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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꽃피는 봄이 오면 대표

영화는 길지만 포스터는 딱 한 장! 무슨 수를 써서든 새로워야 한다

최한나 | 157호 (2014년 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혁신 

영화는 길고 종이는 한 장뿐이다. 관객들을 사로잡는 영화 포스터는 어떤 비결을 갖고 있을까? 무수히 많은 한국 영화 포스터를 만들어 온 김혜진 대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둘 것을 조언한다. 

1) 원칙을 따르되 유연하게 움직여라.

2)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결하라.

3) 토대가 튼튼하지 않으면 아이디어가 싹틀 수 없다.

4) 어떤 면에서든 조금이라도 새로워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동환(연세대 생명공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포스터는 영화를 보기 전에 접하는 최초의 이미지다. 시간을 들여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가야 하는 줄거리나 영화평과는 달리 포스터는 단 하나의 이미지로 한눈에 포섭된다. 이 때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강한 인상으로 다가와 긴 여운을 남기기 쉽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관객은 극장에 내걸리는 그림으로 영화를 처음 접했다. 당시에는 주인공을 얼마나 비슷하게 그렸느냐에 따라 극장 간판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영화 포스터에 대한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던 때였다. 시대가 바뀌고 영화 마케팅이 발전하면서 포스터의 역할과 지위가 완전히 달라졌다. 영화 포스터만 담당하는 팀이 꾸려지고 몇 달에 걸쳐 작업이 진행된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은 물론 각종 첨단기술과 예술적 기법이 총동원된다. 배우들의 얼굴만으로 꽉 채우던 기존 틀도 달라졌다. 이제 영화 포스터는 아예 별도로 구분된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아가는 추세다.

 

한국 영화 포스터가 장르화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2000박하사탕을 시작으로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시월애’ ‘스캔들’ ‘라디오스타’ ‘박쥐’ ‘써니’ ‘도둑들을 비롯해 최근의역린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한국 영화 포스터들이 이 사람의 손끝에서 태어나고 완성됐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김혜진 대표다.

 

처음 만든 작품은박하사탕이었지만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은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였다. 인물 위주의 포스터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가운데 인물 비중을 최소화하고 제목을 흘려 쓴 캘리그라피를 크게 부각시켜 주목받았다. 당시 원하는 글씨체를 얻기 위해 여러 필기구를 시도하다가 결국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글씨를 완성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로도 그는 손대는 포스터마다 영화의 느낌과 개성을 잘 살려내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도를 아끼지 않으며 굵직한 한국 영화들과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다. DBR이 김 대표를 만났다.

 

김혜진 대표는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1995꽃피는 봄이 오면을 세웠다. 여러 디자인 작업을 하다가 2000년 이후 영화 포스터 제작을 시작했다. 맡는 작품마다 고유의 개성을 잘 살려내는 것으로 이름을 얻었다. 영화 포스터 외에도 광고, 패키지, CI, BI 등을 디자인하고 있으며 K-PAPER라는 문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정답은 없다. 어떤 원칙을 정해놓고 그것에 얽매이기보다는 상황과 콘텐츠에 맞게 유연하게 바꿔가는 것이 좋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영화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우선 시나리오를 꼼꼼히 읽는다. 어떤 특정 장면에 빠져들기보다는 전체적인 줄거리와 분위기를 잡아가며 그에 맞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이미지를 떠올린 후에는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때가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점이다.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영화는 최대한 스타일리시하게 접근해야겠다거나, 진심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거나, 멋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가야겠다거나 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아간다.

 

대부분의 영화 포스터는 장르에서 많은 점이 결정된다. 코믹물이냐, 호러물이냐, 액션물이냐에 따라 전체적인 구도와 색감, 인물의 각도나 동작 등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장르가 같다고 해서 포스터가 무조건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준익 감독의소원이라는 영화와 이정향 감독의집으로’, 이정철 감독의가족은 모두 가족 영화다. 어떤 에피소드를 중심에 놓고 가족이 겪는 갈등과 관계적 변화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하지만 포스터를 만들 때는 전혀 다르게 접근했다.

 

‘소원’은 아동 성폭행으로 사회적 분개를 불렀던나영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이 영화는 받아들었을 때부터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이런 영화에서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설득력도 떨어진다. 그렇다고 너무 어둡게 가면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거리가 멀어진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온 가족이 오랜 기간 아프고 힘들었지만 모두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소재도 내용도 밝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고 싶은 마음, 이게 영화가 가진 메시지였다. 세 식구가 앉아서 환하게 웃고 있는 포스터는 그래서 나왔다.

 

‘집으로’는 내세울 배우가 없는 영화였다. 유승호는 당시만 해도 인지도가 높지 않은 어린 배우였고 함께 출연한 할머니는 일반인이었다. 배우가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면 배우 얼굴을 크게 찍어내는 것만으로도 눈길을 끌 수 있지만 배우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른 곳에서 개성을 찾아내야 한다. ‘집으로에서 부각시킨 것은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포스터의 전체적인 프레임을 옛날 교과서로 잡았다. 유승호는 슈퍼맨 복장을 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다. 학창 시절 들고 다녔던 교과서나 어린 시절 한 번쯤 꿈꿔봤을 슈퍼맨은 모두 동심과 연결된다.

 

이와 비교해 배우들을 큼지막하게 내세웠다는 점에서가족은 상당히 정공법을 택한 포스터다. 아빠와 딸이 나란히 서 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가깝게 서 있으면서도 거리감이 존재하는 관계, 이것이 아빠와 딸 사이라고 봤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잡은 구도다. 배우를 내세우면서도 영화 내용을 은연중에 담아내려고 한 결과다.

 

가족 영화 포스터는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 좋다든지, 액션 영화는 움직임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뻔하고 큰 공식은 분명히 있다. 그런 류의 영화에는 그런 방식이 주로 사용돼왔고 가장 효과적인 것도 맞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어떤 원칙을 정해놓고 그것에 얽매이기보다는 상황과 콘텐츠에 맞게 유연하게 바꿔가는 것이 좋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그러면서도 상황에 적합하고 틀리지 않게 바꿔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하게 시도해가면서 그중에 무엇이 최적인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포스터 작업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한하다. 앞에서 소개한 작품들에는 날씨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집으로는 봄에 개봉했고가족은 가을에 개봉한 영화다. 이런 점을 반영해집으로포스터에는 알록달록한 색감을 넣어 생동하는 봄을 집어넣었고가족포스터에는 낙엽을 깔아 잔잔하면서도 진심 어린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 경쟁작들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시장의 성수기로 꼽히는 7월 셋째 주가 특히 그렇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도 이 시기를 노려 4월 말에서 8월 말에 주로 개봉한다. 대작들이 세게 붙는 시기다. 올봄 개봉한역린을 만들 때 꼭 이랬다. 역린이 극장에 걸릴 무렵, 경쟁작에표적이 있었고스파이더맨이 있었다. 이렇게 큰 작품들이 한꺼번에 걸릴 때 중요한 것은 가독성이다. 다른 포스터들과 같이 걸려 있을 때 얼마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혹시 묻혀버리지는 않을지 글자나 레이아웃, 등장인물들의 크기와 조화 등을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무조건 크게 만들기보다는 한눈에도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를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멀리서도 눈에 띄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포스터를 만들 때 동원하는 각종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다만 보느냐, 못 보느냐는 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달렸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나는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여행을 가서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해 뜰 때 나가서 해 질 때까지 보고 들어와야 직성이 풀린다. 좀 더 효율적으로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여행을 가기 전부터 계획을 매우 꼼꼼하게 짠다. 몇 시에 어디 가서 어떤 메뉴로 밥을 먹고, 조금 걷다가 다음 골목에서 어느 곳에 들어가 어떤 차를 마시고, 다시 걷다가 그 다음 골목에서 빵집을 가겠다는 식이다. 날짜별, 시간별로 전부 계획을 짜놓고 떠난다. 그렇지 않으면 제한된 시간에 많은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냥 보기만 해서는 흘러갈 뿐 남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본 후에는 눈으로 담은 것들을 영화 포스터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되새긴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서 보라색을 봤다고 하자. 이 보라색이 아주 오묘하면서도 특이하게 다가와서 기억에 남았다면 특별히 작업 중인 영화가 없더라도 새로 발견한 이 색을 어떤 분위기에 접합시킬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영화색계에 양조위와 탕웨이가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둘 다 말 한마디 하지 않지만 많은 대사가 들린다. 그보다 더 많은 감정이 둘 사이를 오고 간다. 그 사이를 흐르는 공기, 그 느낌을 예전에 봤던 보라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마음속에 담아뒀던 보라색과 둘 사이를 채우는 그 공기를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내가 영화를 보며 떠올리는 어떤 이미지나 아이디어의 상당 부분은 두서없이 흡수했던 많은 것들을 서로 연결하는데서 나온다. 그것들을 어떻게 연결해야 원하는 느낌이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내 작업의 핵심이다. 이런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나 느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포스터로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포스터를 만드는 일은 결국 길고 긴 영화 전체를 단 한 장의 종이 위에 표현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일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기초 지식을 쌓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디에이션 회의에서 내가리처드 애버던(Richard Avedon)이 베르사체 광고를 만들었을 때의 느낌을 살려보면 어떨까?”라고 했는데 회의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얘기를 더 진행할 수 없다. 또는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알렉세이 브로도비치(Alexey Brodovitch)를 모른다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까.

 

밑바탕이 없으면 보면서도 볼 수 없다. 영화 포스터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기존 영화 포스터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방식이 적용된 것인지를 모른다면 기본적인 토대가 부실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은 필요하다. 막내 디자이너가 들어오면 1년 정도 기초적인 교육부터 시킨다. 누구누구에 대해 공부를 하라든지, 어떤 영화들을 보고 오라든지 하는 식이다. 하지만 충분히 시간을 줬는데도 여전히 기본적인 부분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기본적인 토대가 튼튼하지 않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본들 무슨 소용인가. 그 위에 뭘 쌓을 수 있을까.

 

영화 포스터에도 트렌드가 있을 것 같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어떤 영화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개봉 첫날 서울극장 앞에 줄 선 관객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첫날 표를 구매하려는 관객이 길게 늘어서 있으면 아! 이번에 흥행하겠구나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화 첫날 관객을 모으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했고, 이런 방식이 통했다. 영화 포스터도 일단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최대한 자극적이면서 화려하게 치장하곤 했다. 실제 영화가 아주 지루하더라도 포스터가 자극적이면서 강렬해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 어느 정도 선방할 수 있던 때였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하면 아마 누구든 코웃음을 칠 것이다. 지금은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이미 인터넷을 통해 감상평이 주르륵 올라온다. 포스터 외에도 영화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기회가 많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 포스터만으로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나 선호도를 형성하지 않는다. 영화 포스터가 아무리 멋있어도 영화가 별로면 관객은 금세 흥미를 잃는다. 혹시 첫날 관객이 많더라도 기본적으로 영화가 좋지 않으면 곧바로 감소한다.

최근 영화 포스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솔직함이다. 영화가 갖고 있는 본질 외에 다른 것들로 치장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영화가 별로인데 포스터를 예술적으로 만들어서 관객을 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영화가 담고 있는 바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지 그보다 과장하거나 포장하면 금방 들통 나고 만다. 영화를 만족스럽게 본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영화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면 그 여운이 배가되지 않겠는가.

 

잘 만든 포스터는 어떤 특징을 지니나.

포스터를 만들다보면 이것저것 넣고 싶은 게 많다. 캘리그라피도 멋지게 그려 넣고 싶고 배우들 얼굴도 가능한 큼직하게 넣고 싶다. 색감을 다양하게 쓰거나 새로 뜨는 기법을 적용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고 화려한 기술이라고 해도 다른 요소들과의 조화를 깨뜨린다면 소용이 없다.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 어느 하나의 요소가 튀면서 눈길을 끈다고 좋은 포스터가 아니다. 들어간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자리를 잡았을 때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결국 그 포스터의 경쟁력이 된다.

 

영화는 길다. 떠오르는 장면도 많다. 쓰고 싶은 기법은 더 많다. 하지만 딱 한 장뿐이다. 한 장밖에 없다. 무엇을 더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뺄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잘해야 오래 기억에 남는 포스터를 만들 수 있다.

 

성공한 포스터가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매번 조금이라도 새로워야 한다는 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 포스터는 배우들의 클로즈업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들이 가진 티켓 파워에 대한 의존도가 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지겹고 단조롭다. 배우들의 얼굴이 잘 나오는 앵글은 정해져 있다. 매번 같은 각도에서 촬영된 사진을 보다 보면 그게 그거 같고 잘 기억도 안 난다.

 

지겨운 포스터가 되지 않으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새로워야 한다. 아주 작을지라도, 이번 영화 포스터는 지난 포스터와 어떻게든 달라야 한다. ‘사랑이라는 영화 포스터를 만들 땐 배우가 전면에 등장하는 샷을 찍으면서 일부러 핀을 날렸다. 잘못 찍은 사진 아닌가 싶은 관객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굉장히 철저하게 계획한 결과였다. 감정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기 위해 배우를 클로즈업하기는 했지만 같은 의도에서 클로즈업한 다른 포스터와 뭐라도 다르게 하기 위해 시도한 아이디어였다.

 

캘리그라피로 호평을 받았던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도 마찬가지다. 캘리그라피는 그전에도 있었다. 캘리그라피를 활용한 영화 포스터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배우보다 글자를 크게 부각시켰더니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새로움은 뭔가를 엄청나게 비틀거나 기존의 것과 완전히 달라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소하지만 살짝 다른 그 무엇에서 새롭고 참신한 느낌이 나온다.

 

클라이언트가 100을 요구하는데 100을 하면 프로가 아니다. 150을 해서 보여줘야 진정한 프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150의 결과물은 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포스터를 꽤 오랫동안 만들어왔지만 클라이언트나 관객이 디자인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보다 영화 포스터 디자인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영화에서 받아 구현하려는 이미지는 그들이 상상한 어떤 이미지보다 별로일 수 있다. 나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관객에게는 외면당할 수도 있다.

 

포스터는 영화라는 상업적 결과물을 홍보하는 수단이다. 아무리 잘 만든 포스터라도 성과가 좋지 않으면 실패다. 냉정한 것 같아도 그게 현실이다. 정말 좋은 디자인은 내가 100% 만족하고, 클라이언트가 200% 만족하고, 소비자가 300% 만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관객의 관심을 끌어내고 선택하도록 만들지 못했다면 포스터도 영화도 실패다. 자기만족을 위해 만드는 순수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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