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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공동결정제도 리뷰

파트너십의 예술, 독일 공동결정제도. 2차대전 잿더미서 기적 일구다

김성국 | 161호 (2014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전략,HR

 

공동결정제도를 운영하는 독일에서 근로자는 경영자에게 기업경영 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경영진이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근로자와 사전에 협의할 뿐 아니라 인사 및 노무 관련 이슈들에 대해서는 근로자가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처럼 근로자 참여도가 높은 공동결정제도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그 틀이 마련되기 시작해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해왔다. 최근 여러 한계에 부딪쳐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는 중이기는 하나 근로자의 경영참여도를 높여 진보된 형태의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싶은 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Mitbestimmung)는 독일의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으로, 독일식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수단이 돼 왔다. 이 제도는 근로자와 경영자(사용자) 간의 협력을 촉진해서 사회의 안정과 산업평화에 기여했고 독일 경제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근로자에 의한 경영 참가(management participation)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성과 참가다. 기업이 달성한 수익 또는 이익의 일부에 대해 근로자가 일정한 몫을 배분받는 형태로 근로자가 경영의 결과에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자본 참가다. 이것은 종업원지주제도에서 볼 수 있듯 근로자가 자본의 출자자로서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형태다. 셋째는 의사결정 참가다. 경영의 결과가 아니라 경영의 과정에 근로자가 참여하는 유형으로, 경영참가 유형 가운데 가장 발달된 형태이며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여기에 속한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근로자가 경영자로부터 기업경영 현황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고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해 경영층과 사전 협의를 하거나 근로시간이나 복지제도처럼 전형적인 인사 및 노무관리 관련 이슈들에 대해 노와 사가 공동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결국 공동결정제도는 근로자가 경영진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통제를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운영의 주체로서 경영에 직접 참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 공동결정제도의 역사

 

독일에서 공동결정제도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논의의 시발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9년 발효된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165조에는 상시 근로자 20명 이상의 기업에 근로자의 사회적, 경제적 이해를 대표할 수 있는종업원평의회(Betriebsrat)’의 설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그리고 대기업의 감독이사회에 근로자 대표가 참석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 후 1945,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에 주둔한 연합국들은 바이마르공화국 시절부터의 관례를 존중해 사업장에 종업원평의회를 설치하는 것을 허용했다. 서독의 몇몇 주에서는 공동결정을 법제화하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독일의 신속한 전후재건에 근로자 대표인 종업원평의회의 협조가 매우 긴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 나치정권 시절 전쟁 물자를 생산했던 군수산업에서 전쟁 직후 경영진이 처벌을 받고 퇴진하는 등 소유권이 불분명한 기업들이 많아 공동결정제도가 뿌리를 내리는 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연방공화국은 1949년 건국된 이래 자유진영인 서방에 속하면서도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라는 독특한 체제를 사회와 경제 체제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적 이념과 자유민주적 사회주의의 요소를 합성한 것으로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정의 및 안정이라는 양대 목표를 모두 실현하고자 하는 체제다. 이는 자유경쟁과 기업 자유를 인정하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분배의 정의에 입각한사회적 정의를 달성하는 것을 중시하는 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한다. 독일이라인 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고도 사회복지제도가 잘 정착돼 어느 정도 분배의 정의가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 기조 덕분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들이 많다. 독일은 이런 역사와 전통 위에서 근로자의 경영참가 형태 중 가장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노사 간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했고 법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공동결정제도는 사유재산권과 기업 활동의 자율성에 일정한 수정을 가하는 경제 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전후 공동결정제도의 도입을 두고 그 형태와 강도에 대해 노사 간 의견 충돌이 일어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총파업 일보직전까지 가는 등 정치적인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서독에서 1951년 드디어 최초의 공동결정법이 제정되는데 법의 명칭은광업과 철강산업에 있어서 감독이사회 및 이사회 내 근로자의 공동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이어서 1952년에는 기업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경영조직법이 독일 역사상 최초로 제정되기에 이른다. 경영조직법은 그 후 많은 논의를 거쳐 1972년 확대, 개정됐으며 여세를 몰아 1976년에는 세계 최초로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이 제정되면서 2000명 이상 상시근로자를 고용하는 모든 대기업은 공동결정제도를 채택할 것을 강제하는 규정이 마련됐다.

 

 

공동결정제도의 운영과 진화

 

독일에서 공동결정의 적용은 법률적으로 두 가지 수준에서 허용된다. 첫째는 단위 사업장 수준이고, 둘째는 기업 수준이다. 전자인 사업장 단위(상시근로자5명 이상)에서는 종업원평의회를 결성해 경영층이 근로자들에게 회사의 운영실태에 대해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인사 및 노무관리 이슈에 대해 근로자 대표인 종업원평의회의 자문과 동의를 구한다. 후자인 기업 수준에서의 공동결정은 보다 높은 수준의 공동결정으로 일정 규모의 대기업에서 이사회의 운영을 감독하는 감독이사회를 구성할 때 노사가 동수로 참여하고 감독이사회(Aufsichtsrat)는 이사를 선임하며 이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공동협의권과 공동결정권을 발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1976년 제정된 공동결정법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 2000명 이상의 대기업, 680명 이상의 합자회사에서는 감독이사회의 구성원 가운데 절반을 근로자 대표로, 나머지 절반을 주주 대표로 구성하게 돼 있다. 만약 표결에서 노사가 동수일 때는 감독이사회 의장이 한 표를 더 행사해서 결정하도록 돼 있다(casting votes). 그리고 이사회를 구성할 때 이사 중 한 명은 인사 및 노사 문제의 전문적 경력을 가진노동이사(Arbeitsdirektor)’를 사측이 임명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노사 의견이 팽팽히 맞설 때 사용자 측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공동결정을 둘러싸고 노사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는 안전장치다.

 

독일의 경영조직법 규정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사안들은 노와 사가 반드시 합의를 통해 공동결정을 해야 집행할 수 있는강제적 공동결정사항들이다.

1) 인간적인 작업환경 조성에 위배되는 사안(경영조 직법 91)

2) 근로자 설문조사의 내용, 표준화된 근로계약, 종업원 성과평가의 기준 설정에 대한 사안

   (경영조 직법 94)

3) 근로자 선발을 위한 내용과 방향 설정에 대한 사안(경영조직법 95)

4) 직업훈련의 도입과 실행에 대한 사안(경영조직법 97)

5) 사업장 변경(사업장 폐쇄, 조업단축, 사업장 이전, 타 사업장과의 통합, 새로운 업무방식의 도입등) 시 근로자의 권익보호에 대한 사안(경영조직 법 111, 112)

 

얼핏 보면 공동결정의 독일 노사관계 모델은 근로자 대표와 노동조합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어 사용자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노조가 반대하면 되는 일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강성노조가 경영자들의 발목을 잡는 제도로 활용됐다기보다는 협력적 파트너십 발휘를 통해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고 독일의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의 노와 사는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공동결정제도를 양 당사자 모두가 불행해지는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슬기롭게 운영해왔다. 여기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합의된 공감대가 바탕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감독이사회를 구성할 때 사측에서는 주주들이, 노측에서는 종업원 대표와 노조 대표들이 참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특정 기업의 감독이사회에 그 회사 직원뿐만 아니라 외부인사, 즉 산별노조 대표 약간 명이 정식 멤버로 참여한다. 기업별 노조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산업별 노조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산별노조에 속하는 외부 인사가 단위사업장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에 익숙하다. 독일에서 외부 인사가 감독이사회의 일원으로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논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찾을 수 있다. 지역사회 발전이나 환경보호, 고용 창출 같은 사회적 산업적 이슈를 외부 이해관계자가 제기함으로써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감시하고 장려할 수 있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외부 인사가 노측 대표로 경영에 참여하면 자칫 노사대립을 조장하거나 기업의 영업기밀을 대외에 유출한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일의 노사관계 모델은 19세기 노동운동,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갖은 풍상을 겪으며 노··정 당사자들이 충분히 성숙한 자세를 가진 토대 위에서 발전한 것이므로 실제로 노사 동수의 감독위원회 운영에서 노측의 무리한 요구로 파국을 맞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경쟁력 있는 독일 대기업에서 감독이사회의 방해로 중요한 투자계획이 좌절됐다든지, 감독이사회 운영을 두고 노사가 극한대립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조사된다.

 

이처럼 공동결정의 이론과 실제는 독일 문화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따라서 공동결정제도의 본질적인 변경이나 폐지는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라 일부 수정 또는 보완되기도 하는데 1989년 회사 업무에 컴퓨터를 도입하는 건에 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노동재판소는 직원들의 일상 업무를 사용자가 부당하게 감시하고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를 활용하는 업무에 대해 종업원평의회에 의한 공동결정이 의무화돼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관련 법규가 개정됐다.

 

대기업 감독이사회 내의 공동결정을 둘러싸고 기업 형편에 맞는 규정을 만들거나 경영권 침해를 방지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자는 주장이 경영자 측에 의해 제기되기도 하지만 독일 공동결정제도의 근간만큼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1976년 사민당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집권하던 시절 연방의회에서공동결정법을 통과시키자 이에 불만을 품은 9개 기업과 29명의 사용자, 그리고 몇몇 사용자단체들이 독일 헌법재판소에 공동결정법이 사용자의 소유권과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19793, 공동결정법이 독일 기본법에 규정된 소유권 보장과 결사의 자유 및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시해서 공동결정법이 헌법에 합치된다는 판결을 내리고 사용자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 취지는 기업의 경제활동에 대해 노와 사가 어떤 형태로든 합의를 통해 기업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1979년 이 역사적 판결은 공동결정법이 전 산업으로 전파돼 정착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으며 독일의 역사와 문화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노사의 공동결정에 대한 전통을 헌법재판소가 존중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유럽중앙은행이 창설되고 EU 통합화폐인 유로(Euro)가 도입되는 등 EU가 단일시장으로 통합되면서 각종 경제제도들이 통합(harmonize)되는 절차를 밟았고 공동결정제도는 독일의 국경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유럽의회는 논의 끝에 1994, 유럽종업원평의회(European Works Council·EWC) 제도를 확립하는 안 ‘Council Directive 94/45/EC(1994.9.22)’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EWC의 설치를 통해 27 EU 회원국들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EU 회원국들은 회원국 간의 관계와 거래에서 사용자(경영자) 측이 EWC를 통해 근로자들에게 회사의 운영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정보 제공 및 협의해야 할 의무를 진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강성노조가 경영자들의 발목을 잡는 제도로

활용됐다기보다는 협력적 파트너십 발휘를 통해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고 독일의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동결정제도의 한계와 도전

 

최근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요인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노조조직률이 하락하고 있다. 노조조직률의 하락은 공동결정제도의 당사자 중 하나인 노동조합의 역할을 약화시킨다. 독일에서 노조조직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산업구조의 변화다. 제조업 중심의 전통적인 산업구조가 서비스 산업과 정보통신 산업 위주로 변하면서 노조의 단체교섭을 통한 임금결정력이 약화됐고 근로자의 노조 의존도 역시 낮아지고 있다. 성과급과 이윤배분제도가 성행하는 서비스 산업의 특성상 근로자들은 노조에 가입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 배양과 발휘를 통한 소득 증대에 관심이 더 크다. 따라서 이런 산업 분야에서 노조조직률의 저하는 되돌리기 어려워 보인다.

 

둘째, 벤처와 소규모 창업의 성행으로 중소기업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종업원들이 공동결정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단위사업장의 종업원평의회를 조직하지 않는 추세가 강해졌다. 이는 공동결정제도의 기초를 흔드는 현상이다.

 

셋째,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전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지식경영이 확산되면서 의사결정 권한이 개별 사업장으로부터 보다 집중화된 중앙조직으로 이행하고 있어 공동결정이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반면 IT 및 지식산업의 발전으로 종업원 개인의 역량이 중요해지면서 공동결정을 통한 종업원의 경영참여를 촉진하는 공동결정제도가 유지 및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동시에 높아지는 분위기다.

 

넷째,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독일 기업들이 임금 등 생산요소 측면에서 비교적 유리한 해외에 진출하는 국제화, 세계화 추세가 확산되면서 해외에 자회사를 많이 두거나 업종이 다른 여러 사업부가 국경을 넘나드는 활동을 하게 되면서 독일 특유의 공동결정제도의 적용범위가 문제시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즉 독일 기업들의 세계화로 복잡해진 조직 내 의사결정 체계가 독일식 공동결정의 적용을 날로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다섯째, 유럽연합(EU) 가입국들의 노동과 재화 시장이 단일시장으로 통합되면서 각국의 법률과 제도가 EU 역내에서 통합되는 수순을 밟았고 독일의 독특한 공동결정제도는 다른 회원국들에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로 인해 유럽의 노동관계법을 제정하면서 공동결정제도에 수정이 가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EU 회원국 기업에 대해서는 독일 국내법에서 규정하는 공동결정법보다 완화된 수준의 법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는데 이는 독일 기업의 공동결정제도 시행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U 2004년부터 통합된 유럽기업법에 의해 회원국 기업의 유럽 회사 등록이 가능하게 만든 이후부터 독일의 대기업들은 앞 다퉈 유럽의 주식회사 형태인 S.E.(Societas Europaea)로 기업의 법인격을 변경했다. SE가 독일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독일 대기업이 법적으로 유럽 법인으로 변경했을 때 엄격한 독일의 공동결정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완화된 규정을 담고 있는 유럽 공동결정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국내의 공동결정법 조항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추세는 독일 공동결정제도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업장 단위에서는 종업원평의회 활동을 통한 경영참여가 비교적 활성화되면서 노와 사가 이 제도의 장점을 살려가며 사업장 단위에서의 경제민주화를 발전시키는 경향도 나타난다. 종업원평의회는 노조와 같은 교섭권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독일 대부분의 기업에 조직돼 있고 운영의 묘를 살린다면 근로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이슈를 대부분 해결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노조 가입을 꺼리는 근로자들도 종업원평의회가 주도하는 사업단 수준에서의 경영 참여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이런 현실에 비춰본다면 독일의 공동결정 관행이 후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서는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근로자가 경영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독특한 기업지배구조를 오랫동안 견지하면서도 오늘날 강력한 제조업과 중견기업의 수출경쟁력으로 매년 2%가 넘는 경제성장률과 4%대의 낮은 실업률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공동결정제도에 대해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과 혁신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꾸준하지만 독일 기업의 노사 당사자들은 기업경영의 짐을 슬기롭게 나눠지며 동반성장을 이뤄가고 있는 셈이다.

 

독일 기민당의 전 사무총장 하이너 가이슬러는

한국에서 독일의 정치 및 경제제도들을 도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기자의 언급에 대해

“한국이 독일의 제도를 도입하려면풀세트

도입해야지 단순히 몇몇 제도만을 선택적으로

도입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빙산의 일각이 아닌 전체를 봐야

 

독일의 공동결정제도가 우리나라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과연 무엇일까? 이미 현대자동차 노조와 민주노총은 독일식 공동결정제도의 도입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오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단체협상을 통해 경영진이생산라인의 변경을 원할 경우 사전에 노조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조항을 단체협약에 포함시켰다. 이는 독일 경영조직법 111조와 112조에서 규정하는사업장 변경 시 노사가 공동 결정해야 한다는 강제적 공동결정 사항을 준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경총 등 사용자 측은 경영권 침해라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독일의 공동결정제도가 오늘날 우리의 노사관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이런 추세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공동결정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들은양국 간 역사와 문화의 차이를 주로 거론한다. 즉 독일은 19세기 중엽 이후부터 오랫동안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 19세기 말에 근로자 복지제도를 확립했으며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정치 및 경제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사회적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한 바탕 위에 공동결정제도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와 같은 역사적, 문화적 토대가 취약하므로 공동결정제도를 섣불리 도입할 수 없고 설사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재계를 비롯해 학계에서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독일식 공동결정제도 도입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측은 주로 막강한 세력을 가진 대기업 노조들이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의 근로자들은 대체로 급여수준이 높고 근로여건도 양호할 뿐만 아니라 고용 안정성도 높다. 따라서 굳이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해 시급히 달성해야 할 경제적, 사회적 목표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노조의 교섭력을 높이고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만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만약 공동결정제도가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도입된다면 노동시장은 공동결정제도를 향유하는 일부 대기업 노조원이라는 핵심 인력들과 공동결정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조원들로 구성된 주변 인력들로 양극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나 노동계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팽배하고 노-노 갈등이 유발돼 경제민주화 정착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이 일리가 없다고는 볼 수는 없으며 독일식과 같은 강력한 형태의 공동결정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정도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한 독일 기민당의 전 사무총장 하이너 가이슬러는 한국에서 독일의 정치 및 경제제도들을 도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기자의 언급에 대해한국이 독일의 제도를 도입하려면풀세트를 도입해야지 단순히 몇몇 제도만을 선택적으로 도입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독일이라는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노사관계의 역사와 관행이 낳은 결정체며 빙산의 끝부분이다. 우리는 공동결정제도라는 화려한 결정체만 바라보며 빙산의 정점만 잘라 도입하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음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공동결정제도를 부러워하고 이를 도입하려고 하는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 속에서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산업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해 고용안정과 평화로운 노사관계를 실현한 독일에 대한 부러움 때문일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 노사관계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고 해서 좌고우면 없이 독일식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한다고 반드시 독일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중요시해야 할 것은 공동결정제도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해 노사관계 안정과 기업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성공의 길로 갈 수 있었던 독일의 경영자들과 근로자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의 노와 사, 그리고 정이 그 길을 갈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것이다.

 

김성국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skima@ewha.ac.kr

필자는 서울대 인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만하임대에서 인사관리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전문위원 등 사회활동을 했고 학술저널 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 김성국 김성국 | -(현)이화여대 경영대학장
    -대통령 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
    -한국인사조직학회 및 대한리더십학회장
    skima@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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