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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김지현 SK 플래닛 실장

경계파괴, 당신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김현진 | 179호 (2015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경영전략

 

 

IT와 제조가 융합되는제조 3.0’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같은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는 산업 간 경계의 붕괴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더해 네트워크, 그리고 이들의 중심점에 자리 잡은 서비스 영역까지 영역 구분 없이 경계를 넘나들게 된 현 상황은 ‘provice(product+service)’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 제품을 출시한 뒤에도 사용자와의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개선점을 찾기 위해서는 서비스 마인드를 탑재해야 한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계획해 탄생한완생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미생인 상태로 출발해 사용자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진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기존 제조업에서 익힌 성공 공식을 완전히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남궁용주(이화여대 국제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스마트폰이 만든 생태계의 영향력은 단순히 인간이 가상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린 데 그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변 사물들이 연결되고 제조와 생산 영역에 걸친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를 불러왔다. 이 패러다임은 새로운 제조의 혁신을 목표로 IT와 제조가 융합된다는 의미로제조 3.0’으로 불린다. 이 같은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는 산업 간 경계 붕괴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가 어떻게 산업 간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2년 전 쓴 저서 <포스트 스마트폰, 경계의 붕괴>를 통해 진단한 김지현 SK플래닛 커머스전략실장은당시에 진단한 현실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전방위적으로 경계의 붕괴가 일어났다이러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앞에 체질 개선을 주저하는 기업은 기술의 변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도태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실장은안드로이드를 개발하던 구글이 하드웨어 회사인 모토롤라를 인수하는 식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영역이 붕괴되는 정도에 그쳤던 2년 전에 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물론 네트워크, 그리고 이들이 구심점으로 삼는 서비스의 영역이 함께 무너지면서 특정 기업이 어떤 산업에 속하는지 규정하기가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김지현 실장은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모바일사업전략 이사로 근무한 바 있으며 현재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겸직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포스트 스마트폰, 경계의 붕괴> <모바일 이노베이션> 47권이 있으며 사물인터넷 외에 모바일, O2O, 옴니채널, 핀테크 등 IT 기반의 신규 사업 전략과 혁신 등의 분야에 대한 연구와 사업 경험을 가지고 있다. 현재 SK플래닛에서 OK캐시백, SYRUP, 기프티콘 등 핀테크 관련 사업전략을 이끌고 있다.

 

 

위협적인 경계파괴 현상

IT 기업들이 타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충돌을 빚은 비즈니스에는 무엇이 있을까.

구글만 놓고 봐도 현재 버라이존과 AT&T의 망을 빌려 네트워크(통신업) 사업까지 진출하고 있다. 또 통신사인 SK텔레콤은 아이리버 인수를 통해 하드웨어 세계에 발을 들였다. IT 플랫폼의 구성요소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네트워크(그림 1)와 이들이 구심점으로 삼는 서비스가 완전히 경계를 잃게 된 셈이다. 아마존은 Amazon payment를 통해 결제 대행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페이팔을 소유한 이베이는 PG(Payment Gateway)1 사업자이기도 하다. 구글월렛, 애플페이, 삼성페이, 스타벅스가 투자한 스퀘어(Square), 더 나아가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등은 모두 서로 결제 대행 시장 내 경쟁자다. IT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업계에서도 이런 경계 파괴 현상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현대카드가 금융 당국이 카드사들의 부수업무 규정을 네거티브제로 전환하는 것과 발맞춰 오프라인 서점사업에 진출하기로 최근 발표한 것 역시 경계 붕괴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경계 파괴 현상은 IT가 주도하는 경계 파괴 현상과 크게 관련이 없을 것으로 여겨지는 업종에서도 위협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의 메가 트렌드일까.

2010년 이전 우리는 치킨, 족발, 피자를 시켜먹으려면 상가수첩이나 전단지를 보고 주문을 했다. 이 시장의 규모가 연간 800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 시장이 스마트폰 속 배달앱으로 대체되고 있다. 상가수첩, 전단지를 제작하던 사장들은 갑자기 회사의 매출이 반으로 줄어드는 사태에 손을 쓸 시간도 없이 당하게 된 셈이다. 국내 배달앱 3사인 배달의 민족, 요기요, 배달통의 2014년 매출액은 약 600억 원에 달하며 배달의 민족이라는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월 500만 건의 주문이 이뤄지고 있다. 전단지 제작 회사 사장님들은 스마트폰이 그저 다음, 카카오톡, 네이버, 그리고 삼성전자나 SKT 같은 기업들의 생존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예상치 못했던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배달의 민족이 2010년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회사의 기업가치에 대해 눈여겨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초,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우아한 형제 120억 원을 투자받았으며 2014년 말 일본 라인과 함께 일본 배달 시장에 진출하며 글로벌 진출을 도모했다. 음식 배달 시장이 발전한 한국의 시장 규모와 글로벌 진출의 기회, 다양한 배달 카테고리로의 사업 확장을 염두에 둘 때 배달 앱의 기업가치는 1조 원 이상으로 평가받기 충분할 것이다.

 

 

자신의 차량을 등록해 승객을 소개받을 수 있게 한 차량 중계 플랫폼우버카카오택시역시 기존 콜택시 사업자들을 위협에 빠뜨리고 있다. 2014년 전 세계 37개 국, 140여 개 도시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우버에 대한 소비자 호응은 뜨겁다. 이를 토대로 우버의 기업가치는 2014 12 412억 달러( 45조 원)로 뛰었다. 몇 달 사이 우버의 기업가치는 약 100억 달러가 더 뛰어 현재 약 500억 달러( 56조 원)로 평가된다. 스타트업 기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그렇다면경계의 붕괴에서 자유로운 안전지대는 없다고 보나.

그렇다고 본다. 내비게이션이나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 같은 소형 디지털 디바이스를 만드는 기업들이 좋은 예다. 아이나비를 만들던 팅크웨어는 국내 1위 내비게이션 제조사였다. 그런데김기사’ ‘T같은 모바일 길 찾기 서비스들이 도입되며 위기를 맞아 결국 2011년 코스닥 상장사인 유비벨록스에 인수됐다.

 

2005년경 국내 내비게이션, PMP와 같은 소형 디지털 디바이스를 만드는 기업들은 고공 성장기를 경험했다. 컴퓨터와 디지털카메라 기반의 디지털 세대가 안착되면서 MP3, Divx(Divx라는 코덱으로 압축된 고화질의 동영상 파일), JPG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사용량이 늘어났고 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디바이스에 대한 호응도 커져갔다. 하지만 2010년부터 본격화된 스마트폰의 확산이 이 기기들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시장이 크게 축소됐다. 그나마 이 업체들은 IT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에버랜드나 CGV가 경계 붕괴의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위기감을 더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가상현실 기기를 만드는오큘러스가 제조하는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헬멧 형태로 된 디스플레이 장치)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선보인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2 장치인홀로렌즈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현실인 공원이나 영화관 대신 환상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할 것이다.

 

오큘러스는 페이스북이 지난해 23억 달러에 인수해 화제가 됐다. 페이스북은 오큘러스의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일까.

아직까지 상용화된 공식 제품이 출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이 이 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새로운 서비스 패러다임을 서비스가 아닌 디바이스를 기반으로 이끌기 위해서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은 가상계에서 만든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를 끌어모으고 그런 트래픽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한다. 그런데 그 서비스라는 것이 손으로 만지고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용자가 마우스 한 번의 클릭만으로 쉽게 떠날 수 있다. 그 사용자가 떠나가는 순간 비즈니스 모델은 사라지고 회사도 사라지게 된다. 이미 2000년대 초 우리 기억 속의 프리챌, 코리아닷컴, 아이러브스쿨 등의 서비스들이 그런 전철을 밟았다. 그렇기 때문에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 등은 끊임없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며 사용자를 붙들어 두려고 한다. 이미 엄청난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페이스북도 그런 이유로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을 인수했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한 것은 새로운 서비스를 구현할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간 인터넷 서비스는 제조사가 만든 21인치 모니터와 4인치 스마트폰 속에서 제조사가 제공하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기반으로 개발돼왔다.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디바이스가 아닌 새로운 디바이스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 방송사 PD가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네모난 TV가 아닌 동그란 TV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가정하자. 그가 삼성전자에 가서 동그란 TV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면 과연 만들어줄까. 하지만 방송사 입장에선 만일 동그란 TV에 적합한 방송 프로그램이 확연한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다면 한번 시도해볼 만하다고 여길 것이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은 이제 새로운 판에서 새로운 경험의 서비스를 만들어 차별화를 꾀하고자 한다. 그런데 기존 제조사들이 그런 새로운 서비스에 맞는 새로운 디바이스를 개발해줄 리 없으니 직접 제조까지 하게 된 것이다. , 페이스북은 오큘러스를 통해서 기존 TV, PC, 스마트폰, 태블릿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서비스 경험을 사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서비스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스스로 하려면 시행착오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스타트업을 인수한 것이다.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의 제조업 도전은 숱한 실패도 따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대표적 실패 사례와 원인을 진단하면.

아마존의 스마트폰인파이어폰 2014 7월 출시 이후 3주간 35000대가량 판매되는 데 그쳤다. 1주일에 수백만 대 이상 팔리는 아이폰이나 갤럭시폰에 비해 형편없는 성적이다. 비싼 가격과 안드로이드 필수 애플리케이션과의 호환성 문제 탓에 시장점유율은 0.02%에 불과하다. 파이어폰은 아마존의 특화된 서비스를 사용하기에는 좋았지만 범용성이 약했다. 아마존 전용폰 용도였다면 처음부터 아예 공짜로 제공했어야 했다. 구글 글라스 역시 용도가 제한적이었기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론은 범용성에 있다.

 

이러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이 도전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메일, 검색, 유튜브, 지도 등 수십 가지 서비스를 갖춘 구글은 전 세계의 인터넷 서비스 가운데 시장지배력이 가장 높다. 하지만 구글이 갖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현실의 진짜 데이터들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사용자 데이터는 모두 구글 서버에 저장되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뤄지는 우리의 하루 일상 데이터는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스타벅스에서 결제한 금액과 시간, 아침에 일어난 시간과 출근한 시간, 샤워한 시간과 샤워 온도, 언제 어디서 친구와 만났는지 등의 현실 속 데이터는 보유하지 못했던 것이다. 구글의 관심은현실의 지배력을 높이는 것이고, 이를 위해 제조에 대한 투자와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구글은 2014 1, 32억 달러에 사물인터넷(IoT) 관련 스타트업인 네스트랩(Nest Lab)3  을 인수했다. 이 기업은 온도 조절 장치와 화재 경보 장치를 만드는 제조사다. 왜 인터넷 회사인 구글이 유튜브 인수가의 2배나 되는 비싼 가격에 이 같은 하드웨어 제조사를 인수했을까. 이는 네스트를 통해 향후 IoT 시장에서 중요한 산업 트렌드와 핵심 기술 및 서비스 가치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현실의 데이터들은 사람의 개입 없이 인터넷으로 축적되기 때문에 그 어떤 서비스보다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 초기 사용자가 하드웨어를 구입하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현실 데이터가 가상으로 전송되기 때문에 하드웨어를 통해 초반에 고객 접점을 마련한 기업이 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오큘러스의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와 아마존 파이어폰의파이어플라이

 

 

 

아마존이 집 앞까지 물건을 배달해주는 기술을 준비하며 내놓은 드론

 

국내 기업들은 이런 시장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먼저 국내 인터넷 기업들 중 제조업을 직접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네이버나 다음카카오는 페이스북이 디바이스를 만들 때 지켜만 보고 있는 격이니 이 분야에선 많이 뒤처진 셈이다. 반면 국내 제조업체들은 데이터 비즈니스나 인터넷 서비스 비즈니스에 관심이 높고 실제 구체적인 움직임도 보인다. SK텔레콤의 아이리버 인수 및 IoT 관련 팀 운영도 그런 사례고 삼성전자도 관련 기술 개발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사실 구글의 제조업체 인수 행보는 실제 가정 내 가전기기 시장의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에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 역시 홈 네트워크 시장의 지배를 위해 2014 8, 미국 워싱턴DC에 있는스마트싱즈 2억 달러에 인수했다. 스마트싱즈는 가정 내 기기들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제어하는홈 오토메이션 플랫폼을 개발하는 회사다. 삼성전자는 이미 가정 내의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콘에 이르기까지 백색가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 기기를 기반으로 홈 네트워크에 도전하면 구글보다 빠르게 가정 내 IoT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단 삼성전자가 부족한 것은 삼성전자 외의 외부 사업자들이 참여하는 서비스 플랫폼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또 하드웨어가 아닌 서비스와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기반의 플랫폼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인수는 이를 메우기 위한 전략이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친구였지만 가전기기, 홈 네트워크 시장에서는 서로에게 강력한 라이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무한경쟁의 영역파괴 시대, provice로 대비하라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이 이런 트렌드에 대응할 수 있는 솔루션이 있을까.

새로운 제조의 혁신을 목표로 IT와 제조가 융합되는제조 3.0’ 시대에 맞춰 ‘provice(프로비스·product+service)’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설명해보겠다. Provice를 구성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각각 별개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IoT 시대에는 이 두 개가 통합될 것이다. <포스트 스마트폰, 경계의 붕괴>가 산업 간 경계 붕괴 트렌드 자체를 다뤘다면 provice는 경계가 붕괴된 현 상황과 이에 대비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다.

 

미국 벤처기업위딩스가 만든 체중계가 대표적 사례다. 이 체중계에는 무선인터넷 센서가 부착돼 있다. 사람이 체중계에 올라서면 체중ㆍ근육량ㆍ지방량ㆍ체질량지수 정보가 PC나 스마트폰으로 바로 보내져 실시간으로 개인 신체 건강정보를 관리할 수 있다. 과거엔 체중계를 잘 만들어 팔기만 하면 끝이었다면 provice 시대에는 하드웨어(기기)뿐 아니라 여기에 탑재된 소프트웨어(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과거엔 체중을 재고 난 뒤 머릿속으로 숫자를 외어야 했지만 이 제품은 소프트웨어에 저장해 누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치의 또는 퍼스널트레이너와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애플워치 등 IoT와 관련된 서비스는 모두 마찬가지다. IT 플랫폼을 구성하는 3가지 요소(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의 중심에는서비스가 있다. 즉 서비스의 관점에서 나머지 세 요소를 바라봐야 한다. ‘서비스 마인드란 예컨대 이전의 전통적 제조시대에는 얼마나 예쁜 체중계를 만드는지, 이후 고장 시 수리를 잘해주는지(AS) 정도에 그쳐 사실상 제품 판매 후 구매자와 소비자 간 직접 접촉은 아주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provice 시대의 사물들은 기기 판매 후 오히려 본격적으로 구매자와 소비자 간 관계가 형성된다.

 

Provice 시대에 제조업체는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

그간 한국의 제조업이 세계적으로 성과를 거둔 이유는 일본의 제조업을 빠르게 추격하며 더 앞선 기술로 성능 좋은 제품을 값싼 가격에 공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provice 시대의 제품은 하드웨어의 성능이나 제품 판매가보다는 서비스의 편의성과 확장성으로 평가받는다. , 하드웨어와 연결된 서비스의 가치가 핵심 경쟁요소다. 또한 수익모델 역시 제품의 판매가 아닌 서비스 사용료나 광고, 중계 기반의 수수료 같은 다양한 형태로 2차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익화를 추구해야 한다. 이와 같은 서비스 기반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와 서비스 인사이트가 필수적이다.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

Provice 시대에 모든 사물과 서비스는 상호 연결됨으로써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연결되지 않은 서비스는 생존할 수 없다. , provice 생태계에 편입되지 못하면 사용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생태계에 보다 긴밀하게 편입하기 위해 특정한 API B2B 서비스를 유료로 사용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다. 구글지도, 트위터, 페이스북의 API 중 일부는 B2B 사업자에게 유료로 판매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provice 생태계를 키워 보다 많은 사용자와 공급자를 끌어모을 수 있어야 한다.

 

 

Provice의 수익모델로는 하드웨어를 사용하면서 필수적으로 연계 사용해야 하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받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에버노트, 드롭박스 등의 서비스처럼 기본적으로는 무료지만 활용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서비스에 유료 가입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provice를 통해 확보된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광고, 사용자 분석 등의 마케팅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네이버와 구글은 사용자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 새로운 검색 광고 시장을 개척했다. Provice를 통해 사용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B2B 기반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러한 수익모델을 철저한 아날로그 기반 기업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20년 전 웹이 태동할 무렵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하던 다음, 네이버, 구글 같은 기업들 역시 수익모델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했다. 또 유료로 서비스하던 SMS를 무료로 제공하던 카카오톡이 이렇게 연간 수천억 원 이상의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할지 누구도 감히 예측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기존 비즈니스 구조와 다른 형태의 사업 모델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확신한 사람들이 신규 서비스를 통한 새로운 사업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구글이 인수한 사물인터넷 관련 스타트업 네스트랩의 화재경보장치네스트 프로텍트

 

IoT 패러다임에서는 기존 무료 서비스 기반의 광고 마케팅 수익이 아닌 데이터 기반의 입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대두될 것이다. 그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꿈과 확신을 가진 자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해낼 것이다. 기존 것을 지키려는 전략보다 새로운 것을 위해 기존 자산도 포기할 수 있는 혁신이 필요하다.

 

 

 

 

 

 

 

숙박 공유 서비스에어비앤비와 차량 중계 플랫폼우버’, 마텔이 태블릿에서 가동되는 게임앱과 연동해 작동하게 만든 장난감, ‘앱티비티’(위부터)

 

사실 provice를 수용할 수 있는지를 떠나 비용의 문제 때문에 규모를 갖춘 일반 산업군의 기업들이 새 시대에 대한 도전을 꺼릴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는 원가가 100원짜리 제품에 50원 마진을 붙여 150원에 파는 식으로 사업구조가 단순했다면 앞으로는 한 번 만든 뒤 서비스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하므로 계속해서 운영비가 들어간다. 일정 기간 내 투자 대비 효율을 따져온 기존 기업에선 적응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 맞다. 2010년 출범한 카카오톡 역시 2013년까지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었다. 수익성을 도모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중 게임이 도화선이 돼대박이 터진 것이지 이전의 시도는 다 실패했다. 중요한 것은 3년이란 긴 시간을 꾸준히 투자할 수 있었던 용기와 도전정신이다. 이게 바로 서비스 정신이다. 이를 감당하려 하면 사람과 기업 마인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존에 제조업을 운영하던 A 업체가 융합의 시대를 맞아 기존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서비스를 접목하는 혁신을 시도한다고 치자.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

사람부터 바뀌어야 한다. 고정관념을 깨고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사장 임기가 대략 3년이었던 기업에서 월급쟁이 CEO가 장기 투자를 각오해야 하는 provice를 시도하는 게 사실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감지해 오너를 설득하고 전 사원들이 이에 대비한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게 그의 새로운 역할이 될 것이다. 이제는 원가와 공급가를 얼마로 결정해야 할지를 측정하는 일은 1차적인 고민이 될 것이고, 우리가 판 제품이 서비스를 통해 어떻게 고객들에 의해 계속 사용될지, 이를 위해 어떻게 고객 밸류를 높여나가야 할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혁신을 통해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다음 할 일이다. 서비스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 어떤 수익 모델을 형성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이후 조직의 목표달성 정도를 측정하는 KPI(Key Performance Indicators)도 달라져야 한다. 예컨대 하드웨어 판매를 통한 판매 성과가 여전히 임직원을 평가하는 KPI여서는 진정한 혁신이 이뤄질 수 없다. 고객 밸류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등을 측정하는 새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의 변화를 살펴보면 갈수록 변화의 가속도가 붙어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를 읽으면서 기업이 전략적 대응 방안을 도출하면 이미 늦다. 변화를 읽으려 하기 전에 변화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이 변화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변화 전략은 성공 확률이 낮다. 시장의 변화를 먼저 나서서 주도하며 업의 본질을 재정의해야만 시장을 앞서갈 수 있다.그런 면에서 아마존이 유통산업에서 벗어나 IT 인프라, 솔루션 사업으로 다각화하고 다양한 하드웨어를 제조하면서 콘텐츠 유통 산업으로 진출하는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 기존에 가진 역량과 본업에 스스로를 가둘 필요가 없다.

 

구글이 현실계의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 인수를 감행한 사례처럼 데이터의 확보 작업도 중요할 것 같다.

차세대 패러다임의 중요한 가치는 디지털이 접목된 사용자와의 접점에서 발생되는 고객 데이터에서 찾아야 하는 만큼 사업 전략 구상 시에 무슨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려는지, 그것을 어떻게 수집해야 할지에 대해 명확히 정의를 내려야 한다.

 

그전에 더 중요한 것은 그 데이터를 왜 확보해야 하는지, 고객은 그 데이터를 왜 기업에게 공개하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찾아야 한다. , why에 대한 답을 찾은 이후에 what how를 고려해야 한다. IoT 패러다임 이전부터 이미 금융사, 유통사, 인터넷 서비스 업체는 고객에 대한 데이터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그간 소유한 데이터들과 새로운 IoT 시대에 얻게 될 데이터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달라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터넷 비즈니스가 본격화되면서 e메일, 카페, 캘린더, 뉴스, 동영상, 모바일 비즈니스의 성장과 함께 사진, 캘린더, 메신저와 전화번호 등의 개인 데이터들이 쌓여갔다. 이들 데이터는 기존 개인정보와 달리 다양한 서비스 연계를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승인하에 이 데이터들은 보다 나은 서비스로 진화하는 데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기존 금융, 유통사의 개인정보와 다른 점은 고객과의 접점이 늘 서비스를 통해 연결돼 있어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수시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 깊은 기업일수록, 또 과거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 경험이 있는 대기업일수록 체질개선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혼자가 아닌 다른 기업과의 연대나 제휴, 투자, 인수를 기반으로 시작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습관과 성격을 바꾸기 어려운 것처럼 기업 또한 업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 쉬울 수 없다.

 

Provice는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다. 그 새로운 길은 정해져 있지 않고 만들어가야 하는 만큼 큰 조직과 성공경험을 가진 기존 사람들보다 새롭게 도전하는 작은 조직에서 실행하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일 수 있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회사의 차세대 성장 동력을 직접 수행하려 한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회사 내 핵심 인력과 기존에 가진 자산을 지원해 실행 방안을 찾는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특히 잘나가는 기존 사업이 있을 때에는 관성의 법칙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저항과 거부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이폰 화면을 자동차 내 디스플레이와 연결한 애플카플레이’ () 17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테슬라의 내부 대시보드

 

하지만 provice 시대에 중요한 것은 서비스 플랫폼인 만큼 하드웨어에 대한 개발과 생산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하기보다는 타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나 인수를 통한 접근이 더 적합하다. 그 이유는 서비스 플랫폼의 개발과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즈니스의 부가가치가 서비스를 통해서 발굴되는 만큼 하드웨어에 투입되는 비용은 고정비보다는 변동비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례로킥스타터라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가진 개인과 기업이 아이디어를 올려두고 사용자들의 투자를 받는 중계 서비스다. 이곳에 그간 세상에서 만나보지 못한 기발한 사업 아이템들이 등록되고 있다. 상품이 개발돼 판매되기도 전에 아이디어만으로 사람들의 선구매와 투자를 받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개발자는 아이디어의 시장성과 사업 가능성 타진은 물론 초기 투자금까지 확보할 수 있다. 기존 제조, 생산, 유통, 소비 프로세스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제조를 쉽게 시도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게다가 3D프린터 시장의 발달과 중국, 인도 등을 통한 저렴한 부품 조달을 통해 제조업의 창업 문턱이 낮아진 상태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에서의 제품 전략은 신중하고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판매 수요를 예측하고, 이를 위한 유통과 마케팅에 대한 전략안을 짜임새 있게 구상한다.

 

반면 provice 스타트업들은 아이디어를 3D프린터와 IoT 관련 오픈 소스와 아두이노(손바닥만 한 크기의 컴퓨터로 다른 외부 기기와의 연결을 통제, 제어하기 위한 기기)와 같은 개방형 칩셋을 활용해 실물 크기의 모형(mock-up)으로 개발한다. 이렇게 개발한 모형으로 테스트를 거듭하며 제품을 개선하고, 이를 킥스타터 등에 등록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시장성이 입증되면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을 위한 준비에 나선다. , 처음부터 완전한 상품으로서의완생을 꿈꾸지 않고미생인 상태로 사용자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제품 생산의 전 단계 진화를 해간다.

 

 

 

레고가 내놓은 지능형 로봇 장난감마인드스톰

 

‘미생’인 상태로 진화를 꿈꾼다는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원래 인터넷 서비스업 자체가 이런 속성을 갖고 있다. Provice를 이루는 product service 중에 더 중요한 철학은 service에 담겨 있다. SK텔레콤의 T맵만 봐도 3년 전 버전과 현재 버전은 완전히 다르다. 카카오톡도 예전엔 보이스톡, 기프티콘 같은 부가 서비스가 없었지만 사용자의 목소리, 사용 경험 등을 통해 꾸준히 진화시켜나가고 있다. 제품과 서비스가 구분 없이 통합되는 IoT 시대의 상품은 product가 아니라 service가 완전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에 완성되는 일은 아니다. 물건을 만드는 주체가 능동적으로 문제점을 개선해 제품 사용주기 내내 고객 만족도를 책임지는 린(lean) 스타트업4 방식을 채용하는 것이 적합하다. 핵심은 사용자인 소비자에게 부족한 제품일지라도 출시 이후 사용자 반응과 의견을 적극 수용해 빠르고 수정 보완하는 것이다.

 

Interview: 김지현 SK 플래닛 실장

김지현 실장은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모바일사업전략 이사로 근무한 바 있으며 현재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겸직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포스트 스마트폰, 경계의 붕괴> <모바일 이노베이션> 47권이 있으며 사물인터넷 외에 모바일, O2O, 옴니채널, 핀테크 등 IT 기반의 신규 사업 전략과 혁신 등의 분야에 대한 연구와 사업 경험을 가지고 있다. 현재 SK플래닛에서 OK캐시백, SYRUP, 기프티콘 등 핀테크 관련 사업전략을 이끌고 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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