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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마트공장 현황

스마트 서비스로 내공 키운 일본 기업들 출발 늦었지만 ‘몸에 맞는 솔루션’ 찾아

나준호 | 227호 (2017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일본은 독일, 미국에 비해 다소 뒤늦게 스마트공장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차별화된 접근법으로 나름의 전략을 추진해가고 있다. 우선 일본은 독일식 CPS(가상현실융합시스템)나 미국식 클라우드 컴퓨팅 방식을 도입하는 대신 일본 기업들이 원래 강한 분야인 기계/계측/자동화 제품의 강점을 살려 개별 기기나 장비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에지 컴퓨팅(Edge Computing)’ 방식을 선택했다. 또한 장비, 소프트웨어, 네트워킹 방식에서의 표준화보다는 다양한 표준 대안 규격을 데이터베이스화해 기업 사정에 맞게 선택하게 하는 ‘느슨한 표준(Loose Standards)’ 전략 아래 스마트공장 도입을 추진 중이다. 더불어 일본은 완전 자동화 공장보다는 인간 중심의 스마트공장을 추구하며 유연한 공정을 운영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과 산업 여건이 여러모로 닮아 있는 일본의 사례는 개념 설계 역량이나 사업 구상력이 선도 국가들에 비해 부족하고 출발도 다소 늦은 우리 정부와 기업에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4차 산업혁명과 스마트공장이 중요한 혁신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스마트공장과 관련해서는 독일과 미국의 동향에 대한 관심이 높다. 독일은 4차 산업혁명 개념의 탄생지로 가장 활발하게 스마트공장을 추진 중이고, 미국은 산업 인터넷 관점에서 다양한 사업모델을 창출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의 스마트공장 전개 동향에 대한 관심은 의외로 낮다. 4차 산업혁명이나 스마트공장의 진원지가 독일, 미국 등 서구이기 때문에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후발주자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독일, 미국과 대비되는 나름의 방식을 만들고 빠르게 추격해 가고 있다. 최근 일본이 공개한 산업 IoT 활용 사례 지도에서는 160여 건의 케이스가 제시돼 있다. (그림 1) 적어도 양적으로는 독일의 유사한 사례 지도에서 제시된 154건을 오히려 웃도는 수준이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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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본의 스마트공장 동향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한국과 산업 여건이 여러모로 닮았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한국처럼 GDP 내 제조업 비중이 높다.1 주력 산업도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등 겹치는 부분이 많다. 게다가 사회적·문화적 여건이 유사해 제조 프랙티스들이 비슷하다. 나아가 일본은 기계·부품·소재, 한국은 고급 완제품 개발·생산 형태로 분업화가 상당 부분 진행돼 있고, 지리적·심리적으로 가까워 실무에서도 협력하기 쉽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글에서는 일본의 스마트공장 추진 동향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스마트 서비스에는 앞섰지만 스마트공장에는 다소 늦어

스마트공장은 기존 제조운영, 자동화 기술에 정보통신 기술이 결합된 공장을 말한다. 쉽게 말해 사물인터넷이 공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일본은 사물인터넷을 통한 신사업과 신서비스 창출, 즉 스마트 서비스 분야에서는 무척 앞서 있다. 이미 2000년대 초반 ‘유비쿼터스 네트워크(Ubiquitous Network)’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을 정도다. 이후 에너지, 교통, 헬스케어, 농업 등 다양한 현실 비즈니스에서 사물인터넷을 접목하려는 시도를 다양하게 전개해 왔다. 사물인터넷을 독보적인 사업모델로 성공시킨 기업들도 많다. 예를 들어 중장비 업체인 고마쓰(Komatsu)는 내부적으로 KOM-MICS 시스템, 외부적으로는 KOMTRAX 시스템을 활용해 스마트공장과 스마트 서비스에 앞서나가고 있다. 스마트 서비스에 있어서는 트럭이나 포크레인에 센서, 통신모듈을 달아 위치 추적 및 예지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고, 원격 조종되는 무인 트럭을 만들어 호주 탄광에 제공하기도 했다. (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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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제조 현장의 스마트화에서 일본은 의외로 미국, 독일보다 다소 지체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산업계에서도 독자적인 산업 어젠다를 제시하며 뚜렷하게 앞서는 기업은 많지 않았고, 정부 차원에서도 제조업 자체보다는 농업, 서비스, 인프라 등 비제조 산업의 선진화에 역점을 둬왔다. 제조 강국 일본의 위상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일이다.

이처럼 일본이 스마트 서비스에는 앞섰지만 스마트공장에는 늦은 이유는 3가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첫째, 지속적 현장 개선 위주의 제조 혁신 전통과 ‘제조업은 일본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워낙 강했다. 이 때문에 서구에서 일어나는 사물인터넷 기술 기반의 제조 패러다임 변화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둘째, 하드웨어 중심의 제품 경쟁력 강화 경향 때문에 기업 내부적으로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많이 키우지 못했다. 기업 집단 내부에 IT 서비스 전문 기업이 있더라도 IT 시스템 구축에만 주력하고 현장 제조와 긴밀하게 연결시키지 못했다. 셋째, ‘잃어버린 20년’을 견뎌내며 일본 기업들의 전략적 관심이 사업 정리나 구조조정, 감량 경영 등에 맞춰지면서 신규 투자를 수반하는 스마트공장의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015년부터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Industrie 4.0)’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미국발 산업 인터넷의 성공 사례들이 하나둘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조업의 사물인터넷 도입 지체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스마트공장 기술을 활용해 일본 고유의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 전통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역량 격차였다. 독일처럼 차세대 제조 패러다임을 창출할 만한 개념 설계 역량도, 미국처럼 강력한 IT 역량이나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어낼 전략 구상 역량도 부족하다. 또한 독일, 미국처럼 자신의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강제할 만한 산업 영향력도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됐다. 게다가 출발도 늦은 상태에서 서구와 동일한 방법으로 제조 혁신을 추진하면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 방법으로 서구를 추월하려 할까?



제3의 현실적 노선, 에지 컴퓨팅(Edge Computing)

일본의 스마트공장 관련 기업들의 강연이나 자료에서는 에지 컴퓨팅(Edge Computing)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에지 컴퓨팅이란 일종의 분산처리 개념으로 데이터를 가급적 개별 기기나 장비에서 처리하자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들은 왜 에지 컴퓨팅을 강조할까? 독일식 CPS(Cyber Physical System·가상현실융합시스템)나, 미국식 클라우드 플랫폼 없이 일본 기업들이 원래 강한 분야인 기계, 계측, 자동화 제품들만 가지고도 스마트공장을 상당 부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에지 컴퓨팅은 기울어진 판세를 전환할 수 있는 ‘제3의 노선’의 기초인 셈이다.

사실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이미 미국계 기업들이 절대적 우위를 확보했고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 우위는 더욱 강해질 것이므로, 동일한 방식으로 일본 기업들이 승기를 잡기는 어렵다. 또한 많은 기업들이 스마트공장에 관심을 보여도 지나친 투자는 원하지 않는다. 장비의 스마트화나 인공지능 결합 업그레이드는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하다. 에지 컴퓨팅 기반의 스마트공장이 비용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화낙(Fanuc), 키엔스(Keyence), 옴론(Omron), 미쓰비시(Mitsubishi) 등 일본의 다양한 기계, 계측, 자동화 기업들은 아시아에서 상당한 장비 기반(installed base)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기존 장비 기반들만 잘 활용해도 초기 시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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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낙의 ‘필드 시스템(Field System)’은 이러한 에지 컴퓨팅 개념에 기초해 개발된 대표적인 솔루션이다. 로봇이나 CNC(컴퓨터수치제어) 기기에서 얻어진 현장 데이터를 모두 클라우드에서 처리하는 대신 에지 단인 공장 내에서 분석하고 피드백해 기기의 지능화 수준을 실시간으로 제고하겠다는 게 핵심 개념이다. 클라우드에는 로컬 데이터에서 추출된 새로운 학습 모형 정도만이 공유된다. 미쓰비시가 선보인 ‘e팩토리(e-Factory)’ 솔루션도 에지 컴퓨팅을 강조한다.



표준화는 중요하지 않다, ‘느슨한 표준’에 초점

일본 스마트공장 추진 동향에서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느슨한 표준(Loose Standards)을 강조하는 점이다. 독일과 미국 기업들은 표준화를 강조한다. 장비나 소프트웨어, 네트워킹 방식이 표준화가 돼야 원활하게 장비, 공장을 연결할 수 있고 스마트공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말하는 느슨한 표준이란, 표준화는 일부에 한정해도 좋고, 로컬 표준을 사용해도 좋고, 나중에 표준을 변경해도 좋다는 의미다. 표준화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인 셈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스마트공장 추진의 중심 기구인 IVI(Industry Value Chain Initiative)에서는 5000건 이상의 다양한 표준 대안 규격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기업이 자사 사정에 맞게 선택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특이한 표준화 전략을 추진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과거 표준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PC 운영체제, CD/DVD, 플래시 메모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국 기술의 세계 표준화를 강력하게 추구해 왔다. 그러나 지나친 독자 표준화 추구는 오히려 독이 됐다. 제품이 일본에서만 통하고 세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갈라파고스화 현상’은 일본 전자 산업 몰락의 한 원인이 됐다.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로 실리적 판단 때문이다. 이미 출발도 늦은 상태에서 표준화 논쟁에 매몰되면 더욱 지체될 것이라는 위기감, 표준 설정보다 관련 기술 활용을 통한 생산성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적 접근, 워낙 다양한 산업과 기술들이 결부돼 있어 표준화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상황적 고려 등이 결합된 것이다.

다만 2017년 들어 일본은 조금씩 다시 국제 표준화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세계 표준화가 더디고 힘든 과정이긴 하지만 독일과 미국 주도로 진행돼 버리면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라는 생각에서다. 이러한 측면에서 향후 독일, 미국, 일본 간에는 협력과 경쟁의 구도가 성립될 것으로 전망된다. 외형적으로는 글로벌 표준화를 위해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지만 동시에 미래 시장에서 각자 지분을 키우기 위해 독자 개발 노력도 적극 진행할 것이다.



내 분야에서 일단 진행… 기업들의 각개 약진

앞서 설명한 ‘에지 컴퓨팅’이나 ‘느슨한 표준’의 관점에서는 모든 기업들이 합심해 새로운 스마트공장 개념이나 표준을 만들 필요가 없다. 개별 기업들이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기존 기계, 계측, 자동화 솔루션들을 좀 더 스마트하게 만들면 된다. 독일처럼 국가 차원에서 산·학·연 연계나, 미국처럼 대기업 주도의 기업 간 협력 같은 드라마틱한 상황이 일본에서 나타나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일단 작게나마 스마트공장 관련 사업들을 다양하게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 산업에서 파나소닉은 자체 공장의 스마트 공장화와 솔루션 외판이라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CCTV, 네트워크 장비 등 다품종 소량 생산 특성을 갖는 제품 라인과 개인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 제품 라인에서 스마트공장 솔루션을 실험했다. 이후 2017년부터는 경험을 전사로 확산시켜 각 사업부에서 대표 공장들을 하나씩 선정해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한 상태다. 동시에 공장 솔루션(Factory Solution) 사업부에서 스마트공장 솔루션 외판 사업을 추진 중이다. 최근 여기서는 클라우드 9 혁신센터(Cloud 9 Innovation Center)를 개설하고, ‘PanaCIM’이라는 MRP-ERP-MES(Material Requirement Planning,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자재소요량 계획, 전사적 자원관리, 제조실행시스템) 통합 소프트웨어를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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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쓰도 유사한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자사 노트북 생산 라인을 테스트 베드 삼아 스마트공장의 효과성을 실증하고 검증된 생산 시스템을 솔루션 형태로 외부에 판매하려 하고 있다. 센서 및 계측기 회사인 옴론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2020년까지 자사의 전원, 스위치 등 자동화 제어 기기 모두에 통신 모듈을 부착해 품질 향상, 생산성 향상에 더해 ‘멈추지 않는 공장’을 실현하려 한다. 이를 통해 중요 데이터와 노하우를 축적해 자동화 기기를 위한 통합 IT 플랫폼인 ‘Sysmac’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나아가 광전 센서, 근접 스위치 등 자사 제품에도 IO링크(Input Output Link) 통신 인터페이스를 부착해 2020년까지 전 상품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스마트공장은 새로운 신시장 기회, 부품/소재 기업들의 도전

이러한 각개약진 구도에서 일본 부품, 소재 기업들의 동향은 특히 흥미롭다. 서구에서 스마트공장을 신사업 기회로 활용하려는 기업들은 주로 장비, 자동화 기업들인데, 일본에서는 부품, 소재 기업들까지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부품, 소재 분야에서 워낙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데다 기존 기술을 조금만 확장하면 복합 센서, 로봇 및 AGV(Automated Guided Vehicle, 무인운반차)용 부품 등 새로운 시장을 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과 스마트공장 시대에는 다양한 기기들에 반도체와 센서가 부착·내장된다. 일본은 센서 시장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일본 센서 기업들은 미래 시장을 겨냥해 센서의 초소형화와 고성능화에 주력하고 있다. 히타치는 2.5㎜의 초소형 반도체 회로에 압전 센서를 탑재해 물리적 힘을 계측하고 정보를 송신할 수 있는 IoT 통합 부품을 개발했다. 옴론도 MEMS(Micro Electro-Mechanic System, 초미세 전기기계 시스템) 기술을 활용한 다기능 원칩 센서 모듈을 개발 중이다. 압력, 가속도, 온도 센서 등을 하나의 칩으로 집적해 스마트공장 구축의 편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한편 스마트공장 도입에 따라 협업 로봇이나 AGV 등 새로운 카테고리가 부상하면서 관련 부품 기업, 특히 기존의 ‘니치 플레이어(niche player)’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로봇을 예로 들어보자. 로봇의 동작 제어에는 모터뿐만 아니라 감속기도 중요하다. 기존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는 자동차, 기계를 제작하는 대형 로봇이 주류였고 당연히 고제어력 대형 감속기가 이용됐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감속기 시장에서는 대형에 강한 나브테스코나 스미토모중공업이 강자였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공장에서는 소형 협업 로봇 분야가 새로 부각되면서 제어력이 작더라도 소형화가 가능한 감속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하모닉 드라이브 같은 회사의 실적이 크게 좋아지고 있다.



스마트공장은 인력 감축이다? NO. 인간과 설비가 함께 성장하는 공장

스마트공장이라 하면 흔히 기계에 의한 인간 대체, 대량 해고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인간 중심의 스마트공장을 추구한다. 일본의 스마트공장 추진 협의체인 IVI에서는 사물인터넷과 자동화가 사람을 망각해서는 안 됨을 강조한다. 인간 중심의 제조가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아 어떻게 진화해 갈지를 그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공장 내외의 여러 이상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현장 소집단 체제의 강점은 계속 살려나가되 ‘개별 숙련자의 경험, 지식에의 지나친 의존’ 문제를 해소하는 데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을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 완전 자동화를 지향하는 기업은 캐논 정도다. 대다수 기업들이나 정부는 사람을 활용하며 ‘카이젠(改善)’ 아이디어를 계속 창출해 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IVI 내에서 도요타가 참가하는 워킹그룹에서도 인간 작업자의 동작과 동선의 데이터를 설비 가동과 품질 데이터와 연결해 ‘인간과 설비가 함께 성장하는 공장’을 만들려 하고 있다.

사실 미래 스마트공장에서는 인간과 기계의 협업이 중요하다. 이는 비용효율성과 유연성, 공정 진화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을 배제한 완전자동화는 제조 공정을 완전히 재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매우 커진다. 기존 공정의 장점을 살리며 필요한 부분만 자동화 장비들을 도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저렴한 다목적 기계이다. 특정 작업을 기계처럼 정교하게 수행할 수는 없지만 기계보다 훨씬 다양한 일들을 간단한 지시와 학습만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인간이 들어가야만 유연한 공정 운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나아가 공정의 지속적인 진화를 위해서는 인간의 고찰이 필요하다.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은 아직 인간만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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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무엇을 배울 것인가?

앞서 본 것처럼 일본은 공장 스마트화에 있어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에지 컴퓨팅과 느슨한 표준이라는 독자적인 제3의 노선을 추구하면서 의외로 빠르게 적용 사례를 늘려가고 있다. 기업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작게나마 스마트공장 사업들을 다양하게 벌여가고 있고, 일견 스마트공장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부품·소재 기업들도 제조 패러다임 변화를 새로운 사업기회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일본 기업들은 스마트공장을 단순한 생인화(省人化), 즉 인력 감축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과 설비가 함께 성장해가는 방법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 기업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제조의 새로운 진화다. 지난 수십 년간 추진해 왔던 카이젠이나 모노즈쿠리 등 전통적인 생산성 향상 기법이 직면한 한계를 스마트공장 관련 기술을 통해 돌파함으로써 새로운 생산성의 시대를 여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스마트공장 추진 동향은 일본처럼 개념 설계 역량이나 사업 구상력이 미국, 독일에 비해 부족하고 출발도 다소 늦은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무엇보다 각자의 몸에 맞는 스마트공장 전략과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독일과 미국식 스마트공장은 분명 면밀히 검토해야 할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지만 이를 무조건 맹신할 필요는 없다. 우리 몸에 맞는 나름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IT와 고정밀, 고품질 통합 역량, 우수한 공정 관리 능력과 압도적인 양산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우리 환경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다품종 소량 생산이 당연한 미래라고 생각하고 공정을 뜯어고치기보다는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혼류 생산 방식의 효율화를 어떻게 구현할 것일까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스마트공장을 멋진 미래의 자동화 공장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하는 대신 IT를 활용한 작은 현장 혁신들의 모자이크 집합체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되 현실은 작고 다양하게 진행해서 이를 모아 큰 그림을 완성시키는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가능하다면 스마트공장 시장의 성장과 관련해 자신의 영역에서 사업 기회로 연결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지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lajuno@lgeri.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공학 박사 학위(기술경영)를 받았다.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로서 금융, 재무 분야에도 능통하다. 현재 LG경제연구원에서 미래 트렌드, 신규 부상 기술, 신경영기법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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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지 컴퓨팅이란?

독일이 강조하는 CPS나 미국의 클라우드 플랫폼은 근본적으로 중앙집중형 컴퓨팅 개념이다. 즉 현장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데이터를 강력한 컴퓨팅 파워와 빅데이터 전문 도구로 분석해 새로운 통찰력을 추출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먼저 실시간 대용량 데이터가 클라우드에 집중돼 쌓여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중앙집중형 클라우드 컴퓨팅 개념은 기존의 PC, 모바일 인터넷 환경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율주행차, 스마트 인프라, 스마트공장 등의 새로운 사물인터넷 환경에서는 신호 지연시간(latency) 문제 때문에 안 맞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단말 수는 적지만 개별 데이터량은 많고 기기의 실시간 동작과 직결되는 특성상 신호 지연은 자칫 차량 사고, 신호체계 불능, 공정 중단 등의 치명적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에지 컴퓨팅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에지 컴퓨팅은 분산 컴퓨팅 관점에서 데이터를 생성하는 개별 기기나 장비 단에서 데이터 처리가 상당 부분 이뤄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에지 컴퓨팅에서는 사물인터넷이 클라우드(Cloud, 중앙 데이터 센터, 빅 데이터 플랫폼), 포그(Fog, 지역별 기지국, 게이트웨이), 에지(Edge, 스마트 기계, 단말)의 3중 구조로 이뤄질 것이라 본다. 즉 정보처리가 사물의 작동에 직결되는 사물인터넷 환경에서는 실시간 정보처리가 중요해지므로 클라우드, 포그, 에지 간에 정보의 생성과 전달 및 분석이나 인공지능 판단 등을 적절히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지 컴퓨팅과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가장 큰 차이는 에지 단의 기기, 장비의 성능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데이터 분석 처리는 멀리 떨어진 클라우드에서 수행하므로 개별 기기나 장비가 똑똑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최근 기업체에서 많이 활용되는 클라우드 PC 시스템에선 사용자들이 고가의 PC 대신 값싼 셋톱박스 형태의 기기로 접속한다. 그러나 에지 컴퓨팅에서 데이터 분석 처리는 기기, 장비나 이들을 일차 연결하는 게이트웨이에서도 상당 부분 이뤄진다. 이 때문에 기기, 장비, 게이트웨이는 현재보다 좀 더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다.


생각해볼 문제

1 현재 스마트공장 추진 전략은 독일, 미국, 일본 등 국가별로 차이가 뚜렷하다. 독일은 정부의 적극적 지원하에 산학연이 협력해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은 민간 기업 위주의 자발적 컨소시엄을 중심으로, 일본은 개별 기업들이 각개 약진하며 스마트공장 도입에 앞서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는 이 세 가지 모델 중 어떤 방식을 참고하는 게 좋을까?

2 스마트공장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CPS(가상현실융합시스템), 클라우드 컴퓨팅, 에지 컴퓨팅 방식의 장단점은 각각 무엇인가?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어떤 접근이 가장 효과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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