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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산업 대응전략

펀딩도, 시장도, 콘텐츠도 중국 눈높이 말고 글로벌 눈높이에 맞추라

김태훈 | 201호 (2016년 5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중국 자본의 해외 투자는 주변과의 관계와 조화를 고려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특성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벌이는 대단위의 부동산 개발이 이런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0년대 아시아를 주도했던 대만의 TV 드라마 산업은 중국으로부터 당장 필요한 자본은 유치했지만 중국 시장의 눈높이에 맞추다보니 품질과 제작 역량이 하락해버렸다. 한국의 미디어 콘텐츠 산업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전략이 유효하다.

 

첫째, 한국적인 특성을 유지하되 전통적인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치맥과 같은 현대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글로벌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

둘째, 크라우드펀딩과 같은 새로운 금융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 자본 유치와 선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셋째, 중국만 보지 말고 다양한 시장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라.

넷째, 360도 영상, 가상현실과 같은 신기술에 대한 거부감을 접고, 소비자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라.

 

 

 

필자주

이 아티클의 작성에는 김준범 올리 CEO와 고훈 인크 CEO가 도움을 주셨습니다.

 

콘텐츠 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10∼20%의 수익을 기대하는 실물적이고 이성적인 산업이 아니라 수배에서 수십 배의 수익이 가능한 감성 기반 산업이다. 최근 전국을 뒤흔든 드라마태양의 후예는 방송 시작 전에 이미 중국, 일본, 영국 등 32개국에 판권을 팔며 드라마 제작비 130억 원을 모두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양의 후예가 발생시킬 총 경제 효과가별에서 온 그대의 약 3조 원을 웃돌 것이라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전망도 있다. 이 드라마로 송중기는 이민호, 김수현의 뒤를 잇는 대형 한류 스타 0순위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런데 혹시 이 드라마 제작사인 ‘NEW’의 지분 중 중국화처미디어의 비율이 13.3%(535억 원)1 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화처미디어는화류(華流, Chinese wave)’를 이끄는 중국 주요 엔터테인먼트 그룹 중 하나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8% 증가한 264600만 위안( 23000억 원)에 달했으며 이번태양의 후예덕에 주가가 보름 새 30% 오르기도 했다. 드라마, 영화, 게임 등 종합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가장 가치 있는 그룹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2015년 중국 상장사 평판 시상식에서최고의 경쟁우위를 갖춘 상장사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중국의 한국 콘텐츠 사업 진출은 이뿐만이 아니다. 소녀시대와 엑소 등으로 유명한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 4%를 알리바바가 보유하고 있으며, 씨엔블루와 FT아일랜드, 설현으로 유명해진 AOA가 소속된 FNC엔터테인먼트의 지분 22%도 중국의 쑤닝유니버설미디어가 보유하고 있다.2 드라마프로듀사 ‘K팝스타를 제작한 초록뱀미디어의 최대주주도 중국 기업이고, 배용준, 김수현 등이 소속된 키이스트의 2대 주주도 중국 기업이다.3

 

물론 중국과의 합작투자는 중국에의 진출을 용이하게 만들어 우리 콘텐츠의 판도를 넓힐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실제로 이번태양의 후예의 경우 화처미디어의 영향으로 보다 용이하게 중국 동시 방영이 가능했으며, 드라마의 영향력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기존 한국 드라마들은 한국에서 방영된 후 중국의 사전 검열 및 중국 기업과의 판권 협상 등을 거치느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중국에 방영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사이 불법 온라인 유통망 등을 통해 많은 중국 시청자들이 이미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비쳐지는 영향력과 이슈에 비해 큰 수익을 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더 큰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한국 엔터테인먼트사와 한국 콘텐츠의 독창성과 시장성을 알아본 중국 미디어 기업들의 생각이 맞아떨어지며 중국과의 합작이 시장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은 체제의 특성상 드라마 방영 전 철저한 사전 검열을 거치는데, 이 때문에 한중 동시 방영을 위해서는 100% 사전 제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체 사전 제작을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투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중국 기업에서 대고, 드라마 콘텐츠 제작은 실력 있는 한국 엔터테인먼트사에서 담당하는 형태가 자리잡고 있다. 이영애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드라마신사임당도 중국 거대 기업인 완다그룹 회장의 아들 왕쓰충과 손잡고 100% 사전 제작 중이다. 이렇게 중국과의 합작은 우리 콘텐츠 산업에 큰 기회로 다가오며 창조 경제에 하나의 솔루션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기회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이러한 현상이 위기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또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살펴보자.

 

콘텐츠 산업의 특성

 

콘텐츠 산업은 많은 부분을 인간의 감성에 기댄다. ‘사람 없는 한적한 풀밭에서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엎드려 보는 책 한 권의 만족감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누군가에게는 1만 원 정도지만, 바쁘게 사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10만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 저 순간을 위해 돈을 지불할 마음만 있다면 만족감의 가격은 정하기 나름이다. 이렇게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산업은 표준 가격을 책정하기 어렵고, 때문에 잘만 하면 매우 높은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영화, 드라마, 가요 등이 대표적이다. 2009년 개봉한 영화아바타는 전 세계 27억 달러( 3조 원)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고, 같은 해 개봉한 한국 영화워낭소리 1∼2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3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들이며 투자 대비 수익이 190배에 달했다. 실물 투자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높은 수익률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산업이다보니 많은 콘텐츠 관련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전 세계 10억 명 사용자의 유튜브, 2014년 매출 474000만 달러( 55000억 원)의 넷플릭스, ‘아프리카 TV 의 유재석으로 불리며 광고료 수입만 한 달에 5000만 원에 달한다는 개인방송 BJ ‘대도서관등의 소식이 콘텐츠 산업의 성장을 말해준다.

 

대기업과 큰손 투자자들이 이 시장을 보고만 있을 리 없다. 국경을 넘어 투자와 생산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 주요 콘텐츠 기업 중 하나인 CJ E&M도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투자해킹키부츠(Kinky Boots)’라는 흥행작을 만들어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중국 기업도 중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 콘텐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태양의 후예를 만든 제작사 ‘NEW’를 비롯해 쇼박스, 초록뱀미디어 등 많은 한국 콘텐츠 기업이 중국과의 합작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투자 스타일

 

이렇게 중국 기업으로부터 대규모 자본을 투자받으면 콘텐츠의 퀄러티가 올라가고 종사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 중국으로의 진출이 용이해지는 것은 물론 광고 등 콘텐츠 주변 시장이 활성화되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중국의 투자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필자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중국 투자자들의 개발 스타일을 보며, 또 지인과 언론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중국 투자 스타일을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중국식 개발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먼저, 가격이 오를 것 같은 대지보다는 아직 개발의 영향을 받지 않은 매우 저렴한 대지를 대규모로 사들인다. 예를 들어 100억 원을 투자한다 하면 제곱미터당 1억 원짜리 금싸라기 땅 100제곱미터가 아니라 1만 원짜리 늪지대 땅 100만 제곱미터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중국 본토의 자본력과 생산력을 활용해 저렴한 건축 자재를 중국에서 직접 수입한다. 실제로 마다가스카르에는 광저우에서 많은 컨테이너가 들어온다. 여기에 일용직 일당이 약 4000원에 불과한 현지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해 최대한 낮은 비용으로 넓은 일대를 일괄적으로 개발한다. 대형 상가부터 거주 공간, 사무실 등이 있는 작은 자립형 마을을 만들어버리는데, 이것이 바로차이나타운이 된다. 현재 마다가스카르 수도에도 도심이나 신시가지에서 다소 벗어난 지역에 일종의 차이나타운 개발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전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일대 전체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다. 그 가격이 신시가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애초에 매우 저렴한 값에 땅을 구매했던 터라 상당히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 고급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상업, 문화, 사회 인프라 시설 등이 없는 저렴한맨 땅에서 개발을 시작하기 때문에 저급에서 그나마 갖출 것은 갖춘 중급으로 올라가는 개발이 주가 된다. 최소한의 기능만 구현하게끔 공간이 구성되고, 가장 저렴한 방식으로 시공이 이뤄지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부동산 상황이 전반적으로 열악한 아프리카에서는 외국에서 중급이라 치는 시설도 고급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꽤 높은 가격과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 이러한 수준의 개발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 업체가 새로 지은 좋은 건물에 가보면 어설픈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 경치가 좋은 호수 앞에 고급 주택처럼 개발된 저층 아파트에 방문해보면 거실에만 햇빛이 잘 들어오는 길쭉한 구조에, 심지어 창문이 없는 방도 있다. 건물의 품격을 만드는 외벽에 석재나 금속으로 마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가장 저렴한 원색 페인트나 석재처럼 보이게 만든 저렴한 타일로 마감을 하니 전반적으로 건물의 급이 낮아 보이는 것이 많다. 이렇게 감성적이고 디테일한 부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건물들의 수준과 독창성이 떨어진다.

 

 

 

 

또 하나의 특징이자 문제는 상가/사무실/주택/인프라 등 일대를 전부 개발하다보니 개발의 초점이 주변과의 관계보다는 개발지역 내부와 개발 주체에 맞춰져 독선적 개발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보통 도시에서 부동산을 개발한다고 하면 주변 거주현황, 도로와 주차, 전기 및 상하수도 상황 등을 고려해 도시 안에 녹아 들어가 도시를 더 좋게 만드는 건강한 개발이 장려되는데, 이러한 관계를 통한 상생보다는 자신들의 개발지역이 일대의 중심이 되게끔 하려는 자세가 느껴진다. 일종의 중화사상이 부동산 개발에도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다보니 주변 지역과의 관계와 시너지를 통해 도시 전체를 잘 살게 만들기보다는 개발 지역만 좋아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개발은 하지만 마다가스카르가 좋아진다기보다 중국 개발자에게만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중국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아직 성장 전이거나 이제 막 성장이 시작되려는 낮은 가치의 것을 대규모로 사들여 중국 본토의 풍부한 인력과 생산력을 활용해 이를 개발하고 수익을 내는 투자 방식을 가지고 있다. 개발의 스케일이 크다보니 디테일과 감성을 많이 고려해야 하는 고급보다는 저급을 중급으로 만들어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이 사용된다. 따라서 결과물의 독창성이 높지 않고, 오리지널러티가 있는 고급을 따라 만든 중저급 유사품의 느낌이 있다. 또한 주변과의 관계 설정과 동반 성장보다는 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독단적인 개발의 가능성이 있다.

 

가치 판단은 차치하고 이런 현상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많은 부분이 중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특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땅이 크고 여유가 있다보니 치밀하고 세심한 주변과의 관계보다는 다소 거칠어도 널찍한 스케일로 전체를 생각하는 사고 과정이 두드러진다. 또 역사적으로 국가가 나뉘며 몰락하기를 반복하며 생겨난 강력한 중앙집중형 사상, ‘하나의 중국으로 설명되는 사고 방식이 중국인들의 사고 체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에 1970년대 덩샤오핑이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의미의흑묘백묘(黑猫白猫)’론으로 중국의 경제 개발을 이끌며 정착된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잘 벌면 그것은 옳은 것이라는 사고 방식도 지금의 개발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중국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4000년 역사의 고대문화 발상지 중국 쑤저우(蘇州) 지역에는 천을 따라 형성된 전통적인 수상 가옥이 즐비한, 상대적으로 조밀하게 구성된 도시의 지역이 있다. 이런 곳에서마저도이렇게까지 넓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광장과 도로는 넉넉한 크기를 자랑한다. ‘땅이 크지 않아 대지 사용의 효율성이 매우 중요한 우리나라와는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국은 완전히 반대의 이유로 외국인들을 놀라게 한다. 하버드대학원 건축학도들이 서울을 방문해고밀도 도시라 공간 이용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주유소 위 2층에는 주거 시설과 약식 정원을 조성해놓은 곳을 봤다며, 미국에 돌아가서 ‘1층 주유소, 2층 가정집을 봤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4 실제로 서울에서는 1층 주유소 위에 빌딩이 올라간 곳도 종종 볼 수 있다. 중국의 사고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면이다.

 

복제와 모방에 대한 무감각도 중국의 특성이다. 베이징에는 일본 유명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지안와이소호(Jian Wai SOHO) 주상복합 단지가 있다. 이 단지는 그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중국 개발자 측에서 이 아파트 단지 전체를 건축가와의 상의 없이 복제해 옆에 또 짓는 바람에 더 유명해졌다. 10동이 넘는 고층 아파트 단지 전체를 복제해서 옆에 지어놓은 모습을 보고 그 스케일에 놀라고, 개발 주체에만 초점이 맞춰진 독단적 개발 방식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물론 복제된 아파트 단지는 원 아파트 단지보다 시공 품질이나 디테일이 제법 떨어진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인 야마모토 리켄의 지휘 아래 지어진 원작과 이를 자의적으로 복제해서 철학 없이 형태만 비슷하게 지어놓은 복제와는 수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장인정신을 챙겨야만 달성할 수 있는 고급보다 개발 주체 중심적인 중급 수준을 목표로 하는 개발 성향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게다가 지적재산권이 무시되고, 이러한 행위에흑묘백묘론으로 스스로 당위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독창성이 부족한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한계도 확인된다.

 

중국 투자 스타일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적용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중국의 개발 및 투자방식이 비단 부동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분야를 막론하고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 자체의 인수나 콘텐츠 제작 시 대규모 초기 투자 등에도 아직 가치가 높아지지 않은 상대를 대규모로 사들이는 방식이 나타난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보유한 콘텐츠의 잠재성에 비해 가치가 저평가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태양의 후예가 물론 콘텐츠 자체도 훌륭했지만 중국과의 동시 방영 시너지로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 중 최고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이는 등 현재 전반적으로 국내에 한정된 콘텐츠들의 가치 자체는 낮게 평가됐다고 볼 수 있다.

 

주변과의 관계보다 개발 주체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의 문제점은 중국의 진출 이후 몰락을 길을 걸은 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볼 수 있다. ‘작두를 대령하라!’고 죄인을 심판하던 판관 포청천을 기억하는지. 1995 KBS에서 방영돼 40% 이상의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했던판관포청천꽃보다 남자등과 함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 드라마 트렌드를 이끈 대만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다. 하지만 대만이 1999년 케이블 방송 100여 개를 허용하면서 극심한 경쟁이 시작됐고 중국의 자본이 침투됐다. PD와 작가, 배우 등의 인재와 판권이 중국으로 넘어갔으며, 이렇게 중국 자본이 들어간 작품은 중국 시장을 점점 더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대만의 특색이나 개성이 점점 사라졌고 중국의 하청업체화돼 갔다.5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렇다 할 대만 콘텐츠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이 때문이다.이는 장기적으로 중국 시장에도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좋은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생산돼야 시장이 활성화되는데 대만의 콘텐츠 자생력이 사라지며 좋은 콘텐츠를 얻을 수 있었던 소스가 하나 없어졌기 때문이다. 만일 중국 자본이 주변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사고를 했다면 대만 업체들이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콘텐츠에 대한 독자성을 인정하고 이를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효과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해 더 노력을 기울였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개발 주체중심적으로 소유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좋은 콘텐츠의 생산 가능성이 줄어버렸다.

 

결국 중국은 아직 자체 생산되는 콘텐츠의 품질이 만족스럽게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고급 콘텐츠 공급처를 찾아 나서게 됐다. 바로 한국이다. 일단 인기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한국 엔터테인먼트사의 작품, 기술, 배우, PD, 스태프 등의 역량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연구하고 배우기보다는 통째로 취하는 중국의 개발 방식을 고려해볼 때, 장기적으로 한국 콘텐츠와 역량을 중국의 소유로 만들려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좋은 기업 운영을 위해 자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 진출을 위해 외자 투자를 받는 것은 기업으로서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단 한국과는 다른 중국의 투자 스타일을 고려해 발생 가능한 위험에 대비하고 한국의 장점은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에서 여러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다. 이 분야에서 빠른 시간 내 큰 성장을 했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를 열광시킨 드라마와 K-Pop, 버라이어티쇼를 만들어냈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은()이성적으로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감성 산업이고, 한국과 비슷한 미의 기준과 문화를 가진 주변 시장이 20억 명에 달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가능하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시장이다. 그래서 중국 자본의 유입에 촉각을 세워야 하고 중국의 투자 스타일을 잘 이해해 전반적인 잠식에 대한 대비와 경계를 해야 한다.

 

한국 경영자의 전략

 

1. 익숙함과 생소함을 조합하라

중국은 중국의 스타일이 있고 한국은 한국의 스타일이 있다. 한국이 중저급 제조업에서 중국을 앞서기란 쉽지 않다. 제조업에 필요한 많은 조건들에서 중국이 한국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은 역량과 문화 면에서 한국이 시장을 리드할 수 있다. 좋은 콘텐츠는 수많은 플랫폼과 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에 알려진다. ‘좋은 것이 잘되는상식적인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고급 콘텐츠가 핵심이다. 문화적 자신감과 컨트롤타워의 이미지를 가지고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필드에 접근해야 한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전근대와 근대 문화가 단절돼 문화의 혼란 시기를 겪었다. 서구의 현대 문물을 받아들이며 기존 한국 문화는 가난처럼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1964년 마포아파트 완공식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설 내용(‘우리나라 구래의 생활양식에서 탈피하여 현대적인 집단 공동 생활양식을 취함으로써국민 생활과 문화의 향상을 이룩한 것6 )이 이를 상징한다. 그러면서도 잃어버린 한국의 문화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행보도 같이 이어졌다. 건축에서도 한옥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표현하려는 노력이 대표적으로 세종문화회관, 프랑스대사관, 수졸당 등에 나타났다. 이렇게 한국은 맥이 끊어질 뻔한 전통 문화와 서구 문화 사이의 갈등과 경쟁을 통해 현대 문화를 만들어왔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현상이 현재 한국의 콘텐츠를 외국에서 부담 없이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외국 콘텐츠가 자국 문화와 너무 다르거나 비슷하면 큰 흥미를 끌지 못한다. 익숙한 문화 코드를 공유하면서도 예상치 못했던 외국의 생경한 문화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별에서 온 그대는 드라마 자체도 유명하지만 치킨과 맥주를 의미하는치맥을 먹는 장면으로 더 유명해졌다. 전지현의 치맥 대사 이후 상하이에서 한국식 닭튀김을 먹으려면 3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치맥이 조류독감으로 타격 받은 중국의 가금류 식품업계를 살려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중국에서 치맥은 순식간에 한국의 독창적인 음식 문화로 알려졌다. 하지만 치킨과 맥주가 원래 한국의 문화는 아니다. 하지만 치킨은 한국에서 유독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이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맛과 형태의 치킨 메뉴들이 존재한다. 이 한국의 치맥 문화에 가장 타격을 받은 곳이 바로 글로벌 기업 KFC. KFC 2012 736억 원에 이르던 순이익이 2014 49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달달하고 짭짤한, 매콤하고 새콤한 다양한 메뉴의 치킨과 시원한 맥주가 만드는 조합이 한국만의 독창적인 문화로 정착되면서 미국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인 KFC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 현상에서 배울 것이 많다. 한국의 식문화 콘텐츠라고 하면 보통 비빔밥, 김치, 삼계탕 등의 전통 한국음식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전통 음식은 외국인에게는 일 년에 한 번 먹기는 괜찮은 정도다. 그들이 문화 코드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생소하다. 그렇다고 외국인 입맛에 맞춰 변형되면 더 이상 한국 음식이라 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오히려 현대 한국에 등장해 자리잡아가는 독창적인 식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 경쟁력이 있다. 치맥은 치킨과 맥주라는 전 세계인이 즐겨 하는 식품을 조합한 것이라 외국에서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한국 전통 음식에 집착하지 않아 국제적으로 통하면서도, 한국에서만 흥미롭게 나타나는 문화 현상의 스토리까지 더하면 익숙함과 생소함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만의 유행인 1111일 빼빼로데이나 33일 삼겹살데이 등도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 우정과 사랑의 수단으로 빼빼로데이가 활용되거나, 중국의 황사 시즌에 삼겹살이 먼지를 씻어낸다는 스토리가 확산될 수 있다. 한국은 비극의 근대사를 겪으며 근 50∼60년간 전통 문화와 글로벌 문화가 경쟁하고, 또 협력하는 갈등을 겪었다. 이 유니크한 역사가 오히려 국제적으로 통하는 한국의 문화를 만들어주는 역설적인 선물임을 잘 캐치하고 활용해야 한다.

 

 

2. 크라우드펀딩을 도입하라

이상은 높게 세울 수 있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쪽대본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중국 외자 유치 외에 이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크라우드펀딩 등 선진 금융기법에 눈을 돌리는 것이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많은 사람이 각각 적은 돈을 투자해서 목돈을 만드는 투자 방식이다. 예를 들어 10억 원이 필요하면 1000명의 사람들에게 100만 원씩 투자 받는 방식이다. 세계적인 흐름을 볼 때 앞으로 이런 개인 소액 투자가 활성화될 것은 명백하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크라우드펀딩의 도입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예상되는 장점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투자자가 곧 소비자가 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드라마의 경우 개인투자자가 바로 시청자가 되며 입소문의 거점이 될 수 있다. 또 콘텐츠 퀄러티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사전 제작 시스템이 구축되면 콘텐츠 퀄러티 상승과 함께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 스토리 진행이 가능해진다.

 

물론 크라우드펀딩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를 한 개인들이 작품에 실망할 경우 훨씬 더 큰 부정적 파급효과를 경험할 수도 있다. TV 드라마의 수익 구조는관객 수 = 수입이란 공식이 성립되는 영화와 달리 간단하게 계산되지 않기 때문에 자본 운영 투명성 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또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가 가지는 리스크가 높다는 점도 크라우드펀딩 활성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

 

3. 중국 시장이 전부가 아님을 생각하라

중국은 매우 큰 시장이다. 하지만 중국만 생각하기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국의 방송시장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국토가 워낙 넓고 인구가 많다보니 중국 전역을 커버하는 방송국은 CCTV 하나이고 총 300개의 방송국과 2200개 이상의 TV 채널이 존재한다. 중국의 시청률은 한국의 10분의 1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기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1%대이고, 2%를 넘기면 최고 인기작으로 인정받는다. 국가에 의한 통제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2015 4월부터 공식적으로 시행된 중국의 외국 작품 쿼터제로 한국 드라마의 동영상 전송권이 2014년 최고 30만 달러에서 2만 달러선으로 폭락했다. ‘태양의 후예도 제작비를 충분히 웃도는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는 있지만 중국 시장에서의 실질적인 대박이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하며 실속은 중국이 가져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7 , 중국은 거대하고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불안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한국 콘텐츠 제작사들이 중국이라는 하나의 바구니 안에 모든 역량과 관심을 담을 필요는 없다.

 

 

 

‘태양의 후예판권은 중국 동영상 업체 아이치이에 선판매로 약 48억 원에 팔렸다. 반한 감정 등 악재가 있는 일본에서도 약 20억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이 외에 영국, 호주,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의 국가에도 판권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8 한국 사극대장금은 이란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았으며 2006년 이란 국영TV, IRIB를 통해 방영되며 시청률 90%라는 믿지 못할 결과를 남겼다. 이후 중동의 여러 국가에 방영되며 그 인기를 더했다. TV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과 출연자 이광수는 동남아에서 유독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시장의 규모 차이는 있겠지만 각각의 특성을 가진 한국 콘텐츠가 각 문화권에서 독창적인 재미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기업과 합작해 중국으로 진출할 수도 있고, 동남아 시장의 투자를 유치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국가의 규제가 덜한 중국 이외의 국가에 더 좋은 조건으로 판권을 판매하거나 할리우드 영화 배급사들처럼 한국 기업이 유통을 담당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4. 새로운 기술과의 융합을 즐겨라

감성적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에서 간과하기 쉬운 첨단 기술과의 융합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유튜브에서는 360도로 화면을 돌려가며 볼 수 있는 영상들이 등장하고 있다. 가상현실을 위한 모바일 VR(virtual reality) 기기들도 상용화 단계다.

 

360도 카메라는 수십 개의 렌즈를 통해 동시에 모든 방향의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기술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면 마치 본인이 그 위치에 서 있는 것처럼 화면을 돌려가며 주변을 전부 볼 수 있다. VR은 가상현실을 의미하며 양쪽 눈에 서로 다른 각도의 영상을 투사하여 입체감을 만드는 기술이다. 전자 안경을 스마트폰에 연결해 얼굴에 쓰기만 하면 입체감 있는 가상현실을 느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만약 드라마에서 시청자가 특정 인물의 시선에서 주변을 360도로 둘러볼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또 모바일 VR 영상을 염두에 두고 처음부터 입체감을 극대화한 드라마나 뮤직비디오를 만든다면? 시청자들은 그 새로움과 신선함에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콘텐츠의 내용적인 재미와 구성은 그것대로 발전시키면서 신기술로만 가능한 새로운 매력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면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수준으로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룰 수 있다.

 

‘태양의 후예제작사의 지분을 13% 가지고 있는 중국 화처미디어는 혁신기술 수용에 적극적이다. 중국 드라마, 영화 업계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한커둔미디어 2013년에 인수하면서 빅데이터 사업과의 연계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올해 3월에는 VR 기술 업체 ‘LETIN VR’의 지분을 7%까지 늘리면서 VR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할 방침이다.9

 

감성과 이성의 시너지가 만드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

 

이성적인 분야일수록 감성을 홀대하기 쉽고, 감성적인 분야일수록 이성적인 접근을 꺼린다. 하지만 그 둘이 갈등이 아니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으로 결합한다면 어느 누구도 따라잡기 어려운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에 유리한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연기자, 작가, 스태프, 디자이너, 의상, 메이크업 등 모두가 뛰어난 실력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 고부가가치 산업을 이뤄왔다. 여기에 크라우드펀딩 등 선진 금융기술과 VR, 360도 영상 같은 IT, 그리고 세계 시장과 문화에 대한 체계적 데이터 분석이 더해진다면 우수한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

 

중국의 거대 자본에 의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이 잠식될 위기라는 의견도 있지만 지나친 경계보다는 중국 투자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이 중국 시장을 잘 활용해 더 큰 시너지를 만들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해볼 문제

 

1 익숙함과 생소함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추진하는 새로운 사업에 포함돼야 할

익숙함 요소와 생소함의 요소는 무엇인가?

 

2 크라우드펀딩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기 위한 사업적 요건은 무엇인가? 나의 업계에도 이미 적용한 사례가 있는가?

 

3 VR, 360도 영상을 사용한 제품, 서비스, 혹은 마케팅 캠페인을 나의 사업모델에 적용할 수 있는가?

 

 

김태훈 NUVO대표 typhoonk83@gmail.com

 

필자는 서울대 건축학과 학·석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기업 창의 컨설팅 회사 크리베이트에 재직했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고 있으며 IT 회사의 전략 기획 및 저술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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