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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etoric&Leadership

갈등사회를 푸는 키워드 : 수사학 설득의 기술은 죽은 이도 살린다

김종영 | 172호 (2015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경영전략

고대 아테네에서 태동한 수사학은 단순히 말을 잘하기 위해 발달한 학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의 품성과 영혼을 돌보자는 수양(修養)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수사적 소통을 위해서는 개연성과 시의성, 적절성을 갖춰야 한다. 즉 상식에 맞고 때에 맞으며 상황에 어울려야 한다.

 

왜 수사학인가

 

우리 사회는 선진국 길목에서 정치·경제·사회적 갈등에 부딪쳐 이미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해법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으나 그리 신통해 보이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그 해법을 수사학에서 찾고자 한다. 수사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현실에 적절히 적용한다면 집단과 개인의 품위 있는 소통이 가능하고 이것이 갈등 해소의 지름길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소통이 막힌 시대, 수사적 소통을 대안으로 숙고해본다면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리더와 조직원, 경영자와 소비자 사이에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갈등과 반목이 누적돼 결국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인류의 문명사적 조건이 수사학을 부르고 있다. 왜 우리 시대가 수사학을 요구하는가? 첫째,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글로벌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 수사학은 어떻게 하면 상대로부터 신뢰와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서 출발한다. 둘째,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말이 생명이다. 문제가 발생하고 갈등이 조성되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수사학은 설득의 유용한 수단을 제공한다. 셋째, 우리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인은 제때 필요한 지식을 찾아 이를 잘 다듬어 자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수사학은 생각을 발견하고 정리해 표현하는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다시 말해 수사학은 글로벌 시대의 덕목이며 민주주의 시대의 해결사이자 지식정보화 시대의 나침반이다.

 

수사학이란 무엇인가

 

수사학은 고대 아테네에서 태동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테네는 기원전 6세기로 넘어오면서 정치적 지형이 바뀐다. 민중이 참주를 몰아내고 직접 폴리스를 꾸려나간다. 민중이 귀족을 몰아내고 직접 통치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시작을 의미한다. 법을 만들거나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자유 시민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투표로 결정했다. 소송이 걸리면 당사자가 직접 대중 앞에서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말을 잘해 대중이 자신에게 표를 던지면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주목을 한몸에 받게 됐다. 사회 환경이 이렇게 변하자 말을 잘하는 능력은 입신양명의 주요 수단이 됐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수사학이 발전한 이유다.

 

 

 

수사학이라는 말은 고대 아테네에서 사용된 rhtorike라는 말을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말을 하는 사람의 말하기 기술이 된다. 이 낱말에서 영어의 rhetoric이 나왔다. 그래서 수사학을 흔히 레토릭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수사학은화려한 수사’ ‘정치 수사등 왠지 내용은 없고 말만 번지르르한 것을 나타낼 때 많이 쓰인다. 이 낱말이 일본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기 때문인데 일본에서는 수사학을 미사학(美辭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플라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플라톤은 수사학을 요리술과 치장술에 비유하며 아첨의 일부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1 플라톤의 영향으로 수사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플라톤은 진정한 수사학은 인간의 정신을 인도한다고도 했다.2 그는 수사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수사학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쁘게 사용하는 사람이 나쁘다. 제대로 사용하기만 하면 수사학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수사학의 한자어가 이 점을 명확히 알려준다. ‘수사(修辭)’라는 낱말이 최초로 등장하는 동양 문헌은 <주역(周易)>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덕을 밀고 나가 업을 닦는다(君子進德修業). ()과 신()은 덕을 밀고 나가는 수단이 되고(所以進德也), 말을 닦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修辭立其誠)은 업을 하는 수단이 된다(所以居業也).3

 

이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 수사는 단순히 말을 장식하고 꾸미는 것이 아니다. 몸을 닦고 학문을 닦고 도를 닦듯, 말을 닦고 마음을 닦는 수양(修養)의 뜻이 담겨 있다. 서구 수사학의 문헌에도 수사학은 인간의 품성과 영혼을 돌보는 학문이라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수사학은 설득의 기술이다:수사학의 고전적 정의는 설득과 관련이 있다. 설득은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고 자주 목격된다. 설득은 어떻게 보면 신비로운 현상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가도 말을 듣고 보니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말은 어떻게 이런 힘을 갖게 됐을까? 고르기아스4 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를 따라 트로이로 갔다.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그것도 타의 모범을 보여야 할 왕비의 몸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사람들이 비난한다. 고르기아스는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들이 잘못이라며 헬레네를 두둔하고 나선다. 그의 말인즉슨 헬레네가 트로이로 간 것은 불가항력이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네 가지를 든다. 첫째, 신의 뜻이다.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이 열리던 날, 초대를 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남기고 간 황금사과 하나가 사건의 발단이다. 사과에는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내로라하는 여신들이 앞 다퉈 자기 것이라고 우긴다. 제우스로서는 참 곤란했을 것이다. 제우스는 꾀를 내 이다산의 목동이었던 파리스에게 판정을 받으라고 했다.

 

파리스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였다. 원래 트로이의 왕자였는데 버려져 양치기가 됐다. 세 여신이 구름을 타고 이다산으로 가서 파리스를 설득한다. 헤라는 권력을 주겠다고 했고, 아테네는 지혜를 내걸었으며,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내세운다. 파리스는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줬다. 이 때문에 헬레네가 파리스에게 가기로 이미 예정돼 있었다는 것이 고르기아스의 논리다.

 

둘째, 헬레네가 트로이에 간 것은 강제적이었다. 강제라는 말에는어쩔 수 없음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강제된 사람을 나무랄 수는 없다.

 

셋째, 말에 의한 설득의 힘이다. 이 대목이 고르기아스 논변의 핵심이다. 그는 시인, 마법사, 자연학자, 법정연설자, 철학자 등 그야말로 말로 밥 먹고 사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예로 들며 말이 힘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말을 통해 듣는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설득이다. 사실 말로 상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고대 사람들은 설득을 신의 영역으로 봤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페이토(peitho) 여신의 은총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득을 뜻하는 영어 persuasion peitho에서 유래했다.

 

고르기아스는 말이 힘을 갖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자체를 인간 존재의 한계로 봤다.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이 완벽하다면 말이 파고들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결정하며,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지나간 일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는 기억력이 동원돼야 하고, 현재 일을 판단할 때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며, 다가올 일을 결정할 때는 예지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할 때 인간은 신통하지 않다. 그래서 생각에 의지하고 의견에 기대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말이 힘을 발휘하게 되는 순간이다. 타고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간은 불확실한 의견에 기대 삶을 꾸려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고르기아스는 말이 힘을 갖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자체를

 

인간 존재의 한계로 봤다.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이 완벽하다면

 

말이 파고들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헬레네가 파리스를 따라 가기 전, 파리스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르기아스의 말에 의해 유추해보면 이런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파리스가 헬레네에게갑시다, 트로이로!”라고 말하면 헬레네는남편도 걸리고, 조국을 떠난다는 게내가 당신을 따라 트로이로 가면 전쟁이 날지도 모르고, 내가 여기에서처럼 환대받고 살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요. 아아, 잘 모르겠어요. 몰라요. 어떡해요!”라고 답했을 것이다. 파리스는 헬레네의 걱정을 불식시키고 용기를 북돋으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약속을 했을 것이다. “트로이로 가더라도 여기보다 더 환대받으며 나날의 삶이 기쁨과 환희의 연속일 것이요. 내가 누구요, 트로이의 왕자예요. 전쟁은 무슨 전쟁이란 말이요. 설사 전쟁이 난다고 해도 우리는 위대한 왕의 영도력 아래 온 백성이 일치단결해 승리할 것이고, 그리스군은 철옹성 같은 우리의 성벽을 넘을 수도 없을 것이오. 그러니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오.” 파리스는 헬레네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간곡하고 진실하게 그녀를 설득했음이 틀림없다. 헬레네가 인간이 아닌 신이었다면, 그래서 그녀의 생각이나 판단이 완벽했다면 파리스가 아무리 화려한 언변을 구사했다고 해도 끼어들 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헬레네는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이었고, 중대한 결단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바로 곁에 있었던 파리스의 설득이 발휘됐을 것이다. 고르기아스는 이 점에 주목했다. 말이 갖는, 설득의 힘이다.

 

 

헬레네가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며 제시한 고르기아스의 네 번째 논거는 사랑이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맹목이 된다. 또한 사랑을 주제하는 에로스는 신이 아닌가? 따라서 사랑을 모독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다. 고르기아스는 말의 힘이 지닌 이러한 설득력이 신적인 것이요, 불가항력적이라는 점을 강변하고 있다.5

 

설득력을 갖추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수사학이다. 고르기아스는 수사학을 말로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이 필요한 순간, 설득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무엇인지 탐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수사학을 정의하면서 설득 수단에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연사의 성품, 청중의 기분, 말의 논리다. 잘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의 3요소,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가 여기서 등장한다. 에토스는 화자의 인품,즉 인격적 감화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덕망 있는 사람이 말할 때 더 잘, 더 빨리 믿는다. 학생이 선생을 믿고, 신도가 성직자의 말을 믿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토스는 청자의 감정에 호소해서 설득하는 것을 말한다. 기쁘거나 슬플 때, 사랑할 때와 미울 때의 판단이 같지 않기 때문에 듣는 이의 기분도 설득 과정에서 염두에 둬야 한다. 로고스는 청자의 이성에 맞춰 논리적으로 설명해 설득하는 것을 말한다. 참이거나 참 같아 보이는 것을 제시할 때 더 믿음이 가므로 이때는 말 자체가 설득 수단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지를 따라가면 설득은 논리와 이성적 측면만 강조해서는 안 되고 윤리와 인성적 측면, 그리고 심리와 감성적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은 수사학이 연설뿐만 아니라 대화에서도 통용된다고 하며 수사학의 논의를 확장했다. 고대 로마의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도 연설에서의 설득 기술인 수사학의 외연을 확장해 말하기 일반에 대한 학문으로 봤다. 그는 수사학을잘 말하는 기술(ars bene dicendi)’로 정의했다. 즉 우리는 살면서 늘 수사적 상황을 맞이한다. 말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겠으나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야말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말이다. 그래서 잘 말해야 한다는 것이고 잘 말하는 기술을 갖게 해주는 것이 바로 수사학이다.

 

수사학은 소통의 원리다:사람이 서로 다르듯 각자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사람 사이에는 서로 다른 생김새만큼의 거리가 있다. 하지만 사람은 함께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 미셀 메이에르는 수사학을주체들 간의 거리교섭6 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살을 부대끼며 살며 입장 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수사학이라는 의미다.

 

일방적인 말하기를 소통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양방향, 쌍방적일 때 소통이라고 한다. 또 소통에는 말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느낌이, 생각이, 감정이 오간다. 참다운 소통을 모색하는 것이 수사학이다. 말하는 이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듣는 이의 입장을 헤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말만 앞세워서야 어떻게 소통할 수 있겠는가? 말의 논리 못지않게 말하는 이의 품격과 듣는 이의 감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상호 간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 될 때 대화는 성공할 확률이 높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가 모두 동등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이 우월하다, 그러니 나는 너보다 낫다는 식의 옹졸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설득은 애당초 물 건너 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를 변화시키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나보다 더 합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될 때 내 생각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생각을 바꾸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설득 지향의 수사학은 말하는 이가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통을 지향하는 수사학은 그렇지 않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 공히 스스로 변화할 것을 각오하고 대화에 임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스필버그가 아직 어릴 때, 하루는 담임교사가 스필버그의 어머니에게 학교로 오라고 했다. 교사는 스필버그가 수업시간에 잘 집중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느라 정신없이 보낸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 걱정도 되고 속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아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화가 난 엄마가 아이를 불러 앞에 세워놓고이놈아, 네가 어떻게 했길래 선생님이 엄마를 학교로 오라고 하니? 수업시간에 그림이나 그리고 낙서나 하고 있다고? 너 때문에 엄마가 속상해 죽겠다고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얘야. 오늘 선생님께서 네가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고 걱정하면서 말씀하시던데, 사실 엄마는 좀 속상했단다.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데 선생님께서 왜 걱정하실까? 네가 좋아하는 행동을 선생님과 친구들이 모두 인정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과 친구들이 네 그림과 글을 인정할 수 있도록 수업시간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좋지 않겠니?” 어머니의 충고를 듣고 스필버그는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됐다. 어머니의 훌륭한 대화법이 오늘의 명감독 스필버그를 있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일화다. 그때 스필버그가 그리고 있던 것이 외계인이나 공룡은 아니었을까? 만약 어머니가 어린 스필버그를 비판하거나 혼을 냈더라면 과연 ‘E.T.’주라기공원을 볼 수 있었을까?

 

수사적 소통의 기본조건

 

수사학은 늘 청중과 함께한다. 말을 듣는 청중, 글을 읽는 독자, 영화를 보는 관객 등 다양한 수신자를 염두에 둔다. 수사학은 단순히 말하는 사람의 기법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여 변화를 감내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진정한 소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언어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오해의 문제, 인간의 에고 극복의 문제, 갈등이 부지기수로 노출되는 인간의 종적 특성 문제 등을 극복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전제로부터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수사적 소통의 기본조건으로 도출할 수 있다.

 

1) 상식에 맞게 말하라(eikos: 개연성, 그럴법함)

 

발란트의압데라인 이야기를 보면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 이야기가 나온다. 줄거리는 이렇다. 고대 그리스의 압데라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치과의사 슈트루티온과 당나귀 몰이꾼 안트락스가 함께 왕진을 간다. 도중에 날이 너무 더워 치과의사는 잠시 당나귀가 제공하는 그늘에서 쉰다. 안트락스는 그림자의 대가를 요구하고 슈트루티온은 거절한다. 팽팽히 맞서다 둘은 법정에 섰다. 먼저 치과의사 변호인의 말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고귀한 기술로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업무상 압데라에서 게라니아로 왕진 중이었습니다. 그날은 후텁지근한 여름날이었습니다. 지독하게 내려 쬐는 한여름의 불볕더위로 인해 지평선 전체는 마치 빵 굽는 오븐이 달아올라 속이 비어 볼록하게 변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작렬하는 태양 빛을 누그러뜨릴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더위에 헐떡이는 나그네의 원기를 북돋게 해주는 바람도 한 점 없었습니다. 태양은 그의 정수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혈관에서 피를 뽑아내고 뼛속에서 골수를 빨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입천장에 붙어 바싹 마른 혀를 헐떡이면서, 그리고 더위와 작렬하는 햇빛으로 인해 흐리멍덩한 눈을 해 가지고, 어디 그늘이 있나, 그늘 밑에서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나무 한 그루라도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한 모금 마시며 냉혹한 아폴로의 작렬하는 화살 앞에서 일순간만이라도 피할 수 있는 나무 한 그루라도 있나하고 말입니다. 헛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아시다시피 압데라에서 게라니아로 가는 길에 어디 그런 곳이 있단 말입니까? 두 시간 동안이나 찾아보았지만 헛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트리키아 전 지역의 흠이라고들 합니다. 불모의 휴경지와 전답만이 있는 이 황량한 평야에서 나그네의 눈에 활기를 제공해줄, 또한 하오의 작렬하는 태양으로부터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줄 나무 한 그루, 관목 한 그루가 없었습니다. 가련한 슈트루티온은 마침내 당나귀에서 내려왔습니다. 정상적으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당나귀를 멈추게 하여 그 그림자에 앉았습니다. 단지 보잘 것 없고 궁색한 방법으로나마 원기를 회복하려고 말입니다.7

 

이번에는 당나귀 몰이꾼 변호인의 말이다. 그는 치과의사 변호인의 말을 듣고 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상대방 변호인의 말발이 보통이 아니다.

 

“안트락스는 치과의사 슈트루티온에게 당나귀를 하루 동안 빌려주었습니다. 자기 멋대로 사용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여행 가방을 싣고 그걸 타고 게라니아로 가는 데 사용하라고 빌려준 것입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곳은 여기에서 족히 8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짧지 않은 거리입니다. 당나귀를 빌릴 때에는 물론 둘 중 어느 누구도 당나귀의 그림자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치과의사가 들판 한가운데에서 내려, 자기보다 더위에 정말로 훨씬 더 시달린 당나귀에게, 그 그림자에 앉기 위해 햇볕에 서 있도록 강요했을 때, 그 신사분과 당나귀 주인의 입장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었습니다.8

 

말이라는 것은 참 묘하다. 당나귀 몰이꾼의 변호인이 상당히 위축돼 쉽지 않은 분위기였는데 말을 듣고 보니 꽤 설득력이 있다. 짧지만 객관적이며 보다 논리적이다. 치과의사 변호인이 열정에 호소하는 데 비해 논리에 더 중점을 두고 진술하고 있다.

 

상식에 맞게 말하라. 상식이란 다수의 동의를 얻은, 그럴법한 논리다. 수사학은 그럴법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말이 신뢰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다.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꼭 진리만 힘을 얻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가진 생각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문제를 해결할 때, 혹은 진리가 눈앞에 잡히지 않을 때 우리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에서 출발해 의견을 개진해 나간다. 특히 가치문제를 판단하는 경우라면 어느 한쪽의 의견이 다른 한쪽의 의견을 완전히 제압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진리에 대해 상대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진리라는 것은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대중과의 소통에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가진 생각, 즉 상식이 더 중요하다. 그럴법한 이야기,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가 힘을 갖는 이유다.

 

 

두 변호인 모두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며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 재판은 확대되고 확장돼서 결국 도시 전체 시민들이 당나귀 주인을 지지하는 당나귀당, 치과의사를 지지하는 그림자당으로 쪼개진다. 서로를 속고 속이며 뇌물과 사기가 난무하다가 결국 당나귀가 시민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2) 때맞춰 말하라(kairos: 시의성, 때맞춤)

 

사랑하는 여인이 신성모독죄로 법정에서 죽게 됐다.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어떤 말로도 배심원을 설득할 수 없었다. 당시 신성모독죄는 사형이었다. 다시 법정에 나간 남자는 갑자기 여인이 걸치고 있는 옷을 찢어 버린다. 여인은 나체가 됐다. 옷을 찢어버리면서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보십시오, 여러분. 이 아름다움은 신이 내린 것입니다. 신이 내린 아름다움에 인간의 법이 어찌 죄를 씌울 수 있겠습니까?”9 이 행동과 말은 배심원의 마음을 움직였고 여인은 죄를 벗을 수 있었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자는 당대 최고의 미녀 프리네, 남자는 아테네 10대 연설가의 한 사람이자 정치가였던 휘페리데스다. 프리네는 데메테르 제전이 열리는 날,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알몸으로 바닷가를 걸었고 이 행위로 신성모독죄를 얻었다.

 

인간을 둘러싼 상황은 매 순간 변한다. 우리는 상황마다 시의적절한 때를 고르고 그에 딱 들어맞는 말을 찾는 데 고민해야 한다.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는 말이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나오는 꼭 필요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구원한다.

 

우리는 상황마다 시의

 

적절한 때를 고르고 그에 딱

 

들어맞는 말을 찾는 데 고민해야 한다.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는 말이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나오는

 

꼭 필요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구원한다.

 

순간을 포착해서 꼭 필요한 말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하고 늘 깨 있어야 한다. 의제를 선점하고 대중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은 이런 능력이 뛰어나다. 때맞춰 의견을 낼 수 있는 능력은 교양인의 잣대다. 전장에서 죽음이 뻔히 내다보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장렬한 죽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휘관은 후세에 영웅으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길이 남게 된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병사들에게 남긴 충무공 이순신의 말이 꼭 그랬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말의 효율성을 살려 올바로 말하기 위해서는 늘 때를 맞춰야 한다. 모든 종류의 담화는 현실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담화는 구체적인 시공간의 현실을 초월할 수 없다. 어떤 담화의 의미는 그것이 이뤄지는 시공간의 맥락 속에서만 해석될 수 있다. 상황을 읽어내고 타이밍을 포착해 꼭 필요한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자, 이런 사람이야말로 공동체의 소통을 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리더다.

 

3) 적절하게 말하라(decorum: 적절성, 어울림)

 

시골 어느 마을 한 할머니가 팔순을 맞이했다. 자식들은 잔치를 준비하고 지역 유지에게 축사도 부탁했다. 유지가 준비한 축사는 다음과 같았다. “○○○ 할머님의 팔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할머님 집 앞을 지나가면 고구마도 주시고 늘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시던 분입니다. 저는 이 마을에서 자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을 통해 자산을 불린 후 지역에 봉사하는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을의 회관을 짓는데도 기여했고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이나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도 돕고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축사다.

 

말이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물론 상황과 사안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늘 저울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하는 말이 과연 이 상황에 꼭 필요한 것인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지, 어려운지, 쉬운지 등 여러 가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표현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청중의 수, 청중의 연령대나 직업, 교양 수준, 성향에 따라 표현이 달라져야 한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였던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말할 때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일반 시민들 앞에서 말할 때는 사안을 단순화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을 택하곤 했다. 사안에 따라서 표현은 달라져야 한다. 중대한 것을 다룰 때 소홀히 말해서는 안 되고, 가치 없는 것을 다룰 때 진지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

 

적절성은 인간사의 많은 영역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덕목이다. 적절성은 무엇보다 청중이 전형적이고 관습적인 것에 익숙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다양한 학문을 논하는 자리에서도 적절성은 주요 개념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드라마의 인물 성격은 인물의 나이나 성별, 그가 처해 있는 상황과 모순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호라티우스의 <시학>에서도 적절성의 원칙이 전체 문학이론을 관통하는 준거로 작동한다. 그에 의하면 문학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하며 아울러 청중의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

 

수사적 인간

 

학문적 노력을 통해 세상을 깨닫고 이를 몸소 실천한 자를 우리는 성인(聖人)이라고 한다. 성인의 삶은 거룩하기에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라는 한자의 뜻을 풀어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것을 통해 왕이 된다는 뜻으로 풀 수 있는데 최고의 리더가 되려면 잘 듣고 잘 말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남의 말을 잘 듣고 내가 할 말을 잘할 수 있으면 성인이 될 수 있다. 성인(리더)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소통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다.

 

말이 곧 사람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몇 분만 대화를 해보면 어떤 사람인지 금세 알 수 있다. 말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잘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고대부터 말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것은 이 때문이다. 그중 가장 오래된 학문이 수사학이다. 수사학은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알려준다. 설득의 수단을 알게 할 뿐 아니라 인간 교육은 물론 리더십의 기본이자 종합 학문이며 만사의 기준이다. 나아가 진정한 소통을 이끄는 최고의 원리다. 우리는 모두 수사적 인간(rhtorikos)이다. 수사적 인간이란 자신의 의견을 말로 표현하며 남들과 소통하는 사람이다. 수사적 인간을 단지 말만 잘하는 인간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말뿐 아니라 정신의 모든 덕성을 구비한 인간이야말로 수사적 인간이다. 현대의 문명사적 조건이 수사학을 부른다.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존재, 소통이 필요한 곳에 늘 수사학이 있다.

 

 

 

김종영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yesora@snu.ac.kr

필자는 고려대 레토릭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수사학회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토론동아리 다담(多談)의 지도교수다. 저서와 역서로 <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히틀러의 수사학> <리더의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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