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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김진우 국제HCI 학회장(연세대 교수)

광고보다 힘 있는 고객경험, 전략화 원하면 조직부터 확 바꿔라.

고승연 | 190호 (2015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모든 전자기기에서터치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UI(User Interface) UX(User Experience)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 단순히 사용자경험이 아니라 소비자/고객 경험(CX·Consumer Experience)을 넘어 전략으로써의경험 디자인을 고민할 때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경험 자체가 가장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마케팅 툴이다. 경험은 그 자체로 복잡한 수치와 화려한 광고 문구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2)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변화하기 위해서는경험 디자인 전략이 가장 효과적이고 혁신 제공의 툴이 된다. ‘제품 중심의 사고로는기능 개선이 나오지만경험 중심의 사고에서는 전혀 다른 혁신이 나오기 때문이다.

3) 경험 디자인의 총체적 구성과 전략을 구축하면, 마치 애플을 따라잡기 어렵듯이 후발주자나 추격자들이 모방하기가 어려워진다. 수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게 경험 디자인 전략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권세은(성신여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김진우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동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하다 미국 UCLA에서 MBA를 마친 뒤 컨설팅사 KPMG에서 시스템 컨설턴트로 재직했다. 다시 미국 카네기멜론대에 진학, HCI로 박사 논문을 썼다. 실무와 컨설팅, 학계 전반에 걸친 경험으로 인해 국내 유수 전자회사와 인터넷 포털과 방송사 등에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년간 한국 HCI학회장을 맡았고 현재 국제HCI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 경영연구소 소장 겸 HCI Lab 주임 교수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더 이상품질이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완전 대박이더라라는 말로 시작해 자신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쓰면서 겪은 경험을 하나의 스토리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SNS에 퍼 나른다. 가격이 비싸든 싸든좋은 품질과 높은 사양은 기본이 된 시대다 보니총체적인 경험위주로 제품이나 서비스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단순히 예쁘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구성하는 데 그쳤던 온라인 전자상거래 사이트나 소셜커머스 업체 역시 전체적인 경험의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쿠팡의 로켓배송 서비스는 단순히 빠른 게 핵심이 아니라쿠팡맨과의 소통 경험이 주는 차별화가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LG전자의 히트 제품인 트롬 트윈워시는 옷을 그 종류와 특성별로 나눠 세탁을 할 수 있는 전혀 다른 경험의 제공을 통해 성공 스토리를 써 나가고 있다.1

 

2000년대 말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난 이후 주로햅틱 기술’ ‘터치 기술을 중심으로 한 UI/UX 디자인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2007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Understanding Customer Experience’라는 논문 이후소비자 경험’, CX(Customer Experience)에 관한 논의도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이제경험은 단순히 사용자(user)나 소비자, 혹은 고객(customer) 뒤에만 붙는 단어가 아닌, 그 어떤 곳에도 습관처럼 붙여 쓰는 단어가 됐고 그만큼 개념적 혼란도 커지고 있다. UX, CX, SX(Service Experience) 등으로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경험에 대해 경영전략 차원의총체적 경험 디자인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UX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김진우 연세대 교수다. 그는 최근 이러한경영 철학적 아이디어를 녹여낸 책 <경험 디자인>을 내놓기도 했다. DBR이 김 교수를 만나경험이란 무엇이고경험 디자인전략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1. UX, CX, 그리고 경험 디자인 전략

 

UX 시대를 넘어 CX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어떤 상황인가?

 

UX 얘기부터 시작하긴 해야 할 것 같다. 불과 4∼5년 전 만해도 모두가 UI(User Interface)를 얘기했고 그 다음에 좀 더 확장해서 UX의 중요성을 말했다. 굳이 기업에서 부서로 나눠 얘기하자면 R&D부서나 기술 부서에 한정된 얘기였다. 물론 전체적인 경험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톱 매니지먼트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햅틱이라는 말이 한동안 참 많이 쓰이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그 단어를 잘 안 쓴다. 그러다가 CX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R&D팀과 기술 부서에 마케팅 부서의 역할이 더해졌다. 그럼 이 차이부터 생각해보자. 전통적인 UX라는 건 실제로 모든 구매행위가 끝난 뒤에 실제 사용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당연히기계혹은기기등 소비자가 실제 사용하는 물리적 실체를 중심으로 많은 얘기를 하게 돼 있다. 여기에서 CX로 개념을 확장하면 구매 이전 단계와 구매 과정 단계, 즉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의 고객 혹은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경험하는 모든 단계를 포괄하게 된다. 확실히 개념이 커지는 거다. 이때에는 마케팅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지면서 R&D팀이나 기술 부서와의 소통과 상호작용도 필수적이 된다. 그러다가 이게 전체적인 운영으로 확장되고, 또 서비스 산업에까지 퍼지면서 SX라는 단어로 파생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씩 단어마다 Experience를 상징하는 X를 붙여 가면 사실 한도 끝도 없다. UX에서 CX 시대로 넘어갔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물론 중요한 얘기고 맞는 말이지만 거기에서 멈추면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게 아니다. 한 명의 예비 소비자가 구매 여행을 시작해서즐거운 구매 경험을 하고 구매 이후에 사용자로서 편리하고 자신의 생활이 향상되는 경험을 한 후에 다양한 서비스 경험을 통해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되는 과정, 이러한총체적 경험 전반을 구성하는경험 디자인의 시대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또 이렇게전략차원으로 단계를 높여 생각하지 않으면 B2B기업이나 최종 제조업체에 납품하는 많은 중소기업들은 예전의 사고에 머물면서 그저 자신들만 아는 미묘한 기술 개선에 열광하고 전체적으로 최종 소비자나 사용자들의경험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UX CX 등의 단어로 한정지으면 안 된다는 거다.

 

 

 

애초에 UX에 사람들이 관심 갖도록 만든 게 애플인데

경험 디자인의 시대가 돼도

애플이 모범이라는 걸 보면 참 부럽기도 한 기업이다.

 

‘경험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UX CX 등에 비해 좀 추상적인 느낌이 있다. 사례를 통해 설명해달라.

 

UX가 주된 개념이었던 시절부터 늘 거론하던 회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CX를 넘어선경험 디자인전략을 말할 때에도 역시 처음에 말할 수밖에 없는 걸 보면 참 대단한 회사다. 바로 애플이다. 최근 애플이 놀라운 실적을 발표했다. 다른 경쟁사들이 모두 뒷걸음치고 스마트폰 시장 자체가 포화상태라고 말하는 시대에 놀라운 매출 신장과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술이 평준화되고 심지어 제공되는 각종 서비스가 거의 동일해진 시대에 여전히 나홀로 성장하며 독주하고 있다. 2  UI UX, CX같이 단편적으로 볼 게 아니라 애플이 전체적인 경험 디자인을 어떻게 했는지 봐야 이 성공이 이해가 된다. 애플이 구성하고 있는 맥북부터 아이폰, 아이클라우드 등에 이르기까지 즐거움과 편의성이 정말 하나의 총제적인 경험으로 완벽하게 구성돼 있고, 사람들은 거기에 맛들이면 빠져나오질 못한다. 오죽하면 어떤 날은 프라임타임대 모든 뉴스에서 애플의 아이폰 기종 출시 기사가 중요한 꼭지로 다뤄지겠나. 애초에 UX에 사람들이 관심 갖도록 만든 게 애플인데 경험 디자인의 시대가 돼도 애플이 모범이라는 걸 보면 참 부럽기도 한 기업이다. 어쨌든 경험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특정 기술이나 서비스의 단면만을 보면 알 수 없는, 전체적인 조율과 조화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 모방하기도 어렵고 뭔가 좀 비슷하게 만들어 보려 하면 은근히 이것저것 특허를 다 건드리게 돼 있어 난감한 측면이 있다.

 

애플도 국내에서 AS 제공하는 걸 보면유쾌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수리나 교환 등 AS 문제에선 한국 소비자를 차별한다느니 하는 말도 나오지만 개인적으로는 우선선택과 집중의 관점으로 보고 있다. 왜 더 많은 AS 직영점을 확보하지 않는가하는 것인데, 그 정도로 AS망을 늘렸을 때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현재 상태를 유지했을 때의 이익을 비교해보고 판단했다. 이는 경영학적이고 운영관리적인 얘기이니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살펴보자.

 

플래그십 스토어 경험을 한 사람들도 역시나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게 애플의 힘이다. 애플스토어지니어스바를 구매를 위해서든, 수리를 위해서든 한번 찾아가면 일대일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게 되는데 왜 찾아왔는지 얘기하면 잠시 후에 파란색 옷을 입은 전문가가 나타난다. 미묘한 경험인데 한국의 AS센터도 충분히 친절한데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정말로 애플에서 만든 기기를 두고 마니아끼리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엔지니어들은 자기들이 정말로 좋아서 이 일을 한다는 게 겉으로 다 보일 정도로 티가 난다. 너무나 유쾌한 사람들이고 그들과 대화하고 수리나 교환 혹은 상담이 이뤄지는 모든 경험의 전체가 정말로 즐겁게 구성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친구 한 명이 같이 얘기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그 경험은 역시나 다른 기업들이 제공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물론 외부적인 환경도 놀라운 경험을 만들어주는데, 이는 한국에 지니어스바가 없는 이유와 연결된다. 나 역시 들은 얘기라 구체적인 조항들은 좀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데 한국에 애플스토어 직영점이 없는 이유는 애플 자체의 까다로운 조건 때문이라고 한다. 전면이 다 유리로 돼 있어야 하고, 3층 이상의 공간을 확보해야 하며, 전면에 꼭 애플 로고가 공중에 떠서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예 안 만들고 만다는 거다. 그렇게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사하지만 애플만의 차별화된세계안으로 들어가는 경험 자체를 제공하는 게 애플의 철학이다. 제대로 경험하지 않으려면 아예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인 듯하다.

 

‘경험 디자인차원에서 애플만큼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또 있나.

 

전혀 다른 산업이지만 미국 최고 의료기관 중 하나로 꼽히는 메이요클리닉 사례를 들어 보겠다. 그 어느 전통 있고 유서 깊은 병원들보다 특히 최근 들어서제일 잘나가는병원이다. 이러한 메이요 방식을 벤치마킹한 병원들은 사실 대부분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암 병원을 새로 지은 세브란스병원이 이 모델을 따라가려 한다. 일단 메이요클리닉의경험 디자인이라는 건환자를 중심에 놓고이뤄지는협진이 핵심이다. 세브란스가 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하는 암 병원을 예로 들어보자. 암 환자들은 일단 처음 암 선고를 받고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의 과정이 아주 길다. 치료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가장 불쾌한 건 의사 중심으로 이 과, 저 과로 환자를 계속 돌아다니게 만드는 거다. 하지만 메이요는 100% 협진이다. 암 판정을 받은 사람이 오면 관련 전문의들이 모두 모여 그 환자를 맞이한다. 어떤 암인지,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치료법은 무엇인지, 수술은 해야 하는지, 수술한다면 언제쯤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그 이후의 회복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한자리에 모인 최고의 의사들이 환자를 중심에 두고 설명하고 진료를 펼치니 그 전체적인 경험이라는 게 엄청난 차별화 요소가 되는 거다. 그런 경험을 선사해주니 치료 후 주변 추천율이 96.7%에 이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추천율 아닌가.

 

일본의 츠타야서점도 좋은 사례다. 온라인 서점에 많은 것을 빼앗겨 오프라인 서점들이 망해가는 시점에서 유독 츠타야서점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빠르게 신간을 많이 구비해 놓고 빠르게 골라 사서 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기존 오프라인 서점의 목표에서 벗어났다. 할인된 가격으로 쉽고 편하게 책을 배송해준다는 온라인 서점의 장점과는 또 다른 차별화를 해냈다. ‘사람들의 경험으로 발상을 바꾼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보통 작은 집에 산다. TV도 재미없고 게임도 지겨워지면 밖으로 나와 아주 간편한 차림으로 스타벅스까지 품고 있는 츠타야서점으로 간다. ‘내 집 같다라는 느낌을 주고 그 안에서 이 책 저 책 들춰보고 구입도 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구매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모든 게경험 자체에 초점을 맞춰 구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결국경험 디자인을 전략의 중심에 놓고 기업이나 조직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인가.

 

맞다. ‘전략으로써의 경험 디자인이 실행되려면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해야 한다. 최근 내가 겪은 사례로 얘기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 얼마 전 한 방송사의 CEO로부터 연락을 받아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CEO는 본인 방송사의 시청자들이 방송사가 만든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양한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면서경험을 함께 만드는 주체라고 여긴 것이다. 방송사로서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고 또한 함께 구성하고 싶은 경험에 대한 본인 나름의 생각이 있었고 이를 실행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방송 프로그램 편성이나 각종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고 나 역시 조언을 했다. 그런데 이게 보통 작업이 아니었다. 직원들은 소위멘붕상태가 됐다.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게 아니라시청자들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보자는 지시가 나오니 다들 어려워하는 거다. CEO도 그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러기에 모바일, , IPTV, 본방송을 각기 다른 디바이스로 시청하는 다양한 시청자들에게 기기 특성에 맞는 UX UI 등을 만드는 기술적 사안부터 전체적인경험 전략의 차원에서 모든 접점에서 시스템을 다 바꾸는 작업 등을 독려하고 지원하고 있었다. 최고경영진에서경험 디자인을 중심으로 하나의전략을 만들어 공유했고 이러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또한 그 전략이 갖는 철학에 맞게 시스템과 조직을 정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일하는 방식마저도 바꿔야 했고 자원배분 방식도 바뀌어야 했다. 방금 예로 든 방송국에서만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다.

 

 

 

또 다른 국내 기업의 모범사례가 있을까?

 

국내 유명 전자회사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그 회사는 UX, CX, SX 등 총체적 경험의 관점에서 조직 프로세스 자체를 바꿔버렸다. 예를 들어 제품을 기획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분석하고, 제품을 만들어 출시해 마케팅하고 AS를 하는 전 과정의 길목, 흔히 Control Point라고 하는데, 그 길목마다 UX/CX 관점에서의 점검을 받도록 했다. UX부서에서오케이를 내야만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다.이게 톱 매니지먼트, 정말 최고경영자 수준에서의 결단과 노력이 아니라면 이뤄질 수 있겠나. 각 부문장들의 굉장한 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데, 마케팅팀이 CX를 강조하는 문서 하나 공유한다고, 기술 부서에서 UX 트렌드를 잘 교육시킨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정말 조직원 전체의 사고방식부터 실제 시스템과 제도가 바뀌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직 특유의 스피드와 효율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경험 관점의 검토를 계속해야 하니 프로세스를 그에 맞게 바꿀 수밖에 없는 거다. 또 다른 국내 유수 전자기업은 길목마다 경험 관점에서 컨트롤하지는 않지만 제품 출시 최종 단계에서 반드시 UX/CX 차원의 검토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번엔 한 시스템통합관리 회사 사례를 보자. 요새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의 시장환경이 그리 좋지 않다. 전사적 자원관리 자체가 이미 다 자체적으로 깔려 있고, 외부에서 경쟁적으로 간편하게 개발되는 시스템으로 사실 대체가 가능한 게 많다. SI(System Integration)회사는 그래서 아예필요한 걸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불편함을 없애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UX 관점에서 모든 걸 바라볼 수 있는 인재를 키우고 직원들의 마인드를 바꾸기로 했다. 그런 사람들 위주로 채용을 하고, 부족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교육시키고 있다. 앞서 말한 츠타야서점과 비슷하게는 최근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판교 현대백화점이 있다. 얼마 전 일이 있어 한번 가 봤는데 명동의 다른 백화점들 하고는 경험이 다르다. 바쁘게 뭔가를 사러 들어가는 곳의 느낌이 아니다. 그냥 가서 즐기고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장 구성부터 빡빡하지 않고 여유롭게 보고 즐기고 여러 가지를 체험해볼 수 있게 꾸몄다. 구매보다 경험이 핵심인 장소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이 경험이 우선해야 구매가 이뤄진다. 그런 면에서 꽤나 좋은 혁신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B2B 기업, 부품기업 등에도경험 디자인 전략이 필요한가?

 

필요하다. 매우 중요한 과제임에도 B2B 기업들은 관심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작은 업체들은 아직 개념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작은 기업, 특히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일수록그냥 잘 만들면 된다. 내가 제일 잘 만들고 기술도 제일 뛰어난데 뭐가 걱정이냐고 생각하곤 한다. 현재도 국가 정책적으로경험 디자인 전략을 짤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가 많은데, 그런 프로젝트에서는, 하라니까 하는데 솔직히 여력도 없고 절실한 필요성도 못 느끼겠다는 말을 간혹 듣는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어느 기업이든 경험 디자인 관점에서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첫 번째 이유부터 설명하겠다. 우선 경험이라는 건 가장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마케팅 툴이다. 우리가 어떤 걸 경험하고 나면 아주 복잡한 수식이나 현란한 광고문구가 없더라도 경험 그 자체로 좋은 걸 알게 된다. ‘이것 참 괜찮다라고 느끼면 그 다음엔 일단 광고나 이런 것들이 없어도 그 사람과 주변에 상당히 강한 효과를 남긴다. 직접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특히 현재 우리 기업들에게 중요한 부분인데, 바로 빠른 추격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변화하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게경험 디자인 전략이자 툴이다. 기존에 있는 제품을 갖다 놓고 이 제품을 어떻게 개선할까를 생각하면 애초에 사고의 베이스 자체가 그 제품의 바운더리에서 형성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생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애플이 선도자니까, 애플의 아이폰을 가져다 놓고 백날 고민해봐야 화면을 더 밝게 만들까, 더 얇게 만들까 등을 놓고 고민만 하는 거다. ‘제품 자체에 포커스를 맞출 때 벌어지는 문제다. 그런데 이걸어떤 경험을 하게 할까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사고가 넓어지고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 있다. 이 물건을 들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어떨까라는 건 아예 접근 방법이 다르다. 기존의스마트폰이 아니라필기도구의 관점에서, 즉 터치감을 좀 더 좋게 하는 개선이 아니라 손에 들고 다닐 수는 있되 노트처럼 필기하고 다른 경험을 제공하도록 만드는 혁신,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그렇게 나온 거다. 경험 관점의 접근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그 사이즈의 필기가 가능한 제품으로서는 삼성전자가 선도자의 위치에 있는 것 아닌가. 그게 바로 경험 디자인적 접근의 힘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기업이 선도자가 됐을 때, 후발 주자들 혹은 추격자들을 막을 수 있는 것도 경험 디자인의 총체적 구성과 전략으로 가능하다. ‘애플 사용자들이 갖는 총체적 경험이 다른 추격자들을 계속 따돌릴 수 있는 힘인데, 이는 오직 기술 개발과 제품 성능 개선에만 매몰되지 않고 경험 차원에서 전략적인 접근할 때 가능한 것이다.

 

 

2. 경험 디자인 혁신과 미래

 

자연스레경험 디자인적 사고와 접근을 통한 혁신’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경험 디자인 혁신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가.

 

우선 지금의 제품이나 서비스 기획 개발 방식이 많이 바뀌어야 가능할 것 같다. 예전에는 마케팅과 기술 부서에서 상품을 기획하고 신제품 만들어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UI/UX 부서에 던져준 뒤테스트 좀 해달라. 뭐 바꿀 것 없냐라고 묻는 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기존 제품과 기존 경험을 뛰어넘는 혁신이 불가능하다. 지금은 제일 앞 단에서부터현재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험은 어떠한가. 그 사람들 경험 속에 어떤 갈등요소나 긴장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예를 들면 요새 스마트폰 시장이 다 포화상태라고 하는데, 이를 수요/공급 관점에서만 보면 답이 없다. 기술의 평준화, 계속되는 성능 개선 등으로 인해 이젠 더 이상 새로운 폰을 집어 들고 사용해보는 것 자체가 설레지가 않는다. 이렇게 변한 것 없는 제품, 다른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제품을 위해 80만 원이 넘는 돈을 과연 투자해야 하는지 사람들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이 경험 속에서 느끼는긴장과 갈등을 포착하고 이를 이해해야 혁신이 나온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으로 터치하고 앱을 활용하고 다 좋은데, 문서도 보고 필기도 하고 싶은 욕구가 나왔다. 그런데 태블릿은 너무 크고 무겁다. 이 긴장과 갈등 속에서 갤럭시 노트와 같은 패블릿이 탄생한다. 경험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상호성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이 외적인 환경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해다. 기업들이 흔히 빠지는 착각이 경험 디자인을 한다고 하면서내가 사람의 경험을 이렇게 바꿔주면 우리 물건이 더 잘 팔리겠지라고 생각하는 건데, 절대 그렇지 않다. 경험은 사람의 내부에 있고 나름대로의 경험이 쌓여서 독자적으로 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어떤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이런 방향으로 사람을 바꿔야겠다고 하는 건 난센스다. 개인적으로 사업보고서 심사를 할 때가 종종 있는데사람들이 이렇게만 생각을 바꿔주면 우리 제품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문구가 있으면 나는 무조건 탈락시킨다. 환경이 만들어주는 ‘push’의 측면과 내면에서 ‘pull’하는 지점이 만나는경험점혹은 균형점을 파악해야 한다. 좀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현재 외부 환경, 즉 시장환경이나 기술발전의 환경과 사회 전반의 변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살피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 각 개인이 어떤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고, 또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를 세심히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핀 후에 사람들이 원하는 경험을 위해서 기능을 고민하고 부품과 제품의 구조, 그리고 구매 이후의 다양한 서비스 구성까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사실 반대 방향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기획과 출시가 이뤄졌다. 상품을 먼저 기획한 뒤에 거기에다이런 기능이 있으니 이런 경험이 가능하다고 말을 갖다 붙인 셈이다.사실 이 선후관계를 뒤집는 것 자체가 혁명적인 프로세스이며 경험 디자인 혁신의 출발점이다. 발상만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기업 내 역할 구도나 권력구조, 그리고 조직 자체가 변화해야 하는 일이다.

 

앞서도 얘기하셨지만경험 디자인 전략수립과 시행을 위해서는 정말 너무 많은 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방금 말한 대로 발상을 바꾸고 사고와 기획, 제품 출시 과정을 사실상 거꾸로 한다는 건데 당연히 쉽지 않고 많이 바꿔야 한다. 물론 우리 기업들이 그동안 해온 일들을 잘 보면 힌트가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많이 얘기했으니 LG전자 사례도 하나 보자. LG도 휴대폰 사업에서 이런 발상의 전환으로 분명 성공한 적이 있다. LG 휴대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가 뭘까. 아마 대부분 배우 김태희 씨가 광고했던초콜릿 폰을 떠올릴 거다. 지금까지 나온 그 회사의 피처폰/스마트폰 광고 가운데에 가장 UX를 강조했던 광고다. 광고를 보면 그 제품이 어떤 철학에서 나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데, 가장 경험 디자인적 접근을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휴대폰의 기능과 외관, 그리고 마케팅과 광고에 이르는 전 과정이 소비자의 경험을 먼저 생각하는 관점에서 이뤄졌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사례별로 찾아보면 분명 성공한 케이스들이 존재한다. 중요한 건 애플처럼 초지일관 경험 디자인의 관점에서 가져갈 수 있느냐다. 그러려면 최고경영진부터 생각을 싹 바꿔야 한다. 기업 조직 내에 존재하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영역을 어느 정도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니 얼마나 어렵겠나. 톱 매니지먼트의 각성과 적극성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아까 방송사 사례에서도 드러나지 않나. 그래서 나는 최고경영진을 만나면 성과지표부터 바꾸라고 많이 얘기한다. 수치와 단기 성과로 구성된 지표들을경험 디자인 접근을 하고 발상을 바꾸는 것에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어렵고 이상적인 생각이지만 최소한 조금씩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1인당 스마트폰이 꼭 하나여야 하나? 10여 개를 세트로 아주 싼 하나하나를 구성해서 여러 군데에 두고 쓰는 발상은 불가능한가? 화장실에 하나 두고, 차 안에 하나 두고, 안방에 하나 두고. 잃어버려도 그만이지만 완전히 사용경험을 바꾸는 발상은 왜 못할까. 물론 지금 내가 말하는 방식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런 식의경험을 중심에 둔 발상의 전환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는 거다.

 

한국 기업들이 가지는 굉장한 AS 시스템 등은 이후에 한국적 경험 디자인의 중요한 경쟁력이자 요소가 될 것 같다.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경험은 문화 속에서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UX부터 미국의 기업들이 이끌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무조건 수용하고 따라가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수 있다. 기술은 평준화됐고 총체적인 경험을 구성해야 하는데 이건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 시장에서는 미국 기업들보다 한국 기업들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중국 기업들과 협력할 여지도 있고 또 경쟁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HCI UX 등을 연구할 때미국향으로 연구하는 학자와 개발자들과아시아적 경험을 중심으로 중국식 HCI UX, 더 나아가경험 디자인을 설계하는 이들이 나뉘어져 있다. 애플 아이폰은 직관적이고 쉽고 편리한 게 핵심이다. ‘알려고 하지마. 알면 골치 아파. 내가 다 해줄게이런 게 바로 미국식 접근이다. 동양권 사용자들은 좀 다르다. 매뉴얼도 제법 열심히 읽고 공부하길 즐겨한다. 갤럭시가 아이폰과 경험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은 아마도나를 좀 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봐준다는 느낌일 거다. ‘내가 알아서 다 해준다는 접근이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확실히 호응을 덜 받는다. 한국식 친절한 AS와 여기에 제품 자체가 주는공부할 요소의 존재를 더하면 전체적으로 동양 문화권에서 이른바먹힐 수 있는방식의 경험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만의 경험 디자인 전략을 고민해보는 게 필요하고 그럴 때가 됐다.실제로 미국 HCI학회 등에서도 이제 한국/중국과 미국/서구권의 문화 차이를 알고 한국적 경험 디자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한 거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달과 경험 디자인 혹은 HCI/UX는 어떻게 연관되나?

 

두 개는 서로 대립하는 큰 기술 발전의 축이다. 이건 철학적 논쟁에 가깝다. 이미 1960년대 처음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후 미국에서 거대한 논쟁이 존재했고 최근 빅데이터 발달로 이른바딥러닝’ ‘머신러닝이 이슈가 되면서 다시 불거졌다. 우선 빅데이터 기반 머신러닝 쪽 연구자들은 인간을열등한 존재로 상정하고 자극을 주면 반응하는 수준의 존재로 본다. 이런 열등한 사람들을 위해 기계가 나서서 사람 대신에 유추와 추론을 해주고 때론 행동까지도 대신 해줘야 한다는 거다. 그 반대쪽 진영에서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건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우주가 있기에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우주를 포함할 수는 없다는 철학적인 세계관이다. 이 둘은 하나가 될 수 없다. 완전히 다른 세계관과 인간에 대한 존재론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상황을 기업에서는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HCI/UX 부서, 아니면 조금 더 키운경험 디자인부서와 인공지능/빅데이터 부서를 둘 다 만들고 서로 싸우도록 해야 한다. 빅데이터를 통한 자료를 통해인간의 경험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인공지능 기술을 적절히 반영해 인간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다. 서로 싸우면서 각자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다시 융합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혁신과 성공 사례가 나올 것이다.지금 잘나간다고 하는 애플이나 구글, 어찌 보면 애플은 좀 더 HCI/UX 중심이고 구글은 더 빅데이터/인공지능 중심이겠지만 서로 상대를 무시하지도 않고 내부적으로도 양쪽에 다 관심을 갖고 키우고 있다. 구글은 사방에정찰병을 보내 새로운 시장을 파악하고 자신들이 가진 데이터를 통해 사람의 경험을 연구한다. 애플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기업들이 가장 못하는 게 이런 거다. ‘간 보기를 못한다. 하나 꽂히면 자원과 인력을 다 투자해서 들어갔다가 망하거나 크게 타격을 입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는 방금 말했듯 HCI/UX와 빅데이터/인공지능 두 개의 큰 축을 세워놓고 각 영역에서 나오는 인사이트와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 역시나 두 진영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혁신과 성공이 나올 것이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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