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을 소비하는 나는 덕후!!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217호 (2017년 1월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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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혜
Article at a Glance

쓸모에 의해 제품을 소비하는 시대에서 매력 위주의 소비 시대로 소비자들의 패턴이 변하고 있다. 커피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야쿠르트를 파는 한국야쿠르트가 콜드브루 열풍을 몰고 오는 데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한 유통이 갖는 매력이 큰 역할을 했다. 2016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덕후 열풍’ 역시 쓸모나 합리적 소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신이 매력을 느끼고 즐기는 분야를 집중 소비하는 현상이다. 우리가 단 한 컷의 ‘인생샷’을 위해 여행을 가고 물건을 사는 것도 결국은 매력 소비로 설명이 가능하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백성진(한국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트렌드 예측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쉬운 것은 아니다. 특히 무엇이 뜰지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앞으로 오를 주식을 고르는 것만큼 어렵다.

그럼에도 트렌드는 항상 존재한다. 필자가 속한 다음소프트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2017년 키워드로 평타, 참견, 코스프레, 선물, 덕후, 인생사진 등 6가지를 선정했다. 그리고 이 키워드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를 분석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매력 소비’였다. “마케팅이든, 커뮤니케이션이든 모든 것이 가벼워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쓸모보다 매력을 좆는 사람들, 의무보다 재미를 찾는 현상 등이 2017년에 우리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부상

손으로 미는 손수레나 카트가 아닌 전동 카트에 올라타 여유롭게 대로부터 골목길까지 활보하고 있는 야쿠르트 아줌마와 한 번쯤은 마주친 적이 있을 것이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이미지는 더운 날 무거운 카트를 힘들게 끌고 다니는 이미지에서, 가볍게 골목골목을 누비고, 언덕길도 가뿐하게 달리는 기동력 있는 이미지로 변화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상에서도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한 언급이 급증하고 있어 택배아저씨, 쿠팡맨, 집배원 등 고객에게 제품을 배달하는 다른 대상들 대비 단연 눈에 띄는 증가를 보이고 있다. (2015년 대비 222% 증가)


“야쿠르트 아줌마가
전동차 타고 다니시는 걸 보면
언더커버로 근무하면서
유사 시에 야쿠르트 카트 안에서
총 꺼내고 시민들을 구조할 것 같음”
“야쿠르트 아줌마 멋지다.
도로의 지배자 같아.”


1971년 47명으로 시작한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수는 현재 1만3000명에 이른다. 삼성중공업의 직원 수와 비슷하며 아시아나항공의 직원 수보다 1.4배 많은 최강의 영업조직으로 발전했다.(2015년 금융감독원 공시 기준). 또한 하루에 만나는 고정 고객은 1인당 평균 170여 명이며 1조 원에 육박하는 한국야쿠르트 매출의 95%가 야쿠르트 아줌마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 ‘신선제품(프레시) 라이더’로의 진화

2016년 야쿠르트 아줌마 약진의 중심에는 ‘커피’가 있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은 물론 골목마다 위치한 커피 전문점, 편의점 커피 등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커피 시장에 새콤달콤한 요구르트를 주로 팔았던 한국야쿠르트가 올 3월 과감하게 출사표를 던졌다. 한국야쿠르트의 선택은 ‘콜드브루’ 방식의 커피였다. 대중적인 고온고압의 추출 방식이 아닌 차가운 물로 우려낸 커피로 원두 본연의 풍미와 깔끔한 맛을 더 살려낸 것이 특징이다.

한국야쿠르트는 야쿠르트 아줌마의 냉장고 겸 전동 카트를 콜드브루와 접목하기로 했다. 로스팅 후 커피의 맛과 향이 살아 있는 10일 동안만 유통하겠다고 선언하고 유통채널을 마트나 편의점이 아닌 야쿠르트 아줌마로 집중했다. 처음에는 요구르트 회사와 커피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의아해 하던 소비자들도 ‘신선함’과 ‘맛’을 경험한 후 평가가 달라졌다. 콜드브루가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소비자들은 콜드브루를 싣고 달리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먼저 찾기 시작했다. 한국야쿠르트는 콜드브루의 인기 덕에 월 매출 40억∼50억 원을 달성했고, 11월에는 차갑게 내린 콜드브루 액상을 뜨거운 물이나 우유와 함께 즐기는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레드’를 출시하면서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심지어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커피 전문점들이 콜드브루 제품을 따라서 선보일 정도로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파워는 참으로 대단했다.



한국야쿠르트의 2016년의 도발은 커피 시장에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2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치즈전문기업 ‘벨’과 손을 잡고 판매를 시작한 kiri(끼리)치즈 역시 야쿠르트 아줌마의 신선한 냉장고를 통해 약 7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다. 4월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자극하며 개발된 ‘얼려 먹는 야쿠르트’가 출시되면서 약 13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야쿠르트만 가득했던 야쿠르트 아줌마의 이동형 냉장고에는 어느새 우유, 야채주스, 건강기능식품이 더해졌고 이제는 커피와 치즈까지 더해져 신선함이 생명인 제품이라면 모두 담고 달리는 프레시 딜리버리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나는 특별한 즐거움


하지만 콜드브루, 프랑스산 치즈, 얼려 먹는 야쿠르트 등 쉽게 구할 수 없는 제품과 신선함의 만남만이 한국야쿠르트 성공의 전부일까? 물 한 통을 모바일로 주문해도 하루 만에 친절하게 배송 받는 시대에 야쿠르트 아줌마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단순히 신선한 음료들만 배달했다면 야쿠르트 아줌마가 계속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야쿠르트 아줌마는 이미 45년 전부터 노란 옷의 유니폼에 모자까지 세트로 착용해오면서 스스로 한국야쿠르트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냉장고 카트로 신선하게 제품을 배송하는 역할 외에 감성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이미 선보이고 있었다. 아줌마로부터 제품을 직접 전달받으며 주고받는 사소한 대화들이 주는 따뜻함과 팔기 위한 목적이 아닌 건강을 중심으로 한 일상을 챙겨주는 듯한 아줌마들의 소통은 장기간 아줌마들이 현장에서 직접 고객을 만나며 체득한 커뮤니케이션의 노하우를 통해 감동과 재미가 돼 소셜미디어 시대에 미담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지 닫기]

한국야쿠르트 앱의 ‘야쿠르트 아줌마 찾기’ 메뉴.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아줌마’와 그냥 ‘가까운 아줌마’ ‘가까운 영업점’을 지도상에서 볼 수 있으며 아줌마에게 직접 연락도 가능.



“끼리 치즈 과자랑 들어가 있는 거 꿀맛..
“사먹으려고 어플 깔까 했는데
마침 지나가는아줌마를 발견했어요.
우연히 발견하니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친구와 밥을 먹고 콜드브루 커피를 마시기로 하고 야쿠르트 아줌마 찾기 앱을 켜서 추적했다.
골목골목에서 샅샅이 뒤지며 마치 첩보 영화 찍는 기분. 드디어! 접선 대상 발견!

아줌마: 뭐 드릴까?
우리: 콜드브루 커피 블랙 하나랑 앰플 주세요.”


심지어 스마트폰에 ‘한국야쿠르트’ 앱을 깔면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주변의 야쿠르트 아줌마의 실시간 위치를 알 수 있어 바로 뛰어가 아줌마를 만날 수 있다. 또 아줌마의 연락처로 연락해 사고 싶은 제품을 이야기하고 접선 장소를 정해서 아줌마를 만날 수도 있게 됐다. 또한 미리 주문해 받아먹는 정기 고객 외에 길에서 우연히 만난 소비자와도 즉석에서 1대1 판매가 이뤄지며 현금이 아닌 카드 결제도 가능해졌다.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제품, 아줌마를 우연히 만나는 재미, 내가 아줌마를 찾아내는 재미 등이 더해져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이다.







‘덕질’, 취미를 위한 소비

필요보다 매력을 좇아 소비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덕후’다. 최근에는 덕후를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덕후’라는 단어 자체는 신조어지만 덕후적 습성은 과거부터 우리 안에 존재해왔다. 옛날 기억들을 떠올려보자. 어린 시절 낚시를 좋아하던 아버지는 직접 찌를 만들고 언젠가 본인 소유의 배를 사고 싶다는 로망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릇 모으는 취미가 있던 어머니는 백화점에만 가면 그릇코너에서 그냥 나오지 못하고 커피잔이라도 하나 들고 나와야 직성이 풀렸다.

덕후 소비에서 즐거움 외에 중요한 포인트는 즐기는 방법의 복제와 진화다. 덕후들은 스스로를 ‘평범한 덕후’라고 칭한다. 덕후 세계를 잘 알수록 그 세계에 따라가지 못할 레벨의 덕후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덕후들 사이에는 흔덕(흔한 덕후), 라이트 덕후, 헤비 덕후, 하드코어 덕후, 성공한 덕후 등 다양한 덕후 레벨이 존재하지만 이 역시 즐거움을 위한 표현일 뿐이다. 덕후 사이에서의 레벨 나누기는 수준의 높낮이가 아니라 즐기는 방식의 차이이며 상위 레벨의 덕후가 하위 레벨에게 우쭐대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영역의 덕후로서 동지애를 가지고 다양한 정보를 전파하고 공유하고 있다.

덕질이 시작되면 일단 그 대상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지고, 정보들을 학습하고, 동지들과 함께 즐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진다. 특히 한국의 덕후들은 자신의 경험, 특히 타인보다 먼저 한 특별한 경험들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모인 커뮤니티 안에서는 다양한 취미정보를 공유하면서 서로 영향을 받고, 전문적인 정보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덕질을 즐기고 있는 선배님들의 생활을 엿보며 동질감을 느끼고 자극받고 있다. 덕후들의 취향의 교감과 공유를 통해 나의 취향이 오타쿠스러운 특별함이 아니라 수많은 덕후들 사이에서 ‘나도 그 중 한 명’이었음에 안심하기도 한다. 또한 나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모습을 부러워하며 숨겨왔던 나의 취향을 양지로 꺼내어 새롭게 덕질 인증에 동참하면서 덕질은 전염되고 있다.

자랑하고 싶고, 따라 하고 싶다는 덕질의 욕망, 덕후가 흥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이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덕질 그 자체가 아니라 덕질 ‘경험’을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 읽힌다. 덕질 대상과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 추억을 쌓고, 그 추억을 자랑할 수 있어야 의미 있는 덕질, 자랑할 만한 덕질이 된다.

덕후를 타깃으로 하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덕후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그들이 그 제품에서 모종의 경험을 얻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특별한 도전과제나 한정 패키지 등의 프로모션을 통해 그들이 얻는 성취감과 가치를 자신의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들이 제품에 부여하는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것이 앞서 말한 특별한 덕질 경험의 인증으로 이어져 더 많은 덕후들에게 노출될 것이다.


‘한 컷’, 소유의 소비가 아닌 순간의 즐거움을 위한 소비

필요보다 매력을 좇아 소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컷’이라는 키워드에서도 잘 나타난다. 소셜미디어상에서 2015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한 키워드가 있다. 바로 ‘인생샷’이다.

2016년 여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휴가 인증 사진에서 눈에 띄게 등장했던 아이템은 화려한 색감의 ‘라이더 튜브’였다. 라이더 튜브는 일반적인 원형이나 판형의 튜브가 아닌 플라밍고(홍학), 돌고래, 유니콘 등의 다양한 동물이나 과일 모양을 한 튜브다. 특히 사진이 잘 나오는 디자인과 색상을 갖춰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호주의 물놀이 전문회사에서 출시한 원조 제품의 국내 판매가가 10만 원 수준이고, 유사 제품들이 절반가로 나오긴 했지만 튜브에 바람을 넣을 에어펌프까지 구매해야 하므로 가격 부담이 적지 않다. 비용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해외 여행지까지 부피가 큰 튜브와 에어펌프를 들고 가야 하고, 힘들게 바람을 넣고 빼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더해진다. 하지만 주 고객층인 20∼30대 여성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멋진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옷을 입고 여행을 즐기는 코스튬 투어도 유행이다. 창경궁, 삼청동, 전주한옥마을 등 전통이 있는 장소에서 색동의 한복을 입고 그에 어울리는 메이크업과 헤어까지 연출한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친구들과 함께 단체로 대여해 입거나, 연인과 함께 세트로 대여해 입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셀카봉을 들고 인증샷을 찍고 있다.



한복에서 시작했지만 최근 지역 축제에서는 교련복과 교련모자까지 맞춰 입은 남학생들이 낄낄대며 인증샷을 찍고 있고, 광주의 양림동 근대골목에서는 1930년대의 모던걸, 모던보이 콘셉트의 양복과 중절모, 양산, 안경 등의 액세서리까지 제대로 갖춰 입은 젊은이들이 그 시대의 인물이 돼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고 있다. 이러한 인증샷들을 찍기 위해 대여한 의상들의 대여료는 보통 시간당 1만 원에서 3만 원 수준으로 저렴하지 않지만 이들 역시 한 장의 만족스러운 사진을 위해 이 정도 비용과 수고를 들이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한 컷의 사진을 위해 비용과 노력을 투자한 사진들의 가치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흔적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인증하기 위해 SNS에 찍은 사진을 올린다. 우리가 이토록 한 컷의 사진 찍기에 몰두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반복될 수 없음, 즉 세계의 유한함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앞에 놓인 지금, 내가 느끼는 지금의 욕망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 우리가 지금 즐기는 방식이다.

현실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고픈 욕망이 늘어나면서 내 인생의 한순간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과는 조금은 다른 ‘나’라는 존재의 특별한 한 모습을 대표해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나의 ‘인생샷’ 한 컷을 의미 있게 채우기 위해 배경이 될 제품을 구매하거나 대여하는 소비행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진이 남느냐가 됐다. 주객이 전도돼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 추억을 남기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인생사진을 찍고 싶은 여행지를 먼저 정하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내 인생사진에 추가될 것들
오로라 보고 사진찍기,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사진찍기”

“해리포터를 다시 정주행하다가
내가 버킷리스트에 하고 싶은 두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1.킹스크로스역 9와 3/4 플랫폼에서 사진찍기.
2.런던에 있는 해리포터스튜디오에 가서 사진찍기”




한 컷의 사진의 가치는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질까? 고해상도의 스마트폰 카메라나 DSLR로 찍어 SNS에 인생샷을 올려 인증하는 과정을 마치고 나면 한 컷을 건지기 위해 시도했던 과정 속의 수많은 사진들과 (SNS에 인증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샷 후보에 올랐던 베스트샷들이 남겨진다. 친구들과 함께 시도했던 수많은 공중부양 사진(점프샷)의 흔적들, 멋진 여행지를 배경으로 하고 여러 각도로 찍어댔던 셀프 사진들 등 남겨진 수백 장 혹은 수천 장의 사진들의 가치는 조금은 달라진다. 남은 여행 기간 동안, 그리고 여행지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까지 찍어놓은 사진들을 감상하며 사진 촬영에서 느꼈던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 자극 기제’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과거, 사진을 찍어서 인화하는 과정을 거쳐 물리적인 사진 앨범에 끼우거나 온라인숍의 도움을 받아 포토북으로 만들어 두고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꺼내볼까 말까 했던 사진의 가치는 내 손안에 항상 머물러 있는 스마트폰 안의 사진첩이나 대용량의 클라우드, 혹은 인생샷들로 큐레이션돼 있는 개인 SNS나 블로그 등 다양한 저장소에서 언제 어디서든 불러서 꺼내볼 수 있게 됐다. 힘들고 복잡해진 시대 속에서 행복한 순간을 상기시키고 싶은 욕구가 잦아질수록 더 자주 그 사진들을 열어보고 즐거웠던 그 순간의 나를 그려보고 그를 에너지 삼아 살아가는 것이다.

특별한 경험을 인증하는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들은 한 컷의 사진을 통해 ‘나는 이런 경험도 하는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임’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한 컷을 위한 수고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10년 뒤에도 꺼내보고 미소를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담긴 사진보다는 1시간 동안 고생하고 예쁘게 찍힌 한 컷에 달리는 ‘좋아요’의 클릭 수가 더 중요하다. 이들을 타깃으로 미래에는 취향을 대신 찍어주는 ‘취향 인증 대행 서비스’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같은 카페, 레스토랑, 영화를 볼 가능성이 높으므로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이나 색깔 등이 사진에 함께 디스플레이된다면 그것이 나라는 증거가 돼 나의 사진이 될 것이다. 경험이 아닌 증명이 필요해서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아가듯 SNS상에서 나를 취향 있는 사람으로 이미지 메이킹하고 싶은 이들이 직접 가보지도 않은 몰디브 해변에서 플라밍고 튜브를 뒤로하고 모히토 한 잔을 마시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한 컷을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선물, 내 취향을 증명하는 아이템으로서의 소비

필요보다 매력을 좇아 소비하는 현상이 늘면서 선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고 있다. 매해 명절이나 특별한 지인의 생일이 다가오면 어떤 선물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 고민은 선물을 받을 사람의 취향에 맞는 선물일지와 그 선물을 전달하는 나의 이미지가 어떻게 인식될지가 가장 크다. 즉, 선물은 타인의 취향뿐 아니라 내 취향과 이미지를 증명하는 아이템인 것이다.

소셜미디어상에서 언급되는 선물의 품목은 케이크, 꽃다발, 책, 향수 등이 주요한 가운데 초콜릿, 쿠키, 마카롱, 에클레어 등의 디저트 제품들이 눈에 띈다. 이들이 선물로 인기를 얻은 이유는 포장에서 오는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포장을 뜯었을 때 보이는 파스텔톤의 예쁜 마카롱의 색깔들 때문이었다. 한 세트에 3만∼4만 원 정도로 크게 서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의 프랑스 최고급 마카롱은 받는 사람의 기분도 좋아지게 하고, 주는 사람도 센스를 인정받은 것 같아 으쓱해지는 선물이다.

디저트 시장 성황의 본격적인 시작은 2012년에 154년 전통의 프랑스 마카롱 대표 브랜드 ‘라뒤레’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입점하면서부터였다. 그 뒤를 이어 2013년 하반기 일본에서 날아온 몽슈슈의 ‘도지마롤’이 국내 디저트 시장에 뛰어들었다. 신세계백화점의 지하식품 매장에는 롤케이크 안을 가득 채운 부드러운 우유크림을 맛보고 선물하기 위한 소비자들이 오픈시간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뒤를 이어 미국에서 날아온 컵케이크 ‘매그놀리아’, 일본에서 온 치즈케이크 ‘르타오’ 등이 수입 디저트류의 인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상에서 핫하던 마카롱, 컵케이크, 에클레어는 순위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3∼4년간 백화점 지하 식품관의 트렌드를 이끌어왔던 수입 디저트 브랜드들이 특히 지난해부터 주춤하고 있다. 백화점에서도 줄을 서서 구매하는 디저트 매장이 더 이상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심지어 기존에 억대의 매출을 자랑하던 피에르에르메는 백화점 입점 2년 만에 영업을 종료하기도 했다.

지인들을 위한 센스 있는 선물로 유명했던 수입 디저트 브랜드들이 왜 자리를 잃어가고 있을까?

‘스몰 럭셔리’라는 예쁜 트렌드 키워드로 포장됐지만 그 이면에는 어차피 아껴봐야 큰돈을 모을 수 없으니 밥보다 비싼 디저트로 돈을 쓰며 살아볼 거야 하는 사회에 대한 작은 반항의 몸짓이 담겨 있다. 이러한 작은 사치를 하는 소비자들로 인해 디저트 시장이 일시적 성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 또 다른 ‘비싼’ ‘고급’ ‘프리미엄’ 등의 형용사를 붙인 수입 디저트 브랜드들이 스몰 럭셔리를 지향하는 한국인들을 타깃으로 입점하고 있다. 하지만 최저 시급 6470원 시대에 살고 있는 2017년의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4000원짜리 마카롱, 파리에서 온 6000원짜리 장미 아이스크림, 1만 원짜리 조각케이크 등의 디저트는 예쁜 것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넘지 못할 것이다. 디저트 하나를 먹더라도 실패하고 실망할 여윳돈과 마음의 여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불황기다. 이미 인증의 과정까지도 한 번 끝났다면 대단한 맛이 아닌 디저트에 몇 만 원씩 지속적으로 모험적인 투자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2016년 여름을 강타했던 2000원짜리 생과일주스 브랜드 ‘쥬시’와 1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대만 카스텔라가 담백한 맛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는 점은 디저트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포인트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이러한 소비 심리 변화도 원인 중 일부를 차지하겠지만 선물로서의 디저트를 바라볼 때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 디저트 시장 진입 초반 단계에는 해외여행이나 유학 시절에 현지에서 디저트를 맛본 경험이 생각나 다시 한번 ‘그때의 추억과 맛’을 떠올려 보고 싶은 욕구가 큰 역할을 했고 여기에 고가의 디저트를 즐길 줄 아는 ‘센스 있는 나’를 표현하기 위해 줄을 서는 수고를 감수하고, 제품 구매 후 SNS에 인증하는 과정도 놓치지 않는다. 또한 감사하고 특별한 지인에게 이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센스 있는 선물을 주는 나의 취향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숨겨져
있다.

하지만 이제 마카롱, 에클레어 등의 디저트 인증이 넘쳐나면서 트렌드가 한 바퀴 돌아 나만 아는 특별한 브랜드가 아닌 누구라도 인증할 수 있는 흔한 아이템이 됐다. 넓은 중국 땅에서 드라마 한 편이 히트를 치면 아주 작은 마을까지 드라마가 전해지기까지 몇 년이 걸려서 중국에서 한 번 뜬 연예인의 인기는 평생을 간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가 있다. 인구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SNS를 통한 인증이 활발한 한국 시장에서는 트렌드의 확산 속도가 엄청나다. 어떤 브랜드가 뜨면 몇 개월 사이에 유행의 한 바퀴를 돌아 버린다. 한국의 주류 소비자들은 수입 디저트 브랜드들이 본격 진입한 후 2∼3년 동안 웬만한 디저트는 맛을 봤기 때문에 새로운 브랜드의 옷을 입은 또 다른 비싼 디저트가 유혹을 하더라도 호기심이 예전보다는 많이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500원짜리 동전만 한 마카롱 한 개를 4000원에 판매하고 있는 피에르에르메의 뒤를 이어 한 개에 500원에 파는 길거리 가게들이 생기고, 편의점에서도 마카롱을 팔기 시작했다. CJ제일제당에서 쁘띠첼 에끌레어를 개당 1700원에 팔고 있을 정도로 어디서나 구매할 수 있는 대중화된 디저트가 돼 마음만 먹으면 수입 브랜드만큼의 맛과 포장은 아니더라도 맛에 대한 대충의 호기심은 충족시킬 수 있다.

이제는 또 다른 포장의, 또 다른 브랜드의 마카롱을 선물하더라도 선물을 받는 이의 감동은 예전만 못할 것이다. 흔해 빠진 마카롱은 더 이상 특별함을 가지지 못한다. 이미 그 마카롱을 알고 있는 이에게 선물의 감동은커녕, 선물 주는 이의 센스까지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

디저트는 선물 아이템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만 선물의 포인트는 여전히 선물을 받는 사람의 취향과 선물을 주는 나의 취향이 중요하며 예쁘고, 센스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지인의 특별한 날, 혹은 지인이 생각날 때마다 쉽게 보낼 수 있는 선물, ‘기프티콘’의 증가에서 선물의 의미가 그렇게 진지하거나 값비싼 것을 의미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선물을 사러 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기프티콘 숍엔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할 수 있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바빠서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날을 위한 선물을 깜빡 했을 때, 바로바로 편하게 보낼 수 있고 받는 사람도 부담 없이 받고 인증하는 기프티콘이 인기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어제 같이 술을 마신 친구를 위해 편의점에서 바꿔 먹을 수 있는 ‘숙취 해소제’를 카카오톡 기프티콘으로 쏘고, 문득 생각난 헤어진 여자친구의 ‘아프다’는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보고 죽 전문점의 ‘전복죽’을 기프티콘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지금 생각나는 사람의 상황과 취향을 떠올리며 스마트폰으로 1분 내로 선물을 쏘면서 나의 센스를 더 빠르고 재미있게 보여주는 시대가 됐다.





깨지고 있는 시장의 통념들 (브랜드, 유통, 가격의 공식이 무너지는 시대)

앞의 사례들은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바뀌는 다양한 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눈에 많이 띈다고 사고, 세일이라고 사고, 고급 브랜드라고 사지 않는다. 제대로 된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골목 어귀에서 만난 움직이는 카트에서도 사고, 1+1이나 50% 할인 등의 혜택이 없어도 흥정 없이 원하는 제품을 구매한다. 유통 단계에서의 디스플레이, 프로모션 등의 통념들이 깨지고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단순하게 가성비를 따지는 트렌드를 넘어서 내 취향, 매력, 느낌 등에 잘 부합하는 제품을 선호하고 실제 소비로도 이어진다.

매력 소비는 사실 몇 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변화의 속도가 두드러지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파는 콜드브루는 부드러운 맛과 신선함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한 측면이 있지만 사실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해서만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에게 색다른 매력을 줬다. 취미를 즐기는 ‘덕후’, 취향을 증명하기 위한 ‘선물’, 소유의 소비가 아닌 순간의 즐거움을 위한 ‘한 컷’ 등도 결국은 현재의 ‘즐거움’과 나만 아는 ‘매력’이라는 키워드로 설명이 가능하다. 생계를 위해 먹고살아가는 데 필요한 쓸모의 포인트를 어필하는 것보다 취향과 즐거움을 위한 중심으로 한 매력을 발산해야 선택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대다. 니즈가 없는 상황에서 상품의 쓸모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알고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 있어 보이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이런 키워드가 뜬다고 해서 그 키워드에 매몰돼 비즈니스 전략을 펼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의 변화, 그 흐름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상품을 만들고, 마케팅을 하고, 홍보를 하는 데 더 나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백경혜 다음소프트 연구원 100kh@daumsoft.com

백경혜 연구원은 소셜미디어상의 데이터를 텍스트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하는 전문 기업인 다음소프트에서 연구원으로 9년간 일하고 있다. 데이터를 읽기보다는 데이터 속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의 의도가 무엇인지, 왜 그런 욕망을 표현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을 한다. 덕성여대에서 문헌정보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다음소프트 연구원들이 함께 묶어낸 저자이기도 하다.

생각해볼 문제

1. 매력 있는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소비자들이 SNS를 통해 공유하고 싶을 만큼 좋은 경험이나 즐거움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들이 진행하는 SNS 이벤트가 생각보다 좋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있어 SNS에 공유하고 싶은 매력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2. ‘필요’가 아닌 ‘매력’이 소비를 좌우하는 주요 요소로 부상하면서 기존의 브랜드, 유통, 가격 등의 전통적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매력 소비’ 시대에 알맞은 브랜드나 유통 전략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동아비즈니스리뷰 227호 Smart Factory 2017년 6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