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Interview: 김진우 연세대 교수

“걸작 감상의 느낌을 소비자가 체험케 하라”

최한나 | 144호 (2014년 1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김문경(건국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품질 만능주의가 대세였다. 좀 투박해도, 다소 거칠어도 품질이 좋고 기능이 우수하면 기업도 소비자도 그러려니 했다. 시대가 변했다. 감성이 떠올랐다. 이제는 오히려 품질이나 기능이 좀 떨어져도 디자인이 매력적이거나 독특한 매력을 지닌 제품들이 이목을 끈다.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고 고유한 경험을 만들어내는 일은 기업에 무시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감성에 주목하고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출발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들에 오랫동안 소비자 경험을 연구하고 관찰해 온 김진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예술작품을 접하며 느끼는 이상적인 경험을 목표로 삼고 소비자 경험을 구성하는 감성 및 다른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꼼꼼히 분석하라고 조언한다. 김진우 교수를 만나 감성의 특징과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을 들었다.

 

최근 기업이 전략을 짜거나 실행에 옮길 때 감성이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고 있다.

 

감성은 사실 사람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접하면서 받게 되는 경험의 한 부분이다. 소비자 경험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다. 그런데 과거에는 워낙 감성적인 부분이 다뤄지지 않았고 최근에서야 중요하게 떠오르다보니 감성이 소비자 경험의 전부인 것처럼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지난 5∼10년 사이에는품질은 이제 됐고 감성만 충족시키면 된다는 식의 주장도 들린다. 지나친 착각이다. 사람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모든 아웃풋(output)을 경험이라고 할 때 그것은 여러 종류의 실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는 실타래와 같다. 감성은 그중 하나의 실일 뿐이다. 그것만 뽑아내서이것이 제일 중요하니까 이것만 충족되면 이 제품은 모든 사람에게 어필할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감성 그 자체를 잘 파악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 경험을 구성하는 다른 요인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강조되고 어떤 점이 소멸하는지 등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이 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성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감성이 기존에 별로 다뤄지지 않았던 분야로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감성을 잘 활용하려면 감성이 무엇인지, 어떤 특징을 지니는지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감성을 파악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가장 헷갈리는 요소가 미적 인상이다. 감성과 미적 인상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 핸드폰을 보고멋있다라고 생각했다면 이때 멋있다는 속성은 핸드폰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적 인상이다. 반면 감성이라는 것은 내가 이 핸드폰을 보고서 기쁘거나 즐겁거나 흥미진진하거나 흥분되는 등 내 안에서 감정적으로 뭔가 변화가 있을 때 나오는 단어다. 상대방을 보고 호감이 간다든지, 날씨가 꾸물꾸물하니 어디 가서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면 좋겠다고 느낀다든지, 소위 말하는 정취나 무드도 감성이다. 일반적으로 감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얘기되는 감성에서는 미적 인상만 다룰 때가 많다. 이것을 먼저 구별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감성을 중요하게 다룬다고 할 때 두 가지에 초점을 둬야 하는데 첫째는 감성이 전체 소비자 경험의 일부이며 다른 요인들과 상호 작용을 통해 제3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이고 둘째는 감성이 미적 인상과 구별되는 별개의 특징이라는 점이다. 감성과 상호 작용하는 요인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품질이다. 일반적으로 품질은 감성과 상충 관계에 있는 것으로, 즉 품질이 좋으면 감성이 떨어지고 감성을 강조하면 품질이 저하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다. 2000년대 이후 학계에서도 디자인과 사용성이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개념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감성은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감성이 가지고 있는 아주 좋은 특징 중 하나는 반응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기능이나 유용성, 품질은 일정기간 두고 사용해봐야 이게 정말 좋은지 나쁜지, 좋다면 어느 정도 좋고 나쁘다면 무엇이 얼마나 나쁜지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미적 인상이나 감성은 대상을 접하면 바로 얻어지는 즉시성을 지닌다. 호불호가 금세 판명되며 반응을 즉각 얻을 수 있다. 다른 특징으로는 감성이 가진 효과가 매우 강력하다는 점이 있다. 우리가 어떤 인상을 받고, 예쁘다고 느꼈다면예쁘다는 인상을 받는 순간에 받는 충격의 규모가 매우 크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요소가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효과가 상당하다. 하지만 그 효과가 오래 가지 않는다는 특징도 있다. 지속성이 약하다는 의미다. 외부에서 어떤 자극을 받고 그로 인해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을 때 그 강도가 매우 크고 순식간에 효과가 나타나지만 금방 사라진다. 감성적 또는 정서적으로 발생한 어떤 효과는 다른 것으로 금세 대체된다. 품질이나 기능과는 굉장히 차별되는 특징이며 소비자의 감성을 유발하려는 기업에는 단점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감성 품질을 이야기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될 콘셉트가 바로감성적 충실성(Emotional Fidelity)’이다.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느끼는 정서가 일관되게 지속되도록 해야, 즉 감성적으로 충성도가 높아야 해당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유지할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은 감성 그 자체의 강도나 방향보다는 제품이나 서비스와 어울리는 감성을 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떤 기능에 대해 좋다 또는 나쁘다고 평가할 때, 이는 단방향이다.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감성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긍정적인 감성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감성이라고 해서 항상 나쁜 것도 아니다. 감성의 강도를 키우거나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내는가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콘셉트와 얼마나 맞아떨어지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제품에는 은근하면서 긍정적인 감성이 도움이 되고, 어떤 서비스에는 강하게 부정적인 감성이 좋다. 품질이나 기능적인 면에서는 최대한의 가치(maximum value)를 이끌어내는 것이 좋지만 감성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합한 방향과 강도로 발생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아주 강한 감성인데 제품 콘셉트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낭패다. 무조건 긍정적이거나 강렬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합한 강도와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 역시 품질이나 기능과 구별되는 감성의 특징이다. 이 같은 감성적 충실성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분야가 감성 품질, 감성 과학이다.

 

감성적 충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기업이 실수하기 쉬운 점 중 하나가 바로 이 단계에서 발생한다. 감성 또는 미적 인상, 디자인 등을 중요시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유명 디자이너를 채용한다든가, 아름다운 디자인에 집착해서 다른 요인들을 배제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디자인만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가기 쉽기 때문이다. 감성적 충실성을 얻으려면 기준점을 잘 세워야 한다. 이것은 굉장히 개념적인 얘기다. 이를테면 디자인이 손끝에 있느냐, 눈 끝에 있느냐, 마음속에 있느냐와 같은 얘기다. 결론적으로 말해 디자인은 손끝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학원에 가서 6개월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어떤 물건을 볼 때, 저것 참 괜찮다고 느끼는 눈 끝의 경험과 노하우를 쌓게 되고 조금 더 발전하면 마음속에서저것은 이러이러한 콘셉트구나하고 생각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수준이 된다. 감성적 충실성이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전하고 싶은 경험이나 콘셉트를 명확하게 잡고 그것을 기준점 삼아 출발하는 것이다. 거기서 시작해서 좀 더 디테일한 부분으로 끌고 가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 단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선 사람들이 원하는 경험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원하고 그 경험을 통해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느낌을 받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현재 처한 일상, 원하는 이상, 그리고 이것이 제품이나 서비스와 연결되는 지점을 정교하게 분석해야 한다.

 

다음은 품질이다. 거의 모든 제품에서 기술 발달의 정도는 경험의 질에 크게 영향을 준다.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새로운 방식의 경험이나 한층 질 높은 경험이 가능해진다.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기술이 발달해서 부품이 작아진 덕분에 더 얇고 가벼운 핸드폰이 가능해지지 않았나.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도록 기술적 리더십을 갖추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세 번째는 개념의 전환이다. QC(Quality Control) VOC(Voice of Control)가 최근 굉장히 강조되고 있다.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자칫 기업의 시각을 근시안적으로 만들 수 있다. QC VOC는 현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어떤 것부터 바꿔야 하느냐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가 대표적인 예다. 삼성은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에 전략의 초점을 두면서 갤럭시 노트로 창출되는 고유의 경험보다 펌웨어 업그레이드에서 비롯되는 이슈들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만들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베타테스트(beta test)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기계는 옛날 버전이지만 업그레이드했으니 최신형처럼 구동될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을 품었고 기대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면서 실망했다. 삼성의 임직원들은 업그레이드에 집중하느라고 월화수목금금금 일했고 다른 더 중요한 이슈들에 힘을 쓰지 못했다.

 

이런 이슈에 효과적인 대안은 사람들의 경험을 평가하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경험 프로토타입(Experience Prototype)을 만드는 과정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기계의 성능이나 기능이 아닌, 기계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테스트하는 과정을 상시화하고 그 결과를 기업 운영에 적극 반영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는 단순히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경험을 파는 회사다. 경험에 초점을 두고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애플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굉장히 엄청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기업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근본적인 일은 현재 무엇을 팔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정의하는 일이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사실은경험을 팔고 있는 회사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경험을 파는 회사라면 소비자 경험에 맞춰 콘셉트를 잡고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오늘날 기업의 경쟁력은 경험을 개념화(conceptualization)할 수 있는 능력,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이해, 구상한 경험을 테스트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감성 자체에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타깃 고객의 전체적인 경험이 어떤 요소들로 구성돼 있는지 먼저 파악하고 그런 요소들이 다른 경험 요소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그래픽 디자이너 몇 명 더 채용한다고 감성 품질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상적인 소비자 경험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처음에는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싶은 경험을 목표로 삼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예컨대 최근 소나타 광고를 보면 차 문을 열고 빗소리를 듣는 모습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서울에서는 그런 경험을 하기 힘들다. 도시 한복판에 차를 세워둘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을 것이고 비 오는데 차 문 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만한 정신적 여유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제공하면서 이 차를 타면 여유를 갖고 자연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으며 이 차는 그런 시간에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는 현대차에서 소나타를 타는 사람들에게 어떤 소비 경험을 제공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시작해서 경험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사람의 경험은 정말 복잡해서 단순히 몇 가지 요소만으로 결정되지도 않고 덧셈뺄셈처럼 계산하기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어느 음식점을 방문했을 때 기분 좋은 식사였다고 느끼려면 음식 맛만 좋아도 안 되고, 음악만 마음에 들어도 안 되고, 직원 서비스가 좋았다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여러 요소가 고루 평균 이상 점수를 받되 그중 일부 요소가 인상 깊게 남아야 비로소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고 판단한다. 기업에서 구상하고 실행해야 할 소비 경험도 이와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미적 또는 예술적 경험을 목표로 해야 한다. 사람이 가장 인상 깊게 받아들이는 경험이 바로 미적 또는 예술적 경험이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었을 때,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바로 눈앞에서 실물로 접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드는 경이로운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최상의 감성이다. 이렇게 궁극의 예술 작품을 접하며 황홀함을 느낄 때 이를 진정한 경험(real experience)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경험할 때 가장 기분 좋다고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경험을 기획할 때 예술 작품을 접하며 느끼는 경험과 동일한 경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타깃 고객들에게 진정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김진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김진우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 UCLA에서 경영학 석사를, 카네기멜론대에서 이학 석사를 받았다. 이어 카네키멜론대에서 HCI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94년부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를 지내며 현재 연세대 학술정보원장과 한국HCI협회장을 맡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2015년 열리는 ACM HCI 학회의 공동조직위원장이기도 하다. HCI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혁신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Experience Innovation 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