 여러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신사업의 초기 육성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1. 기술, 시장이 아닌 전략적 유사성을 고려하라.

Prahalad & Bettis(1986)는 기업이 신사업을 전개하는 데 기술과 시장보다는 전략적 유사성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략적 유사성(strategic similarity)이란 사업을 위해 투입하는 자원, 사업의 핵심 성공 요인, 산업 내 경쟁구도,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를 관리하는 방법 등 사업을 경영하는 방식의 유사성을 의미한다(Grant, 1988). 만약 기업이 전략적으로 이질적인 산업에 진입하는 경우 그 산업에 맞는 새로운 경영방식을 습득해야 한다. 기존 사업에서 습득한 경영방식을 전략적으로 이질적인 사업에 적용하려 할 때 신사업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 애프터마켓 카오디오 사업은 기존 가전 사업과 기술적으로는 다르지만 전략적으로는 유사하다. 둘 다 개발 사이클이 짧을수록 경쟁우위가 생기므로 개발 기간 단축을 위해 품질을 어느 정도 희생한다. 반면, 비포마켓 자동차 부품은 완성차 업체와 긴밀한 관계 유지가 핵심이다. 개발 과정의 검증 단계도 많고 품질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애프터마켓과 비포마켓은 같은 부품을 쓰더라도 요구되는 조직구조나 관리체계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LG전자의 경우 오히려 사업 초반에 AV사업부에 텔레매틱스 시제품의 사업화를 맡기보다 PC사업부가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PC사업부의 경우 IBM의 OEM 제조를 다년간 했던 경험이 있어 제품 검증이나 요구 품질 수준이 까다로운 완성차 업체 대응에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2. 신사업을 기존 사업에서 분리해라.

기존 사업과 전략적으로 이질적인 사업으로 다각화하는 경우 새로운 사업의 특성을 조직 구성원이 이해하고 필요한 역량과 지식, 문화를 학습하고 내부에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존 사업 조직 간의 구조적 단절이 중요하다(Tushman & O’Reilly, 1996). 일반적으로 경영자들은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을 이유로 신사업을 기존 조직 체계 안에서 추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사업이 기존 사업과 전략적으로 이질적인 경우 기존 조직과 신사업 조직 간 협업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이는 상위 부서의 조정과 개입으로 이어지고 관리 비용의 상승을 초래한다. 또한 기존 사업의 관점에서 신사업을 평가하기 때문에 신사업은 필요한 자원을 할당받지 못하고 빛을 보기 전에 사장된다.

LG전자 역시 카인포테인먼트 사업 초반에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시제품은 중앙연구소인 DM연구소에서 개발하고 양산은 AV사업부에서 맡는 구조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애프터마켓과 달리 비포마켓은 시제품 개발 이후 여러 단계의 제품 검증 과정을 거쳐야 최종 양산 승인을 얻는다. 완성차 업체의 공정 감사나 품질 요구 수준은 AV사업부의 내부 기준보다 까다로웠다. 또한 사업부는 일반적으로 매출과 손익으로 평가받다 보니 규모가 작고 적자투성인 신사업은 사업부 내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AV사업부 인원들은 신사업에 투입되기를 꺼렸고 역량이 부족한 신입들이 주로 업무를 맡았다. 그러다 보니 AV사업부의 기존 사업과 다른 프로세스로 진행되는 카인포테인먼트 사업에 투입된 인력들은 기존 사업부의 협력을 얻기 위해 보고와 회의가 많아지고 이는 신사업 담당자들의 생산성 저하로 연결됐다. 사업화가 지연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런 조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 카사업 담당 조직을 신설했으나 관련 부서 간의 긴밀한 연계는 요원했다. 이에 2006년 AV사업부 산하의 사업 담당 조직을 사업팀 조직으로 승격시켜 AV사업부에서 분리했다. 자체 인력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조직적 토대가 마련됐다. 눈에 보이는 시너지 창출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조정 비용을 증가시킨다. 신사업의 전략적 특성이 다를수록 기존 사업 조직에서 분리해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과다한 조정 비용의 지출을 막는 것이 신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3. 신사업 발굴과 육성은 본사가 주도하라.

Block & McMillan(1993)은 신사업 발굴과 육성은 본사가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 사업 조직은 매출과 손익에 대한 평가가 우선하므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신사업을 전개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경영진이 신사업에 필요한 스키마(schema)와 마인드셋(mindset)을 습득하지 못한다면 신사업은 기존 조직 안에서 뿌리 내리기 힘들다(Prahalad & Bettis, 1986). 이런 맥락에서 본사 주도의 신사업 발굴과 육성은 최고경영진이 새로운 관점을 학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1999년 정부의 빅딜 정책으로 반도체 사업을 현대전자에 매각한 LG전자는 이후 반도체 사업의 호황기를 맞이한 삼성전자와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LG전자는 절치부심하며 새로운 사업기회를 탐색했다. 2003년에는 사업 분야별 신사업 기회 발굴 컨설팅을 노무라 등으로부터 받기도 했다. 이에 2003년 9월 대표이사로 부임한 김쌍수 전 부회장은 신사업 발굴과 육성을 자신의 중요한 역할로 인식했다. 대표이사 본인 KPI(Key Performance Index, 핵심성과지표)의 70%, 사업본부장 KPI의 50%를 미래 사업 준비에 할당했다.

이에 김쌍수 전 부회장은 자신의 스태프 조직인 전략기획팀에 신사업 발굴과 육성 기능을 추가했다. 전략기획팀에서 격월로 ‘신사업전략회의’를 개최해 새로운 사업 기회에 대해 검토한 내용과 육성 중인 신사업들의 현황이나 주요 사안을 최고경영진에게 보고하고 전사적 지원 방안을 고민했다. 예를 들어, LG전자의 태양전지 사업은 2005년 8월 전략기획팀이 최초로 사업성을 검토하고 1년 뒤 구체적인 실행 안을 마련해 실제 투자로 이어졌다.

당시 카인포테인먼트 사업은 이미 추진 중인 신사업 중 사업화 가능성이 높아 대표이사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신사업 추진팀 입장에서는 정기적으로 대표이사의 점검을 받는다는 점이 큰 부담이지만 그만큼 자신이 속한 사업본부나 사업부의 경영진을 설득하고 필요한 자원을 얻어내는 데 효과적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카인포테인먼트 사업 조직의 선제적인 조직 개편이나 DM연구소와 휴대폰사업부의 개발 인력 투입 등은 ‘신사업전략회의’를 통해 최고경영진이 신사업의 현안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정이다.

 
결론

대기업이 전혀 다른 업종에 진입해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재무성과를 기준으로 관리되는 사업부제 조직구조에서 적자투성이 신사업은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신사업은 자원 투입의 생산성이 떨어지기에 사업부는 베테랑 인력보다는 신입이나 외부의 경력 직원을 투입하고 이는 신사업의 조직 역량을 약화시킨다. 그런 측면에서 LG전자가 카인포테인먼트 분야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사례는 여러 함의를 갖는다. 사업 초기, LG전자는 전략적 이질성을 외면한 채 신사업을 기존 사업 조직에서 실행하려 했다. 그러나 곧바로 실수를 깨닫고 선제적인 조직 개편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발 빠른 대응에는 전략기획팀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있었다.

2010년 구본준 회장의 등장으로 LG전자의 자동차 부품 사업도 일대 전환을 맞았다. 카인포테인먼트에서 전기차 부품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특히 오너 일가가 대표이사직을 맡음으로써 그룹 차원의 역량을 집결할 수 있었다. 2013년 V-ENS의 인수합병도 오너 일가였기에 수월했던 점도 분명 있다. 그러나 현재의 VC사업본부의 성과는 카인포테인먼트 사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했기에 가능하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하영(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경영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강신형 KAIST 경영공학 박사 david.kang98@gmail.com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강신형 박사는 KAIST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경영공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LG전자 본사 전략기획팀에서 신사업기획, M&A, J/V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에서도 근무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영혁신으로 개방형 혁신, 기업벤처캐피털(CVC) 등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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