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기업지배구조

실질적인 지분 확보, 능력 검증, 시스템 구축… 지배구조 혁신의 핵심은 책임경영 실행이다

김우진 | 172호 (2015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국가와 기업마다 역사와 환경이 다르므로좋은기업지배구조를 일률적으로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소유와 경영의 주체, 기업집단 소속 여부 등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기업을 분류할 수 있는데 각 유형은 제각기 장단점을 지닌다.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들이 속한 H형은 지배주주가 직접 지분을 소유할 경우 주주와 이해관계를 동일하게 가질 수 있고 고위험 투자의사결정을 과감하게 내릴 때 유리하다. 하지만 경영 참여 여부가 지분에 따라 결정되므로 지배가문의 경영 참여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결정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특정 가문이나 경영진의 직접 지분을 높여 책임을 키우고, 관련법 보완을 통해 투자자 보호를 높이며,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 및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다양한 형태의 갑을 논란이 일면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다시 늘고 있다. 땅콩회항 사태로 대규모 기업집단 또는 재벌의 족벌경영체제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공기업에서 내부 승진으로 발탁된 CEO들이 다양한 비리 혐의로 낙마하면서 족벌경영체제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환상이 여지없이 깨지는 분위기다.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하다. 우리말로 기업지배구조로 번역되는 원문에는 corporate governance corporate control이 있다. 전자는 어떻게 하면 주주 및 채권자 등 기업 외부에 있는 자금 공급자들이 투자자금을 적절히 회수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후자는 지배주주, 경영진 등 기업 내부자들이 어떻게 지배권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지가 주요 관심사다. 현재 국내에서 지배구조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는 대개 후자의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 따르면 어떤 지배구조가 좋은 지배구조인지에 대한 평가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 예컨대 순환출자 또는 상호출자가 계단식 출자(pyramid) 또는 차등의결권(dual class)에 비해 더 좋은지 여부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좋은 지배구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바람직한 지배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경영권보다는 오히려 원활한 M&A를 선호할 수도 있다. 이하에서는 governance control을 포괄적으로 다루되 바람직한 지배구조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 완화라는 입장에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소유지배구조의 유형

국내에서는 소유지배구조의 유형을 일반적으로 지배주주 경영체제와 전문경영인 경영체제로 이원화해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도한 단순화는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마다 현재의 기업 소유지배구조가 형성된 원인과 연혁이 다르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3개의 기준으로 개별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유형을 구분해볼 수 있다.1 첫째, 해당 기업이 분산소유돼 있는지, 아니면 유력한 지배주주가 있는지 여부다. 후자의 경우 지배주주가 특정 가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기업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둘째, 해당 기업이 두 개 이상의 개별 기업으로 구성되는 기업집단(business group)에 소속돼 있는지 여부다. 셋째, 지배주주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지, 아니면 전문경영인이 대행하는지 여부다. 국내에서는 지배주주가 있으면 당연히 경영 참여를 전제로 한다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가족기업 분야의 전문가인 미국 뉴욕대(NYU)의 빌라론가(Villalonga) 교수는 가문의 지분소유 여부와 경영참여 여부를 별개의 독립적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2  < 1>은 위 3가지 기준에 따라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8개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A형은 전문경영인에 의해 운영되는 분산소유형 단일기업(stand-alone)으로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이 이 유형에 속한다. 혹자는 GE가 수많은 자회사를 두고 있으므로 기업집단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자회사들은 대부분 100% 자회사로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GE의 사업부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우리나라의 현행 지주회사 체제와는 매우 다르다. 반대쪽 극단에 있는 H형은 지배주주가 지분을 보유하면서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기업집단 소속의 기업이다. 한국의 현대자동차 또는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가 여기에 속한다.3 이 양 극단의 유형 사이에 다양한 중간 형태의 소유지배구조가 존재한다. 예컨대 독일의 BMW는 크반트(Quandt) 가문에 의해 지배되지만 이들은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이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전문경영인을 선출하는 역할을 한다(C). 빌 게이츠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이전의 마이크로소프트는 D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일본 기업들은 소위 계열(keiretsu)이라는 느슨한 형태의 기업 간 연합으로 연결돼 있는데(E형 또는 F), 이는 전후 미 군정에서 개인 지배주주들의 지분을 강제로 정리하도록 한 데 기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국 정부가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를 국유화했을 당시 GM은 정부라는 지배주주가 있는 전문경영인 체제하의 단일기업으로 B형에 해당한다. 인도의 대표적 기업집단인 타타그룹의 타타모터스(Tata Motors)는 타타 가문에 지배되는 기업집단 소속이지만 전문경영인이 CEO를 맡고 있으므로 G형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기업별로 소유지배구조의 유형을 구분하는 작업은 그다지 간단하지 않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지배주주 경영체제인지, 전문경영인 체제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별 기업만 볼 때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볼 여지도 있으나 삼성전자가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볼 때 지배주주 경영체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수도 있다. 각 유형은 그에 고유한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이 중 어느 유형이 우월한지 사전적(ex ante)으로 판단하기는 더욱 어렵다.

 

 

 

 

국가별 소유지배구조 변천사

어느 나라든 설립 초기의 주식회사는 특정 주주가 지분의 대다수를 보유하는 집중 소유형 구조(concentrated ownership)에서 출발한다. 미국 하버드대 폴리(Foley)와 그린우드(Greenwood) 교수는 전 세계 34개국의 기업 소유지배구조 변천 과정을 연구했는데 이들에 따르면 회사의 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IPO) 시점에서는 나라를 막론하고 집중 소유형 구조가 발견된다.4 관건은 최초 상장 이후 이 기업의 지분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희석화(dilution)돼서 분산 소유형으로 변하는가, 그리고 이 변화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 영국과 미국, 특히 미국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는 대체로 전문경영인에 의해 운영되는 분산 소유형 단일기업이다(A). 이러한 소유지배구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됐다. 미국에서도 대공황 이전까지는 철도 산업 등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층형 출자구조(pyramid)로 이뤄진 대규모 기업집단들이 다수 발견됐다.

 

영국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영국 기업들이 분산 소유로 전환한 것은 20세기에 일어난 인수합병 과정에서 합병 대가로 지급하기 위해 신주가 다수 발행되고 이에 따라 지분 희석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에는 기존 가문들이 이사회 참여 등을 통해 기업경영에 대한 영향력을 어느 정도 계속 행사할 수 있었지만 후반부에 들어서 적대적 M&A의 등장과 기관투자가의 영향력 확대 등으로 가문의 영향력이 궁극적으로 쇠퇴하게 됐다.5

 

아쉽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형태의 분산 소유화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다소 무리라고 판단된다. 첫째, 국내에는 M&A 매물이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매물은 부실기업의 회생 과정에서 출자전환을 통해 확보한 지분을 채권단이 매각하면서 나오는데, 이는 부도가 나기 이전에 자발적으로 매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같은 매각 기피 현상은 후술하는 경영권의 사적 편익과 무관하지 않다. 둘째, 국내에서의 합병은 대부분 계열기업 간 이뤄지며 미국처럼 독립적인 두 개의 기업이 합병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6 셋째, 국내에서 독립적인 기업 간 M&A는 합병이 아니라 현금 지급을 통한 지분인수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분인수 방식은 기존 기업의 지분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히려 기업 간 계층적 출자구조(pyramid)를 더 촉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7

 

미국은 다양한 형태의 신주발행뿐 아니라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구주를 시장에서 적극 매각함으로써 분산 소유화가 더욱 진전됐다.8 미국 기업의 창업주를 포함한 내부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기업의 주식가치 또는 유동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우호적인 시점에 적극적인 지분 매각에 나섰다는 의미다. 이렇게 주식을 매각하는 것은 분산투자(diversification) 효과 때문이다. 집중 소유의 경우 지배주주의 전체 자산이 한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고유 위험(idiosyncratic risk)에 노출된다. 보유 중인 지분을 매각해서 해당 기업과의 상관관계(correlation)가 낮은 자산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전체 자산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 빌 게이츠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꾸준히 매각해 왔는데 이 중 일부는 자선사업을 위한 자금으로 쓰이지만 일부는 분산투자의 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리(Foley)와 그린우드(Greenwood)의 연구에서 신주 발행을 통한 지분 희석화 속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적된 변수는 각국의 투자자 보호 수준이다. 즉 새로운 투자 기회가 생겼을 때 투자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우수한 국가의 기업들은 신주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에 주저하지 않는다. 기존 주주들은 증자에 따른 지분율 감소를 용인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 기업 성장과 분산 소유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일본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는 다소 특이한데 우리와 유사한 느슨한 형태의 기업집단(계열: keiretsu)을 유지하지만 우리와 같은 지배가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앞서 설명했듯 전후 미 군정이 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지배가문 중심의 재벌(財閥·zaibatsu) 체제를 지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체하고자 했던 데 기인한다.9

 

한편 미국, 영국, 일본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서는 우리와 유사하게 특정 지배가문에 의해 경영되는 기업집단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국내 저비용 항공사들이 초기에 도입했던 프로펠러 여객기를 생산하는 봉바르디에(Bombardier)는 캐나다 재벌이며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 홍콩의 리카싱 가문 등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각국의 대표적인 지배가문이다. 이처럼 특정 지배가문에 의해 경영되는 기업집단이 전 세계에 산재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우리나라의 재벌을 한국에 특유한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를 한국 고유의 현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이를 보편적인 균형(equilibrium)이 아닌 불균형(disequilibrium)으로 보기 쉬운데 이런 관점에서는 왜 선진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도 이 같은 구조가 아직도 존재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기업별로 소유지배구조의 유형을

구분하는 작업은 그다지 간단하지 않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지배주주 경영체제인지,

전문경영인 체제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유지배구조의 유형과 기업 성과

앞서 소개한 영미식의 A형이 우월한지, 아니면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H형이 우월한지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일률적으로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H형이 A형에 비해 단점이 있지만 분명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학계에서는 A형 소유지배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대리인 문제를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지 여부를 중심으로 이론이 발전돼 왔다.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도 이론적으로는 지분이 거의 없는 경영진과 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alignment of interest)시키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고정급만 받는 경영진은 주가에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경영진이 주가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스톡옵션이라는 보상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H형은 A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영진과 주주의 이해관계가 더 일치할 수 있다. H형 기업의 지배주주가 직접 지분을 많이 보유하면 지배주주의 이해가 일반 주주의 이해와 유사해진다. 주가가 오르면 일반 주주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분을 많이 보유한 지배주주가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논리는 지배주주가 지분을 직접 보유하는 경우에 주로 적용되고 다른 계열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경우에는 적용할 여지가 적다.

 

이해관계의 일치뿐 아니라 고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대규모 투자의사결정을 할 때도 H형이 A형보다 유리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A형과 가장 유사한 기업으로는 민영화된 대형 공기업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임기가 3년인 공기업 CEO는 하이닉스 인수 같은 초대형 투자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H형이 A형에 비해 유리한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들도 있다. 가장 큰 단점은 H형의 경우 경영 참여 여부가 보유 지분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지배가문이 경영에 참여하려는 의사가 있는 이상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A형의 경우 내부 승진이든, 외부 영입이든 새로 취임하는 CEO의 과거 경력 또는 경영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사전 평가가 필수적인 절차로 행해지지만 H형의 경우에는 이런 절차가 전혀 없다. 경영 능력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2, 3세들이 조기에 경영에 참여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이번에 논란이 된 땅콩회항 사태도 본질적으로는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배가문의 경영 참여가 기업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실증연구는 아직 일치된 입장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주로 지배가문 중 누가 경영에 참여하는지에 따라 기업성과에 차이가 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전술한 빌라론가와 아밋(Amit)(2006)에 따르면 창업주가 CEO 또는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는 경우에는 지배가문의 지분 보유가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는 매우 직관적으로 우리나라에 적용해 볼 수 있다. 국내 유수의 대규모 기업집단이 오늘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창업 1세대들의 기업가정신과 과감한 투자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1세대의 뛰어난 경영능력이 2, 3세까지 자동적으로 유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경영권 승계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대표적인 인사로 버크셔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을 들 수 있는데이는 마치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장자들로 팀을 구성해서 2020년 올림픽 팀을 구성하는 것과 같다는 그의 발언은 매우 유명하다. 실제로 빌라론가와 아밋(2006)은 창업자의 후손들이 CEO로 재직하는 경우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실증적으로 규명했는데 그 정도는 전문경영인에 의해 운영되는 분산소유형 기업(A)보다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는 주주와 경영진 간 이해관계의 상충(conflict of interest)에 따른 대리인 문제보다 후손들의 경영능력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페레스-곤잘레스(Perez-Gonzales) 교수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신임 CEO가 지배가문 출신일 경우 영업수익성 및 장부가 대비 시가 비율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이런 현상은 CEO 출신 대학의 명성이 낮을수록 더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국내에서는 2, 3세의 경영 실패를 상장 계열사가 떠안아서 계열사 주주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사태까지 발생한 바 있다.

 

그렇다면 왜 후손들이 기업가치 훼손에도 불구하고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자 하는지, 즉 보유지분에 대한 재산상 상속을 넘어 경영권으로 표현되는 최고경영진으로서의 지위를 세습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뒤따른다. 이는 앞서 BMW 사례에서 설명했듯 지분보유와 경영참여는 개념적으로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경영권에 대한 집착은 각국의 법령 및 제도가 허용하는 경영권의 사적 편익(private benefits of control)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영권의 사적 편익은 1988년 그로스만(Grossman)과 하트(Hart)의 논문에서 처음 제시된 개념으로, 인수합병 시장에서 왜 경영권 프리미엄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관심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실 주식 한 주 살 때는 시장에서 1만 원만 내면 되는데 경영권이 수반되는 20∼30% 이상의 지분을 매입할 때는 왜 주당 만 원이 아니라 12000∼13000원 또는 그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프리미엄의 배후에는 일반 투자자는 누릴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경영권에 수반되기 때문인데 이를 경영권의 사적 편익(이하 사적 편익)으로 통칭한다.

 

사적 편익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우선 심리적 편익(amenity benefit)이다. 대규모 기업집단 총수로서의 지위에서 누리는 사회적인 관심이나 명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조직 내에서의 의사결정이나 구성원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도 포함된다. 현실적으로 국내 인수합병 시장에서의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의 하나로 인수 후 재계 서열 순위 상승을 들 수 있다. 이것 역시 심리적 편익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심리적 편익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 수천억 원 내지는 수조 원에 달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를 설명하려면 보다 구체적이고 금전적인 편익이 있을 텐데 사적 편익의 일종인 횡령, 배임, 기타 내부 거래를 통한 회사 자금 유용 및 비자금 조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지배주주의 직접 지분이 매우 낮은 상장기업은 일정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할 때 이것의 대부분이 결국 일반 주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실상 절도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학계에서는 이런 거래를 터널링(tunneling)이라고 통칭한다. 국내 인수합병 시장에서 인기 있는 업종 중 하나는 건설 산업인데 물론 부동산 등 보유한 실물자산을 보고 투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암암리에 이해되는 중요 이유 중 하나는 비자금을 조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이다. 이처럼 경영권의 사적 편익이 높으면 기업이 망하기 전에는 자발적으로 M&A 매물로 내놓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한국형 기업지배구조의 재설계

이처럼 현존하는 각국의 소유지배구조는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과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향후 국내 기업 지배구조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소유구조

이론상 가장 우월한 소유지배구조는 경영진에 의한 100% 직접 지분 소유다. 이 경우 회사의 손익이 경영진의 개인적 손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상충이 발생하지 않고 따라서 대리인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미 오래 전에 상장된 초대형 기업들의 지분을 현재 시점에서 특정 주체가 100% 보유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차입매수(Leveraged Buyout·LBO)가 바로 100% 지분 취득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전략이다. 국내에서는 매수대상 기업 지분의 일부만을 취득하는 형태를 상정하므로 배임 등 법적 이슈가 제기되고 있으나 원래 LBO는 저평가된 상장기업의 주식 전부를 공개매수 등의 형태로 매입해서 상장 폐지시키는 것이 원칙이다. 이렇게 하면 LBO 시행의 주체가 대상기업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되므로 대리인 문제가 없어진다. 예컨대 비자금을 조성하더라도 어차피 자기 돈이므로 그렇게 할 유인 자체가 사라진다. 이런 이유로 미 하버드대 젠슨(Jensen) 교수 등이 가장 선호하는 소유지배구조가 바로 LBO.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이 방법을 적극 활용하기에 많은 제약이 있다. 상대 기업의 지분을 100% 취득하더라도 형사상 배임이 인정되는 문제가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LBO 자금의 상당 부분이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신규 발행되는 채권으로 충당되는데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은행들이 주채권은행으로서 대출 기업에 강한 교섭력(bargaining power)을 보유하기 때문에 이런 거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처럼 100% 소유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차선은 경영진의직접지분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경영진의 직접 지분이 낮고 계열사를 통한 간접 지분이 높으면 의결권은 높지만 현금흐름권 또는 배당권은 낮은 소유-지배의 괴리 현상 및 이에 따른 터널링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관점에서는 계열사를 통한 출자 또는 부분 지분 매입을 통한 경영권 인수 등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신주 발행을 통한 합병이 일반적인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현금으로 주식 일부를 사는 방식이 보편화돼 있다. 이런 방식은 계열사를 통한 간접 지분의 확대 및 계층적 출자 구조의 심화를 가져오게 된다. 합병은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야 하고 이에 반대하는 주주는 회사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최근 삼성이 추진한 계열사 간 합병이 기관투자가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주식인수를 통한 경영권 인수는 주총을 거칠 필요가 없고 지분 매각에 반대하는 주주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금호그룹의 대한통운 지분 매각 시 관련 기업의 주가흐름이다. CJ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던 날, 대한통운 지분을 매각한 아시아나 주가는 오르고 CJ는 떨어졌다. CJ의 주가 하락은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 등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대한통운의 주가다. CJ가 상당한 프리미엄을 주고 경영권을 인수했는데도 대한통운의 주가는 발표 당일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는 매우 보기 어려운 것으로 대부분 피인수기업 주가는 공시 직후 프리미엄만큼 급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피인수기업 지분 인수 범위의 차이에 있다. 미국에서는 피인수기업의 지분 100%를 취득하는 합병이 일반적이고 따라서 인수 프리미엄을 모든 피인수기업 주주에게 지급해야 하는 데 비해 우리는 피인수기업의 지분 일부만 취득하기 때문에 프리미엄은 경영권 양도 주체에게만 지급되고 나머지 주주들은 프리미엄은 받지 못한 채 경영 주체의 변동만 발생한다. 이 같은 일반 주주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의무공개매수제도(mandatory tender offer)를 도입한 국가들이 있다. 영국은 30%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려면 나머지 70% 주주들의 주식도 동일한 조건(프리미엄)으로 의무적으로 공개매수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1997년 전후 25% 이상 취득 시 50%까지 공개매수하도록 의무화한 바 있으나 외환위기 발발 직후 폐지됐다. 이제는 50%가 아니라 영국과 마찬가지로 100% 공개매수하도록 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때다.

 

지배가문의 직접 지분율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구조는 지배가문이 상장지주회사의 안정적인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나머지 회사들은 모두 이 상장지주회사의 100% 자회사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소유-지배의 괴리도 없고 일반 주주들도 지배가문과 동일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할 수 있으므로 기업 간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부의 이전이 불가능하다. 물론 현재의 지주회사 체제에는 복수의 상장 자회사들이 존재하고 자회사 지분율은 100%에 훨씬 못 미친다. 만약 지배가문이 자발적으로 지주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의 지분을 청산하고 그 대금으로 지주회사의 증자에 참여해서 지주회사로 하여금 자회사들의 잔여 지분을 매입하도록 한다면 이런 구조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배가문이 자발적으로 이런 전환을 추진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도 알짜회사는 지주회사 체제하에 두지 않고 지배가문이 직접 소유하는 형태로 두고 있으며 여기에 각종 일감을 몰아줘서 회사 기회를 유용(expropriation of corporate opportunity)하고 있는데 이런 거래에 대한 엄격한 사법적 제재가 없는 한 현행 구조를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형성돼 있는 지배주주 일가의 직접 보유지분을 분할하는 것은 더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일본식 강제 지분 정리는 전후 혼란기에나 가능한 일이지 현행 법 체제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특정 가문 또는 집단에 의한 안정적인 지분(block ownership) 보유는 이론적으로 대리인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블록(Block) 지분이 있어야 고용 사장이 책임을 지는(accountable) 명확한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규모 기업집단의 사장단을 구성하는 전문경영인들의 지배가문에 대한 책임은 잘 알려져 있듯 매우 높은 수준이다. 블록의 중요성은 블록이 없는 경우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국내 기업 중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 즉 민영화된 공기업 또는 제1금융권에 속하는 은행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기업은 국내에서 속칭주인 없는기업으로 통하는데 우선 이 표현은 잘못됐다. 같은 논리라면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도주인 없는기업이라고 불러야 한다.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배주주가 없는 것이다. 지배주주가 없으면 지배가문의 일가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D형 또는 H형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전문경영인에 의한 경영이 불가피하다. 이런 기업의 CEO는 누구에게 경영책임을 질까? 이론적으로는 주주들에게 책임을 지지만 소유가 분산된 주주들은 무임승차(free-ride)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경영진을 적극 견제 및 감시하기 어렵다. 최근 KB 사태 때도 온갖 논란이 난무했지만 이 때문에 KB 주가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분석하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CEO들이 현실적으로 책임을 지는 대상은 사실상의 임명권자다. 이런 기업의 CEO 임기는 3년 내외로 비교적 짧으며 연임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결정될 때가 많으므로 CEO의 인센티브는 대개 임기 동안 현직에서의 보수를 극대화하는 한편대과없는 경력 관리를 통해 다음 자리로 무사히 이동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과감한 장기적 투자 및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사회와 주주의 이해관계를 견고히 하기 위해

사외이사의 보수를 일정 부분 스톡옵션 또는

주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분산 소유 기업은 이론적으로는 주주에게 책임을 지지만 현실적으로는 CEO의 전횡을 막기 어렵다. 따라서 이미 형성돼 있는 블록을 국민주 방식으로 강제 분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민영화 방식을 취했던 러시아와 기타 동구권 국가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투자자 보호가 적절히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대규모 국민주 방식 민영화는 오히려 각종 터널링을 통해 조직 폭력과 연계된 신흥 재벌(oligarch)이 출현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블록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는 국내 은행 중 유일하게 어느 정도 블록이 형성돼 있는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재일교포라는 명확한 블록 소유 주체가 있기 때문에 최고경영진은 이들에게 책임을 지고 이들이 사실상 최고경영진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신한은행의 경영 성과가 은행권 중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블록의 효과는 지배주주 일가가 직접 보유하는 지분에만 적용되는 논리이며 계열사를 통한 간접 지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투자자 보호와 경영참여

앞서 지적한 것처럼 지배가문이 보유지분에 대한 배당권을 넘어 대를 이어 경영권에 집착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양한 유무형의 사적 편익이다. 이런 사적 편익을 낮출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은 강력한 사법적 통제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 일반적으로는 영미법계(common law) 국가들이 대륙법계(civil law) 국가들보다 투자자에 대한 법적 보호 수준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영미법계가 민사 사건을 다룰 때 법전이나 조문보다는 거래당사자 간 형평성, 이해관계의 상충 등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제 강점기 이후 이미 독일계통의 대륙법을 수용해 발전시켜 온 우리나라 법 체계를 영미법계로 바꾸는 것은 현 시점에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행히 최근 우리 법원은 대규모 기업집단 관련 범죄 및 금융 관련 범죄에 대해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는 물론 환영할 만한 변화지만 아직 주로 형사사건에 국한돼 있고 민사를 통한 권리구제는 미흡하다. 경영진의 사익 추구로 주가 하락 또는 원리금 손실을 입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배주주를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는 손실을 민사적으로 보전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인 구제수단이 될 수 있다. 최근 한우 생산업자들이 수입산을 한우로 속여 판 업자들을 대상으로 형사 처벌과는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최근 알리바바의 주가 하락에 대해 미국 투자자들이 집단 소송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알리바바가 중국 당국의 경고 조치를 미국 시장 상장 당시 투자설명서에 공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소송 제기가 가능한 것이다. 혹시 우리나라 코스닥 상장사에서 유사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있다면 이들이 알리바바 주주들처럼 원활히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내에도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돼 있지만 아직 소제기 요건 등이 엄격해서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포함해서 민사적 구제가 더 활성화되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

 

만약 국내에서 주가하락에 대해 미국 수준의 소송 제기가 활발히 이뤄진다면 어떻게 될까? 필자의 예측으로는 우선 2, 3세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려는 유인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괜히 머리 아프게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대신 BMW처럼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본인들은 대주주로서,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능력이 검증된 전문경영인을 선임하고 실적이 안 좋으면 과감히 해임하는 역할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이사회

이사회의 기능, 특히 사외이사의 역할에 대해 아직도 국내에는 많은 오해가 있는 듯하다. 1997년 이전까지는 사실상 이사회가 형태만 있을 뿐 실질적인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사회를 경영에 대한 자문을 하는 기관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이사회의 기능은 현대 대의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의회의 기능과 유사하다. 국민들이 세세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행정부에 대부분의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하고 의회로 하여금 국정감사 및 조사 등을 통해 이를 통제하도록 한 구조 말이다. 이처럼 주주들도 일반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경영진에 위임하고 이사회가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하도록 한 것이다.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CEO의 선임과 해임 권한이다. 이는 미국 기업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GE, GM 등을 포함한 유수의 기업들은 모두 분산 소유형으로 이사회가 형식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으로도 CEO를 선임한다. 우리도 물론 법적으로는 블록의 존재 여부를 불문하고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기관은 이사회로 돼 있다. 그러나 CEO 선임을 실질적으로 누가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심지어 CEO ‘내정이라는 말이 일반화된 것처럼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CEO를 선임 또는 해임하는 경우는 드물다. 현실적으로는 블록이 있는 경우, 지배가문이 CEO 임명권을 행사한다. 이는 보유한 지분을 근거로 행사되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는 정당성을 가진다. 문제는 블록이 없는 경우다. 미국에서는 블록이 없을 때 이사회가 CEO를 선임한다.

 

블록이 없는 국내 기업의 CEO는 누가 선임하는가? 안타깝게도 이처럼주인 없는기업에 대해서 심리적으로 claim을 갖는 외부 주체들이 적지 않은데 바로 감독당국 및 정치권이다. 심지어 이들은 이사회가 CEO를 선임하려고 하면 이를 사외이사들의반란정도로 인식한다. 이들의 주장을 미국에 그대로 적용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 CEO는 백악관에서 임명해야 할 것이다. 이런 낙하산 인사는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특히 금융 부문의 경우관치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항상 경계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뷰캐넌(Buchanan)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정치인과 관료들도 자신들의 고유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사회의 역할은 특히 블록이 없을 때 훨씬 중요하다. 블록이 없는 기업에서 주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주체는 사실상 이사회밖에 없다. 이사회와 주주의 이해관계를 견고히 하기 위해 사외이사의 보수를 일정 부분 스톡옵션 또는 주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배가문이 있는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이사회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지배주주의 의사가 무엇인지 헤아리게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경영진을 선임할 때 최소한의 검증 기능은 결국 이사회가 수행해야 한다. 미국 기업의 공시를 보면 경영진과 특수 관계에 있는 자(예컨대 사위 등)에 대한 보수가 유사한 경력을 가진 동급 직원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공시한다. 이런 차원에서 2, 3세들이 경력과 무관하게 초고속 승진하는 현재의 관행은 재고해 볼 여지가 있으며 이들에게도 일반 직원과 동일한 인사 원칙(최소 근무 요건 등)이 적용되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보상 체계

앞서 국내에서는 지배주주가 부재인 경우 고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대규모 투자의사결정을 전문경영인이 내리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역으로 지배주주가 없는데 GE CEO는 어떻게 장기적 관점의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는 과감한 혁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미국 CEO에 대한 보상 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기업들에는 지배주주가 없지만 경영진에 대한 높은 보수와 비교적 장기적인 임기, 스톡옵션을 포함한 정교한 성과보수 체계가 갖춰져 있으며 이를 통해 블록의 부재를 보완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최고경영진으로 하여금 선임 이후 일정기간 이내에 회사 주식을 보수의 일정 배수까지 보유하도록 의무화한 기업들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지배주주 경영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국내 공기업이나 제1금융권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행장 임명 1년 이내에 본인 보수의 일정 비율만큼 해당 은행 주식을 취득해야 한다면 소위사태로 통칭되는 일들은 어느 정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전에는 지배가문들이 공식적인 보상체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양한 형태의 비자금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터널링에 대해 법적 규율이 강해지는 추세며, 따라서 지배가문의 입장에서도 경영진으로서의 보수 및 주주로서의 배당 등 공식적인 보상체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작년부터 연봉 5억 원 이상 등기이사의 개별 연봉이 공시되면서 일부 지배가문의 고액 연봉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는 불법적인 터널링에 비해서는 오히려 훨씬 진일보한 것으로 봐야 한다. 배당을 통한 주주 환원 역시 일반 주주들에게도 비례적으로 동일한 혜택이 돌아가므로 이것의 증가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내수 소비 진작을 목적으로 사내 유보금을 배당으로 유도하기 위한 최근의 각종 세제 개편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기관투자가

최근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30대 기업집단의 상장사 지분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1997년 이전 기관투자가들은 소위 그림자 투표(shadow voting)를 통해 사실상 의결권이 제한돼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동안 기관투자가 역할이 많이 발전돼 온 것은 분명하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어떤 방향으로 행사되는가는 매우 중요한 이슈다. 원칙적으로는 물론 가입자들의 장기적인 수익 극대화가 목표가 돼야 한다. 문제는 국민연금 역시 감독당국 및 정치권 등 외부 세력의 영향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전 정부에서는 특정 상품의 가격 인하 유도가 뜻대로 되지 않자 국민연금을 통해 이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정부의 정책적 목표 달성을 위해 활용돼서는 결코 안 된다. 아직 국민 대다수의 노후 생활자금이 안정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국민연금의 자산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 개입은 없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정리하며

결국 지배가문에 의한 대규모 기업집단 경영이라는 체제를 이해하고 이를 발전적으로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가문에 의한 지분 보유와 가문에 의한 경영참여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관점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블록의 긍정적 효과를 대체할 수 있는 미국식의 정교한 성과보상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블록을 해체하려는 시도는 필히 경계해야 한다. 가문에 의한 (직접) 지분 보유를 전제로 하면 가문에 의한 경영참여 여부는 비교적 논란의 여지가 적다. 경영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구축하고 능력이 검증된 경우에만 최고경영진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국 포드는 차등의결권을 활용해 포드 가문이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전문경영인을 고용하기도 하고 직접 경영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런 검증과정에서 이사회 및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종종 간과하는 것 중 하나는 국민 모두 최소한 간접적으로는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유수기업의 주주라는 점이다. 어느 국민이나 국민연금(또는 각종 직역연금)에 가입돼 있고 이 연금들이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대표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로 주식형 연금이나 펀드에 가입한 국민이라면 그만큼 주주로서의 지위가 더 중요해진다. 어느 미국 정치인이 “What’s good for General Motors is good for America”라고 했는데 이 말은 지금의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 같다. 기업지배구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기업가치, 주주가치가 하락하면 안 그래도 불안한 우리 국민의 노후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woojinkim@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재무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자원부 사무관(행시 40),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고려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기업재무 및 지배구조로등 주요 학술지에 관련 논문을 게재하면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