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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종합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할 사내기업가 공조 이끌어낼 베테랑이어야 한다

이방실 | 141호 (2013년 11월 Issue 2)

 

 

흔히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란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벤처기업 창업을 떠올린다. 기업가(entrepreneur)라는 단어도 대개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조스 등 천재적이고 비범한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이런 생각은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대단히 편협한 관점이다. 기업가정신은 규모나 유형에 상관없이 어떤 조직에서나 발현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정신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기업가정신 분야 석학인 하워드 스티븐슨은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원이나 역량에 구애되지 않고 혁신과 변화에 필요한 자원을 결집해 기회를 포착하고 추구해 나가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단지 벤처 창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규모에 상관없이 어떤 기업에나 적용될 수 있고, 심지어 정부 같은 비영리조직에도 적용 가능한 개념이다. 이 중 사내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은 기성 기업 안에서 벌어지는 기업가적 행동을 가리키는 용어다. 사내 기업가정신과 관련된 개념 정의에 대해 방대한 문헌 연구를 수행했던 Sharma & Chrisman(1999)은 사내 기업가정신을기존 기업에 소속된 개인이나 소집단이 기존 기업 내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거나 조직 전체를 쇄신하고 혁신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프로세스라고 정의했다.

 

창업 기업가 vs. 사내 기업가

 

기업가정신이 조직의 규모에 상관없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업가정신에 대해 일반인들이 막연하게 갖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사내 기업가정신이라는 개념이 선뜻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흔히 기업가정신, 기업가라는 단어 뒤에는위험 감수’ ‘도전정신등과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탓이다.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고 일하는 샐러리맨들이 과연 새로운 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려고 할까? 그렇게 의욕이 넘쳐 난다면 진작에 대기업에서 뛰쳐나와 본인이 창업을 하지 왜 회사에 남아 있으려고 할까? 설령 대기업에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조직원들이 있다고 한들, 과연 조직에서 이들을진심으로반길까? 가능한 위험을 최소화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하는 게 중요한 대기업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조직원들은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업 기업가(start-up entrepreneur)와 사내 기업가(corporate entrepreneur)의 차이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Morris et al(2011)은 창업 기업가와 사내 기업가의 차이는 위기와 보상 측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창업 기업가는 재무, 기업 운영, 법적 책임 등 회사를 경영하는 데 있어 모든 리스크를 기업가 본인이 감수하는 대신 위험에 따른 보상이 크다.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백만장자가 될 수도 있다. 신생 벤처의 경우 창업자가 대부분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다 월급뿐 아니라 배당금, 특허사용료 등 수입원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내 기업가는 모험적인 아이디어를 사내에서 실행하다 실패할 경우 감봉, 승진상 불이익, 심한 경우 면직이나 해고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창업 기업가처럼 모든 손실 책임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떠안아야 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성공에 대한 보상의 한계도 명확하다. 승진이나 급여 인상, 포상금 정도가 거의 전부로 자신의 혁신적 아이디어 성과 대부분은 회사로 귀속된다.

 

창업 기업가는 사내 기업가보다 외부 환경 변화에 특히 취약하다는 점도 다르다. 규제의 변화, 경기 불황 등 외부 환경 변화에 좌우되는 건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신생 기업의 경우 여파가 훨씬 크다. 재무 안정성은 물론 영업망, R&D, 생산시설, 물류체계 등 전반적인 사업 인프라 측면에서 기성 기업에 비해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신생 벤처의 경우 단 한 사람의 실책, 단 한 번의 실수로도 회사가 존폐 기로에 처할 확률이 높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반면, 사내 기업가는 변화와 혁신에 대한 조직 내 저항, 혹은 무관심이라는내부의 적과 싸워야 한다. 규모가 커질수록 기업에는 위계질서가 생겨나고 조직 내 이해관계도 점점 복잡다단해진다. 이는 곧 무슨 일을 진행하든 여러 단계에 걸쳐 승인이 필요하며 싫든 좋든 다른 부서와 협력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성 조직에는 언제나 변화를 싫어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사내 기업가는 조직 전반에 걸쳐 도전 정신이 충만한 신생 벤처 기업에서라면 발생하지 않을 조직 내부 갈등 상황에 처해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사내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이유

 

회사가 성장할수록 기업은 최대한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조직 구조와 업무 프로세스, 문화를 발전시켜 나간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행정관리상 필요한 일련의 규칙이 시행되며 중간 관리감독을 위한 위계질서가 자리를 잡게 된다. 업무는 정해진 계획에 따라 수행되고 표준화된 프로세스에 따라 조정 활동이 이뤄진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기업 성장을 위한 핵심 사업의 효율화를 위해 당연히 필요한 일들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관료주의가 자리잡게 되고, 그 결과 기업가적 열정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애초에 기업을 번창케 했던 기업가정신이 회사가 성장하게 되면서 되레 침체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 기업의 자연스런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이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모순이다. 이런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이 바로 사내 기업가정신이다.

 

Burgelman(1983)은 기업의 전략 수립 프로세스와 연관 지어 사내 기업가정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설명한 바 있다. , 기업에서 전략을 수립하는 프로세스는 크게 유도된 전략(induced strategy)과 자율적 전략(autonomous strategy)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그림 1> 하단은 유도된 전략 프로세스가 이뤄지는 과정을 나타낸다. , 기업 전략 개념(concept of corporate strategy)에 의해 유도된 전략적 행동(induced strategic behavior)이 구조적 맥락(structural context, 조직구조, 계획 및 통제 시스템, 자원 배분 규칙, 성과측정 및 보상시스템 등)을 통해 강화돼 나간다. 반면 <그림 1> 상단의 자율적 전략 프로세스는 회사의 전략 개념과 무관하게 자율적인 행동을 하는 개인, 이른바 사내 기업가의 존재를 보여준다. 이들은 자원과 역량을 새롭게 조합하는 자율적인 전략적 행동(autonomous strategic behavior)을 통해 기존 핵심사업과는 다른 신규 사업을 창출해낸다. 이러한 자율적인 전략 프로젝트는 구조적 맥락과는 전혀 다른 전략적 맥락(strategic context)에 의해 평가되고 선택돼 기업의 전략으로 연결된다.

 

버겔만 교수는 규모가 큰 다각화 기업의 생존에 필수 요소인 다양성(diversity)은 바로 이 두 가지 전략 수립 프로세스 가운데 상단 루프(사내 기업가정신), 즉 기업가적 활동(entrepreneurial avitivites)을 통해 구현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프로세스(유도된 전략 vs. 자율적 전략) 간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전략 경영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유도된 전략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질서(order)와 자율적 전략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다양성(diversity)이 양자간 균형을 이룰 때 규모가 큰 다각화 기업이 지속적 성장을 구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내 기업가정신이 기업의 유기적 성장이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모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답이 되는 이유다.

 

 

 

1) 생태계형(Ecosystem Venturing)기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공급업체, 물류업체, 보완재 생산업체 등 관련 생태계 구성 기업들에 투자하는 형태다. 인텔캐피털이 대표적 예다. 생태계 유형은 기존 사업의 성공이 보완 사업과 관련된 공동체의 활성화에 달려 있고,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업들이 일반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 지원 수혜를 받지 못할 정도로 매우 초기 단계일 때 특히 유용하다. 이 유형을 택할 경우, 지나치게 다양한 곳에 투자하거나 지나친 자율성을 추구할 위험에 빠지기 쉽다.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투자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하며 재무적 수익과 전략적 이점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2) 혁신형(Innovation Venturing) R&D처럼 전통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벤처캐피털 기법을 활용하는 경우다. , 조직 내 별도의 부서를 만든 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조직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며, 여러 프로젝트에 투자해 위험을 분산하고, 프로제트 추진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각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는 식이다. 로열더치셸의게임체인저(Game Changer)’ 프로그램을 예로 꼽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현실화하기 쉽진 않지만 성공할 경우 셸의 사업에 막대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이다. 게임체인저팀은 선택된 아이디어에 대해 실제 사업화를 위해 필요한 기술 예산의 10%를 지원한다. 혁신형 모델은 잠재적으로 기업 안에 기업가적 에너지는 존재하지만 혁신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기존 기능부서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될 때 적용해 볼 수 있는 유형이다.

 

3) 추수형(Harvest Venturing)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채 남아도는 여분의 자원을 상업화해 궁극적으로 (매각이나 라이선싱 등을 통해) 현금을 창출하려는 게 주 목적이다. 루슨트(Lucent)가 벨연구소(Bell Labs)에서 나온 기술 및 지식재산 가운데 당장 사업부에서 활용되고 있지 않은 미활용 자산을 상업화해 가치를 창출할 목적으로 1997년 세운 NVG(New Ventures Group, 2001년 영국계 사모펀드에 매각)를 추수형 모델로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추수할 거리, 즉 기술, 지식재산, 고정자산 등 미활용 자산이 있을 때 적용 가능하다.

 

4) 사모투자형(Private Equity Venturing)독립적인 벤처캐피털처럼 신생 기업에 투자하는 유형이다. 투자의 가장 큰 목적은 재무적 이득이다. 기존 사업부서의 역량을 강화한다거나 새로운 성장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목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GE에쿼티가 대표적 예다. 이 유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 업체를 발굴하고 선별해 내는 데 있어서 전문적인 사모투자 회사나 벤처캐피털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 있는 능력과 네트워크가 필수다.

 

※ 참고: Campbell et al(2003)

 

 

 

1) 지속적 쇄신(sustained regeneration)정기적, 지속적으로 신제품과 서비스를 도입하고 신시장에 진출하는 기업 활동을 뜻한다. 대부분의 지속적 쇄신활동은 제품 확장이나 인접 시장으로의 진출을 통해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s)으로 이어지며 때때로 신사업 창출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원래 베이킹소다 전문 업체였던 암앤해머(Arm & Hammer) 1970년대 들어 치약 및 각종 탈취제 등으로 용도를 확장해 신제품을 개발한 사례를 꼽을 수 있다.

2) 조직 재활성화(organizational rejuvenation)조직 내부의 프로세스와 구조, 역량을 변화시킴으로써 기업의 경쟁적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개선해 나가는 활동이다. 종종 기업의 가치사슬이 변화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조직 재활성화를 통해 전략적 기업가정신을 실현한 사례로는 SRC(Springfield Remanufacturing Corporation)를 꼽을 수 있다. 트럭 엔진 개조 회사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던 이 회사는 1982년 직원들이 모기업으로부터 엔진 재생 공장을 인수한 후 재무정보를 포함한 핵심 경영 정보를 직원들과 공유하고 직무 설계와 프로세스 혁신, 이사 선출 등 핵심 경영 사항에 대해 종업원들을 적극 참여시키는열린 경영(open-book management)’을 통해 고성과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 회사의 모든 것을 직원과 공유하는 경영 관행을 통해 직원들의 열정과 창의성을 이끌어냄으로써 기업 내부의 구조와 문화, 프로세스 등 기업 조직 전반을 새롭게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3) 전략적 개혁(strategic renewal)기업의 경쟁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시장 혹은 경쟁기업들과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활동을 뜻한다. Kim and Mauborgne(1997)이 주창한 가치 혁신(value innovation)과 유사한 개념으로 기존에 경쟁하던 환경에서 근본적인 전환(repositioning)을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해 나간다. 프랑스의 염가 호텔 체인 포물원(Formule 1)은 저가 호텔 체인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인테리어나 라운지, 식당 시설 등에 대한 투자는 대폭 줄이는 대신 고객들이 중시하는 서비스 요소인 침대의 질, 청결 상태, 방음 등에 투자를 집중하는 전략을 통해 가치 혁신을 일궈냈다.

 

4) 사업 영역 재정의(domain redefinition)과거에는 인식되지 못했던 시장을 기업이 주도적으로 개척해내는 활동으로, 이를 통해 기업은 이른바블루오션으로 진입할 수 있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서커스 산업에 극적 요소를 결합시킴으로써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사업 영역을 재정의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영역 재정의는 기업의 현재 경쟁을 의미 없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며 신사업 창출로 이어지게 된다.

 

5) 사업모델 재구축(business model reconstruction)기업의 운용 효율을 높이기 위해, 또는 차별화를 추구하기 위해 핵심 사업 모델을 새롭게 정의하는 활동이다. 대표적 사례로 델컴퓨터와 이베이를 꼽을 수 있다. 델은 1990년대 직접 판매라는 차별화된 사업 모델을 제시했고, 이베이는 온라인 경매를 통해 아예 새로운 산업 영역을 구축해 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 참고: Covin and Miles(1999), Morris et al(2011)

 

사내 기업가정신의 영역

 

Guth and Ginsberg(1990)는 사내 기업가정신을 크게 1)내부 혁신 혹은 벤처링(internal innovation or venturing, 조직 내 신사업 창출) 2)전략적 개혁(strategic renewal, 핵심 아이디어의 개선을 통해 조직 내 변혁을 불러일으키는 일련의 활동)의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하며 사내 기업가정신을 기업의 전략 경영 틀 속에 통합시키는 분석틀을 제시했다. (그림 2) 이런 사내 기업가정신은 1)외부 환경 2)전략적 리더십 3)조직 행동/형태 4)조직 성과 등 네 가지 요인에 의해 각각의 조직에서 발현되는 정도나 방식이 달라진다. 특히 이들은 사내 기업가정신과 관련된 기존 연구들이 주로 코포리트 벤처링(corporate venturing), 즉 기성 기업 안에서 이뤄지는 신사업 개발에만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며 자원의 새로운 조합을 통해 새로운 부를 창출해내는 전략적 개혁 활동과 관련된 연구에 많은 관심이 기울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Covin & Miles(1999)는 전체 조직 안에서 드러나는 기업가적 경영 관행 등의 측면에서 사내 기업가정신을 집중 조명했다. 이들은경쟁 우위 창출 및 유지를 위해 조직을 활성화시키고 시장과 산업을 의도적으로 재정의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서 혁신을 활용하는 것을 사내 기업가정신의 핵심으로 봤다. 이에 따라 크게 1)지속적 쇄신(sustained regeneration) 2)조직 재활성화(organizational rejuvenation) 3)전략적 개혁(strategic renewal) 4)사업 영역 재정의(domain redefinition) 4가지 형태로 사내 기업가정신이 발현된다고 설명했다. Morris et al(2011)의 경우 Covin & Miles(1999) 4가지 사내 기업가정신 형태에 사업모델 재구축(business model reconstruction)을 추가한 후 이들 5가지를 통틀어 전략적 기업가정신(strategic entrepreneurship)이라고 명명했다.1  (Mini Box 1, 2 참조.)

 

이 외에도 여러 학자들이 사내 기업가정신의 영역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제시했다. 대부분의 분석에서 공통된 메시지는 사내 기업가정신이란 기존 사업과 구분되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이를 실제 사업으로 키워 시장에 선보이며 지속적으로 신규 사업을 관리해나가는 전반적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자율성이 보장되는 기업 문화, 유연한 조직 구조, 적절한 보상 체계 등 조직의 전략과 경영 구조 및 업무 관행에서의 전반적 변화와 혁신을 필요로 한다. 신사업을 개발한다는 건 단순한 아이디어 생산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다. 조직원들이 아무리 참신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는다고 한들 복잡한 의사결정구조를 거치며 아이디어가 사장되거나 조직 내 저항에 부딪혀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전되지 않는 일이 반복된다면 사내 기업가정신의 발현은 요원하다.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정신(원제: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에서 맥도날드를 창업한 레이 크록의 경우 엄청난 상상력과 추진력을 갖고 있던 혁신적 인물이었지만 기업가적 책임을 스스로 떠안고 조직 내에 구체적인 정책과 관행으로 심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후 회사가 진부해졌고 과거지향적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P&G는 회사의 조직구조 내부에 기업가적 경영관리 관행을 확립해놓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나 경제 상황의 변화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기업가적 리더로서 업계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P&G는 개방형 혁신 프로그램인 C&D(Connect & Develop)를 통해 혁신의 원동력을 외부에서도 적극 구하고 있고, 이를 통해 ‘PFE(Proudly Found Elsewhere)’2 라는 독특한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사내 기업가정신은 비범하고 혁신적인 일개 개인의 차원에서 확립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창업 기업가정신과 명확하게 구별된다. 기업가정신을 북돋워주기 위한 일련의 경영관리 정책 및 관행을 통해 조직 차원의 학습 프로세스로 내재화시킬 때 성공적으로 사내 기업가정신이 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내 기업가정신의 4가지 모델

 

기성 기업이 사내 기업가정신을 추진하는 활동과 관련해 Wolcott and Lippitz(2007)는 크게 4가지 모델로 유형화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사내 기업가정신 모델은 신규 사업 발굴을 담당하는 조직 유형(organizational ownership)과 신사업 추진을 위해 필요한 자원 배분 권한(resource authority)에 따라 1)기회주의자(The Opportunist) 2)조력자(The Enabler) 3)옹호자(The Advocate) 4)생산자(The Producer) 4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들이 제시한 각각의 모형 특성 및 주요 사례에 대해 소개한다. (그림 3)

 

 

1) 기회주의자(The Opportunist)

 

별도의 전담 조직 없이 신규 사업 발굴 기능이 여러 부서에 분산(diffused)돼 있으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ad hoc) 자원 조달이 이뤄지는 경우다.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반응해 시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기회를 포착하는 형태라 할 수 있다.대부분 기업에서 사내 기업가정신을 개발한다고 할 때 가장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사업을 추진할 독립 부서를 만들 필요도 없고 재원 조달도 상황에 맞춰 지원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최초로 시도하는 사내 기업가정신 모델로 기회주의자형을 채택하는 이유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기회주의자 모델은 장기적 관점에서 그다지 믿을 만한 모델은 아니다. 신규 사업이 커지다 보면 전담 부서 없이 혁신 활동을 관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순간이 분명 찾아온다. 기업들이 진화해 나갈수록 기회주의자 모델을 넘어 다른 유형의 사내 기업가정신 모델을 모색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회주의자형 사내 기업가정신 모델을 채택해 성공한 대표적 기업 사례로는 짐머(Zimmer)를 꼽을 수 있다. 관절 재건술과 척추 고정, 골절 등 정형외과 치료에 필요한 각종 치료재료 및 관련 수술도구 생산업체인 짐머는짐머 연구 프로그램(Zimmer Institute)’을 통해 의사들에게 관절 치환 및 재건과 관련한 최소침습수술(MIS) 기법 트레이닝을 시킨다. 치료재료 생산업체에서 수술기법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이유는 짐머가 개발한 인공관절과 수술도구를 가지고 훈련을 받은 의사들이 추후 실제 수술을 할 때 짐머의 제품을 쓰도록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사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20여 개 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짐머가 전 세계적으로 인공 관절 분야의 최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된 데에는 이 프로그램의 공이 컸다.

 

주목할 만한 점은 Zimmer Institute가 특정 부서 주도로 개발된 게 아니라 의료장비 파트의 한 중간관리자와 그의 고객이었던 외과의사의 실험적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말, 중증외과 전문의 다나 미어스(Dana Mears)는 평소 친분이 있던 짐머의 케빈 그렉(Kevin Gregg)과 허물없이 이야기하며 고관절 치환 관련 MIS 기법 개발 가능성을 타진했다.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다 드디어 임상 실험 단계에 도달하자 짐머 최고경영진의 재정 지원을 받아 후속 연구를 수행했다. MIS를 통해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예후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들보다 훨씬 좋은데다 전체 수술 비용까지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짐머는 MIS 기법을 새로운 사업 기회 창출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Zimmer Institute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별도의 전담 재원이나 조직은 없었지만 시장의 기회를 적시에 포착, 발굴한 데 따른 기회주의적 사내 기업가정신 발현의 대표적 예로 짐머가 꼽히는 이유다.

 

짐머의 사례가 시사하듯 기회주의자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유연하고 개방적인 조직 문화가 먼저 확립돼 있어야 한다. 케빈 그렉이라는 일개 중간관리자가 내놓은 아이디어에 대해 짐머의 최고경영진이 전폭적으로 지지를 했다는 것은 공식적이고 정형화된 제품 개발 프로세스만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와 혁신을 용인하는 유연한 조직 문화가 이미 짐머 안에 갖춰져 있었음을 뜻한다. 혁신적 아이디어의 최초 제공자가 사용자(중증 외과 전문의)였고 개인적 친분을 통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외부의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실험하려는 개방적 자세는 기회주의자 사내 기업가정신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2) 조력자(The Enabler)

 

장기적으로 기회주의자 모델만을 고집해 지속적인 사내 기업가정신을 발현시켜 나가는 기업은 거의 없다. 상시 전담 인력을 배치해 별도의 조직까지 만들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개별 조직원들이 참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자금 부족 탓에 신규 사업으로의 진행이 더뎌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추구하게 된다. 이렇게 기회주의자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모델이 조력자 모델이다. 이 유형의 경우 신규 사업 발굴을 전담하는 조직은 따로 없지만 신사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별도의 전용 재원(dedicated resource)이 마련돼 있다. 특히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사업성이 검증된 이후에 비로소 재정 지원이 이뤄지는 기회주의자 모델과 차이가 있다.조력자 모델에는 한 가지 대전제가 있다. 종업원들에게 충분한 지원과 배려가 가해진다면 종업원들 스스로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려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신규 사업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재원은 바로 조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기회를 추구하게끔 도와주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조력자 모델에 속하는 대표 기업으로는 구글을 꼽을 수 있다. 구글 직원들은 업무 시간의 약 20%를 개인 발명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데 투자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동료들과 팀을 이뤄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한 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구글 제품 심의회(Google Product Council)에 실제 사업화를 위한 재원을 요청할 수 있다. 래리 페이지 등 구글 창업자를 포함한 최고경영진과 기술팀 권위자 등으로 구성된 심의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평가해 본 후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초기 자금 지원과 함께 전반적인 전략적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조력자 모델이 성공하려면 CEO를 포함한 최고경영진의 전폭적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최고경영진의 지원과 관심은 명확한 아이디어 선정 기준과 재원 할당 지침,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 등이 뒷받침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최고경영진에게 유망한 아이디어를 식별해 낼 수 있는 높은 안목이 요구되는 건 물론이다. 최고경영진의 관심과 함께 조력자 모델 성공을 위해 반드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인적자원 관리다. 조력자 모델의 기본 전제가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기만 한다면종업원 스스로 잘 알아서신규 사업을 추진해 갈 것이라고 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신사업에 필요한 재원만 할당해 준다고 혁신 활동이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애초에 기업가적 성향이 풍부한, 그러나 실제 본인이 창업을 하기보다는 대기업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 원하는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구글이 한 사람의 프로그램 매니저를 뽑기 위해 스무 번이 넘는 인터뷰를 실시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업가적 기질이 풍부한 인재를 채용하는 것 못지 않게 이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도록 계속 유지 관리하는 데 힘써야 하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3) 옹호자(The Advocate)

 

신규 사업을 전담하는 조직은 있지만 자체적으로 사업화를 추진하기 위한 재원은 없는 경우다. 옹호자 모델의 핵심은 각 사업부서의 니즈와 시장의 요구에 기반한 접근을 취하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신사업을 추진할 수도 없고 각 사업부서에 사업화를 강요할 수도 없는 만큼 각 사업부서 임원진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옹호자 모델을 통해 사내 기업가정신 활성화에 주력하는 기업으로는 영국계 에너지 기업 BP를 꼽을 수 있다. BP 2001년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부문의 CTO(최고기술책임자)를 주축으로 한 조직인 CTO(the CTO office)을 설치했다. CTO실은 원유 탐사, 채굴, 정유 등 BP 주요 사업 영역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다양한 IT 관련 분야에서 광범위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10여 명의 최정예 인력들로 구성돼 있다. CTO실은 BP 각 사업부서가 직면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신생 기술들을 외부에서 발굴해 이를 해당 부서로 연결해주는 일을 담당한다. 한마디로 외부(기술 생태계)와 내부(BP 사업부서)의 니즈를 연결해 주는 중개자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CTO실은 각 사업부 임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며 신사업 기회 발굴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공급업체, 컨설팅 기관, 벤처캐피털, 학계, 연구기관, 업계 전문 협회, 정부기관, 고객사 등 기술 환경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외부로부터 혁신적인 기술 및 사업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특히 CTO실은 단순히 참신한 기술을 각 사업부서에 알려주는 수준을 넘어, 그러한 기술이 BP 사업에 적용될 경우 어떠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고위 임원진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프레젠테이션 횟수만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블루 초크(Blue Chalk)’라는 소규모 세미나도 주기적으로 개최해 BP의 고위 임원진이 외부의 기술 전문가 및 비즈니스 실사용자 등과 만나 최신 기술 현안에 대해 토론하며 기술 관련 지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

 

CTO실의 예산 규모는 BP가 전사적으로 IT 부서에 쏟아붓는 예산의 0.5%에도 못 미칠 정도로 미미하다. CTO실의 예산은 외부 기업 및 기술에 대한 실사(due diligence), 초기의 개념검증 테스트(proof-of-concept test)를 위해 쓰일 뿐, 실제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 파일럿 테스트 후 CTO실의 분석대로 소기의 결과가 입증되면 각 사업부서에서 전적인 책임하에 신사업을 추진한다. CTO실은 해당 부서가 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줌으로써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생 벤처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방대한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통해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CTO실은 돈만 투자하지 않는다 뿐이지 벤처캐피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CTO실은 설립 이후 IT의 혁신적 응용을 통해 BP에 수십억 달러가 넘는 가치를 창출해 냈다고 한다.

 

옹호자 모델을 통해 사내 기업가정신을 추구하는 기업이 직면하는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장기적으로 판도를 바꿀 만한 아이디어와 당장 가시적인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는 아이디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옹호자 모델을 채택할 경우, 파괴적 혁신을 일으킬 만한 신사업 개발을 하기는 구조적으로 힘들 수 있다. 현재 사업부서의 니즈에 기반한 신사업 아이디어 발굴이 주 목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충분한 예산을 갖추지 못한 신규 사업 전담 부서가 계속 존재 의미를 가지려면 BP CTO실의 사례처럼 사업부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실적을 쌓아가야 한다.

 

4) 생산자(The Producer)

 

상당한 규모의 자체 재원과 함께 신규 사업을 전담하는 부서가 존재하는 경우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개념을 검증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사업을 추진해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신규 사업 전담 부서에서 책임진다.현재 많은 대기업들이 취하는 형태로 파괴적 혁신, 획기적 신규 사업 추진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 다른 사업부서에 걸쳐 있는 역량들을 통합해야만 추진할 수 있는 복잡한 기술 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4가지 모델 중 생산자 모델이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생산자 모델을 통해 사내 기업가정신을 추구하는 대표적 기업으로 시스코가 있다. 시스코가 2004년 설립한 ETG(Emerging Technologies Group)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기회로 바꾸는 인큐베이션 센터라 할 수 있다. 설립과 함께 ETG에 떨어진 임무는 향후 5년에서 7년 안에 10억 달러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해 사업화하는 것이었다. 시스코의 텔레프레젠스(화상회의 시스템)와 스마트그리드 솔루션이 ETG를 통해 탄생한 대표적 신사업이다. 2008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ETG에 책정된 예산 규모는 전체 R&D 지출의 2.8%에 달했다. 보통 신규 사업을 개발한 후 수익이 1000만 달러 정도에 달하면 기존 세일즈 부서로 이관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스코에선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ETG의 판매고가 1∼2억 달러에 이를 때까지도 그대로 둔다. 이를 위해 ETG 자체적으로 세일즈 전담팀까지 구성했다. 이에 따라 설립 당시 불과 10여 명의 인원으로 출발한 ETG 2008년 기준 약 400여 명 규모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ETG는 팀 구성과 평가방식, 심지어 제품 개발 프로세스까지도 시스코의 여느 조직과 달랐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다루기에 앞서 최소 30명의 고객을 만나야 했다. 특히 화상회의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실물과 동일한 색깔과 크기를 구현해 내기 위해 사무실 벽에 칠해진 페인트 색깔이나 가구처럼 과거엔 시스코 기술에 포함된 적이 없었던 요소들까지 점검해야 했고 판지와 스티로폼 블록까지 동원해 각종 실험을 진행했다고 한다.

 

생산자 모델은 수년간에 걸쳐 엄청난 투자를 필요로 한다. 당장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투자가 이뤄져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모델이다. 그만큼 신사업에 대한 초기 방향성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별도의 조직과 예산을 필요로 하는 만큼 한정된 자원을 놓고 기존 사업부서와 경쟁해야 한다는 점도 난제다. 조직 내 유연성이 확립돼 있고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지원과 관심,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기존 사업부서와 협력은커녕 서로 밥그릇 다툼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는 사내 기업가정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늘 발생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별도의 조직과 재원을 갖는 생산자 모델에서 그 강도가 가장 거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생산자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신규 부서를 전담하는 리더가 조직 전반에 걸쳐 신뢰를 쌓고 신규 사업의 의미에 대해 적극 알리며 타 부서와의 조율 및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상당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사내 기업가정신 발현을 위해 위 4가지 중 어느 한 가지 모델만 채택할 필요는 없다. 동일한 기업 안에서도 양상을 달리해 얼마든지 다양한 모델을 채택, 실행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IBM이다. IBM은 루 거스너 회장 당시 조직한 EBO(Emerging Business Opportunities)를 통해 2005년 기준으로 총 25개 신규 사업 중 22개로부터 연간 150억 달러의 신규 매출액을 올렸다. EBO의 경우,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2∼3년 정도 기간이 남아 있는 신사업 아이템을 선택, 조직 내 최고의 인재들이 사업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생산자 모델을 따르고 있다. 동시에 IBM싱크플레이스(Thinkplace)’3  ‘이노베이션 잼(Innovation Jam)’4 같은 제도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고 구성원들 간 네트워킹을 활발하게 조장한다는 측면에서 옹호자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명확한 비전과 목표의 중요성

 

사내 기업가정신의 효과적 발현을 위해서는 각 기업이 처한 상황과 특성, 추구하는 목표에 맞게 적절한 모델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 만약 기업의 목적이 획기적인 기술 개발을 꾀하거나 파괴적 혁신을 추구한다면 생산자 모델이 바람직하다. 사업부서는 대부분 단기 실적 압박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파괴적 혁신이 될 만한 프로젝트를 추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모든 기업에서 파괴적 혁신, 급진적 혁신을 주도할 별도의 조직을 설립할 필요는 없다. 기존 사업부서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게 기업의 최우선 목표라면 옹호자 모델이 적합할 것이다. 조력자 모델의 경우 조직 전반에 걸쳐 협업이 일상화돼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 개진에 대한 제약이 없는 문화가 조성돼 있을 경우에 적합하다.특히 최소한의 비용으로도 새로운 실험을 쉽게 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기업일수록 성공 확률이 높다. 특히 조력자 모델은 조직원들에게혁신 DNA’를 심어줘 조직의 문화를 바꾸기 원하는 기업에서도 채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성급하게 조력자 모델을 채택하기에 앞서 과연 구글처럼 자유롭고 유연한 문화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엄격한 품질 관리나 위기 관리가 중요한 산업 및 기업에서는 자율성을 무분별하게 주기보다는 체계적인 통제하에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 확립이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모델을 채택하든 사내 기업가정신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비전과 전략 안에서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신규 사업을 통해 기대하는 매출액 목표나 영업이익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신규 사업을 통해 기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전체 조직이 정확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20세기 세계적인 화학기업이던 듀폰이 21세기 생명공학, 농산물 종자, 대체에너지 등을 아우르는종합 과학 기업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이유는전통 화학소재를 넘어선다(beyond the molecule)”는 명확한 비전하에 과거와 과감하게 결별하고 신사업을 적극 추진했기 때문이다.

 

1998년 듀폰의 CEO로 취임한 채드 홀리데이는 1990년대 들어 회사의 성장이 점점 둔화돼 매출 증가율이 생산성 증가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1990년대 동안 듀폰의 매출 성장률은 평균 0.6%에 불과했다. 홀리데이를 비롯한 최고경영진은 듀폰이 목표로 하는 연 6% 매출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선 개발된 지 5년 미만 제품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 섬유사업처럼 당장 그룹의 주력 사업이긴 해도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갈수록 낮아지는 기존 사업 대신 신규 사업 투자를 적극 늘려야 한다는 판단이었다.5  갈수록 범용화(commoditized)돼가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기존 시장만 붙들고 있어선 희망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듀폰은 새로운 성장 원천에 대한 방향성을 잡고 신사업 추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맥킨지 및 와튼비즈니스스쿨과 파트너십을 맺고 ‘KIU(Knowledge Intensive University)’라는 리더십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정통한 컨설턴트와 경영석학들은 듀폰 최고경영진에겐 어디에서 신성장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을, 실무 사업부서 책임자들에겐 성장 엔진을 검증하고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을 각각 제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KIU는 듀폰의시장 주도 혁신(Market Driven Innovation)’ 프로그램으로 통합됐다. MDI는 이름 그대로 시장 니즈에 기반한 새로운 기회 발굴을 목표로 하는 사내 기업가정신 활성화 계획(옹호자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상근 직원이 열 명도 안 되는 MDI 팀원들은 각 사업부 리더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아이디어 발굴 타당성 검증, 상업화 등 모든 사업화 단계에 걸쳐 도움을 제공했다. 최고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듀폰의 많은 사업 부문이 자발적으로 MDI팀과 함께 일하며 신성장 기회를 잡는 데 성공했다.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에 사업 규모가 35억 달러에서 55억 달러로 4년 만에 20억 달러가 늘어난 안전 및 보호(Safety and Protection) 사업그룹의 경우, 신규로 창출된 매출액 가운데 4분의 1(5억 달러) MDI 프로그램을 통해 거둬들인 성과였다.

 

듀폰은 지식 집약적 기업으로서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최고경영진의 비전하에 제품 중심(product-centric)에서 고객 중심(customer-centric) 사업 모델로 전환한다는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듀폰은 조직 내변화 주도자(change-agent)’ 역할을 할 수 있는 MDI팀을 구성, 조직 전체에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사내 기업가정신을 활성화시키는 데 있어 명확한 비전과 목표 제시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내 기업가가 사내 정치가가 돼야 하는 이유

 

사내 기업가정신은 단순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고 상업화 과정을 거쳐 구체적인 제품 혹은 서비스의 형태로 판매해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다. 이 과정에서 사내 기업가는 창업 기업가와는 전혀 다른 갈등 상황에 부딪히곤 한다. 바로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는 조직 내 저항과 무관심이다. 성공적인 신사업 추진을 위해선 신사업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사내 구성원들에게 입증하고, 기존 부서와 경쟁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해야 하며, 변화와 혁신에 대한 조직 차원의 저항을 극복해내야 한다. 기성 기업에서 기업가정신이 성공적으로 발현되기 위해 사내 정치 역량이 중요한 이유다.

 

Block and Macmillan(1993)은 기술적으로 매우 잘된 신사업 전략과 계획을 가지고도 신사업의 정치적 필요 사항을 이해하고 예측하지 못해서 정작 실행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력이야말로 아무리 기술적으로 잘 정비된 신사업을 죽일 수도, 혹은 그 성공을 보장할 수도 있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따라서 성공적으로 신사업을 추진하려면 조직 내 다른 이들, 특히 신사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주요 인물들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호감이나 신뢰 등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형성하는 게 도움이 된다. , 비록 뚜렷한 의무 관계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내가 베푼 호의를 상대방이 갚아 줄 것이라는 암묵적 의무 관계를 쌓아두라는 말이다. 영향력이 큰 핵심 인물들과 중요한 정보를 공유한다거나 다른 부서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등의 노력이 한 가지 방법이다. 신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조직 내 아군과 적군이 누구인지를 빨리 파악하고 이들을 활용해 신사업의 주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역량 개발도 필요하다.

 

조직 내 존경과 신망이 두터운 인물을 신사업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느 정도 규모와 수익성을 갖출 수 있도록 키워 궁극적으로는 기존 사업을 대체할 기업의 주력 사업으로까지 성장시키는 게 신사업 추진의 최종 목표다. 하지만 다른 부서의 협조 없이는 신사업을 인큐베이션 단계에서 실제 사업화 단계로 이행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조직 내 여러 기술 융합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사업 부서 간 협조가 절대적이다. 검증된 역량을 바탕으로 다른 부서와의 공조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베테랑에게 신사업 추진의 중책을 맡겨야 하는 이유다. 시스코에 불과 10여 명도 안 되는 인력으로 ETG가 처음 조직됐을 때 ETG의 초대 책임자로 지명된 마틴 드비어(Martin De Beer) 수석부사장은 그 직전에 무려 15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던 사업부서의 수장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이 정도로 신사업 조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선 최고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실제로 드비어 수석부사장도 신생 조직인 ETG를 맡으라는 회사의 명을 받았을 때그냥 나를 해고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고경영진은 그에게 실패해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ETG를 이끌어 달라며 2주 동안 설득했다.또한 드비어 외에 컨설팅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다른 부사장급 임원도 ETG에 투입하는 등 신생 조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처음부터 대단히 혁신적인 결과물을 내놓아 조직 구성원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겠다는 생각도 일찌감치 버리는 게 현명하다. Wolcott and Lippitz(2010)는 당장의 파급 효과는 작아도 상대적으로 단기간 내에 비교적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low-hanging fruits)에 우선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신사업에 대한 조직 내 지지를 얻어 낼 욕심에, 과연 성취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장밋빛 목표를 대대적으로 떠벌리는 행동도 바람직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신사업 개념이 새롭고 혁신적일수록, 또한 기존 사업과 동떨어져 있을수록 조직 내 구성원들에게 타당성과 가치를 인정받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말만 앞서기보다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설득에 나서야 한다. 일단 퀵윈(quick-wins) 과제 중심으로 작은 성과라도 차근차근 만들면서 실질적 결과물을 증거로 삼아 지지를 이끌어내는 편이 현명하다. 처음부터 대대적으로 실적을 홍보하려고 하기보다는 조직 내 영향력이 큰 핵심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물밑 소통을 벌이는 편이 조직 내 저항과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조직 내 전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는 건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성과를 냈을 때 해도 늦지 않다. 톰 피터스의 명언 중 하나인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Under-promise, over-deliver)”는 격언은 사내 기업가정신을 실현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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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cott, R. C. and Lippitz, M. J. (2010). Grow from within. McGraw-Hill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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