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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전략

절차와 기록은 거래의 생명 소홀하면 총수가 법정에 서게된다

천경훈 | 151호 (2014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은 물론 다양한 프로젝트와 관련해 법적 리스크를 인지하고 사전적으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이다. 물론 경영자가 법의 세세한 내용을 일일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법이 기업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늘 명심해야 한다. 특히 법적인 리스크를 지적하는 회사 내외부 관계자들을 절대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 다들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꿈에 부풀어 있을 때 부정적인 법적 리스크를 제기하는 이들이 환영받기는 쉽지 않지만 경영진은 반드시 이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때론 기업의 존망이 결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업 총수가 법정에 서는 일은 언제나 충격적이고 또한 논쟁적이다. 특히 처벌을 위해 적용된 법조항이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는배임인 경우에는경영판단과의 구분이 모호한 측면이 있어 더욱 큰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가 이어지면서 기업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회사 역시 뒤숭숭해진다. 새로운 사업과 성장 동력 모색은 언감생심이 된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각종 이슈에 대한 최종 판단은 ‘사법부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과 애플의 전 세계적 법적 공방에서 드러나는 지적재산권 영역만이 문제가 아니다.

 

때론 위법으로 분류됐던 활동이 법이 바뀌면서 권장할 만한 일이 되기도 하고, 편법으로 비판받았던 일이 법의 해석이 달라지면서현명했던 경영판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기업경영에서 법이 왜 중요한가?

기업의 목적은 영리추구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다양한 경영활동을 펼치면서 본의 아니게 민사책임, 형사책임을 지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이 그어놓은 선이 보통 사람들의 상식보다 훨씬 더 엄격해 당황하기도 하고 윤리·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닌데도 법적으로는 책임을 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한 법적 책임은 회사의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때로는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이처럼 기업의 모든 활동은 언제나 크고 작은 법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경영상의 의사결정에서 법적 리스크는 언제나 중요한 요소로 고려돼야 한다. 기업에 있어법률전략(Legal Strategy)’이란 결국 의도하지 않게 겪을 수 있는 법률적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이를 최소화하려는 활동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법적 리스크를 회피하고 이에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은 기업의 시장성과는 물론 기업 자체의 존망과 연결된 중요한 비시장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기업의 경영자는 법을 알아야 할까? 얼마나 잘 알아야 할까? 앞서 언급한 내용을 강조하면서 미리 짧은 답을 말하자면 경영자는 법의 세세한 내용을 일일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법이 기업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늘 명심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고 법적 리스크의 통제를 경영전략의 빼놓을 수 없는 한 요소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법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

먼저 경영자들이 법에 대해 흔히 갖는 오해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짚고 가도록 하자. 많은 사람들이 법은 기술적인 것이고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법적인 이슈는 법무팀이나 변호사들에게 맡기면 되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가서 최저 비용으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과연 법은 그렇게 고정적, 부차적, 사후적인 것인가?

 

우선 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매우 가변적이고 불확실하다. 법의 세계는 0 1로 말끔히 구분되는 이진법의 세상이라기보다는 스펙트럼으로 이뤄진 모호한 세상에 더 가깝다. 이는 많은 재판에서 1, 2, 3심의 결론이 달라지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수십 년의 법조 경력을 가진 판사들이 같은 사건을 놓고 첨예하게 다른 결론에 이르는 예도 드물지 않다.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 달라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각급 법원이 달리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정해져 있는 법률을 기기묘묘한 실제 사건에 적용하는 단계에서 많은 변용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합법이 불법으로, 불법이 합법으로 변하는 예도 얼마든지 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지주회사의 설립은 금지돼 있었고 형사처벌까지 받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일정한 예외하에 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됐고 급기야 2000년대 들어서는 지주회사가 바람직한 기업집단 구조라는 믿음으로 정부가 지주회사 전환을 적극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문어발 경영의 도구로 지목돼 금지되던 제도가순환출자보다는 투명한 구조라는 인식의 전환으로 오히려 바람직한 제도로 권장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위법하던 것이 적법하게 되거나 적법하던 것이 위법하게 된 경우는 분야별로 셀 수 없이 많다. 법이 바뀐 경우도 있지만 법 개정 없이 판례만 바뀐 경우도 있다. 특정 시점에서 주어진 법만이 불변의 법이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법은 단순히 사후적, 부차적인 것도 아니다. 어떤 상품을 설계하거나 거래를 기획할 때 법적인 문제를 사전에 예견하고 현명한 방책을 미리 만들어 둬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공학적으로 서있을 수 없는 건물을 아무리 화려하게 설계해 봤자 소용없듯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사업계획이나 상품설계를 아무리 현란하게 짜봤자 헛일이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철저하고도 전략적인 특허권의 출원과 등록,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법적 책임을 방지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꼼꼼한 개인정보 관리 시스템의 운영 등도 법적 리스크를 사전적, 예방적으로 통제하는 좋은 예들이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이 글에서는 법적 리스크가 기업의 성과에 큰 영향을 미쳤던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법률 리스크를 피하는 방법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고 일반적으로 설명하기보다(사실 그렇게 설명하기도 어렵다)는 실제 기업경영에서 벌어졌던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기업가들 스스로 법적 리스크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법적인 문제들은 그 특성상 경영성과를 좋게 만들기보다는 나쁘게 만들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여기서 소개하려는 사례들도 모범사례라기보다는 주로 반면교사에 해당한다.

 

관계자 간 거래와 형사책임

 

사례 1

상장회사인 건설회사 A사는 계열사를 합병하면서 반대주주의 매수청구권 행사로 인해 자사주를 대량 취득하게 됐다. 자사주가 발행주식 총수의 35%에 이르렀다. 관련법에 따라 이 주식은 2년 내에 처분해야 하는데 이렇게 엄청난 물량의 자사주를 장내 매각하자니 주가하락의 부담이 있었다. 이에 A사는 이 자사주를 최대주주 겸 대표이사(즉 회장) B에게 매각했다. 주당 매각가격은 전날 거래소 종가로 했고 대금 173억 원 중 10% B로부터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2년에 걸쳐 이자와 함께 받도록 했다. 이자율은 국세청이 정한 인정이자율로 정했다. 자사주 매각 조건은 A사의 이사회에서 승인됐다. 이 자사주 매각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까?

 

검찰은 B 회장을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했다. 회사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고 자기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에 대량의 자사주를 팔아버림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가하고 사적인 이익을 얻었다는 취지였다. A회사의 경영진과 B 회장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들어 책임이 없다고 다퉜다.

 

첫째, 기존 대주주인 B 회장 이외에는 이 자사주를 매입할 사람이 어차피 마땅치 않았으니 B 회장에게 판 것은 잘못이 없다.

 

둘째, 매각가격은 전일 종가, 즉 시가에 의했으니 회사에 불리한 저가라고 할 수 없다.

 

셋째, B 회장이 현금이 없어 회사가 매입자금을 대여해 준 것이고, 그에 대해서는 시중 이율 이상의 이자를 받았으므로 회사가 손해를 본 것은 없다.

 

고등법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자사주 매각에 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했다. 여러 복잡한 쟁점이 있었지만 대법원이 특히 강조한 점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막대한 분량의 자사주 매각 업무를 처리할 때에는 마땅히 적절한 매각 상대방을 선정하고 매각조건을 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냥 B에게 팔아버렸다.

 

둘째, 이 정도 분량의 자사주를 일괄매각한다면 상당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았어야 하는데 전혀 받지 않고 하루 전날 종가에 모두 팔아 버렸다.

 

셋째, 계약금 10%만 받고 자사주 전부를 넘겨주면서 담보도 받지 않았고 B가 잔금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았는데 채권확보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B 회장은 한편으로는 매수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매도인인 A의 대표이사 겸 최대주주였다. A사와 B 회장 사이에 이익충돌이 있는 상황이었고 A사의 이익을 희생해 B 회장의 사익을 추구할 위험이 높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대한정의가 행해지는 것으로 보이는 것’, A사에 최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그 노력이 가시적인 절차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다. 대법원이 보기에는 그런 노력과 절차가 없었고 상장회사인 A회사의 자사주를 B에게 헐값에 팔아버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가에 팔았더라도 징역형을 살아야 한다는 판단이다.1

 

그렇다면 A회사의 경영진과 이사들로서는 자사주 매각 건을 어떻게 처리했어야 할까?

 

첫째, 매수자 선정을 할 때 입찰을 한다거나 입찰은 아니라도 최소한 잠재적 매수자들에게 티저(teaser letter·매각안내서)를 보내는 등 매각가격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둘째, 가격산정에 있어서도 전날 종가에 덜컥 매매가격을 정해버릴 것이 아니라 복수의 회계법인에 의한 평가를 실시한다든지, 과거 두 달간 몇몇 거래일 종가의 거래량가중평균을 구해 본다든지 하는 등의 시도가 필요했다. 미국 회사들이 하는 방식대로 사외이사들만으로 이뤄진 독립위원회를 만들어 B 회장과 매매조건을 협상하게 하는 것도 바람직했을 것이다.

 

셋째, 대금지급조건도 중립적인 제3자 간 거래조건(arm’s length conditions)이라고 보기에는 이례적이다. 이사회가 이런 조건을 승인하려면 경영진은 유사한 거래 사례, 담보확보 방안 등을 이사회에 보고해 숙고할 기회를 줬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절차가 적절히 문서로 작성돼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각종 분석자료가 이사회에 제출돼 이사들이 숙고를 해야 하고, 그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런 절차가 모두 갖춰졌다면 실제로 자사주 매각의 대상과 조건이 달라졌을까?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입찰을 하든, 티저를 보내든 결국 이 주식은 B 회장이 매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3자가 평가를 하든, 독립위원회가 협상을 하든 주당 단가는 전날 종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매각절차 전반에 걸쳐 A사의 경영진과 이사회가 매각가격 극대화를 위한 노력을 했고 그 점이 가시적인 절차와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면 이 사건은 방어하기 훨씬 쉬웠을 것이다. 아예 수사대상이 되지 않거나 기소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기업에 있어법률 전략(Legal Strategy)’이란 결국 의도하지 않게 겪을 수 있는 법률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이를 최소화하려는 활동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법적 리스크를 회피하고 이에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은 기업의 시장성과는 물론 기업 자체의 존망과 연결된 비시장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다소 장황하게 이 사건을 언급한 이유는 지배주주를 정점으로 여러 계열사가 존재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구조상 관계자 간 거래가 많을 수밖에 없고, 그러한 거래는 이익충돌의 요소가 있어 언제든 법적 책임을 질 리스크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당수 기업의 경영진은 A사의 경영진처럼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B 회장과 A회사를 동일시해서 B 회장에게 유리한 것이 A회사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식의 구태의연한 사고를 벗지 못해서인 경우도 있고, 이런저런 절차를 거친다고 해도 어차피 결론은 동일할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안일한 생각은 이 사례처럼법적 처벌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위 사건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지난 10년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민형사 책임이 문제된 계열사 간 거래는 수백, 수천 건에 달한다. 대규모 기업집단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많이 있다. 그런 사건들은 기업과 핵심 경영진을 장기간 수사나 소송에 시달리게 해 기업의 경쟁력을 좀먹는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거래를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구조조정이나 그 밖의 경영전략을 무위로 돌려버릴 수도 있다. 사안의 내용을 불문하고 언론에는업무상 배임이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보도되므로 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신인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관계자 간 거래는 비지배주주의 이익을 침해해 결국은 기업가치를 감소시킨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관계자 간 거래에서는특정 지배주주가 아니라 회사의 이익극대화를 도모한다는 원칙이 절차 전체에 걸쳐 관철돼야 하고, 이를 위한 노력이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나야 하며, 그것이 적절한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정의가 행해지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가시적인 절차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절차적 요소가 중요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앞서 봤던 법의 불확정성 때문이다. B 회장에게 책임이 있는지는 어느 하나의 변수에 따라 Yes/No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전에 거래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행여 책임문제가 제기되더라도 ‘No’라는 답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거래절차 전반에 걸쳐 차곡차곡 유리한 포인트를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A사 경영진은회장님과 회사 간의 거래라는, 그 자체로 큰 의심을 일으킬 수 있는 거래의 법적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가피하게 수많은 관계자 간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다수의 우리 기업들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관계자 간 거래의 절차 및 방식을 매뉴얼 또는 규정화하고, 사내외 감독기관의 역할과 책임 구분을 분명히 하며, 무엇보다 경영진이 이러한 법적 리스크에 대한 경각심을 내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M&A와 대상 회사의 리스크

 

사례 2

M&A는 기업이 핵심역량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는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유능한 경영자라면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대상에 대한 M&A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경영학 문헌이 M&A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 논하고 있고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법률 전략 수립과 자문의 현장에서 M&A의 경과를 관찰하다 보면 얼핏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이 M&A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회장·사장 선에서 그린 큰 그림이 제대로 실현되기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선에서의 과장급·대리급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고, 그중에서는 아예 큰 그림 자체에 균열을 가져오는메가톤급문제들도 적지 않다. 딜이 종료되기 전에 그 문제를 발견하면 다행이지만 딜이 종료된 다음에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다음은 필자가 실제로 겪었거나 가까이서 관찰한 예들이다.

 

사례 2-1

외국 제조업체 A사는 자금난에 빠져 있던 동종업계의 국내 B사를 인수했다. 그런데 인수 직후 매립지에 있는 공장의 지반이 침하되기 시작했다. 지반강화와 시설보수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서 인수 당시 비용-편익 분석의 전제를 뒤흔드는 것이었다(달리 말하면 인수의 전제가 된 B사의 기업가치를 크게 저하시키는 것이었다). 인수계약서상 이런 경우에 어떤 손해를 어떻게 배상받을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는 국제중재를 통해 해결됐는데 A사가 얼마나 보상을 받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사례 2-2

외국계 펀드 C사는 국내 중형 조선업체인 D사에 2대 주주로서 투자하고자 했다. 그런데 실사를 해본 결과 조선소 시설의 상당수가 주거지역 내에 위치하고 있었고 조선소 건물 대부분이 무허가 건물이어서 법적으로는 언제든 철거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기존 경영진은 시장 등 현지 공무원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밝혔고, 이것은 오히려 C사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이것 외에도 다른 문제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 거래는 본계약 체결 직전의 단계에서 결렬됐다. 그 후 D사의 경영진과 해당 시의 공무원들이 뇌물죄로 구속되는 사태를 보며 C사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사례 2-3

국내 IT 업계의 E사는 동종업계의 F사를 그 대주주들로부터 지배지분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인수했다. 그런데 인수 이전에 발생했던 F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인수 직후에 크게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찰조사가, 그 다음에는 민사소송이 줄을 이었다. 그로 인한 배상액 지출, 브랜드 가치 저하, 가입자 감소는 물론 F사의 신규 사업 진출에도 큰 지장이 초래됐다. 당연히 M&A의 전제가 됐던 F사의 기업가치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계약 체결 전에 F사는 이 사건에 대해 E사에 알린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렇게 큰 규모로 사태가 확대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수많은 이슈들에 묻혀서 계약서에는 그 해결방안이 불분명하게 처리됐다. E사는 F사의 종전 대주주(매도인)를 상대로 주식인수대금의 일부를 돌려달라는 중재나 소송을 제기하려고 준비하다가 기업 이미지에 미칠 부작용 등을 고려해 이를 접었다. 결국 그 손실은 E사의 부담이 됐고 E사 내부에서 책임 소재를 가리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례 2-4

정유업계의 G사는 대주주로부터 주식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동종업체인 H사를 인수했다. 그런데 H사가 인수 이전에 정유업체들 간의 담합에 관여한 것이 인수 후에야 드러나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거액의 민사소송도 당했다. 이는 G사가 M&A 시에 전제로 한 H사의 기업 가치를 크게 저하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G사는 매도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했는데 이 소송은 G사도 그 담합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앞서 제시한 네 가지 사례 외에도 대상 회사의 주요 자산인 사옥 건물이 과거 위장계열사의 소유로 돼 있다든지, 공장 부지가 지금은 남남이 된 과거 계열사 명의로 남아 있다든지, 주요 특허권이나 상표권이 과거 계열사 명의로 남아 있는 예도 있다. 대상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결과 대상 회사가 인수 대가의 수십%에 해당하는 세금을 추징당한 경우도 있다. M&A 대상 회사의 핵심자산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특허권에 대해 무효판결이 나는 등 다양한 법적인 문제로 인해 인수자 측으로서는 재앙이라고 할 만한 사태들이 발생하는 예가 있다.

 

이런 법률 리스크들은 고차원적인 M&A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는 그다지 비중 있게 고려되지 않지만 때때로 그러한 전략이 그리는 장밋빛 미래를 일거에 흙빛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당초 예정한 인수합병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하거나, 또는 그 효과를 상쇄해 버릴 정도의 부정적 효과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M&A 과정에서 대상 회사의 법적인 리스크를 발견하고 그것을 계약서에서 적절하게 처리함으로써 그로 인한 위험을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 적절히 분담하는 기술은 변호사들 사이에 비교적 잘 발달돼 있다. 주요한 M&A의 협상을 앞두고 수많은 회계사, 변호사, 기타 전문 인력이 대상 회사의 장부와 각종 문서를 검토하고 현장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는 이른바 실사(due diligence) 작업은 바로 이러한 리스크 요인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다. 이를 통해 발견한 리스크 요인들은 협상 시 가격 인하 사유로 활용되기도 하고, 아주 중대한 것들은 거래중단사유(deal breaker)가 되기도 한다. 발견하지 못한 사유에 대해서는 계약서에서 매도인으로 하여금 대상 회사의 상태에 관해 이른바 진술 및 보장(representations and warranties)을 제공하게 하고 그와 다를 경우에는 손해배상 의무를 지우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M&A 전략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경영자가 이런 리스크를 하나하나 철저히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견 사소해 보이는 다양한 법적 문제가 M&A의 성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계약서에 반영하는 메커니즘의 기본적인 골격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실무진과 법률가들이 보내는 경고음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국세청 세무조사가 이뤄져 엄청난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하고, 인수한 회사의 핵심자산으로 생각했던 특허권이 무효판결을 받는 등 ‘재앙’같은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임직원에 대한 권한 부여와 권한 통제의 문제

 

사례 3

A사에는 오래된 부실채권이 있었다. 오래 전에 지점을 폐지하고 건물을 비웠는데 건물주로부터 임차보증금 20억 원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 임차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몇 차례 경매도 해봤지만 매번 유찰됐다. A사의 부실채권을 담당하던 B부장은 건물주와 공동으로 그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후 일반에 분양해서 분양대금으로 부실채권 원리금을 돌려받겠다는 아이디어를 낸다. 그런데 리노베이션 비용은 예상보다 더 많이 소요됐고 금융위기를 맞아 분양은 전혀 되지 않았다. 급기야 건물주는 사채를 빌려 쓰고 그 약정서에 B 부장은 A사 이름으로 보증을 하기에 이른다. 법인인감을 관리하는 말단 여직원은 평소 성실하던 B 부장에게 아무 의심 없이 인감을 내줬고 B 부장이 각종 차입계약서에 A사 이름으로 보증을 선 금액은 100억 원이 넘었다. 물론 A사의 그 누구도 이런 보증을 허락한 적은 없었다.

 

A사는 보증책임을 져야 할까?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다툴 여지는 있지만 아마도 100억 원 중 상당 부분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우리 민법은표현대리 책임이란 것을 인정해서 본인으로부터 무언가 대리권을 수여받은 사람이 그 권한을 넘어선 월권행위를 하고 상대방이 그에게 권한이 있다고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본인이 책임을 져야한다. 쉽게 말해 이 사건에서 B 부장은 부실채권 관리라는 기본 대리권은 있었으므로 만약 채권자들이 “B 부장이 A회사를 대리해서 리노베이션 소요자금의 차입을 보증할 권한이 있다고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A회사는 보증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여러 정황을 고려해 판단하지만 해당 문서에 법인인감을 날인하고 인감증명서도 첨부했다면 그것을 믿은 사람에게는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기 쉬울 것이다. 법인인감은 회사에 하나뿐인 등록인감으로서 철저하게 관리되는 것이 보통이고 게다가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으려면 인감카드란 것이 필요하므로 이 모든 것을 갖췄다는 말은 회사 내의 적법한 수권절차를 거쳤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설령 정당한 이유가 부정돼 표현대리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도 회사는 B 부장의 사용자(employer)로서 사용자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B 부장은 A회사의 피고용인인데 B 부장이 그 업무와 관련해 인감을 도용해서 문서를 위조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므로 A회사도 그 피해자인 채권자들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피해자의 과실을 참작해 손해액의 일부만을 배상하게 된다. 이른바과실상계의 원리다.

 

요컨대, 회사의 직원이 회사의 법인인감을 함부로 도용해 회사에 의무를 부담시키는 문서를 작성한 경우 회사가 그 책임을 완전히 면하기는 쉽지 않다. 아직 수사가 완결되지 않은 상황이라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지 못하기는 하지만 최근 KT의 자회사가 갑자기 회생절차 신청을 하게 된 이유도 소속 직원의 인감도용으로 인한 책임 때문이라고 보도되고 있다. 즉 이런 류의 사고는 회사의 운명을 바꿔놓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기도 한다.

 

위 사례에서 A회사는 인감 관리에 많은 허점이 있었다. 말단 여직원이 법인인감과 인감카드를 동시에 관리하고 있어서 상급자의 요청 시에는 그대로 이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외부 대출도 허용됐고 사용내역도 꼼꼼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인감관리 규정에는 자물쇠를 채운 보관함에 보관하라고 돼 있었지만 아무도 준수하지 않았다.

 

 

이처럼 인감이 부실하게 관리된 배경에는 상급자들의 무관심도 큰 역할을 했다. B 부장의 상급자들은 미국에서 MBA를 이수한 우수한 조기 유학생 또는 재미 교포 출신이었다. 이들은 첨단 금융기법과 마케팅 기법에는 능했지만 법인인감이니, 인감카드니 하는 촌스러운(?) 제도는 잘 알지도 못했고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아래 직원들이 잘 관리하겠거니 하는 무관심 아래 B 부장은 마음대로 수십 장의 서류에 회사의 법인인감을 날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권한통제 방법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법인인감과 인감카드를 각각 다른 사람이 관리하게 하고, 말단직이 아닌 상당히 높은 직급의 직원에게 관리를 맡기고, 사용내역을 잘 기록하고, 특정인의 사용 횟수가 얼마 이상이면 담당 임원에게 보고하고, 외부 반출을 허용하지 않는 것 등이다. 이처럼 답이 나와 있는데도 비슷한 사고가 많은 회사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데는 A회사의 경우처럼 경영진이 이런 문제를 너무 무관심하게 내버려둔 탓이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단순히 소속 직원의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미비의 문제인 것이다.

 

다소 지엽적이고 사소한 것 같지만 사례 3이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직원들의 권한 통제와 남용 견제에 실패하면 때로는 회사를 휘청거리게 하는 큰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법률과 법원은 인감을 도용당한 회사에 별로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수시로 챙기는 것은 사소하고 빛이 나지 않는 업무이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중요한 임무로 인식돼야 한다.

 

CEO와 경영진을 위한 제언

지금까지의 사례를 통해 살펴봤듯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은 물론 다양한 프로젝트와 관련해 법적 리스크를 인지하고 사전적으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이다. 위 사례들과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론에 갈음한 제언 몇 마디를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부터 나중에 누군가가 법적인 이슈를 제기할 가능성에 대비해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법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불만을 품은 쪽에서 제기할 수 있는 법적인 주장들, 말하자면위험요소내지트집거리들을 가능한 한 빠짐없이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예측이 현실화돼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 우리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요소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미리 연구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마련해 놓아야 한다.

 

둘째, 법적인 리스크를 지적하는 회사 내외부의 관계자들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 다들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꿈에 부풀어 있을 때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보고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기업 내부에서 환영받기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하고 경영진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의 경고음을 무시하거나 아예 그러한 경고음을 내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필시 회사에 더 큰 불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셋째, 법적 리스크의 존재 여부나 크기를 판단할 때 소수 경영진의 개인적인 판단에 함부로 의지해서는 안 된다. 법적 책임은 일반인의 상식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으로 요구되는 경우도 많다. 경영진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사소한 사안이라고 생각하던 건이 사실은 회사를 뒤흔드는 커다란 법적 리스크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법적 리스크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 여러 명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법적 리스크를 사전에 발견하고 사후에 처리하는 일은 화려하지 않고 각광받는 일도 아니므로 자칫 소홀히 다뤄지기 쉽다. 그러기에 현명한 경영진은 오히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며 전문가의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비시장적 경영전략의 하나로서의 법률전략은 이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기본에 해당하는 것들을 꼼꼼히 챙기는 자세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천경훈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khchun@snu.ac.kr

천경훈 교수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26기로 수료했다. 서울대에서 법학 석사, 미국 듀크대에서 LLM, 다시 서울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한국과 미국 뉴욕 주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 ·장 법률사무소에서 10년간 변호사로 근무하다가 2010년부터 서울대에서 상법을 가르치고 있다. 기업 인수합병과 기업집단의 법적 문제에 특히 관심을 두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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