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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미러리스의 추격자 전략

후발자 우위, 협력, 현지화… 미러리스 카메라로 싸움의 판을 바꿨다

고승연 | 173호 (2015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전략,혁신,마케팅

 

 

소니는 과거 워크맨, TV 등 첨단 가전제품의 대명사로 통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미러리스 카메라가 소니의 대표주자가 됐다. 2010년 여름, 기존 DSLR 카메라 선도기업이었던 캐논/니콘과 한판 승부를 벌이기 위해 시장을 ‘DSLR 시장에서렌즈교환식 시장으로 재범주화하고 자신의 기술력으로게임체인저가 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선발기업과의 시장격차가 크고 추격 기업의 기술과 재조합 역량이 뛰어날 때 가능한경로개척형 추격자 전략의 성공이라 분석하고 있다. 소니의 성공요인은 다음과 같다.

1) 소비자의 잠재적 욕구를 파악해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경박단소하게 만드는 메카트로닉스 기술이 또 한번 통했다.

2) 빠른 신제품 출시를 통해계획된 진부화에 성공했고 다양성 마케팅을 추진했다.

3) 후발기업의 우위를 적극 수용, 활용했다.

4) 외부 협력을 통해 약점을 보완하고 개방적 마인드를 발휘했다.

5) 현지 마케팅에 대한 존중과 지원에 적극 나섰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상찬(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3학년) 씨와 유준수(서강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세기의 소니는혁신의 대명사로 통했다. 마치 지금의 애플처럼 도도하게 놀라운 기술과 디자인·사용자경험(UI/UX) 혁신을 선도하며 생각지도 못한 제품을 만들어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소니를 전 세계의 혁신아이콘으로 만든워크맨역시 소비자 조사도 매우 부정적이었고 내부 엔지니어들조차 출시를 반대했지만 당시 소니의 수뇌부가 성공을 믿고 밀어붙여단일제품 역사상 최고 성공작 중 하나로 만들어 낸 케이스다. “소비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모른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 떠오르는 일화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영광이 됐다. 더 이상 소니라는 회사를 보고선도 기업’ ‘글로벌 최고 전자기업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1년 만 해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당시 안도 구니다케 소니 CEO소니의 전자제품들을 서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다들 소니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10여 년간 소니는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겪었다. 소니는 주력제품이었던 TV시장에서 선두자리를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넘겨줬고, ‘워크맨으로 가장 먼저 만들어낸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에서도 참패했다. 스마트폰시장에서마저 존재감이 없어졌다. 1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종 국제 신용평가기관이 내린 소니에 대한 신용등급 평가와 전망은 민망할 수준이 됐다. 2012년 초 S&P는 소니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하향 조정하면서 신용등급 전망을부정적이라고 제시했다. 무디스사는 2012년 가을 소니 신용등급을 투기등급 직전까지 강등한 데 이어 2014 1월에는 투기등급으로 내리기도 했다.

 

 

 

 

 

 

 

이런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소니도 변신했다. 디지털이미징사업부, 카메라와 이미지센서 기술을 가진 바로 그 사업부도 소니 영광 재현에 나섰다. 그들은선도자 시절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았다. 기꺼이 추격자가 됐다. 사실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소니의 기술력은 결코 얕잡아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LCD, 광학, 디지털 이미지 전환 등 첨단 기술의 총아인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 뛰어들었다. 물론 아무도 그들의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다. 고가의 카메라와 렌즈로 구성된 이 시장에는 각각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그리고 DSLR만 해도 6∼7년의 역사를 가진 캐논과 니콘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양대 산맥의 아성에 도전하는 일은 무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소니는 2010년 아예 렌즈교환식 카메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미러리스 카메라로 신시장을 창출했고, 2014년에는 DSLR을 포함한 국내 렌즈교환식 시장에서 캐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시즌인 12월과 1월에는 캐논을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림 1, 그림 2, 그림 3)

 

<그림 1>을 보면 소니가 최악의 시기를 지나던 2012년 이후 2년간 소니의 카메라사업 부문의 영업이익은 완만히 상승하고 있다. 분기별로 약간씩의 등락은 거듭하고 있지만 대체적인 영업이익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카메라사업부의 매출액 자체는 같은 시기 동안 정체하거나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다. 이 시기 소니 카메라사업부의 매출액은 2011 7613억 엔이었고 2012년에는 7304억 엔으로 줄었다가 2013년에는 다시 7412억 엔으로 소폭 상승한다. 그리고 다시 2014 7100억 엔으로 떨어진다. 정체 내지는 대체적인 하향세라 볼 수 있다. 이는 소니 카메라사업부가박리다매콤팩트 디지털카메라 시장보다는 부가가치가 높은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 집중하면서 매출 자체보다는 영업이익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DBR Minibox’ 참조.)

 

 

DBR Mini Box  디카, DSLR, 미러리스

 

2000년대 초반부터 거세게 불어닥친디지털카메라 열풍은 크게 두 시장을 만들어내면서 급성장한다. 하나는 많은 이들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일반적인 콤팩트 디지털카메라, 이른바똑딱이. 한편 사진을 하나의비싼 취미로 즐기고 있던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고급 필름 SLR카메라를 처분하면서 DSLR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SLR이란 Single Lens Reflex의 약자로 렌즈로 들어온 빛이 미러와 프리즘에 반사돼 뷰파인더를 통해 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셔터를 누르면 가운데 미러가 올라가면서 빛이 센서를 자극해 사진이 찍히게 되는 것으로, 매우 복잡한 광학기술이 들어가 있다. 화질이나 다양한 표현 측면에서 일반적인 카메라와는 완전히 차별화된다. 이를 필름 대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저장할 수 있도록 실현한 게 바로 Digital SLR, DSLR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기존 필름카메라 시장의 강자였던 캐논과 니콘이 각각 최초의 DSLR을 출시하는데, 이때 만 해도 기존 필름카메라 렌즈를 가져다 끼우면 예전 필름카메라와 똑같은 화각과 화질, 표현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기술적 한계로 기존 필름의 판형보다는 작은 센서를 넣은 이른바크롭바디(풀프레임 센서를 잘라낸, cropped된 센서를 탑재한 카메라 본체라는 의미)였다. 가격도 지나치게 고가로 책정됐다. 그러다 2003년 기존 카메라 시장의 두 강자였던 캐논과 니콘이 각각 보급기종을 출시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했고 캐논은 2005, 니콘은 2007년께 각각 기존 필름카메라의 화각과 표현을 모두 즐길 수 있는풀프레임’ DSLR을 내놓으면서 필름카메라를 사용했던 전문가들도 대거 DSLR갈아타게된다. (‘이미지 센서 크기 비교참조.)

 

한편 휴대전화의 보급과 카메라 기능의 탑재, 여기에 더해 2008년 이후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의 고성능 카메라 탑재로 점점똑딱이 카메라시장은 위축되고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DSLR 위주로 재편된다. 2009년 이후 DSLR 시장에서 고전하던 올림푸스 등의 업체와똑딱이 시장 침체를 돌파하려던 삼성, 그리고 디지털이미지 처리 기술이 뛰어난 소니 등이 미러와 펜타프리즘, 광학식 뷰파인더를 제거해 크기를 작게 만든 렌즈교환식 카메라, 이른바미러리스카메라와 렌즈군을 출시하면서 시장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기존똑딱이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의 화질이나 표현에 한계를 느끼던 소비자들에게 과거 똑딱이 카메라만큼이나 작은, 그러나 DSLR과 큰 성능 차이가 없는 미러리스가 하나의 대안이 됐고 많은 신규렌즈교환식 카메라 유저들이 탄생했다.

 

이미지 센서 크기 비교

 

 

 

다음은 각 이미지 센서의 크기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가장 넓은 ‘35 full frame’은 기존 필름판형으로, 인간의 시야각에 맞춰 만들어졌다. 흔히 스마트폰 카메라나똑딱이에 들어가는 센서는 아주 작으며 같은 DSLR이라도 어떤 기종이냐, 어느 회사 것이냐에 따라 센서 크기는 각각 달라진다.(APS-H, APS-C 등의 ‘crop’ 센서) 다만 어느 회사, 어느 기종이든풀프레임이라는 명칭이 붙으면 센서 크기는 동일해진다. 일종의 절대 기준인 셈이다.

 

 

 

 

 

소니 카메라사업부의 영업이익이 상승 국면에 접어든 시기가 소니가 강점을 갖고 있던 일반 콤팩트 카메라가 거의 시장에서 사라지다시피하고 DSLR과 같은 고급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만이 의미를 갖던 시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림 2>는 미러리스 시장의 대세가 된 소니의 힘을 보여준다. 2013년 점유율을 50% 차지한 이후 5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는데, 미러리스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기존 강자 캐논과 니콘은 물론 최초 미러리스 개발사인 올림푸스, 자금력과 비등한 기술력을 갖춘 삼성, 그리고 파나소닉을 비롯한 대부분의 카메라 회사가 미러리스 시장으로 뛰어든 이후에도 점유율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그림 3>은 전체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서 벌어진 성과를 보여준다. 캐논과 니콘이라는 DSLR 절대강자와 맞붙은 시장에서 2013 30%가 넘는 점유율을 올린 뒤 2014년에도 소폭 상승했다. 그래프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월별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4 12월에는 34% 점유율의 캐논을 제치고 40%의 점유율로 1위로 올라섰고, 올해 1월에는 41.1%로 다시 점유율이 상승했다.2  2012년 캐논이 44.3%, 소니가 21%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2년 만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정체기를 겪고 있는 DSLR 시장과 달리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은 2010 77000여 대 규모 시장에서 2012 202000여 대, 2014 31만 대 시장으로 커지는 상황이다. 이 같은 성과는 2∼3년의 시차를 두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3

 

어느덧 소니의 대표 상품은미러리스 카메라가 됐다. 현재 소니코리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소니사의 렌즈교환식 미러리스 카메라가 웹페이지에 대표 상품으로 올라와 있다.4 위기의 소니가 가장 안정된 과점시장이라 불리던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던 이유를 DBR이 분석했다.

 

소니는 워크맨의

대히트와 가전제품 시장의

글로벌 최강자이자

선도자가 된 이후

추격자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선도자의 우위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그동안 알

기회가 없었다.

 

추격자가 된 소니

1) 도원결의: 미놀타, 칼자이스, 그리고 소니

 

디지털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한 회사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필름회사 코닥5 이었다. 하지만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상용화해 시장에 내놓은 건 소니였다. 1997년 출시된마비카는 말 그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곧바로 캐논과 니콘은 물론 올림푸스, 삼성, 미놀타 등 다양한 기존 카메라 회사들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뛰어들어 혈투를 벌였다. 하지만폰카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일반적인 콤팩트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급격히 위축된다. 폰카의 화소 수가 올라가고똑딱이디지털카메라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그 시점에 소니는 예전 필름 카메라 시절장인정신이 깃든 카메라로 유명했던, 그러나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던 미놀타를 인수한다. 그들의 광학기술력과 렌즈 제작 기술을 함께 가져왔음은 물론이다. 바로 이때 글로벌 명품 렌즈 전문 기업인 독일의 칼자이스와의 적극적 제휴도 이뤄진다.6  렌즈교환식 카메라 기술력을 갖춘 미놀타 조직과 세계 최고의 렌즈로 통하는 칼자이스사, 디지털 기술에 강한 소니사가 일종의도원결의를 하고 당시 여전히 성장 중이었던 ‘DSLR 카메라시장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기본 렌즈에는 미놀타의 기술력을 넣고 바디(카메라 본체)에는 소니의 디지털 기술을 넣었다. 그리고최고급 렌즈군에는 세계 최고 렌즈 기업 칼자이스의 기술력이 들어왔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전 국민이 사진사가 돼 가던 한국에는 거대한 사진 커뮤니티들이 브랜드별로, 심지어 각 브랜드 기종별로 존재했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자기가 가진 카메라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렌즈를 바꿔 촬영해 화질 등을 분석하고 평가하면서, 스스로 중고시장까지 형성할 정도였다. 첨단 IT기기와 광학기기를 유난히 좋아하고, 만져보며 직접 평가하고 공유하기를 즐기는 유저가 있는 시장, 바로 한국 시장은 소니 DSLR 카메라의 향후 성패를 좌우할 테스트베드나 마찬가지였다. 2006년과 2007년부터소니에서도 DSLR이 나온다는 게 알려졌고, 2008년에는 배우 소지섭이 등장한 광고가 히트하면서 해당 기종이 잠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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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던 캐논과 니콘의 아성에 도전하기에는 벅찬 상황이었다. 잠깐 높아졌던 점유율도 정체 혹은 감소하기 시작한다.8

 

소니 디지털이미징사업부(카메라사업부)는 이때 절실히 깨달았다. 소니는 워크맨의 대히트와 가전제품 시장의 글로벌 최강자이자 선도자가 된 이후 추격자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선도자의 우위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그동안 알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100년 역사의 양대 강자가 버티고 있는, 그것도 아주 충성도 높은 고객군을 확보하고 있는 두 선도 기업이 만들어놓은 시장은 그저 기술력을 믿고 빠르게 추격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생각을 바꿨다. ‘게임체인저가 되기로 했다.

 

 

2) 양강의 터전을 피해 새로운 곳에서 출발하다

 : 미러리스 카메라

 

먼저 시장을 분석해봤다. 기존 캐논과 니콘 DSLR 유저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고가의 카메라와 렌즈군을 일종의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부심도 굉장했다. ‘인물엔 캐논’ ‘풍경은 니콘이라는 각 카메라 특성에 기반한 자부심이었다. 워낙 고가의 제품들을 갖고 있다 보니 필요 없어진 렌즈를 팔거나 필요한 렌즈를 새것보다 싸게 구입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중고시장이 형성됐고자산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가격 방어(일명 가방)’ ‘가격 후리기(일명 가후)’라는 용어를 써가며 매매가 급하더라도 적정가를 유지하는 데에 모두가 힘을 기울였다.9 소니 DSLR은 마케팅과 소니가 여전히 갖고 있던 첨단기술 이미지덕에 DSLR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 정도만 공략할 수 있었다. 두 골리앗과 정면승부를 펼치기 어렵겠다고 생각한 소니는 자체 기술력을 총동원해미러를 제거한미러리스 카메라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미러를 제거하면 반사경을 통해 촬영 대상을 보는펜타프리즘을 없앨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크기를 작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10 물론 렌즈가 인식한 촬영대상을 곧바로 디지털로 전환해 사용자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력이 뛰어나야 한다. 소니는 이 분야에는 자신이 있었다. 기존 ‘DSLR’ 시장을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으로 재범주화하고똑딱이만큼 작고 가볍지만 렌즈를 갈아 끼울 수 있는 고급 카메라라는 새로운 형태의 카메라를 들고 캐논/니콘과의 싸움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생각을 비단 소니만 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DSLR 시장에 제때 진입조차 하지 못했던 올림푸스(파나소닉과 협력), 콤팩트 카메라 시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던 삼성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소니가 한참 미러리스 카메라 개발에 열을 올리던 2009 6올림푸스 펜이라는 미러리스 카메라가 세계 최초로 세상에 등장했다. 클래식한 디자인에 하얀 색상이었다. 분명 젊은 여성을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2010 1, 삼성도 자신들의 기술로 미러리스 카메라를 내놓았다. 그리고 2010 6월 소니도 드디어 미러리스 카메라를 시장에 내놓게 된다. 니콘/캐논과의 한판 승부를 위해 연구개발해 출시한 제품이었지만 우선 올림푸스와 삼성이라는 미러리스 시장의 선발주자부터 제쳐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올림푸스, 삼성과의 경쟁은 처음에는 치열했지만 소니가 서서히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소니는 DSLR 보급기종에 들어가는 수준의 큰 센서를 내장하고 있었다. 정말 미러만 없는 DSLR이었다.

 

그러나 한 경쟁사는 작은 이미지 센서를 장착해 화질이나 표현 측면에서 소니가 우위를 자신했다. 소니는 또 다른 경쟁사의 경우 소니와 마찬가지로 큰 이미지 센서를 달았지만 모양과 크기를 DSLR처럼 만들어버려 굳이 복잡한 기술로 미러를 없앤 이유를 스스로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고 판단했다.11 소니는 미러리스 카메라 출시 후 약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시장의 강자가 됐다. 그리고 2012, 소니는 미러리스 시장의 선도자이자 전체 렌즈교환식 카메라시장의 추격자로서 또 한번의 전쟁을 준비한다.

 

추격자에서 추월자로

1) 새로운 소비자의 탄생과이민자유입

 

그림4 일명손예진 카메라로 불리는 NEX-F3

 

 

 

 

소니는 2012 5 NEX-F3라는 180도 틸트액정식 카메라12 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여성 소비자 공략에 나선다. 광고 모델은 손예진, 광고 카피는나를 찍으면 작품이 된다였다. 흰색, 핑크색 등 여성이 좋아하는 바디 색깔에 화면은 180도 위로 접을 수 있어셀카를 쉽게 찍을 수 있게 했고 사진상에서 피부의 잡티를 없애주는 일명 뽀샤시효과를 넣었다. (그림 4) 이때부터 소니 미러리스는손예진 카메라라는 별칭을 얻었다. 상위 기종은 다른 광고 모델이 있었지만 소비자들의 머릿속에는소니 미러리스 카메라=손예진 카메라로 인식됐고 여성 고객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이후 출시된 NEX-3N부터 NEX-5T는 책상서랍 속에 예전의 예쁜 콤팩트 카메라를 처박아 둔 채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즐기던 여성들에게 처음으로 렌즈교환식 카메라, DSLR에 버금가는 고급 카메라에 눈뜨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 새로운 소비자의 진입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경쟁사들도 역시 비슷한 콘셉트로 발 빠르게 쫓아와 시장을 견인하며 2012 DSLR을 포함한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서 미러리스 카메라의 점유율은 40%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2013, 미러리스 카메라 비중은 전체 시장의 절반이 됐고 소니는 미러리스 시장의 수장으로서 DSLR의 양대 강자와 맞닥뜨리게 된다. 실제 이 시기 유명한 출사지(사진촬영 명소)나 국내 관광지에서 남성들은 다수가 캐논이나 니콘 DSLR을 들고 돌아다니고 여성들은 소니의 흰색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2006년의도원결의이후 6년여 만에삼분지계에 성공한 셈이다.

 

 

그림5 소니의 미러리스풀프레임카메라

 

 

 

 

 

카메라시장의 ‘3대 강자중 하나로 자리 잡던 시점에 소니는 또 한번의 승부수를 던진다. 우선 NEX라는 소니 미러리스의 브랜드를 기존 소니 DSLR13  브랜드인 알파(α)로 통합했다. 그리고 2013 10월 미러리스 최초로 풀프레임 센서14 를 장착한 α7 α7R을 출시한다. (그림 5)

 

이때부터이민자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무거운 DSLR과 렌즈에 힘겨워하던 DSLR 유저들, (주로 남성) 특히자산보유 정도가 약한(보유 렌즈군과 카메라 본체의 수가 적은) 유저 일부가 소니가 만들어놓은 미러리스 풀프레임 시장으로 넘어왔다. 카메라/사진 커뮤니티와 장터에는소니 미러리스로 넘어가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카메라와 렌즈군 일체 팝니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소니의 의도대로였다. 소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난해 봄과 겨울에 각각 또 다른 기종의 풀프레임 미러리스를 내놓았고 보급기(크롭바디) 시장에서도 남성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좀 더 중후하고 묵직한 느낌의 기종을 출시했다. 광고모델로 배우 정우성 씨를 기용했다. 최초 소니 미러리스가 인기를 끌게 했던 여성향 기종들은 손예진 대신 배우 송혜교 씨가 모델로 나서는 한편이민자 유입 활성화신규 남성 유저 영입을 위해 남성향의 기종들을 다수 출시했다. 그리고 정우성이 등장하는 광고의 카피는미러리스의 추월이었다. 이후 2014 12월 소니는 처음으로 한국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서 월 기준으로 캐논을 제치고 1위 자리에 올랐다. < 1>은 소니가 출시한 카메라를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손예진 카메라의 등장시점, ‘정우성 카메라의 등장 이후 소니의 한국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점유율이 크게 올라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또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2세대가 등장한 12월 이후에는 40%를 넘기는 걸 볼 수 있다. 풀프레임 미러리스 2세대는 특히 카메라 본체에서 어떤 방향으로 손이 떨리더라도 이를 보완해주는 기능을 탑재했는데 이 역시사진 한 장에 목숨 거는헤비 유저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중급기 시장을 잡아라

 

2014 12월 벌어진 놀라운 시장점유율 변화는 사실 소니의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결과였다. 2014년 소니는 한국 시장에 대한 대대적 시장 조사에 착수한다. 한국에서 소니 미러리스가 크게 성공하기 시작한 후 몇 년이 지나면서 유럽이나 미국 시장에서도 같은 패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게 소니코리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연히 소니 입장에서는변화무쌍한 한국 시장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이해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2014년에 미러리스 카메라 분야에서 소니는 분명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강자였지만 입문/보급기종이 아닌 중급기종 모델( NEX 6, 7 )이 부진했다. 주로 남성 유저들이 카메라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는 기종들이다. 보급형은 잘 팔리고 있었지만 여성 대 남성의 비율이 7 3 정도였다. 사진 촬영은 남성성이 강한 취미다. 자동차, 오디오와 더불어 카메라는 남자들의 ‘3대 장난감으로 통한다. 이 장난감들은 남성의 사냥이나 전쟁 등과 관련한 공격적 DNA와 연결된다. 오디오에 대한 집착은 사냥이나 전쟁에서 짐승 혹은 적군의 움직임과 소리를 듣던 습성에서 기인하며,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사냥과 전쟁을 위한탈거리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사진기는 무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를 영어로 ‘Shoot’으로 표현한다. 이는 타깃을 정해 초점을 맞춰 무엇인가를 발사하는 행위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과 달리 사진취미에 빠지면 다양한 렌즈군(무기)을 모으는 데 돈을 아낌없이 지출하곤 한다. 이들 헤비 유저를 잡아야 소니는 진정한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헤비 유저를 단숨에 고객으로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브랜드 충성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중급기 시장에서 먼저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 남성들이 처음부터 소니 미러리스로 잘 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성능 때문이 아니었다. 미러리스의 이미지 자체가여성적이었고, 묵직하고 시커먼진짜 무기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카메라 신제품, 신형 렌즈가 나오면 커뮤니티에 현란한 MTF차트(렌즈 성능을 보여주는 그래프)를 올려대는 무서운 시장이다. 성능은 이미 검증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움직일 무엇인가가 없었다. 그래서 청년부터 중장년층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남성적인 미남정우성이 필요했다. 그가 가진 이미지로예쁜 여성용 렌즈교환식 카메라라는 소니 미러리스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는 주효했다. 카메라 색깔도 어두운 색을 전면에 내세워남성성을 강조했다. 실제정우성 카메라는 지난해 10월 첫 출시 이후 지금까지 남성 구매자의 비율이 70% 이상이라는 게 소니코리아의 설명이다. (그림 6)

 

남성이 일단 중급 기종을 보유하면 엄청난 브랜드 애착을 보이면서 상위 기종으로기변’(기기변경)할 확률이 높아진다. 소니 풀프레임 미러리스가 기존 캐논과 니콘 DSLR의 라이트 유저를 끌어오는 역할을 했다면 중급 기종은 애초부터 소니에서 취미를 시작하는 남성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소니는 이허리층의 성장을 통해삼분지계를 넘어천하통일을 꿈꾸고 있다.

 

그림6 정우성을 모델로 내세운 소니 미러리스중급기광고

 

 

 

 

 

 

 

 

성공요인: 소니다움과 소니답지 않음의 조화

 

소니는 벤처기업 형태로 출발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기업문화로 소비자들에게 혁신적 신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기업이념으로 삼아왔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데 역량을 집중한 결과, 워크맨을 비롯해 멋진 디자인의 혁신적 신제품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과거의 성공이라는 유산(legacy)으로 인해 디지털 시대의 환경변화에 적응이 늦었고, 내부 조직 간 협력 등의 문제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개방형 혁신을 추구하기보다는 내부 역량을 활용한 실험을 통해 시장의 수요와 상관없는 첨단제품을 쏟아냈고 각 사업부에서 비슷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있어도 서로 모를 만큼 협력이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처럼 의도적인 치열한 내부 경쟁 시스템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추격자가 되기로 결심하니 그동안 쌓아온 내부 실험역량과 기술력은 미러리스 카메라,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 소니다움

 : 소니의 메카트로닉스 기술과계획된 진부화전략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의 성공에는 내부 역량을 활용해 제품을 소형화하고, 다양한 제품을 빠르게 출시하는 등 과거의 소니다운 성공요인과 함께, 후발주자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타사와 협력하고, 현지 마케팅을 존중하는 등 과거 소니의 문제점을 보완한 요인이 함께 포함돼 있다. 먼저 소니다운 성공 요인부터 살펴보자. 소니의 핵심역량 중 하나는 소비자의 잠재적 욕구를 파악해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경박단소하게 만드는 메카트로닉스 기술이다. 소니는 내부 개발인력과 디자이너들의 역량과 창의성으로 잠재적 수요는 있지만 기존에 없었던 제품을 개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전통적인 핵심역량이다.

 

성능은 좋지만 크고 무거운 DSLR 카메라와 크기는 작지만 성능이 떨어지는 일반 디지털카메라의 장점만을 결합해작고 가볍지만 렌즈를 갈아 끼울 수 있는 고급 카메라로 만든 것은 소니 특유의 디자인과 메카트로닉스 기술력이 기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러리스 카메라를 소니보다 먼저 개발했던 경쟁사들은 성능 문제나 크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에(출시 당시에), 소니는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 1위가 될 수 있었다. 이는 소니가 과거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VCR 등에서 제품의 소형화를 통해 경쟁우위를 누렸던 성공 공식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소형화를 통해 여성 유저라는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며 여성 소비자들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셀카 촬영, 인물 보정, SNS 공유 등의 기능을 강화했다.

 

소니는 실험 정신이 강하고 내부 개발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빠르고 다양한 제품 출시가 가능했다. 소니가 처음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에 진출했을 때 제품은 좋았으나 제품의 라인업(특히 렌즈군)이 갖춰지지 않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니는 이후 빠르고 다양한 제품 출시를 통해 경쟁사보다 훨씬 더 폭넓은 제품 라인업을 갖췄다. 이러한 소니의 빠른 신제품 출시는 계획된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전략에 동반한 다양성(variety)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GM이 대공황기에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다양한 자동차 모델을 출시하면서 이전의 모델을 보유한 소비자들을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전략에서 비롯됐다. 소니의 빠른 신제품 출시로 인해 중고 카메라 가격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나올 정도였지만 저렴한 중고제품을 통해 고객의 저변을 확대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반면 경쟁사인 니콘이나 캐논은 고객들이 카메라를 자산으로 인식해 중고 가격에 민감한 상황에서 진부화 전략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소니는 후발기업으로서

선발기업들이 감당해야 하는

시장 개발 비용, 즉 미러리스

카메라라는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무임승차 효과를 누렸다.

 

 

 

2) 소니답지 않음: 협력, 그리고 추격

 

한편, 미러리스 카메라의 성공에는 소니가 과거의 문제점을 개선해 성공한 부분도 크게 작용했다. 첫째, 선도기업으로서의 자존심을 접고 추격자의 입장을 받아들여후발기업의 우위를 가질 수 있었다. 소니는 디지털 콤팩트 카메라의 선도기업이었지만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은 물론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도 후발기업이었다. 소니는 후발기업으로서 선발기업들이 감당해야 하는 시장 개발 비용, 즉 미러리스 카메라라는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무임승차 효과를 누렸고 선발기업의 시행착오에 대한 학습, 선발기업의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2006년 올림푸스가 파나소닉과의 제휴를 통해 미러리스 카메라를 먼저 출시했을 때, 아직 제품 개발이 진행 중이던 소니는 (항상 혁신적 신제품을 먼저 출시했었기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경쟁 제품을 분석해 개발 중인 자사 제품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결과, 클래식한 디자인의 올림푸스 카메라에 반해 모던한 제품 디자인으로 차별화하고 동영상 기능을 보강하는 등 더 개선된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

 

둘째, 내부 역량만 고집하지 않고, 외부 협력을 통해 약점을 보완했으며, 자사 표준만을 고집하지 않는 개방적 마인드를 발휘했다. 소니는 내부 개발과 독자적 표준을 강조하다 보니 외부 기술에 배타적인 NIH(Not Invented Here)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카메라사업부는 달랐다. 미놀타를 인수한 소니는 광학 렌즈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독일의 칼자이스와 제휴를 통해 렌즈 경쟁력을 높였다. 또한 과거 소니 디지털카메라는 소니의 바이오 컴퓨터와만 호환되는 메모리스틱을 사용했던 데 반해 미러리스 카메라는 모든 기기와 호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셋째, 현지 마케팅에 대한 존중 및 지원이 있었다. 소니의 마케팅은 좋은 제품을 내는 것이 최고의 마케팅이라 할 만큼 소비자에 대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도 제품 중심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다보니 소니는 글로벌 기업이었지만 본사 중심적으로 운영됐고 현지 시장에 대한 전략은 부족한 편이었다. 소니코리아는 2008 DSLR 카메라를 한국 시장에 출시하면서 소지섭이 등장한 광고의 효과를 실감했다. 이후 미러리스 카메라를 출시하면서 여성 고객을 겨냥한 손예진 광고나 전문성(남성성)을 강조한 정우성 광고 등 한국 고객을 위한 마케팅을 통해 성과를 높였다. 사실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소니에서손예진 카메라처럼 광고모델명으로 불리게 되는 것은 아이폰을 “OOO으로 부르는 것만큼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존 소니의 전통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한국 소비자들은 매우 까다로운 니즈를 갖고 있으며 소비자들 사이의 정보 공유가 신속히 이뤄지는데, 이러한 니즈들은 소니코리아를 통해 개발팀에 잘 전달됐다. 소니 본사 역시 현지시장 지향 마케팅의 필요성을 인식해 전폭적으로 지원했으며 한국 시장의 성공 경험을 다른 국가로 전파하려는 노력 등 현지 중심의 마케팅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소니의 변신은 강력한 내부 역량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시장환경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많은 기업들에 큰 시사점을 준다. 우선, 후발기업 입장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이점을 제대로 취했으며개방형 혁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외부와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내부 역량이 더욱 강화될 수 있도록 전략을 짰다. 또한 마케팅에 있어서도 전통적인표준화를 버리고 현지화를 적극 수용하면서 완전히 거듭날 수 있었다. 이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적이 있는 기업들이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반드시 곱씹어봐야 할 대목들이다.

 

최근 소니 미러리스의 추격자전략을 다룬 한 논문은15 선후발자 간의 시장점유율 격차가 클수록 선발기업은 기술적으로 경직되는 경향이 있는데, 후발기업은 내부적으로 기존 지식 기반과 재조합 역량에 따라 지속적인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경로개척형 추격 전략(내부 역량이 높을 때)이나 추격 역량을 먼저 확보하기 위한 경로추종형 추격전략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림 7) 이를 소니에 적용해보면 니콘과 캐논은 다른 렌즈교환식 카메라 제조기업들과의 시장 격차가 매우 큰 기업들이었고 경로의존적 혁신활동에만 매몰돼 있었던 반면 내부 역량이 강한 소니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해게임체인저로서 새로운 기술경로를 개척하는 전략을 택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기업들도 자신이 속한 시장상황을 살펴보고 전략을 선택하는 데에 소니 사례는 분명 큰 교훈을 줄 것이다.

 

 

도전 과제

 

소니 카메라 사업의 성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도전 과제들을 잘 풀어나가야 한다.

 

첫째, 경쟁사들의 공세가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니가 전사적인 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카메라사업 부문에서 전통적 강자인 캐논과 니콘, 세계 제일의 추격자 역량을 갖춘 삼성과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들 경쟁업체는 소니 못지않게 관련 분야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필요시 전사적으로 집중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소니 카메라사업 역시 다른 사업부와의 협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소니가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이미지센서나 동영상 기술 등 관련된 내부 역량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 소니의 실적 부진 주범으로 항상 거론되는 것이 조직 간의 장벽, 사일로(Silo) 문제다. 소니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으며 히라이 사장은 사일로 혁파를 위해 UX(사용자 경험) 마케팅을 강조하며 관련 플랫폼을 직접 총괄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기술변화가 어떻게 이뤄질지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전사적 협력을 확보하는 것은 카메라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둘째, 브랜드 통합 전략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렌즈교환식 카메라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니는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과 DSLR 카메라 시장을 통합하는 브랜드 전략을 선택했다.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의 1등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DSLR을 포함한 렌즈교환식 카메라라는 더 큰 시장을 잡기 위해 한국에서 성공한 NEX 브랜드를 포기하는 강수를 뒀다. 그러나 미러리스 카메라와 DSLR 카메라를 별개의 시장이라 생각하는 소비자들도 많고, 렌즈의 호환성도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못했다. 게다가 소니의 브랜드 이미지는 주로 소형, 혁신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며 고급 카메라 브랜드로서의 전문성 이미지는 경쟁사에 비해 약한 편이다. 따라서 힘들게 차지한 미러리스 카메라라는 카테고리를 브랜드 통합 과정에서 스스로 부정했다고 보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소니가 목표로 하는 브랜드 통합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통합한 브랜드 안에 혼재하는 소비자들의 지식(예를 들어, α는 미러리스 카메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등)을 통합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정립이나 이에 따른 제품별 명확한 포지셔닝 등의 실행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글로벌 시장에 확대 적용하는 것이다. 한국 시장은 적극적인 고객들 덕분에 소니 카메라의 테스트베드 시장 역할을 해왔다. 소니는 각국 고객들의 서로 다른 니즈를 취향의 차이라기보다 시기적 차이로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 시장에서의 과거 마케팅 경험을 다른 시장에 활용하려 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요인이 한국 현지 마케팅에 대한 존중이라 했는데, 이를 글로벌하게 확대 적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소니는 일본 기업답지 않은 글로벌 기업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본사 중심적인 경향이 강하고 전략적 시장의 선택과 집중 등 글로벌 시장 전략이 모호한 편이었다. 또한 글로벌 본사와 현지 지사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잘 이뤄지지만 현지 지사 간 협력 채널은 부족한 편이다. 따라서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 체험을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각 시장별 마케팅조사와 마케팅 전략 수립 및 마케팅 프로그램의 글로벌화/현지화의 결정과 함께 인적 교류 등 전사 조직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소니의 담당자는 필자들과의 인터뷰에서디지털 시대에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 강조했다. 소니 카메라가 소니 부활의 선봉장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과정은 부활을 꿈꾸는 많은 혁신기업, 기술기반 기업들에 큰 학습의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진환 수원대 경영학과 교수 jinhongs@naver.com

홍진환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중앙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듀폰, 엠드림, 옵티멈경영연구원에서 근무했고 일본 히토츠바시대 연구원, 중국 임기대 교환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마케팅 전략, 신제품 개발 및 신사업 전략 등이며 저서로 <코에볼루션> 등이 있다.

 

고승연기자 seanko@donga.com홍진환수원대 경영학과 교수 jinho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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