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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형·개방형·적응형 혁신

기술평준화 ‘군웅할거’ 시대, 他산업.경쟁사.소비자 모두가 혁신 소스

나준호 | 208호 (2016년 9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전통 제조기업의 혁신 방식 특징

: 경쟁사가 모방하기 힘든 차별적 기술을독자적으로 개발. 내부 정예 인력으로 극비리에 R&D를 추구. 정해진 로드맵에 따라 짜인 일정대로 R&D 수행.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고 기술의 상향 평준화가 일어나는 현 시점에서 실효성 상실.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합한 신흥 제조기업의 혁신 방식

1) 조합형 혁신: 타 산업에서 충분히 검증된 부품·소프트웨어·개발 도구를 독창적으로 연결해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 자체 R&D의 단점인 기술 속박(lock-in)의 함정을 피할 수 있어 빠른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음.

2) 개방형 혁신: 협력사는 물론 경쟁사, 더 나아가 일반 소비자들과도 협업 추구. 신사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방편은 물론 벤처캐피털식 투자 개발(I&D, Investment & Development) 활성화를 위한 방법으로도 구현.

3) 적응형 혁신: 소비자 니즈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 최소요건제품(MVP)을 빠르게 제작해 시장에 내놓고 소비자 피드백을 통해 시장 가설 수정 후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

 

 

‘패권 교체시대에서군웅할거시대로

 

2010년대 들어 TV, 스마트폰, 자동차 등 주요 B2C 제조업에서 나타나는 경쟁 구도 변화는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이다. 과거에는 주로 제품 혁신에 기반해 기존 글로벌 대기업 간에 벌어지는패권 교체가 일반적이었다. 스마트폰 시장의 경우 2000년대 들어 모토로라를 노키아가 대체했고, 2010년대 들어 노키아를 애플과 삼성이 대체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혁신 방식으로 무장한 다양한 군소업체들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며 이로 인해 기존 지배 업체들의 입지가 동시에 약화되는군웅할거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스마트폰 산업에서는 2010년만 해도 입지가 미미했던 화웨이, 샤오미, ZTE, 쿨패드, 오포, 비보, 마이크로맥스 등 신흥국 기업들이 2014년 세계 시장의 33%까지 잠식해 들어왔다. (그림 1) TV 산업에서도 전통적 강자였던 일본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은 2014 16%까지 감소하고, 대신 TCL, 하이센스, 스카이워스, 비지오(미국), 아첼릭(터키) 등 다양한 신흥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47%까지 육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드론의 DJI, 액션캠의 고프로, 가상현실 기기의 오큘러스, 전기차의 테슬라, BYD 등 최근 신산업에서는 신흥 기업들이 의외로 견고하게 기존 대기업들의 공세를 방어하며 시장을 주도해가고 있다.

 

 

 

이러한 신흥 기업들의 강세가 저임금 노동력에 기반한 가격 경쟁력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흥 기업들의 면모를 좀 더 세밀히 살펴보면, 사업 방식, 특히 혁신 방식이 기존 글로벌 대기업들과 매우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새로운 산업 환경에서 체득해 실행하고 있는 조합형, 개방형, 적응형 혁신 방식은 기존 제조기업들보다 더 적은 혁신 비용으로 더 많은 성과 창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산업 내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전통적 R&D 방식의 한계

 

사실 과거 전통 제조기업들은 산업 내 기술 한계 돌파를 목표로 대개 독자적, 블랙박스형, 목표지향적 혁신을 추구해왔다. , 기존 제조업체들은 다른 기업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도록 차별적인 기술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이를 발전시키는 데 주력해왔다. 또한 시장을 깜짝 놀라게 만들 수 있도록 가급적 비밀리에 내부의 정예 인력만으로 R&D를 추진해왔다. 나아가 사전에 설정한 중장기 기술-제품-서비스 로드맵이 흔들리지 않도록 시장이 변해도 가급적 원래 정한 목표와 일정에 맞춰 개발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휴대폰, TV, 자동차 등 많은 기존 산업 분야에서 이러한 혁신 방식의 유용성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산업이 성숙기로 접어들고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기술 한계 돌파는 점점 어려워지고 기능 및 성능 고도화에 필요한 R&D 비용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기술 발전이 시장 필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과도한 사양(over-specification) 문제가 나타나면서 기존 혁신 방식의 한계 수익률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또한 드론, 사물인터넷(IoT) 기기, 전기자동차 등 신산업에서도 기술 및 시장 변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 혁신 방식으로는 제대로 대응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다양한 빅뱅 기술 혁신의 등장, 혁신 비용 절감의 새로운 가능성 대두, 시장 수요의 급등락 등 최근 산업 환경의 변화는 과거와 다른 방식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21세기 들어 다양한 기술 중개 플랫폼의 등장, 글로벌 혁신/생산 네트워크의 구축, 기술 융합과 산업 간 경계의 붕괴 등이 진전되면서 독자 기술 개발보다는 외부 역량의 적절한 연계 활용이 비용·시간·효과 측면에서 모두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10여 년간 다양한 산업에서 표준화, 모듈화의 급진전과 함께 기술 자산들이 산업 여기저기에 다양한 형태로 축적되면서 이들을 효과적으로 조합해 활용할 경우 의외로 비용 부담을 크게 줄이면서 기술 혁신을 진행할 여지가 확대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범용 부품, SW, 개발 도구를 잘 조합·활용하면 기술 혁신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기능의 소프트웨어화, 개발 환경의 가상화, 클라우드화, 부품 구조의 모듈화, 재사용 가능 코드 및 공개 표준의 확산 등을 잘 활용하면 시장 실험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나아가 쿼키(Quirky), 이노센티브(Innocentive), 알리바바(Alibaba), 킥스타터(Kickstarter) 등 다양한 혁신 플랫폼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외부 역량의 탐색·연결·거래 비용 또한 크게 감축시킬 수 있게 됐다.

 

또한 제품 수명 주기의 단축, 수요 변동성의 확대, 수요 패턴의 근본적 변화 등 시장에서도 큰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태블릿, 디지털 카메라, 콘텐츠, 스마트폰 앱 등 여러 시장에서 제품 판매량이 시간 경과에 따라 정규분포 형태로 완만하게 늘어났다 감소하는 형태가 아니라 상어 꼬리처럼 급속도로 증가했다가 다시 급격히 냉각되는샤크 테일(Shark Tail)’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림 2) 이러한 수요 패턴하에서는 성장기에 빠르게 치고 들어가 최대한의 수익을 거두고 시장의 갑작스러운 정체, 위축 이전에 빠져나오는 기민성이 중요해진다. 이는 결국 R&D가 과거처럼 긴 호흡을 갖는 대신 시장 변화에 유연하고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신흥 제조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는 R&D 방식은 사실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최근 산업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이다. 즉 디지털과 인터넷의 도래 이후 완전히 변화된 산업 환경에서 역량이 전무한 상태로 창업, 주변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 성장하고 살아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갈고 닦아진 최선의 방식이다. 반면 선진 기업들은 과거 산업 환경에서 체득한 독자적, 블랙박스형, 목표지향적 혁신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산업 환경의 혁신 방식을 흡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화경제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루틴(routine)이 돼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새로운 신경제 산업 환경에 잘 부합하는 R&D 방법은 무엇일까? 크게 조합형, 개방형, 적응형 혁신 세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이하에서는 그 개념들을 신흥 기업의 사례와 함께 설명해본다.

 

검증된 기술을 새롭게 연결한조합형 혁신

 

흔히 혁신이라 하면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 완벽히 새로운 기술 진보를 만들어 과거와 단절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혁신의 아버지라 불리는 경제학자 슘페터는 정작 혁신을 기술, 자본, 인력 등 생산수단의 새로운 결합이라 정의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경영학자 앤드루 하가돈(Andrew Hargardon)은 혁신의 본질이 독창적 재조합, 즉 다른 곳에 이미 있는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20세기 초반 포드의 자동차 대량 생산 시스템도 알고 보면 다른 기존 산업의 여러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재조합한 사례다. 포드는 분업화, 전문화 조립 라인의 아이디어를 부위별로 고기를 해체하는 정육 공장에서 얻었다. 또한 컨베이어 벨트의 아이디어는 탈곡기 공장에서, 연속 작업의 인력 운영 방식은 당시 담배 제조 공장에서 빌려왔다. 포드는 이 중 어떤 요소도 새로 발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드의 천재성은 기존 생산요소들을 창조적으로 결합해 자동차 산업의 게임 룰을 바꿀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신흥 기업들이 널리 활용하는 조합적 혁신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조합적 혁신이란 타 산업에서 이미 충분히 검증된 부품,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를 새롭게 조합, 연결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앞서 살펴본 산업 환경의 변화는 조합형 혁신을 과거보다 훨씬 쉽고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테슬라는 최초 전기자동차 모델인 로드스터를 설계, 제작할 때 특수한 전기차 전용 배터리를 개발하는 대신 구닥다리지만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노트북용 원통형 배터리를 약 7000개 정도 연결해 사용했다. VR 기기로 크게 주목받은 오큘러스도 개발자 키트 제품에 스마트폰인 갤럭시 노트3 부품과 동일한 OLED 패널, 터치센서, 전면 커버를 사용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상업용 드론들도 스마트폰용으로 개발된 카메라 모듈, GPS, 자이로 센서 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조합적 혁신이 갖는 장점은 무엇보다 다른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기존 부품 등을 활용하니 개발 기간이나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데 있다. 또한 자체 개발한 부품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 속박(Lock-in)의 함정 역시 쉽게 피할 수 있다. 한마디로 기술 주도권 확보라는 미망에 빠지지 않고 빠른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기술 포지션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게 조합적 혁신의 최대 장점이다.

 

 

외부 역량을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

 

UC 버클리대의 헨리 체스브로(Henry Chesbrough) 교수가 지난 2003년 처음 주창한 이래 개방형 혁신은 어떤 전략 개론서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종의 클리셰(cliché)가 됐다. 그러나 그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산업 동향을 세밀히 관찰해보면 개방형 혁신이 초기 개념에 비해 매우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개방형 혁신은 내부 역량에 국한된 R&D에서 과감히 탈피해 외부의 기술,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해 자사의 혁신으로 연결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개방형 혁신을 확대해도 흡수 역량을 충분히 갖춘 내부 R&D가 일정 수준 존재해야 함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는 개방형 혁신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아예 자체 R&D 기능을 갖지 않고도 성공하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신흥 제조기업들은 이러한 개방형 혁신의 신조류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R&D 아웃소싱은 물론 협력사나 경쟁사, 나아가 소비자들과의 협업을 적극 활용해 최소한의 R&D 인력과 투자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혁신을 창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액션캠 1위 기업인 고프로(GoPro)를 꼽을 수 있다.

 

고프로의 R&D 인력은 창업 9년 차인 2011년에 매출이 23000만 달러에 달할 때까지도 2명에 불과했다. 아예 자체 R&D 기능을 갖지 않은 채로 혁신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극소수의 R&D 인력으로 제품 개발이 가능했던 이유는 외부와의 적극적인 R&D 협업에 있었다. 이들은 액션캠 하드웨어 설계를 대만의 CCTV, 카메라 전문 제조사인 스카이라이트(Sky Light)에 공동 개발 제조(JDM) 방식으로 맡겼다. 카메라 본체와 이미지 센서 모듈, 렌즈 모듈 등 핵심 부품 역시 전문적인 공급업체들과 협력해 개발했다.1

 

최근에는 개방형 혁신이 기업 차원을 넘어 신산업 생태계 조성의 한 방편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VR 기기인 리프트(Rift)를 만든 오큘러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오큘러스는 기술 개발 초기 단계부터 삼성,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했다. 삼성과 협력해 하드웨어 본체의 성능 테스트 및 제조 노하우를 습득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양손 부착형 컨트롤러인터치(Touch)’를 출시했다.

 

 

 

흥미롭게도 삼성이 VR 기어, 마이크로소프트가 홀로렌즈라는 경합 제품를 만드는 걸 오큘러스 역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적과의 동침을 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신생기업인 오큘러스는 기존 대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주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둘째, 영향력 있는 두 기업의 참여로 개발 생태계가 확장될 때 제품의 완성도를 신속하게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전체 VR 시장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셋째, 설령 나중에 두 기업과 경쟁 관계로 돌입하더라도 콘텐츠, 게임 등 제3자 개발자들의 서드 파티(3rd Party) 개발자들의 생태계를 구축할 때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림3)

 

한발 더 나아가 개방형 혁신은 최근 들어 전통적인 기술 기업 인수 개발(A&D·Acquisition & Development)의 대안인 벤처캐피털식 투자개발(I&D, Investment & Development) 방법에 함께 적용되며 그 활용성을 높여가고 있다. 샤오미가 최근 1∼2년간 스마트폰을 넘어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 공기청정기, 드론까지 제품 라인업을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I&D에 있다. 샤오미는 웨어러블 기기인 Mi 밴드는 후아미(Huami), 스마트폰 연동 혈압 측정계는 미국 아이헬스랩(iHealth Labs), 공기청정기는 쥐미(Zhimi), 드론은 플라이미(Flymi) 등에 각각 지분을 투자한 후 이들과 협력해 제품을 공동 개발해 내놓고 있다.

 

피투자 회사들은 세부 제품 설계를 진행하고 샤오미는 콘셉트 및 디자인, UI(사용자인터페이스) 개발을 주관하기 때문에 제품은 제각각이라 하더라도 유사한 제품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샤오미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최소의 마케팅 비용으로 제품 인지도를 크게 키울 수 있다. 이러한 I&D 방식은 시스코(Cisco) 이래 일반화된 A&D(Acquisition & Development) 방식에 비해 동일 투자 자금으로 훨씬 많은 기업과 연결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실제로 샤오미는 2015년 말까지 56개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했다. (그림 4)

 

 

 

 

 

 

 

 

소비자 니즈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적응형’ 혁신

 

적응형 혁신은 시장 소비자의 빠른 니즈 변화에 지속적으로 대응해 혁신의 방향을 진화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에릭 리스(Eric Ries)가 그의 저서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에서 말한 것처럼 제품 개발 단계부터 적용될 수 있다. 시장 기대에 대한 기본 가설을 최소한도로 충족시키는 최소요건제품(MVP·Minimum Variable Product)을 빠르게 제작해 시장에 내놓고 소비자 피드백을 통해 시장 가설을 수정한 후 이를 반영해 제품을 계속 개선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품 출시 후에도 소비자 니즈 변화나 기술 진화를 반영해 제품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시장과 기술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이러한 적응적 혁신이 오랜 R&D 기간을 거쳐 기능, 성능 측면에서 완벽한 제품을 내놓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실제로 신흥 제조기업들은 이러한 적응형 혁신을 통해 제품 사용자들에게 단순한 호평을 넘어 거대한 팬덤(fandom)을 이끌어내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사고율 및 리콜 최소화를 목표로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내놓는 게 당연시된다. 그러나 테슬라는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자동차 개념을 선보이며 자사 제품을 확실히 차별화했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는 부정기적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한다. 2015 10월에는 7.0 버전 소프트웨어를 통해 부분적인 자율주행 기능을 제공해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샤오미의 스마트폰 역시 초기에는 기능도 많지 않고 버그투성이였다.

 

그러나 이들은 사용자들로부터 의견과 불만을 끊임없이 접수해 짧게는 2∼3,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신기능을 추가하거나 오류를 수정해 운영체제나 앱 업데이트에 반영함으로써 제품 완성도를 빠르게 높였다. 고프로 역시 주 사용자층인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들의 의견을 끊임없이 수렴해 다양한 액세서리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도로, 산악, 하늘, 바다 등 그 어떤 곳에서도 액션캠을 사용할 수 있게끔 활용도를 크게 넓혔다.

 

산업 환경, 혁신 방식, 사업 방식 간 궁합이 혁신 성공률 높여

 

신흥 제조기업들이 조합형, 개방형, 적응형 혁신 방식을 도입해 최소 비용으로도 큰 효과를 거두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새로운 혁신을 추진함에 있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업 방식을 도입해 기민성과 유연성, 적응성을 극대화하는 형태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흥 제조기업들은 구매, 제조, 마케팅 등 각 가치사슬(value chain)별로 전통 제조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취해 혁신을 수행해나가고 있다. (그림 5)

 

 

 

 

우선, 구매 측면에서는 탐색 연결형, 이삭 줍기식 공급사슬 구성을 활용하는 경향이 크다. 여기서 탐색 연결형이란 다른 산업에서 이미 검증된 표준화, 범용화 부품들을 알리바바 같은 부품 거래 플랫폼이나 중국 현지 인맥을 통해 찾아 조달해오는 방식이다. 최근 많은 IoT 스타트업들은 중국 선전 지역의 액셀러레이터들을 통해 원하는 가격, 사양에 맞는 스마트폰 부품들을 구한 뒤 이를 변형해 제품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이삭 줍기식 공급사슬 구성이란 다른 완성품 업체가 전 세대 제품에 사용한 부품을 기존 공급사로부터 조달해오는 방식이다. 전속 계약이 끝난 구세대 부품들은 이미 시장에서 검증돼 있고 값도 저렴하다.

 

 

따라서 이를 활용하면 최첨단 고성능은 아니지만 가성비 좋은 제품을 빠르게 출시할 수 있다. 이는 조합형 혁신을 실제 구현하는 데 유리한 방식으로 기존 강자들이 업계 최고의 정예 협력사 중심으로 메이저 리거(Major Leaguer)형 공급 사슬을 구성하고 긴밀하게 관리했던 것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생산 측면에서는 제조 아웃소싱에 기반한 자산 경량화 체제를 지향하는 기업들이 많다. 물론 제조 아웃소싱을 주로 전담하는 홍하이, 플렉스, 쟈빌, 산미나 등 전자제품위탁생산업체(EMS·Electronic Manufacturing Service)들은 기본 주문 규모가 10만 대 단위로 물량이 작은 스타트업들이 이용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중국에서는 전자 제품의산짜이(山寨, 모조품)’ 단속이 심해지면서 선전 지역의 관련 제조사들이 스타트업들의 소량 주문(5000대 이상) 위탁으로 많이 선회했다.

 

 

 

이에 따라 선전의 얼굴 없는 제조사들을 활용해 초기 시제품을 소량 생산한 후 물량이 충분히 커지면 EMS를 이용해 생산 물량을 늘리는 방식이 스타트업 사이에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제조 아웃소싱과 자산 경량화는 기업들이 초기 공장 투자 부담을 줄이고, 빠른 시장 변화에 따른 고정자산의 부채화를 방지하며, 시장의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신흥 기업들은 다양한 역발상을 통해 저비용 마케팅 기법들을 구사하고 있다. 이들은 비전통적인 유통 채널을 통해 가성비 높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SNS 네트워크를 홍보의 장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고프로는 액션캠 편집 도구와 공유의 장을 마련해 사용자들이 촬영한 영상을 전 세계에 널리 퍼트리면서 사용자 스스로 고프로를 알리는 홍보원 역할을 하도록 유도했다.

 

샤오미는 오프라인 유통망 대신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제품을 판매하며, 테슬라의 경우 전통적인 딜러망 대신 직영점을 통해 전기차를 판매해 유통 비용을 줄인다. 특히 이들 신흥 기업은 고객들을 단순히 판매 대상이 아니라 귀중한 피드백을 주는 혁신 협력자이자 사업 파트너로 활용해 시장의 변화에 더욱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전통 제조기업, 약점 보완과 기존 루틴 극복으로 환경 적합도 높여야

 

최근 많은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혁신, 사업 방식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조선, 철강, 자동차, 전자 등 한국 주력 산업에서 나타난 경쟁력 위기의 원인은 사실 변화된 사업 환경에서 기존 혁신, 사업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미국, 일본 등 해외 전통 제조기업들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기존 강점을 더욱 강화하고 차별화하되 새로운 사업 방식을 접목해 약점인 기민성, 유연성, 적응성을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 예로 미국의 GE생각하는 공장(Brilliant Factory)’으로 제조 강점을 더욱 강화하려 하고 있다. 산업 인터넷, 3D 프린팅, 신소재 등 첨단 IT를 융합해 기존의 제조 운영 방식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스마트 팩토리를 말한다. 또한 GE는 린 스타트업을 기본 모델로 한 GE식 속도경영인패스트 웍스(Fast Works)’라는 새로운 개발 방법론을 도입해 대기업의 고질병인 R&D 속도 둔화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기존 루틴의 극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기업의 강점은 기민성과 유연성에 있었다. 그러나 업력 및 규모의 증가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부정적 루틴이 만들어지면서 조직 구조에 군살이 끼고 사업 체질은 점차 느려지며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R&D에서는 첨단 기술 개발에만 목을 매다 보니 고객의 통점(Pain Point) 대신 사양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는 루틴이 생겨났다.

 

또한 구매에서도 기존 공급망 관계가 고착화되면서 경쟁력이 저하된 공급사를 조정, 교체하기 곤란해지고, 과거의 주문 관행 때문에 유동적인 구매 물량 조정도 힘들어졌다. 제조에서도 표준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만 익숙해지다 보니 작고 다양한 신사업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됐다. 새로운 혁신, 사업 방식 도입의 성공 여부는 결국 이러한 기존 루틴을 어떻게 극복하고, 과거 성공의 레거시(Legacy)들과 어떻게 결별하는가에 달려 있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lajuno@lgeri.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공학 박사 학위(기술경영)를 각각 받았다.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로서 금융, 재무 분야에도 능통하다. 현재 LG경제연구원에서 미래 트렌드, 신규 부상 기술, 신경영기법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생각해볼 문제

 

 

1.전통적인 독자적, 블랙박스형, 목표지향적 혁신이 점차 유용성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기존 혁신 방식이 여전히 유용한 산업이나 기술이 있다면 무엇일까?

 

2.조합형, 개방형, 적응형 혁신 방식은 ‘R&D 비용의 증가=혁신 성과의 개선을 위한 필수요건이라는 기존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우리 회사에서 R&D 비용을 효율화하면서 혁신 성과를 더욱 증대시킬 방안은 없을까?

 

3.새로운 혁신 방식의 도입이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회사에 새로운 혁신 방식의 변화를 가로막는 내적 장애물들이 있다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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