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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앨런 아이니 BCG 글로벌 선임 스페셜리스트

배면 높이뛰기, 저가 항공처럼… 생각의 틀을 의심하고 새 틀을 만들자

장재웅 | 182호 (2015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사고의 틀(Box)을 깨라.’ 많이 들어본 말이다. 흔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원할 때 사고의 틀을 깨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틀은 우리 사고의 근거가 된다. 틀이 없이는 사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틀이 없이는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다.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사고의 틀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사고의 틀을 만드는 출발점은 기존의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가 쓴 희곡닫힌 방(Huis-clos)’에는 3명의 주인공(가르생, 에스텔, 이네스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오랜 시간 헬(hell)이라고 불리는 방에 갇힌다. 창문도 출구도 없는 비좁고 밀폐된 방에 갇힌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불평과 원망을 쏟아낸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방에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문만 열리면 바로 뛰쳐나갈 듯했던 세 명의 주인공은 머뭇거리다 이내 헬을 탈출하는 것을 포기한다. 갇혀 있을 때는 탈출을 열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방에 있는 것이 익숙해졌고 막상 문이 열리자 미지의 바깥 공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떠나기를 포기한 것이다.

 

2014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아이디어 메이커-현재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에서 생각하기>의 저자 앨런 아이니 BCG 글로벌 선임 스페셜리스트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대뜸 사르트르의 희곡 이야기를 꺼냈다.

 

앨런 아이니에 따르면 이 희곡에서이라고 불리는 방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Box)이다.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기존 사고의 틀 안에서 생각하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존 틀은 익숙하고 편하며 과거 한때에 창의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던 사고의 근거다. 이런 틀 중 상당수가 과거에 도움을 줬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이 틀이 유효하지 않음에도 기존 틀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렇다면 기존의 틀만 버리면 창의적 사고가 가능한가. 그는 단순히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틀은 사고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틀을 버리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오히려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틀(Box)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DBR이 앨런 아이니 BCG 글로벌 선임 스페셜리스트를 만나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비법을 들어봤다.

 

 

 

새로운 틀을 만드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세상이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변하면서 조직의 리더들은 창의적 사고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과거의 익숙한 방식으로는 빠른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50여 년간틀에서 벗어나서 생각하라(Thinking out of box)’는 말이 창의적 사고의 비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단순히 틀을 벗어 던지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인식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 우리가 흔히(box)’이라고 부르는 게 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간단하게 말해 틀은 사람들이 사고를 하는 하나의 근거다. 사람은 누구나 틀이라고 하는 각각의 테두리를 쳐놓고 그 안에서 생각한다. 문제는 현재의 틀이 현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시기가 온다는 점이다. 이럴 때 더 유용한 새로운 틀을 찾아내야 한다.

 

새로운 사고의 틀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나의 기존 사고의 틀을 이해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소홀하다. 그렇다보니 새로운 틀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기존 틀을 살펴본다는 것은 내가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쉬운 예로 우리는 어렸을 때 무지개를 7가지 색깔로 이뤄졌다고 배웠지만 실제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무지개는 수많은 색깔들이 연결된 스펙트럼이다. 이는 단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실제 우리는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릴 때 휴리스틱(사물에 대해 이미 갖고 있는 사고방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새로운 틀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는의심하기.

 

 

의심하기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모든 것을 의심해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특히 낯익은 것으로부터의 유혹을 견뎌내는 것이 중요하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높이뛰기경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등으로 바를 넘는배면뛰기기술을 구사한다. 그러나 불과 50여 년 전 미국의 리처드 더글러스 포스베리라는 선수가 이 기술을 처음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기술이 우스꽝스럽다며 포스베리를 비웃었다. 배면뛰기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모든 선수는 바를 앞으로 넘는 정면뛰기를 하고 있었다.

 

 

 

Choi Hoon-Seok

앨런 아이니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뉴욕사무소 글로벌 선임 스페셜리스트는 비즈니스 창의성 분야 대가로 전략적 비전 정립, 시나리오 플래닝, 혁신적 아이디어 발상 등을 주로 연구한다. 전 세계 글로벌 기업 리더들을 대상으로 창의적 사고를 불어넣는 워크숍을 진행하며 기업들과 함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미래에 대비한 장기 시나리오 등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및 글로벌 제약회사, 북미 금융회사 등이 그의 파트너사다. BCG 내부 직원 창의력 교육도 담당한다. 캐나다 맥길대에서 수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컬럼비아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그러나 정면뛰기로는 그저 그런 선수였던 포스베리가 배면뛰기 기술을 이용해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서 배면뛰기는 이후 높이뛰기의 정석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결국 익숙한 정면뛰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틀인 배면뛰기를 찾아낸 포스베리가 높이뛰기의 역사를 다시 쓴 것이다. 새로운 틀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선입견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세상을 인식할 때 의존하는 틀에 대해 무언의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해선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의심하는 습관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서 어떻게 틀이 생기는지와 자기 자신을 옭아매는 편향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특히 내가 틀릴 수 있고 나의 머리가 정보를 잘못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사람들은 종종 충분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속단하고,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사람을 판단하며, 비교적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충동적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내 머리가 어떻게 나를 배신할 수 있는지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인지 편향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지 편향은 우리가 연역적 사고를 하든, 귀납적 사고를 하든 상관없이 발생한다. 두 개의 얼어붙은 연못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 연못에서는 100명의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고 다른 연못에서는 단 한 명도 스케이트를 타지 않고 있다. 당신은 어디로 가겠는가. 둘 다 꽁꽁 얼어붙은 연못이란 걸 알지만 우리는 한산한 연못을 놔두고 굳이 사람이 100명이나 있어 스케이트를 마음껏 탈 수 없는 연못을 선택할 것이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더 안전하다는 뜻이라고 무의식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듯 무의식중에 비논리적 추론에 따른 잘못된 판단을 자주한다. 내가 지금까지 수없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내가 현재 가장 의지하고 있는정신모형이 무엇인지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때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이 바로신념 감사(Beliefs audit)’. 신념 감사는 조직 혹은 개인에게 다양한 질문들을 던져 지금 개인 혹은 조직의 핵심 가정과 신념 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향후 발전시켜야 되는 신념과 바꾸거나 버려야 하는 신념을 구분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의심하기를 통해 기존의 틀을 버렸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의심하기가 끝나면 다음 단계는 다양한 가능성을 조사하는 것이다. 새로운 틀을 만들기 전에 새로운 틀에 영향을 미칠 주변 환경을 조사하는 단계라고 하겠다. 특히메가트렌드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메가트렌드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엄청난 사회적·경제적·정치적·환경적·기술적 변화를 말한다. 일시적 유행과는 다르다. 메가트렌드의 예로는 고령화, 도시화 같은 것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정보를 모아 메가트렌드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메가트렌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필립스의에어프라이어가 메가트렌드를 잘 활용한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필립스는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과 생활 습관이 변화하는 것을 발견하고 기름 없이 뜨거운 공기의 순환으로 급속히 재료를 튀기는 에어프라이어를 만들어 전 세계 80개국 이상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비만과 건강에 대한 관심 등이 메가트렌드로 자리잡는 것을 파악해 발 빠르게 대응한 결과다.

 

사고의 틀을 의심하고 새로운 메가트렌드 파악이 끝나면 이젠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확산적 사고를 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브레인스토밍이라고 말하는 단계다. 확산적 사고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확산적 사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의 수다. 때문에 자신이 항상 의존해온 엄격한 기준과 관례로부터 벗어나 비판이나 억측의 방해를 받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시간이다.

 

 

 

브레인 스토밍은새로운 틀 만들기보다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기에 가까워 보이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확산적 사고가 새로운 틀을 만드는 과정의 끝이 아니다. 확산적 사고로 만들어진 다양한 아이디어들은 이제 성공 확률 등에 따라취사 선택을 받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수렴적 사고 단계라고 한다. 수렴적 사고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시작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매일 쓰는 컴퓨터 마우스는 사실 1981년 제록스가 처음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우스가 애플 매킨토시와 함께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록스는 마우스라는 훌륭한 신제품을 만들고도 이를 시장에서 히트작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고를 하지 못해 희대의 첨단기술을 개발하고도 남 좋은 일만 했다. 수렴적 사고의 핵심은 아이디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당면한 핵심 목표와 쟁점을 기억하고 제안된 모든 아이디어를 검토해 적절한 제약과 결정 기준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만들어진새로운 틀이 항상 옳다고 할 수 있나?

 

영원히 좋은 아이디어란 없다. 아무리 훌륭하고, 탄력적이며, 창의적이고, 시의적절하다고 해도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틀은 수정, 개선,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체됨으로써 효과를 발휘한다. 때문에 항상 옳은 새로운 틀이란 없다. 우리는 매 순간 앞에서 제시한 단계들을 밟아가며 현재 나의 사고의 틀이 옳은지 판단해야 한다. 카람바 순간이라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에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듯한 경험을 뜻하는 단어다. 휴대전화 제조업체에는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가 카람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카람바 순간이 왔다면 지금 당신의 틀은 잘못된 것이다. 카람바를 경험했다는 것이 이미 회복하기 너무 늦었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순간에라도 틀을 재고해 보는 것이 지속적인 번영을 모색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틀에서 생각하기를 잘 실행한 예가 있다면?

 

라이언에어(Ryanair) CEO 마이클 올리어리(Michael O’leary)가 이런새로운 틀에서 생각하기를 적용한 CEO라고 생각한다. 올리어리는 현재의 정신모형을 의심하고, 관습을 타파하며, 고객 친화적인 새롭고도 성공적인 전술을 선보여 유명해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형 항공사들은 다양한 기종의 항공기를 이용해 범세계적 노선을 운항해 왔다. 또 여행사를 통해 항공권을 판매하고 대도시 인근에 있는 주요 공항을 연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이런 원칙들을 깨버린 게 라이언에어다. 라이언에어는 승객들이 여권과 예약번호만 제시하면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항공권이 없는 혁신적인 온라인 서비스를 개발했다. 항공권 판매 분야에서 여행사들을 제외시키기도 했다. 또 이 항공사는 단일 모델의 비행기만 운항함으로써 보잉(Boeing)으로부터 다른 항공사들보다 할인된 가격에 항공기를 구매하고 있다. 단일 모델의 비행기만 운항하면서 비행기 유지와 일정관리, 비행기 정비 훈련, 부품 재고 확보 등 다양한 측면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 라이언에어는 중단거리 비행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경쟁사는 항공사가 아니라 버스와 기차회사들이라고 말한다. 라이언에어가 신생업체로서 새로운 혁신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항공업계에 고착화돼 있던 몇 가지 틀을 의심하고 이를 개선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올리어리는 비행기 맨 뒷좌석 10줄을 없애고 승객들이 손잡이를 잡고 서서 탈 수 있는 입석 공간을 마련하는 방법도 구상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안전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봐야겠지만 수송 가능 승객 수를 늘릴 획기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창의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은 창의적이라고 하면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래서 창의적이라는 말에 압박과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새로운 틀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다. 프랑스의 빅(BIC)이라는 볼펜 제조업체가 있다. 이 회사는 수십 년간 볼펜을 만들어온 업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회사에 누군가가 앞으로 볼펜뿐만 아니라 일회용 라이터와 일회용 면도기를 만들어보자고 주장했을 때 분명 이 회사 임원진은 크게 반대했을 것이다. ‘우리는 볼펜 제조업체다라는 인식이 BIC의 임직원들이 가진 기존의 틀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회용 라이터나 면도기가 완전히 새로운 발명품도 아니었다. 질레트 등 면도기 업체나 라이터 제조업체에서 이미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우리는 볼펜 제조업체다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우리는 플라스틱 재료를 활용하는 업체다혹은우리는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만드는 업체다라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냈다. 즉 창의적이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제품 중 회사의 새로운 틀에 잘 부합하는 제품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찾아내 적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존 사고의 틀에 도전장을 던져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에 내가 생각하던 틀에서 도전을 해보고 새로운 것을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아내게 되면 분명히 창의력이 갖춰질 것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기존의 틀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창의력이다. 꼭 아주 멋지고 새로운 것만이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기존 사고의 틀이나 기존에 일을 해오던 방식 등을

철저히 무시하라는 건가?

 

기존 방식을 무조건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 가정과 제약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의심해보는 노력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적어도 기존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파악해보고 생각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상당수는 이 단계를 그냥 넘어가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흔히 창의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큰 회의실에 모여 커피와 간식 등을 가져다 놓고, 여러 종류의 포스트잇을 꺼내 이것저것 적어서 벽에 붙여가며 회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창의성은 이런 방식의 회의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실질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기존 가정이나 제약들, 우리가 생각해 오던 프레임을 쭉 나열해 놓고 하나하나 다시 집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의심을 해야 한다. 실제 처음 저가 항공사가 나왔을 때 저가 항공사들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 기존 항공사들이 갖고 있는 운행 방식을 하나하나 리뷰를 해가면서 새로운 틀을 정립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항공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종을 운영해야 하는가?” “비즈니스석이 꼭 필요한가” “좌석을 꼭 지정석으로 해야 하나?” 등의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꿔 나갔다. 하지만 모든 기존의 틀을 바꾼 것은 아니다. 꼭 기존의 모든 틀을 바꾸는 것이 창의적인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례로안전은 우선순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와 같은 기존의 틀은 계속 유지해 가는 것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존의 틀을 바꾸라는 뜻이 아닌 기존 틀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BIC이 과거 향수를 출시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데

이런 사례들은 새로운 틀(New Boxes)을 잘못 찾은

사례라고 볼 수 있나?

 

BIC은 스스로우리는 플라스틱 제품 제조회사다라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라이터나 면도기는 물론 나중에는 서핑 보드, 일회용 플라스틱 소재 휴대폰도 제작했다. 어느 정도 성공도 거뒀다. 그러나 향수는 다르다. BIC은 자신들이 플라스틱을 다루다 보니 화학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해 향수 및 화장품 시장을 기웃거렸지만 고객의 머릿속에 있는 BIC은 저렴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회사지 향수와는 맞지 않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험 정신과 실패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정신은 기업의 창의성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실패하지 않은 기업이 있다면 분명 충분한 시도와 실험을 해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실패에 대해 조직에서 문책하고 처벌하기 시작하면 조직의 창의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실패했을 때 더욱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만드는 문화가 조성돼야 자연스럽게 조직의 창의성은 높아진다. 그런 측면에서 글로벌 제약회사들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 등에 많은 시간과 돈을 쓰지만 실패 확률이 높기 때문에 실패에 관대하다. 꼭 제약회사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실패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다른 산업 부문에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업들의 창의력 수준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난 주로 한국의 대표 기업들과 일을 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혁신이나 창의력으로 상당한 평판을 받는 기업들이다. 한국 기업들 중에는 이미 창의력에 있어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기업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의 여지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YES’라고 답하고 싶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서유럽이나 미국 등과 비교해 위계질서가 뚜렷한 특징이 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장점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때로는 제약이 되기도 한다. 특히 창의력 측면에서 그렇다. 일단 기업의 맨 윗 단인 최고경영진 층에서 제시하는 아이디어가 현업에서 제시하는 아이디어보다 유익하다는 기본적인 관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것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아시아 국가들의 특징이 아무래도 다양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창의력이 제한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보면 창의력이나 혁신의 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실제 아이디어가 기업의 최고경영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반복되다보면 실무진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국식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문화가 한국 기업들의

초고속 성장을 이끈 배경이었다는 분석도 있는데.

 

한국뿐만 아니라 위계질서가 명확하게 서 있는 조직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이런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 문화 안에서도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방식이 지금까지 높은 효율을 보였다는 것은 많은 아시아계 기업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 위계질서가 창의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시기가 왔을 때 최대한 위계질서로부터 벗어나 오픈된 형태로서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다양한 의견들이 표명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기본적인 조직의 경영 접근 방식에 대해서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창의력이 필요한 일을 진행할 때만큼은 위계질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말단 직원이 사장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때 그 이야기가 사장으로부터 부정적인 판단을 받을까봐 위축된다든지, 두려워한다든지 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모든 아이디어들이 동등하게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라이너스 폴링 박사의 말처럼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최선의 방법은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민정(중앙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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