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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 Monitor

선진국은 CSV,신흥국은 CSR…‘국제 표준’ 보다 ‘다양성’에 주목하라

정한울 | 144호 (2014년 1월 Issue 1)

 

 

편집자주

본 글은 사회적기업연구소와 동아시아연구원이 발간한 <CSR Monitor> 보고서 제2013-02호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1. CSR 다양성(Variety of CSR) 시대의 도래

 

세계화의 진전 속에서 해외시장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해외 진출 기업들의 CSR 활동은 단순한 기업윤리의 문제가 아닌 기업의 흥망과 직결된 중요한 사항으로 부상하고 있다. CSR 논의를 주도해온 영미, 유럽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물론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인도 등에서 CSR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강화되고 있다.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프리카 등도 더 이상 CSR의 불모지는 아니다.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는 기업들로서는 해당 국가에서의 CSR 활동 전략 수립에 고심할 수밖에 없다.

 

해외 진출 기업의 CSR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자본주의 다양성(Variety of Capitalism) 논쟁의 문제의식을 빌리자면 세계가 바라보는 CSR 인식이 특정방향으로 수렴되는지 아니면 각국의 자본주의 유형이나 경제발전 수준 등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분화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이 글은 2013년 글로브스캔·동아시아연구원·사회적기업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RADAR 2013>한 세계 주요 국가 CSR 인식조사 결과를 토대로 각국의 CSR 환경과 각국 국민들이 바라보는 CSR 인식이 수렴되기보다 다양한 유형으로 분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CSR 다양성(Variety of CSR) 시대에 해외 진출 기업의 CSR은 현지 여론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세분화, 다변화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 기업을 바라보는 감성의 차이: 기업신뢰도의 편차

 

기업의 CSR 활동에 대한 인식을 평가하기 전에 무엇보다 각국의 반기업 정서에 대한 확인이 중요하다. 특정대상에 대한 정서적 태도 중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 신뢰도(trust). 신뢰는 일반적인 호감도와 달리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일단 구축되면 쉽게 깨지지 않고, 일단 깨지고 나면 다시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위기관리 차원에서도 핵심적인 관리 대상이다. 기업에 대한 신뢰가 작동하지 않는 조건에서 CSR 활동은 훨씬 더 큰 거래비용을 필요로 한다. 신뢰(trust)를 사회자본의 한 형태로 간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해외 진출 기업이 CSR 전략을 구상할 때 타깃 국가에서 기업에 대한 신뢰도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전략구성의 출발점이 된다. 이때에는 특히 자기 나라 기업에 대한 정서와 해외에서 들어온 외국 기업에 대한 정서에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우선, 세계 주요 국가들의 자국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평가해보자. 인도네시아(82%), 중국(76%), 인도(75%), 파키스탄(62%) 등 아시아에서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대국들과 케냐(78%), 가나(77%), 나이지리아(69%) 등처럼 해외 투자와 지원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아프리카 신생 개발국들이 친기업 정서가 강한 대표적인 나라로 꼽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캐나다(73%), 호주(72%), 독일(64%), 영국(59%)은 기업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미국(54%), 폴란드(53%), 프랑스(52%) 등에서도 과반 이상의 신뢰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유럽의 스페인(44%), 그리스(38%)와 남미의 OECD 국가인 칠레(49%), 멕시코(43%), 신흥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침체 국면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러시아(44%) 등에서는 대기업의 신뢰도가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

 

자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에 대한 신뢰도와 비교하면 <그림 1>처럼 자국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국가들일수록 해외 기업에 대해 우호적이고 자국 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큰 나라들은 외국의 국내 진출 기업에 대해 신뢰도가 낮다. 과거와 같이 민족자본과 외국 자본을 대립적으로 보는 국가들은 많지 않았다. 보호무역주의는 밀려가는 조류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77%), 중국(67%), 인도(67%) 등의 아시아 신흥강국과 케냐(76%), 가나(75%), 나이지리아(72%) 등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는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자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았다. 반면 그리스(23%), 스페인(34%)과 같은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국가들과 러시아(31%), 멕시코(38%), 칠레(37%) 등의 남미 국가에서 내외 구분 없이 기업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았다. CSR 진정성에 대한 불신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들이다. OECD 국가들 중 캐나다와 독일의 경우 자국 대기업과 외국 기업에 대해 모두 우호적인 비율이 컸다. 반면 미국(49%), 호주(47%), 영국(42%), 프랑스(41%), 폴란드(33%) 같은 나라들에서는 국내 진출한 외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 자국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과반을 넘는데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불신이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대책이 필요한 국가들이다. 한국은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신뢰한다는 응답이 과반을 넘지 못했다. 다만 국내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36% 23개 국 중 가장 낮았지만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46%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국가별로 기업에 대한 감성의 차이가 나타나는 패턴을 좀 더 추적해보자. 각국의 대기업 신뢰도와 경제발전 수준을 중심으로 유형화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 2>는 경제발전수준(2011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각국에서 대기업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분포를 교차해본 결과다. 조사대상에 포함된 23개 국 중 한국(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을 기준으로 상반된 관계 유형이 도출된다. 전체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군의 경우 국민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대기업 신뢰도가 높아지는 선형관계를 보여준다. , 국가경제발전 수준과 대기업 신뢰도 간의 높은 상관관계가 확인된다. 개발도상단계의 신흥국들 역시 낮은 국민소득 수준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을 능가하는 대기업 신뢰도를 보여준다. ,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뛰어넘는 선두국가들과 함께 5000달러(중국)에도 못 미치는 국가군들이 대기업을 신뢰하는 나라로 분류된다.

 

 

조사에 포함된 이들 신흥개도국은 만성적인 경제침체를 겪고 있는 국가들이라기보다는 높은 경제적 역동성을 보여주는 나라들이다. 고도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신흥 경제강국 중국(9.3%), 인도네시아(6.5%), 인도(6.3%)나 놀라운 고도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신흥개도국(가나 15%, 나이지리아7.4%), 전환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주요 중남미 국가(페루 6.9%)가 포함돼 있다. 경제발전 수준이 중위권에 속한샌드위치국가들일수록 오히려 대기업 신뢰도가 하락하는 반비례 관계가 확인된다. 1인당 국민소득 1∼2만 달러 전후의 폴란드, 칠레, 멕시코, 한국 등 OECD의 중하위 국가들이나 성장세가 둔화된 신흥 경제강국 러시아, 경제위기의 발화지로 지목되는 그리스, 스페인 등은 개도국에 비해 높은 경제발전 수준에 도달했지만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소적이다. 국가경제의 활력과 규모가 기업을 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여론으로 본 CSR 인식의 다양성

 

각국의 CSR 인식지형은 크게 CSR의 우선순위와 이를 강제하는 규율방식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여준다.

 

CSR 우선순위 논쟁: 경제책임 우선론 vs. 사회책임 우선론 vs. 공유가치 창출론

 

CSR을 바라보는 관점은 전통적으로 사회적 책임의 범위와 우선순위를 기준으로 경제책임 우선론과 사회책임 우선론이 대립해왔다. 전자는 이윤창출 및 일자리 창출과 같은 기업 본연의 경제적 기능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준수하며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여러 이해관계자 중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후자는 전 사회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이 걸린 환경문제나 빈곤, 교육, 보건,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까지 포괄하는 입장으로 윤리경영을 강조한다. 최근에는 이 두 가지 입장에 더해 사회윤리적 가치와 책임, 경제적 가치와 준법차원의 기업책임을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전략적 CSR, 공유가치창출(CSV)의 관점에서 본 신개념 CS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즉 기존의 CSR 논쟁에서 CSR의 윤리적/규범적 차원을 지나치게 정당화하거나 반대로 기업의 역할을 경제적 책임으로만 한정시키는 이분법적인 시각에 대한 회의론이 강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과 경제적 책임(economic responsibility)을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으로 공존하는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 이하 CSV)’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마이클 포터와 마크 크래이머의 이론이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국의 국민들은 어떤 입장에서 CSR을 바라볼까? <그림 3>은 각국 국민들에게 대기업이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윤을 창출하며 세금을 납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경제책임 우선론)”는 주장과법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높은 윤리적 기준을 세워나가고 모두에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사회책임 우선론)”는 주장, 그리고앞의 두 입장을 절충해 추진해야 한다(사회책임-경제책임 병행론)”는 주장 중 어느 입장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다. 경제책임 우선론은 주주모델에 기초한 CSR 관점과 같은 선상에 서 있으며 사회책임 우선론은 2000년대 이후 부상한 규범적 CSR, 이해당사자 모델에 기초한 CSR론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책임과 경제책임을 병행하라는 여론이 공유가치 창출론(CSV) 혹은 전략적 CSR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24개 국 조사결과를 보면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양 입장을 절충 혹은 병행해야 한다는 관점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전통적인 CSR 논쟁을 이끌었던 사회책임 우선론과 경제책임 우선론을 지지하는 여론은 상대적으로 소수를 이루고 있다. 사회책임-경제책임을 병행해야 한다는 여론은 호주 53%, 영국 51%, 미국 50%, 캐나다 46% 등에서 높게 나타났다. 선진국 중에서도 유럽 대륙 국가들에서는 양자를 병행해야 한다는 CSV적 인식이 프랑스 39%, 스페인 36%, 독일 34%, 그리스 32%로 사회책임 우선론과 대등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는 독일이 34%로 다소 낮았다. 경제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인도네시아(51%), 폴란드(50%)에서도 양자 병행론에 대한 지지가 과반에 달하고 있어 CSV를 강조하는 국가들이 상당히 넓게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 한국에서도 사회-경제책임 병행론 대 사회책임 우선론에 대한 지지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구도로 변화했다. 한국의 경우 양자 병행론에 대한 지지가 36%, 사회책임 우선론에 대한 지지가 35%였고 중국에서 이 비율은 각각 36%(사회·경제책임 병행론), 41%(사회책임 우선론)로 나타났다.

 

반면 멕시코(13%), 나이지리아(16%), 러시아(20%), 브라질(22%), 인도(22%), 가나(23%), 케냐(25%) 등 신생 개발도상국이나 신흥경제대국들과 같은 후발 주자 그룹에서는 사회-경제책임 병행론에 대한 지지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사회책임 우선론과 경제책임 우선론이 여전히 경쟁적인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들 중 인도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책임 우선론이 경제책임 우선론보다 다수여론을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CSR의 당위성이 개발도상국에서 크게 확산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브라질(53%), 나이지리아(46%), 멕시코(46%), 케냐(45%), 칠레(45%), 러시아(43%)에서는 폭넓은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규범적 CSR 개념이 다수여론을 점하고 있다.

 

결국 CSR의 역할과 범위를 둘러싼 각국의 여론분포를 보면 대체로 후발 경제개발도상국들에서는사회책임 우선론경제책임 우선론이라는 CSR의 전통적인 논쟁구도가 유지되면서도 사회책임을 강조하는 여론이 다수여론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나 한국, 중국에서는 CSV 친화적이거나 전략적 CSR이 다수여론을 점하거나 최소한 규범적 CSR론과의 경쟁구도를 보이고 있으며 경제책임 우선론은 소수여론으로 굳어가는 상황이다.

 

CSR 규율방법론 논쟁: 정부규제론(regulation) 대소비자 행동론(ethical consumerism)

 

기업들의 CSR 활동을 강제하는 규율방법에 대한 논의도 각국의 CSR 인식유형을 구별 짓는 중요한 잣대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정부가 법과 제도를 통해 강제하는 정부규제론이 제기되기도 하며 CSR 본연의 취지에 맞게 기업 스스로의 자발적 노력을 강조하는 주장도 나온다. 자발적인 CSR을 강조하는 입장은 CSR을 잘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좋은 평판을 쌓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그로 인해 시장에서 도태되는 시장논리가 작동될 때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가 기업의 CSR 활동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 따라 해당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소비 여부를 결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비활동에 영향을 미치려는 활동 일체를 윤리적 소비행동(ethical consumerism)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시장에서 CSR을 잘하는 기업과 못하는 기업에 대한 상벌이 가능해지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 임하게 될 것이다.

 

정부 규제를 통한 CSR 추진에 대한 지지는 나이지리아(76%), 중국(71%), 가나(70%), 인도네시아(69%), 케냐(67%), 페루(64%), 칠레(63%) 등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의 신흥 개발도상국에서 매우 높았다. 이들 국가에서는 기업에 대한 신뢰도 높았다는 점에서 기업과 정부의 역할을 배타적으로 보는 것 같지 않다. 반대로 경제 선진국들 내부에서는 정부 규제에 대한 다양한 인식편차가 존재한다. CSR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 규제에 대해 영국(54%), 미국(45%), 독일(40%), 스페인(39%) 등 시장경제가 정착된 서구 선진국에서는 CSR을 정부가 규제하는 것에 대한 동의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같은 OECD 가입국가라도 한국(84%), 터키(67%), 호주(65%), 캐나다(57%) 등에서는 정부 규제에 대한 찬성여론이 매우 높았다.

 

사회윤리적 기준에 따른 소비자 행동을 그 회사에 대한 제품구매나 긍정적 평가와 같은 긍정적 소비행동(positive behavior)과 제품불매나 부정적 평가 같은 부정적인 소비행동(negative behavior)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각각에 대해 실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을 기준으로 평균을 내보면 호주 49%, 미국 44%, 캐나다 43%, 영국 42%로 주요 영미형 국가군에서 높은 응답이 나왔고, 그리스 36%, 프랑스 35%, 나이지리아 35%, 한국 32%순이었다. 반면 케냐(24%), 가나(19%) 등의 아프리카 개도국이나 인도(16%), 러시아(14%), 중국(14%), 인도네시아(7%) 등 아시아 신흥경제대국들이나 브라질(9%), 멕시코(9%), 칠레(6%) 등의 중하위권 국가들에서는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행동은 매우 저조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경제가 급성장하고 기업에 대한 신뢰도도 높은 이들 신흥개발도상국에서 정부 규제에 대한 지지여론이 높은 것은 반대로 소비자들 스스로의 윤리적 소비행동을 통한 시장규율 문화가 거의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4. 종합 제언: 표준화에서 다변화로

 

이상으로 글로브스캔·동아시아연구원·사회적기업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RADAR2013> 국제조사 주요 결과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CSR 인식유형을 살펴봤다. 이 결과는 해외 진출 과정에서 CSR 전략을 고민하는 기업들에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첫째, 경제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과 현재의 경제발전 수준은 떨어지지만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개발도상국 중심으로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게 나타났다. 반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위치한 중견 국가들에서는 오히려 기업에 대한 신뢰기반이 취약한 U자형 분포를 보여줬다. 이들 국가에서는 기업의 CSR 활동을 통한 단기효과보다 진정성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장기 플랜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경제 활력이 왕성한 후발 개도국보다 선진국에 진출하는 기업들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다. 선진국에서 자국 기업보다 외국 기업에 대한 불신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점이다.

 

둘째, 경제적, 법적 책임을 강조하는경제책임 우선론대 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사회책임 우선론의 대결구도는 주로 후발 개발도상국에서 발견되고 있다. 반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이미경제책임 우선론을 지지하는 여론은 소수여론으로 전락했고규범적 CSR(사회책임 우선론)’ 대 사회적 책임과 경제적 책임의 통합을 강조하는 ‘CSV 친화적인 CSR’ 인식 간 논쟁구도로 바뀌었다. 개도국에서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한 반면 서구 선진국 진출 시에는 실제 이윤창출이라는 경제적 가치 창출과정이 사회적 가치 창출로 연계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사회적 책임만을 규범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위선적인 태도로 인식될 수 있다.

 

셋째, CSR 추진 접근법 중 하나인 정부규제에 대해서는 경제발전 수준과 해당 국가의 경제유형에 따라 큰 편차를 보여줬다.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기업에 대한 높은 신뢰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의한 CSR 규제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인 반면 OECD 선진국 중에서 미국, 영국 등의 시장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들에서는 정부에 의한 CSR 규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대체로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행동이 활발하게 성숙한 국가들에서는 시장규율을, 소비자행동의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개도국 나라들에 진출할 경우 에는 정부 규제에 대한 선호가 강했다. 개도국에서는 사회책임 전략 수립 시 해당 국가 정부와 법적 제도적 차원의 규제 요인에 대해 세심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호주나 한국의 경우 강한 정부규제에 대한 지지가 높고 윤리적 소비행동이라는 시장의 압력도 만만치 않다. 반대로 독일과 러시아, 스페인처럼 정부 규제에도 부정적이고 윤리적 소비행동도 활성화되지 않은 나라 유형도 있다.

 

그동안 해외 진출 기업들의 초기 대응은 주로 CSR 관련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현지 투자 및 생산전략을 수립하는 데 맞춰져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현지 특성에 맞는 CSR 프로그램의 고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표준화가 전제하는 CSR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나라별 CSR 환경이 특정 방향으로 수렴되기보다는 다양한 유형이 공존하고 경쟁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바라보는 정서, CSR의 우선순위와 규제방식에 대한 인식이 다양하게 유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표준에 맞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해당 국가 현지 여론이 중시하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부합하는 CSR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추진해나가는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사무국장 hwjeong@eai.or.kr

필자는 고려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제 연구기관 조사에서 높은 순위에 매년 랭크되고 있는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외교안보센터 부소장을 거쳐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으로 오랜 기간 재직했다. 현재는 연구원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여론의 동향을 정확하게 조사·진단하고 정치, 경제, 사회적 어젠다를 개발함으로써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2012년 여름, 이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연말 대선에서 50대가 보여줄 결집현상을 미리 예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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