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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Sloan Management Review

R&D에 돈 쏟고, 서방 기업 손잡고 화웨이, 개도국 기업의 롤모델 되다

마뉴엘 헨스맨스 | 222호 (2017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질문
개발도상국 출신의 기업들은 기술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해야 할까?

연구를 통해 얻은 해답

- 자원이 한정된 고객들의 절박한 니즈에 부합하는 맞춤형 기술을 제공하라.
- 고객들과 파트너 관계로 혁신을 이끌어냄으로써 고객의 충성심을 구축하라.
- 정부 및 업계 이해당사자들의 지원을 확보하라.



편집자주

이 글은 2017년 겨울 호에 실린 ‘Competing Through Joint Innovation’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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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및 인도와 같은 신흥시장은 전 세계 기업들이 연구개발(R&D) 과제들을 추진하는 성장 동력이 돼왔다.1 중국 기업들이 혁신의 초점을 비용 절감에서 지식 기반의 연구로 바꾸고 있다는 증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신흥시장에 본거지를 둔 기업들이 서양 경쟁자들이 맡고 있는 혁신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넘겨받을 준비가 안 됐다고 여기는 서방 관측가들이 많다.2 그 결과 중국계 다국적 기업들은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 특히 전략적 기술 산업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럼 중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기술 산업(‘중국 생산(Made in China)’이나 ‘중국 설계(Designed in China)’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이런 서방 세계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용인되기 위해서는 어떤 역동적 혁신 역량에 집중해야 할까? 달리 말해, 어떤 문화적 특수성이 반영된 프로세스3 를 활용해야 할까?4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필자는 화웨이테크놀로지스(Huawei Technologies Co. Ltd.)를 연구했다. 이 회사는 중국의 통신사로서 최근 전략적으로 중요하면서 성숙기에 접어든 유럽의 통신산업에서 성공적으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연구내용’ 참고.) 중국 선전(Shenzhen)에 본사를 둔 화웨이는 전략적 기술 산업으로 서양에서 최초로 경쟁력을 인정받은 중국 다국적 기업 중 한 곳이다. 이런 성과를 통해 화웨이는 시장의 후발주자에서 선도자로 발돋움하려는 중국과 다른 아시아 기업들의 잠재적 롤모델이 되고 있다.5

화웨이는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유럽 시장을 선도하는 고객사 및 정부기관들과 공동 혁신 전략을 공격적으로 추구해왔다. 필자는 이 기사를 통해 화웨이가 공동 혁신 역량을 키우기 위해 유럽의 고객들과 어떤 식으로 긴밀하게 협력해 왔는지 논의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화웨이가 유럽 통신시장의 리더로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공동 혁신 역량

뉴델리(New Delhi)에 본사를 둔 통신 서비스 회사인 바티에어텔(Bharti Airtel Ltd.)을 비롯한 인도의 기업들은 신흥시장에서 공급업체 및 고객들과 유연한 파트너십을 맺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해왔다.6 이런 파트너십에 있어 화웨이가 특별한 점은, 이 회사의 발전을 견인했고 지금도 지속적인 성장 동력이 되는 공동 혁신 역량과 그 환경에 있다. (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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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서방의 관측가들은 중국의 혁신 문화가 일반적으로 이 나라의 문화·정치적 힘에 의해 제한돼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중국은 강한 기업가적 성향을 갖고 있다.7 중국의 많은 사업가들은 사업적 열망과 혁신을 향한 리더십 목표에 있어 북미나 유럽의 사업가들과 잘 맞는다. 화웨이는 회사를 설립한 지 10년이 채 안 된 1987년에 자신들이 전 세계 통신시장을 선도하는 기업 중 하나가 되겠다는 야심을 표명했다. 화웨이는 사업 초기부터 높은 연봉과 직원 보너스를 통해 중국 최고의 대학들을 졸업한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채용했고, 서양의 통신회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총매출의 10% 이상을 R&D 프로젝트에 투자한다고 주장해왔다.

화웨이는 경쟁에 대응하는 방편으로 자기비판(self-criticism)이나 지속적 투쟁(constant struggle) 같은 중국 문화 대혁명(China′s Cultural Revolution)의 핵심 가치의 일부를 긍정적으로 사업에 접목했고8 , 혁신을 앞당기기 위해 중국 사회가 동경하는 좀 더 현대적인 가치들도 수용했다. 예를 들면 중국 사회에서 성공과 야망은 높은 덕목으로 여겨지지만 중국의 근로자들은 서양 근로자들에 비해 개인의 업적을 인정받는 것에는 덜 집중하고 실패는 쉽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9 2015년 한 해 동안 601억 달러 매출을 달성한 화웨이는 종업원 지주 제도와 보너스 중심의 관리 구조로 회사의 가치를 강화해 나갔다.10

화웨이가 초창기에 중국에서 추구했던 전략은 다국적 기업들의 관심과 권력이 집중된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마을들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이런 시골의 사업자들과 호텔, 공장들은 열악한 송신 품질(때로는 쥐가 전선을 갉아먹기도 하는) 등의 조건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맞춤형 네트워킹 장비와 중앙 오피스 교환기(central office switches)가 필요했다. 당시 화웨이는 은행이나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수 없었으므로 초기의 R&D 사업들은 맞춤화되고 비용 효율적인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지역 고객들과 협력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화웨이는 고객들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필요한 투자를 단행함으로써 중국의 사기업들이 시장 입지를 굳히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겪는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자금과 권력의 중심에서 떨어져 지역 행정을 관할하는 관료들도 점차 화웨이를 민관협력의 매개체로 여기기 시작했다.



화웨이는 자국의 지역 사업가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맞춤화된 통신 장비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파트너(정부를 포함해)들과 어떻게 성공적으로 협력해야 하는지 터득하게 됐다. 또한 그런 역량을 활용해 마침내는 중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사업을 펼치는 중국 최대 통신사와도 사업적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화웨이의 설립자이자 CEO인 런정페이(Ren Zhengfei)는 중국의 한 시골마을 출신으로 중국인민해방군(People′s Liberation Amy)에서 엔지니어이자 과학자로 복무했다. 그는 혁신에 대한 화웨이의 접근 방식이 2가지 매우 다른 가치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해왔다. 그중 하나는 중국 문화 대혁명의 원칙들이고, 나머지 하나는 IBM의 전 CEO인 루이스 거스너(Louis Gerstner)가 강조한 고객중심주의다.11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3단계 전략

화웨이는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일반적으로 중국 내 입지를 다지는 데 활용했던 다음 전략들을 똑같이 활용했다. (1) 목표 고객들의 실질적 니즈와 한정된 자원에 부합하는 맞춤형 기술을 제공하라. (2) 공동 혁신을 위한 장기적 파트너십을 통해 실용적인 혁신을 증진함으로써 고객 충성심을 구축하라. (3) 정부와 대학, 기타 업계 이해당사자들의 우선순위에 맞춰 혁신에 대한 투자 계획을 조정함으로써 그들의 지원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범 시민(model citizen)’으로 인식되게 하라.12 (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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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두 단계는 순차적으로 실행되지만 3단계의 진행 시점은 혁신의 구체적 맥락과 그 시장에 존재하는 진입 장벽에 따라 다르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미국 같은 일부 시장은 진입하기가 특히 어려웠다. 정확한 시기나 순서와 상관없이 이
3단계는 진행상 중복될 때가 많으며 이런 모습은 화웨이가 중국과 유럽에서 경험한 혁신 과정에서도 목격된다.

1단계 목표 고객들의 실질적 니즈와 한정된 자원에 부합하는 맞춤형 기술을 제공하라. 화웨이는 서유럽 시장에 진출하려면 고객 및 정부와 관련된 엄청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예상했기에 2001년 초반부터 유럽에 직원들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최고경영진의 직접적인 지원 아래 중국 기업도 단순한 제품이 아닌 고객이 원하는 최첨단 하이테크 장비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럽의 통신 사업자들에게 설득하느라 힘든 시기를 거쳤다. 그리고 첫 번째 돌파구를 200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이동통신사인 텔포트(Telfort B.V.)를 통해 마련할 수 있었다. 당시 텔포트는 자신들을 이동통신 업계에 뿌리내린 표준 관행에 도전하는 거품을 뺀 회사로 묘사했다. 텔포트에는 런던의 보다폰(Vodafone)이나 파리의 프랑스텔레콤(현재의 오렌지텔레콤) 같은 거대 사업자가 가진 재정적 힘이 없었다. 게다가 텔포트는 에릭슨(Ericsson)이나 알카텔-루슨트(Alcatel-Lucent)같이 시장 입지가 탄탄한 통신 장비 업체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화웨이 제품에 승부를 걸었다.13 ::C::“Huawei Technologies Has Been Selected by Dutch Operator Telfort B.V. for Its UMTS Roll-Out,” news release, Dec. 9, 2004, http://pr.huawei.com.::C/:: 화웨이는 텔포트의 요구 사항에 열심히 귀 기울이는 적극성을 보여줬고, 그동안 충족되지 못했던 그들의 니즈에 대한 스마트한 해법을 찾아냈다. 화웨이는 텔포트와 긴밀하게 협력함으로써 기존 방식 대비 운영 비용 및 노력을 줄일 수 있는 분산 기지국(distributed base station)을 개발할 수 있었다.

텔포트 같은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위해 화웨이는 기존의 대형 업체들이 제공해온 솔루션보다 위험 요인이 적은 대안을 제시해야 했다. 그리고 화웨이는 텔포트에 무료 테스트와 기술 지원 활동을 제공해 줌으로써 의도한 바를 이뤘다. 화웨이의 하드웨어는 보통 대형 경쟁사 제품보다 훨씬 더 저렴했다.14 ::C::경쟁사들의 높은 가격은 장기적 파트너십을 대가로 고객에게 제공되는 상당한 리베이트(35%에서 심지어는 95%까지)와도 관련돼 있었다. 화웨이의 최고경영진은 처음 유럽 시장에 접근할 때 잠재 고객들에게 가격을 할인해주는 방식을 이용했다. 하지만 유럽의 선도 기업들은 이를 위법 행위로 간주했을 뿐만 아니라 제품의 열악한 품질 및 중국계 기술 기업들에 낙인 찍힌 ‘모방 제품’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화웨이는 이후 현지 출신 회계 관리자들을 고용했다. 이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회사는 가격 할인이란 관행을 종결하고 고품질 제품에 대해 유럽 고객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맞춰 가격을 인상했다.::/C:: 게다가 고객 서비스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중에만 제공하는 업계 관행과 상관없이 추가 비용 없이도 장비 운송 및 설치, 유지 보수 서비스를 연중무휴로 24시간 해주기로 약속했다.

화웨이의 혁신 모델은 R&D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도 깊이 관련돼 왔다. 회사는 지난 15년간 일반적으로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했는데, 이는 절대치에서 유럽의 경쟁사들을 뛰어넘는 규모였다.15 또 화웨이는 중국의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몸값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경쟁사보다 프로젝트에 더 많은 수의 엔지니어들을 투입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화웨이가 서유럽의 잠재 고객과 처음으로 사업 논의를 시작했던 2000년의 경우에도 화웨이에는 대졸 엔지니어가 1만 명이나 있었다. 오늘날 화웨이에는 5만 명 이상의 개발자와 엔지니어들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 수는 서양의 그 어떤 경쟁사에도 밀리지 않는다. 화웨이는 업계 최고 수준을 인정받기 위해 기술 테스트에도 막대한 투자를 했고, 직원들에게는 주요 표준 관리 기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독려했다. 화웨이는 이런 활동들을 통해 고객별 니즈를 충족할 수 있도록 설계된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는 동시에 품질을 중시하는 회사의 입장을 피력해왔다.

2단계 공동 혁신을 위한 장기적 파트너십을 통해 실용적인 혁신을 이루고 발전시킴으로써 고객 충성심을 구축하라. 화웨이의 고객중심주의는 그 자체로 지금까지 회사를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사실 화웨이는 자신들의 제품이 경쟁사 제품의 품질에 못 미친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이를 위해 화웨이는 가장 저렴한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억누르기 시작했다. 즉, 매우 경쟁력 있는 가격은 변함없이 제시하면서도 스마트한 솔루션을 재빨리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최대의 기술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했다.

화웨이의 혁신 전략은 2005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이동통신사인 보다폰과 계약을 맺은 후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보다폰은 텔레포니카(TelefÓnica)의 자국 시장인 스페인에서 사업적 우위를 점하려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범용 이동통신 시스템(UMTS·Universal Mobile Telecommunications System) 표준을 이용하는 3세대 무선 네트워크 기지국을 다수로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장비 업체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네트워크의 무선 접속용 부품 공급사로 다른 선도적 경쟁사들 대신 화웨이를 선정했다. 화웨이가 다른 업체들을 제치고 입찰에 성공하는 데 있어 가격이 미친 영향은 일부일 뿐이었다. 월등한 프로젝트 수행 속도 역시 큰 영향을 미쳤다. 화웨이는 단 1년 만에 보다폰이 1만 개의 기지국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왔고, 이는 경쟁업체들이 제시한 것보다 2∼3배는 더 단축된 기간이었다.16

2011년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동유럽,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노르웨이의 대형 이동통신 회사인 텔레노르그룹(Telenor Group)이 화웨이의 또 다른 고객이 됐다. 텔레노르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춥고 외진 지역 중 한 곳에 고속 무선 기지국을 세우고 싶어 했다. 다른 장비 업체들은 극한의 작업 조건과 빠듯한 일정, 높은 간접비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외면했지만 화웨이는 유일하게 입찰에 참여했다. 화웨이는 텔레노르의 프로젝트를 자신들의 최신 네트워크 솔루션이 가진 실용성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이 솔루션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여러 이동통신 표준과 무선전화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었다. 또 화웨이는 회사 엔지니어들을 고객 중심으로 운영하는 유연성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을 수행해내는 능력을 증명했다. 화웨이의 엔지니어들은 폭넓은 운송 수단(헬리콥터와 스노모빌을 포함해)을 활용해 4G 무선 기지국 설립 프로젝트를 예상보다 더 빨리 완수했다.

화웨이는 공동혁신센터(joint innovation centers)라 불리는 기관을 세움으로써 보다폰이나 텔레노르 같은 유럽의 선도 사업자들과의 관계를 공식화할 수 있었다. 센터는 고객과 공급업체 간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공동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불확실한 요소들도 일부 제거했다. 공동혁신센터들은 화웨이와 고객사들이 함께 복잡한 문제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공동혁신센터는 여러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수행하기보다 한 번에 한 문제에만 집중했다. 통신 사업자 대표들과 화웨이 팀은 함께 모여 문제를 분석하고 잠재적 솔루션을 찾아 나갔다. 양쪽 회사의 고위경영진의 의견도 프로세스의 중요한 일면을 차지한다. 그런 고위직 임원들의 참여는 서로 간의 신뢰를 형성했고, 이는 지적 자산을 보호하고 위험을 분담하기 위한 명확한 규칙들을 통해 더욱 강화됐다.

공동혁신센터가 어떻게 운영되고, 통신사업자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2006년과 2007년 진행된 화웨이와 보다폰과의 협력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된다. 이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여러 이동통신 표준과 무선전화 서비스를 지원하는 무선 접속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관리하기 위해 보다폰의 글로벌 네트워크 부문 이사와 화웨이의 사업관리팀 이사는
1년에 2차례씩 팀을 데리고 마드리드로 가서 그동안 이룬 성과들을 점검하고 향후 계획들을 결정했다.



보다폰과 화웨이의 엔지니어들은 희미하게 드러나는 전략적 문제 하나를 발견했다. 즉, 보다폰은 향후 3년간 11만 개의 2G 사이트를 없애고 차세대 모바일 기술을 지원하는 장비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변화가 보다폰과 그 고객들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힘을 발휘할 것인지 깨달은 프로젝트팀은 하드웨어 대신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덜 복잡한 방식으로(그리고 더 저렴한 비용으로)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솔루션을 탐색했다. 그리고 운영위원회는 상당한 규모의 자원을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 프로젝트는 화웨이와 보다폰 모두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물론 화웨이의 솔루션은 2G 네트워크를 보유한 회사들에 엄습해 오던 기술적 위협을 상쇄시킬 수 있었지만,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유럽의 네트워크 인프라에서 그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화웨이 입장에선 엄청난 투자를 요하는 일이었다. 또 보다폰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생 기업인 화웨이와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 과연 신중한 행동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동통신사업은 향후 어떤 기술이 산업 내 표준이 될 것인지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던 상황이었으므로 보다폰은 의심할 여지없이 더 안전한 대안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회사는 구매자와 공급자 사이의 전통적인 갑을 관계를 뛰어넘어 공동 혁신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전략에는 분산 기지국을 공동 개발하는 데서 발생할 수 있는 지적재산권 문제를 정리하는 작업도 뒤따랐다. 화웨이와 보다폰은 공동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통신 관련 산업에 있어서는 서로의 지적 자산을 보호해주기로 합의했다. 2년간의 연구와 수많은 논의 결과, 화웨이는 2008년에 최초의 업그레이드된 네트워크를 보다폰에 제공할 수 있었다. 이 솔루션은 무선 도달 범위를 25% 높였고, 필요한 기지국 사이트 수는 40% 줄였으며, 총소유비용(total cost of ownership, 컴퓨터나 서버 등의 장비 도입 비용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의 향상이나 유지 보수, 담당자 교육 등과 같이 도입 후에 드는 여러 가지 비용을 모두 포함한 시스템 관련 총 비용-역주)도 3분의 1이나 줄였다.

2006년과 2012년 사이에 화웨이와 보다폰은 공동혁신센터 형태로 6개의 팀을 꾸렸다. 화웨이와 보다폰이 함께 개발하는 솔루션들은 특정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화웨이는 이들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솔루션 개발 역량을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 이 두 회사는 2011년에 이런 공동혁신센터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기회도 발견했다. 이를 통해 화웨이는 보다폰과 신규 고객들을 위해 더 효율적인 글로벌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2016년까지 화웨이는 보다폰, 도이치텔레콤(Deutsche Telekom), BT(British Telecom), 오렌지, 텔레포니카 같은 일련의 유럽계 통신 리더들과 18개 공동혁신센터에서 파트너십 프로젝트들을 추진했다. 화웨이에는 전 세계 총 34개
의 혁신센터가 있었다. “공동혁신센터를 통해 그동안 시장 추종자로 인식됐던 화웨이의 이미지가 선도자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에릭슨의 한 고위임원은 이렇게 말했다.17 화웨이의 접근 방식이 큰 성공을 거두자 에릭슨 같은 경쟁 업체들도 자체적으로 공동 혁신 파트너십을 확립해 실질적이고 장기적으로 혁신을 추진해나갔다.

3단계 정부와 대학, 기타 업계 이해당사자들의 지원을 확보하라. 혁신을 향한 화웨이식 접근법의 성공은 이를 정부와 대기업들이 수용할 것인지 여부에도 달려 있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사업을 펼치려는 국가에서 제조시설을 짓거나, 지역 사정에 밝은 현지 대표를 임용하거나, PR 캠페인을통해 정부의 호감을 얻으려 애쓰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18 하지만 화웨이는 유럽 정부가 협력할 수 있는 일종의 파트너로서 회사를 포지셔닝하기 위해 상당히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예를 들어 화웨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연이은 경기침체 속에서도 유럽 시장에 대한 높은 R&D 투자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주요 혁신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다. 화웨이는 또 유럽에서 회사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브뤼셀에 특별 공무 및 커뮤니케이션 사무소를 설립했다. 이들의 임무는 21세기 글로벌 시장에 도래할 혁신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유럽 정부들과 업계 주자들의 노력을 화훼이가 어떻게 증진할 수 있을지 관점에서 회사의 투자 계획을 짜는 것이었다. 2013년, 화웨이는 유럽에서 2019년까지 총 5500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이 이행된다면 EU 내 화웨이의 직원 수도 50% 이상 늘릴 수 있었다. 화웨이가 추진하는 새로운 사업 중 하나는 벨기에에 있는 R&D 센터를 통해 유럽 전역에 있는 18개 R&D 사무소에서 진행되는 5G 이동통신 표준에 대한 연구 작업들을 진두지휘하며 조정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독일 뮌헨에 있는 오픈랩(Openlab)의 협력 작업이다. 오픈랩은 인텔(Intel)이나 SAP 같은 파트너 회사들과 협력하에 사물인터넷이나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같은 영역에서 혁신을 이끄는 것이다.19

화웨이의 유럽 내 사업 확장 과정은 이 회사가 중국에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활용했던 패턴과 매우 흡사했다. 즉, 주변에서 시작해서 센터 쪽으로 나아갔다. 원래 화웨이는 유럽 시장 중 영국과 헝가리에서 먼저 사업 기회를 잡는 목표를 세웠다. 양국 정부 모두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EU 회사들로부터 눈을 돌려 중국 및 중국 기반의 회사들에도 문호를 개방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2005년 말, BT가 회사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필요한 전송 장비를 납품하는 계약을 화웨이와 체결하면서 결정적 변화가 일어났다. BT는 유럽 내 공급업체로 화웨이를 선택하면서 화웨이가 EU에서 갖는 입지를 높여줬다.

화웨이는 헝가리와의 유대 관계를 통해서도 혜택을 받았다.20 2009년, 화웨이는 유럽 유통센터를 헝가리에 짓기로 결정했고, 2011년에는 유럽과 북미, 러시아, 중동 사업을 위한 물류센터 건립을 위해서도 헝가리에 투자했다.21 이런 결과로, 헝가리는 다른 EU 정부들도 화웨이를 폭넓게 수용하도록 홍보하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다.

이에 반해 화웨이는 프랑스와 관계를 구축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스 상원이 사이버 방위(cyberdefense)에 관해 작성한 2012년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나 유럽 내 이동통신 인프라에 대해 중국 라우터 사용을 금지하도록 권하고 있다.22 화웨이는 2012년에 프랑스가 우려하는 이런 안보 관련 문제에 대처하고자 좀 더 투명한 사업을 약속했다. 그중에서도 소스 코드를 프랑스와 유럽 정부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2014년에는 프랑스 과세 정책에 대해 이례적인 입장을 취했다. 당시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프랑스 정부에 합당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행위로 비난을 사고 있었지만 화웨이 프랑스 법인은 회사가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었던 세금 혜택(R&D 비용 공제 및 손실 관련)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화웨이는 또한 2018년까지 프랑스 내 R&D 시설에 총 19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현지의 공급회사, 대학, 연구센터, 그리고 스타트업들로 구성된 프랑스 기술 생태계에서 직접적인 고용과 자원 소싱을 통해 약 2000개의 신규 기술 직무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성장의 장애물

화웨이는 이동통신 산업에서 상대적으로 무명의 위치에서 상당한 힘을 가진 업체로 부상했고, 고객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로 그들의 충족되지 않은 니즈를 해결하고 어려운 문제를 처리하는 능력을 증명해냈다. 하지만 유럽 시장의 이런 높은 수용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통신장비 시장에 진입하려는 화웨이의 노력은 상당한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물론 IBM과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퀄컴(Qualcomm) 같은 미국의 주요 기업들과는 협력적 연구 관계를 맺어 왔지만 회사의 지적 재산 관련 정책과 중국의 기술 도용 가능성은 매번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화웨이는 국가 안보 측면에서 미국 정부의 의혹을 받아 왔다.23

2008년, 미국의 정부 패널은 화웨이가 인터넷 보안 및 네트워크 장비 제조사인 스리컴(3Com Corp.)을 인수하려던 계획을 국가 안보 문제를 이유로 무산시켰다. 스리컴이 만드는 제품 중에는 미군용 해킹 방지 컴퓨터 소프트웨어도 있는데 화웨이가 중국 군대와 관계돼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4 마찬가지로, 2011년에는 서버 가상화 솔루션(server virtualization solutions)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미국 회사인 스리리프시스템(3Leaf Systems)에 대한 화웨이의 인수 계획이 반강제적으로 철수됐다.25 CEO인 런을 포함한 경영진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아무 관계가 없으며 중국 정부로부터 미국에 스파이 활동을 요청받은 적도 결코 없다는 말로 기술 도용에 대한 의심을 지속적으로 부인했지만 미국의 안보에 대한 우려감은 미국 기업들에 네트워크 장비를 판매하는 화웨이의 사업 능력에 계속 제동을 걸고 있다.

최근 화웨이는 통신 장비를 뛰어넘어 소비자 제품으로도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다폰과 오렌지 같은 사업자들에 수년간 브랜드를 붙이지 않은 핸드셋을 납품해온 화웨이는 2011년에 브랜드를 붙인 스마트폰 출시를 위해 전담 사업부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스마트워치를 담당하는 사업부도 설립했다.26 2016년 여름까지 화웨이의 소비자 부문 매출은 총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했으며 2015년에는 연간 1억 대가 넘는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중국 최초의 기업이 됐다.

미국의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다른 정부와 화웨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예를 들어 호주의 정부 관료들은 보안 문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국의 네트워크 인프라에 화웨이의 특정 제품 사용이 금지될 것으로 전망했다.27 지금까지 화웨이는 사업을 펼치는 시장에서 자신들의 브랜드를 혁신 및 경제 발전과 결부시키려 노력해왔다. 향후에도 이런 전략이 계속 지속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번역 |김성아 dazzlingkim@gmail.com

마뉴엘 헨스맨스(Manuel Hensmans)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솔베이 브뤼셀 경제경영대학원(Solvay Brussels School of Economics and Management)의 전략과 혁신 분야 교수다. 이 기사에 의견이 있는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58219에 접속해 남겨 주시기 바란다. 저자와의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smrfeedback@mit.edu로 e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란다.



DBR mini box

연구 내용

이 글은 중국의 기술 기업들이 유럽연합(EU)에서 그들의 사업 역량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해 왔는지를 5년간에 걸쳐 연구한 내용을 기초로 작성됐다.i) 화웨이는 이제 선도적인 통신장비 공급업체이자 특허 출원 건수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의 경쟁자들 또한 그동안 화웨이가 유럽계 통신 사업자들과 벌인 혁신적 협력 사업들을 모범 사례로 인식하고 있다. 화웨이의 이런 성공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필자는
1987년부터 회사가 발전을 시작해 EU 통신 산업에서 영향력 있는 주자로 두각을 나타낼 때까지의 행보를 연구했다. 필자는 연구 조교 두 명의 도움을 받아 중국과, 유럽, 미국, 중남미에서 화웨이의 관리자, 경쟁사 직원, 정책 담당자, 로비스트, 그리고 고객들과 총 56번의 반구조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한 화웨이의 역사, 연차보고서, 내부 자료 및 기타 보고서도 검토했다. 필자를 포함한 연구원들은 화웨이의 관리자들이 중국과 서유럽 고객들을 상대로 기존의 대형 경쟁사들 대신 자신들의 서비스와 제품을 선택하도록 어떻게 설득할 수 있었는지, 또 회사의 혁신 역량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파악했다.

i) See also M. Hensmans and G. Liu, “How Do the Normativity of Headquarters and the Knowledge Autonomy of Subsidiaries Co-Evolve?” iCite working paper WP2016-020, Universite Libre de Bruxelles, Bruxelles, Belgium, Oct. 11, 2016, https://ideas.repec.org.
  • 마뉴엘 헨스맨스 | 솔베이 브뤼셀 경제경영대학원(Solvay Brussels School of Economics and Management) 전략과 혁신 분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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