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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이민의 나라 미국은 다문화가 힘 대표 민족은 없다, 각각의 민족이 시장이다

조승연 | 162호 (2014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마케팅, 인문학

최근에는다문화 사회라는 화두가 제기되면서 좀 덜하지만 이전까지 한국민들은 스스로단일 민족국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오히려 대국은 그 특성상다민족의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다문화 국가들이다. 다문화 국가도 모두 같은 게 아니다. 정복을 통해 만들어 낸 A형 제국인 중국 등은주류 민족과 문화가 사실상 공식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중국과 가깝고 역사적으로 교류가 많아 A형 제국적 사고로 다문화주의에 접근하는데, 이는 이민을 통해 형성된 미국은 물론 최근의 프랑스나 영국에도 맞지 않다. 따라서 기업들은 다문화 국가 역시 두 종류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민형 국가에서는 세분화된 민족문화 시장을 공략해볼 수 있다. 

 

편집자주

인종, 문화, 종교, 정서, 안목 등이 각양각색인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의 호감을 얻고 수익을 만들려면 인문학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고객에게는 최고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이 다른 나라 고객에게는 혐오감을 주거나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미 지역과 동남아 문화에 정통한 언어 전문가이자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을 연재합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미국이나 중국 등 대형 시장에 진출할 때 상품 디자인과 마케팅 등의 생산과 판매 전략을 그 나라의주류문화에 맞춘다. 하지만 미국, 중국 등 다문화 국가에 진출한 기업의 경우 타깃 국가 내에 존재하는 여러 문화권을 세분화해서 성공률을 높인 사례가 훨씬 더 많다. 소말리아 출신 여성 사업가 이만 모하메드 압둘마지드는 미국의 패션과 메이크업 시장에 진출해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그녀의 성공 비결은 미국의 다문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특정 민족 문화만 겨냥한 것이었다.

 

이만은 영국의 전설적인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의 아내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후 케냐로 건너가서 대학을 나왔다. 대학생 시절에 미국의 유명한 사진가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1976 <보그> 잡지 모델로 데뷔했으며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뮤즈라는 설이 돌면서 국제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이만은 모델 생활을 하는 동안 그녀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흑인 피부톤에 맞는 화장품을 구하지 못해 패션쇼를 준비할 때마다 백인 소비자 취향에 맞춰 생산된 화장품을 여러 개 구입해서 이리저리 배합해서 사용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만은 미국에서 모델 활동을 하는 동안 미국처럼 흑인 인구가 많은 나라에 흑인 피부 색에 맞는 화장품 라인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1994, ‘이만코스메틱이라는 화장품 회사를 론칭했다. 흑인들의 소비 생활 패턴을 고려해 백화점이 아닌 월그린약국을 중심으로 판매망을 짰다. 그 결과 그녀의 회사는 설립 후 약 14년 만인 2010년까지 연 매출 270억 달러를 올리는 튼튼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만은 화장품 회사 성공에 힘입어 2007년에 다시글로벌 시크(Global Chic)’라는 아프리카풍 드레스를 HSN홈쇼핑 채널을 통해 선보였는데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승승장구하고 있다.지금 흑인 타깃 화장품 시장은 블랙 오팔, 라마크 등 많은 업체가 튼튼한 수익을 내고 있는 큰 시장이 됐다. 소말리아 출신 여성 사업가 이만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인 미국 주류 시장을 노리지 않고 미국의 대기업들이 무시하던 특정 문화 그룹만 타깃으로 파고 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많은 민족들이 넓은 땅으로 몰려들어 형성한 다문화 국가들은 많은 민족이 한 나라에 모여 사는 지혜를 속담, 문학작품 등을 통해 후세에게 전파했고, 후천적 유전이라 할 수 있는 다문화 DNA를 형성했다. 근래 들어 글로벌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역시 다문화 국가들이다. 다문화 국가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해외 진출을 꿈꾸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1. 정복에 의한 다문화 국가의 문화 DNA

우리와 가까운 나라인 중국은 오래된 다문화 국가 중 한 곳이다. 중국의 민족 지도자들은 1910년 외세의 노예로 전락한 청나라를신해혁명을 일으켜 무너트리고 1911년 중화공화국을 선포했다. 중화공화국은 통일된 중국의 국기로오족공화기(五族共和旗)’라는 깃발을 만들었다. 이 깃발은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검은색 5개의 줄무늬로 이뤄져 있다. 빨간색은 한족, 노란색은 만주족, 파란색은 몽고족, 흰색은 회족(회교도들), 검은색은 티벳 민족을 의미한다. 중국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큰 다섯 민족의 상징을 국기에 반영해 소수민족들의 역사가 함께() 어우러진() 나라라는 뜻에서 이 국기를 오족공화기라고 불렀다. 러시아 역시 185개의 소수민족이 모인 나라다. 국가는 이를 인정하고 5개의 자치구와 21개의 민족공화국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와 중국은 여러 민족이어울려 산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 소수민족의 자유로운 이주를 허용하지 않고 민족별로 정해진 자치구나 특정 구역에서만 거주하도록 국가가 통제하기 때문이다.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요구하면 중앙 정부가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거나 강제 이주를 시켜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기도 한다. 그래서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슬라브-그리스 정교 문화를, 중국은 한족 문화를 국가의 대표 문화로 생각하고 이 문화를 소수민족에게 가르치려고 한다. 반면 한족이나 슬라브족이 소수민족들의 문화를 배우고 연구하며 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들 나라가 다양한 민족들이 같이 어울려 산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비슷한 다문화 정책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는 최근 우리나라 기업의 관심을 끌고 있는 두 개의 큰 아시아 시장인 베트남(베트남은 주류인 비에트족을 중심으로 54개의 소수민족을 인정한다), 인도네시아(주류인 자바족 등 300개의 소수민족을 인정한다) 등이 있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는 강한 하나의 민족이 인근 약체 민족들을 정복해서 통합해 만든 다문화 국가다. 이 방식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오래 된 다문화 국가 형성 방법이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형태의 다문화 국가를 ‘A형 제국이라고 부른다.1 대부분의 A형 제국들은 정복한 타 민족들을 직접 다스리지 않고 그들의 생활권을 보존하고 필요할 때 물자나 노동력, 공물, 노역 등을 중앙정부에 바치도록 하는 방식으로 다스리고 일상생활에는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이런 역사를 통해서 태어난 A형 제국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중첩된 정치·경제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정치 시스템과 지역 세력들이 관습적으로 지켜온 비공식적 시스템들이 서로 경쟁하거나 견제하면서 오묘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이것은 오랜 역사 속의 A형 제국이던 고대 로마제국을 묘사한 성경 내용에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예수에게 체포령을 내린 것은 유대국의 자치 정부였다. 우선 자치 정부는 체포된 예수를 로마 총독인 폰터스 필라투스에게 끌고 간다. 그러나 필라투스가 손을 씻으며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발뺌을 하고 난 후에야 예수는 유대법으로 처형을 당했다. 오늘날도 A형 제국의 문화 DNA를 물려받은 중국과 러시아에는 지방 권력층과 중앙정부 사이의 오묘한 관계가 이 나라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곤 한다.

 

서양인들은 중국 표준어인 한족어를만다린이라고 부른다. 14세기, 포르투갈 신부들이 중국에 와 보니 중앙정부에서 내려 보낸(라틴어로 mandare ) 관리들은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특이한 언어를 사용하더라고 말한 데서 중국의 한어를 mandarine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중국의 한 지방에 도착한 외부인이 보기에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중앙정부에서 내려 보낸 관료들과는 아예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언어와 관습, 법제 등이 중앙 시스템 따로, 지방 시스템 따로 있었으며 이 두 가지가 이중으로 적용돼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山高, 皇帝遠이라고 말해왔는데산은 높고 황제는 멀다는 뜻이다. 즉 중앙정부가 따로 있고 그곳이 무서운 권력의 중심지이기는 하나 높은 산 반대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이 오래된 문화적 특성은 오늘날의 비즈니스에도 여전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중국의 이중적 정치 사회 시스템은 외국계 금융업 종사자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겨 준다. 금융업 종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국가가 발표하는 경제 지표에 관한 신뢰성(credibility)이다. 중국의 중앙정부는 점 조직과 개인 인맥으로 이뤄져 있는 로컬 비즈니스 인프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으로 중앙정부에서 발표하는 경제 지표가 각 지역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믿기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파악한 외국계 금융인들은 중국의 공식적 통계를 믿고 투자하면 여러 리스크를 안게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영국의 공영방송 BBC 다큐멘터리중국이 어떻게 세계를 속였는가(How China fooled the world)’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 미국의 재무장관(Treasury Secretary) 행크 폴슨이 중국으로 건너가이제 미국의 소비자들이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없으니 중국이 그동안 수출로 번 돈을 풀어 세계의 소비자로 나서 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행크 폴슨의 발언 이후로 중앙정부가 앞장서서 엄청난 부채로 어마어마한 건설 붐을 일으켰다. 결국 지나친 경기 과열로 이어졌다. 국가 부채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위기감을 느낀 중국 중앙정부가 은행 대출 기준을 통제하고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2014 124일 미국 ABC방송 뉴스 보도에 의하면 2008 GDP 125%였던 중국 공공 부채비율이 2014년 초 215%를 초과할 정도로 늘었다. 만약에 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중국은 6년 동안 미국 금융권 전체 규모와 맞먹는 빚을 진 셈이다. 그런 과열 현상의 부작용을 우려해 진화에 나선 중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대출 규제가 실패한 이유는 정부에 등록돼 있지 않고 지역 인맥을 통해서 이뤄지는 소위섀도 뱅킹거래에 정부의 입김이 전혀 닿지 않기 때문이다. 2014 124일 미국 ABC방송 보도에 의하면 이섀도 뱅킹은 이제 중국 경제 전체의 30% 정도의 금융을 담당하고 있다. 섀도 뱅킹은 중앙정부의 규정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정부에서 디자인한 신용 등급, 자산-부채비율 한계선을 무시하면서 거래한다. 2008∼2014년에 피치(Fitch)의 시니어 디렉터(Seinor Director)였던 찰린 츄는 이 다큐멘터리에서우리는 섀도 뱅킹 시스템에 대한 자료가 없다. 누가 돈을 꿔주는지, 돈을 빌려 가는 사람이 누군지, 자산의 질이 어떤지, 경제의 어떤 분야로 돈이 흘러 드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외국 금융인들이 중국의 특정 지역에 투자를 결정할 때 중국 중앙정부나 공식 은행에서 발표한 경제 규모, 생산력, 인구 조사 등의 통계를 믿으면 위험하다. 미국 국무부(State Department) 웹사이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 광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미국 기업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 인도네시아 광산에 투자하는 회사는 중앙정부와의 장기 계약이 가져다주는 안정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5년 임기를 가지고 있는 지역 정부 관료와 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광산 라이선스에 대한 안정성은 물론 갑자기 라이선스가 취소됐을 때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조차 예측하기 힘들다라고 경고한다.

 

2. 이민을 통한 다민족 국가의 문화 DNA

미국, 캐나다, 브라질은 하나의 강력한 민족이 주변의 다른 민족들을 힘으로 정복하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더 나은 일자리, 더 나은 삶을 찾아 빈 땅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다민족 국가들이다. 빈 땅으로 많은 민족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몰려들어 초기부터 서로 갈등과 화합을 반복하며 국가를 만들고 자리를 잡아 왔기 때문에 특정한 민족이 정치적, 경제적 주도권을 가지게 됐을지라도 그 민족 문화를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로 보지는 않는다. 이민형 다민족 국가와 전쟁으로 타 민족을 정복해서 이뤄진 ‘A형 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자국민개념이다. 이민을 통한 다국적 국가의국민은 공통적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가의 여부보다 얼마나 새로운 사회에 잘 정착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중국계 미국인 에릭 류는 2014 911일 한국판 <월스트리트저널>나는 왜 절대 중국인이 될 수 없나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내용을 기고했다. “만약 내가 베이징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중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갈고 닦아 중국으로 이주해 남은 여생을 그곳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심지어 내가 남길 수많은 중국인 후손까지 감안한다 해도, 난 여전히진짜중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미국, 캐나다 등 이민형 다문화 국가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미국에 이주해 시민권을 따고, 영어를 배우고, 사업을 하면 미국 또는 캐나다인으로 인정된다. 프랑스나 영국같이 이민 역사가 오래 된 나라도 어느 정도 이민형 다민족 문화 DNA가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계 미국인인 게리 로크를 주중 대사로 발령낸 적이 있다. 중국 현지인들은 중국으로 건너온 신임 미국 대사인 게리 로크의 외모만 보고중국인이 미국인코스프레를 한다2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바나나’”라고 비웃었을 뿐 그를 미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인들에게는 유창한 중국어를 하는 미국 출신 중국인도 진짜 중국인이 아니고, 미국에서 자라 미국식 사고를 하는 중국계 미국인도 진짜 미국인은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A형 제국에서 나고 자란 중국 본토 사람들이 이민형 다문화 국가 DNA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그러나 미국, 캐나다 등 이민형 다문화 국가에서는 이런 편견이 오히려 눈총을 받는다. 빈 땅에 여러 나라 사람들이 동시에 몰려와 이뤄진 이민형 다문화 국가에서는 국적과 민족이 서로 다른 개념이어서 이 둘을 절대로 일치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A형 제국들은 정복한 타 민족들을 직접 다스리지 않고 그들의 생활권을 보존하고 필요할 때 물자나 노동력, 공물, 노역 등을 중앙정부에 바치도록 하는 방식으로 다스리고 일상생활에는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같은 다문화 국가지만 A형 제국과 이민형 다민족 국가가 서로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비즈니스적으로 타격을 입는 경우도 많다. 1990년대 중국인들은 금융시장이 열리면서 미국의 선진 금융 방식을 미국인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이때 미국 금융계에는 톱 MBA 스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미국 금융계로 진출해서 승승장구하던 중국계 미국인 화교들이 많았다. 미국 금융사 CEO들은 중국 본토에 화교들을 파견하면 사업이 잘될 것으로 보고 중국계(ABC·American Born Chinese) 인재들을 자사의 지사장 등으로 고속 승진시켜 중국 현지로 파견했다. 그런데 대표 민족 문화를 국가 전체 문화로 보는 A형 제국의 문화 DNA를 가진 본토의 중국인들은미국인하면백인만을 떠올렸다. A형 제국인 중국에한족이라는 대표 그룹이 있듯이 미국이라는 이민국에도 하나의 대표 그룹이 있을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 현지 직원들은 중국계 미국인들의 중국 지사 파견을 거부하며 미국 본사에다시 진짜 미국인으로 보내달라라고 항의를 하는 등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이런 편견으로 인해 지금도 미국에서 높은 실적을 내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필자의 아시아계 디자이너나 컨설턴트 친구들 중 현지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완벽한 이중 언어 구사 능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관련 프로젝트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진짜 미국인을 보내달라라는 중국 클라이언트들의 요구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자칫하면 거래 기업 간의 관계를 망치기 쉽다. 첫째, 이런 태도는 이민형 다민족 국가 사람들의 기본 정서를 거슬러 인종차별로 오해받기 쉽다. 문화적으로는 중국인, 국가적으로는 미국인으로 믿고 있는 상대방에게 정체성과 관련한 타격을 입혀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중국과 비슷한 정서를 가졌는데 국제 비즈니스에서 이민형 다민족 국가에서 온 비즈니스 파트너를 대할 때는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인종이나 민족 배경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민형 다민족 국가는 특정 민족 문화를 국민 전체에게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도 민족별로 세분화 돼 있다. 그래서 이런 나라에 진출할 기업들은 흑인 시장, 남미계, 아시아계 미국인 시장 등으로 세분화된 진출 계획을 세워야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멕시코 사업가 에밀리오 아즈카라가 비다우레타는 1961년 미국에 사는 남미인들을 대상으로 스페인어로 방송하는 방송국을 세우고 미국 전역에 퍼져 사는 남미 출신들에게 익숙한 스페인 정서를 그린 TV 드라마 장르인텔레노벨라를 보급해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나중에는 로스엔젤레스, 뉴욕 등으로 진출해 ‘Spanish International Network’그룹으로 발전했고 오늘날은 유니비전이라는 대형 미디어 그룹으로 키웠다. 현재는 미국 전체에서 시청률 4위 안에 드는 거대 네트워크다. 미국 내의 스페인어 시장만 해도 웬만한 국가 전체 시장을 능가하는 엄청난 규모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에릭 류는프레시 오프 더 보트(Fresh off the Boat)’라는 ABC TV 쇼에 나타난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의 다채로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ABC방송은프레시 오프 더 보트라는 새 시트콤 제작을 승인했다. 원작은 대만계 인기 셰프이자 음식 평론가인 에디 황의 동명 자서전이다. 미국 메이저 방송사가 중국이나 대만계 가족을 전면에 내세운 시트콤을 방영한 것은 1994년 한국계 코미디언 마거릿 조가 주연한올 아메리칸 걸이후 20년 만이다. 더 재미있는 건프레시 오프 더 보트의 배경이 되는 주인공의 입체적 삶의 모습이다. 동양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황은 반항심 많은 힙합 마니아에, ‘바나나같다는 동족들의 낙인에는 콧방귀로 응수(자신을 백인보다 흑인에 가깝다고 여겼기 때문)했다. 황은 아시아 문화가 강한 부모 뜻에 따라 변호사가 됐지만 다문화 DNA에 맞게 금세 때려치우고 뉴욕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어릴 때 먹었던 대만 가정식 요리를 주 메뉴로 하는 식당을 차렸다.”

 

이렇게 끊임없이 다민족 사회에서미국인(혹은 캐나다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야 하는 것이 이민형 다민족 사회 소비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기업들이 주목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3. 다민족 사회의 힘

유럽이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나치 인종 학살의 잔학한 현장들을 발견하고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시기, 유네스코는 인류에게다양성과 포용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설명하고 인류 평화를 추구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브라질 원시 민족 등 백인들과 가장 동떨어진 민족들을 많이 연구해 원주민 연구 전문가로 알려진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y-Strauss) 박사에게 이에 관한 연구를 의뢰했다. 그가 유네스코의 의뢰를 받아 시행한 연구 결과들은 <인종과 역사(Race et histoire)>라는 책으로 출간됐는데 그는 이 책에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가 왜 경쟁력이 높은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기술 발전에 필요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도박에 비유했다. 예를 들면 사회가 다음 단계로 발전하려면 수많은 카드 가운데 1부터 10까지 열 개의 카드가 필요하다고 치자. 한 사람만 있다면 수많은 카드 가운데 1∼10이 새겨진 카드를 뽑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500명이 참여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아마 한두 번 안에 발전에 필요한 카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수십 가지의 특이한 현상들을 하나의 문화권 사람들이 모두 만들어낼 가능성보다 여러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노하우들을 합하면 훨씬 창의적인 기술이 나올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온 유럽인들은 새로운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curiosity(호기심)’라는 특이한 문화 DNA를 가지고 있다. 당장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신기한 것, 처음 보는 특이한 것은 호기심을 품고 접근하는 태도가 특징이다.

 

18세기 프랑스 시사비평가 몽테스키외는 <페르시아 편지>라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한 페르시아인이 프랑스로 여행 와서 쓴 편지 형식의 소설인데 외국인의 눈으로 프랑스를 객관적으로 비평해 보겠다는 의도였다. 이 책의 주인공 페르시아인이 프랑스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파리에는페르시아인이 온다라는 소문이 나 있었다고 설정돼 있다. 그는 파리에 도착한 후 이런 독백을 한다.

 

“내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나를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인 것처럼 쳐다봤다. 노인, 남자, 여자,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나를 구경하고 싶어 했다. 내가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창문을 통해 나를 바라봤다. 심지어는 가게에서 내 초상화를 그려 팔기도 했다. 그들은 내 얼굴을 못 볼까봐 그렇게 겁이 났던 모양이다. ”

 

그는 갑자기 만약 자기가 일반 유럽인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녀도 그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줄지가 궁금했다. 역시 그가 유럽인들과 같은 옷차림으로 나타나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내 주변사람 중 한 명이 내가 페르시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보면 내 주변에서 다시 벌떼 소리가 들렸다. ‘아 정말 페르시아 사람이세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페르시아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몽테스키외는 이 글에서 유럽인들의 지나친 호기심을 비꼬았지만 사실 지나칠 정도로 왕성한 호기심은 글로벌 시대가 되고 지구촌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현대사회에서는 큰 장점이다. 다문화 문화 DNA 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4. 시사점

지난달 우리 정부는 앞으로 우리나라도 외국인 투자와 이민의 문호를 넓히는 등 다문화 정책을 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의 국토는 좁고, 이미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북쪽은 발길을 디밀 수 없는 전선이다. 어느 국경에서도 타 민족을 만날 가능성 없다. 언어와 외모가 거의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지구촌의 외진 구석에서 모여 살아온 셈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한국인들은문화권 = 국가라고 믿는다. 그러나 다문화 국가 사람들은 문화권과 국가를 별도의 개념으로 본다. 우리의 다민족 문화에 대한 오해는 외국 문화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도 나타난다. ‘미녀들의 수다’ ‘비정상회담등은 시청자들에게 외국 문화를 알릴 의도로 제작된 인기 TV프로그램들이다. 공통점은 여러 나라 출신 외국인들을 게스트로 초대해 우리나라와 관계가 깊은 토픽들로 토크쇼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출연자 이름 옆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출신 국가의 국기가 표기되고 그 인물의 경험이 마치 그 나라 사람들 전체의 문화나 사고방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민족과 국가를 일치된 개념으로 보는 우리들에게는 외국문화를 알게 해주는 신선한 프로그램 같지만 다문화 국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보면 일종의 문화 충격을 느낄 정도다. 심지어 외국인 출연자 자신들조차 자기는 그 나라 대표자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민족(nation)이란 같은 역사와 조상을 가졌을 것으로 믿는, 공통 언어와 풍습을 공유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국가(state)는 한 지역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강제성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은 민족(nation)과 국가(state)의 경계가 일치하는 ‘national state’라는 지구촌 여러 국가 형태 중 매우 드문 형태를 띠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한 국가(state)의 경계 안에 수많은 민족(nation)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시장의 글로벌화가 심화될수록 여러 문화가 만들어낸 다양한 사고방식과 생활 패턴에 대한 지식은 비즈니스맨의 주요 자산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내부의 역량을 활용해 싸고 질 높은 제품을 만들어 다른 나라에 공급하는 전략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후발 주자들이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다문화 국가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핵심적 기술,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타인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 남의 얘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교훈을 얻는 능력을 키워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조승연 문화전략가 scho@gurupartners.kr

필자는 고교시절 미국전국라틴어경시대회에서 우수상(Magna Cum Laude)을 받았으며 미국 고등학생 문예지에 시와 단편소설이 실리기도 했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NYU Stern School)을 졸업한 뒤 프랑스 최고 미술사 학교인 에콜드루브르에서 2년간 수학했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UnfroZenMind에서 외부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무역협회등 국제마케팅리서치에 참여했다. 현재 오리진보카 대표로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 조승연 | -(현)오리진보카 대표
    -(현)문화전략가
    -UnfroZenMind 외부 상임이사
    -국제 마케팅 리서치 참여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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