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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종합

융합과 통섭… 산업 경계 넘어 Arena로 간다

박찬희 | 179호 (2015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경영전략

 

 ‘산업(industry)’은 경영자를 위한 개념이 아니다. 800㏄ 경차와 최고급 스포츠카를 같은자동차 산업이라 할 수 있을까? 산업의 틀을 넘어서 변화를 읽고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모색하는 것은 경영전략 분야의 오랜 과제다. 리타 건터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다양한 사업자가 고객집단과 맞물려 변화해 가는 arena를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플랫폼 사업자를 매개로 한 양면시장과 네트워크 효과는 arena연결과 변화를 이끄는 동인(動因)이다. 특히 이질적 사업의 결합에는 교차 네트워크 효과가 작용하고 있다. 융합과 통섭의 시대, 경영자는 삶의 현실에서 다양한 의미를 읽지 못하면 사업 기회를 만들 수 없다.

 

 

 

‘산업’은 경영자의 개념이 아니다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산업을 넘어서 새로운 경쟁의 틀을 생각해야 한다.”

 

이젠 그다지 새롭지 않은 말이다. 정보기술(IT)의 발전과 보급으로 전혀 다른 산업에 속한 제품과 서비스가 결합하는 일이 부쩍 늘고 있기도 하다. 애플과 구글이 자동차를 만들고 알리바바가 모바일 결제에 이어 TV에까지 손을 뻗친다는 뉴스가 대표적이다.

 

‘산업(industry)’은 제품시장의 경쟁을 중심으로 한 개념이다. 비슷한 성격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묶어서 농림어업, 제조업, 숙박업 등을 설정한 뒤 각각의 카테고리 안에 채소작물, 운송장비, 호텔 등으로 나누는 것이 이른바 표준산업분류(SITC) 체계에서 코드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산업정책의 주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할 때도 있다. 800㏄ 경차와 최고급 스포츠카를 같은자동차 산업이라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스포츠카 회사는 고급 패션 브랜드와 연계해서 같은 고객 집단을 공략하기도 하는데 고객도, 사업모델도 다른 경차 회사를 같은 범주로 묶어 어떻게 정책을 편다는 뜻일까?

 

주변을 돌아보면 산업의 경계를 판단하기가 애매한 사례가 정말 많다. 예컨대 대도시 근교의 주말농장에서 펜션과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면서 식당과 편의점 사업까지 하고 있다면 이 농장 주인은 과연 어떤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실제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개념적인 범주인산업을 염두에 두진 않는다. 나의사업모델이 중요하고 이 모델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버텨줘서 돈을 벌게 해줄지만을 고민할 뿐이다. 제품과 서비스는 사업모델의 일부이고 관련된 부품, 원재료, 판로 등 다른 사업자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비슷한 사업을 하는 경쟁자는 사실 나의 사업기반을 확대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협력자이기도 하다. 별 경쟁관계에 있지 않는데도 표준산업분류상 같은 칸에 있다는 이유로같은 산업’이라고 여길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기존의 산업분류가 여전히 정책의 대상이 되는 데는산업별 노조란 말이 상징하듯 해당 분야의 직업체계라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경차와 스포츠카는 고객도 사업모델도 다르지만 정비사 면허는 같다. 이는 중세 영주들의 사업면허나 길드(guild) 체제의 유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세든, 현대든 경영자의 역할은 영역을 넘어선 경쟁과 협력에 있다. 따라서 산업이란 범주는 적어도 경영자를 위한 분류는 아닌 게 확실하다.

 

 

산업을 넘어선 경쟁과 협력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산업경제학, 특히 일정한 구조적 특징을 가진 산업에서 기업의 경쟁적 행태가 어떻게 전개되고, 이것이 어떻게 산업의 경쟁구도와 수익률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한 일련의 연구들을 종합했다. 일명 ‘Bain IO’라 불리는 이 연구들은어떤 산업이 돈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보여줬다. 포터의 경쟁전략(5-force model)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현장 전문가들은 분석 대상이 되는산업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같은 패션산업이라도 고가의 명품 브랜드와 저가 의류는 전혀 다른 사업이며, 공급업자나 구매자와의 관계도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는산업을 넘어선 경쟁을 포터 교수는 대체적 압력(substitute pressure)으로 정의해 분석에 포함시켰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분석의 범위를 어떻게 잡을지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포터 교수는 기존 산업의 틀에 안주하지 말고 동태적 분석을 통해서 좋은 사업 분야(industry segment)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으니산업이란 범주는 그에게도 넘어서야 할 대상이었다. 클레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이러한 대체적 압력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경영자의 역할은 끊임없이 이런 변화를 읽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데 있다. 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은 이를 두고편집증 환자나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판카즈 게마와트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 교수는 분석대상을산업이 아닌 경영자가 제품, 사업활동, 지역 등 다양한 차원에서 사업활동의 폭(scope)을 결정한 결과인 포지셔닝(positioning)에 뒀다. 흔히 얘기하는사업모델과 거의 같은 개념인데 경쟁자의 모방, 다른 형태의 기술이나 제품이 가져오는 대체효과(substitution), 관련 사업자가 이득의 큰 부분을 빼앗아가는 홀드 업(hold-up) 등은 사업모델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요인들이다. 갤러리와 레스토랑이 융합된 사업모델은차만 마시는유행에 밀려나거나 옆의 유료 주차장만 돈을 버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기존 산업분류를 고집해서는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애덤 브란덴버거 뉴욕대 교수는 특정 제품 및 서비스 시장에서 단위 기업들 사이의 경쟁을 넘어 관련된 사업자들 사이의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게임이론의 틀에서 설명하고 코피티션(Coopetition)이라 이름 붙였다.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여러 사업자들이 맞물린 관계 속에서 가치가 창출되고 배분되는 과정에 초점을 둔 셈인데 더 유리한 게임을 선택하거나 만드는 전략이 핵심이다. 경쟁과 협력의 대상(player)과 폭(scope), 나아가 규칙(rule)을 바꾸는 전략이 대표적인 예다.

 

다양한 사업자들이 맞물려 경쟁과 협력을 통해 함께 생존하고 성장, 소멸하는 구조는 자연생태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 마이클 해넌 스탠퍼드대 교수와 존 프리먼 UC버클리대 교수는 이를 군집생태학(population ecology)의 방법론을 적용해서 분석했다. 개체 수준, 즉 단일 기업이 아닌기업생태계가 분석의 대상이 된 것인데, 이는 진화론의 틀을 적용해 경제의 성장과 변화를 설명한 리처드 넬슨 컬럼비아대 교수와 시드니 윈터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의 연구로 이어진다.1  ‘생태계적 조화’ ‘진화론적 선택과 변화를 주장하는 논의들은 이들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대문시장 내 가게 몇 개가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대문시장이 번성할 수 있을지, 중국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동 상권에 밀려 모래만 가득한 아프리카 사막처럼 몰락하진 않을지 생각해 보는 방식이다. 삼성전자가 다른 관련 사업자들을 망가뜨리며 돈을 벌어봐야 결국 같이 망할 수 있으니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의 배경이다.

 

리타 맥그래스의 ‘arena’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구글이 영상미디어, 지리정보에 이어 자동차 사업까지 영역을 넓히는 세상에서 마이클 포터 교수의 산업분석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정 산업에서의 경쟁우위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더 넓은 범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전략적 포인트를 다루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다양한 사업 분야가 서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경영자는 특정 고객집단(customer segment)과 이를 대상으로 제공되는 제품과 서비스(offer), 이들을 이어주는 일정한 장소(place)로 이뤄진 arena를 전략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여기서 벌어지는 다양한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조율하고 사업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논리다.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이런 변화들이 서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산업 중심의 경쟁우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게 맥그래스 교수가 주장하는 핵심 내용이다. 차라리 이러한 변화와 연결 속에서 꾸준히 실험적 시도를 벌여 빠르게 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얘긴데 이른바일시적 우위(Transient Advantage)’란 전략 개념이다.

 

“급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라는 막연한 주장에 비해 맥그래스는 적어도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빠른 변화가 다양한 사업들과 연결되면서 더욱 복합적인 전략적 과제가 되며, 고객집단을 중심으로 한 변화와 연결에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는 논리다. 경영자는 새로운 arena의 가능성을 살펴 전략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맥그래스가 제시하는 arena는 앞에서 본생태계에 비해서 구체적이다. 특히, 특정 사업자를 중심으로 제한된 범위에서변화와 연결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경영자에게 쉽고 편한 개념이다. 대체적 압력’ ‘파괴적 혁신이라 부르던갑작스런 변화의 구체적 내용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면 맥그래스가 주목한 변화와 연결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누가 주도권을 갖게 될까?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적 연결구조와 양면시장, 플랫폼 효과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을 이해해야 한다.

 

토마스 아이즌만 하버드대 교수와 안드레이 하기우 하버드대 조교수는 게임, 미디어,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발견되는 네트워크 효과와 양면시장에 착안해 전혀 다른 영역으로 여겨온 사업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돼 가치를 만들어 내는지, 경영자는 어떻게 사업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지 구체적 전략을 제시했다. 어도비(Adobe) PDF 파일을 읽는 일반 사용자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기반을 만들고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사업자들에게서 돈을 버는 양면적 가격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신용카드 회사가 좋은 가맹점 기반과 좋은 가입자 집단을 만들어 둘 사이에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항공사, 호텔, 통신사와 제휴를 통해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과정도 설명할 수 있다. <그림1>은 신용카드 회사를 중심으로 양면시장과 사업적 제휴의 관계가 형성된 상황을 보여준다.

 

다양한 사업자들과 고객, 나아가 정책당국이 맞물려 가치가 창출되는 상황에서산업이라는 갇힌 틀에서 전략을 생각할 수는 없다. 사실 이는 < 1>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앞에서 짚은 모든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전쟁과 외교도 여러 나라들이 동맹체제를 맺어 이뤄지듯 경쟁과 협력, 연결과 변화는 전략의 기본이다.

 

‘산업’을 넘는 연결과 변화, 핵심은외부성

다른 분야로 여겨지던 사업들이 서로 연결되고 심지어 하나로 융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맞물려서 가치가 생기면 아무리 막아도 자석처럼 서로 당기게 마련이다. 동대문시장에는 옷 가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 볼거리가 같이 있고, 배송업체, 수선집도 있다. 경비업체, 주차장, 청소업체도 같이 맞물려 있다. 이동통신 사업, 첨단의 통신기술로 무장한 통신서비스 사업자와 장비업자만 있을까? 사실 돈은 스마트폰 액세서리 제조업체나 대리점 인테리어 설치업자가 더 쉽게 벌고 있다. 기존 산업연관분석은 이와 같은 업종들 사이의 관계는 보여주지만 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

 

 

 

 

 

 

 

산업을 넘는 연결과 변화에는외부성(externality)’이 존재한다. 이것이 arena를 형성하고 네트워크적 사업관계에서 양면시장(two-sided market)과 플랫폼(platform)2 을 만드는 핵심 동인(driver)이다. 사과농장을 열면 꿀벌이 모여들어 옆에 있던 양봉업자가 돈을 번다. 영리한 사과농장 주인은 직접 양봉을 하거나 미리 땅을 마련해 양봉업자에게 빌려준 뒤 돈을 번다.

 

외부성의 가장 기본적인 예인데 사립대학을 설립하고 옆에 상가를 지어 돈을 버는 경우와 같다. 조금 복잡한 예를 생각해 보자. 1년에 500만 대를 생산하는 자동차 회사는 50만 대를 생산하는 경우보다 훨씬 유리하다. 이른바 사업기반(installed base) 효과인데, 완성차와 부품 생산에서 규모의 경제로 원가경쟁력이 생기고, 더 많은 고객을 위해 넓은 정비망과 판매망을 갖춰서 쉽게 찾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후자와 같이 더 많은 사용자가 맞물려서 발생하는 외부성을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라고 한다. 통신, 온라인 게임, 채팅, 중매 등 더 많이 모이면 기회가 더 늘어나는 사업들에서 특히 중요하다. 생산원가가 별로 들지 않아 네트워크 효과가 압도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업자들이 사용자들과 함께 네트워크적 구조로 맞물려 가치를 창출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연결하는 사업자는 주도적 입지를 갖게 된다. 플랫폼 사업자라 하는데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성격의 사업관계가 연결된 양면시장이 형성되기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운영체제(OS) PC업체들에 공급하는 한편 윈도에서 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개발자들로부터 확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매개하는 양면시장이 형성되는데 PC 사용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네트워크 효과다. 더 많은 PC 사용자들이 윈도 OS를 사용하면 서로 문서나 정보를 교환하기 쉬워지는 네트워크 효과에 더해 PC 사용자기반이 크면 이를 대상으로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개발자들이 모이는 교차 네트워크 효과(cross-side network effect)가 작동한다. 아이즌만과 하기우의 양면시장 전략은 교차 네트워크 효과와 양면시장에 대한 경제학과 IT 분야의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3

 

교차 네트워크 효과는 서로 다른 성격의 사업을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좋은 고객이 모이면 좋은 상점이 모이고 먹거리, 볼거리가 생기는 동네시장의 원리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이베이나 11번가는 IT를 활용해 더 많은 고객과 사업자를 쉽게 연결하는 사업을 만들어 냈다. 반면에 특정한 구매자 또는 판매자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면 직접 시장을 형성하기 때문에 이 같은 연결기능(intermediary)은 역할을 잃게 된다. 브랜드와 유통망이 확실한 의류회사가 온라인 마켓에 입점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면시장이 형성되고 네트워크 효과가 작동하면 고객과 사업자들이 급속히 몰리고 후발주자들이 따라잡기 어려워지는 승자독식(winner-takes-all) 현상이 발생한다. 플랫폼 사업자는 무료로 (혹은 보조금으로 유인해) 고객기반을 확보한다. SKT(통신사업자)가 삼성전자와 손을 잡고 보조금 정책을 펴 일정한 가입자 기반을 확보하면 관련 애플리케이션이나 액세서리 개발에 경제성이 생기고 결국 데이터 사용요금이 걷히고 이로 인해 단말기 생산단가가 낮아져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훌륭한’ 업체나 고객을 선별적으로 확보해 네트워크의 기반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유명 백화점은 샤넬과 같은 최고급 브랜드는 머리를 조아리며 모시면서 신생 업체는 실적이 나쁘다며 잘라낸다. 억울하면 몸값을 키워야 하니 광고를 하고 드라마에 협찬을 하게 된다.

 

여러 개의 플랫폼 사업자가 경쟁할 때 특정 플랫폼으로 고객과 관련 사업자들이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DVD를 중심으로 한 영상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 소비가 온라인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가 대세가 되면서 PC나 모바일 기기가 중심이 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때로는 MP3플레이어가 스마트폰으로 융합됐듯 다른 플랫폼에 흡수되는(enveloped) 경우도 발생하는데 그 중심에는 사용자가 있다. 사용자가 MP3나 카메라보다 휴대전화를 많이 쓰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플랫폼이 되고 이를 중심으로 사업자들의 관계가 형성된다. 사용자를 중심으로 네트워크 효과의 방향이 달라지는 셈이다. 결국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UX)을 바탕으로 이뤄진 선택이 플랫폼 사업자의 사용자 접점(User Interface)을 결정짓고 네트워크적 구조의 주도권을 좌우하게 된다.

 

 

Apple Car, Google Car의 속사정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전 세계 사용자들의 눈과 귀를 장악하고 있다. 아이튠즈의 비중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애플이 사용자 접점에서 콘텐츠의 소비와 유통에 확실한 입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애플이 오디오, 디스플레이, 지리정보, 통신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해 사용자에게 제공할 경우 자동차가 갖는 단순한 운반수단 목적이 아닌대화하고 즐기는공간으로서의 가치는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애플이 제공하는 즐거움이 사실상 고만고만한 차의 성능이나 안전성을 압도한다면 사용자들은 애플이 외주 생산한 자동차를 살 수도 있다. 이것이 애플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논리의 핵심이다.

 

 

 

 

 

구글은 모바일 기기의 운영체계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음성과 영상이 전송, 구현되며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위치정보 등 수많은 개인정보가 축적된다. 검색과 메일을 통해 축적된 개인정보와 결합될 수도 있다. 자동차가 스마트 기기가 돼 날씨, 도로상황, 운전패턴 등을 고려해서 최적경로를 추천하고 중요 일정을 알려줄 수도 있다. 교통상황과 도로조건을 계산해서 운전자를 돕는 자율주행 차량의 경우 구글의 정보와 시설물의 시스템이 맞물리면 더욱 강력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구글이 제공하는 기능이 중요할수록 사용자들은 구글이 외주 생산한 자동차를 기꺼이 구입하려 할 것이다. (졸고 있는 동안 천관녀를 향하는 김유신의 말은구글 자동차(Google Car)’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자동차의 운전기능이 중요한 사용자는 구글 자동차를 사고,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중요한 사용자는애플 자동차(Apple Car)’를 사게 된다면 사용자 요구에 따라 다른 부품과 내장 액세서리, 주변기기가 조립될 것이다. <그림 2> <그림 3>은 현재 완성차 조립업체가 주도하는 구조와 애플, 구글과 같이 사용자 접점(UI)을 장악한 전장세트 업체가 주도하는 구조로 바뀌는 상황을 비교한다. 이를 플랫폼 흡수(platform envelopment) 현상이라 해석할 수 있다.

 

애플과 구글은 사용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교차 네트워크 효과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기존 완성차 업체의 플랫폼 지위를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직은 자동차라는 제품의 성격상 민감한 안전 이슈가 있고 애플이나 구글이 제시하는 기능이 장착되는 데 일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EV)의 시대가 돼 모듈생산과 통합이 쉬워지거나 IT 기반의스마트 도로가 나올 경우 현재 완성차 업체의 입지는 흔들릴 수 있다. 애플과 구글은 이런 변화를 읽고 먼저 사용자들의 머릿속에 플랫폼 사업자의 입지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DBR Mini Box

 

 

TV 광고에 숨은 교차 네트워크 효과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이어서 월셋집을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이 한창 TV광고로 나오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와 무엇이 다를까? 전국의 월셋방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소개료도 낮출 수 있겠지만 이사에 관련된 다양한 사업기회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선 포장이사 서비스를 연결할 수 있고 컴퓨터 시스템과 보조 장비를 임대하고 인터넷 회선을 붙이면 관련 업체들에서 보조금을 받아낼 수도 있다. 동네 상가 안내를 골라 붙이거나 실내에 모니터를 두고 광고를 유치할 수도 있다. 필자의 상상이니 지켜볼 일이다.

 

 

걸그룹걸스데이의 혜리가 모델로 나선 모바일 부동산앱다방광고.

 

융합과 통섭이 필요한 이유

전문적 연구성과들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현실에서는 이미 양면시장과 플랫폼, 교차 네트워크 효과가 활용되고 있었다. 시골 장터의 약장수는 공짜로 쇼를 보여줘 손님을 모아놓고 약을 팔았다. 그럴듯해 보이는 바람잡이를 풀어 약의 신뢰성을 높이는 작전도 펼쳤다. 대형 쇼핑몰은 더 넓은 공간에 더 많은 고객을 모아서 먹거리, 놀거리에 자동차 정비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UX가 반영된 UI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교차 네트워크 효과가 작동하는 셈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은 온라인 쇼핑몰의 사례에서 보듯 더 넓은 범위에서 더 다양한 사용자와 사업자가 맞물릴 수 있게 만들어줬는데 디지털 기기의 컨버전스는 이런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은 사용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직장인에게는 통신수단이자 간단한 결제업무를 처리하는 소형 컴퓨터다. 출퇴근 길에는 뉴스를 확인하는 정보 터미널이 된다. 등하굣길 학생들에게는 게임기가 되고, 음성통화를 주로 사용하는 노인들에게는 자녀와 소통하는 유일한 공간이 된다. 또 때로는 응급 호출의 소중한 수단이 된다. 스마트폰을 통해 사용자와 연결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은 회사원의 시간 사용패턴과 정보요구, 정보기기에 겁을 먹는 노인들의 사정을 이해해야 수익모델로 연결시킬 수 있다. 90년대 영화접속 PC통신에 대한 아련한 환상을 더해줬듯 스마트폰에 얽힌 감동적 사연을 담은 TV드라마는 사용자들에게 또 다른 문화적 의미를 더해줄 수도 있다.

 

융합은 다양한 삶의 양식이 합해진 결과이며 통섭은 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좁아진 세상에서 IT의 발달은 경영자에게 융합과 통섭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것이고 사용자의 경험과 선택은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다. 사물인터넷(IoT)은 더욱 다양한 각도에서 사용자의 행동을 추적해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낼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스마트폰에 관련된 삶의 현실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는 경영자는 아무리 성능이 좋은 단말기가 있어도 제대로 된 사업기회를 만들 수 없다. 플랫폼은 원래 다른 영역을 이어주면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융합과 통섭의 매개체라는 점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아이즌만 교수와 하기우 교수는 양면시장에서 플랫폼 전략을 다루는 일을 ‘3차원 체스게임과 같다고 비유한 바 있다. 필자는 다양한 사업자들이 산업의 틀을 넘어 맞물려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만드는 구조를 <그림 4>와 같이 표현해봤다. 사용자를 축으로 산업들 사이의 연결 관계가 발생하는 구도에 네트워크 효과를 더해 본 것이다. 사용자의 경험과 선택은 플랫폼 사업자를 통해 이러한 연결과 변화를 이끌어내고 맥그래스 교수가 주장하는 arena가 형성된다.4

 

더 생각해볼 점들

원래 세상만사는 연결돼 있다. 경영자는 이를 찾아내서 돈을 벌고, 그 결과로 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융합이 나온다.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비관련 다각화는 과연 핵심역량을 벗어난 몸집 불리기에 불과할까?

 

맥그래스 교수식으로 생각하면문어발도 고객의 다면적 요구가 끌어낸 결과이거나 규모와 범위를 필요로 하는 정책환경의 결과로 형성된 arena의 단면도일지 모른다. 비관련 다각화가 수익률이 낮다면 경영자가 자의적으로 구축한 체제가 비효율적이었을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또 일감 몰아주기와 같이 다른 경로로 개인적 이득을 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용자의 요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업가치를 무작정 무시해선 곤란하다. ‘표준산업분류에서 멀리 있는 사업들을 함께하니 잘못된 경영이라는 주장은 침대에 키를 맞춰 다리를 자르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공정거래법은 특정 산업에서의 경쟁제한 행위가 가져오는 악영향을 규제하려 한다.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장악해 사업모델을 구축했다면 경쟁제한 행위는 산업의 틀을 넘어 발생하고 악영향을 입증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융합의 시대에 경제적 측정이 어려운 가치가 중심이 되면 더욱 힘들어진다. 애플이 충성스러운 고객집단을 바탕으로 부품업체와 개발자들에게 갖는 강력한 힘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구글이 검색정보와 메일을 바탕으로 구축한 고객기반과 정보를 독자 OS에 얹어 사업모델로 만들면 사용자 선택권은 어떻게 될까? 연예산업에시장지배력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지만 콘텐츠의 힘은 더욱 막강해져 일부 소비자는노예를 자처한다. Arena, 혹은 생태계를 대상으로 한 규제는 논의가 겨우 막 시작된 정도에 불과하다.

 

직업훈련 정책은 여전히 산업분류의 틀을 따르고 있다. 우리는 심지어 산업과 직업을 연계해역량조건을 정의하는 심란한 작업을 국가가 나서서 하고 있다. 채용과 학교 교육도 여기 따르라는 조용한 압박과 함께. 융합과 통섭의 시대에 더구나 창조경제를 내건 마당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삶의 현실을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일이 되는 시대에 기능올림픽 시대의 생각만 고집하는 것은 아닐지 곱씹어볼 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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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er, Geoffrey G., and Marshall W. Van Alstyne. “Two-sided network effects: A theory of information product design.”Management Science , 51.10, 2005

 

박찬희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cparkdba@ca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전략경영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실전 체험을 통해 얻은 전략의 지혜를 기업 및 정부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데 힘쓰면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박찬희 |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전략경영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실전 체험을 통해 얻은 전략의 지혜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알리는 한편 기업과 정부에 도움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시류에 거슬러 힘에 부치면 수업과 운동으로 버틴다.
    cparkdba@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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