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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준오헤어의 HR전략

“우리는 People Business를 하는 사람들”, 숱한 화제 뿌리며 미용실 神話 창조

김현진 | 197호 (2016년 3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직무 만족도와 자부심이 낮고 이직률이 높은 업종에서 직원들의 충성심을 높이기 위한 동기부여책은 지금이나 앞으로 모두 잘살 수 있게 해준다는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준오헤어는 설립 초기부터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이 고소득을 거둘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위해 선진 교육을 실시하고 고객과의 소통을 돕기 위한 독서경영을 도입했다. 준오헤어가 생각하는 업의 본질은 ‘People Business’. 기업의 비전이 조직원의 꿈과 희망을 달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한 것이다. 또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강남권에서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준오헤어는 대형플래그십 전략을 썼다. ‘강북의 캐주얼 브랜드로 고객에게 인식된 미용실이 그 덕에 강남의 대표 미용실로 재포지셔닝할 수 있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한성희(한양대 경영학부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15,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는 미용업체 준오헤어가 주최한 2016년 시무식이 열렸다. 올해로 27년째를 맞이하는 이 연례행사에는 전국의 준오헤어 109개 점포에서 몰려든 2200여 명의준오맨’, 협력업체 임직원 200여 명과 함께 중국 광둥성, 저장성, 탕산시 등에서 방문한 미용업계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직원들이 해군복을 맞춰 입고 함께 군무(群舞)를 추는 해군 퍼포먼스며 응원전 등 쇼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여느 대기업 행사 못지않게 비장한 분위기의 비전 선포식이었다.

 

2015 10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지상 8층 규모의 준오아카데미를 확대 오픈하며아시아 미용 교육의 허브로 거듭난다는 비전을 발표한 강윤선 준오헤어 대표(56)는 이날 시무식에서도 특유의 당찬 목소리로 ‘500년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장기 비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준오헤어가 최근 미용 업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브랜드로 떠오른 이유가 바로 이준오아카데미때문이다.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최대 규모 미용인 교육기관인 이곳에는동네 미용실 원장이었던 시절부터 먼 미래를 바라봤던 강 대표의 비전이 응축돼 있다. 그는 이 아카데미 곳곳에넘어지는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지만 일어나지 않는 것은 너의 잘못이다” “항상 목표를 생각하라. 겨누지 않고 쏜 화살은 빗나간다등 자신의 좌우명을 새겨 넣었다.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이 자신만큼이나 독하게, 그리고 강한 마음으로 미래를 꿈꾸게 하기 위해서다.

 

부침이 많고 단기 실적을 내기에 급급한 미용 업계에서 ‘500년 기업을 이야기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는 강 대표가 업계 평균(40∼50%) 대비 현격히 낮은 이직률(10∼15%)과 직원들 특유의 로열티 등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자신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처럼 특히 HR과 브랜드 관리 측면에서 선구자적인 행보로준오맨 정신을 업계 곳곳에 알리고 있는 준오헤어의 성공비결을 DBR이 분석했다.

 

자부심을 충성심으로

 

강 대표는 극빈층 가정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학업을 계속하기보다는 돈을 벌어야 효도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는 아버지에 여봐란듯이 중학교 때부터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고 전수학교에 등록해 야간에는 학교를 다니고 낮에는 일을 했다. 세 살 무렵 입은 전신 화상으로 18차례나 수술하는 등 죽을 고비를 넘겼고 화상 흉터로 인한 남들의 시선이 고통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그런 역경을 극복하며 단단해진 내공과 그 과정에서 얻은 성찰은 그가 국내 굴지의 미용업체를 이끄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회사생활을 시작한 것은 사업가 DNA를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됐다. 첫 직장이던중앙전기라는 정보통신 회사는영어로 이름과 주소 쓰기를 입사 시험으로 냈고 이 문제에 잘 대비했던 덕에 공장라인 대신 사무직에 투입됐다.

 

거래처로부터 주문을 받고, 재고를 정리하는 등 회계 업무를 했고 아버지뻘 나이 되는 인생 선배들로부터 인생에 보탬이 되는멘토링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차곡차곡 사업가로서의 기본을 다졌다. 1979, 야간 여상인 무궁화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약 133( 40) 남짓 되는 미용실고추잠자리를 열면서 강 대표의 미용인생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같은 길을 걷는 남편을 만났고, 1982년 드디어 서울 성신여대 앞에 준오미용실을 열고 처음으로 직원을 뽑으면서부터도 그는구멍가게식으로 운영하기는 싫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에게 출퇴근 시간등 자기관리를 강조했고 회의와 교육을 정례화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도 아닌 동네 미용실에서 이처럼 체계를 갖추려 애쓴 것은 궁극적으로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최근에는 미용업이 유망 서비스 직종으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영입되는 편이지만 당시에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이 생업을 위해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일터가 그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곳이 아닌 자부심이 넘치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랐다. 점포가 네 곳으로 늘고 그 만큼 책임이 커지자 강 대표는인재 관리의 필요성도 깨닫게 됐다.

 

인센티브제로 보수가 지급되고 미용사 각 개인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미용 업계 관행상 이 업계 직원들은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이 있다면 미련 없이 자리를 옮기려 했다. 강 대표는떠나겠다는 직원을 잡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지만 금전적 욕구 때문에 움직이려는 사람은 막기 어렵더라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직원들이 잘살 수 있게 하는 것, 또 자긍심 넘치는 일터를 만들어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면 돈만 쫓아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때 강 대표가 떠올린 단어가이었다. 직원들에게 10년 뒤 이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이 조직에 속한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일지 비전과 꿈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회사나 각 개인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봤다.

 

다행히 장사가 잘됐고 ‘10년 장기근속하면 해외여행을 보내주겠다는 것과 같은 약속도 지킬 수 있었다. 요즘은 장기 근속자가 늘어나 해외여행 자격이 주어지는 직원 수가 매년 40명을 넘어설 정도다. 하지만 여행 때문에 장기근속을 하지는 않았을 터. 직원들이 반겼던 궁극적인 인센티브는 바로 교육이었다.

 

 

교육으로 꿈을 심어

 

창업 초기부터 커트, 파마 등 각 분야별로 국내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초빙해 직원들을 가르쳤지만 뭔가 체계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직원들의 손끝에서 나오는 결과물도복불복이었다. 국내에선 배울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해 1993, 서울 돈암동 집을 팔았고 15000만 원의 현금을 손에 쥔 채 직원 16명과 함께 두 달간 영국의 비달사순아카데미로 연수를 떠났다. 17세 때 미용 일을 시작해 20년 가까이 모은 전 재산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 정도의 베팅이 없으면 차별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오직 직원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미용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는배우는 건 때가 있는 거고 돈 욕심보다는 사람 욕심이 강한 터라 결단을 내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의 효과는 컸다. 이미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직원들은 교육 내용을 스펀지처럼 흡수했고 쉬는 날이면 유럽 곳곳을 둘러보며 디자인적 감각을 키웠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자 다시 출발점이었다. 서울 성북동 산동네에 1400만 원짜리 전세를 얻어 어린 자녀들은 물론 미용실 직원 대여섯 명과 함께 살면서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연습했다.

 

그 후 그는 체계적으로 미용 인력을 훈련시키는 데 주력했다. 업계 최초로 1992, 헤어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빠듯한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만 현장에 투입시켰다.

 

처음 입사를 하면 26개월간 준오아카데미에서 5단계 과정의 교육을 받는다. 마지막 1년은 커트, 컬러, 파마 등을 조합한 100가지 스타일을 실제 모델을 상대로 시연해보고 합격점을 받아야 디자이너로 데뷔할 수 있다. 1600시간의 교육시간을 거쳐 배출되는 디자이너는 1년에 150∼200명 정도다.

 

강 대표는인재는 영입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여러 경험을 통해 하게 됐다우리가 직접 양성한 인재는 모셔온 인재에 비해 충성도가 높고, 외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의 힘은 곳곳에서 결실을 맺었다. 준오헤어는 글로벌 헤어그룹웰라가 뽑은세계 10대 헤어 브랜드에 선정(2005)되고, 웰라 주최인터내셔널 트렌드비전 어워드에서 7년 이상 한국 대표로 출전해 53개국 대표 중

1(2007)을 차지하는 등 적잖은 성과를 냈다.

 

또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2016 1월 발표한 헤어프랜차이즈 브랜드 평판 빅데이더 조사결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교육적 비전을 담아 지난해 10, 확대 오픈한 준오아카데미는 동시에 500명이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 정도 규모의 헤어 교육기관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아시아의 헤어 트렌드를 선도하는 한국에헤어 허브를 조성하겠다는 포부로 만든 건물로 이미 중국의 파트너사 등을 통해 위탁 교육 의뢰가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중국 등 해외에 나가 미용 관련 교육을 수행할 강사 양성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그의 경영학적 비전을 총체적으로 녹인 이 공간을 설계하기에 앞서 그는 특히 “500년이 지나 누가 운영을 맡게 되더라도 여전히 트렌드의 첨병처럼 느껴질 단단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건축가에게 당부했다.

 

강 대표는 이 건물 주변에 교육 공간을 더욱 늘려 궁극적으로 강의실이 곳곳에 자리 잡은 빌리지형 대학 캠퍼스처럼 꾸미는 것이 목표다. 강 대표는서비스업, 특히 기계의 힘으로 대체하기 힘든 미용업은 문명의 발달로 많은 직업이 기계로 대체되는 미래에도 직업의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 유망 직종이라며특히 발달된 뷰티 문화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진행하는 미용 교육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전국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준오헤어가 역시전국구로 통하는 다른 대형 헤어 프랜차이즈들과 다른 점은 109곳에 달하는 지점 전체가 직영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이다. 준오헤어는 일반 개인이 투자해 운영할 수 있는 가맹점 또는 체인점 모집을 전혀 하지 않는다. 모든 지점 내 직원채용 및 배치 역시 본사가 직접한다. 즉 준오헤어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시스템과 정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미용 업계에서 100여 곳이 넘는 점포 수를 유지하며 직영 체제를 갖춘 헤어숍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렵다.

 

강 대표는직원 수로 치면 700명이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직영 체제를 유지하는 게 버거웠고, 1500명을 넘어서니 새로운 운영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했다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직원들이 좀 더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완벽한 브랜드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프랜차이즈 도입은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영 체제의 장점은 브랜드를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루이뷔통, 샤넬 등 대형 럭셔리 브랜드들이 전 세계 매장을 직접 관리하며중앙집권적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도 브랜드와 관련한 원칙을 위해하지 않고 전 세계 매장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전국의 어느 준오헤어 매장을 가도 본사가 인정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스태프가 상주하고 있는데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철저히 보장한다는 것이 미용실을 직영화할 때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브랜드 인지도에 따른 소비자를 확보하기 유리하다는 등 초기 창업자들의 진입 장벽이 낮은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반대로 서비스의 질을 본사가 철저히 관리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강 대표는손님들이준오헤어에 오면 안심이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헤어스타일이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보니 고객들이 느끼는 심리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직영 체제의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각 매장의 원장은 준오헤어 경력만 10년 차 이상이면서 후배의 역량을 살려줄 희생정신과 리더십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선발했다. 본사와 각각 투자와 수익을 50 50으로 나누는 준오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개발해 오너십을 부여한다. , 각 지점의 원장들은 직영 사업의 구조하에서 각기 차별화된 역량으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 최종적으로 뽑힌 원장들은 모두 창업주에 필적하는 열정과 긍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준오헤어 직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강 대표는 조직이 커지면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2004년 대기업 출신 임원을 영입했다. 그는처음 영입될 당시 강 대표가 가장 먼저 당부한 한마디가 “‘우리 직원들, 부자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사심을 버리고 본인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는 모습을 보고 직원들이 그들의을 걸 만큼의 충성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매년 대관료만 수천만 원씩을 들여 시무식을 여는 것도 직원들의 사기 진작과 자부심 함양을 위해서다. 전국 매장에 흩어져 일하다보니 서로 살을 부대낄 경험이 많지 않았던 직원들이 끼와 열정으로 가득한 동료 직원들의 무대와 발언을 접하며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다.

 

 

브랜드 가치

 

당시로선 전국 40여 개 지점에 불과했던 준오헤어에 대기업 임원 출신인 그가 전격 합류하기로 한 이유는 이 조직원들만의 특별한 성공의지와 충성심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강 대표의 요청으로 준오헤어 원장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특별한 경험을 한 뒤 운명적으로 이 회사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듣는 원장들의 눈빛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흡입력과 간절함을 읽었다는 것이다. 이를 인연으로 8개월간 무보수로 준오헤어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관련된 컨설팅을 진행했다.

 

강 대표가 가진 창업자의 비전을 경영 툴에 맞춰 구조화해주고 가시화하면서 전 직원들과 효과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준오헤어가 당시 갖고 있던 핵심 역량(core competency)을 찾기 위해 그는 주요 임직원들을 인터뷰했다. 미용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들은 사람과 기술, 서비스를 꼽았다. 그러나준오헤어만이 가진 차별화 전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부분 대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이 조직을 들여다보면 알게 되는그 가치 ‘Man with unimaginable loyalty(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규정됐다. 실제로 직원들의 충성심은 도표화된 행동 수칙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밸류 체인을 만들 때 최종 도달지점은 ‘Custo-mer focus(고객 지향)’로 선정했다. 대부분의 서비스 업체들이 ‘Customer satisfaction(고객 만족)’을 밸류 체인의 최종 목표로 설정하지만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실현가능하지 않은 목표를 놓고 직원들로 하여금 고민하게 하는 대신 고객의 관점에서 이들의 마음을 읽고 각 상황이나 개인적 성향에 맞춰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전략을 취하도록 했다. 이것이고객 지향으로 표현됐다.

 

이런 고민하에서 매년 10년 뒤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비전, 미션, 전략이 설정된 상태에서 10년 뒤 미래를 고민하다보면 10년 전인 현재 해야 할 일이 보인다. 이번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밝힌 10년 뒤 준오헤어의 모습은아시아 미용의 허브가 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준오헤어의 경영진은 주요 아시아 시장을 투어하고 관계자를 만나는 등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중국 출장을 다녀온 임원진은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아닌 둥관()을 둘러보고 왔다. 남들도 잘 아는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이미 경쟁이 치열한레드오션이기에 이제 막 태동하는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4, 준오헤어는 하얼빈에 매장을 열 예정이다. 아직은 중국 시장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해외 진출만큼은 직영이 아닌 중국 업체와의 파트너십 형태를 택했다. 인구 1100만 명의 대도시인 하얼빈에선 이제 막 소비 시장이 본격 확대되고 있다.

 

국내 일부 헤어 프랜차이즈에 비해 준오헤어는 해외 진출과 관련해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15년 전, 한국인 사업가가 준오헤어라는 이름으로 중국 내에서 상호를 등록하고 매장을 여는 바람에간판을 뺏긴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허술한 현지 상표권 등록 시스템 탓에 어디에 호소할 틈도 없이 권리를 뺏긴 것도 억울한데 해당 매장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 브랜드 이미지에 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준오헤어를 운영하면서 겪은 시행착오 중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될 일이었고 그만큼 상처도 컸지만 그대로 넋 놓고 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외 매장은애브뉴준오라는 준오헤어의 프리미엄 브랜드 이름으로 열 예정이다. 또 대신준오라는 이름을 쓰고 싶어 하는 새 비즈니스 파트너에게는 매장 위치부터 동선까지, 준오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업권을 주지 않는 등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강 대표는준오라는 브랜드 네임을 회복하고 진출 초기부터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문을 연 준오아카데미. 사진은 모두 건축사진가 송재영 씨 제공

ⓒ SONGJAEYONG

 

 

플래그십 스토어 전략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준오아카데미 인근에 위치한애브뉴준오 2006년 완공됐다. 기존 준오헤어의 철학을 집대성하고 좀 더 고급화된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만든 프리미엄 브랜드다. 지하부터 4층까지 연면적 2640( 800) 규모의 메가 헤어숍인 이 매장은 전 세계적으로도 최대 규모 헤어숍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에스티로더, P&G 등 글로벌 뷰티업계 임원들이 방한할 때마다 ‘K뷰티의 힘을 체험하기 위해 한 번씩 방문하는 투어 코스이기도 하다.

 

벤치마킹 투어를 온 미용 업계 관계자들은 실제 규모는 거대하지만 머리를 하러온 각 고객들은 동네 미용실에 온 것 같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도록 4, 5명 단위로 구역을 나눈 특별한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브뉴준오의 기능은 플래그십 스토어다. 보통 명품 업계가 세계 주요 대도시에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들고 수천억을 쏟아붓는 목적 중 하나는부동산 투자.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충분한 매출을 내지는 못할지언정, 땅값이 오르면서 자연스레 얻게 되는 자산가지 상승은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브뉴준오는 부동산 투자 목적을 뛰어넘어 실제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강 대표는플래그십 스토어는 내가 이렇게 중요하고 비싼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깃발 들어 알림과 동시에 브랜드의 가치를 알리는얼굴 마담역할을 한다하지만 명품 업체라 하더라도 실제 매출도 내고, 브랜드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애브뉴준오는 연 80억 원의 매출을 거두고 있으며 브랜드 가치 상승에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담동에서 대형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깃발 효과는 다른 전국 100여 개 매장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실제 서울 강북에서 출범한 준오헤어는 애브뉴준오가 세워진 2006년 만해도 신촌점이 대표 매장이었다. 당시강북의 캐주얼 브랜드로 고객들에게 인식된 미용실이 강남의 대표 미용실로 포지셔닝할 수 있었던 데는 플래그십 스토어 효과가 컸다.

 

당시 많은 마케팅 컨설턴트들은준오라는 브랜드로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운영하기 어려우니 다른 이름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준오라는 이름 자체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입히는 것이 목표였던 만큼 이름의 뼈대는 남기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고 실제 그 효과도 주효했다. 강 대표는특히 준오헤어가 직영 모델이었기에 플래그십 스토어 전략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가맹점 모집이 목표인 프랜차이즈형 비즈니스 구조였다면 차라리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대규모 광고 전략을 썼을 것이라는 것이다.

 

애브뉴준오는이 세상은 목표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뉜다는 문구를 좌우명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강 대표의 비전이 구체화된 주요 결과물이기도 하다. 강 대표는지금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또 새로운 꿈을 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을 통한 소통

 

강 대표가 운영 중인 독서프로그램은 이미 독서경영을 시도하는 많은 기업에 벤치마킹 대상으로 통한다. 매달 전국의 준오헤어 식구들이 읽을 책을 한 권 선정하고, 각 지점 단위로 각 지점마다 책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을 갖게 하는 것으로 21년째 계속하고 있는 관행이다.

 

강 대표가 사업 초기부터 독서 경영을 고집한 것은 독서를 통한 소통의 힘을 믿기 때문이었다. 같은 책과 사상을 접하고 공통의 언어로 얘기하게 되면 조직 내 구성원들 간의 소통이 더욱 원활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좋은 서비스란 고객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게 강 대표의 주장이다.

 

미용업은 여러 고객을 상대하다보니 감정 노동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책으로내공을 닦은 직원은 고객의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정중동을 지킬 수 있다는 것도 강 대표가 독서 경영을 중시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준오헤어는 전 지점을 직영으로 운영하다보니 각 지점을 이끌리더를 양성하는 것도 본사 임원진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독서를 통한 사고의 폭 확장과 간접 체험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부 반발도 적지 않았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 힘겹고, 과연 내게 필요한 일인가 싶다며 일을 그만두는 직원도 있었다. 하루하루 일하기도 지치는데 굳이 독서를 강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던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강 대표는하루에 10쪽만 읽으면 300쪽짜리 책 한 권을 한 달에 읽을 수 있다며 결코 무리한 목표가 아니라고 독려했다.

 

책에 집착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책을 사줄 형편이 되지 않았던 터라 어쩌다 손에 들어오는 책은 값지게 읽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인생론> 책 속에서 접한 교훈, ‘불평하지 말라’ ‘비난하지 말라등에 감화를 받았고 그때부터 손에서 책을 놓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준오헤어의 독서 경영은 6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매월 중순경부터 강 대표와 독서경영 진행 담당 원장이 상의해 자기계발서, 경영서, 트렌드서, 인문학 등의 도서 중 하나를 선정하고, 전 지점의 원장들이 선정된 책을 통보받아 가장 먼저 읽는다. 이후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전국 전체 지점 원장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영리더 워크숍에서 선정 도서의 저자를 초청해 강연을 듣거나 자체적인 독서토론을 진행한다. 이후 매월 첫째 주 화요일부터 전 지점의 직원들이 도서를 구입해 읽기 시작하고, 지점별로 독서토론회 시간을 가지면서 책의 교훈이 무엇인지 각자 의견을 나누고 이 지식이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도록 서로를 독려한다. 마지막으로 각 원장이 각 지점에서 실시한 독서 토론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것으로 매달 진행되는 독서가 마무리된다.

 

선정된 책의 종류는 다양하다. <리더, 절대로 바쁘지 마라(2014 8)> <회복탄력성(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유쾌한 비밀)(2014 11)> <생각하는 인문학(2015 11)> <하루 1%(2015 12)>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2016 1)> 등 경영, 자기계발, 인문학서 등을 고루 배치했다.

 

독서는 실제로 직원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18세에 보조 미용사로 입사한 한 직원은 독서프로그램을 통해 학업에 대한 열정이 생겼고 학사, 석사 과정에 이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독서 경영은 매출에도 영향을 미쳤다. 헤어디자이너들이 손님과 깊이 있는 주제로 소통할 수 있게 되고 충성도가 높은 단골 고객도 늘었다. 강 대표는준오헤어 헤어디자이너 중 20%가량인 약 200명이 억대 연봉자가 된 데는 독서경영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새로 문을 연 준오아카데미 강의실에최고의 효도는 준오에 입사하는 것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그는준오를 거치는 직원들이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그들이 나중에 어디를 가든준오맨 답다라는 얘기를 듣게 하는 것이 미용인 선배로서 궁극적인 꿈이라고 설명했다.

 

 

성공 요인과 시사점

 

‘애브뉴준오’에 가보면 해외 미용 선진국에서도 보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시설과 프로페셔널한 서비스에 놀라게 된다. 또 헤어스타일리스트들을 교육하는준오아카데미에 가보면 대기업의 교육 시설이 부끄러울 정도다. 해마다 연초에 열리는 시무식 역시 엄청난 위용에 압도된다. 한국 미용계에서 매년 10% 이상의 성장세를 지속하는 준오헤어, 그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이 회사는 경영과 마케팅의 기본(basic)을 제대로 파악하고 실천할 뿐이다. 사업 미션과 사원 정신, ()의 본질 등에 대해 준오헤어만큼 철저하게 매달리는 회사를 국내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강윤선 대표에게업의 본질이 한마디로 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People Business’라고 대답한다. 고객도 고객이지만 그에 앞서 직원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직원 최우선의 원칙>을 쓴 핼 로즌블러스(Hal Rosenbluth)의 책 제목처럼 고객은 둘째(The customer comes second)고 우선은 직원이다. 강 대표는 헤어스타일리스트들의 자부심이 통상 낮은 것을 간파하고 이를 끊임없이 고양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 강 대표가 직원들을 보살피는 것을 보면 대표라기보다 직원들의언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직원들과 함께 오래 하기 위해서는 애정을 쏟는 것만으론 안 되고, 시스템적으로 직원들에게 동기부여(motivation)해야 한다는 사실도 그는 잘 알고 있다. 직원들을 동기부여하는 데 필요한 것은 인센티브와 교육, 그저 그 두 가지다.

 

동기부여를 위한 최고의 당근은 뭐니뭐니 해도 금전적 보상이다. 강 대표는 헤어스타일리스들이 고소득을 거둘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연 수입 1억 원이 넘는 헤어스타일리스트가 200명을 넘어서게 됐고, 이로 인해 새내기들조차나도 억대 연봉자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을 자연스럽게 품게 됐다. 기업의 비전이 아무리 무지갯빛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 비전이 조직원의 꿈과 희망을 달성시킬 수 있다는 가시감이 있을 때만이 힘을 발휘하는 법. 대기업에서 스톡옵션을 나눠주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한편으로 교육을 이 회사처럼 중시하는 곳이 드물다. 독서 경영을 실천하는 덕에 유명 베스트셀러 저자들이 와서 매달 직접 펼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직원들 스스로의 자부심도 높아지고 책 내용에 대한 관심도 함께 올라간다. 그들의 열정적인 수강자세와 호응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회사가 왜 건실하게 성장하는지 느낄 수 있게 된다. 콩나물시루에 주는 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콩나물은 무럭무럭 자라듯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직원들의 자부심과 잠재력은 날로 성장하고 있다.

 

강 대표는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고, 그 사고가 결국은 행동을 바꾼다는 말을 신봉한다. 사원 정신이나 업의 개념을 만들어 액자에 걸어놓는 기업은 많다. 그러나 이를 직원들의 생각과 행동에 체화(體化)시키지 않으면 그냥 액자일 뿐이다. 준오헤어는 그들이 공유해야 할 철학을 회사 곳곳에 적어 놓고 끊임없이 체화를 시도한다. 한 예로 그들의 신조(credo)를 보면 다음과 같다.

 

We are proud to be your hair stylist.

We hope you are also proud

to be our customer.

We, the JUNO family, sell PRIDE

 

그들은 진정으로 구성원들이 헤어스타일리스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끊임없이세뇌시키고 있다. 그래서 그곳을 찾는 고객들도 다른 미용실이 아닌 준오헤어에 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거라고 그들은 굳게 믿는다. 결국 준오헤어의 스타일리스트들은 단순히 머리를 다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복장이나 행동, 말씨 등 일거수일투족에서 자부심(Pride)을 느끼도록 훈련돼 있다. 직원들의 마음과 행동에 체화된 언어들이 준오헤어를 여타 미용실과 차별화되게 만드는 포인트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업의 개념(concept)을 분명히 하면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해준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냐에 따라 일의 결과가 달라질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런 마음가짐은 일에 대한 큰 그림, 즉 업의 개념이 있어야만 생긴다.

 

주인의식은 주인의 관점에서 전체적인 걸 보라는 뜻이다. 구멍가게라도 주인은 전체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그린다. 반면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큰 그림 없이 자기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 회사가 대체 무얼 하는 회사인지 공유할 콘셉트는 주지 않고 주인의식만 가지라고 백날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 우리 회사가 이러이러한 회사라며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알려줘야 한다. 그러한 콘셉트가 있어야 전 직원이 하나의 마음으로 뭉칠 수 있다. “잘되는 매장은 주인이 없어도 주인이 있어요. 전부 다가 주인이니까라고 자주 말하는 강 대표의 말에는 주인의식의 정수가 담겨 있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했더라면 더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텐데 준오헤어는 직영점 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기본(basic)과 개념(concept)에 충실한 영업을 하자면 어렵더라도 모든 매장을 직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국 매장의 콘셉트를 분명히 하는 것은 전반적 체험의 일관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매장에 들어섰을 때, 준오헤어다!” “준오헤어에 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네라는 총체적 경험을 극대화해야 감성적 차별화의 포인트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각 지역에 걸맞은 콘셉트가 서비스를 차별적으로 도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운영의 묘다. 준오헤어의 경우 간판이나 인테리어가 지역별로 개성을 띠면서도 통일감을 갖도록 조정함으로써따로, 또 같이의 묘미를 실현하는 점은 특히 높게 평가할 만하다.

 

청년 취업과 글로벌화가 화두인 요즘 헤어 미용은 장래가 촉망되는 산업 분야다. 우선 글로벌화하는 데 언어의 장벽이 크지 않다. 머리 손질과 관련된 용어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 말이든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다. 또한 한국인의 섬세하고도 비범한 손재주는 외국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무형자산이다. 한류 영향 역시 한국 헤어스타일링의 미래를 밝게 비춘다. 무엇보다도 머리는 끊임없이 자라고 유행도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절대 축소되지 않는 시장이다. 기본(basic)에 충실한 준오헤어는 세계 1위의 헤어스타일 기업이 되기 위한 꿈을 꾸고 있다.

2016 1월 열린 준오헤어 시무식에서 직원들이 합창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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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선 준오헤어 대표 Interview

 

 

‘동네 미용실사장님으로 출발해 직원 2500, 전국 109개 점포 달성에 이어 세계를 타깃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는 강윤선 대표는 아담한 체구와 달리 강단 있는 목소리가 비범함을 느끼게 한다. 사업을 일궈오는 동안다 걸기에 가까운 모험을 감행하기도 하면서 결단 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인 그의 앞으로의 꿈은 기승전아시아 미용 허브일류 직원 양성이었다.

 

미용기업 중 흔치 않게 ‘500년 기업이라는 장대한 비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인간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무한할 수 있지 않나. 창업자였던 나의 꿈이 500년 동안은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것이다. 500년이라고 주장하고 다니니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확실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이게 500년 뒤에도 유효할 수 있는 결정일지를 한 번 더 생각하다보니 경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 같다.

 

시무식에서리스타트(Restart) 300’을 내걸었는데.

 

매년 그해의 화두가 있는데 올해는 300이었다. 디자이너 한 명이 단골손님 300명을 확보하라는 의미다. 이전에는강한 준오같은 명제만 내세웠는데 3년 전부터는 숫자를 내세우고 있다. 그저 말로 된 슬로건보다는 명확하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무식에서 진행되는 행사도 각 해의 비전에 맞춰 응원가, 합창단 곡 등이 선정된다. 절대로 직업 가수나 연예인을 내세우지 않고 끼 많은 내부 직원들만을 무대에 세우는데 무대에 오를 확률이 10%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직원 교육으로 명성이 높은데.

 

미용 기술뿐 아니라 서비스 교육, 인성 교육, 리더십 교육을 함께 실시한다. 그러다보니 감정노동에 대한 유연한 대처법도 익히게 되는 것 같다. 서비스업은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360도 피드백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모두 미용업계에선 이례적으로 도입된 기법들이다.

 

미용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또 거의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한 비결은 무엇인가. ( 1 참조)

 

미용업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이직률이 높고, 경기 변동에 따른 부침도 심하다. 진정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내 업()의 정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업의 정의가 잘돼 있지 않으면 유명 연예인의 편의를 봐주고 일시적인 인기에 신경 쓰느라 다수의 고객을 잃게 된다. 많은 미용업체들이 연예기획사를 섭외하느라 공을 들이지만 나는 미용업의 본질인개개인의 만족에 신경을 썼다. 준오헤어를 찾는 연예인들도계급장떼고 개인 자격으로 오는 것이지 특혜를 기대하고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을 지키는 것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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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헤어미용산업의 패러다임 변화

 

 

1980년대 이전, 여성들이 주로 찾는 미장원으로 소규모 존재하던 미용 산업은 파마 기술 수입을 계기로 성장의 전환점을 맞았다. 특히 1960년대에 접어들며 자격증을 가진 미용사를 고용하기만 하면 미용실을 차릴 수 있게 되자 국내 미용업소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 이후 업소 과잉 문제가 발생하자 1986, 기존 이·미용사법이 폐지되고 공중위생법이 제정돼 미용사 면허증 소지자만 미용실을 개업할 수 있게 됐다.

 

1974년 발간된 최초의 미용잡지 <월간현대미용>, 1981년 발간된 대한미용사회의 <미용 회보>는 미용인에 대한 직업적 인식을 확대시켰다. 더불어 1980년대 이뤄진 경제발달을 바탕으로 패션과 미용에 대한 개인의 지출이 크게 늘어났다. 한국은 이 시기에 세계미용연맹의 가입국이 됐으며 무스, , 스프레이 등 두발 제품들이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개인의 해외여행을 제한하는 규제가 풀리면서 국내 미용인들이 해외 진출에 시동을 걸게 된다. 영국의 비달사순아카데미 등 세계 유명 기관으로 미용연수를 떠나거나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이들이 늘면서 외국의 선진 미용기술과 유행이 국내로 유입됐고 이에 따라 산업의 질적인 향상이 이뤄졌다.

 

1994, 미용시장이 개방되면서자끄데상쥬등 해외 유명 프랜차이즈 미용실이 국내에 상륙했다. 이를 기점으로 국내 미용실의 형태 역시 대형화, 전문화, 프랜차이즈화된다. 1997년 외환위기에 가장의 실직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미용업에 진출했고, 이로 인해 전체 미용 인력의 수가 크게 확대됐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고객중심형 미용 서비스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고객이 느끼는 총체적인 경험을 디자인해 고객만족을 극대화하는 차원으로 서비스 양상이 확대되고 있다. 소비자 니즈가 세분화된데다 업계의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또 남성 전용, 커트 전용, 헤어컬러 전문점 등으로 시장세분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참고자료

황연숙구양숙(2005) <헤어샵 이용 소비자의 구전정보가 방문의도에 미치는 영향> 한국의류산업학회지 7(2), P.219-220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hongst@hanyang.ac.kr

 

홍성태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주리대 마케팅학과 조교수로 재직했다. 한국마케팅학회 회장, 한국경영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나음보다 다름(공저)>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보이지 않는 뿌리> <대한민국 여성 소비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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