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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첩+벤치마킹+융합+전념=K-전략 타이타닉과 다른 세월호 대응, 바꿀 길 있다

문휘창 | 160호 (2014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선진 재난대응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4가지 전략 (K-전략 대입)

1) 민첩성: 상부 지휘를 받을 수 없을 때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재난 상황에 맞는 매뉴얼이 필요하다.

2) 벤치마킹: 효과적인 재난대응시스템과 매뉴얼은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만 여러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3) 융합: 재난대응기관들 간의 소통과 협력을 원활하게 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하다.

4) 전념: 희생정신은 직업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는 시스템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업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의 괴리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경영개발연구원(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IMD)에서 지난 5월에 2014년 국가 경쟁력 종합순위를 발표했다. 한국은 26위로 전년보다 4단계 하락했다. 이는 2011년 이후 3년 연속 22위를 유지하다가 금년에 처음으로 하락한 것이다. 반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상승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에 발표한 2014 <포천> 글로벌 500(Fortune Global 500)에 포함된 한국 기업은 총 17개로서 2011년 이후 줄곧 13∼14개 수준에 머물렀다가 올해에는 그 숫자가 늘어났다.

 

이와 같이 한국의 국가 경쟁력과 기업 경쟁력은 서로 상반된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국가 경쟁력은 정치, 경제, 경영,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는 경쟁력의 총합이다. 따라서 기업 경쟁력과 같이 국가 경쟁력 종합 순위보다 높은 분야가 있는 반면 국가 경쟁력 종합 순위보다 낮은 분야도 있다. IMD 2014년 경쟁력 보고서를 살펴보면 기업의 경영성과와 관련된 경제 분야의 순위는 국가 경쟁력 종합 순위(26)보다 높게 나타났다. (예를 들면, 국내 경제 13, 고용 7) 반면 정부의 정책과 규제 관련 분야는 국가 경쟁력 종합 순위보다 낮게 나타났다. (예를 들면, 기업 관련 법규 42, 사회적 여건 36) 다른 세계 주요 국가 경쟁력 평가기관인 WEF IPS 보고서도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다.1

 

상대적으로 낮은 순위를 차지한 정부 효율성 및 규제와 관련된 문제점들은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을 계기로 여실히 드러났다. 언론의 비난 초점이 사고 초기의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문제에서 한 달 뒤 정부의 부실한 위기대응과 미비한 구조대책으로 바뀐 점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102년 전 416(한국시간 기준), 세월호 사고와 같은 날에 발생한 타이타닉호 침몰은 많은 부분에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세월호는 한국 최대 여객선이었고, 타이타닉호는 당시 세계 최대 여객선이었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 역사상 최악의 해상사고이고, 타이타닉호 사건은 세계 역사상 최악의 해상사고다. 두 사건 모두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였지만 두 해상사고에 대한 사후 대응은 매우 달랐다. 왜 한 달 만에 여론의 비난 타깃이 선장에서 정부의 대응으로 바뀌었을까? 이러한 의문 뒤에 숨겨진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두 사건을 비교·분석해서 유용한 시사점을 도출한다면 앞으로 이러한 사건을 예방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는 한국 경제성장을 분석하는 틀인 K-전략(ABCD 모델이라고도 부름) 2012 <K-전략: 한국식 성장전략모델>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소개했다. K-전략은 민첩성(속도와 정확성), 벤치마킹(학습[모방]과 글로벌스탠더드), 융합(혼합과 시너지 창출), 전념(성실과 목적지향성) 4개 대분류, 8개 중분류로 구성돼 있다. (각 요소에 대한 설명은 DBR 112민첩+벤치마킹+융합+전념=K-Strategy’ 참조.) K-전략의 ABCD 분석의 틀은 원래 경제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사회문제를 분석하는 데도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ABCD 모델이란 분석의 틀로 두 재난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의미 있는 시사점과 향후 한국 재난대응시스템의 향상을 위한 전략적 방향을 도출하고자 한다.

 

세월호와 타이타닉호의 침몰사고 비교

침몰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탑승자 구조율을 비교해 보면 세월호 사건은 2시간35분과 38%이고, 타이타닉호 사건은 2시간40분과 32%로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고의 구조환경과 배경을 들여다보면 세월호는 훨씬 더 유리한 상황에 있었다. 세월호의 경우,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했고, 그곳의 수심은 37m이며, 구조선박이 10분 만에 사고지역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또한 낮에 일어났기 때문에 수온이 영상10도였고 사고 신고가 접수되고 30분 후에 구조대원들이 도착했다. 타이타닉호의 경우, 대서양 한복판에서 사고가 일어났고, 침몰해역의 수심은 3700m였으며 해안으로부터 무려 640km나 떨어져 있었다. 더욱이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 발생했고 수온은 영하2도였다. 사람이 영하2도의 바다 속에 30분 정도 머물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 특히 타이타닉호의 경우 완전히 침몰한 지 1시간 반이나 지나서야 구조선이 도착했다. 세월호는 침몰하기 전까지 승객 전원이 모두 구조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구조율이 38%밖에 지나지 않았는가? 이를 파악하기 위해 ABCD모델을 구성하는 8개 요소를 활용해 세월호와 타이타닉호의 사고 원인을 체계적으로 비교해보겠다.

 

민첩성(Agility)

속도(Speed):오전 830분쯤 세월호에 이상 징후가 발생했으나 세월호가 보낸 첫 조난신고가 접수된 것은 20여 분이 지난 850분경이었다. 그리고 객실이 아직 물에 잠기지 않았던 사고 초기 30분 동안에는 아무런 구조활동이 없었다. 30분 뒤 목포 해경이 가장 먼저 사고현장에 도착했지만(실제로 어선이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 전문 특수요원과 구조장비를 갖추지 않아 선내 진입시도를 하지 못하고 그저 세월호 주변에서만 구조활동을 펼쳤다. , 사고 초기 승객을 전원 탈출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었다. 타이타닉호의 경우, 선장은 사고 직후 조타실로 가서 위기 탈출을 지휘하는 것보다는 일등실 승객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데 10여 분이나 허비했다. 또한 사고 직후 가장 가까운 화물선인 캘리포니안호가 조난 신호를 받고 바로 구조활동을 벌였더라면 사망자 수를 현저히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확성(Precision):세월호는 정상상태의 선박이 아니었다. 사고발생 전부터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고장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승무원들도지금까지 문제가 없었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또한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도 매우 미흡했다. 사고 당시 구명정 46개 중에서 정상적으로 펼쳐진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반면 타이타닉호는 당시 세계 최대의 호화 여객선으로 최고의 조선기술로 만들어가라앉지 않는 배(Unsinkable Ship)’라고 불렸다. 타이타닉호를 만드는 조선 기술은 최고였지만 선체에 사용된 재료와 부품에는 문제가 있었다. 타이타닉호 사고원인 관련 연구에 따르면, 선박에 쓰인 강판은 황 성분이 많았는데 이런 강판은 낮은 온도에서 쉽게 깨진다고 한다. 한편, 강판을 연결하는 데 사용된 리벳도 역시 강도가 약한 철을 사용해 외부 충격에 쉽게 부서졌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세월호 사건에 대해빨리빨리 문화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는데 오히려빨리빨리대응하지 못해서 참사가 난 것이다. 사고 초기 대응이 미진한 것에 대해 해경은 배 침몰 시 선박의 경사가 너무 심해 안전을 고려해 선내 진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은 안전을 추구하다가 구조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친 것이다. 군사전략의 대가인 손자는다소 미흡해 보이더라도 속전속결해야 한다는 것을 듣기는 했으나 안전을 추구하며 교묘하게 오래 끌어야 한다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兵聞拙速未睹巧之久也)”라고 했다. , 정확성만 추구하려고 속도를 버리는 것은 더 비효율적라는 것이다. 전쟁에서와 같이 구조작업에서도 속도는 매우 중요하다. 시간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벤치마킹(Benchmarking)

학습(Learning):세월호의 소속사인 청해진해운이 쓴 광고비는 연 2억 원이 넘지만 직원에 대한 안전교육비는 1년에 고작 약 54만 원에 불과했다. 이를 직원 수로 나눠보면 일인당 연간 안전교육비는 5000원도 안 된다.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안전 관련 기본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에 사고 당시 즉각 퇴선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지시를 했다. 타이타닉호의 경우에도 출항 전 승객들에게 위급사항 대비 안전교육과 대피훈련을 실시하지 않아 사고 당시 승객들은 어디로 대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세월호는 일본에서 18년간 사용한 노후선박을 매입하고 이를 보수해 배의 수명을 7년 더 연장했다. 또한 사고 당시 세월호는 권장 적재량의 3배나 되는 화물을 실었다. 특히 자동차나 컨테이너 같은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아 배가 크게 방향을 바꿨을 때 한쪽으로 쏠리면서 복원력을 잃어 침몰했다. 타이타닉호는 당시 최고의 조선 기술을 맹신한 선장은 탐조등을 설치하지 않았고 배의 항로를 관측하는 임무를 맡은 승무원은 망원경도 없이 육안으로 근무했다. 구명정 역시 최대 승객 수의 반만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구비돼 있었다.

 

세월호 사건은 기본적으로 법에서 규정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어겼지만 타이타닉호의 경우는 다르다. 탐조등과 망원경 이용은 당시 법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 아니었다. 또한 구명정 대수는 비록 인원 수에 비해서는 부족했지만 당시 법적으로 규정한 기준을 어기지는 않았다. 당시 선박에 배치한 구명정의 수는 탑승자 수가 아닌 배의 톤 수에 의해 결정됐기 때문이다. 사고는 세월호 사건과 같이 규정을 어겨 일어날 수도 있고, 타이타닉호 사건과 같이 (비록 미비하지만) 규정에 어긋나지 않더라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안전규칙 준수뿐만 아니라 사고가 일어났을 때 수습방법에 대한 연구 및 학습을 통한 대처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융합(Convergence)

혼합(Mixing):사고 신고를 받은 직후 해양경찰청의 중앙구조본부, 해양수산부의 중앙사고수습본부, 목포·인천항만청의 지방사고수습본부 등이 구조작업을 시작했지만 이들의 구조활동은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각자 사고경위 및 현장 정보를 개별적으로 보고했고 언론들도 확인 없이 부정확한 자료를 보도해 혼란만 더 가중시켰다. 타이타닉호는 20여㎞ 떨어진 가장 가까운 화물선 캘리포니안호가 아닌 4배 이상인 90여㎞ 멀리 떨어진 여객선 카르파티아호가 구조하러 왔는데2 이 배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타이타닉호가 침몰된 지 1시간30분이 지난 뒤였다. 따라서 침몰 전까지 주변의 구조를 받지 못했고 자체 승무원의 구조활동에만 의존했다.

 

시너지 창출(Synergy-creation):세월호 사고 수습에 관련해 정부가 우왕좌왕 대처한 것은 각 부처의 소통을 조율하고 지휘하는 제대로 된 재난 컨트롤타워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 당일 구조작업을 총괄 지휘하는 본부가 세 번이나 바뀌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후에는 국무총리가 직접 구조작업을 총괄했지만 전문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적절한 구조시기를 놓친 타이타닉호는 선장을 중심으로 승무원들이 구조활동을 펼쳤다. 선장은 승무원들에게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라고 지시했고,3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탈출하도록 했으며, 공포탄을 쏘며 탈출 질서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들이 승객의 구조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친 후 선장은 승무원들에게이제 제 살길을 찾아라라고 마지막 명령을 했다. 타이타닉호 선장의 이러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승무원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각자의 역할에 따라 승객구조에 최선을 다했다.

 

이와 같이 각 부처와 기관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활용하는 업무를 수행할 때 핵심역할을 하는 컨트롤타워는 매우 중요하다.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은 2011년 미국의 빈 라덴 제거 작전에서 잘 보여줬다.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Navy SEAL)의 최정예 부대인 6(Team 6)’이 빈 라덴 사살작전을 담당했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상석을 특수전 전문가인 합동특수전 사령부 준장 마샬 웹(Marshall Webb, 사진에서 군복 입는 사람)에게 내주고 본인은 옆의 낮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지켜보고 있다. , 한 명의 전문 책임자의 통솔에 따라 효율적으로 지휘가 이뤄진 것이다.

 

그림 1백악관 상황실에서 빈 라덴 제거작전을 지켜보는 오바마 대통령과 참모진

 

 

전념(Dedication)

성실(Diligence):세월호의 선장은 항해 시간 12시간 중 반 이상을 침실에서 보냈다. 특히 사고지역인 진도 해역은 조류가 강하고 사고 위험성이 높은 구간인데도 불구하고 입사 4∼5개월인 신참급 승무원에게 조타실 키를 맡겼고 본인은 방에서 쉬고 있었다. 한편 타이타닉호의 경우, 야간 항해를 할 때-특히 빙산과의 충돌위험이 높을 때-일반적으로 더 많은 감시인력을 배치했어야 하는데 선장은 배의 양측에만 2명의 승무원을 배치했고, 뱃머리에는 배치하지 않아 빙산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사고가 나자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까지 선장과 승무원들은 하나로 뭉쳐서 승객들을 탈출시키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선장은 바다에 빠진 생존자들을 구조하면서 구조활동을 선두 지휘했고 일등 항해사는 자신의 구명조끼를 다른 사람에게 벗어주고, 기관장, 기관사들 역시 마지막까지 타이타닉호의 전기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목적 지향성(Goal-orientation): 세월호 사고 초기, 선장과 소속사인 청해진해운과의 통화에서 승객 안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세월호를 탈출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승객을 구조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사고 직후 승객을 버린 채 가장 먼저 탈출했다. 이와는 반대로 타이타닉호 사건에서 선장은 구명정을 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승객의 탈출을 지휘했다. 승무원들 역시 타이타닉호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월호의 경우 승무원의 구조율이 79%로 탑승자 구조율 38%보다 훨씬 높은 반면 타이타닉호의 경우 승무원 구조율은 23.3%로 탑승자 구조율 32%보다 낮았다.

 

흔히 세월호와 타이타닉호 사건을 비교할 때 선장과 승무원의 대응 태도에 대해서 많이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직업윤리 및 도덕문제로 귀결시킨다. 세월호의 경우 정부에서는 이들을살인자라 규정하고 법을 통해 처벌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만으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의 재연을 방지하기 힘들다.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의 도덕성 결여를 비난하는 것보다 이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과 의무를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이나쁜 사람이라는 것보다직업에 대한 목적 지향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인재(人災)가 아닌 시스템 문제

앞에서 8가지 요소 중 그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않았더라면 세월호와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을 피할 수 있었거나 사망자 수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안전규칙을 확실히 지켰으면 세월호는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고 안전교육과 훈련을 확실히 실시하고 구조활동을 제대로 했다면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두 사고에서 모두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타이타닉호 침몰의 경우 설계자를 비롯해 선장, 승무원들은 처음부터신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God himself could not sink this ship)’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타이타닉호 자체에 대해 과신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신이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반면 세월호는 선박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안일한 태도가 사고발생과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

 

세월호와 타이타닉호 침몰에서 안전에 대해 소홀했다는 유사한 점이 있지만 사고발생 후 대처는 현저히 달랐다. 세월호와 타이타닉호의 선장과 승무원의 목적 지향성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이 제대로 된 안전교육과 훈련을 받았다면 타이타닉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조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따라서 사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대비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재난대응단계를 준비, 대응, 회복 등 3단계로 구분하는데 세월호 참사의 경우 첫 두 단계에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으며 마지막 회복단계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손자병법>에 따르면이기는 군대는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철저하게 준비해서 확실하게 이기고, 지는 군대는 전쟁터에 나간 후에 작전을 짜려고 하니 싸우기 전에 이미 패한 것과 같다(勝兵先勝而後求戰敗兵先戰而後求勝)”라고 하면서철저한 준비와 훈련을 강조했다. 앞으로는 각 단계별 대응하는 준비태세를 철저히 마련해 이러한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전국 방방곡곡 사회 각 계층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며 기운을 북돋아주는 각종 활동을 벌였다. 국민들은 진도우체국이 마비될 정도로 응원메시지와 함께 수많은 위문품을 보냈다. 각종 자원봉사자들은 진도 실내체육관 주변에 부스를 설치하고 24시간 상주하면서 유가족에게 식사를 제공하거나 진료 또는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등의 따뜻한 손길을 보냈다. 또한 각종 종교단체와 교인들은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회를 열었으며 연예인, 유명인 및 기업들은 기부활동을 펼쳤다. 방송사들은 참사에 대한 애도표시로 예정된 프로그램 방송을 취소하고 특집 뉴스를 집중적으로 방영했다. 이외에 각국 정부에서도 세월호 침몰에 대해 애도와 함께 구조작업을 지원하겠다는 성명을 밝혔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큰 아픔을 남겼지만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합심해 이웃을 위로해주는 미덕이 남아 있다는 일면을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와 같이 슬픔과 아픔을 위로해주는 것으로 사기와 기운을 북돋아주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방법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슷한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더불어 재난대응능력을 향상시켜 설령 재난이 일어나더라도 효과적으로 수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재난대응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세월호 침몰의 문제점을 분석했던 ABCD 모델을 활용해 향후 개선을 위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겠다.

 

보스턴테러에서 의료팀이 효과적인 구조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폭탄테러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스라엘의 병원에서 재난 대비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선진 재난대응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4가지 전략적 방향 제시

민첩성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고 발생 초기 빠르고 적극적인 대응이 특히 중요하다. , 피해자를 살릴 수 있는골든 타임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효율적인 구조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선진국의 재난대응시스템은 일반적으로현장 중심의 원칙을 따른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정확하더라도 느린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 직후 급히 상부기관에 사고 현황을 보고하고 대응방법에 대한 승인을 받기보다는 실무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지휘해 최대한 짧은 시간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허드슨강의 기적4 의 경우 설렌버거(Chesley Sullenberger) 기장은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해 엔진 고장 후 6분 만에 허드슨강에 성공적으로 비상 착륙해 100여 명이 희생됐을 뻔한 대형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초기 대응자의 신속하고 정확한 구조활동 역시 중요하다. 상부 지휘를 받을 수 없는 경우 스스로 올바른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재난 상황에 맞는 매뉴얼이 필요하다. 따라서 초기 대응자들은 이 매뉴얼을 기반으로 능동적이며 효과적으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매뉴얼의 중요성은 보스턴 테러사건에서 잘 드러났다.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 폭탄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할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한 의료구조로 사망자 수를 3명으로 줄였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2013 416일자 신문에속도가 생명을 구했다(…Speed Saved Lives…)’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하버드대의 케네디스쿨은 보스턴테러사건의 성공적인 구조대응을 분석해 발표한 ‘Why Was Boston Strong?’이란 보고서에서 상부지휘 없이도 각종 대응자들이 상황에 따라 스스로 잘 대응하는 것에 대해분산된 행위(decentralized action)’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벤치마킹

효과적인 재난대응시스템과 매뉴얼은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만 여러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과 매뉴얼들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사전에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보스턴 테러가 일어나기 전 보스턴 시에서 경찰과 소방대원, 응급구조대원들이 폭발사고를 대비한 훈련을 한 적이 있었으며 이는 후에 발생한 실제사고에 대해 즉각적이며 효율적인 대응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허드슨강의 기적의 주인공인 설렌버거 기장이 사고 직후 비상착륙할 장소로 공항활주로가 아닌 허드슨강을 선택하고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19000시간의 비행경험이라고 대답했다. , 기장의 순발력과 정확한 판단은 개인의 천재성에 기인하는 것보다는 평소의 학습과 수많은 경험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때 글로벌 최고를 벤치마킹한다면 그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보스턴 테러에서 의료팀이 효과적인 구조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폭탄테러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스라엘의 병원에서 재난 대비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융합

실무자들의 신속한 현장대응도 중요하지만 재난대응 기관들 간의 소통과 협력을 원활하게 하는 컨트롤타워의 총괄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지방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대형 사고의 경우 지자체뿐만 아니라 정부, 민간기관을 모두 총괄하기에 컨트롤타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컨트롤타워의 핵심적 역할은 참여자들을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역할을 조정하고 인력 및 물자지원을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연방재난관리청(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FEMA)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으면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참가자들의 관계를 조정하는 데 초점을 둔다. FEMA의 이러한 조정역할은 일종의 매뉴얼인 통합재난관리체제(Integrated Emergency Management System·IEMS)를 통해 효과적으로 이뤄진다. IEMS는 현장 구조대에서 연방정부지휘책임자에 이르는 총 13개 단계로 구성된 재난대응단계의 참여자들에게 대응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러한 시스템은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Minnesota)의 교량 붕괴사건에서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량 붕괴사건에서 생존자를 구조하는 데 불과 81분 걸렸다. () FEMA 청장인 크레이그 퓨게이트(Craig Fugate) “FEMA의 성공 여부는 주정부, 지자체, 커뮤니티와 기타 연방 정부기관과의 효율적인 협력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전념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연인과 직업인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위험이 닥치면 피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직업인으로서의 인간은 자신이 맡은 직무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지킨다. 예를 들면, ‘히포크라테스 선서(The Hippocratic Oath)’에 의사가 지켜야 할 의료윤리지침 중에는나는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어떤 위협이 있더라도 나의 의학지식을 인륜에 어긋나는 일에 쓰지 않겠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장은 배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마지막까지 남아서 승객들의 안전을 지키는 의무를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미국 소방관의 규칙과 전통은먼저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나온다(First in, last out)’. 9·11테러 사건 당시, 폭발로 인해 화염에 휩싸인 건물에 들어가면 살아 돌아오기 힘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소방관들은 장비를 가지고 혹시나 남아 있을 수 있는 시민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건물로 들어갔다. 특히 고위직 소방대원은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앞장서서 건물로 뛰어들었으며 이를 본 일반 소방대원들도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을 했다. 미국 9·11테러 구조활동에서 가장 많이 순직한 직업군은 소방관으로 희생자 수가 총 343명이였으며 이 중 고위직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희생정신은 직업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는 시스템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바로 평소의 훈련과 교육이다. ,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에 참여한 소방관들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평소에 실시해왔던 학습과 훈련에 의해 확립된 투철한 직업의식에 따라 행동했던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극복하면서

맹자의고자편(告子篇)’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아프게 하며,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곤궁에 빠뜨리게 하며, 일을 행함에 그가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게 한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참을성을 길러주어,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行, 拂亂其所爲, 是故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앞서 보여준 선진국의 잘 구축된 재난대응시스템도 처음부터 확립돼 있던 것이 아니라 맹자가 언급했듯이 뼈아픈 무수한 실패와 희생을 통해 끊임없이 개선하고 업그레이드한 결과다. 예를 들면, 영국의 힐즈버러 대참사(Hillsborough disaster)5 는 영국의 재난사고 대응능력을 한층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고, 미국은 엑손발데스호(Exxon Valdez) 원유 유출사고6 이후 1994년부터 3년마다 국가재난사태를 대비한 훈련을 실시해 사고대처 및 처리 능력을 개선했다. 또한 보스턴 테러사건에서 효과를 낸 것으로 알려진 국가사고관리체제(National Incident Management System·NIMS)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 때 드러난 미국의 부실한 대응 과정을 보완해 만든 것이었다.

 

선진국과 후진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바로 안전 시스템이다. 선진국에서는 안전에 관련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반면 후진국에서는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한다. 1960년대 이래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안전시스템을 비롯한 사회·정치 측면에서는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오히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걸림돌이 아닌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디딤돌로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의 지난 경제발전은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하고 동시에 새로운 경쟁우위를 창출한 역사다. 특히 한국은 어느 국가보다도 빠른 학습능력과 회복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는 최근 두 차례의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도 알 수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한국은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국가 중 하나였지만 가장 빨리 회복했다. 1997년의 경제위기를 교훈으로 삼아 준비한 결과, 한국은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의 타격을 적게 받은 국가 중 하나로 꼽혔으며 세계 경제위기에서 가장 빨리 회복했다. 이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교과서적인 회복이라고 언급하면서 한국에 찬사를 보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한국 사회 전체가 슬픔에 잠겼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외 이미지도 크게 손상됐다. 그러나 1997년 경제위기를 극복한 것과 같이 이번 사건을 크게 교훈 삼아 한국의 빠른 학습능력과 회복능력을 발휘한다면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분야에서도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 가족들도 현재의 아픔에서 빨리 회복해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cmoon@snu.ac.kr

필자는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에서 강의했다. 주 연구 분야는 국제경쟁력, 경영전략, 해외직접투자, 문화경쟁력 등이다. 현재 국제학술지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다. 다수의 국내외 기업, 외국정부(말레이시아, 두바이, 아제르바이잔, 중국 광둥성) 및 국제기구(APEC, UNCTAD, IBRD)의 자문을 담당했다.

  • 문휘창 문휘창 | -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현)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장
    - (전)미국 워싱턴대, 퍼시픽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헬싱키 경제경영대, 일본 게이오대 등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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