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이란 소비시장 진출 전략

KORAN Strategy: 이란을 여는 5大 키워드

김욱진 | 203호 (2016년 6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이란은 소비시장으로서도 매력적이다. 인구가 8000만 명을 넘는데다가 경제 제재 해제 이전부터 주변국들의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다. 이란에서 성공한 제품이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7개의 주변 국가(터키, 이라크,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에서도 잘 팔릴 가능성이 높다. 이란 소비시장을 뚫기 위한 이른바 ‘KORAN 전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Knockdown: 산업 협력을 통한 합작 생산(SKD·CKD)을 추진하라

2. Observation: 이란 시장의 독특함에 대한 관찰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3. Respect: 이슬람 공화국의 관습을 철저히 존중하라

4. Activeness: 적극적인 초기 마케팅으로 선점효과를 극대화하라

5. Neighborhood: 떠오르는 주변국 시장, 진출의 거점은 이란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손지현(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란은 분명 먼 나라다. 미국 부시 정부가 지정한 대표적인 악의 축 국가 중 하나, 피비린내 나는 이란-이라크 전쟁의 당사자, 최고지도자가 가장 큰 권력을 갖는 신정일치 국가, 끊임없는 핵개발 야욕, 매너 없는 플레이로 일관하는 침대축구까지…. 평균적인 대한민국 사람이 이란에 대해 생각하는 수준이 아닐까?

 

그러나 현지에 거주하면서 직접 경험한 이란은 한국에 알려진 것과는 많이 다르다. 1979년 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으로 이슬람공화국이라는 독특한 정치 체제를 확립한 나라, 지리적으로는 중동이지만 아랍 문화와는 차별화된 페르시아 문명의 발상지, 한때 제국을 이뤘던 만큼 커다란 역사적 자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 한국보다 온화한 기후에 사계절이 있고 겨울에는 스키를 탈 수 있는 곳. 단순히 경제발전 정도를 기준으로 선진국, 후진국을 가르는 우리 특유의 경직된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다양함이 이란에는 존재하고 있다.

 

 

 

 

우선 이란은 한반도의 7.5배에 달하는 커다란 나라다.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와 유럽, 러시아·CIS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로 평가받는다. 동쪽으로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서쪽으로는 터키와 이라크,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7개 나라를 접하고 있어서 주변국 진출의 거점 지역으로 꼽힌다. 또한 남부의 해안지대를 이용한 물류의 출입 활동이 용이하고 인접국과의 도로, 철도 등 기반시설도 비교적 우수하다. 인구는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많은 8000만 명에 이르며 중동 최대의 내수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인구의 60% 30대 이하로 구성된 젊은 국가로, 양질의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란은 원유 매장량이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 4위다. 최근 브리티시페트롤리움(BP) 보고서는 이란의 천연가스 매장량이 러시아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고 게재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산업화를 추진해왔다. 1990년대부터 5년 단위로경제·사회개발 계획을 수립해 석유 의존 경제를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20년 미래계획을 발표하며 중동 제일의 경제·과학 선진국으로 올라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란 호드로(Iran Khodro), 사이파(Saipa) 등 자국 자동차 브랜드가 있으며 연 150만 대 이상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중동 최대의 제조업 기반시설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서구 주요국과의 관계도 개선되고 있다. 2015 7, 중도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취임 후 23개월 만에 서방과 핵협상 타결을 이뤘다. 로하니 대통령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2013 6, 대선에 출마한 로하니 후보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당선됐다. 1차 선거에서 과반을 획득해 결선 투표마저 생략한 깜짝 승리였다. 전임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8년의 임기 내내 강경 노선을 고집해 국제 사회에서 고립됐고,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동안 현지화인 리알의 가치는 세 배 가까이 폭락했고, 물가상승률은 35%에 육박했다. 결국 이란 국민들은 경제 회생을 기치로 내건 로하니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로하니 대통령의 공약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제재 상황에서 한계가 있었다고는 하나 핵협상 결과에 냉소적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극심한 빈부 격차로 중산층은 붕괴됐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대통령이 바뀌어도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제재 해제가 시작되면서 경기를 얼마나 빨리 부양하느냐, 그리고 그 혜택이 얼마나 골고루 돌아가느냐가 로하니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다행히 제조업 기반을 갖춘 이란은 원유·천연가스 수출을 정상화하는 동시에 노후한 산업시설을 개선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이란에서 문화적·경제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다. ‘대장금과 같은 사극은 시청률이 90%에 육박하며 재방영을 거듭했다. 한국산 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아 제재기간 동안 오히려 수혜를 입은 품목도 있다. 다만 이란은 전통적으로 유럽 제품을 선호하는 시장이다. 제재가 전면 해제되고 경쟁국 진출이 본격화됐을 때 한국산이 지금처럼 높은 지위를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이란 경제인들은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거래 성사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상대 기업과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다.

 

 

이란 소비시장이 열린다

 

2015년 기준, 이란은 우리나라의 26위권 수출대상국이다. 37억 달러 이상을 수출했으며, 전체 수출량의 0.71%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 제재 심화 이전인 2012년에는 63억 달러가 넘는 수출액을 기록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보였다. 주요 수출 품목은 컬러TV, 디스플레이 등 가전제품, 합성수지, 자동차부품 등이다. 특히 서구의 이란 제재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강세를 보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란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은 인지도가 매우 높으며 유럽 브랜드와 경쟁하고 있다. 거리에서는 한국산 자동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는 이미 국민차 대열에 올랐다. 기아자동차가 사이파(Saipa)와 합작해 2005년까지 프라이드를 현지에서 생산·판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택시의 대다수가 프라이드이며 전체 자동차의 30% 이상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란은 건설·플랜트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수주 시장이기도 하다. 1970년대 첫 진출 후 2000년대 중반까지 5위권 안팎을 유지해왔으나 이후 서구의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이란 진출이 거의 끊겼다. 이란은 원유 생산량에 비해 정제기술이 부족하고 전반적인 도시 인프라가 미흡해 건설 수요가 많다. 향후 16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발주가 예상되며 제재가 완화되면 우리 기업의 본격적인 수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KT&G 2008년 이란 현지 생산법인을 설립하고 담배 제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쎄(ESSE) 브랜드는 시장점유율이 30%에 이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이란인의 애정은 각별하다. ‘대장금이나주몽의 폭발적 인기는 물론이고 이란의 태권도 인구는 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20만 명이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태권도를 정식 교육과목으로 채택하며 태권도 강국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럼에도 이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아랍어와는 다른 이란의 국어, 페르시아어에는 우리말의파이팅과 비슷한하스테 나 버시드(Khaste Na Bashid)’라는 표현이 있다. 번역하자면 수고하라는 뜻이다. 성공적인 현지 진출을 위해서는 이란에 대한 연구와 치밀한 전략 수립이 필수적이다. 하스테 나 버시드!

 

이란 소비시장 진출 전략: KORAN Strategy

 

이란의 정식 국호는 이란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이다. 이란은 이슬람혁명을 통해 신정 일치 체제를 확립했다. 이란이슬람공화국 국기에는신은 위대하다는 문장이 11번씩 두 차례 반복된다. 이슬람혁명을 기념하려는 의도다. 1979 211, 호메이니가 중심이 된 전국적 시위로 팔레비 왕조는 막을 내렸다. 군은 즉각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다. 얼마 후 국민투표를 통해 이란은 이슬람공화국이 됐다. 이란 헌법은국가가 이슬람 원리를 토대로 국민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기초가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란은 정교일치 국가다. 이슬람공화국에서 이슬람은 민생을, 공화국은 정치를 규정한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 생활의 밑받침이다. 여기에서 착안해 이란 시장에 진출할 때도 경영의 토대로 삼을 수 있는 코란(KORAN) 전략을 제시한다. 코란에는 한국과 이란(KOREA+IRAN)이 경제적으로 상생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KORAN의 철자는 각각 녹다운 수출(Knockdown), 시장 변화 관찰(Observation), 현지 관습 존중(Respect), 적극적 마케팅(Activeness), 주변국 진출 거점(Neighborhood)을 의미한다. 고심해서 뽑은 다섯 가지 키워드는 이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1. Knockdown 전략

이란도 내수산업 육성 및 자국산업 보호 기조가 아주 엄격하다. 특히 수입품에 대해서는 다양한 규제정책을 시행 중이다. 2012 7, 이란 정부는 수입품을 10개의 범주로 구분하고 10등급 품목에 대해서는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10등급은 사치품 및 수입이 불필요한 완제품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냉장고, 식기세척기, 자동차 배터리, 화장품 등 우리 기업의 수출 주력품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수출이 가능하더라도 대단히 높은 관세를 적용하고 있으므로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수입 규제와 높은 관세율을 회피하기 위해서 현지기업과 합작투자를 하거나 부품을 수출해 현지 조립생산을 하는 방법이 적절한 대안으로 꼽힌다.

 

 

 

 

한국 기업 청호컴넷이 좋은 성공 사례다. 청호컴넷은 현금자동화기기(ATM)를 생산하고 있다. 이란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돈의 단위가 매우 크며 현금 사용률이 높다.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영업 중인 시중 은행의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대부분의 은행은 우리와 달리 매립형 ATM을 설치해놓고 있으며 출금 서비스만 가능할 정도로 개선이 시급하다. 청호컴넷은 완제품을 수출할 경우 3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현지 생산을 결정했다. 이란 유망기업인 베헤스탄(Behestan)과 녹다운 방식(부품 세트를 외국에 보내어 이를 현지에서 조립 ·판매하는 방식)으로 부품을 수입한 후 테헤란 근교 카라즈(Karaj) 공장에서 조립하고 있다. 부품 수출 후 조립할 경우 관세율이 7%로 떨어진다. 지난 2013년 말, 3년간 8000만 달러에 이르는 계약을 체결하고,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거 이란에 프라이드를 수출한 기아자동차 역시 이 같은 전략을 활용했다. 이란 영화택시는 복잡하고 무질서한 테헤란의 도로를 비추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감독 자파르 파니히는 영화에서 직접 택시 운전사가 돼 시내 곳곳을 누비며 손님을 태운다. 첫 번째 승객은 타자마자 요즈음 늘어나는 범죄에 대해 불평하는데, 근래 자신의 가족도 주차된 자동차 바퀴를 도둑맞았다고 말한다. 운전사가 무슨 차였냐고 묻자 손님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프라이드!”

 

 

기아자동차가 1987년 출시한 1세대 프라이드는 지금까지 이란의 국민차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93년 이란 사이파자동차는 기아와 제휴해 처음 프라이드를 현지 생산했다. 모델명은 나심(Nasim, 해치백)과 사바(Saba, 세단)였다. 국내에서 해치백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던 것과 달리 이란에서는 세단 형태인프라이드 베타’, 즉 사바가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였다.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전체 승용차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최근 환율 기준, 사바의 가격은 약 6000달러로 저소득층 및 사회초년생을 판매 대상으로 공략하고 있다.

 

2000년 기아가 1세대 프라이드를 단종하자 사이파는 한국에서 추가로 생산라인을 들여왔다.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뒷부분이 경사진 리프트백 및 소형 픽업트럭도 개발했다. 앞모습은 영락없는 프라이드지만 뒤에서 보면 트렁크 면적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거나 2인승 화물전용 차량인 것이다. 사이파가 20년 넘게 생산한 프라이드 기반 모델을 세어보면 무려 십여 종에 달한다. 테헤란에 출장 온 한국 사람들은 보통 두 번 놀라는데 우선 거리에 프라이드가 너무 많아서 놀라고 또한 그 모양새가 각기 달라서 놀란다.

 

사이파는 아직도 사바를 생산하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예전과 같지 않다. 얼마 전 만난 사이파의 홍보 담당자는 최근 자사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사바의 명맥을 이을 후속 모델 출시가 시급하다고 강조하며 제재 심화로 시기를 놓친 감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기아의 신형 포르테를 완전분해(Knockdown) 방식으로 들여와 현지에서 조립 후 판매하고 있지만 가격이 비싸서 매출 증대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이란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는 사바를 희화화하는 모임까지 있을 정도라고 그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동안 이란에서 사바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독특한 현지 사정과 소비자의 요구가 적절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란은 대중교통이 썩 발달해 있지 않아 다수의 가정이 차를 한 대 이상 보유하고 있다. 소득이 낮은 계층은 가족용 차량으로 주로 사바를 선택한다. 저렴한 가격에도 짐을 실을 수 있는 트렁크가 있는 까닭이다. 테헤란 등 대도시에는 미로와 같은 골목이 많으며 도로 양 옆으로 주·정차된 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좁은 길을 가까스로 통과하기에는 사바와 같은 소형 차량이 안성맞춤이다.

 

경제 제재가 풀리자 이란인들은 앞으로 싼 값에 품질이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가 빠질 리 없다. 사바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이 이란 국민의자부심에 걸맞은 신규 합작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면 제2의 프라이드 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2. Observation 전략

테헤란 북부에 있는 타즈리시광장(Tajrish Square)은 이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문화와 상업 중심지다. 한편에는 전통시장인 바자르와 이슬람 사원 모스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백화점, 카페 등 현대식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이란의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는 느낌이라 매번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패스트푸드점카부키치킨도 타즈리시에 자리잡고 있다. 미국 체인점 KFC를 어설프게 흉내낸 짝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식당 안에는 창립자인 할랜드 샌더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샌더스는 이슬람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78, KFC 테헤란점을 방문했다.

 

1979년 극적인 이슬람혁명 이후 국제 사회에서 이란의 입장은 친미에서 반미로 급변했다. 혁명 과정에서 발생한 주이란 미국대사관 점거 사건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란은 아직도 미국과 수교 관계가 아니다. 다만 많은 이들의 선입견과 달리 보통 이란 사람들은 혁명 전 경험으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화에 거리낌이 없다.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채 코카콜라를 마시는 남녀의 모습은 테헤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정품인지 모조품인지, 어떠한 경로로 수입됐는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지난 1월 발표된 이란 핵협상 합의문 이행 개시와 제재 해제를 두고 온 누리에서 추측성 보도가 쏟아졌다. 고삐 풀린 이란에 빨리 들어가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각국의 다급함은 십분 이해할 수 있겠으나 먹을거리를 팔 대상으로만 이란을 타자화하는 시각은 너무 단편적이다. 또한 시장 개방이 본격화되면 이란의 신정일치 체제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예상도 과한 추측이다. 이란은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일찌감치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절차를 구축했다. 물론 최고지도자가 존재하는 독특한 구조지만 나름의 거버넌스가 작동한다는 뜻이다.

 

이란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후식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삶은 요원한 일이다. UN, EU 제재가 대부분 철폐된 것과 달리 미국 주도의 일부 제재는 여전히 유효한 까닭이다. 따라서 수출입 거래에서 달러화 결제는 계속 금지되며 비자, 마스터 등 국제 신용카드 사용도 이란에서는 불가능하다. 제재 해제가 발표되고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란은 핵협상 이행과 무관하게 자립경제 구조의 일종인 저항경제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공식 언급했다. 제재가 풀려도 이란 사람들은매시도날드(Mash Donald’s)’에서 햄버거를 먹고스타박스(Starbox)’에서 커피를 마실 것이다.

 

 

결국 이란에서는 모든 것이이란화된다. 이란은 과거와 현재가 한데 뒤엉켜 있고, 이란 사람들은 자국 역사에 대한 긍지와 외국 문화에 대한 개방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얼핏 모순되게 보이는 이 사실이 지금 이란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다. 제재 해제의 기대감만을 앞세워 이란 시장에 섣불리 뛰어들 경우 낭패를 보기 쉽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요구된다.

 

현지화 전략으로 이란에서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는 기업으로 LG전자를 들 수 있다. LG전자는 현지 전자유통업체 파트너인골든이란과의 협력을 통해 이란 시장 내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LG전자의 성공 키워드는지역특화형 제품이다. 섭씨 60도 이상의 고온에도 강력한 냉방 성능을 제공하는 지역 특화 에어컨타이탄 빅 Ⅱ’ 60도 이상의 혹서에도 견딜 수 있는열대 컴프레서를 장착한 점이 특징이다. , 실내 흡연율이 높은 중동 현지 소비자들을 위해 강력한 공기 청정 기능으로 담배 연기 제거 기능도 탑재해 이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LG전자는 또 이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경제 활동 참여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점에 착안해 이란 전통음식을 자동 메뉴로 조리할 수 있는 광파오븐솔라돔을 출시해 이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지 서비스에서도 현지화를 추구했다. 이슬람 문화권인 이란은 여성이 혼자 있을 때는 남성이 방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하더라도 서비스 만족도 결과가 매우 낮게 나타난다. 이에 착안한 LG전자는 여성 서비스 엔지니어를 모집, 교육하고 있다. 고객들이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핑크색이 섞인 유니폼도 마련했다. LG전자의핑크 서비스는 이란에서 호평을 받으며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Respect 전략

경제 제재가 풀렸다고 하지만 이란은 아직도 폐쇄적인 사회다. 외국인이라도 여성은 입국하는 순간, 머리를 가리는 히잡을 써야 한다. 지난 5월 초, 박근혜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이란을 방문했을 때도 현지 관습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루싸리(Rusari)로 불리는 이란식 히잡을 착용했다. 게다가 여성은 엉덩이를 가리는 상의를 준비해야 하며, 남성은 반바지를 입을 수 없다. 곳곳에 종교 경찰이 상주하고 있으며 자기 검열과 통제가 일상화돼 있다.

 

다만 이란 체제에 대한 섣부른 비판은 거래 시 이란 기업과의 관계를 망칠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 2500년 역사를 가진 페르시아 민족의 후예답게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소수 종파인 시아파 국가이긴 하나 이슬람 문화가 생활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으므로모든 것은 신에게 달려 있다는 인샬라 정신이 존재한다.

 

이란에서는 사람들이 매사에 느긋하고 약속 시간에 늦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현지인들은야바시(Yabash)’ 문화라고 부르는데, 야바시는 우리말로천천히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란 기업의 관습을 존중하며 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무역 거래에서는 계약 체결 시 첫 대면 후 6개월 이상 지난 시점에서 이란 바이어가 신용장(L/C)을 개설하는 경우도 잦다. 인내심을 갖고 상대 기업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

 

테헤란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막 내렸다고 가정해보자. 이란행이 처음인 당신은 비행기 안에서 각종 페르시아어 회화표현을 외우며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게다가 공항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와 사뭇 다른 수의 모양을 보며 당황할지도 모른다. 참고로 아라비아 숫자의 기원은 인도이고, 아랍인을 통해 유럽으로 전래돼 아라비아 숫자라는 명칭이 붙었다. 마침내 당신은 떨리는 마음으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시내 중심부로 향하는 택시에 무사히 올랐다. 시내에 도착한 당신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사에게 요금을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은거벨리 나 더레(Ghabeli Na Dare).” 어라, 페르시아어 회화책에 나와 있는 숫자표현이 아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거벨리 나 더레.”

 

‘거벨리 나 더레는 직역하면이건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의역하면괜찮아요, 아니에요정도의 뜻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페르시아 특유의 빈말 문화인데, 이란인들은 이를터로프(Taarof)’라고 한다. 터로프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서 서로의 체면을 지키는 언어 습관이다.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한 후 요금을 지불할 때 듣게 되는거벨리 나 더레역시 일종의 터로프 표현이다. 이란 택시의 특성상 미터기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승차 전 기사에게 요금을 확인하고 타면 찜찜하지 않다. 다만 도착 후 확인한 금액을 지불하려고 하면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거벨리 나 더레라고 말하며 받지 않으려는 시늉을 할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베파르머인(Befarmayin)’이라고 말하면서 돈을 내미는 것이 좋다. 그제야 기사는 쭈뼛하며 요금을 받을 테니까 말이다.

 

‘베파르머인’은 가장 대표적인 터로프 표현인데 특별히 고정된 뜻은 없다. 굳이 번역하자면 영어의 ‘Please’ 정도로 그만큼 다양한 상황에 응용해서 쓸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상대방이 내게 먼저 내리라고 할 때,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무엇을 도와주려 할 때 이 표현을 들을 수 있다. 상대에게 노크를 했을 때 대답으로도베파르머인을 듣게 되는데 이때는 들어오라는 뜻이다. 또한 누군가가 무엇을 먹고 있을 때 곁을 지나가면 이란 사람들은 반사적으로베파르머인’을 외친다. 다가와서 함께 먹자는 뜻이다. 하지만 이럴 때베파르머인은 대부분 예의상 하는 빈말일 경우가 많다. 우리 역시 체면을 중시해서 비슷한 언어 습관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우리가 보기에도 이란의 터로프 표현은 매우 다양하고 시적인 표현이 많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난 당신을 위해 희생할 거예요(고맙습니다)” “당신은 내 눈동자 위에서 걸을 수 있어요(환영합니다)” “당신 눈의 빛이 되고 싶어요(훌륭합니다)” 등이다.

 

 

페르시아 특유의 터로프 습관은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 배경과 연계해서 살펴봐야 한다. 공동체 문화의 특성상 이란인들은 말하는 상황과 상대방과의 관계를 발화의 내용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영어를 비롯한 서구의 언어는 80%가 지시적 표현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합리성을 중요하는 서양의 사고방식이 언어에 투영된 까닭이다. 반면 페르시아어의 80%는 암시적인 표현으로 구성돼 있다. 지리상 동서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인 이란은 역사적으로 침략이 잦았다. 아랍, 투르크, 몽골 등 제국의 점령을 겪으면서 대립적인 현실을 피하고 싶은 바람이 언어습관에 투영된 것이다. 종교적으로도 이란은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시아파가 주류를 형성하게 됐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수니파가 중심이며 시아파는 소수에 속한다. 오랜 이슬람 종교분파 대립의 역사에서 소수파는 주류를 향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감춰야 했다. 시아파 이슬람 국가 이란의 언어습관에 모호한 표현이 많은 또 한 가지 이유이다.

 

몇 해 전, 미국 <뉴욕타임스>정교한 감추기 예술이라는 기사에서 이란의 터로프 문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미국은 외교 테이블에서 이란인의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란을 상대하는 미국은 어딘지 모르게 피곤해 보인다. 명확한 영어와 모호한 페르시아어의 대결에서 유리한 쪽은 아무래도 후자다. 어디 외교 관계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무역 및 비즈니스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바이어를 만나서 가격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언어습관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면 유리한 입장을 선점할 수 있다. 반면 이란인의 모호한 발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게임의 룰을 알면 경기는 재밌어지게 마련이다. 바이어의 터로프 표현을 듣고 더 높은 수준의 빈말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면 우리 기업의 이란 시장 진출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4. Activeness 전략

빗장이 풀린 이란에 내로라하는 국가와 기업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란 시장이 글로벌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지난 1, 경제 제재가 해제됐지만 실거래를 하려면 기업들은 결제 문제를 비롯해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이란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오랜 기간 제재를 겪어온 이란의 경우, 전반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물자가 부족하다. 이란도 제조업 기반을 갖춘 산업 국가이지만 시설이 낙후됐고 자국산 제품은 질이 매우 떨어진다. 이란 국민의 1인당 GDP는 약 5000달러에 불과하지만 구매력을 고려하면 12000달러가 넘는다. 외국산의 경우 확실한 구매층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식 직수입이 아니라 대부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을 거친 제3국 거래를 통해 제한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란은 저가와 고급품의 구분이 분명한 시장이다. 중산층의 붕괴로 서민층은 생계비의 70%를 식료품 및 주거비에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부유층의 생활수준은 서구 상류층을 뛰어넘을 정도다. 대부분 브랜드 제품과 최고급품을 고집한다. 수입 가전제품 수요가 많으며 외제 자동차 구매 욕구도 강하다. 관세 및 부가세 등 각종 세금을 포함하면 수입 자동차 가격이 한국의 2배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는 쉽게 한국, 일본, 독일차를 찾아볼 수 있다.

 

이란은 오랜 시간 고립돼 있다 보니 서비스 및 마케팅 기술이 정교하게 발달하지 못했다. 이란 언론에서는 제재가 풀리고 외국의 브랜드 호텔 체인이 들어오면 현지 5성급 호텔은 별을 한두 개 빼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초기 브랜드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제재 해제 직후인 지금부터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면 이란 소비자에게 충분히 좋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란에는 한국산에 대한 선호가 분명 존재하며주몽’ ‘대장금등 사극의 인기로 한류도 확산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이 공격적 마케팅에 나선다면 우리 제품의 선점효과는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우리나라에서 이란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수단은 무엇일까? 현재 직항편이 없으므로 에미레이트항공이나 카타르항공을 타고 해당 국가를 거쳐 테헤란에 도착하는 편이 일반적이다. 애써 국적기를 이용하려면 두바이 등지에서 이란항공으로 갈아타는 방법도 있다. 다만 우리나라 비행사와 이란항공은 제휴 관계가 아니므로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 연결편 표를 미리 받을 수 없다. 경유지에서 짐을 찾은 후 밖으로 나와 다시 수속 절차를 밟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1946년 설립된 이란항공은 70년대까지 비약적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영국 런던에 주 30회 취항한 것을 비롯해 웬만한 유럽 주요 도시를 모두 잇는 중동 대표 항공사로 발돋움한다. 1976년에는 호주 콴타스항공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비행사에 선정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슬람혁명으로 미국과 수교가 단절되고 이라크와 전쟁이 장기화되며 이란항공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후 악화된 국제관계 및 안전 부족을 이유로 유럽 역내 취항금지 목록에 오르내리며 중동 항공시장의 주도권을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내주었다.

 

2000년대 들어 이란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진 후, 항공 분야 역시 강도 높은 제재 대상이 됐다. 이 조치로 이란은 사실상 7년이 넘은 중고 기체밖에 도입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보잉, 에어버스 등 최신 항공기를 들여오지 못하므로 러시아산 항공기에 의존해 운항을 지속해왔다. 부품 수입도 여의치 않아 항공기 유지 및 보수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란항공 소속 여객기의 평균 기령은 26년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항공업계에서 이란은 노후화된 여객기와 허술한 관리로 인해 사고가 잦기로 악명이 높다.

 

지난 1, 경제 제재 해제가 공식 발표되자 이란은 항공기 주문부터 서둘렀다. 프랑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4년간 에어버스 118대를 구입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우리 돈으로 약 30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 보잉도 이란에 상업용 여객기를 판매할 수 있는 허가를 얻고 거래 협상을 진행 중이다. 브리티시항공, 에어프랑스, KLM 등 유럽 주요 비행사의 테헤란 노선 운항 재개도 현실이 됐다. 이란은 한술 더 떠 이슬람혁명 후 37년간 중단된 미국 노선을 되살리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밝혔다. 제재 해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하늘길부터 열겠다는 속셈이다.

 

이란은 중동 항공시장을 주름잡던 과거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란 입국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맘호메이니국제공항은 개장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으나 벌써 낙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려면 공항 확장이 절실하다. 게다가 공급자 위주의 수준 낮은 서비스를 대폭 개선하지 않는 한 이란 항공사들은 어려운 경쟁에 직면할 것이다.

 

 

이란 항공산업 제재에 앞장섰던 서구 주요국들은 재빠르게 상인으로 옷을 갈아입고 시장을 주도하려 한다. 우리나라도 빠질 수 없다. 달포 전 노선 운수권을 얻은 대한항공은 화물기를 시작으로 여객기까지 테헤란에 띄우겠다고 밝혔다. 국적기 직항편을 타고 이란에 도착할 날이 머지않았다.

 

이란을 발 빠르게 공략한 기업으로는 KT&G를 들 수 있다. KT&G는 지난 2008년 이란 현지법인을 설립한 후 2009년 테헤란에 공장을 세워 적극적인 현지시장 개척을 시작했다. 그러나 KT&G의 기대와는 달리 이란은 사업을 하기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2003년 이란 현지 국영 담배회사인 ITC와의 합작사업 협의를 시작으로 현지에서 완제품을 생산하기까지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0년간의 경제 제재로 인해 이란 내 인프라 부족, 금융시스템 미비와 정치적 리스크 등으로 사업은 초기부터 어려웠다. 또 고타르 제품 중심의 이란 시장에서 출시 초기 한국산 담배는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KT&G는 꾸준히 이란 시장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알려 나가는 노력을 했다. 특히 KT&G의 대표 제품으로 떠오른에쎄 미니의 경우 틈새시장을 공략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동 시장은 타르 성분이 많이 함유된 고타르 제품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에쎄의 경우 대표적 저타르 제품으로 이란 현지에서 새로운 담배 카테고리를 개척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국에서 고타르 담배는 개비당 타르 함유량이 5㎎ 이상이지만 중동에서는 10㎎을 지군으로 삼는다. 이란에 팔리는 에쎄 미니는 똑같은 한국 시장 내 제품인에쎄 edge(1)’보다는 높은 4㎎의 타르를 함유하고 있지만 이란에선 저타르 담배로 통하며 오히려 프리미엄 제품 취급을 받고 있다.

 

KT&G 2001년 아프간, 2003년 이라크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이란을 등지고 떠나지 않은 점도 이란 사람들에게 KT&G의리 있는 기업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해외 담배 기업들은 담배 수출을 잠정 중단했지만 KT&G는 전쟁 리스크를 무릅쓰고 현지 담배 수입상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담배를 공급하는 등 특유의 도전정신과 끈기를 바탕으로 시장 개척을 해왔다. 덕분에 KT&G의 중동지역 담배판매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5년에는 2014년 대비 8.7% 늘어난 227억 개비를 판매했다. 2013년과 비교하면 63.3% 증가한 수치다. 이란이 어려울 때 의리를 지킨 점이 결국 제재 해제 이후 결실을 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5. Neighborhood 전략

이란은 큰 나라다. 면적은 한반도의 7.5배에 달하며 접경 국가만 7개다.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서쪽으로는 터키와 이라크,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나라 이름에 스탄(Stan)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스탄의 어원은 이란말인 파르시(Farsi), CIS 지역도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 제재로 오랜 시간 봉쇄돼 왔지만 이란의 지정학적 위치는 아주 훌륭하다. 남쪽으로는 페르시아만, 오만해, 호르무즈 해협과 접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유명한 카스피해가 있다. 해안지대를 활용한 물류의 출입 활동이 용이하고 육로를 이용해 유럽과 러시아로도 운송이 가능하다.

 

이란은 장기적으로 국제 물류·유통의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제재가 해제되면서 이란은 아시아와 동유럽 및 CIS 국가를 연결하는 기존 항로의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스피해를 가로지르는 단거리 해운과 이란 내륙 철도 운송을 결합한 방식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방법보다 약 40%의 시간과 30%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이미 주요 글로벌 유통 기업이 이란 전역을 대상으로 유통망 구축 효과를 분석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우리 기업은 앞으로 이란을 거점으로 삼아 이웃 국가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려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란 현지 기업과 공동으로 주변국 진출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이란 기업의 네트워크, 이웃 시장 접근성과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결합한 방식은 성공 가능성이 높다. 주변 국가만 포함하더라도 약 3억 명에 달하는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으며, 이란은 향후 이 지역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다.

 

얼마 전 CNN은 제제가 풀릴 경우 이란이중동의 독일과 같이 권역 내 산업·경제 리더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극복한 독일처럼 이란이 오랜 경기 침체를 뛰어넘어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하는 시점이다.

 

주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이 있던 테헤란의 부스탄 거리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우디가 이란과 단교를 선언한 지난 1, 테헤란 시의회는 부스탄 거리에님르 바크르 알님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알님르는 사우디 내 소수 이슬람 종파인 시아파를 대표하는 성직자로 사형 당했다. 사우디 정부는 테러 혐의를 받고 있는 47명에 대한 정당한 사형 집행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시아파를 대표하는 이란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란에서는 즉각 시위대가 집결했고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은 군중의 공격을 받았다. 사우디는 당장 외교관계 단절을 공표했고, 이란은 사우디산 제품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금수조치로 맞불을 놓았다.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 이란의 대립은 사실 해묵은 이슈다. 서구 미디어에서 이슬람은 주로 과격하게 묘사되며, 중심에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있다. 이슬람 예언자인 무함마드 사후, 무슬림은 후계자 문제를 놓고 분열했다. 이는 이슬람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랍 전통에서는 부족장이 죽었을 때 회의를 통해 후계자를 선출했다. 따라서 무함마드의 장인이자 가까운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를 제1대 칼리프로 선출했다. 칼리프는 예언자의 대리인을 의미한다. 수니파는 칼리프의 선례에 바탕을 둔 규범인 순나(Sunnah)를 추종하는 종파이며, 전체 이슬람 세계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주도 세력이다.

 

시아파는 칼리프 자리를 무함마드 혈통의 사람으로 한정하고, 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가문에 돌려주려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4대 칼리프인 알리는 결국 암살됐는데, 이로써 정통 칼리프 시대가 종식됐다. 시아파에서는 칼리프가 사라졌으니 신과 인간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이맘(Imam)만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하고 알리를 제1대 이맘으로 추대했다. 이후 시아파에서는 중심 세력 수니파에 대한 정치·종교적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이란과 사우디의 대립을 단순히 종파 차이로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란은 2015 7,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과 핵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했다. 사우디는 이를 격렬히 비난했고 우방인 미국에 대한 실망감마저 감추지 않았다. 이란이 길고 길었던 제재를 벗어나 역내에서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사우디가 입을 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란은 사우디의 2.5배가 넘는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고, 원유뿐 아니라 천연가스, 아연, 구리 등 다양한 자원이 풍부하다. 사우디가 유가 하락을 무릅쓰고 증산을 고집한 까닭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이란과의 원유 패권 다툼에서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양측의 갈등이 무력 충돌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시리아, 예멘 등지에서 정부군과 반군을 내세워 대리전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을 대표하는 두 개의 축이 계속해서 삐걱거리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더욱 활개를 치게 된다. 세계가 힘을 모아 무차별적인 테러리즘을 척결하기에도 바쁜 시점에 벌어진 이란과 사우디의 갈등이 대단히 허무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실 이란에서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성의 경우 외국인이라도 테헤란 이맘호메이니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머리카락을 가리는 스카프를 둘러써야 한다. 살을 드러내는 치마를 입을 수 없으며 윗옷은 반드시 엉덩이를 가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남성도 반바지 착용이 금지된다. 이란은 또 이중환율제를 시행하고 있다. 은행과 일반 환전소의 환율이 약 15% 정도 차이가 난다. 요즈음 정부 환율은 달러당 3만 리알(Rial)인 반면 시장 환율은 35000리알에 달한다. 공항 1층에 있는 은행은 정부 환율을 따르지만 2층에 있는 환전소는 시장 환율을 적용한다. 게다가 극심한 리알화 가치 하락으로 현지인들은 일상에서 0을 하나 뺀토만(Toman)’이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환전소에서 100달러를 건네면 350만 리알을 내주면서 35만 토만을 받으라고 말할 것이다. 자체 디노미네이션과 다름없다.

 

신용카드 역시 사용할 수 없다. 숫자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페르시아식 숫자를 쓴다. 이란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우리에게는 하나하나 도전이고 난관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이란은 아까운 시장이다. 우리 경제인들이 이란 비즈니스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고 시장을 계속 두드려주기를 기원한다.

 

 

 

생각해 볼 문제

 

1이란은 중동의 제조업 강국이다. 국내 제조업 중 이란과 합작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

 

2중동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민 보호 정책을 취하고 있어 자국인과의 분쟁 시 외국인에 대해 불합리할 정도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 소비시장 진출을 위해 우리 기업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DBR mini box

 

 

이란 정세와 리스크 요인

 

‘기회의 땅이면에 자리잡은 불확실성 점검하라

 

 

2016 116일 서방의 경제 제재가 해제되면서 이란은 짧게는 10, 길게는 37년 만에 국제사회로 복귀하게 됐다. 2016년을이란의 해라 부를 정도로 세계의 관심과 이목이 이란에 집중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정상외교를 통한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 시장이 국내 기업들에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만큼이나 이란 진출에 대한 불확실성과 우려감도 존재한다. 가장 주된 요인은 향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에 따른 국제정치적인 변수다. 이란은 한때중동의 헌병’ ‘페르시아만의 경찰이라 불리면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었다. 하지만 이란은 오늘날 대표적인 반미국가로 1979년 이슬람혁명과 114일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를 통해 미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돼 있다. 미국은 이란을깡패 국가’ ‘악의 축’ ‘이슬람 파시즘이라고 부르고 있고 이란도 미국을거대한 사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이란 핵협상 타결 배경을 분석하는 것은 미국과 이란의 관계를 전망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란 핵협상 타결의 주된 요인은 핵 대신 빵을 선택했다는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한 효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란이 서방의 경제 제재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지만 체제 붕괴의 가능성까지 제기되지는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경제 제재 때문에 핵협상이 타결됐다고 단순화시키는 시각은 많은 문제점과 한계점이 있다. 제재는 붕괴를 위한 제재라기보다는 유리한 협상을 위한 제재라고 볼 수도 있다. 오히려 이란 핵협상 타결의 근본 요인은 미국과 이란의 정책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외교 정책 변화

사실, 미국의 대이란 유화정책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세계전략 및 중동 정세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2011년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미국 주도의 역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발표했다. 이란은 경제 제재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밀접해졌고 2009년부터 중국은 이란의 최대 교역국이 됐다. 또한 이란은 에너지 자원 대부분을 중국에 수출하면서 이란과 중국의 에너지 협력관계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 중국의 긴밀한 관계를 견제해야 하고 더 나아가 중동에서 중국의 부상을 저지해야 했다.

 

 

특히 2011아랍의 봄 2001 9·11 사태가 발생한 지 거의 10년 만에 나타난 역사적인 사건으로 미국 중동 정책의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2011 519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무부 청사에서 한 연설에서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 경계에 근거해서 출발해야 한다고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 정부의 기존 입장과 커다란 차이점을 보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의 주장에 대해서 이스라엘과 협상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이 선언은 9·11 테러 이후 패러다임의 전환과 미국 중동 정책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아랍의 봄은 반미 국가(리비아, 알제리, 시리아)뿐만 아니라 친미 국가(튀니지, 이집트, 바레인, 예멘)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의 주요 협력파트너인 무바라크 이집트 정권의 붕괴는 미국 중동 정책의 전면적인 수정을 의미하며 친미 아랍 국가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에 따라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적 구도를 초월한 실용주의 노선이 부각되면서 새로운 탈이데올로기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아랍의 봄 이후 정권교체와 내전이 지속되면서 중동 내 세력균형이 흔들리고 있고 권력공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중동정책은 적극 개입에서 중재로 바뀌면서 중동의 세력균형과 견제 정책이 구체화됐다. 이에 대한 새로운 방안으로 이란과의 관계개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미국의 대이란 유화정책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란의 변화는 2005년부터 시작됐다. 이란 외교 정책의 기조는 이슬람주의와 반미주의를 두 축으로 한다. 1953년 친미 쿠데타는 이란 국민들에게 반미 감정의 뿌리가 됐고 향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 또한 반미주의는 이란의 다양한 사회적 갈등요인을 통합시키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2005년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 의해 승인된 중장기 목표인비전 2025’는 기존 정책과 입장을 수정해 서방세계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이란은 세계화 체제를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소프트 외교를 통해 국제사회와의 관계 회복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 관계의 기본 준칙을 존중하며 상호 신뢰와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자 한다. 또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핵무기 생산과 보유 및 사용이 이슬람에 반하는 금기 사항이라고 강조하면서 핵무기가 이슬람의 가르침에 반한다는 파트와(fatwa, 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렸다.

 

 

이란 국내 정세의 변화

이란의 국내 정치는 2013 64일 제11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하산 로하니의 당선을 통해 크게 바뀌었다. 하산 로하니 당선의 가장 주된 요인은 중도파와 개혁파의 연대를 통한 후보 단일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보수파 진영은 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주도권을 빼앗겼다. 또 다른 요인은 현 강경파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고 볼 수 있다. 아흐마디네자드 정부는 서방에 대한 강경책 일변도로 나가면서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이란경제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따라 실업난과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됐다. 마지막으로 하산 로하니는 후보 가운데 유일한 성직자다.

 

그의 신분은 일부 보수층까지 끌어안으면서 다양한 지지 세력을 결합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선거는 8년 만에 보수강경파에서 중도개혁파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하산 로하니는 당선 직후 극단주의에 대한 온건파의 승리라고 선거결과를 평가했고 곧이어 대서방 유화정책을 발표하며 사실상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산 로하니의 당선은 이란 개혁운동의 본격화를 의미한다. 이란의 개혁운동은 1997 6월 제7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개혁파 모함마드 하타미의 당선을 통해 시작됐다. 이 운동은 2009 6월 제10대 이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녹색운동으로 이어졌고 2013 6월 제11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하산 로하니의 당선으로 나타났다.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이란의 자주성을 존중하는 모든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문명 간 대화를 제기했고 대내적으로는 자유와 인권이 구현되는이슬람 시민사회의 부활을 주장했다. 이란의 녹색운동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였고 부정선거 규탄 시위 운동에서 시작했지만 자유롭고 개방적인 이슬람공화국 체제를 수립하는 저항운동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이슬람주의와는 달리 포스트 이슬람주의가 등장했다. 이슬람주의란 이슬람의 교리를 현실세계에 구현하고자 이슬람법에 따라 이슬람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정치운동과 그 이데올로기로 종교와 사회적 책임을 결합시킨다. 반면에 포스트 이슬람주의는 종교와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 내에서 보다 더 자유롭고, 보다 더 개방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새로운 이슬람 정치실험을 의미한다.

 

 

실제 지난 226일 실시된 이란 국회의원 선거와 전문가회의 선거에서 중도파와 개혁파의 연대인희망의 명단 290석 중 143석을 획득해 다수의석을 차지하면서 하산 로하니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이 힘을 받게 됐다. 이란에서 중도파와 개혁파가 보수파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것은 2004년 이후 12년 만이다. 88명을 선출하는 전문가회의 선거에서도 중도파와 개혁파가 50여 석을 차지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Qom)i 을 기반으로 한 전문가회의는 국민들이 선출하는 고위성직자로 구성된 기구로 이란의 최고지도자를 선출하고 해임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고 임기는 8년이다. 전문가회의는 헌법 107조에 따라 최고지도자를 선출하고 헌법 111조에 따라 최고지도자를 해임할 수 있다.

 

 

현존하는 리스크들

이런 정치·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이란 비즈니스에는 국제 정세 리스크가 존재한다. 2015 714일 타결된 최종 합의안에는이란이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65일 이내에 경제 제재가 부활하고 10년간 준수할 경우 모든 조항은 무효화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내년 미국 대선 결과와 향후 이란의 국내 정치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 등 국제 정세의 동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요구되고 사전에 위험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란과의 계약 체결 시에는국제사회의 제재가 복원되면 배상금 없이 계약이 자동 해지된다라는 문구를 포함시키는 방안 등이 가능할 듯하다.

 

 

또 이란은 세계무역기구(WTO) 미가입국으로 향후 관세율, 수입, 통관제도 등 통상환경에 따른 불안 요인이 존재한다. 또한 이란의 법, 제도 및 상 관행에 대해서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란에서는 영문판 법규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외국인 투자를 보호할 수 있는 투자법이 미비하다. 이란은 1956이란의 외국인 투자 촉진 및 보호법을 제정했으나 2002년 개정 이후 현재까지 변화가 없다.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율은 49%까지 허용되나 특별 승인 아래 100%까지 인정하고 One-stop service를 위한외국인투자서비스센터가 설립돼 있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이란어과 교수 dsyu@hufs.ac.kr

 

 

 

 

 

김욱진KOTRA 테헤란 무역관 과장 kimwookjin@kotra.or.kr

김욱진 과장은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부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이란 테헤란 무역관에서 근무하고있다. 부임 후 꾸준히 현지화를 시도해 현재 이란말인 페르시아어를 구사한다. 2015년부터 이란 핵협상 관련 일간지 기고를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석간 내일신문에 월 2회 중동 관련 경제시평을 싣고있다. 오는 9월에는 테헤란 국제관계대학교에서 현대이란학 석사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이란 경제/비즈니스/문화에 관한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장재웅기자 jwoong04@donga.com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