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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레이징 노하우

혁신적 기술만으로 투자 유치? 비즈니스 모델 없으면 무용지물

김기갑 | 233호 (2017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창업가들은 벤처캐피털(VC) 앞에서 피칭할 때 본인들의 아이디어나 기술이 얼마나 독보적이고,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what to invent)를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정작 VC들이 듣고 싶은 내용은 그런 아이템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들일지(How to make money)다. 스타트업은 현재 시장의 문제점과 솔루션을 비즈니스 모델로 구체화하고 투자자금의 용처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펀드레이징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자금 유치를 추진한다면 촘촘한 국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남아 같은 신흥시장을 타깃으로 중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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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회사 설명 잘 들었습니다. 끝으로 대표님께서는 지금 회사 밸류에이션(Valuation·기업가치)을 얼마로 보고 계신가요?”

“아, 저희 회사 밸류 말씀이신가요. 저희는 한 250억 정도로 보고 있어요.”

“음… 생각보다 크게 보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근거를 좀 말씀해주시죠.”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팔 겁니다. 자신 있어요.”


지난 7월7일 필자가 근무하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디지털센터에서 한 스타트업 대표와 나눴던 대화의 일부다. 이날 대화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출신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스타트업인데다 앞서 시드(Seed) 투자도 성공적으로 받았기 때문일까? 이 회사의 박 모 대표는 자신감이 넘쳤다.


회사의 아이템은 오토바이나 자전거 보행자의 헬멧에 장착하는 무선(Bluetooth) 스마트디바이스다. 이 디바이스를 헬멧에 장착하면 이어폰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주변 소리를 들으면서 통화를 하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혹시 발생할 안전사고에 대비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퀵서비스 시장과 공사 현장 등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며 오토바이 유동 인구가 많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수요가 많을 것이라는 게 대표의 설명이었다. 필자가 동남아 비즈니스 환경에 익숙한 터라 박 대표의 아이템은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 아이템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할 것인가라는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에 대한 물음에 박 대표의 대답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저희 정말 많이 팔 수 있습니다. 다른 벤처캐피털(VC·벤처기업 투자자)에서도 많이 팔릴 것 같다고 했어요”라는 박 대표의 말에 기운이 빠졌다. 적어도 VC로부터 비즈니스 모델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명확한 타깃 시장이 어디인지, 또 그 시장에 어떻게 진입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줘야 한다. 회사가 속한 시장에 대한 치밀한 조사는 기본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아직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만한 마케팅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들은 제품 개발에 열중하다 보면 마케팅 부문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스타트업 대표가 앞으로 우리의 주요 고객이 누가 될 것이고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스타트업 대표가 자기 회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 250억 원의 가치를 주장하려면 구체적으로 매출이 발생하고 있거나 아주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어야 한다. 손익분기점 예상 시기도 제시하지 못하는 스타트업 대표가 이런 밸류에이션을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자신감의 산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사실 돌아보면 이건 이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만났던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 역시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비슷했다. 폼나는 사업 아이템을 피칭(발표)하면서 밸류에이션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100억 원 정도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해 제대로 답을 내놓는 회사를 만나기 힘들다.


스타트업이 가장 어려워하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바로 ‘투자 유치(Fundraising)’다. 펀드레이징 없이 계속 경영을 해나갈 수 있는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 스타트업과 VC는 바늘과 실의 관계다. 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을 ‘투자 라운딩을 돈다’고 하는데 대부분 스타트업들은 라운딩을 돌 때마다 그야말로 큰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다. 최근 일부 대기업이 구직자들에게 ‘압박면접’을 해서 인권을 침해했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사실 VC와 스타트업 간 미팅에서는 압박의 수위가 매우 높을 때가 많다. 노련한 VC 심사역들은 단 몇 마디 촌철살인 같은 질문들로 스타트업 대표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이들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비즈니스 플랜을 모래성처럼 무너뜨린다. 이렇게 VC들 문지방을 넘나들면서 투자 라운딩을 거치는 과정에서 스타트업 대표들의 ‘멘탈’은 더욱 단단해진다. 수많은 투자 유치 실패 경험이 쌓이면서 이들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스타트업 역시 사업이고, 사업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피칭은 자기 PR이 아니다

필자는 지금도 일주일에 평균 3∼5개 새로운 회사들을 만나고 있다. 이들 스타트업은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해 필자의 회사를 찾는다. 스타트업들은 피칭 과정에서 대부분 비슷한 문제점을 노출한다.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이나 서비스의 장점만 집중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자사 기술이 세계 최초 또는 기존 기술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홍보하려 애쓴다.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혁신’ ‘창조’ ‘도전’ ‘열정’과 같은 단어들이 연관 검색어처럼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자신의 창조물이 혁신적이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면 성공할 수 있으며 투자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믿음은 투자로 연결되지 못한다. 투자자의 관심은 ‘무엇을 만들어 낼지(What to invent)’가 아니다. 그보다는 가지고 있는 사업 아이템으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How to make money)’에 있다. 투자자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사업가다. 그런데도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은 마치 오디션 참가자처럼 VC에게 자신의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자랑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접근이다. 투자자들은 “우리는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사업 아이템을 팔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고, 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사업가에게 투자자는 자본을 제공한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스타트업 P사와 N사가 투자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두 회사의 아이템은 비슷했다.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과 위치정보서비스(LBS·Location Based Service)를 결합한 소형 디바이스를 만들었다. 이 디바이스를 장착하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기술면에서 보면 N사가 더 앞서 있었다. N사는 이 디바이스에 카메라와 블랙박스 기능까지 추가해 위치를 추적하면서 영상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투자는 P사가 받았다. 승부는 비즈니스 모델에서 갈렸다. N사의 제품은 건설 현장이나 집회·시위 현장, 자동차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였지만 구체적인 판매 채널이나 세일즈 전략이 없었다. P사 디바이스의 기능은 의외로 단순했다. 손바닥 크기의 디바이스에 네트워크 시스템을 장착한 게 전부였다. N사의 제품과 비교하면 기술 면에서는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 비즈니스 모델과 판매 전략이 탁월했다. 이 회사는 오토바이 인구가 많은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을 타깃 시장으로 잡았다. 실제 동남아 지역에서 오토바이는 중요한 재산목록이라 사람들이 오토바이 분실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자신의 오토바이 위치를 스마트폰으로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니즈는 매우 큰 편이었다.

또 P사는 동남아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디바이스를 B2C로 판매하기보다 현지 통신사업자의 부가서비스로 오토바이 위치 추적 기능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즉, 현지 통신사업자가 고객으로부터 옵션 요금을 받고 P사의 디바이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추진한 것이다. 이 회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시장에 대해 철저한 리서치를 실시했고 비즈니스 모델도 논리적으로 잘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하기 위해 VC 투자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이끌어냈다.


P사의 사례가 성공적인 피칭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피칭을 할 때는 우리가 왜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당위성을 설명해야 하며, 그 근거는 비즈니스 모델이어야 한다.


피칭은 크게 6 단계로 볼 수 있다. ① 우리가 어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인지에 대해 소개로부터 시작해 ② 우리가 목표로 하는 시장, ③ 현재 시장의 문제점과 ④ 우리가 가진 해결책, ⑤ 이 해결책을 구체화한 비즈니스 모델, 마지막으로 ⑥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하기 위해서 투자가 필요하다는 흐름이 논리적으로 잘 이어져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현재 시장의 문제점이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돼야 하고 비즈니스 모델과 투자자금 사용의 목적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과 투자자금 사용 목적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도 가끔 목격된다. 예를 들어, 해외 판로 개척을 비즈니스 모델로 제시한 회사가 제품 연구개발(R&D)에 돈을 쓰겠다는 식이다. 일부 바이오 관련 업종에서는 예외가 있지만 대부분 스타트업 펀드레이징에서는 회사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회사의 수익 변화를 체계적으로 어필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정부 규제 우물에 갇혀 ‘글로벌’ 외면하는 스타트업


최근 필자가 지켜본 안타까운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매년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글로벌 모바일 챌린지(GMC)>라는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는 전 세계 IT 관련 스타트업들이 참여하는 초대형 데모데이다.1 나라별로 1개 대표팀을 선발해 대륙별로 1차 심사를 거친다. 대륙별 심사에서 선정된 상위 3개 팀에는 곧바로 20억 원의 투자가 집행된다. 또 이들 스타트업을 바르셀로나로 불러 최종 심사한 후 최우수상을 받은 스타트업에는 추가로 투자가 진행된다. 지난해 말 열린 GMC 2017은 페이스북과 IBM, 레드불(Redbull) 등이 스폰서로 참여해 심사를 통과한 업체들에 투자를 했다.


이 행사는 말 그대로 IT 스타트업의 월드컵이다. 지난해 한국 K&T파트너스는 싱가포르 메이저 VC인 퀘스트벤처스(Quest Ventures)와 함께 GMC 2017에 참가할 한국 대표 기업을 선발했다. 작년 12월19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자체적인 데모데이를 거쳐 1등 기업을 선발해 아시아 대표 선발전이 열리는 싱가포르로 향했다.


우리는 한국 대표로 스타트업 H사를 선발했다. 이 회사의 아이템은 마이크가 내장된 이어폰으로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귀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잡아내기 때문에 통화할 때 잡음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확실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파이널에는 한국을 포함해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9개 국가의 스타트업이 참여했다. 3위에만 들면 20억 원의 투자를 곧바로 받을 수 있었다. 한국 대표 스타트업의 성적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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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한 8개 아시아 스타트업 가운데 우리나라 팀은 최종적으로 상위권을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 문제는 역시나 취약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전 세계 벤처투자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앞에서 우리 스타트업은 한국에서 데모데이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국내 시장 공략 전략만 열심히 피력했다. 글로벌 진출 전략을 소개하긴 했지만 먼 미래의 이야기로 들렸다. 순간 아찔했다. 사실 한국 대표 선발전을 할 때도 글로벌 진출 전략이 약한 게 신경이 쓰였다. 이들의 글로벌 전략은 막판 구색 맞추기로 허겁지겁 끼워 넣은 느낌이 강했다.


반면 우리가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동남아 스타트업들은 상대적으로 ‘글로벌’해 보였다. 자신들이 속한 내수시장은 좁으니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가장 약체로 평가했던 캄보디아 스타트업이 오히려 글로벌 진출 전략에서는 꽤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이 캄보디아 스타트업은 온라인 영어 교육 플랫폼 사업을 하는 회사였는데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피칭에서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동남아 시장 장악 전략을 피력했다.



이날 행사는 필자에게 새삼 동남아 지역의 스타트업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행사 이후 심사위원단에 참여한 퀘스트벤처스 대표 제임스 탄(James Tan)과 이야기를 나누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 국가 스타트업들은 자국 시장 규모가 너무 작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보니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글로벌시장, 적어도 동남아 전체 시장을 타깃으로 삼고 창업을 시작한다. 척박한 환경이 그들을 글로벌 경쟁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한국 대표 스타트업은 실리콘밸리에서 8억 원가량의 시드 펀딩2  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면서 국내 VC들 사이에서 시리즈A 투자를 하겠다는 러브콜을 많이 받고 있었기에 어쩌면 GMC 입상을 통한 펀딩이 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아시아 대표 선발전 데모데이 이후 추가 심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 스타트업은 상당히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심사위원단이 서면으로 요구하는 질의 사항과 자료 요청에 이 스타트업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필자가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GMC 투자유치를 통한 진출보다 이 스타트업은 당장 진행 중인 국내 펀딩에 더욱 집중했던 것 같다.





비단 이 스타트업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국내에 국한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빠르게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한두 번 펀드레이징에 성공할 수는 있겠으나 중장기적인 자생력을 갖추기는 어려워진다. 우리 스타트업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사이 전 세계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 즉 1조 클럽에 해당하는 스타트업을 흔히 ‘유니콘(Unicorn)’이라 부른다.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 이상, 즉 10조 클럽 이상의 스타트업을 뿔이 10개 달린 상상 속의 동물 이름을 빗대어 ‘데카콘(decscorn)’이라고 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3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유니콘 기업은 186개다. 우리가 뉴스나 실생활을 통해서 접해서 알고 있는 우버(기업가치 680억 달러)와 샤오미(460억 달러)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 스타트업이 99개로 압도적으로 많다. 놀라운 것은 중국이 42개의 유니콘을 탄생시켜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를 빠르게 점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양대 유니콘이 전체의 76%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은 어떨까. 국내 스타트업은 딱 3곳에 불과하다. 쿠팡(25위)과 옐로우모바일(31위), CJ게임즈(69위)뿐이다. 이들 기업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꼽히지만 ‘넥스트 스테이지(Next stage)’에 대한 전망이 밝은 편은 아니다. 그동안 정부가 대대적으로 창업 지원 자금을 쏟아부은 것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성적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아이템으로 꼽히는 핀테크,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바이오·헬스케어 같은 영역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그 이유는 우선 국내의 촘촘한 규제 때문이다. 우버와 에어비앤비(Airbnb)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꼽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운수사업법’과 ‘공중위생관리법’ 등 긱종 법률에 가로막혀 서비스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산나눔재단이 최근 발간한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00대 스타트업 중 57개 업체는 한국의 규제 환경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스타트업이 기존에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을 펼치더라도 규제로 인해 불법 사업자가 될 공산이 매우 크다는 얘기다. 한국은 여러모로 스타트업을 하기에 쉽지 않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 머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야를 글로벌로 넓혀야 한다. 글로벌화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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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투자 유치는 필수, 동남아 진출 노려야


최근 싱가포르에 가보면 길거리의 일부 쓰레기통 겉면에 쓰레기가 얼마나 찼는지 보여주는 표시장치가 있다. 중앙관제소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쓰레기통 덕분에 청소 차량에 최적의 이동경로를 제공해준다. 앞으로는 청소 차량에 자율주행 기능도 탑재한다고 한다. 이런 서비스를 최초로 개발한 곳은 이큐브랩이라는 한국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규제로 가로막힌 국내 환경을 직시하고 싱가포르에서 먼저 서비스를 출시해 성공을 거뒀다.3  제만 탓할 수는 없다. 결국 이큐브랩의 사례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사업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시드 단계 스테이지부터 글로벌 진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려면 적합한 글로벌 VC를 만나야 유리하다.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해외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물론 외국 VC를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 스타트업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데다 언어 장벽도 있다. 또 한국 VC보다도 투자를 받기 위한 단계도 더 길고 장벽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려면 해외 VC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한국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라는 거대 시장과 가깝다. 중국 시장은 매우 크지만 한중 간 국제 정치 상황에 따른 리스크 또한 크다. 필자는 스타트업들이 동남아 시장에 주목하길 바란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내년 4.9%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베트남과 필리핀은 6%대의 고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베트남 호찌민 중심가에서는 재래시장에도 카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청년들 상당수는 고속 인터넷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과 달리 규제가 촘촘하지 않기 때문에 우버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교통 혁명도 일어나고 있다. 베트남에서 콘텐츠와 전자상거래, O2O 분야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싱가포르 VC의 투자를 받는 게 좋다. 싱가포르 VC는 동남아시아 전역에 투자 활동을 펼치면서 경제 영토를 확장해왔다. 한번 자신의 포트폴리오로 들어오면 투자한 회사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도 펼치고 있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사업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글로벌 투자 유치를 받으려는 스타트업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김기갑 케이엔티파트너스(K&T Partners) 대표 kimkikab@kntp.co.kr

김기갑 대표는 고려대 사회학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 씨티은행과 우리투자증권에서 근무했다.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 2011년 글로벌 스타트업 트렌드를 읽고 케이엔티파트너스(K&T Partners)를 창업했다. 글로벌 자금이 모이는 싱가포르에서 현지 벤처캐피털(VC)과 조인트벤처 형태로 동남아시아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했고 한국 스타트업의 동남아시아 진출도 지원하고 있다.

  • 김기갑 김기갑 | 케이엔티파트너스(K&T Partners) 대표
    한국 씨티은행과 우리투자증권에서 근무했었음.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 2011년 글로벌 스타트업 트렌드를 읽고 케이엔티파트너스(K&T Partners)를 창업했음.

    kimkikab@knt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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