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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 핸드백 ODM 전문기업 시몬느 성장 전략

‘짝퉁’만들어 들고 ‘진품’회사 찾아갔다 설득 또 설득, 도나카란을 움직였다

이방실 | 154호 (2014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운영

명품 핸드백 업계의히든 챔피언시몬느의 성공 원인

 

1. 효율적인 국제 분업화 체제 구축

사업 초창기부터소재 조달은 유럽샘플 개발은 한국제품 생산은 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영업은 미국 등으로 기능 분화. 그 결과, 가격 대비 우수한 품질(이탈리아 공방 대비 30∼40% 싼 값에 비슷한 품질의 제품 생산) 및 월등한 딜리버리(delivery) 능력(납기일 엄수)’이라는 차별화된 경쟁 우위 확보

 

2. ‘킹핀(kingpin)’ 공략으로 명품 거래선 연쇄 발굴

1987년 시몬느 창업 직후 당시 초고가 명품 핸드백 브랜드였던도나카란뉴욕컬렉션 공략에 집중. ‘오리지널에 버금가는모조품을 만들어 도나카란 본사로 들고 가 담판. 처음부터 업계(킹핀·볼링에서 맞히면 연쇄 효과로 스트라이크를 이끌 확률이 가장 높은 핀)’을 공략해 다른 명품 브랜드들도 잇따라 시몬느에 발주하는 계기 마련

 

3. QA(품질보증) 시스템 및 수작업 공정의 자동화 통한 품질 표준화

대량 생산 체제하에서도 균일한 제품 생산 위한 품질 표준화 추진. 핸드백 제조 공정을 50가지로 세분화해 각 공정별로 품질 검수. 일본 전자업체 등과 협력해 수작업 공정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 개발 등 공정 자동화 추진

 

4. 원청업체와 협력적 파트너십 관계 구축

단순 봉제 하청업인 OEM(주문자상표 부착생산)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소재·디자인 개발 역량 강화 통해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로 진화. 원청업체와의 관계를갑을구도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 관계로 정립. 제품 주문에서부터 선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책임지고 맡아 운영해 주는풀 서비스제공으로 마이클 코어스 등 미국의 신생 매스트지 업체들의론칭 파트너(launching partner)’로 자리 매김

 

 

1990년대 중반까지 명품 핸드백 시장에서 유럽 브랜드들의 영향력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지금까지도 초고가 명품 핸드백을 이야기할 때면 큰 이견 없이에르메스’ ‘루이뷔통이 꼽힐 정도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핸드백 업계엔 큰 변화가 일었다. 바로 미국 브랜드들의 약진이다. ‘마이클 코어스’ ‘마크 제이콥스’ ‘코치등 이른바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 감당할 수 있는 명품)’ 혹은매스티지(masstige, 대중을 뜻하는 ‘mass’와 명품을 뜻하는 ‘prestige product’의 합성어)’ 브랜드들이 대표적 예다.

 

최근 10여 년간 명품 패션업계의 파이를 키워온 건의류가 아니라 핸드백, 구두 등으로 대표되는액세서리시장이었다. 특히 핸드백, 그중에서도()명품핸드백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며 전체 럭셔리 시장의 견인을 주도해왔다. 이런 경향은 2008년 촉발된 글로벌 경기 침체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오늘날 매스티지 시대를 연 숨은 실력자가 바로 우리나라 중견 기업인 시몬느라는 사실이다.

 

1987년 설립한 핸드백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제조자개발생산) 전문기업인 시몬느는 연간 약 1800만 개 이상의 핸드백을 만들고 있다. 마이클 코어스 등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시몬느의 주 고객이다. 연간 매출액 규모는 공장 출고가 기준으로 대략 7000억 원선. 시몬느가 만든 핸드백에 브랜드 라벨이 붙는 순간 적게는 6, 많게는 10배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 판매가 기준으로 봤을 때 시몬느의 매출액은 최소 4조 원에서 많게는 7조 원대에 육박한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베인&컴퍼니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전 세계 명품 시장 규모는 약 2170억 유로(한화 약 304조 원)로 그중 핸드백으로 대표되는 가죽 제품 시장 규모는 전체의 16.5% 360억 유로( 50조 원)에 달한다. 이렇게 볼 때 전 세계 명품 핸드백 중 약 10%를 시몬느에서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몬느를 명품 핸드백 업계의히든 챔피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시몬느는 2013(6월 결산법인,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6939억 원에 영업이익 1118억 원, 당기순이익 1125억 원을 달성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과 당기순이익률 모두 16%대다. 1987 15명의 인원으로 출발한 시몬느는 현재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본사 종업원 수만 350명에 달한다. 이 중에는 패턴사, 제단사 등 핸드백만 최소 20년 이상 다뤄 온 80명의 개발인력이 포함돼 있다. 창업 당시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던 이 회사는 현재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3개국에서 7개의 해외 공장(현지 근로자 약 26200)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가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한 우리나라 봉제 산업 분야에서 오늘날 전 세계 명품 핸드백 시장을 주름잡는 글로벌 ODM 기업으로 성장한 시몬느의 성공 비결에 대해 DBR이 분석했다.

 

 

2003년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수상했을 만큼 공들여 지어진 경기도 의왕시의 시몬느 본사 사옥 전경. 연못과 산책로는 물론 감, , 복숭아 나무들이 산책로를 따라 늘어 서 있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다른 운치를 풍긴다.

 

핸드백 해외 영업사원에서 출발해 창업을 결심하다

시몬느를 창업하기 전 박은관 회장은 중저가 핸드백 제조업체 청산에서 근무했다. 1979 12월 입사 후 7년 넘게 해외영업을 담당했던 그는 입사 후 2년 만에 과장, 1년 후 차장, 1년 반 만에 수출총괄부장을 맡는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특히 박은관 회장은 대형 거래처인 미국 패션업체 리즈클레이본을 발굴해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계약을 따내면서 청산에서 독립해 나온 1987년 회사 매출액을 입사 당시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려놓았다.

 

박은관 회장이 창업을 결심하게 된 건 그가 청산 시절 새롭게 발굴한 거래처인 에스프리 사장의 요청 때문이었다. 당시 신생 업체였던 에스프리는 리즈클레이본 OEM을 맡고 있던 청산에 자사 가방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 사실을 안 리즈클레이본은 청산에에스프리와 계약을 하면 거래선을 바꾸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리즈클레이본은 당시 청산 수출 물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었다. 청산으로선 에스프리의 주문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에스프리 사장은 박은관 회장에게당신이 독립해 나와 에스프리 생산을 맡아주면 되지 않겠느냐며 끊임없이 부탁을 해 왔고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지인들 대부분이 박은관 회장의 창업을 만류했다. 이미 성숙기를 넘어 사양화 단계에 들어간 봉제 산업에 왜 뒤늦게 뛰어드냐는 것이었다. 박은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국내 대부분 핸드백 OEM 업체처럼 중저가 제품을 단순 카피(copy)하는 일은 전망이 없지만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 핸드백을 생산한다면 수익성과 성장성 모두 잡을 수 있다고 봤다. 특히 그는 미국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박은관 회장은당시 해외 출장을 나갈 때마다 업계 관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이미국 브랜드만 잘 잡으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옷만 취급하고 있는 미국 패션 브랜드들이 향후 액세서리로 영역을 확대해 토털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려고 할 텐데 그 기회를 잡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고 말했다.

 

더욱이 박은관 회장은 이탈리아 바이어들로부터현재 이탈리아에서 핸드백을 만드는 마이스터들은 모두 40대다” “실력 있는 20∼30대 장인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후진 양성에 실패해 10년 뒤에는 이탈리아 공방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왔던 터였다. 향후 명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봤을 때 유럽에서만 물량을 조달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고, 새로운 기회의 창이 아시아를 향해서도 열릴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따라서 여느 국내 OEM 업체와 달리 고급화 전략을 추구한다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충분히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소재나 디자인 개발 능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봉제 기술력만큼은 한국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박은관 회장은 서울 명동과 신설동 등지를 돌아다니며 20∼30년간 핸드백만 만들어 온 장인들을 영입하는 데 주력했다. 당장은 10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가의 에스프리 핸드백만 만들면 됐기에 인건비 부담이 큰 숙련공보단 신참 기능공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처음부터 회사의 전략적 방향을고급화에 뒀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의 새파란 젊은이가 평생 살롱백을 만들어 온 40∼50대 장인들을 모셔오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이렇게 좋은 기술력을 가지고 계속 싸구려 백만 만들다 인생을 끝낼 것인가” “명품 브랜드만 제대로 잡으면 대한민국도 이탈리아의 뒤를 잇는 명품 생산 기지로 거듭날 수 있다며 열정적으로 설득하는 박은관 회장의 진정성에 핸드백 장인들이 하나둘씩 시몬느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당장의 회사 운영을 위해 에스프리 등 저가 업체의 주문을 소화했으나 박 회장은 시선은 처음부터 명품 고가 시장을 향해 있었다.

 

‘오리지널’ 뺨치는짝퉁만들어 도나카란과 손잡다

박은관 회장은 1987 6월 창업 직후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뉴욕의 한 백화점에서 개당 2000달러를 호가하는도나카란뉴욕핸드백 7개를 샀다. 모두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 제품이었다. 명품 가방을 끌어 안고 한국으로 돌아온 박은관 회장은 직원들에게 박음질된 실 하나까지 모두 풀어 제품을 일일이 분해한 후 그것을 다시 조립하고 분해하기를 수차례 계속하도록 했다. 그리고 원래 제품에 쓰였던 것과 똑같은 가죽과 장식 등을 이탈리아에서 구입해 와 복제품을 만들어서는 다시 뉴욕으로 날아가 도나카란의 문을 두드렸다. 쉽게 말해짝퉁핸드백을 들고서오리지널명품을 만드는 회사에 찾아간 셈이다.

 

1984년 설립한 도나카란은 당시 미국 패션계에서 떠오르는 샛별 취급을 받던 패션 업체였다. 특히 메인 라벨에 해당하는도나카란뉴욕컬렉션은 각국 대통령 영부인들이 애용할 정도로 인기를 끄는 초고가 명품이었다. 박은관 회장이 들고 온 복제품을 본 컬렉션 구매 담당자들은 모사품의 완성도에 혀를 내둘렀다. “정말 한국에서 만든 게 맞느냐는 질문만 수차례 던졌다. 그들은현재 이탈리아에서 공급하는 가격보다 30∼40% 싼 값에 원하는 납기일에 맞춰 공급해 줄 수 있다는 박은관 회장의 말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탈리아 핸드백 공방들은 크리스마스 시즌 물량을 한창 제작해야 할 여름에 휴가를 한두 달씩 가버리는 통에 도나카란에선 늘 제때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골치를 앓고 있었던 터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선 여름 휴가도 반납하고 일할 수 있다며 더 싼 비용에 납기까지 제때 지켜주겠다고 하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던 것. 이들은마케팅 담당자들과 당장 이야기해 보겠다며 박은관 회장에게 다음 날 다시 찾아오라고 이야기했다.

 

그림 1 시몬느 재무 실적

 

이튿날 만난 마케팅 담당자들은 정작 천장만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그들은핸드백 하나에 2000달러를 넘게 지불하는 우리 고객들은 ‘Made in Italy’를 원하지 가격이 30∼40% 싸다고 해서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를 고르지는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현재 도나카란뉴욕 컬렉션은 이탈리아에서 3대째 핸드백만 만들어 온 80년 된 공방과 5대째 명맥을 이어 온 120년 된 공방에서 만들고 있다명품이라곤 만들어 본적도 없는 업체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제조 원산지(Country of Origin)에 대한 장벽 때문에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400달러(소비자가 기준) 이상 되는 핸드백 제조는 오로지 유럽에서만 생산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통념이었다. 당시 시몬느가 공식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핸드백 제조 경력이라곤 개당 40∼50달러에 불과한 저가 제품뿐이었으니 도나카란 담당자들이 난색을 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시몬느 본사에는 각 층마다 야외 정원이 마련돼 있어 근무 중에도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회사 내부에는 박은관 회장이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하나씩 수집해 온 그림, 조각, 가구 및 각종 엔티크 소품들 400여 점이 공간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예술 작품이 걸려 있다.

 

허탈하게 미팅을 마무리 짓고 나왔지만 박은관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도나카란 마케팅 담당자들을 다시 찾아가 설득에 나섰다. 그는 현재 이탈리아에는 40세 미만 연령대에선 제대로 된 장인들이 없다는 사실을 들어 제2의 생산기지 발굴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향후 안정적인 물량 조달을 위해선 어차피 시몬느가 아니더라도 유럽이 아닌 아시아 시장에 생산 기지를 마련해야 한다” “테스트 차원에서라도 현재 이탈리아로 발주하고 있는 물량 중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물량, 1%만이라도 시몬느에 맡겨봐 달라” “이탈리아에서 3, 5대째 핸드백만 만들어온 공방도 처음엔 시몬느와 다를 바 없이 맨땅에서 시작했을 텐데 우리라고 안 될 게 뭐냐” “만약 일이 잘되면 당신은 명품 업계 최초로 아시아에서 핸드백 생산기지를 개척한 선구자로 기억될 것이다등 밤새 고민하며 생각했던 설득 논리들을 속사포같이 쏟아냈다. 당시 명품 시장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박은관 회장이 아시아 생산기지 개척이라는 전략적 대안까지 제시하자 마케팅 담당자도 결국 승복했다.시몬느가 초고가 명품 핸드백 제품 120(두 가지 스타일 각각 60개씩)에 대한 주문을 따오게 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극적으로 주문을 수주해 온 박은관 회장은 곧바로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그리고 봉제 산업단지를 돌아다니며 수주 물량의 두 배를 제작할 수 있을 만큼의 원단과 부자재를 사왔다. 어렵게 따 온 주문인 만큼 한 치의 실수도 없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걸 바탕으로 총 240개의 핸드백을 만든 후 그중에서도 최상의 제품 120개를 골라 도나카란에 납품했다. 나머지 120개는 과감하게 버렸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품질을 맞춰 바이어의 신뢰를 얻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Made in Italy’ 핸드백보다 400달러 싼 1600달러로 가격을 책정해 미국 시장에 내놓았는데 120개 제품 모두가 팔린 것. 박은관 회장은미국 시장의 경우 유럽과 달리 실용적인 소비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품질이 같은데 가격이 싸다면 원산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미국 소비시장의 특징이 증명된 셈이라고 말했다.

 

단순 하청업체와 차별화된 소재·디자인 역량 개발에 주력하다

Made in Korea’ 핸드백의 성공적인 첫 판매 이후 도나카란은 시몬느에 대한 물량을 차차 늘려갔다. 그러더니 이듬해인 1988년엔 아예 디자이너를 한국의 시몬느 본사로 보내왔다. 새로운 콘셉트의 신제품 개발을 같이 추진해 보자는 뜻이었다. 박은관 회장은글로벌 명품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를 아시아로 직접 보내온 일은 처음이었다아시아에서 명품 핸드백 제조는 물론 디자인 개발까지 함께 시작하게 된 첫 사례라고 말했다.

 

시몬느는 도나카란과 첫 거래를 튼 지 1년여 만에 도나카란뉴욕 핸드백 전체 물량의 60%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고가 명품 브랜드인 도나카란이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공방 대신 서울의 영등포 한구석에 있는 공장으로 거래선을 바꿨다는 파격적인 소식은 업계에 순식간에 퍼졌다. 그 후엔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폴로 랄프로렌컬렉션, ‘캘빈 클라인컬렉션 등 미국 유수의 패션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시몬느를 찾기 시작했다. 제품 개발 원가를 30∼40% 가까이 줄일 수 있는데다, 납품 기일까지 잘 맞춰주고, 심지어 시장에서 잘 팔리기까지 하는 제품을 만들어 준다고 하니 주문이 몰리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이를 계기로 시몬느는 단순 하청업체 수준인 OEM 업체에서 탈피해 제품 기획부터 소재 및 디자인 개발까지 하는 ODM 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역량을 차근차근 개발해나가기 시작했다. (‘OEM vs. ODM’ 참조.) 우선 소재 개발 역량 강화에 힘을 썼다.핸드백 제조에서 디자인만큼 중요한 게 소재다. 소가죽, 양가죽 등 어떤 소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디자인이라고 해도 완제품 결과물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소가죽도 물성을 부드럽게 할 것인지, 거칠게 만들 것인지, 기름을 많이 먹여 오래 쓴 것 같은 느낌을 줄 것인지 등 여러 고려 사항에 따라 달라진다.

 

시몬느는 국내는 물론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노르웨이 등 유럽 각지를 누비며 소재를 조달했다.1  소나 양가죽뿐 아니라 악어 가죽, 뱀피 등은 물론 가오리나 홍어 같은 어피(魚皮)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소재를 소싱해 왔다. 클라이언트가 어떤 디자인 스케치를 들고 오더라도 그에 가장 적합한 소재를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도나카란이 일본 교토 여행 중 영감을 받아 스님들이 메고 다니는 자루 같은 모양의 가방을 만들고 싶다며 디자인 스케치를 보내오면 매우 부드러운 가죽 원단을 찾아서 디자이너가 추구한 느낌을 최대한 구현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식이었다.

 

소재 개발 역량뿐 아니라 디자인 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도 다각도로 힘썼다. 한번은 철망처럼 엮어진 메시(mesh) 스타일 핸드백을 만들어 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이행하기 위해 가죽을 실처럼 가늘게 잘라서는 베틀에서 삼베를 짜듯이 피륙을 엮어 샘플을 제조하기도 했을 정도다. 이 밖에도 시몬느는 핸드백에 들어가는 세부 장식과 관련해 여러 가지 제안을 능동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바이어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 브랜드 회사에서 보내준 그대로 샘플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기능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장식에 대해선 선제적으로 문제점을 파악해 대안을 제시했다. 이렇게 시몬느는 단순 봉제 작업에만 몰두하는 여느 OEM 업체와 달리 바이어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능동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아시아 최초의 명품 핸드백 ODM 업체로 한걸음씩 성장해 나갔다.

 

OEM vs. ODM

명품 핸드백 시장에서 OEM은 럭셔리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원청업체(바이어)가 제조 전문업체와 계약을 맺고 소재, 패턴, 디자인, 제조방식 등 모든 사항을 제조사에 제공해 핸드백 생산을 위탁하는 방식이다. 제조사는 원청업체의 지시를 100% 그대로 따라 봉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단순 하청이라고 할 수 있다.

 

ODM은 원청업체로부터 일방적인 지시를 받는 게 아니라 서로 협력하며 제품 생산 방식에 대해 논의한다는 점에서 OEM과 구분된다. 제조업체가 제품 기획이나 스타일 콘셉트 개발에 대해 바이어와 긴밀히 논의하며 소재 및 디자인 개발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완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이어가 소재 견본을 보내 오면 최적의 가격과 품질을 갖춘 소재(대체 소재 개발 포함)를 발굴해 조달해 주고, 브랜드 회사의 디자인 스케치 원안대로 샘플을 만들어주되 경우에 따라 자체적으로 수정한 샘플 제품도 함께 제작해 주거나 장식물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식이다. , 바이어가 요구한 사항을 충족시켜주는 것 외에도 다양한 옵션을 능동적으로 제시해 줌으로써 바이어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부수적인 노력 덕택에 제조업체 입장에선 OEM 방식보다 ODM 생산을 통해 훨씬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에 대한 선입견을 깨다

창업한 해부터 400만 달러 수출고를 올린 시몬느는 2년 뒤인 1989년 첫해 매출액의 네 배를 넘는 1800만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1992년엔 수출액이 300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해마다 파격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초고가 명품으로 꼽히던 도나카란과의 첫 거래 성사 이후 여러 명품 업체들이 제 발로 시몬느를 찾아온 덕택이었다.

 

늘어나는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었던 박은관 회장은 1991년부터 해외 생산기지 설립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원하는 물량을 감당할 만한 생산기지를 마련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은관 회장은해를 거듭할수록 두세 배씩 늘어나는 주문량을 맞추려면 4만 평 규모의 공장터가 필요했고 생산 인력도 수천 명은 필요한 상황이었다하지만 당시 한국에선 수도권 인근에서 그만한 부지와 인력을 구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가 중국 공장 설립을 고민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다.

 



박은관 회장이 바이어들에게 중국으로의 생산 기지 이전에 대해 고려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자 클라이언트들은 하나같이 난색을 표했다. ‘Made in Korea’까지는 인정했지만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박은관 회장은 그러나 안정적인 물량 조달을 위해서는 중국으로의 생산 기지 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바이어 설득에 나섰다. 수개월간 일일이 바이어들을 만나시몬느가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려는 건 인건비 절감 차원이 아니라 물량을 제때 공급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앞으로 10, 20년 뒤에 핸드백 제조의 중심은 유럽이 아닌 아시아가 될 게 분명하니 하루 속히 중국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게 현명하다” “중국에서 만들더라도 지금까지처럼 품질 관리에 만전을 기할 테니 믿어 달라며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고객사들도 하나둘씩 수긍하기 시작했다.

 

박은관 회장은 바이어들의 70%가 중국으로의 생산 기지 이전에 동의하자 곧바로 공장 부지 물색에 나섰다. 3주 동안 10여 개 도시를 돌아다닌 그는 공장을 세울 지역으로 광저우 판위시를 낙점했다. 박은관 회장은광저우는 당시 다롄이나 칭다오보다 인건비는 비쌌지만 오래 전부터 국제 무역에 대한 마인드가 갖춰져 있는 곳이었다인건비 절감이 최우선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도 선진화된 비즈니스 인프라를 갖춘 곳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어특히 판위시는 자재 발굴이 용이한 홍콩과도 매우 가까워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시몬느는 문화 경영을 선도하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경기도 의왕 본사에서 소규모 음악회 공연을 열고 직원들과 바이어는 물론 지역 주민들까지 초청하는 행사를 벌인다.

 

시몬느 중국 공장은 1992년부터 가동됐다. 도나카란뉴욕컬렉션 등 초창기부터 시몬느와 함께해온 미국 브랜드들은 중국 공장이 무리 없이 안착할 수 있도록 보통 90∼100일 정도 하는 납기를 2∼3주씩 연장해 주는 등 배려를 해줬을 정도로 시몬느에 대한 무한 신뢰를 표시했다. 하지만 유럽 명품들은 달랐다. 품질만 우수하다면 제조국에 대한 선입견은 크게 문제삼지 않는 미국의 실용적 소비 문화와 달리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 시장에서 ‘Made in China’ 꼬리표는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그러나 시몬느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우수한 품질력을 입증함으로써 2001년 콧대 높은 LVMH까지 고객사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 도나카란뉴욕컬렉션 핸드백 및 코치 제품 가운데 시몬느 중국 공장에서 만든 핸드백 5개와 이탈리아 공방에서 만든 제품 5개를 진열한 후 원산지 라벨을 떼어 버렸다. 그 후셀린느’ ‘지방시 LVMH 산하 10여 개 브랜드의 핸드백 담당자들에게 어떤 것이 ‘Made in Italy’이고 무엇이 ‘Made in China’ 제품인지를 골라보도록 요청했다.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바이어들이 ‘Made in Italy’라고 생각한다고 고른 제품 가운데 절반이 시몬느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셀린느, 지방시 등이 시몬느와 거래를 트게 된 건 물론이다.

 

시몬느 중국 공장에서 유럽 명품 브랜드까지 놀라게 할 정도의 품질을 선보일 수 있었던 건 시몬느 한국 본사의 핸드백 개발 인력들이 중국 공장으로 건너가 현지 노동자들에게 핸드백 제조 기술과 관련한 세세한 노하우까지 모두 전수한 결과였다. 우선 핸드백 제작 공정을 최대한 자세하게 분석한 후 공정 하나하나에 대해 설명해 줬다. “10㎝만 박음질하라”“리벳(연결장치) 5번 망치질하라”“약칠 마감(edge painting, 가죽 면을 정리한 뒤 코팅 제재를 바르는 것) 3번 하라등 매우 구체적인 지시사항까지 일러주면서 밀착 교육을 했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의 기술 이전 이후에도 상당수 장인들이 중국에 남아 실제 제작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는 데 힘쓴 건 물론이다.2  시몬느는 이렇게 한국에 이어 중국에서도 수준 높은 품질의 핸드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고 결과적으로 명품 핸드백 생산의 중심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박은관 회장은시몬느 이후로 홍콩,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명품 업체와 거래하는 OEM 업체들이 속속 생겨났는데 이들 모두 나를다거(大哥·큰 형을 뜻하는 중국어)’라고 부른다명품 핸드백 시장에서 ‘Made in China’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려준 데 대한 공로를 인정해 주는 그들만의 표현 방식이라고 귀띔했다. 이후 시몬느는 중국은 물론 인도네시아, 베트남으로도 생산 기지를 마련하는 등 기타 아시아 지역으로도 계속해서 생산기지를 확대해 나갔다. 국내 공장에선 핸드백 샘플 개발만 담당하고, 바이어들에게 납품할 핸드백 생산은 모두 해외로 돌려 역할 분담을 한다는 전략적 결정이었다.

 

품질보증(QA) 시스템 도입 통해 ‘풀서비스’ 컴퍼니로 거듭나다

시몬느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품질보증(QA·Quality Assurance)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QA란 바이어가 발주한 제품의 기획부터 제작, 검수, 선적까지 모든 공정을 제조업체가 책임지고 공급해주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핸드백 제조와 관련된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QA는 핸드백 제조 공정 각 단계별로 품질을 관리해주는 게 특징이다. 이를 위해 시몬느는 재단(cutting), 할피(skiving, 가죽을 얇게 만드는 것), 접합(gluing, 수용성 풀 등을 가죽 면에 바르는 것), 조립(assembling), 바느질(sewing), 약칠 마감, 포장(stuffing, 핸드백 완제품에 종이, 쿠션 등을 채워 넣는 것) 등 핸드백 제조 공정을 크게 50가지로 나눈 후 각 공정별 생산라인을 책임지고 관리할 검수 담당자를 두고 품질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모든 공정이 끝난 후 완제품에 대해서만 불량 체크를 하는 품질관리(QC·Quality Control)보다 훨씬 진일보한 품질 관리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시몬느가 QA 시스템을 가동하며 풀서비스를 제공하자 패션에서 핸드백으로 영역을 확장해가려는 신생 미국 업체들이 연달아 시몬느의 문을 두드렸다. 대표적인 예가 마크 제이콥스와 마이클 코어스다. 핸드백은 의류 생산과 달라서 제조 공정이 매우 까다롭다. 핸드백 하나당 가죽, 지퍼, 장식, 실 등 많게는 50가지 이상의 원·부자재가 필요해 자재 소싱하기도 만만치 않고, 이걸 일일이 검수하는 일도 상당한 부담이다. 품질 관리도 어렵다. 재단/패턴/조립사 등 개발 인력과 더불어 엔지니어(공장에서 대량 생산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핸드백이 원래 개발한 샘플 모습 그대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자재 수급 및 제조 과정 전반을 관리하는 인력) 등 검수 인력까지 별도로 둬야만 원하는 수준으로 품질을 통제할 수 있다. 핸드백 시장에 막 뛰어들려는 후발 주자 입장에선 부담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이런 와중에 시몬느가 제품 주문 이후 선적에 이르기까지 핸드백 생산 전 과정에 대한 품질 관리를 도맡아 해준다고 하니, 마이클 코어스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우리가 새롭게 출시하려는 핸드백의론칭 파트너(launching partner)’가 돼달라며 시몬느를 찾아온 것이다. 박은관 회장은마이클 코어스의 경우 핸드백 제조를 위한 생산 및 검수 관련 인력을 많이 두지 않기 때문에 1년에 7000∼8000만 달러 정도 운영 경비를 절감하고 있다마이클 코어스가 핸드백 시장에 처음 진출할 때부터 협력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시몬느와 바이어 모두 동반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2 7월 시몬느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개관한 핸드백 박물관백스테이지(Bagstage, 핸드백을 뜻하는 ‘bag’과 무대를 뜻하는 ‘stage’를 합성한 조어)’ 전경. 이곳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해 온 350여 점의 핸드백들이 전시돼 있다. 내년 시몬느가 선보일 자체 브랜드 ‘0914’의 테스트 매장도 있다.

 

장인의 손맛이 필요한 수작업 공정까지 자동화를 추진하다

시몬느는 2000년대 후반 들어 품질 관리의 수준을 또다시 업그레이드했다. 이번에는품질 표준화를 목표로 삼았다. 해외 공장을 7개나 운영하게 되면서 원산지가 어디냐에 상관없이 어디서나 균등한 품질의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사실 ‘Made in Italy’ 제품이라도 대()를 이어 핸드백을 만들어 온 이탈리아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한정된 수량만 만들어내는 초고가 명품은 전체 시장의 3∼5% 내외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Made in Italy’ 제품들은 지역적으로만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을 뿐 실제 그 제품을 만든 이들의 국적은 중국인인 경우도 많다고. 한 예로 이탈리아 프라토(Prato)에는 ‘Made in Italy’ 라벨이 붙은 옷과 핸드백, 신발을 만드는 중국인 숙련공의 수가 4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당연히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수대째 가업을 이어 온 이탈리아 장인들이 만들어 낸 초고가 명품의 품질에는 못 미친다. 이보다 더 품질이 떨어지는 ‘Made in Italy’ 제품도 있다. 동유럽이나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가공 작업 등 공정을 끝낸 후 최종 조립만 이탈리아에서 하는 경우다. 박은관 회장은솔직히 시몬느의 품질은 이탈리아 국적 장인들이 온 정성을 기울여 만드는 초고가 명품 수준만큼은 못되더라도 동유럽 등지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보다는 훨씬 낫고 중국인들이 이탈리아 공방에서 만드는 제품과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수억 원대 결제는 남에게 맡겨도 핸드백 샘플만은 직접 검수한다

지금까지 시몬느가 만들어낸 핸드백 스타일은 총 17만 개에 달한다. 이 중 박은관 회장의 검수를 받지 않고 시장에 나간 제품은 단 한 개도 없다. 한 제품당 한 번만 검토하는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세 번을 본다. 첫 번째는 시몬느에 핸드백 제작 주문을 낸 원청업체인 바이어에게 발송할 첫 견본 시제품이 나왔을 때다. 두 번째는 바이어들과 시몬느 개발팀이 지속적으로 협의하며 수차례 수정 작업까지 끝내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 있는 시몬느 해외 생산 공장으로 보내기 직전 상태인 최종 샘플이 나왔을 때다. 마지막 세 번째 확인은 해외 공장에서 대량 생산단계까지 마쳐 선적까지 끝난 완제품을 대상으로 한다. , 처음 두 번은 경기도 의왕 본사에서 제작된 샘플(최초 샘플, 최종 샘플) 상태에서 보고, 마지막은 해외 제조기지에서 만들어진 완제품 상태로 한 번 더 확인한다.

 

 

 

국내 샘플 검수는 매일 정오와 오후 4시에 실시한다. 박은관 회장이 지난 2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해 왔던정례 의식이다.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하루에 3∼4, 많으면 40∼50개 스타일의 핸드백을 검수한다고. 해외 일정 때문에 본사를 비울 때면 출장에서 돌아와 맨 먼저 하는 일이 바로 그동안 못 봤던 샘플을 체크하는 일이다. 박은관 회장은수억 원대에 달하는 결제는 직접 하지 않아도 샘플 보는 일만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제품 하나하나에 소재가 있고, 제조 방법이 있고, 생산이 있고, 가격이 있고, 회계 손익이 있기 때문에 CEO가 직접 챙기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선적까지 마친 완제품은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 검토한다. 지난 한 주 동안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7개 해외 공장에서 제조돼 유럽, 미국 등 각지로 선적된 제품들을 의왕 본사 쇼룸에 모아 놓고 검수한다. 이렇게 매주 해외 공장에서 완제품을 수송해 오는 비용만 따져도 연간 수십억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국내에서 개발된 샘플과 달리 해외에서 생산된 완제품에 대한 품평은 박은관 회장(사진 오른쪽)뿐 아니라 소재 개발 및 자재 소싱을 담당하는 본사 해외영업부 직원 100명도 함께 참여한다. 이미 국내 개발팀에서 검토를 다 끝냈던 제품을 본사에서 다시 한번 검토하는 이유는 철저한 사후 관리를 위해서다. 잘 만들어서 나간 건 어떤 부분이 잘됐는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에 못 미친다면 무엇이 부족한지, 행여라도 클레임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 요소가 있다면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에 대해 논의한다. 박은관 회장은 “QA 시스템을 통해 품질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가죽이라는 것 자체가 한 장 한 장 모두 똑같을 수는 없는데다 아무리 시스템을 자동화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핸드백은 수작업 공정이 많기 때문에 실수가 하나도 없을 수는 없다바이어들에게 향후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사후 관리는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시몬느가 품질을 가지고 시장에서 겨뤄야 할 핵심 경쟁 상대는 중국인 장인들이 이탈리아에서 만드는 명품, ‘Made in Italy by Chinese’ 제품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경쟁의 기본은 적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박은관 회장은 무늬만 이탈리아산이지 실제로 중국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제품의 단점이 무엇인지를 연구했다. 그리고 물량 규모가 커질수록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선 전통적으로 가내 수공업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공방 크기가 크지 않은 데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였다. 박은관 회장은이탈리아에선 물량 주문이 1000개 이상 넘어가면 공방마다 실 색깔도 달라지고 패턴도 맞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시몬느가 이들과 경쟁해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은 대량 생산 체제하에서도 똑같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표준화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몬느는장인정신의 공업화(craftsmanship industrialization)’라는 기치하에 공정 자동화를 추진해 갔다. , 수작업으로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공정들까지도 최대한 자동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물론 핸드백 제조라는 것 자체가 수많은 수작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완전 자동화는 불가능하지만 품질 균일화를 위해, 그중에서도 기계의 힘을 빌려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 유수의 전자업체와 협력해 재봉틀에 들어갈 컴퓨터 칩 및 소프트웨어를 주문 제작함으로써 손바느질 마감 느낌이 나는 재봉틀을 개발한 게 대표적인 예다. 섬세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약품 마감 및 건조 공정 전용 기계도 만들었다. 하드웨어 측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자동화 및 표준화에도 힘썼다. , 디자인 스케치 과정에서부터 패턴, 재단, 접착, 보관에 이르는 전 공정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해 세부적인 공정까지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바느질 공정에서는 바늘땀 간격이 OO㎜씩으로 유지되도록 재봉틀을 돌린다든가, 징을 박는 공정에선 못 머리에 홈이 파진 각도가 모두 45도가 되도록 하는 등 세세한 지시시항까지 프로그램에 설정해 놓는 식이다.박은관 회장은시몬는 공장 어디에서나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수작업 공정까지 자동화시키려 노력한 덕택이라며 “QA 시스템과 맞물리면서 품질 제고를 위해 큰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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