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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비즈니스 마스터 클래스(KBM) 지상중계

중년의 위기 겪고 있는 한국 ‘무서운 회장님’만으로 지속성장 어렵다

장세진 | 179호 (2015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중년의 위기에 빠진 한국에 필요한 것

성장 전략. 더 이상 벤치마킹할 선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시점. 잘못된 전략이라도 아예 전략이 없는 것보다 나음. 일단 무언가 시도하면서 수정해 나가는 편이 불확실성을 핑계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바람직.

 

성공적인 M&A를 위한 제언

재무적 관점에서만 접근하지 말고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연 M&A가 최적의 대안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함. M&A, 전략적 제휴, 내부 성장 등 다각화 방법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CDT(Corporate Development Team) 필요. 손쉬운 체크리스트에 의존하지 말고 성공적 M&A 사례를 모델로 삼아 자기 기업과 산업에 맞춰 수정. 과거 M&A 경험에서 나온 교훈을 정리하고 매뉴얼화해 추후 인수합병에 활용.  

 

편집자주

KAIST 경영대학 경영자과정(www.business.kaist.ac.kr/executive)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경영자과정(Executive Education) 경영대학원 순위에서 4년 연속 아시아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이달부터성장전략 △CRM·옴니채널모바일 커머스 등 주요 경영 이슈를 단기간(3) 동안 집중 교육하는 ‘KAIST 비즈니스 마스터 클래스(KBM)’를 운영합니다. 첫번째 프로그램 주제인저성장시대의 성장전략과 관련한 장세진 KAIST 경영대학 교수의 강연내용을 요약합니다. ※ 이 강연의 정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유준수(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1. 불확실성하의 성장전략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라는 말이 있다. 40대로 접어든 이들이 불안안과 걱정에 시달리며 내면의 갈등을 겪고, 이로 인해 여러 행동 패턴에 변화가 생기는 현상을 가리킨다. 중년의 위기에 빠진 이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인생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재평가하면서 미래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중년의 위기에 빠진 한국

현재 한국도 국가 전체적으로 중년의 위기에 빠져 있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저성장 시대다. 아무리 외부 여건이 좋아진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두 자릿수 성장률을 다시 기대하기란 어렵다. 글로벌화의 진척으로 청년 실업률, 이른바비숙련 노동자들의 실업률은 계속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저성장·고실업 상황에서 한국은 중간소득국(middle income country)에서 고소득국(high income country)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 과거 눈부신 경제 성장을 통해 개도국 지위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선진국으로 올라서지는 못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와 대한항공의땅콩 회항사건은 우리나라, 우리 기업이 중년의 위기라는 덫에 갇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을 만큼 경제적 성장을 이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시스템이나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는 국내 기업들도 많지만땅콩 회항사건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두 사례 모두 중년의 위기 가운데 벌어지는 내면의 갈등이 표출된 결과다. 겉으로는 선진국,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실제 내부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간극이 너무 크다.

 

대부분 한국 기업들이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어보자. 스마트폰의 가격이나 포지셔닝을 보면 애플을 경쟁사로 두고 있지만 현실에선 샤오미 취급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품질은 도요타, BMW 수준으로 올라섰고 가격도 합리적이지만 현대차만의 개성이 부족하다. ‘볼보=안전’ ‘벤츠=럭셔리처럼현대라는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성장전략이 필요한 때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어느 때보다 성장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우리나라 기업에는 전략이 필요치 않았다. 팔로어(follower)로서 선도기업을 벤치마킹할 때에는 전략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소위무서운 회장님만 있으면 된다.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한 방향은 이미 선도 기업이 제시했으므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서 시간을 단축하는 노력만 기울이면 됐다. 삼성전자가 그랬다. TV는 소니를, 반도체는 인텔을, 휴대폰은 모토로라를 벤치마킹해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현재 삼성전자는 과거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던 소니를 제치고생산성 프런티어(productivity frontier)’ 선상에 올라 서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다. 향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림1)

 

 

지금 당장 삼성전자가 프런티어 선상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다시 말해 업계 최고의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펼치고 있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한때 세계 가전시장을 선도했던 소니의 쇠락을 기억해야 한다. 소니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기술로의 전환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고, 결국 급속하게 쇠퇴했다. 기술 진보(아날로그디지털)로 외연이 확대된 새로운 생산성 프런티어 수준으로 올라서는 데 실패한 것이다. 생산성 프런티어는 고정돼 있지 않다. 수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통해 그 경계를 우상향(右上向)으로 끊임없이 이동시켜 나간다. 프런티어가 계속 움직인다는 건 현실에 안주해 있다가는 금세 확장된 프런티어의 안쪽으로 떨어져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삼성전자는 과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기에 발 빠르게 대응함으로써 현재 애플과 같은 프런티어 선상에 올라 서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차별화 우위를 늘려 애플과 유사한 전략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비용우위에 보다 더 집중해 샤오미나 화웨이 같은 중국 업체들과 경쟁할 것인가를 놓고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의사결정은 비단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년의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많은 기업들에 공히 적용되는 문제다. 어느 방향이 옳다고 100% 단정하기란 힘들다. 다만 어느 길로 갈 것인지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원을 배분하는 것, 이른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에는 이론을 달 수 없다. 그리고 전략은, 아무리 잘못된 전략이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

 

 

잘못된 전략이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

스위스에서 벌어진 실화다. 산악 대원들이 알프스 산으로 동계훈련을 나갔다. 처음 출발할 때에는 날씨가 좋았지만 며칠 뒤 기상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설상가상 지도와 무전기를 가지고 있던 분대장마저 실종됐다. 대원들은 며칠 동안 구조되기를 기다리며 눈보라 속에 갇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대원 중 한 사람이 배낭에서 지도를 발견했다. 그 지도를 보고 대원들은 길을 찾아 나섰고, 덕분에 모두 구조됐다. 이후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대원들이 참고했던 지도는 스위스가 아니라스페인지도, 알프스 산맥이 아닌피레네산맥 지도였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잘못된 지도라도 아예 지도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 만약 대원들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면 100% 동사했을 것이다. 반면, 잘못된 지도일망정 그것에 의지해 길을 찾아 나서다 보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확률도 있겠지만 살아날 확률 역시 존재한다.

 

전략은 마치 지도와 같다. 많은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핑계로 의사결정을 미룬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가는 100% 망할 수밖에 없다. 틀린 전략이라도 일단 무언가 시도하면서 수정해 나가는 편이 아예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함에 있어 최고경영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판단 능력자신감두 가지다. 먼저, 여러 대안 중 어떤 것이 최적의 선택지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자사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 면밀히 분석해 M&A 전략을 취해야 할지, 전략적 제휴를 할 것인지, 자체 R&D 개발을 추구할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일단 결정을 내렸다면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신이 한 선택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전략을 정해 놓고 정작 자신감이 부족해 목표 달성을 위한 자원 배분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전략적 자신감은 훌륭한 목적과 가치관, 비전이 있을 때 배가된다. 또한 환경적 불확실성에 따라 다양한 내·외부 피드백에 대해 각기 다른 가중치를 부여하는 능력을 갖출 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2. 사업다각화와 신사업 진출

마이클 포터는 다각화가 성공하려면산업매력도 테스트(진입하려는 산업이 구조적으로 매력적인가?) △진입비용 테스트(기회비용을 포함한 진입비용이 진입 후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낮은가?) △개선도 테스트(신규 사업이 다른 사업 분야와 범위의 경제를 통해 경쟁 우위를 창출할 수 있는가?) 등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자가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한 산업매력도 검증은 꽤 정확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입비용과 개선도 검증 과정에선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M&A 과정에서승자의 저주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M&A의 성공은 인수 가격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 가운데에는 마치 치열한 인수 경쟁에서 최종 인수자로 선정되는 걸 최종 목표로 삼은 듯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 가지 테스트 중 특히 개선도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다각화를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하는 포트폴리오 관리나 비효율적 기업을 인수해 회생시키는 경우가 아니라, 해당 기업 입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진출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하거나 경영자원을 공유함으로써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기존의 업체보다 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사와는 다른 방법으로 경영자원을 결합(다각화)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를 창출해야만 한다.

 

홍콩 기업 리앤펑은 사업다각화를 통해 신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의류 무역 중개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의류에 특화된 종합상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리앤펑은 제조업체들이 중개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출입을 하게 되면서 상사의 입지가 축소되자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공급망 관리 서비스로 재정의했다. 리앤펑은 전 세계에 단 하나의 공장도 없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제조원가가 싼 공장을 찾아 디자인, 원자재 조달, 제조 관리, 운송, 통관은 물론 매장 운영에 이르기까지 고객사가 원하는 모든 업무를 대행해 준다. 고객사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전 세계 40여 개국에 퍼져 있는 3만여 개의 공장과 200만 명 이상의 공급업체 직원들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엮고 있다.

 

단순 무역 중개상에서 글로벌 소싱업체로 거듭난 리앤펑의 성공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3년마다 정기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리앤펑은 이 3년 동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처음 세웠던 목표와 계획을 바꾸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 성과 평가도 1년이 아니라 3년 단위로 이뤄진다. 이렇게 3년이 지나면, 어떤 분야에 성장이 필요하고 어떤 분야에 인수합병이 필요할지에 대해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계획을 세운다. 두 번째 성공 요인은 분권화된 시스템과 인센티브 제도다. 리앤펑은 기업가정신이 뛰어난 300개의 사업조직에 자율권을 주고 각기 목표를 세워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 목표를 초과 달성했을 경우 성과를 공유하는 데 있어 상한선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인센티브 시스템 역시 발달돼 있다. 마지막 성공 요인은 비공식적 네트워크다. 리앤펑에는 300개의 사업 단위 간 친밀도 높은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 협업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리앤펑 사례는 성공적인 다각화를 위한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첫째, 시너치 창출은 CEO나 그룹에서 주도하는상의하달(top-down)’ 방법이 효과적이다. 개별 사업부서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추진하는하의상달(bottom-up)’ 방식의 다각화로는 시너지를 창출하기 어렵다. 둘째, 공급자가 주도하기보다는 고객의 니즈를 먼저 파악하는 고객지향적 다각화가 새로운 사업모델을 통해 가치를 창출할 확률이 높다. 셋째,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는 자발적인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

 

 

3. M&A를 통한 성장 전략

과거 한국 경영자들은 M&A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초기 M&A 경험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시절세계화의 기치하에 대기업 중심으로 M&A가 이뤄졌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LG의 제니스(Zenith) 인수, 삼성전자의 AST 인수 사례가 대표적 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M&A보다는 주로 내부 성장 전략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최근 한국 기업들이 M&A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일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내부적으로 자신감이 생긴 것도 한 요인이지만 무엇보다 내부 성장 전략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전적으로 내부 성장 전략에 의존하는 포스코는 1999년 글로벌 철강업계 1위였지만 2012년 기준 글로벌 5위로 내려앉았다. 반면 미탈은 인수합병을 통해 작은 제철소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 현재 세계 최대의 철강업체(아르셀로 미탈)가 됐다. 한국 기업 중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 모델을 제시한 대표적 사례는 두산그룹이다. 두산은 2000년 한국중공업, 2005년 대우기계 및 AES, 2006년 밥콕, 2007년 밥캣 인수 등 적극적 M&A 전략을 취했다. 이를 통해 한계 사업, 장기 비전이 없는 사업들을 정리하고 과거 소비재 중심에서 중공업 및 장비사업 중심으로 핵심 사업군을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M&A는 향후 10∼20년 사이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앞으로는 구조조정 차원의 M&A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기업 성장을 위해 전략적으로 M&A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는 구조조정 차원의

M&A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기업 성장을 위해

전략적으로 M&A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다.

 

성공적 M&A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전략

한국 기업들은 많은 경우기업을 인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려보다는얼마나 싸게기업을 인수하느냐에만 관심을 갖는다. 학교에서도 M&A 관련 과목은 재무 관련 전공에서만 다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되면 M&A를 가치평가나 자금조달 측면에서만 접근하게 돼 정작 M&A를 하는가라는 근본 질문을 잊어버리기 쉽다.

 

성공적인 M&A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전략이다. M&A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내가 추구하는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연 M&A가 최선의 대안이고 최적의 선택지인지부터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한다. M&A는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아니라 한 가지 방법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M&A를 활용할 수도 있고, 전략적 제휴를 꾀할 수도 있으며, 자체 개발을 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통합적 시각에서 검토해야 한다.

 

M&A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크게 포지션, 핵심 역량, 경쟁 구도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해봐야 한다. (그림 2) , M&A로 인해 자사의 포지셔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어떤 핵심 역량을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으며, 경쟁 구도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M&A를 추진하는 전략적 이니셔티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를 통해 효율성을 증대하려는 것인지, 기술이나 브랜드 같은 무형 자산을 이용해 시장지배력을 키우려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경쟁 구조를 창출해 경쟁 방법을 바꾸려 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그 결과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시너지 창출 메커니즘을 확립해야 한다.

 

 

 

손쉬운 체크리스트를 따르기보다 성공적인 M&A 사례를 통해 교훈을 도출하라

보통 M&A 관련 서적을 보면성공적인 M&A를 위한 체크리스트같은 내용이 제시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공적인 M&A를 위해선 손쉬운 체크리스트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실제 성공 사례를 모델로 삼아 자기 기업의 상황과 산업 여건에 맞춰 수정할 필요가 있다. 시스코 사례는 이런 측면에서 많은 기업들에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시스코는 전 세계적으로 M&A 전략을 가장 잘 수행하고 있는 회사 중 하나다. 2014년 말 기준 시스코가 인수한 기업 수는 총 174개다. 1993년부터 99년까지는 매년 평균 6.8개 기업을, 2000년 이후로는 연평균 8.4개 기업을 인수했을 정도로 M&A에 적극적이다. 전문 경영인인 존 챔퍼스가 20여 년간 경영을 맡아 M&A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결과, 중소 규모의 네트워크 장비업체였던 시스코는 오늘날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M&A를 추진해 온 건 사실이지만 다각화 비중으로 따져볼 때 시스코는 내부 성장에 훨씬 더 무게중심을 두는 기업(내부 성장 70%, 인수합병 및 전략적 제휴 30%)이다. 다시 말해 내부 성장 전략을 근간으로 삼으면서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없는 역량의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M&A 전략을 활용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시스코가 내부 성장과 M&A 전략을 조화롭게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CDG(Corporate Development Group)라는 조직이 큰 역할을 했다.

 

흔히 M&A를 하기 위해선 인수 관련 업무를 전담할 M&A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는 좋은 관행이 아니다. M&A 전담팀을 만들면 M&A 업무에만 치중하게 된다. 그 결과 내부 R&D 투자, 파트너십, 합작투자, 전략적 제휴 등 기업 성장을 위한 다른 대안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하는 맹점을 갖게 된다. M&A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여러 가지 성장 옵션을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시스코는 명확한 전략 목표 아래 CDG라는 조직을 운영하며 M&A는 물론 합작법인, 파트너십, 자체 R&D 투자 등 다양한 성장 옵션을 검토하고 통합적으로 관장했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 M&A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한국 기업들도 M&A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통합적으로 성장 옵션을 검토할 수 있는 조직, 혹은 사람을 꼭 두어야 한다. 이는 중소기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 혹은 특정 조직에서 M&A, 전략적 제휴, 내부 성장 등 다각화를 위한 다양한 옵션을 함께 고려하며 필요에 따라 적시적소에 최적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PMI는 피인수기업에 대한 가치산정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한다

M&A 전략의 성패는 인수후통합(PMI)에 따라서도 크게 좌우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PMI M&A 프로세스가 다 끝난 뒤부터가 아니라 M&A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시작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림 3) 특히 가치산정과 협상 단계에서부터 PMI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PMI에 대한 계획이 확립돼 있어야 기업 인수 후 얼마만큼의 비용을 절감하고 어느 정도 매출을 증대할 수 있는지 파악해 가치창출 메커니즘을 세울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인수 가격을 산정해 협상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최근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 간 ‘2·17 합의서 수정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언론에 보도됐다. 2·17 합의서에는 지난 2012년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5년간 보장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쉽게 말해 PMI 5년 동안 미루겠다는 소리다. 이런 경우라면 가격 협상을 할 때 프리미엄을 낮게 줘야 한다. 인수 후에도 상당 기간한 지붕 두 가족생활을 하겠다는 선언인 만큼 당연히 값을 적게 쳐 주는 게 맞다. 만약 PMI 1년 안에 마무리한다고 가정했을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5년 뒤에 PMI를 마무리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IT 부문 통합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 점포 통폐합으로 인한 비용 감소 효과, 기업 고객 시장 확대에 따른 매출 증대 효과 등을 4년이나 앞당길 수 있는 만큼 기대되는 시너지 창출액도 그만큼 커진다. 당연히 인수가격 가치 산정도 높아져야 한다. 이처럼 피인수기업에 대한 가치를 산정할 때는 PMI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 놓고 얼마나 빨리, 얼마나 순조롭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지를 시나리오별로 감안해 협상에 임해야 한다.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매뉴얼화해 추후 인수합병에 활용하라

담배 회사였던 필립모리스(현 알트리아)는 적극적인 M&A를 통해 식음료 사업으로 다각화를 꾀함으로써 담배 산업 사양화에 따른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하지만 필립모리스도 밀러맥주, 제너럴푸드, 크래프트 등을 인수해 성과를 내기 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필립모리스가 처음으로 인수한 기업은 추잉검 제조업체 리글리였다. 하지만 몇 년 뒤 회사를 매각했다. 가격탄력성이 낮은 담배와 달리 추잉검은 가격에 너무 민감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면도기 업체를 인수했지만 역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시장이 너무 작은 게 문제였다. 이 같은 시행착오를 통해 필립모리스는 가격에 민감하지 않으면서 시장도 크고 자사의 유통 파워를 활용할 수 있는 사업 분야를 M&A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그리고 밀러, 제너럴푸드, 크래프트 등을 인수해 성공적으로 신사업 분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은 여러 차례의 M&A를 통해 학습하며 과거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와 교훈을 집약해 체계적이고 정교한 나름의 M&A 프로세스를 확립해 이를 루틴(routine)화하고 있다. 실증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소 7건 이상의 M&A를 해야 루틴화할 수 있을 만큼의 노하우가 축적된다고 한다. 따라서 M&A를 성장 전략으로 고려하고 있는 기업들은 처음부터 큰 기업을 대상으로 M&A를 하려고 하기보다 소규모 딜(deal)부터 시작해 각각의 M&A 거래에서 얻은 교훈을 정리하고, 궁극적으로 자기 회사에 최적화된 M&A 프로세스를 루틴화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장세진KAIST 경영대학 교수 schang@business.kaist.ac.kr 정리=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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