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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위기상황 대응 전략

초대형 위기 도사린 ‘21세기 기업경영’ ‘즉흥적 순발력+고도의 역량’이 필수다

신동엽 | 220호 (2017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일상적 위기상황에서는 평소 성과와 위기 극복 확률이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자주 발생하지 않는 극단적 위기 상황은 전혀 다르다. 전쟁, 대공황, 글로벌 금융위기 등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평소 성과가 생존 여부를 예측하지 못한다. 따라서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일상적 상황이 아닌 극단적 위기와 같은 ‘결정적 순간’에서의 선택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대한민국은 경제,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퍼펙트스톰’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취해야 할 핵심 전략으로는 ▶ 신속한 초기 대응 ▶ 개방적이고 유연한 상시 학습과 통찰력 ▶ 특공대형 조직 구성 등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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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에 ‘백척간두(百尺竿頭)’라는 말이 있다. 수십m나 되는 높은 장대 끝에 올라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지경이라서 한 발자국도 발 디딜 곳이 없는 극단적 위기상황을 뜻한다. 국가는 물론 조직이나 개인들에게도 간혹 이런 백천간두의 극단적 위기가 발생한다. 발생 빈도는 그리 높지 않고 지속 기간도 짧지만 이런 극단적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개인, 조직, 국가를 막론하고 생사존망을 결정하게 된다. 극단적 위기상황의 유형은 거시적으로만 봐도 전쟁, 자연재해, 재난, 대공황과 같은 경제위기 등으로 그 종류가 매우 많다. 또 조직이나 개인 수준에서의 극단적 위기상황 역시 이 못지 않게 다양하다.

특히 VUCA(Volatile, Uncertain, Complex, Ambiguous) 환경으로 불리는 21세기에는 이런 극단적 위기상황의 발생 빈도가 부쩍 높아졌다. 환경이 쉴새 없이 급변/격변하고(Volatile), 어느 방향으로 변화할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확실하며(Uncertain), 환경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Complex), 환경의 본질과 핵심 규칙이 무엇인지 극도로 모호하기(Ambiguous) 때문이다. 따라서 고성과를 자랑하던 초우량 기업들도 한순간에 몰락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와 관련해 장루이민 하이얼그룹 회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21세기에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등산과 같아서 도달한 위치가 높을수록 위험은 더욱 커진다. 여기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 내 마음은 날마다 전전긍긍하며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이미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그에게는 내리막 길이 시작된다.”

한발만 잘못 내디뎌도 그대로 바닥까지 추락하는 이런 백척간두의 극단적 위기상황에서 리더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단순히 일시적 침체나 성과 하락 정도가 아니라 개인이나 조직, 국가를 생사의 기로에 빠뜨리는 극단적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효과적 방법은 무엇일까?



위기 대응에 대한 기존 제언들

위기에 대한 대응전략에는 다양한 제언들이 존재하지만 크게 나누면 평소에 미리 잘 준비하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평소 준비론’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고 적절히 대응하면 살 수 있다는 ‘위기상황 관리론’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의 생존위기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두 가지 모두 일리가 있지만 동시에 한계를 가진다. 예를 들면 평소에 착실하게 준비를 해온 모범적 기업이 치명적 생존위기 상황을 잘 극복한다면 높은 성과를 자랑하는 우량기업들은 잘 죽지 않아야 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체로 성과와 생존율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지만 그 정도는 예상외로 느슨하다. 국가별 혹은 기업별 경기의 부침으로 인한 위기는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일상적 위기에서는 실제로 평소 성과와 위기극복 확률이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자주 발생하지 않은 극단적 위기상황은 전혀 다르다. 전쟁, 대참사, 1930년대의 대공황이나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평소 성과가 생존 여부를 거의 예측하지 못한다. 만일 평소 성과와 준비가 극단적 위기상황에서의 생존을 보장해준다면 세계 1위 기업이 몰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코닥, 모토로라, 노키아 등 세계 1위 기업이 단숨에 파산지경에 이른 최근 예에서 볼 수 있듯 평소 성과가 극단적 위기상황에서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조직이론가 필립 셀즈닉(P. Selznick) 교수는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적 상황이 아니라 극단적 위기와 같은 ‘결정적 순간(critical moments)’에서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즉 평소에 어떻게 하느냐보다 짧은 결정적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위기상황에서의 생사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 없이 있다가 막상 위기가 닥치면 그때 순발력을 발휘해 즉흥적으로 그 위기의 순간만 적절히 관리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예상 못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순발력 있게 적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는 즉흥역량(improvisation)은 엄청난 훈련과 역량의 축적 없이는 불가능한 고도의 능력이다. 조직이론가 칼 에드워드 와익(K.E. Weick) 교수는 재즈 즉흥연주에 대한 연구에서 모든 멜로디와 리듬에 해박하고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진정한 거장이 아니면 미리 짜인 악보 없이 협연자들의 즉흥연주에 리얼타임으로 호응하며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새로운 앙상블을 만들어내야 하는 즉흥연주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드시 극도로 짧은 순간에 고도의 즉흥적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극단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혀 예측 못한 위기에 대해 극도로 짧은 결정적 순간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즉흥적 순발력과 같은 고도의 역량을 평소에 갖춰야 하는 것이다. 평소에 높은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역량과 예측 못한 위기에 순발력 있게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은 전혀 다르다. 즉 극단적 위기상황의 대응을 위해서 갖춰야 할 역량은 후자이며 반드시 평소 성과 창출에 필요한 역량과 별도로 의식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역량이 극단적 위기 극복에 효과적일까?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가 말하듯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그 본질과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예외적 상황인 극단적 위기의 특성은 무엇이며 효과적 대응전략은 무엇일까? 다음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 여유가 없다! 경직되면 끝이다! 신속한 초기 대응이 핵심이다!

극단적 위기상황의 특성 중 하나는 서서히 심화되는 일반적 위기와 달리 심사숙고와 좌면우고(左眄右顧)를 통한 신중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속하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극단적 위기는 예측 못하게 발생해서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개인이나 조직, 국가를 파탄에 빠뜨린다. 따라서 대응방법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휴대폰 분야에서 압도적 세계 1위를 자랑하다 갑자기 파산해버린 핀란드의 국민 기업 노키아 사례를 들어보자. 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했을 무렵인 2011년 2월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븐 에롭(S. Elop) 회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는 생사기로의 극단적 위기상황에서 몰락하는 조직의 상황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극단적 위기상황에 처한 리더의 심정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 편지를 쓸 때까지도 여전히 휴대폰 분야 세계 1위이던 노키아는 결국 2년 후 파산하고 만다.

“얼음같이 차가운 북해 가운데 설치된 해저 유전 플랫폼에서 일하던 한 인부가 한밤중에 엄청난 폭발음을 듣고 깨어나보니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순식간에 화재는 전체 유전 플랫폼으로 번져 사방이 불구덩이에 휩싸이게 됐습니다. 공포에 질린 그는 급히 불을 피해 플랫폼 가장자리로 뛰어갔으나 보이는 것이라고는 30m 아래 얼음같이 찬 소용돌이 치는 시커먼 바닷물뿐이었습니다. 불길이 빠르게 번져오고 있어서 그는 어떻게 반응할지를 몇 초 안에 결정해야 했습니다. 플랫폼 위에 계속 서 있으면 지옥 같은 불길에 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뛰어내리면 30미터 아래 얼음같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중 선택할 시간은 채 몇 초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노키아의 현재 상황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 노키아의 플랫폼이 지금 불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은 당황해서 아무 것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는 무기력-무대응 반응이다. 위기대응에 대한 위협-경직(threat-rigidity)이론에 따르면 극단적 위기상황에서는 개인, 조직, 국가 할 것 없이 당황하고 공포에 질려 몸이 굳어버리는 경직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호랑이와 같은 맹수를 만난 사슴이나 토끼가 대부분 죽는 것은 달리는 속도가 느려서가 아니라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리는 경직반응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최근 초기 대응에 실패해 작은 피해에 그칠 수 있었던 사건이 대참사로 연결되는 사례를 무수히 봤다. 역대 최악의 재난 중 하나로 불리는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태는 동일본 대지진 때 일본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 그 원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 최근의 조류독감과 구제역 확산은 모두 초기 대응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극단적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 전략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초기 대응이다. 잘못된 대응이라도 무대응보다는 훨씬 우월하다. 이런 면에서 빌 게이츠(B. Gates)는 “20세기 경영의 핵심이 철저한 계획과 통제, 관리라면 21세기 경영의 핵심은 단연 속도”라고 강조한다. 구글 또한 경쟁력의 핵심을 속도라고 주장하며 완벽한 대응을 위해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일단 적시에 신속하게 나름대로의 차선책 대응이라도 한 다음 계속해서 이를 개선하라고 제안한다. 구글의 전략으로 유명한 ‘일단 출시 후 반복 개선(Launch and Iterate)’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구글은 인터넷 내비게이터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내려지자마자 즉시 최소한의 기능이 가능한 크롬(Chrome)을 전 세계적으로 신속하게 배급했다. 그 다음 6주마다 업그레이드해 결국 독점적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해왔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어를 따라잡았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7년 1월9일, 애플이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그때까지 휴대폰 시장을 과점하던 노키아, 삼성, 소니에릭슨, LG의 4강이 생존 위기에 빠졌을 때를 기억해보자. 당시 삼성만 살아남아 애플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시장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 특유의 ‘스피드 경영’이었다. 이런 면에서 경영 컨설턴트 휴고스(M. Hugos)는 격변하는 21세기에는 ‘리얼타임 기업(real time enterprise)’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극단적 위기상황에 대한 첫 번째 대응전략 제언은 절대 예상 못한 위기에 당황하고 공포에 질려 경직되거나 일상적 위기처럼 심사숙고하지 말고 차선책이라도 찾아 최대한 신속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2) 극단적 위기는 예외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상시 학습과 통찰력이 필수다!

극단적 위기는 그 개념정의 자체가 일상적 위기와 달리 예외적이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이나 기존 지식에 의존해 상황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위기는 기존 지식이 설명하지 못하는 위기를 뜻한다. VUCA 환경의 네 번째 특성인 모호성(ambiguity)이 바로 그것이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의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와익 교수는 대(大)화재 등과 같은 극단적 위기상황에 대한 연구들에서 가장 큰 위기요인은 관련 행위자들이 상황의 본질에 대한 ‘의미부여(sense-making)’ 자체를 하지 못하는 ‘의미의 위기’라고 강조한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위험한 접근이 기존 지식을 억지로 적용해 완전히 새로운 성격의 극단적 위기를 기존의 위기 유형들로 단순화해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또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외적인 상황인 극단적 위기에서는 무엇보다 완전히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로 처음 당면하는 새로운 상황의 본질에 대한 학습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존 고정관념을 최대한 제거한 제로베이스 학습이다. 과거에 발생했던 일반적인 위기유형에 대한 정형화된 기존 지식은 오히려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므로 지식보다는 통찰력(insight)이 훨씬 더 중요하다. 상황 통찰력이란 논리적 분석이나 계산, 예측, 설명이 아닌 상황의 핵심 본질을 단숨에 꿰뚫어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는 미래 시장에 대한 예측이 아닌 1970년대 메인 프레임 컴퓨터 시장의 한계에 대한 통찰력으로 PC혁명과 스마트폰 시대의 비전을 제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회장은 글로벌 화장품산업의 후발주자로 유럽과 미국의 선발주자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기존 상품시장에서의 경쟁이나 추격이 아닌 소비자들의 화장루틴 자체를 완전히 바꿀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는 전략적 통찰력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쿠션이라는 새로운 화장품 카테고리를 개발해 단숨에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시장분석보다는 ‘업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에 초점을 맞춰 전략적 비전을 제시하곤 했다.

처음 당해보는 예외적인 극단적 위기상황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은 리더 개인의 깊은 성찰에만 의존해 적시에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리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관련 전문가들을 긴급 소집해야 한다. 그 뒤 상황의 본질에 대해 계급장 없는 끝장토론을 벌이는 ‘해커톤(hackathon)’1 과 유사한 통찰력 워크숍, 즉 ‘인사이트 스토밍(Insight-Storming)’을 진행해 최대한 신속히 상황의 본질과 의미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위기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360도 개방성이다. 많은 경우 극단적 위기는 조직이나 사회의 한 부분에 고립된 요소 때문에 발생해 그 부분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 모두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정확한 이해와 학습이 어렵다. VUCA 환경의 복잡성(complexity)이 바로 그것이다. 조직이론가 퍼로(C. Perrow) 교수의 극단적 위기와 대참사에 관한 명저 <당연한 참사(Normal Accidents)>는 위기의 복잡한 상호연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양한 구성요소들로 복잡하게 설계된 시스템이 완충지대 없이 효율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경우 한 부분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도 걷잡을 수 없이 전체 시스템으로 확산돼 대참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 원인과 결과에 대한 360도 개방적 학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양한 구성요소들로 복잡하게 설계된 시스템이 완충지대 없이 효율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경우 한 부분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도 걷잡을 수 없이 전체 시스템으로 확산돼 대참사가 발생한다.

극단적 위기상황의 본질에 대한 학습에 또 한 가지 필수적인 요건은 수시로 격변/급변하며 전개되는 위기상황에 대한 계속적 학습과 이에 따른 대응전략의 유연한 수정이다. 일상적 위기는 일단 그 본질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끝나면 그 본질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퍼로 교수의 당연한 참사 이론이 제시하듯이 극단적 위기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은 너무나 복잡하게 서로 뒤엉켜 있어서 상황이 어디로 전개될지 한 번의 분석으로 단언할 수 없으며 수시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상황이 안정됐다고 안심하는 순간 더 큰 위기로 발전하는 것이 다반사다. 따라서 수시로 바뀌는 상황전개에 따라 항상 개방적으로 제로베이스 재검토와 재해석을 신속하게 반복하는 계속적 학습을 해야 할 것이다.

3) 기존 조직 시스템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특공대형 조직을 구성하라!

거시조직이론에서 제시하는 조직설계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특정 조직형태가 모든 상황에서 항상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반드시 각 상황의 요구에 적합한 조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상황적합성 논리이다. 이 원리는 일상적 위기상황과 예외적인 극단적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부분의 조직들에서 채택하고 있는 수직적 계층과 수평적 부서 간 분업을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형 관료제 조직형태는 일상적인 과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이런 피라미드형 조직은 예상되는 일상적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 방법과 절차를 매뉴얼로 미리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자주 발생하지 않는 예외적인 상황인 극단적 위기는 이런 기존 조직 시스템으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존 조직형태는 예측 가능한 대부분의 상황에 대한 대응전략을 시스템에 내재화시켜 놓았으나 극단적 위기는 그 본질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조직 시스템으로 극단적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주 원인은 일본 관료조직 특유의 신중함과 합의 중시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다 적절한 대응 타이밍을 놓친 것이었다.

그렇다면 예외적인 상황인 극단적 위기에 대응하는 조직형태는 어떤 것일까? 와익 교수는 병원응급실, 비행기조종실, 테러대응팀, 스파이조직, 특수임무부대 등의 작동원리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일종의 특공대조직인 고신뢰조직(high reliability organization)의 모형을 제시했다. 와익 교수의 고신뢰조직은 탁월한 개인 역량을 가진 최고의 전문가들이 고도의 집중력과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협업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하고 철저하게 위기를 해결해내는 믿음직한 조직을 말한다. 따라서 시스템이 중심인 피라미드형 관료제조직과 달리 고신뢰조직은 근본적으로 개인 역량에 의존한다. 탁월한 역량을 가진 정예 구성원들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고신뢰조직은 기존 조직들과 달리 뛰어난 개인구성원들을 피라미드의 기계부품처럼 제약하지 않고 이들이 자율적 판단에 따라 신속하게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권한을 위임한다. 즉 다른 누구의 승인이나 허락도 필요 없이 각자가 최고의 전문가로서 즉시 필요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항시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한다. 눈짓 하나만으로도 상대의 의중을 즉시 읽어낼 정도로 서로에게 이심전심 수준으로 반응하면서 긴밀하게 협력한다. 고신뢰조직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협력적 분업구조를 기반으로 각자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고 상황 전개에 따라 유연하고 신속하게 서로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지원한다. 그리고 수직적 위계질서 없이 모두가 전문가로서 상황에 따라 자발적으로 리더십 역할을 교대로 수행한다. 또한 영화 ‘미션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처럼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나 타협 없이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해내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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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신뢰조직의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상대해 ‘아직 12척이나 배가 남아 있고 신이 죽지 않았다(尙有十二 微臣不死)’고 외치며 불가능한 전투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 그 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적과는 비교도 안 되는 병력 열세를 돌파하기 위해 고신뢰 함대를 조직하기로 하고 좁은 해협에서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자진을 구성해 거대한 왜적을 격파해냈다.

또한 윤증현 전 금융감독원장을 중심으로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신제윤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 당대 최고의 경제전문가들로 팀을 꾸려 각자 맡은 분야를 완벽하게 수행했던 2008년 금융위기 대응팀도 일종의 고신뢰조직의 예일 것이다. 대응팀은 매일 수시로 긴밀히 상호작용하며 전 세계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글로벌 위기를 무사히 이겨냈다.



극단적 위기 상황에 처한 대한민국

최근 우리나라가 정치, 경제, 안보, 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우리 경제는 퍼펙트스톰(Perfect Storm) 위기가 임박했다고 한다. 하나의 태풍만 해도 피해가 엄청난데 여러 개의 태풍이 한꺼번에 닥치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퍼펙트스톰이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 경제가 당면한 상황이 바로 이런 퍼펙트스톰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체질이 20세기 산업사회모델에 고착돼 있어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21세기형 경제에 효과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거시경제적으로도 가계부채와 공공 부채가 심각한 수준이고,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생산 인구 감소, 국가리더십의 정당성 약화, 보호무역주의의 재등장과 글로벌 환경의 악화 등이 한꺼번에 닥치면서 한국 경제가 완전히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 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 실제로 OECD를 비롯한 해외 경제기관들에서는 우리 경제의 중장기 전망을 매우 어둡게 보고 있다. 15년 후인 2031년에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OECD 최저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쌓아왔던 성취를 하루아침에 다 날리고 완전히 주저앉아버릴지 모르는 극단적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먼저 극단적 위기는 일상적 위기나 침체와 근본적으로 다른 예외적 특수 상황이라는 특단의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명량해전 때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각오로 국가의 생사존망이 달린 절체절명의 백척간두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dshin@yonsei.ac.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과 인문예술 분야 세계적 학술지 등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서울 스프링실내악축제 조직위원장과 한국인사조직학회장을 역임했다.



One Point Lesson

1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평소 성과가 생존 여부를 거의 예측하지 못한다.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적 상황이 아니라 극단적 위기와 같은 ‘결정적 순간’에서의 선택이다.

2 극단적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전략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초기 대응이다.

20세기 경영의 핵심이 철저한 계획과 통제, 관리였다면 21세기 경영의 핵심은 단연 속도다.

격변하는 21세기에는 ‘리얼타임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3 극단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바람직한 조직형태는 ‘고신뢰 조직’이다. 병원응급실,

비행기조종실, 테러대응팀 같은 일종의 특공대 조직으로 탁월한 개인 역량을 가진 최고의 전문가들이 고도의 집중력과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협업하면서 위기를 해결해나가는 조직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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