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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세계 1위•매출성장,사업집중.. ‘버릴 수 없는’ 목표서 해방돼야 산다

유재훈 | 167호 (2014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조선업 세계 1위였던 현대중공업이 올해 유례없는 부진을 겪었다. 영업이익이 급감했고 신용등급도 하락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 업황의 부진과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실적이 악화됐다. 저가 수주와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실패한 것도 올해 사상 최악의 실적을 가져온 원인이 됐다.

 

울산 미포만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해 어느덧 세계 1위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져버린 현대중공업이 침몰 위기에 놓여 있다. 현대중공업은 1∼9월 누적영업적자 3조 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부진과 선박 수요 둔화, 중국의 성장, 이에 따른 경쟁심화가 대규모 적자에 대한 주된 이유이자 변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설명은 충분치 않다. 경기둔화가 모든 기업을 대규모 적자로 몰아넣지는 않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세상의 어떤 기업이든지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때가 있다. 산업이 쇠퇴하거나 기술격차와 진입장벽의 한계 때문에 영원한 2등으로 머무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수요 둔화와 중국 조선산업의 약진으로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 현대중공업은 성장의 한계를 직감하고 세계 1위 조선사로 군림하던 시절부터 사업다각화를 추진했다. 2008년 증권사인 CJ투자증권(현 하이투자증권) 2010년 정유사인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시도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은 두 가지 결정적 실수를 범했다. 첫 번째, 성장의 한계를 알고 있었지만 기존 사업에서 성장이라는 경영목표를 버리지 못했다. 이러한 실수는 결국 저가 수주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지금의 적자를 만들어낸 주요 원인이 됐다. 두 번째, 사업다각화와 신규 사업 모두가 산업재로 구성돼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 분산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해양플랜트, 발전플랜트, 전기전자, 신재생에너지, 정유화학, 증권금융 모두가 비슷한 경기순환 사이클을 가지는 산업재군에 속한다.

 

 

대규모 적자의 실체는 저가 수주

글로벌 최고의 경쟁력을 자부하던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 3분기에만 연결영업적자 19346억 원을 나타냈다. 3분기까지 누적영업손실은 32273억 원에 이른다. 조선 부문에서만 2개 분기 연속 대규모 손실(2분기 5540억 원, 3분기 11459억 원)을 냈다. 조선 부문에서 대규모 적자의 원인은 2012∼2013년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수주를 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수년간 지속되면서 수요 성장세가 정체된데다 중국의 성장으로 주력산업인 조선의 이익 체력이 급격히 저하된 것도 문제가 됐다. 글로벌 발주량은 2011 8100 DWT(Deadweight Tonnage·재화중량톤수)에서 2012 4900 DWT 40%나 급감했다. 20111 142p였던 신조선가(새로 발주되는 배의 가격)지수는 2012 12 126p까지 떨어졌다.

 

수주잔고는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결국 일감 확보를 위해 수익이 낮은 선박 수주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건조 경험이 부족했던 고()사양 선박과 해양시추 설비들에서 공정차질이 발생했고 이는 생산성 둔화로 이어졌다.

 

 

 

조선 부문 연결실적에 반영되는 현대미포조선도 3분기에만 6064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현대미포조선도 현대중공업과 마찬가지로 2013년까지 수주한 선박들이 대부분 저가 수주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수주 부진이 지속되자 일감 확보를 위해 저가 수주를 감행했던 것이다. 아울러 일감 확보를 위해 주력 선종이 아닌 해양지원선박 등으로 선박의 종류를 다변화했던 것도 생산성 하락의 원인이 됐다. 단일 선종을 반복 건조해야 생산성이 높아진다.

 

 

발전플랜트 부문에서도 대규모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2분기(4∼6) 2369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3분기에도 7791억 원의 영업손실을 추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사우스(Jeddah South) 프로젝트와 슈퀘이크(Shuqaiq) 프로젝트 등이 문제가 됐다. 당초 예상했던 자재비, 현지 인건비 등 비용이 상승하면서 고스란히 손실로 잡혔다. 모두 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이며 공사금액은 각각 32억 달러와 33억 달러다. 2010 10월과 2013 8월에 각각 수주했으며 두 프로젝트의 인도시점은 2017 1분기(1∼3). 조선 부문의 수주 부진이 계속되자 중동 발전플랜트 프로젝트에서 공격적인 수주 전략을 펼친 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무리한 수주 전략을 감행했던 것이 현재 대규모 적자의 또 다른 원인이 됐다.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는 예정원가 상승으로 2분기에 3740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하지만 계약변경(Change Order)을 통해 3분기에 3100억 원 수준의 손실을 만회했다. 추가적인 이익 보전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는 다소 안정적인 사업을 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국제유가의 급락으로 당분간 수요 부진은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 많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글로벌 오일메이저들은 채산성이 낮은 해양자원개발 투자를 취소하거나 연기시키기 때문이다. 연속된 대규모 적자로 10월 현대중공업의 신용등급은 AA+에서 AA로 하락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

글로벌 산업재들은 2008년 이후 모두 설비과잉에 직면해 있다. ()조선 부문에서도 수주가 감소하고 이익은 줄어들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7개 사업부(조선, 선박엔진, 해양, 발전플랜트, 전기전자, 건설장비, 신재생)들은 모두 산업재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은 것이다. 더군다나 조선 부문만 빼면 모든 사업부가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업체들은 아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1, 2위를 다투는 사업부지만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기술적 리더십이나 원가 경쟁력 부문에서는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변압기가 주력인 전기전자사업 부문은 2008년까지 2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내며 차기 성장동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과잉이 이뤄지고 지멘스, GE, 슈라이더 같은 글로벌 상위 업체들이 가격을 낮추자 상황은 급변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모두 적자를 냈다. 발전플랜트 사업부에서는 핵심 기자재나 엔지니어링 같은 원천기술 확보가 어려웠다. 국내 여타 건설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중동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수주를 해야 하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글로벌 경기둔화로 인해 중동에서는 이미 플랜트 수주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달려온 건설회사들로 포화상태였다. 안정적인 운영이 어려웠다. 건설장비 사업부는 중국 건설장비 업체들의 성장으로 이익감소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신재생에너지 부문에서는 중국의 저가 공세와 각국 정부의 로컬 부품 사용 조건이 까다롭게 적용돼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산업의 쇠퇴와 기타 사업 부문의 경쟁력 부족으로 이미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M&A를 통한 사업다각화를 통해 이를 극복해 보고자 했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 또한 쉽지 않았다.

 

2013년 조선 부문의 영업이익은 1310억 원으로 전체 영업이익 8120억 원의 16%를 차지했다. 현대오일뱅크의 영업이익은 4040억 원으로 그룹 전체의 50%를 창출했다. 최근 조선 및 플랜트 부문에서 적자가 이어지고 있어서 그룹 내 이익기여도는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하락했고 정제마진도 축소되고 있어 현대오일뱅크의 이익성장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대오일뱅크도 글로벌 경기둔화를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사업다각화 과정과 신규 사업 진출에서 모든 사업 부문이 비슷한 주기의 이익 사이클을 가진 산업에 집중된 탓에 분산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조선업 성장의 한계

2005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경기 확장은 역사상 유래 없는 조선업 호황기를 만들었다. 자산가격 상승에 힘입어 소비의 중심이 된 미국과 세계의 생산공장인 중국을 이어주는 데 많은 선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국내 조선사들은 밀려드는 일감에 하루가 짧았다. 분기마다 사상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축배를 들었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리먼 사태가 발생하며 글로벌 경기가 악화되자 조선업은 여지없이 극심한 침체를 겪어야 했다. 선주사들이 인도 대금을 마련하지 못해 건조가 완료된 선박들을 인도해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에 위기의 시작이자 성장의 한계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조선 부문에서 성장의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선업은 자본집약적,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의 특징은 고임금 국가에서 저임금 국가로의 산업 이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 국가의 의지와 자본만 있다면 시장 진입이 어렵지 않다. 중국 정부가 2000년대 들어 막강한 고용 창출력을 가진 조선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후 중국의 국영 조선사들은 기술의 성장과 정부의 금융지원에 힘입어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나갔다. 중국 기업의 싼 노동력에 기댄 저렴한 선박 가격은 현대중공업에도 부담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 부문에서 수요의 변동성이 확대됐고 성장도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조선업의 수요변동은 일반적으로 글로벌 경기변동 순환주기와 일치하는데 3년 주기의 짧은 파동과 길게는 10년 정도의 초호황기 파동을 만들어 낸다. 2005∼2008년 사상 최대의 호황기를 맞아 많은 선박이 발주되면서 해운시장은 공급과잉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업 수요 성장이 정체되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에 국내 조선사들은 조선산업 성장 한계를 직감하고 몇 년 전부터 사업구조의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조선 일변도의 사업구조에서 해양자원 개발에 필요한 시추선과 생산설비 매출 비중을 60% 수준까지 올려놓았다.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만에 조선소를 건설하고 부산영도 조선소 생산능력을 축소시키며 중국과 경쟁을 준비했다. 현대중공업은 글로벌 종합 중공업 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사업다각화를 진행했는데 문제는 조선 부문 생산능력을 축소시키지 못한 데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2008 12000억 원을 투자해 군산에 조선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조선업 초호황기를 거치며 일감이 몰려들자 생산능력 확충을 위해 투자 결정을 내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왔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2010년 완공된 군산조선소는 연간 20척 내외의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었지만 일감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과잉투자였던 것이다. 시장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조선 부문의 생산능력을 오히려 확충한 탓에 조선업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큰 피해를 입게 됐다.

 

진일보를 위한 후퇴의 혁신

기업이 쇠퇴하는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답은 혁신이다. 미래를 위한 경영혁신만이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해준다. 시장의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기업이 경쟁력과 한계를 정확히 분석해 과감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성장 초기에 있는 기업들은 공격적인 성장 위주의 혁신전략이 필요하겠지만 성숙 단계에 있는 기업들에는 방어적 혁신이 필요하다. 가끔은 후퇴를 위한 혁신이 필요할 때도 있다. 조직 슬림화의 혁신, 사업포트폴리오 변화의 혁신, 비용 통제의 혁신, 자본투자효율 개선을 위한 경영혁신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중공업에 세계 1등 자리를 내려놓으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원한 세계 1등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5년 동안 성장이라는 경영목표를 과감히 버릴 수 있었다면 현재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오늘 현대중공업의 뼈아픈 경영 실패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성장을 위한 경영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대리인 경영의 한계일 수도 있다. 매출 목표, 수주 목표 달성을 위한 경영이 무리한 저가 수주를 불러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세계 1위의 조선과 해양플랜트 건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위기를 헤쳐나갈 훌륭한 인력도 확보하고 있다. 성장이라는 허물 좋은 경영목표를 내려놓고 진일보를 위한 후퇴의 혁신을 한다면 머지않아 다시 세계 1등 현대중공업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필자는 호주 멜버른의 라트로브(La Trobe)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멜버른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중공업, KB투자증권을 거쳐 현재 우리투자증권에서 4년째 조선 부문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유재훈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 john.yu@wooriw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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