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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by Map

런던의 택시기사도, 한국의 직장인도 기존 전제 버려야 ‘고수’ 될 수 있어

송규봉 | 227호 (2017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세계경제포럼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금융서비스업(Financial Services)의 미래를 좌우할 변화의 요인을 언급했다. ① 빅데이터·처리 역량 ② 모바일·인터넷·클라우드 기술환경 ③ 신흥시장의 모바일 이용자 ④ 업무 성격의 근본적인 변화 순이었다.
한 분야에서 탁월해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시대에 뒤지지 않고 괜찮은 역량을 갖추는 것도 만만치 않다. 스스로 이끌지 않으면 남들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 근본적인 통찰과 오랜 숙련을 감당해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전체 맥락, 성취 수준, 현재 한계를 모두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핵심적인 지식이 무엇일지도 내다보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나열된 핵심 주제 중에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해서 스스로 지식을 쌓아가야 한다.



편집자주

DBR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거나 혁신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는 ‘Management by Map’ 코너를 연재합니다. 지도 위의 거리든, 매장 내의 진열대든,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든 공간을 시각화하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정보가 보입니다. 지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면허시험

런던 택시기사 면허시험은 가혹하다. 평균 4년이 걸린다. 최종 합격까지 평균 8000시간의 연습량이 필요하다.1 대신 합격 후에는 연수입 평균 1억 원 내외를 기대할 수 있다. 런던 택시기사는 GPS나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수 없다. 1800년대부터 유지해온 런던 택시의 전통 때문이다. 2만5000개 길거리와 2만 개 건물을 모두 암기해야 한다. 교통상황, 신호등, 차선 수, 건물의 순서, 공사구간, 새로 생긴 레스토랑과 술집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 두 아이의 아빠 맷 매캐비(Matt McCabe)는 30대 후반이다. 필기시험은 통과했다. 구술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지도 한 장을 들고 스쿠터에 오른다. 종일 런던시를 돌아다니며 머릿속에 경험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런던 택시 면허시험은 ‘지식시험(Knowledge Test)’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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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12시40분,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공연장 오투(The O2)까지 가장 적게 신호등을 받아서 가야 한다면 당신이 선택할 최선의 경로는 무엇인가?” <지도 1>처럼 구글맵에서 경로를 검색해보면 우선 3가지가 제시된다. 하지만 시험장에서는 순전히 자신의 두뇌만 써야 한다. 구술시험관은 런던 택시 수십 년 경력을 자랑하는 현역 베테랑들이다. 길거리 이름, 건물 순서, 좌우회전, 공사구간을 정확하게 구술해야 한다. 매캐비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365일 하루 평균 13시간씩 스쿠터를 타고 교통상황을 공부하고 다니는 이유다. 비나 눈이 오면 현장학습은 더 중요하다. 거를 수 없다. 정체구간이나 도로사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2


런던대 뇌과학자들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런던의 택시기사와 버스기사의 두뇌에는 차이가 있을까? 런던 택시의 필기시험을 통과한 연습생부터 수십 년 경력자들의 뇌사진을 fMRI3 로 촬영했다. 매일 지정된 경로를 반복해서 운전하는 버스기사의 뇌사진도 찍었다. 인간의 두뇌에서 공간기억을 담당하는 곳은 후위해마(posterior hippocampi)다. 택시기사의 후위해마는 버스기사에 비해 훨씬 더 발달했다. 운전경력이 오래된 택시기사일수록 해마가 더 컸다. 통계적으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4 치매에 걸리면 기억력이 급격히 쇠퇴하는데 해마의 크기부터 축소된다. 내비게이션이나 GPS에 의존하는 운전자의 해마 크기도 축소된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교양잡지

시사만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① 만화 실력 ② 시사 상식 ③ 유머 감각 이상 셋 중에 하나만 가지고는 어려울 것이다. 만화가 로버트 맨코프(Robert Mankoff)는 20대에 ①②③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1925년에 창간한 주간 잡지 <뉴요커>의 만화 부문 편집장을 1997년부터 2017년 4월까지 맡았다. 성공한 미국 만화가 중 한 사람이다. 만화 부문 편집장의 주된 업무는 매주 <뉴요커>에 도착한 약 1000개의 만화 중에서 16∼17개를 선별해서 잡지에 게재하는 일이다. 채택률은 1.7%, 가혹한 채택률이다.


그는 어떻게 까다로운 <뉴요커>에 수백 편의 작품을 싣고 나중에는 만화 부문 편집장이 될 수 있었을까? 심리학을 공부하던 20대의 맨코프는 1974년부터 1977년까지 2000개의 만화 작품을 <뉴요커>에 보냈다. 단 한 작품도 선택을 받지 못했다. 가혹한 채택률을 적용해도 서른 편 이상은 뽑혀야 했다. 고심하던 맨코프는 뉴욕도서관으로 갔다. <뉴요커> 창간호부터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잡지에 실린 모든 만화를 한 컷 한 컷 연구하기 시작했다. 50년 분량이니 2700권가량이다. 잡지 한 부당 17컷이 실렸다면 총 4만 컷을 분석한 셈이다. 맨코프는 ⓐ 그림(drawing) ⓑ 생각 ⓒ 독창성 세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

맨코프가 원래 가지고 있던 기본 전제 ①②③은 모두 무너졌다. ⓐ <뉴요커>는 ‘만화(cartoon)’가 아니라 ‘그림(drawing)’을 원했다. 맨코프는 <뉴요커>가 유머가 담긴 ‘만화’를 원한다고 믿었다. 맨코프의 신념은 <뉴요커>의 내부 정책과 엇갈렸다. ⓑ <뉴요커>는 그저 웃긴 ‘만화’가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을 원했다.5 일상에 쫓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그림’이 채택됐다.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말이다. ⓒ 독창성은 필수였다. 이전에도 없고 다른 누구와도 차별되는 독특한 표현방법을 지닌 그림들만 채택됐다. 맨코프는 기존 스타일을 버렸다. 시행착오를 거쳐 점을 한 땀 한 땀 찍어서 그림을 그리는 점묘법을 연마했다.6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림 3>의 왼쪽 그림은 회사 보스에게 업무지시를 받을 당시의 상황을 느낌표(!)로 표현했다. 그리고 보스의 사무실을 나올 때 회의와 의심이 생기기 시작해서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할 무렵은 물음표(?)에 빠진다. 업무 추진에서 확신이 의문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폭소를 유발하거나 상황을 과장하는 극적인 요소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회사 생활하는 직장인들이라면 자주 겪는 경험이다. 목청이 보이는 큰 웃음 대신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상사는 상사대로, 부하는 부하대로 소통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그림 3>의 오른쪽 그림은 제목도, 설명도 없다. 전구와 문장기호 하나를 가지고 창의성을 표현했다. 창의성은 막막한 물음표(?)로 시작해서 전구에 불이 켜지듯 느낌표(!)로 마감되는 과정이라고. 물음표를 3차원 조각품이라고 가정하고 이것을 공중에 걸어놓고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면 느낌표로 모양이 바뀐다는 설정이다. 계속 회전시키면 다시 물음표로 돌아갈 것이다. 창의성은 결국 물음표와 느낌표를 함께 품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의미가 깊지만 무겁지 않고, 깨달음을 주지만 가볍고 유쾌하다. <뉴요커>가 추구하는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다. 맨코프는 자신이 고집했던 고정관념 ①②③을 버리고 독자들이 원하는 ⓐⓑⓒ를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전환을 맞이했다. 그가 품었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전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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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자리의 변화

박 차장은 요즘 은행지점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고 있다. 박 차장은 신용카드 본사 마케팅팀에서 일한다. 신용카드 마케팅팀에서 왜 은행지점 위치를 분석하는 것일까? 박 차장은 10개 계열사로 구성된 금융그룹 소속이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전사적 전략수립 과정에 참여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금융그룹 산하 계열사 중에서 가장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고 있는 신용카드사에서 금융그룹 전체를 위한 빅데이터 중장기 전략을 제안하라는 과제를 맡았다. <지도 2>를 함께 들여다봤다. “최근 5∼6년 사이에 서울에서만 은행점포가 41%가 줄었네요.” 같은 기간에 은행지점이 1개라도 늘어난 행정동은 11개였다. 서울시 전체 423개 행정동 중에서 2.6%에 불과하다. 나머지 97% 지역에서 은행지점은 줄었다.



은행지점이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어디인가? 2011년 2599개였던 서울시 소재 은행지점은 2016년 1547개로 줄었다. 서울에서 기업체와 일자리가 고밀도로 몰려 있는 지역이 있다. <지도 2>와 <지도 3>에는 4대 밀집지역을 따로 표시했다. 이 지역에서만 은행지점은 2011년 469개에서 2016년 304개로 35% 줄었다. 서울 평균 41%보다 낮다. 주거인구가 밀집한 강동, 강북, 강서, 관악, 노원, 도봉, 은평 7개 행정구를 하나로 묶어봤다. 같은 기간 426개에서 233개로 45%가 줄었다. 서울에서 은행은 전체적으로 현격한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주택밀집지에서 더 큰 감소폭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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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지층

서울에는 470만 개 일자리가 있다. 일자리는 대지를 형성하는 지층처럼 산업별로 서로 포개진다. 그러다 절벽처럼 꺼지거나 가파르게 치솟는 단면도 있다. GIS(지리정보시스템) 분석을 위해 2014년 80만 기업체와 종사자 데이터를 일일이 컴퓨터 지도에 입력했다. 현재 서울시가 공개한 사업체 데이터는 2014년치가 가장 최신이다. 2010년에 비해 서울시 전체 일자리는 5%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 가장 크게 일자리가 늘어난 산업 분야는 과학·기술·전문서비스업이다.

<표 1>은 과학·기술·전문서비스 일자리를 구성하는 중분류별 현황이다. 전체적인 증가 추세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편차는 다르다. 동일한 기간 줄어든 분야가 있다. 건축·엔지니어링의 감소가 가장 크다. 건축, 도시계획, 조경, 토목, 환경, 지도 제작, 측량, 지질조사가 포함된다. 디자인업은 시각, 실내, 제품을 아우르는데 감소 추세다. 시장여론조사업 일자리도 줄었다. 큰 폭으로 늘어난 분야도 있다. 회사본사·본부, 수의업, 인문사회연구업, 광고업, 경영컨설팅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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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경제학과 프랭크 래비와 하버드대 교육학과 리처드 머네인은 공동으로 급변하는 일자리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보고서를 발표했다. ‘로봇과 춤을 - 컴퓨터시대의 역량’ 보고서는 제목부터 파격적이었다.7 컴퓨터가 미국 사회에 등장한 1960년부터 2009년까지 일자리의 변화를 추적했다. 정신노동이건, 육체노동이건 단순 반복에 해당하는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신, 사람을 상대하거나 데이터·정보를 다루는 비반복 인지노동은 크게 늘어왔고 그 추세는 꺾이지 않았다. 두 학자의 보고서는 새로운 정보를 다루고 사람과 더불어 새로운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일자리는 꾸준히 늘어왔다고 진단한다.

일자리가 감소 중인 분야라도 업무 특성별 전망은 다르다. 비반복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대인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면 소중한 역량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반대로 성장 분야라고 해도 변화의 핵심을 포착하지 못하고 새로운 변화를 놓친다면 위험에 빠질 것이다. <표 1>에서 수의업의 증가는 상식적이다. 더욱 주목할 것이 있다. 회사의 본사·본부, 인문사회연구업, 광고업, 경영컨설팅업의 일자리가 늘어난 배경이다. 변화 자체를 다루며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사람에게 적용하는 일들이다. 경영의 본질적인 활동 범위에 속한다. 기존 사업과 신규 사업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기업 외부와 내부에 어떤 메시지를 소통시켜 동의와 지지를 구할 것인가? 두 가지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일자리는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런던·뉴욕·서울의 풍경

꼬박 3년 동안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매캐비는 마침내 런던 택시 운전면허를 땄다. 매일 훈련일지를 쓰며 스스로 다잡았다. 그가 스쿠터를 타고 면허시험 준비를 위해 런던 시내를 이동한 총훈련길이는 8만㎞를 초과했다. 지구 두 바퀴 거리다. 합격증을 받고 식탁, 침실, 거실, 화장실 벽면에 빼곡히 붙여놓은 런던 지도와 메모지를 떼어낼 때, 끝내 아내를 붙들고 눈물을 터뜨렸다. 자신이 그렇게 울게 될 줄은 몰랐노라 고백했다. 살림살이는 나아졌다. 하지만 미래가 걱정이다. 매캐비는 요즘 우버 영업 택시 반대시위에 나간다. 우버는 조만간 인공지능 무인택시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머지않아 런던에는 GPS 지도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인 택시와 인공지능 GIS를 장착한 무인 택시가 동시에 거리를 누빌 것이다.

시사만화가 맨코프는 지난 40년 동안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만들고 선택해왔다. 자신의 작품 900편이 <뉴요커>에 실렸다. 맨코프가 구글 본사에서 특강을 진행했다. ‘유머에는 알고리즘이 따로 없다’로 제목을 정했다. 유머는 결국 사람 사이의 소통과정과 시대상황에서 형성되는 미묘한 자질이기 때문이다. 구글이 번역기와 무인자동차는 만들어낼지 모르지만 ‘유머’와 ‘웃음’을 자동으로 생성시켜내는 컴퓨팅은 당분간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2017년 4월 <뉴요커> 시사만화 편집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20년 만이다. 은퇴 후에도 현역 만화가로 살아갈 계획이다. 자서전을 집필할 것이고, 자신이 창간한 온라인 cartoonbank.com에 더욱 전념하겠노라 밝혔다.8

박 차장은 요즘 형광펜을 들고 각종 보고서를 읽고 있다. 한국은행의 ‘2016년 상반기 중 지급결제 동향’에 따르면 하루 평균 신용카드 사용액은 1조6000원, 1일 평균 결제 건수는 2749만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9.2% 증가했다. 한국의 경제활동인구를 2700만으로 가정한다면 1인당 1일 평균 1회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셈이다. 한국은행의 ‘2016년 2분기 국내 인터넷뱅킹 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스마트폰뱅킹의 하루 평균 이용금액은 3조498억 원이다. 1일 이용건수 5272만 건을 기록했으니 경제활동인구를 적용하면 1인당 1일 평균 2회 이상 스마트폰 금융거래를 이용한 셈이다. 모바일 시장조사 업체가 발표한 2016년 6월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하루 평균 3시간씩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다. 신용카드 마케팅은 이제 모바일 사용자들과의 관계 형성에 따라 판도가 바뀔 것이다.



고수는 다른 업종에서 영감을 얻는다

세계경제포럼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금융서비스업(Financial Services)의 미래를 좌우할 변화의 요인을 언급했다. ① 빅데이터·처리 역량 ② 모바일·인터넷·클라우드 기술환경 ③ 신흥시장의 모바일 이용자 ④ 업무 성격의 근본적인 변화 순이었다. 박 차장은 빅데이터 전략수립에서 단지 국내 경쟁기업의 선행사례를 선별적으로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금융업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새로운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박 차장이 형광펜으로 표시한 부분이 눈에 띈다. “골드만삭스가 전체 인력의 30%를 IT 인력으로 채우면서 ‘우리는 IT회사’라고 선언했다. 금융회사들이 빠르게 IT회사로 전환 중이다. 거대담론 대신 새롭게 인재를 재편해야 한다. 기초여건(fundamental) 기술부터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작은 응용까지 새로운 속도로 대응해야 한다.” 경쟁사 CEO의 신년사에서 따로 옮겨왔다. “벤치마킹을 할 때 처음에는 같은 업종의 장점을 따오지만 고수가 되면 다른 업종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유통이나 정보기술(IT) 같은 다른 분야를 서로 엮어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 카드업계에서도 남들과 차별화하려면 이 같은 이종 간 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다른 경쟁사 경영진이 기자간담회에서 남긴 말이다.

박 차장은 우선 두 가지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첫째, 당연하게 굳어진 관행적 전제들을 재점검하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수평으로 펼쳐놓고 넓고 거시적으로 살피되 특정 섹션의 데이터를 미시적으로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1억 건이 넘는 VIP의 최근 결제 데이터를 지역별, 업종별, 등급별로 크게 살펴보되 10명가량 대표성이 있는 고객 데이터만 따로 추려서 결제 데이터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있다. 예를 들어 해외여행을 떠나는 30대 미혼 여성은 여행 2주 전부터 쇼핑 결제가 급증한다. 온라인, 오프라인 동시에 증가한다. 반면 30대 미혼남은 별다른 쇼핑이 없다. 훌쩍 갔다가 훌쩍 돌아온다. 이런 패턴이 더 많다면 해외여행 직전에 고객그룹별로 새로운 마케팅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다른 산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사례들이다. 홈디포(Home Depot)는 연매출 85조 원에 이르는 건자재·인테리어 소매 브랜드다. 구글과 공동으로 홈디포 매장 위치에서 특정 반경 안에 살고 있고, 평상시 건축, 정원관리, DIY 관련 인터넷 검색 활동이 활발한 구글 이용자를 대상으로 별도의 모바일 마케팅을 수행했다. 테스트 매장에서 매출 93%가 증가했다. 홈디포와 구글은 검색기반 지역마케팅을 다른 매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9 노르웨이 미디어그룹 십스테드(Schibsted)는 자사 멀티플랙스 극장체인(CAPA)에서 스마트폰 앱을 통해 극장 내부에 설치된 비콘을 이용해 코카콜라와 공동 마케팅을 실시했다. 통상 스마트폰 마케팅에서 1.8%였던 반응률이 50%까지 올라갔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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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깨기와 우주 전투선

인공지능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허사비스가 노트북을 열었다. BBC 기자에게 알파고가 어떻게 스스로 학습해 ‘벽돌깨기’ 게임에서 인간을 압도하게 됐는지 설명했다.11 <그림 5>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벽돌깨기’ 게임 화면 아래에는 좌우로 움직이는 작은 막대가 있다. 작은 막대는 흰색 공을 재빠르게 튕겨내며 화면 상단의 벽돌을 깨뜨리며 점수를 올린다. 이 게임에서 움직이는 것은 2가지다. 흰 공은 화면 전체로 움직이지만 작은 막대는 지정된 높이에서 좌우로만 움직이도록 설계됐다. <벽돌깨기> 게임에서 알파고는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의 점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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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가 인간보다 훨씬 못하는 게임도 여럿이다. <그림 6>은 우주 전투선이 움직이며 고정된 위치의 적군 미사일 기지를 깨뜨리는 게임이다. 1단계에서 노란 상자 속의 전투선은 ①∼⑧에 각각 다른 위치와 환경에 설치된 적 기지를 타격해야 한다. 비행선이 장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계속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 문제는 1단계의 임무를 모두 성공하면 2단계가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3단계도 달라진다. 모든 단계마다 환경이 달라지도록 고안됐다. 전투선과 적 기지의 공방은 동일한 게임의 규칙이지만 단계마다 환경이 매번 달라진다. 알파고의 점수는 일반 사람보다 형편없었다. 허사비스의 <네이처> 논문은 알파고가 어떤 게임에 강하고 약한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12


알파고의 꿈은 컴퓨터 게임이나 바둑의 승자가 되는 게 아니다. 훨씬 더 원대하다. 인간이 풀고 싶은 미스터리, 즉 상상력의 본질, 기상 예측, 건강 문제, 로봇공학, 유전자 분석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는 것이다. 알파고의 출발점을 되짚어 보는 것은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모든 지식노동자들에게 의미가 깊다. 알파고의 출발은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학습하고 대응하는지 모방했다. 뇌과학의 원리를 컴퓨터공학과 결합했다.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배우고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지를 인공지능에 반영했다. 그래서 알파고의 성취는 역설적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미래에 어떻게 배워나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배울 차례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 이후 바둑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본 것처럼 말이다.



알파고는 시사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알파고 입장에서 런던 택시기사 매캐비가 눈물겹게 얻은 지식은 대체하기 쉽다. 알파고는 개발 초창기 아마추어 고수들이 인터넷 바둑게임에 남겨놓은 10만 기보 데이터를 다운 받아 학습을 시작했다. 게임의 기초적인 규칙을 터득한 것이다. 게임의 규칙을 파악한 후에는 스스로 수백만 건 게임을 통해 독학하며 다양한 수를 연습했다. 딥러닝(Deep Learning) 단계다. 바둑을 둘 때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가장 좋은 서너 수 중에서 최상을 선택한다. 인공지능이 똑똑할수록 적은 수만 검토한다. 그만큼 사전 학습이 이뤄져 승산이 높은 수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전체 바둑의 형세를 파악해 승률이 가장 높은 방향으로 결정해나간다.

매캐비는 런던 전체 도로망과 건물을 기억하고 중요 교통상황을 고려한다. 택시는 보통 후진 없이 앞으로 전진한다. 출발지에서 택시는 직진, 좌우회전, 유턴 중 극히 한정된 선택지에서 가장 좋은 하나를 택한다. 동시에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운전 전략을 짜야 한다. 그래야 다음 교차로에서 직진 대신 유턴을 하는 편이 나은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이세돌과 대국을 앞두고 또 다른 알파고 버전과 3000만 번의 대국을 진행했다. 엄청난 대국 경험을 쌓으며 승패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경기 결과를 거꾸로 추적해서 어느 수가 승패에 영향을 줬는지 의사결정에 관한 통계분석을 진행했다. 승리를 위한 최적의 한 수를 선택하기 위해 반복을 통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과정을 거친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시사교양잡지는 매주 편집 방향이 바뀐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사회면은 나름 고정돼 있지만 담긴 내용은 매번 다르다. 매년 봄이 오지만 똑같은 봄은 반복되지 않는다. 맨코프의 첫 번째 만화가 실렸던 1977년에는 스티브 잡스가 출시한 ‘애플Ⅱ’가 뜨거운 화제였다. 2017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논쟁의 중심에 있다. 맨코프는 매주 새롭게 도착한 1000개의 만화를 살펴봤다. 그의 업무는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이전과 전혀 다른 내용을 취급했다. 알파고가 1925년 창간호부터 최신호까지 <뉴요커>에 실린 모든 만화를 다운받아 패턴을 파악한들 맨코프보다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급변하는 환경에 대처하는 방법

회의실 형광등을 끄고 빔프로젝터를 켰다. 여러 장의 지도를 화면에 올려놓고 토론했다. “만약 현재 서울시에서 영업 중인 1500개 규모의 은행지점이 500개로 줄어든다면 어디를 남기고 어디를 버려야 할까요?” <지도 4>와 <지도 5>는 박 차장에게 주어진 빅데이터 전략수립에서 합의한 시범지역의 GIS 지도 중에서 고른 것이다. 서울시 구로·관악지역 20개 은행지점별 500m 반경을 그려 해당 지역에서 6개월 동안 결제된 신용카드 데이터를 분석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직장 밀집지역 구로디지털단지와 20대 유동인구와 1인 가구가 풍부한 관악지역을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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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 소량의 사례를 가지고 장기간의 전략을 짜려는 것은 아니다. 향후 전략수립에 반영할 시범분석에 불과하다. 사례연구에서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은행영업점 출점전략에 대해도 살펴봤다. 존 버히스(Jon Voorhees)는 BOA의 출점전략담당 부사장이다. 2014년 GIS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지난 15년 동안 뉴욕의 모든 교차로에 대해 통계모형을 적용해왔다. 어디에서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고, 수신고를 올릴 수 있는지 분석해왔다. 인내심을 갖고 오랫동안 데이터를 모으고 시행착오를 거쳐왔다.” BOA는 점포 수에서 전국 3위이지만 은행예치금 확보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13 그는 급변하는 금융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서 인내심과 꾸준함을 유지하며 이를 사내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14



회피에서 정보수집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중대한 질문에 직면한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질문은 스스로 자아정체성을 정립하는 두 가지 질문과 맞닿아 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모두 뚜렷한 대답을 가진 경우를 자아정체성 ‘성취형’이라고 분류한다. 삼성병원 부설 사회정신건강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의 12.5%만이 ‘성취형’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고 무엇을 할 것인지는 정한 유형이 있다. ‘조기선택형’ 또는 ‘폐쇄형’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74.4%가 이 유형으로 분류됐다.15 ‘폐쇄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나는 누구인지’ 질문의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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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들의 질문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어떤 사람들이 자아정체성을 ‘성취’하는가? 어떤 사람들이 성취하지 못하는가? 다시 자신에 대해 질문이 찾아올 때 세 가지 패턴이 발견됐다. ① 회피형은 질문에 직면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피해버린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쾌락적 자극이나 상황요인에 따라 행동한다. ② 규범형은 주로 다른 사람들을 따른다.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기존 관행이나 기존 질서를 수용한다.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발견되는 패턴이다. ③ 정보형은 탐구형 인간이다. 정체성의 변화가 필요하면 새로운 의견과 정보를 수집하고 여러 대안을 검토해서 자신에게 적합한 새로운 선택을 추구한다.16



중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찾아서

2016년 말 기준 런던에서는 매달 우버택시와 영업용 회사 택시 1800대가 경쟁하고 있다. 런던의 택시기사 매캐비는 대학 수준의 2년 과정으로 짜인 런던 역사강좌에 등록했다. 정규코스를 마치고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역사가이드’ 공인자격증이 주어진다. 자신이 가진 지리정보 지식에 런던의 스토리를 결합해서 새로운 역량을 쌓아갈 계획이다. 공인 역사가이드의 하루 일당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3만∼37만 원 수준이다.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서비스를 하면 40만∼50만 원대로 올라간다. 운전하며 가이드 서비스를 하면 일당은 60만∼70만 원대로 더 올라간다. 매캐비는 런던 택시 면허시험관도 꿈꾸고 있다. 우버의 무인 택시가 런던 시내를 휩쓴다 해도 불안에 떨지 않기 위해 매일 길을 나선다.

이번 시범 프로젝트가 끝나면 박 차장에게 따로 e메일을 보낼 생각이다. “1940년대 초 경영학과 관련된 필요한 지식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분석을 통해 어떤 핵심 지식이 빠져 있는지를 파악했다. 예컨대 기업의 목적, 최고경영자의 과업과 구조, 경영정책과 전략, 부문별 목표, 그리고 그 외에도 많다. 나는 그와 같은 지식들을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런 분석을 하지 않았다면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피터 드러커는 스스로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탁월함을 추구했다. 30대 초반, 자신이 속한 경영학 분야와 자신의 역량에 대해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17

한 분야에서 탁월해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시대에 뒤지지 않고 괜찮은 역량을 갖추기란 또 얼마나 만만치 않은 작업인가? 스스로 이끌지 않으면 남들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 이류, 삼류의 수준에서 일류의 높이로 올라보려면 드러커의 질문법은 울림이 깊다. 근본적인 통찰과 오랜 숙련을 감당하라고 알려준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전체 맥락, 성취 수준, 현재 한계를 모두 이해하라고 조언한다. 미래의 핵심적인 지식이 무엇일지도 내다보고 미리 준비하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나열된 핵심 주제 중에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해서 스스로 지식을 쌓아가라 조언한다. 맨코프가 기존 전제를 버리고 뉴욕도서관에서 수만 장의 만화를 분석한 것처럼 말이다. 자신만의 화법과 사고력을 창조한 것처럼. 다시,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스스로 묻게 된다.



송규봉 GIS United 대표 mapinsite@gisutd.com

송규봉 대표는 ㈜GIS United 대표를 맡고 있으며 연세대 생활환경과학대학원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GIS를 전공했으며 와튼경영대학원과 하버드대에서 GIS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미국 인터넷산업의 지도>와 <비즈니스 GIS> <지도,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 등이 있다.
  • 송규봉 송규봉 | - (주)GIS United 대표
    -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겸임교수
    - 와튼경영대학원, 하버드대 GIS연구원
    mapinsite@gisut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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